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 - 윤구병
점심을 먹고 잠시 또 음식 문제로 봉선씨에게 싫은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죽을많이 끓여서 점심때 마저 먹어야 쉬어 버리지 않는데 금란씨와 봉선씨만 그 죽을 먹고 우리 밥그릇에는 새로 지은 밥을 퍼놓았다. 나도 죽을 달라고 해서 먹었다. 그래도 남아서 내가 밥통을 들여다 보고 마저 그릇을 퍼서 먹었다. 과식을 한 셈이다. 두부도 내놓은 것이 약간 쉬는 기운이 있고 국도 남기면 버릴판이다. 그런데 상에는 풋고추와 들깻잎에다 구운 갈치토막, 김치가 더 놓여있다. 싫은 소리가 될 줄 알면서도 한마디를 더 했다.
옛날에 시골에서 여름이면 식은 꽁보리밥에 된장과 풋고추만으로 점심과 저녁을 때운 까닭이 있다. 한창 바쁜 때에 어느 겨를에 굽고 끓이고 여러가지 반찬 마련에 신경 쓸 틈이 있겠는가. 음식이 쉬려는 기미가 보이거든 다른 반찬 내놓지 말고 그것으로 내놓아라. 그리고 많이 만들어서 음식을 쉬게 놓아두고 게다가 한 번 상에 올린 것을 다시 올리지 않고 식탁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 다른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을 버려라, 음식을 남겨서 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여름 내내 쉰 음식을 혼자 부엌에서 몰래 먹고 밥이 너무 쉬어 입에 대기 힘들면 찬물에 빨아서 먹는 모습도 보았는데 어렸을 적에는 궁상스럽게 여겼지만 지금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리니 참 거룩하게 보인다. 앞으로는 반찬도 세가지 정도로 한정시키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밥을 먹고 남자들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내기' 처녀들이 이제 무얼 자꾸 내다버리는 버릇을 고쳤으면 좋겠다.
첫댓글 마음에 와 닿는 지방하신 말씀입니다.... 어렸을적이 생각나고요... 밥상에 대해서 요즘 많이 생각해봅니다.. 먼저만들어진것을 먹어버리고 새 반찬을 나중에 먹야야쥐 ....하나도 버리지 않고....
먹을게 별루 없네.. 무심결에 했던 말인데,, 반성합니다....ioi
누군가 '음식'이란 말과 '쓰레기'가 만나서는 안될 말이라 했는데 너무나 옳습니다. 어떨땐 풍요가 재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냉장고에 오래 보관 하는 음식이 없게 하려고 반찬 떨어질때까지 내놓습니다. 그래도 여기 저기서 챙겨주시는 것들이 냉장고에 그득합니다. 맨날 같은 반찬을 군소리 없이 먹어주는 남편이 고맙지만 어린 딸내미는 먹을것 없다고 과감히 단식 투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