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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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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토론장 동성왕과 청령천황 생몰연대
knjpark 추천 0 조회 81 26.03.06 09:1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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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4.13 12:43

    첫댓글 곤지가 무령왕의 어머니를 왜국으로 데려갈 때가 45세였는데 일본서기는 이미 5명의 왕자가 있었다고 하여 합리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를 오역하여 곤지가 45살까지는 자식이 없다가 무령왕을 데려간 이후에 다섯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는데, 이에 속지 않고 동성왕의 출생연도를 442년으로 매우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도를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합니다. 계체는 곤지의 막내 아들로 무령왕보다 연상입니다. 백제의 지방관으로 왜국에 부임하기 때문에 무령왕이 청동거을 준 것입니다.
    "무령왕(461~523): 왜에서 활동하다 501년 백제 왕위 계승" -> 이것은 틀렸는데 무령왕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백제로 보내졌으므로 왜국에 간 일이 없습니다. 오류 많은 <전라도 천년사>도 이 부분 만큼은 무령왕이 왜국에 간 일이 없다고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만일 무령왕이 왜국에서 40년을 살았으면 그의 무덤은 전방후원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무덤이 양나라에서 유행하던 전축분인 것으로부터 그가 부여씨의 근거지였던 영산강유역에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옹관묘제는 엄밀히 말하면 묘제라기보다는 고대의 납골당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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