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통영
십이월 셋째 토요일은 내가 속한 자생연구단체 정기 모임이라 시간을 비워두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데 매번 나가지는 못했다. 이번엔 장소가 통영이라 아침나절부터 길을 나섰다. 집 근처서 전문직으로 근무하는 후배 차량에 동승했다. 도계동에서 동갑내기지만 초등 교장인 선배와 합류해 시내를 벗어나 국도를 달렸다. 교외로 나가니 하늘은 투명하고 공기는 한층 깨끗하였다.
고성 배둔을 지나 읍내를 앞둔 지점이었다. 간밤 겨울비가 살짝 내린 뒤라 그런지 안개가 짙게 드리웠다. 바다가 가까워 해무가 밀려왔을 수도 있었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로 진입하니 금방 통영 입구 죽림 신도시였다. 지역교육청에 닿으니 먼저 와 있는 통영의 후배와 선배 교육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어 김해와 진주의 후배들이 모여들고 마산 회장과 거제 선배가 속속 도착했다.
그간 밀린 근황 안부를 나누면서 차를 들었다. 이어 회의실에서 총무단의 진행으로 정기 모임을 가졌다. 마산 시내 고교 교장인 선배는 김춘수의 ‘꽃’을 암송하면서 예향 통영에서 회원들과 자리를 같이 해서 기쁘다고 했다. 이어 모임 장소를 주선한 선배 교육장이 통영 교육 현황을 잠깐 소개했다. 현안 가운데 도서지역 폐교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다.
회무 관리에 꼼꼼한 총무는 자리를 함께 못한 회원을 포함해 회원 동정을 소상하게 알려 주었다. 서울대학교에서 3개월 과정 교육행정지도자 연수를 다녀온 교장이 있었고, 대한민국 발명교육대상을 받은 교사도 있었다. 한 여교감은 올 가을 한국교원대학에서 교장 자격연수에서 1등 하기도 했다. 이어 선배 교장은 지도자는 시대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빡빡한 틈새 연수가 있었다.
한 시간여 정기 모임을 끝내고 지역교육청에서 그리 멀지 않는 점심자리로 옮겨갔다. 남해안 겨울 특미 물메기탕이 끓고 신선한 자연산 회가 나왔다. 옆에 앉은 선배 회장은 나한테는 소주가 아닌 막걸리를 채워주어야 한다면서 종업원 발길을 바쁘게 했다. 덕분에 나는 회 안주로 막걸리를 몇 잔 비웠다. 막내 후배는 선배가 건배를 제의할 때마다 폰 카메라로 인정 샷을 눌러대기 바빴다.
점심 자리를 느긋하게 가질 수 없었다. 바쁘게 창원이나 거제로 복귀해야 할 회원이 몇 분 있었다. 나머지 회원들은 세 대의 승용차에 분승하여 남망산공원 통영시민문화회관으로 갔다. 문화회관 뜰에서 내려다 본 통영 항구는 가녀린 겨울 햇살에 윤슬이 빛났다. 저 멀리 통영대교가 해저터널 운하에 걸쳐졌고 건너편 미륵산에선 케이블카가 오르내렸다. 따뜻한 남쪽 바다임을 실감했다.
시민문화회관으로 오르는 진입로는 청소년들과 젊은 학부모들로 가득 메워졌다. 시민문화회관에선 예향 통영답게 ‘꿈틀꿈틀통영청소년뮤지컬단’의 두 번째 정기공연인 창작 뮤지컬 ‘우리는 십대다’ 공연을 앞두었다. 지방에선 드물게 초중고 학생들로 구성된 청소년 뮤지컬 단원들이 펼치는 공연이었다. 아마추어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시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비롯한 내빈도 다수 자리했다.
비록 어른들의 후원과 스텝진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청소년들의 발랄한 율동과 선율에 객석의 관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화사한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나라 미래를 찾을 수 있었다. 촌티 나는 의상이나 분장이나 억양은 그 자체가 순수임을 입증하였다. 청소년기면 누구나 겪는 고만고만한 고민을 대중 앞에 드러내어 세대를 초월한 객석의 관객들도 이해하고 치유 받은 시간이었다.
뮤지컬을 관람한 회원 일행은 강구안으로 내려왔다.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 무대 강구안에는 거북선 모형 네 척이 우람하게 정박해 있었다. 강구안 곁의 중앙시장은 시간이 빠듯해 들리지 못해 펄떡이는 활어나 뽀글뽀글 거품을 낼 게나 조개는 머릿속으로만 그려보았다. 대신 동피랑 언덕 골목길로 올랐다. 계단식 논밭이 아닌 살림집에는 타지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오르내렸다. 1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