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7일 묵상 본문 : 열왕기하 16장 10절 - 20절 -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가지고 바른 관계를 세우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7월의 마지막 주말을 시작하며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이어지니 습한 기운에 마음과 생각을 정지시키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일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상황을 지혜와 감사로 이기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먼저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먼저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서는 기쁨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주를 향한 마음이 새로워지며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을 지켜 주시고 깨어 있는 신앙이 되도록 은혜 가운데 인도해 주옵소서.
날마다 신실한 사랑으로 붙드시고 지켜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0 아하스왕이 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왕이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11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12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 제단을 보고 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13 자기의 번제물과 소제물을 불사르고 또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14 또 여호와의 앞 곧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을 새 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제단 북쪽에 그것을 두니라
15 아하스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 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17 아하스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 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 바다를 놋 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18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19 아하스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0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본문 해설
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가 아람의 다메섹을 공격하여 패하게 만들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다메섹에 가게 된다.
이때 아하스는 다메섹을 점령하고 세워져 있는 앗수르의 제단을 보고 그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서 제작하도록 명령한다.
이는 아하스가 앗수르의 제단을 만듬으로써 앗수르와 동질성을 과시하려고 했으며 앗수르에 대한 전적인 복종의 뜻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이에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가 돌아오기 전에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제작하여 제단을 만들었으며 아하스가 돌아와 제단을 보고 그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게 된다.
제사장 우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아하스의 잘못된 명령을 바로잡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를 위해 지도해야 할 자였지만 오히려 아하스의 죄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하스는 만들어진 제단에서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전제물을 붓고 수은제(화목제)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며 제사를 드렸고 성전 앞에 있던 놋제단을 제단 북편으로 옮긴 후에 놋제단이 있던 곳에 앗수르의 제단을 배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야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물을 때 드리는 제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제사를 앗수르 제단 위에서 드리도록 지시함으로써 하나님을 심각하게 거역하는 죄악을 범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이방 우상을 함께 숭배하는 혼합주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의 지시대로 행함으로써 그 죄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고 물두멍을 옮겼으며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위에 그것을 두게 하는 등 성전의 기구를 훼손하고 재배치하는 교만함을 드러낸다.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해 성전에 건축한 낭실(전용통로)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전용통로)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우게 된다.
이는 아하스가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제의에 참석한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로 성전으로 향하는 길을 제거함으로써 철저히 앗수르 왕을 의존하며 두려워했음을 보여준다.
아하스가 행한 사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었으며 그가 죽자 다윗 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된다.
나의 묵상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다메섹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메섹으로 간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청 애를 썼으며 유다가 살 길은 앗수르와 동맹의 관계를 맺고 보호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에 다메섹에 가서 정복지에 세워진 앗수르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의 모양과 제의 방식을 그려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동일하게 만들어서 준비할 것을 명령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앗수르 왕을 더 두려워하고 섬기려고 했던 아하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이방인의 모습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하스의 명령대로 철저하게 순종했던 제사장 우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왕을 섬기는 종에 불과했으며 철저하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준다.
한 나라의 왕과 제사장이 이러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남유다도 철저하게 신앙이 무너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상의 권세와 열국을 하나님처럼 여겼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하스와 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 기구를 훼손시키고 위치를 마음대로 바꾸었으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성전으로 가는 길마저 옮겨버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기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제거함으로써 철저하게 불신앙적인 모습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심판받을 자의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하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사랴(웃시야)가 교만해져서 성전 제사를 주관하려고 했을 때 그가 나병이 걸리도록 하는 심판을 행하셨는데 아하스는 그러한 심판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하스를 완전히 버리셨다는 의미를 보여주며 심판을 통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해 버리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가 당하는 징계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도록 돕는 것임을 제시한다.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6~10)
결국 하나님의 심판마저 주어지지 않은 아하스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그를 철저하게 심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는 회개의 기회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타락의 모습 가운데 동조한 제사장 우리야의 모습은 아하스의 타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했음을 보여준다.
제사장이 세워진 이유는 사람의 뜻대로 제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제사하며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우리야의 죄악은 아하스의 죄악보다 더 심각한 죄악인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취할 삶의 자세에 대해 제시한다.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3~17)
오늘날에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세우는 일보다 세상적으로 많은 재물을 얻고 누리도록 부추기는 지도자의 모습도 다르지 않은 모습임을 느끼게 된다.
또한 성도들이 바른 길을 가지 않고 세상의 길을 따르고 있을 때 그 길에서 벗어나도록 독려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도록 힘쓰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나의 모습에서 이런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 여전히 부족하고 게으르며 나 자신도 온전히 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주시기를 간구하는 자가 되고 지체들도 이 마음으로 함께 주 앞에 설수 있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아하스의 모습을 보며 징계마저도 행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심판과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욱 두려운 것임을 깨닫습니다.
징계의 손길을 통해 바른 길을 깨닫고 돌이키는 은혜가 임하게 해 주시고 주와 온전한 관계를 세우는 것이 참 신앙의 목표요 나아갈 길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바른 길을 걷도록 도우심을 믿습니다.
순간마다 죄를 깨닫는 은혜가 있게 해 주시고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람과 세상의 권력을 무서워하는 자가 아니라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 앞에 서기를 힘쓰고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사는 것에 목적을 두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참 된 길을 가르쳐 주시고 은혜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