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10]아름다운 사람(38)- <대산문화>를 만든 시인
곽효환 시인이 그제 오후 불쑥 전화를 했다. 고향 성묘온 길에 들렀으면 좋겠다는 전화, 나는 이런 전화가 반갑고 고맙다. 무조건 하루 자고 갈 것을 강권했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오수면 출신 몇몇 인사들의 서울지역 부정기 모임에서 알게 돼 10여 차례 만난 지인이다. 전주에서 1967년 태어났으나 아버지 고향이 현풍 곽씨 집성촌인 오수면 주천리. 지난해 펴낸 시집 <소리없이 울다 간 사람>으로 지난 4월 <영랑시문학상>을 받았다(상금 3천만원). 영랑(본명 김윤식)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주옥같은 우리 시를 많이 남겼다.
곽시인은 최근엔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으나, 교보생명이 1992년 설립한 <대산문화재단>(이하 ‘재단’) 산파의 주인공. 번역원장으로 가기 전까지 재단에서 30여년 동안 사무국장 등으로 청춘을 바친 중견시인이다(시집 5권 펴냄. 편운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도 수상), 99년에는 문학교양지 <대산문화>를 창간, 통권 92호에 이르고 있다. 재단은 교보생명의 설립자 신용호(1917- 2003. 호 대산) 회장이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설립한, 대기업 산하 재단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문학전문재단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는 신회장의 둘도 없는 명언이 큰 돌에 새겨져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얼마나 지당한 말씀인가.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을 만들겠다는 신회장의 꿈은 81년 ‘교보문고’를 세움으로써 실현됐다. 재단이 한국문단과 한국문학에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 신인작가 발굴과 대산문학상, 대산대학문학상 시상, 대산창작기금 지원을 비롯해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산청소년문학상 시상 등이 그것이다. 2016년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부커스상을 수상하게 된 데는 재단의 출판지원에 힘 입은 듯. 광화문 교보빌딩의 대형 글판도 재단에서 분기별로 선정, 게시하여 행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아무튼, 곽시인에게 유난히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그의 작품도 좋지만 아버지의 원적을 잊지 않는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박사학위 전공은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윤동주 백석 이용악의 북방의식 시세계에 천착했다. "북방은 우리의 기원이 되는 공간이면서 다른 민족들과 조화롭게 살고 기상을 떨친 기억을 품은 공간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힘없고 나약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상황 앞에서 울음을 삼키면서 버텨내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한 허기처럼 밀려오는 그리운 무명의 사람들"이라고 밝힌 수상 소감처럼, 그의 시선이 마냥 따뜻해 좋다. ‘그리운 무명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운문으로 옮기기가 어디 쉬운 일이랴. <무엇으로도도 위로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는/거대한 슬픔을 겪어내는 사람들 곁에서/그저 함께 울어주는 것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사람이 그리고 사랑만이 기적이다/애들아 가자/이제 집으로 가자>로 끝나는, 세월호의 아픔을 그린 <늦은 졸업식>은 너무 아파 소리내어 낭송할 수조차 없다.
그는 옥정호 붕어섬을 가보고자 했으나, 내가 안내한 곳은 성수산 상이암. 오래된 암자의 역사적 의미를 곁들이니 아주 흥미 있어 했다.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가 숨쉬는, 왕건과 이성계의 기도처로 유명한 조용하고 아담한 곳이다. 군에서는 이 곳을 <왕의 숲>이라는 이름의 힐링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오수 원동산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견비를 바라보며 ‘오수개’의 현재적 위상과 미래의 설계(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그날밤, 우리는 모처럼, 아니 처음으로 우리 사랑채에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마침 전주에서 한문학자가 내려오고, 오수의 엉겅퀴 명인이 함께 자리를 해 금상첨화. 문학 이야기가 어디 끝이 있으랴. 말이 통하니, 나이와 상관없이 신이 날 수밖에. 그가 5년 전쯤, 서촌마을 허름한 선술집에서 모임이 파한 후 지은 <오수사람>이라는 시를 새삼 다시 감상해본다.
경복궁 서쪽 한옥마을 초입 체부동잔치집 한켠에서
중년의 사내 셋, 초로의 사내 둘이 술추렴을 한다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서 왔다는 사람들
나는 전주 사람이고 오수는 아버지 고향이라고 해도
다들 괜찮다고 탁배기 잔 가득 막걸리를 채워준다
잔은 돌고 말도 끝없이 돌며 이어지고 흘러간다
의견(義犬)이 났다는 오수, 봉천리 군평리 오암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머리에 하얀 서리가 앉은
인생의 반은 벌써 지났고 전성기도 지났을
초면의 쑥수그레한 사람들이 이내 편안해지는 것은
그들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고향말 때문일 것이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흉내낼 수 없는 그러나 그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씨와 억양과 소리의 고저장단 때문일 것이다
내 몸속 깊이 숨어 있던 유전자가 울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아버지와 일가친척들이 건너던
철다리는 사라지로
마을의 절반 이상이 빈집이 된 지 오래일지라도
밤 솔찬히 깊어도 도란도란 이어지는 수 사람들의 술자리
오래 전 돌아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사라진 마을의 풍경과 인심이 내내 함께 있었을 게다
나의 기원이 오롯이 들어 있었을 게다
-시집 <슬픔의 뼈대>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