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기 이천라이스센터에서 송영환 장호원농협 조합장(왼쪽부터), 농민 권영세씨, 홍성택 경기농협지역본부 양곡담당, 전상진 이천라이스센터 대표이사가 수확한 벼를 살펴보고 있다.
벼 수확 한창…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여름철 극심한 폭염·가뭄 영향 제현율·도정수율 떨어질 듯
근거 없는 ‘쌀 부족’ 소문 돌며 가격 추가 상승 기대하는 농민 농협 매입에 응하지 않기도
정부양곡 풀려 쌀값 하락 땐 농협, 막대한 손실 볼 수밖에
신곡 격리 등 쌀값 안정책 필요
전국적으로 벼 수확이 한창이다. 통계청이 17일 ‘2018년산 쌀 예상 생산량’을 387만5000t 수준으로 발표한 가운데, 산지에서는 쌀값 안정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올해 쌀 생산량이 기상여건 악화와 재배면적 감소 등으로 2017년보다 2.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여전히 수요량보다는 9만t 정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농민들과 농협은 “모처럼 상승세를 보인 쌀값이 다시 떨어지고 있다”며 과잉물량 시장격리 등의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정성진 경북 의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왼쪽)와 농민 정창훈씨가 수확을 앞둔 논에서 벼의 작황을 살펴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작황부진에 실질적인 품질도 떨어져=여름철 극심한 폭염과 가뭄 등으로 벼 제현율(벼를 찧어 현미가 되는 무게 비율)이 지난해에 비해 대부분 떨어졌다. 경기 이천 율면농협·설성농협·장호원농협의 통합 운영 미곡종합처리장(RPC)인 이천라이스센터는 올해 1만6000t의 벼를 매입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이곳에 들어온 산물벼의 평균 제현율은 81% 안팎이다. 지난해 매입량의 90%가 제현율 82% 이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고시히카리>를 주로 매입하는 평택 안중농협 RPC의 경우 도정수율(벼를 찧어 쌀이 되는 무게 비율)은 67~68%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0~71%보다 떨어진 것이다.
전상진 이천라이스센터 대표는 “평균 제현율이 떨어지고 등급이 낮게 나오면서 농가 불만이 크다”며 “도정수율이 떨어져 농협 RPC도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덕주 충남 당진 우강농협 RPC 장장은 “수확한 벼의 왕겨층이 두꺼워 지난해보다 제현율이 낮아졌고, 도정을 거쳐도 쌀 품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난해는 전체 산물벼의 92%가 제현율 82%를 넘겼는데, 올해는 15일 현재까지 전체 매입물량의 60~70%만 제현율 82%를 넘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남지역도 벼 품질이 지난해에 비해 대부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현 농산물품질평가원 전남지사 검사원은 “매입현장에서 덜 차거나 깨진 낱알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도정수율이 평년(72% 수준)보다 1.5~2%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북지역도 제현율과 도정수율이 지난해보다 크게 낮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쌀알이 제대로 여물지 않아 제현율이 떨어지고, 덩달아 도정수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성진 의성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지난해에는 제현율 82% 이상의 산물벼 특등비율이 전체의 70%를 넘었으나 올해는 5%도 채 안되는 실정”이라면서 “도정수율도 지난해가 73.5%인데 올해는 평년 수준보다 2%포인트 정도 낮은 71%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산지 분위기…쌀값 안정대책 촉구=농가와 농협은 지난해처럼 정부가 신곡 수요 초과 물량을 조기에 시장격리해 쌀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송영환 장호원농협 조합장은 “농가는 9만t 정도로 예상되는 수요량 대비 과잉물량을 정부가 가급적 빨리 시장에서 격리해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신곡의 적절한 공급 차단으로 쌀값 안정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시장에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벼 작황이 저조한 데다 ‘쌀이 부족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면서 농가들은 쌀값이 더 오를 것을 기대해 농협 수매에 응하지 않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문규 우강농협 조합장은 “올해 농가들로부터 1만2000t의 벼를 사들일 계획이지만, 쌀값 상승을 기대하는 농가들이 매입에 잘 응하지 않아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면서 “농민들은 농협에 벼값을 더욱 높이라고 요구하는데, 이러다 정부양곡이 풀려 쌀값이 하락할 경우 농협으로선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쌀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쌀값이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비치는 현실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농민 정창훈씨(50·경북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는 “몇년간 낮게 형성되던 쌀값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물가상승의 주범처럼 호도되는 게 큰 문제”라면서 “정부가 물가조절을 명분으로 정부 비축분을 대거 방출해 쌀값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쌀값 안정을 위한 대책 요구도 나온다. 이모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정책위원장은 “통계청 조사와는 달리 현장을 둘러보면 지난해보다 벼 생산량이 15% 정도 줄었다는 얘기가 돌면서 농가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쌀값이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는 만큼 정부는 공공비축미 물량을 지난해와 비슷하게 유지하고 신곡 수요량을 초과하는 9만t 정도를 시장격리하는 등 쌀값 안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