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종교나 소수집단종교들은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말세론을 자주 이용한다. 신도들에게 위기감과 공포심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교세를 단시간에 확장시키는 데에는 말세론만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말세론이 효과를 가지려면 운명의 날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닥쳐야 한다. 또 그 시기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100년 뒤에 운명의 날이 온다고 해봐야 코방귀 뀔 사람 별로 없다. 따라서 말세론이 효과를 가지려면 적어도 5년안의 특정한 날에 심판이 내려진다고 주장해야 한다.
따라서 말세론을 주장하는 종교들은 2012년 12월 25일 23시라는 식으로 운명의 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이 양날의 칼이 된다. 다가올 운명의 날이 분명해짐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심은 깊어지고 교세도 확장되기 마련이다. 동시에 만약 그 날이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하게 지나버린다면 종교 교단이 입는 데미지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있어온 광신의 심리
말세론과 관련해서는 우리 사회도 한 차례 심각한 홍역을 앓은 적이 있다, 1992년 10월 28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다미선교회를 비롯한 종말론 교회들이 벌인 이른바 “시한부 종말론” 소동이다. 운명의 날을 일찌감치 앞두고 시한부종말론을 따르는 상당수의 신도들은 생업과 가정을 포기한 채 휴거에 대비하는 집단생활에 들어갔다. 이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벌인 이른바 '10·28 휴거 소동'은 광적인 신자들의 가정 파탄과 가출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10월 28일은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자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매스컴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라는 식으로 보도했고, 사람들은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때의 광신자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종말론이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광신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시한부 종말론 소동이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 사건의 전모와 신자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이해할 만한 학술적인 보고는 없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종말론 소동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절대로 드문 예가 아니다. 늘 있어 왔다. 따라서 사회심리학자들이 직접 참여, 관찰해 신자들의 심리적인 변화를 기록한 연구가 상당히 존재한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케이스인 레이크시티 그룹을 보면서 광신의 심리를 살펴본다.
레이크시티 그룹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지구밖에 있는 정령들로부터 메시지를 수신하는 여성 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리이크시티 그룹이라는 소수파 종교 집단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주는 정령으로부터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신도들에 전했다.
그것은 “곧 대홍수가 지구를 덮쳐 세계는 멸망하게 되고, 신자들만이 UFO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교주는 운명의 날이 올 때까지, 신자들은 되도록이면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했다. 또 마음의 준비를 하며 그날을 기다리도록 신자들에게 교시했다.
홍수가 올 것이라고 예언된 날 저녁, 신자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주러 올 UFO를 기다리기 위하여 한 신자의 집에 모였다. 하지만 밤이 지나고, 이튿날이 되어도 홍수도 UFO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보여준 신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신자들은 교주와 교단이 사기쳤다고 난리 법석을 피웠을까? 지금까지 자기들이 바친 돈과 시간을 보상하라고 소동을 피웠을까?
인지부조화 이론과 행동변화
신자들이 보여준 반응과 심리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심리학의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사회심리학에서 일세를 풍미했던 이론으로서 아직도 이론적 타당성이 유효하다는 시각이 우세한 사회심리학을 대표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을 이미 접해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복습의 의미로 다시 한번 살펴 보자.
인지적 불협화이론이란 다음과 같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인지나 견해가 있으면 사람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불쾌하게 된다. 그 결과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느 한 쪽을 바꾸려한다. 여기서 인지란 생각이나 믿음으로 보아도 좋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당신이 흡연을 즐기는 애연가라고 치자. 어느날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 중 TV 뉴스에서 흡연자의 폐암사망률이 보통 사람의 10배라고 하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같이 본 가족들이 “거봐, 아빠 담배 끊어야 한다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건 당연하겠다. 요즘이야 담배 피는 사람들, 집이나 직장에서 사람대접 받기 어려우니까 당연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게 될까?.
“나는 담배를 피운다”라는 생각과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의 그것보다 10배나 높다. 그러니 나도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라는 생각은 서로 모순되어 마음속에서 불협화를 일으킨다. 그 결과 심리적으로 불쾌한 상태가 유발된다. 따라서 불쾌감을 없애기 위한 동인이 심리적으로 발동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쾌를 추구하는 존재이니까 너무나 당연하다.
심리적인 불쾌감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는, (1)TV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여 담배를 끊는다, (2)점점 의학이 진보하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새로운 정보를 마음대로 더해 무시해버린다, (3)“주위사람도 다 괜찮은 데, 무슨 얘기냐, 쓸데없는 소리”라고 정보를 왜곡해버린다라는 3가지가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할까? 대다수는 (1)번 보다는 (2),(3)번을 택해 다 체질 나름이라고 주장하기 마련이다. (1)번의 경우에는 행동을 바꾸어야 하지만, (2), (3)번은 생각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대개 쉬운 쪽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미국의 한 조사에 다르면 “끽연과 암과의 관련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라는 항목에 비흡연자의 10%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흡연자의 경우에는 40%에 달했다. 흡연자는 나름대로 심리적인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포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여우는 먹음직한 포도를 따먹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결국 힘만 뺏을 뿐, 도저히 딸 수 없다는 것을 안 여우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만다. 그냥 가면 좋을 텐데 자존심이 상한 여우는 “그깟 신포도, 주어도 안 먹는다”라고 한마디 내뱉는다.
여우의 마음속에서 “포도가 맛있어 보인다”라는 인지와 “온갖 노력을 해도 따먹을 수가 없다”라는 인지는 서로 모순되어 심리적 불쾌감을 유발했다. 어느 한쪽 생각을 바꾸어야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온갖 노력을 해도 따 먹을 수가 없다”라는 인지는 사실이다보니 바꿀래야 바꿀 여지가 없다.
여기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포도가 맛있어 보인다”라는 인지뿐이다. 결국 포도가 시어 터져 맛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심리적인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참 한심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우리들 모두가 이런 식의 행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은 하고 있다. 이 인지부조화 이론으로는 사람이 어떠한 식으로 합리화를 할까를 예측할 수 있다. 레이크 시티 신자들의 심리가 어떠했을까? 인지부조화 이론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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