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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행 2002. 10. 10. 문화 제133호 등록
[시와비평][2]
[2004]
시와 비평
[본 도서는 2004년 문예진흥기금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합니다]
여는시
여는시
천지(天地)에서 / 김성춘
놀라워라
새벽마다 신(神)이 내려와
몸을 씻는
지상의 마지막 고요
고요의 발자국을 흰구름이 갉아먹고 있다
백두산이 몸을 열고
장백(長白)폭포가 한소리 한다
짐이 무겁더라도
더 무거워지시게
하산(下山)하는 길
두메 양귀비꽃, 하늘매 발톱꽃들의
색(色)쓰는 몸
물컹,
손에 잡힌다
............................................................
[김성춘/프로필]
1974[심상]등단/1942부산출생/부산대학교대학원석사/경남문화상/울산문화상/한국문인협희(울산)회장 역임/시집 비발디풍으로 오는 달외 9권 메일 kimsungchoon@hanmail.net
소개글:문화예술과 제133호 등록단체 [시와비평문학회]
환영글:낯선 기다림이 있고 언덕 너머 파도가 설레는 문학사랑을 동감하세요.
주인백:[시와비평/편집실]운문 1인 2편/평론 1인 1편 원고 동참바랍니다/매년 10월 발행
[시와비평] 소개글
[시와비평] 여는 글
비영리민간단체(NGO) 문화예술과 등록 제133호 공인단체가 [좋은문학]에서 [시와비평]으로 개명하여 운영합니다. [문학교과연구회]와 연대하여 해마다[전국충의백일장]을 개최하며, 문학지 [시와비평]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 및 편집】
1부 [ㄱ-ㅅ회원 시]
(운영자:강현옥시인/김명희/김순이/박희곤시인/박봉준시인/송연주시인)
2부 [ㅇ-ㅎ회원 시]
(운영자:윤석금시인/이민화시인/이상식/임대성/장성훈시인/황말남시인)
3부 [산문/평론][초대작가]
(자문/성기화시인/성자현시인)
4부 [특집/부록]전국충의백일장/사이버백일장 작품
(자문/강둘이/구창원/양희/엄덕이시인/임정택시인)
*[시와비평]운영자는 문학지가 나오도록 도와주신 도서출판[동백문화]와 편집을 도와주신 성기화시인, 이민화시인, 임정택 사무국장과 옥고를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초대시
여는시
달팽이의 집 / 신춘희
영혼이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육체의 빈집만 풀 섶에 남겨졌다
공허해진 그 집의 추녀 밑으로
벌레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서리가 내렸다
햇빛과 달빛이 스며들고
세월의 무심한 이끼도 쌓여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각질의 기둥만 남았을 때
빈집은, 땅으로 가
흙의 일부가 되기 위해
주저앉았다
............................................................
[신춘희 약력]
서울 출생. ??현대시학?? ??월간문학??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1980),
시조(1982), 동시(1983) 당선.
시와비평 2004
?? 화보 … 1~4
?? 여는시/천지(天地)에서-김성춘 … 5
?? 소개글/여는글 … 6
?? 초대시/달팽이의 집-신춘희 … 7
제 1부 [(?-?) 회원 작품]
강동화 고스톱/비누방울놀이/정지선 … 17
강현옥 나의 애송시/아침/처음부터 장애인은 없다. … 20
고운애 부조/미자 포장마차/캘린더 앞에서 … 25
김경곤 철쭉단상/부뚜막에 오른 고양이/새만금 … 31
김광련 참 이상한 일이지/빨간 우체통만 보면
/추어탕 속에는 … 34
김명희 닥종이 타령/땅따먹기/화암사의 저녁 … 37
김민성 나이트클럽 백악관/법당에서/봄날의 장송곡 … 41
김순이 목화솜 이불/멈춰버린 시계/바람벽에 걸린 달력 … 44
김정희 별 바라기/가시나무새/장돌뱅이 … 47
김종환 비에 젖은 술 한 잔/등나무 아래서/물안개 따라 … 51
김현철 소금쟁이/새의 노래/진수(進水) … 54
김현태 주남저수지/꽃다발 속의 추억/들국의 기억 … 59
박민철 집착(2)/소상강변의 버드나무/황소(2) … 64
박봉준 아내/신축 교회/지팡이 … 67
박승도 단풍/단풍(2)/단풍(4) … 70
박태남 내 사랑은/청마루 찻집/평화댐에서 … 74
박희곤 도공/일곱살 아이/채커리아리랑(9) … 78
성기화 오늘도 닦습니다/선로 위에서/풍란의 꿈 … 82
성자현 처용의 해무/인연/환절기 … 85
손갑식 고려청자(1)/도시에 사는 개구리/정선아리랑 … 88
송문희 마당/옹이/우당의 밤 … 92
송연주 내 속엔 아픈 새 한 마리 있다/가시연 꿈을 꾸다
/나는 매일 앓는다 … 95
제 2부 [(?-?) 회원 작품]
엄덕이 충남 아산시 배방면/이모 … 101
우성식 도서관에서/인천 대공원에서/창에 비친 하루 … 103
유영애 밀서리/동백꽃 떨어지고/뻐꾸기 우는 밤 … 107
윤석금 중매쟁이 시인/새만금 갯벌/야화 … 110
이명주 귤타령/꽃병의 눈물/피멍 … 114
이미자 달빛의 꿈/멸치볶음의 전설/회귀 … 117
이민화 반구대 암각화/빨간 꽃삽/별 … 120
이상식 등대/검색 오류/철물점의 하루 … 124
이상태 낯선 통화중/낚시터의 연인/섬진강 재첩국 … 128
이영돌 아내의 태양/장미의 전쟁/ 천직 … 132
이용일 달팽이/발리에서/흔적 … 136
이우복 그녀는 예고없이 오더라/불춤/샤워 … 139
시와비평 2004
인이숙 빵 다비식/대공원 정상에서/북한산 가는 길 … 143
임대성 통화권 이탈/움켜쥐는 것들/천상타운 … 146
임정택 바다에 내리는 비/안개 비/장마 비 … 151
장성훈 길/막장 모니터/엉겅퀴꽃 … 157
정정용 소양호 사람들/영월동강/만물상 바람개비 … 162
차시환 은행털이/검정고무신/아버지 … 165
추창호 서커스를 보다가(2)/우화(寓話)(2)/우화(寓話)(5)
… 168
한휘준 공작새(孔雀鳥)/송도 째즈바 앞에서
/을숙도에는 새가 없다 … 171
황말남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생태공원조성
/애정결핍 … 175
현 임 반딧불/마싸이족 사랑/해바라기 … 179
현혜숙 건강검진/막차의 꿈/바다빛 무늬 … 183
제 3부 [산문/비평/사이버 초대작가 작품]
[산문 작품]
고영예 나 한번 업어 줄래요 … 189
이정미 여군이 되려면 … 191
[시와비평/대학]
이상태 메타포를 얻기 위한 감상 … 194
[사이버 초대작가 작품]
김종제 사기리 탱자나무 … 199
김영천 바다 일기 … 201
정일근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리며 … 203
제 4부 [특집]
[전국충의백일장] 장원작품
일반부 장원/이정화 갈꽃 피는 반구대 … 207
고등부 장원/정왕교 태화강 바람 아래 … 208
중등부 장원/김성심 문수산 흰구름 … 210
초등부 장원/송해욱 아버지와 연필 … 213
[사이버백일장] 추천작품
문 예 교 실/강둘이 장미 가시 … 215
고등부 작품/문승업 등교 길 … 216
중등부 작품/한아름 바람이 되고 싶다 … 218
제 1부
[시와비평문학회 (?-?) 회원작품]
강동화/강현옥/고운애/김경곤
김광련/김명희/김민성/김순이
김정희/김종환/김현철/김현태
박민철/박봉준/박승도/박태남
박희곤/성기화/성자현/손갑식
송문희/송연주/
고스톱 / 강동화
잠을 잊고 뒤척이던 불면증
언제부턴가 친구 하나가 생겼다.
오광을 얻은 듯 기쁘기도 하다가
어느새 전부를 잃기도 하는
삶이 언제 고스톱만 하랴.
결코 방심할 수 없는 팽팽함.
간혹, 치고 빠지는
얄미운 공산명월을 만나는 날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욕설을
비를 맞고 참아내기도 해야 하는
못 먹어도 고!
내 손금의 축소판인지 몰라.
희뿌옇게 창문너머 껍질을 보듯
부질없이 햇살이 기어 들어오면
그제야 눈꺼풀이 가라앉고
새는 철없이 날아가서
새벽의 피를 물고 돌아온다.
...............................................................
[강동화/프로필]
부산/전원문학회/현재 울산
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eunseo6319@hanmail.net
비누방울놀이 / 강동화
후하고 불면
맑고 투명한 방울 하나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꺄르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
채 가시기도 전에
중간 어디쯤에서
사라지는 비누방울들.
햇빛 받아 더 반짝일수록
눈을 뗄 수가 없다.
아이는 마냥 즐거운데
문득 서글퍼지는 건
손 내밀면 사라져 버리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정지선 / 강동화
달린다.
진초록의 가로수 사이로
쏟아지는 따가움 위로
언뜻 신호등이 보인다.
불안하다.
언제 초록에서 노랑으로
변할지 모른 채
엑슬레이터와 브레이크 사이에서
다리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바로 눈앞이다.
과거와 현재가 헷갈리듯
상자 속 미래가 선 너머에서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나는 어디쯤에서
멈춰서야 하는 것일까.
정지선을 앞에 두고
파란 신호를 기다려 하늘을 본다.
나의 애송시 / 강현옥
좋아하는 시인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시인을 찾아
늦은 밤 서재에 들리는데
오늘은 도박에 빠진 그의 기사가
뉴스에 나왔다.
저녁을 먹다가 전해들은 소식에
소화불량이 된 듯 답답하여
폐의 각질까지 벗겨 진 듯
저린 한숨을 반복한다.
아직도 서재에는 그의 시집이
나를 바라보며 펼쳐져 있다가
한 구절의 시가 그의 주인의
사정을 모르는지
내 눈에 들어와 꿈틀거린다.
술과 도박이 그 시인의 삶이었지만
길을 두고 꽃밭과 숲 속을 오고가며
길을 내는 것이 모순이라면
...................................................................
[강현옥/프로필]
경남 함안출생/현재 부산
월간 한국시[1994년 1월]등단
부산문인협회원/베리줄문학회 동인/시와비평 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ksw0500@hanmail.net
홈페이지 http://www.cmunhak.com.
그 손에는 유혹을 자를
칼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고
머리 저으며
뒤란의 창문을 내다보았다.
그가 길을 내려던 숲 속에서
늙은 부엉이 한 마리
쓸쓸하게 우는 소리가
내 눈시울에 유혹의 샘을 팠다.
아 침 / 강현옥
불사의 불덩어리가
태평양 해저에서
올라 와요.
갈매기들이 홍옥의
부스러기를 물고와
내 창문에
주렴을 틀어
걸어 두었어요.
간밤에
어느 사내 찾아와
석류의 옷고름 풀었을까.
가슴 들어 내놓고
만면에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어요.
아침 풀잎에 내려앉은
눈물 같은 이슬
자세히 보세요.
그 가슴에 적힌
수많은
태양의 어린 눈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아궁이 불
태양을 닮아
뜨겁게 타는데
어머니 쌀 씻는 손이
빨라졌어요.
처음부터 장애인은 없다 / 강현옥
손꼽아 헤아려도 셀 수 있는
행인들이 오가는
오전의 한적한 시장골목길을
저 앉은뱅이 이동 리어카
뿌리며 가는 노래가
그의 사연 담은 가락일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나아가는
수레 위에 무겁게 얹혀진 잡화가
노래 가락을 따라 밀려
나아가고 있는데
말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
우-몰려나와
염탐을 하는 눈초리들이 바쁘다.
교통사고의 장애일 거야.
선천적적으로 장애일 거야.
아니야, 얼굴은 통통 한 게 아마
중간에 장애인이 되었을 거야.
가볍게 한마디씩 내뱉는 말들이
고무풍선에 앉은 듯 붕붕 떠다니다가
저 노점상의 어깨로
내려앉은 적의의 언어들이
근육통을 일으키는지
뿌리며 가는 노래 말이 울며 간다.
부 조 / 고운애
이웃 집 딸 혼사 치른다며
오만원짜리 청첩장이 왔다.
고모네 조카 시집간다고
이십만 원짜리 전화기별이 왔다.
남편의 친구 가게 개업 안내장이 와서
오만 원짜리 화환을 부쳤다.
몇 년째 함께하는 계원의 부친
환갑이라 해서 곗돈 일부를
온라인으로 송금하기로 했다.
내 어린 날 기억 속의 내 어머닌,
옆집 언니 시집가기 전날부터,
부조를 하기 위해 이틀을 보냈다.
싹이 튼 말린 엿기름
디딜방아에 종일토록 빻아
...............................................................
[고운애/프로필]
경북의성1960출생/현재 대구
실명/박명남
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myung8028@hanmail.net
그 엿기름 거르고 걸러내어
이불 속에 밤을 보내고
반나절 가마솥에 달이셨다.
정성으로 빗은 단술 한 단지
머리에 이고,
국수 몇 다발과 부조하셨다.
그리고 진종일 발이 붓도록
잔치 일을 거드셨다.
어머닌 몸으로 때우고
나는 돈으로 때우고.
미자 실내포장 / 고운애
손주 몇 있는 할머니
성북시장 후미진 골목에
[미자실내포장] 이름을 붙인
삼각 간판 하날 내걸었다.
개업 이후 이른 새벽이면 더러
탕탕탕 샷다문 흔드는 소리에
세상은 부시시 깨어나고
마른하늘에 태양대신 별이 번쩍거렸다.
사 미터 콘크리트 소방도로
시장의 좁은 평상 위엔 해장술판 벌어지고
윙윙 나불거리는 막노동꾼의 억센 십원짜리는
쇠주의 안주가 되어 씹혀졌다.
펑퍼짐한 엉덩이 뒤뚱거리며
헤픈 웃음에 솥뚜껑 인심
다녀가는 단골은 식탁 위 메뉴처럼 다양하다.
철푸른 놈팽이와 허름한 남정네
깔끔 떠는 희끗 머리 칠십 노인까지
찾아오는 이도 여럿.
황혼의 나이에 접어든 낯짝 반반치 않은
미자실내포장집에 들락거리는 손님들을 보면
난 이해하지 못할 벽에 부딪치고 만다.
미자야! 미자야!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대는 소릴 들으면
뭐! 뭐!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지금 그녀의 가게 앞엔 몇 대의 낡은 자전거가
예전같이 거미줄처럼 진을 치고 있다.
캘린더 앞에서 / 고운애
한 계절의 끄트머리 두께보다
몇 천 만 분의 일이나 될까말까 하는
마지막 잎사귀가 되어있는 너를
바라보며 샛별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던 나도
지난 밤 여느 장례식장
상주의 발갛게 상기된 눈언저리에는
부어오르기만 하던 눈물들이
가슴 속까지 차고든 탓인지.
아직 동트지 않은 오늘 새벽은
하느님 고백으로 꿇어앉은 죄인처럼
왠지 숙연하게 문밖에서 떨고 있다.
드르륵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의 신음소리인지
이절지 크기의 커다란 달력
선무당처럼 종이 춤을 춘다.
더러, 꽃을 자꾸만 나무라 여기며
하늘을 자꾸만 땅으로 부르려던
그 많은 아집들 이젠 무뎌지게 하고
눈 안에 들어오는 빛보다
더 먼 곳이나 때로는 보이지 않는 곳도
볼 수 있는 눈 뜨게 하소서.
심장 소리 보다 더 작은 고통마저
들을 수 있는 귀 열게 하고
세월을 그저 낮은 호흡으로 살게
남은 촌음을 살뜰히 아껴 쓰게 하소서.
깨알 같은 반성문 하나가
캘린더 한 장에 척 걸쳐진다.
철쭉단상(斷想) / 김경곤
초하의 시절은 봄을 멀리 가라 하는데
엄동설한 키워 온 핏빛 절은 가슴엔
한 꺼풀씩 접은 눈물 보내나니.
작살에 관통된 활어처럼 파르르 떨던 삶
켜켜마다 비집고 들어선 의뭉스런 색채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는 듯 문득 불길한
예감이 촉수를 세워 가슴 한켠에 자리한다.
모름지기 순결하다 던 분홍 꽃잎은 새빨간
루즈를 바르고 마파람의 손길에 엉큼히 속
내를 까발리고 엉덩이 속에 곱게 감춘 술,
말미잘의 촉수운동이었음을 어찌 몰랐을까.
두견주 목에 턴다고 개꽃이 참꽃 될 리 없고
장비가 두건 쓴다고 유비가 될 수 없는데
난 오늘도 파운데이션을 덧칠한다. 또 다른
나를 위해, 또 다른 삶의 데스크를 위해.
..............................................................
[김경곤/프로필]
등단/ 월간문예사조/회원
현직/ 연천문인협회 총무
동인/ 시사랑문인협회/한시문협/서정시마을/등단문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kyungkonk@yahoo.co.kr
홈페이지/ http://www.kk.zoa.to/
부뚜막에 오른 고양이 / 김경곤
논배미 오르던 봄이
먼저
제주, 부산, 대전, 서울에 다녀온단다.
설익은 햇살은 상념의 깊이만큼 널브러져
바람에 흐느끼는데,
여행 떠났다가 돌아온다던 놈은
갈치 뼈다귀만 핥고 있나보다
가출한 고양이는 부뚜막이 집이 아니라던데
펑퍼짐한 엉덩이 흔들며 노래하던
하늬가 돌아온단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처럼 부푼 언덕 위
깊은 입맞춤으로 피운 열기에 젖은
페퍼민트 향을 가득 피워 놓았다.
벌겋게 충혈 된 고양이 먼 바다였던 곳의
꽃잎만 핥고 있다. 암염(岩鹽)은 뒷전인 채,
널브러진 빨래들이 깔깔거린다.
봄속박지 웃음소리 미끈거리는 날을 뒤엎는다.
그녀가 오나 보다.
새만금 / 김경곤
밤잠을 설친 일개미들은 신별이 올라간
사다리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일개미들에게 잠을 설친 불개미들은 삶의
질곡 같은 갯벌로 나간 꿈을 캐고 살았었다.
철새 억새 따개비 모두 흥겹게 노래하던 날
묵쇠선을 앞세운 베짱이가 들어와 개미들을
몰아내고 개미의 꿈을 하나하나 매장시킨다.
신시도 야미도 비응도 또 희망까지
갈매기 떼 장항의 불빛까지 사라진 군산항,
만선을 꿈꾸던 배들이 깃발을 내린 묵시록
갯벌, 터를 잃은 개미들만 남아있다.
육천원짜리 세금 낸 인력센터의 일개미와
비닐하우스 안 절망을 따는 불개미만 남았다.
※시작노트-새만금 간척지가 새로운 땅 가나안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이라크일까.
미완의 새만금 간척지를 바라보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참 이상한 일이지 / 김광련
바람 부는 날이면
바다는 숲에서
신나는 춤사위 벌이고
쏴아악 쏵
밀물과 썰물
사랑가 속삭였지.
뜨겁게 노래하던
매미마저 잠재운
그 해, 여름 숲은
바다 바람의 독무대
아무도 모를 일이었어
파도가 왜 숲에서
노래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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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련/프로필]
현재/ 울산대 문창과
회원/ 대전충청 한/시문협회원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anfakd1229@hanmail.net
빨간 우체통만 보면 / 김광련
빨간 우체통만 보면
왜 당신 생각이 날까요.
흩어진 낙엽 한 장 주워
내 고운 사연 담아
갈바람 편에 소식을 전합니다.
수취인불명.
낯선 거리 길 모퉁이
헤매고 있을 잎새에
안개비 흘러내리고.
먼 하늘가에
맴도는 얼굴 하나
뭉게구름처럼 떠돌고 있어요.
오늘도 난
예쁜 낙엽 손에 들고
빨간 우체통 앞에 서 있습니다.
추어탕 속에는 / 김광련
어머님이 사 오신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다가
아련한 고향 하늘가에 무지개가 피워 올라
고기 잘 잡던 투박한 오빠의 손마디가
따스한 김 따라 올라왔습니다.
비 내린 이른 새벽이면
허름한 거름 소쿠리 하나 들고
고기도 잡고 우리들의 꿈도 잡아
돌아오는 오일장에 내다 팔면 용돈 주머니 두둑해
세상 부러울 거 없이 즐거웠습니다.
비 갠 들판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으며
'연이야 어여와~! 예전같이 한번 잡아볼래?'
손짓하면 참 좋겠다 생각하는 사이
손가락 사이로 미꾸라지가 빠져 나가
뭉게구름, 소낙비, 황금 들녁을 불러 모아
한 폭의 멋진 수채화를 그렸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구수한 추어탕 속에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든든하고 푸근한 텃밭같은......,
닥종이 타령 / 김명희(희진)
무거운 몸 껍질 벗고
열탕 속에 맡긴 몸
몸뚱어리 욕될 수 없는 길이여
뚫어지라 목구멍 폭발한다.
허물어진 육신의 언어는
어두운 뒷골목 끌려 다니다
야만의 입 닥쳐라 고함친다.
구름 손에 무참하게 학살당한
얼룩문양들이 분쇄기에 녹아나와
숨 막히게 뛰고 있다.
냉탕 속을 유영하다
파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장의 고동소리
언어들이여!
네모난 틀에 갇혀 이를 악물어라.
수 천 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던가.
...............................................................
[김명희/프로필]
필명/ 김희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재/ 1963/강원 속초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zabewon@hanmail.net
희디흰 한지로 웃는 한마디 한마디가
뜨거운 입김으로도
내 몫 너의 몫 나누지 못하고
땅속에 묻힐 때 까지
다시 하늘로 탄생할 때를 기다리며
곱게 화장한 얼굴로 거리를 나선다.
언제나 나의 편이 아닐지라도
제 몫의 먹이를 갖고
한 획 글자로 환생한다.
땅따먹기 / 김명희(희진)
넓은 운동장 한 모퉁이
아이들이 앉아 있습니다.
동그라미 욕심껏 그려놓고
고사리손 한 뼘 펴서
작은 집 마련해 놓습니다.
땅따먹기가 시작됩니다.
조금씩 빈 땅 가져옵니다.
어떤 아이는 큼지막한 땅 삼키고 다닙니다.
뉘엿뉘엿 해지는 소리 들립니다.
아이는 일어나 지도처럼 그려진 땅
뿌듯 내려보며 미소 흘립니다.
아침이면 바람이 쓸어 갈지라도
고사리 손으로 일궈둔 발자국 찍습니다.
계집아이 자라 마흔 해를 살았어도
내 땅 한 뼘 지니지 못하고
베란다 화분에 고추 네 포기 심어두고
화초 삼아 키우며 살아갑니다.
살다 보면 매운 맛도 창밖을 나와
넓은 하늘 따먹은 품안에
내가 가득 드는 날이 옵니다.
화암사의 저녁 / 김명희(희진)
황혼이 머물다 몸을 감출 무렵
처마 끝에 매달린 금강산 자락이
마당에 좌정을 한다.
산그늘 내려와 기왓장에 덮이고
저녁 예불 알리는 범종소리 흩어질 때
산 속에 머물던 염불
다리난간 붙잡고 흔들다가
바람소리로 흩어진다.
지나치던 구름 다가와
산도 업고 절도 업고
어둠이 되어 산 속으로 스며든다.
아무 일 없었듯이 적막이 흐르고
별 몇 점 떨어져 계곡에 떠다닐 때
깨우쳐라 던진 화두
법당 마룻바닥에 드러눕는다.
나이트클럽 백악관 / 김민성
작은 문 들어서면 거대한 동굴
찢어지는 듯 울리는 소리
마술에 걸려 버린다.
혼을 뺏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밟고 돌아가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빛의 향연에 엉겨 붙는
모습은 차라리 아파 쓰라린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거친 호흡
꿀 사과 따던 손길은 이미 아니다.
주름이 골을 이룬 이마는
번쩍이는 불빛에 놀라
더 깊은 골이 패인다.
네온사인 하나 둘 꺼지는 거리
놓쳐버린 혼을 끌어 올릴 때쯤
취한 듯 꿈꾸는 듯
음악에 다리 흔들리는 사람들
여기는 변두리 소도시
나이트클럽 백악관.
...............................................................
[김민성/프로필]
현재/ 1965/경남 양산
양산문학회/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650901us@hanmail.net
법당에서 / 김민성
결 고운 마루바닥 엎드려 조아린다.
합장한 두 손안에 스며드는 달빛 붉게
올올이
베인 숨결도
맺고 푸는 저 촛불.
그윽한 눈빛 사연 보듬어 안아줄까.
차마 마주 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새 한 마리
석등에
불을 밝히고
어둠 차고 싶은데.
내가 만든 연옥에다 나를 가둬 놓았으니
무시로 나오는 일 그도 내가 할 일인데
모두가
열쇄라더니
무심한 바람만 불고.
봄날의 장송곡 / 김민성
초록 잎 뾰족뾰족 내미는 산길로
흐드러진 벚꽃은 눈이 되어 내리고
하이얀 나비가 아지랑이 속을 난다.
버찌 물고 꽃가마 타고 왔더니
풍파에도 볼 붉히던 산전수전 보내고
꽃상여 가는 길 한 세월이 수줍다.
산중턱에 흰옷 입은 사람들
뒷집 할머니 잔디 집 마련하고
아쉬운 언덕에 둘러앉아
꺼이꺼이 장송곡을 울린다.
어디서 나왔나 작은 멧새 한 마리
가는 봄을 부여안고
저만치 날아간다.
목화솜 이불 / 김순이
월경이 채 시작되지 않은
딸 아이 앞에
어머니는 목화솜 이불을 누비고 계셨다.
흥얼거리는 옛 노랫가락 속에
저만치서 바느질 다 끝내 신 어머니
이불은 새색시 마냥 구석진 곳에서
곱게 자리하고 있었다.
일치감치 어머니 곁을
떠나올 것을 예견이라도 하였을까.
스무 살 갓 넘어 시집 간 딸은
장롱 밑 맨 아래에 보물인 양 모셔 놓는다.
어머니는 모르셨나보다
두툼한 목화솜 이불 한 채면
추운겨울을 따뜻이 날수 있었으니
한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저 목화솜 이불이
제 시절을 잃어버린 어머니 같아
가슴 한켠이 싸하게 저려온다.
세월만큼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어머니의 젖내음에 젖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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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이/프로필]
현재/ 1967/경기 평택/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apfh007@hanmail.net
멈춰버린 시계 / 김순이
언제부터인가
멈춰버린 시계를
애써 외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게으른 탓 도 있으리.
하나의 시계가 멈춘다고
시간이 영원히 멈추는 건 아니지만
굳이 애써 건전지를 교체하기 싫었다.
멈춰버린 저 시간처럼
내 삶도 여기서 멈추기를 바라는 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어제
그리고 이 순간에도
지워져가는 시간이
어느 별 불랙홀 속에 빠져들 듯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지금 이 순간도
영원히 사라져 버릴 이 시간이
조금은 두려운 것이다.
창밖에는 봄이 오고 또 가고
붙잡고 싶은 시간은
나를 외면한 채 그렇게 흘러간다.
나는 어쩌면 내가 잊고 사는
시간인지 모른다.
바람인지도.
바람벽에 걸린 달력 / 김순이
진정 바람이고 싶다.
시작의 설렘이야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있건만
올해도 수평선 너머로
노을 끝자락 서서히 잠기고.
저기 강물로 유유히 흐르다가
한번쯤은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저 넓은 바다로 스며들고 싶어,
수많았던 파도 구비마다
차라리 가벼워진 희로애락 느낄 때
함께 나눈 시간을 가슴으로 안는다.
힘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가닥 바람도 낙엽이고 싶다.
처량하리만치 홀로 남겨진
달력 한 장 황혼에 부치고
한없는 출렁임으로 파도친다.
나의 존재 기억할 수 없이 살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다.
가진 초심 되새김질하며
한 장의 시간으로 다가와
바람의 시선을 떼지 못한다.
별 바라기 / 김정희
기다리고 있는 듯 그윽하게 바라보며
문득 내 앞에서 눈빛을 주고
그냥 이름이라도 불러 봤으면
애써 가라앉힌 하늘 구름이 몰려 와
한 줄기 샘물이 솟아 가슴 적시고
화사한 꽃잎들이 피어난다.
길들여져 있는 손길은 운명처럼 눈동자 속에
발자국 하나 둘 셋 그렇게 세어 봐도
느낄 수 없는 어둠은 단념하듯 사라진다.
어설프게 누운 자리 위로
별들은 입씨름만 할 뿐
엇갈린 너의 목소리 달력 속 숫자 되어
한 장 두 장 뜯겨나간다.
침묵을 사랑하는 고독은 나의 등 뒤로
까마득히 밀려들어 현기증 난다.
이젠 난 다 주고 없는 껍데기뿐
기다림은 애처로운 나의 허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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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프로필]
현재/ 1962/강원 춘천
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rlawjdgml9243@hanmail.net
가시나무새 / 김정희
알뜰하게 애태우던 어미의 목청이
깃을 달고 아프게 쓰러졌다.
조약돌만한 새가슴에
순종의 뼈 숨겨온 하늘 너머
바다 맨바닥에 발버둥치며 통곡하였다.
어미의 목청이 드높이 울려도
듣는 이 비웃는 그림자만
인정받지 못한 삶에 줄을 섰다.
내 하늘은 무수히 사라지고
해가 뜨고 달이 기울고
별빛이 우수수 떨어져도
날 살아있는 어미로 거부했다.
한 올의 모순이 질긴 연의 끈으로
갈아진 땅을 바느질하려 했다.
하늘이 꿰맬 수 없는 고달픈 땅
주인 없는 노래가 되어 떠돌았다.
땅을 딛고 푸른 풀로 일어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하늘 입김에 누웠다.
오직 분노의 기둥으로 버티고 서서
다독거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산골짜기 누런 가랑잎으로
집지은 애벌레가 부러운 내 실체
떳떳하지 못한 거짓된 형태였다.
비록 푸른 솔잎으로 시장기를 속여도
풍만의 풀피리로 대신 연주할 수 있게
어미의 목청에 엉켜 올 모습
거룩한 가시나무새 노래로 살겠지.
장돌뱅이 / 김정희
정상에 올라서는 서러운 시집살이
역대의 굴뚝에 연기 뿜듯 피었다.
숫처녀 자궁처럼 꽁꽁 꿰매어
한평생 숫제 변명의 여지도 없다.
대낮처럼 가슴 한 켠에 올라앉은 달
믿지 아니하고 무슨 말하려나.
그 안에 가득한 간세(間世)야
썩은 동아줄인데 버려질 한낮
흙으로 입 봉한 채 잠이 드는 법
이미 세워진 굴뚝 연기 없고
다시 세워야할 세월은 값나가던가.
5일장 들어선 장돌뱅이
놀음판 벌려 몸 바쳐 일구고
온종일 나그네 걸음으로 다가오는
인격(人格) 입씨름 거든다.
이가 부서지도록 씹어대는구나
거룩한 거짓투성이 길을 열고
기어온 젊은 날 갈증에
한 모금 마시던 샘물마저도
하늘의 반란으로 물길 걷어간다.
비에 젖은 술 한 잔 / 김종환
대지를 널뛰듯 솟구치며 쓰다듬듯
가라 앉아 얼싸 안고
정신없이 빙빙 돌며 춤춘다.
온천지 흙탕에 멱 감고
포만감에 축 늘어져 가물거리는
미소 담고 술술 머리를 젓는데
멍한 그림자만 가물가물.
잔등 타고 흐르던 밀어
골골이 모아 구르더니
줄기 가득 폭포수처럼 한 내림
운율 담고 세상 가득 줄타기 한다.
오르락내리락 세상 참
넌지시 넘겨다보던 흐린 시야
들풀에 구르는 옥구슬 꿰어다가
한 모금 잔 올려놓고
비야 너 술에 젖었니?
...............................................................
[김종환/프로필]
현직/ 경북 의성/중학교 재직
문학저널/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dido119@hanmail.net
등나무 아래서 / 김종환
온 몸 말아 하루를 빙빙 꼬고
강열한 태양 그늘로 덮어
솟구쳐 쏟아지는 꽃 똥
비 오듯 대지를 날아들고
품어지는 한숨 가지런히 몰아쉰다.
촘촘히 내린 팔을 거머쥐고
세월 만지려 몸부림치다
보랏빛 너울 타고 아래로 내려앉아
땅의 서리 어린 향기에 취해
등 이파리 너도 오라 너스레 떤다.
휙 똬리 틀다 칭칭 엮은 등살
엉겨 붙은 고뇌의 흔적
진 고름 향기로 잔재를 털어
제 몸 비틀어 기둥을 만들고
구름 잡으려 또 기어오른다.
팔을 벌려 갈구해도
청아한 하늘 받친 등만 휘고
수많은 물오름 흔적들만 서성인다.
스스로 칭칭 감은 발자취에
동여맨 온갖 시름 감싸 쥐고
맺힌 매듭 실타래 풀듯
하늘로 꿈틀거리며 바람 잡는다.
물안개 따라 / 김종환
물안개
자리 깔고
수도승 되어 앉아도
물새 앞
조아린 물결
수릉 위에 아기 된다.
못내,
들추지 못하고
우는 호수 달랜다.
목 잠긴
수목들이야
언제 철이 드는지
제 몸 하나
말지 못하고
누운 위선 아픈 물결
안개여
둥둥 눈뜬 길
파리한 덧에 걸린다.
소금쟁이 / 김현철
하늘은 맑고 시원하다
나는 지금 가볍고
바람에 넘어지지 않네
서늘한 짐승들의 발자국 소리까지
새롭고 시원한 별빛
바람의 등을 타고 물을 떠나자
물의 비밀을 엿듣고
바람의 구조를 엿보다가
기름 바른 손으로 물을 열고
젖지 않는 발로
당당히 물 밖으로 나와
나의 세상 넓어졌네
붕어와 꺽지와 동사리가
누치와 까막사리와 쏘가리가
서로에게 살을 내어주며 사는 정다운 곳으로
다시 갈 수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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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재/ 1954/울산/현대중공업
회원/ 산다촌문인협회원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ceokimhc@hanmail.net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새들의 먹이가 된다 해도
이제 더는 물의 깊이를 알 수 없어
세상을 떠돌이로 산다 해도
백내장 같은 물속
내 눈을 담구어
별빛을 흐리게 할 수 없고
빗소리 밖에 없는 물속
쥐 보다 밝은 내 귀
닫아둘 수 없음에
갈퀴를 곤두세운 바람이
내 여린 어깨를 치며 돌아가라 했지만
이미 넓어진 나의 세상
물위에 살기로 했네
새의 노래 / 김현철
문득 첼로의 푸근함에 잠기고 싶어지는 오늘
일상의 분주함 밖에 서서 카잘스의 첼로를 듣다
- A Cocert At The White House (CBS CLASSICS 61489)
Pablo Casals, Alexander Schneider, Mieczyslaw Horszowski
카잘스, 흐느끼는 듯한 육성과 첼로소리 닮은꼴로 홀을 채워 나가다
기다린 첫 음이 신음처럼 배어나올 때
그를 위해 화선지를 펼치다
첫 붓자락 자리의 굵은 묵향
묵향을 가로질러 빠르게 내쳐가는 첼로.
때로 굵게 퍼지고 때로 가늘게 이어지며
한 폭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메시지
가슴에 붓 한자루 품고 그림을 그리다
그가 그린 한 폭의 화조도(花鳥圖)를 받고 기뻐하는 나
새들은
카잘스의 새들은 날지 않는다.
날아가는 기쁨보다는 노래하는 기쁨으로 사는 새
진수(進水) / 김현철
도크에 물드는 소리 들리면
나는 환장한다
이제 곧
시퍼런 바다가
나의 허벅지 사이로 들어와
더 이상 갈 곳 몰라 출렁이면
나는
생애 가장 가벼운 무게로
바다의 냄새를 익히며
기억하리라
나를 위해 흘린 누군가의 땀과 욕설과
비어있는 잠과 깨어있는 새벽과
그들의 갑상선 항진증과
죽음까지도
낮은 곳에
세상의 더러움을 모아두는 바다
이윽고
바다가 여린 살의 나를 일으켜 세워
해뜨는 동녘으로 길을 잡아 떠날 때
잠을 비우고 새벽을 깨워
나를 만든 낮은 자들은
바다 보다 낮은 곳에서
지치고 갈라터진 마음 숨기지 못해
부르튼 입술로
시퍼렇게 살아 출렁거렸다
삼겹살과 불판,
가로세로 오고가며 입술이 닿았던 소주잔을 걸고
약속하리라
나는
낮은 곳 낮은 자들의 땀과 그들이 마신 소주 위에
떠있는 소주잔이며
나의 잔에는 그들의 눈물로만 채우리라고
주남저수지 / 김현태
두개의 저수지 가장자리
싸늘한 바람이 분다
저수지의 가슴에
푸르른 하늘이 누워 있다
높게 날으던 철새 떼
이역만리 허공을
저어온 날개들이
내 중심에 앉아 내린다
한 계절 퍼덕이다 지쳐
북으로, 북으로 가더니만
다시 돌아온 너
타향의 석양빛에
젖은 날개를 말린다
눈에 박힌 투명한
고향 산천 바라보며
흐드러진 깃털을 추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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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프로필]
등단/ 월간 문학공간
현재/ 부산
배즐리문학회/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ksw6718@hanmail.net
너의 젖은 눈썹을 보니
내 안엔 안개꽃처럼
이슬이 피어오르며
또다시 떠나 가야하는
너의 풀어진 어깨 바라보니
가슴 깊이 박힌
깃털 하나하나에
생채기 돋아나
멍울진 슬픔 들어내어
심해로 밀어 넣고는
회환의 날숨만 피워 올린다
꽃다발 속의 추억 / 김현태
하얀 속살 간직한
깃털 모양의 안개꽃
망울망울 망사 안에 모여 앉아
촉촉한 젖은 눈썹 날리고 있다
붉은 빛으로 왕처럼 군림한
외줄기 장미의 얼굴에
정적인 시야의 선을 입히며
녹녹치 않은 삶의 밑그림으로
숨쉬며 침묵을 다짐한다
장미의 줄기에 돋은
위엄의 가시에 움츠려
자신의 존재를 지워 버리고
송글송글 땀방울 맺힌 얼굴에
물안개 낮게 깔리운
바닥의 생을 지키고 있다
이제
벽면의 유화 위에 걸려
마지막 삶을 빛내려고
역류하는 피톨들을 다스리며
들러리 생을
갈무리하고 있다
들국의 기억 / 김현태
- 자식 잃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살이 오른 벼 이삭에
뿌리로부터 샘물을
퍼 올리던 통기강이
호흡을 멈추고 서서
삼베옷으로 갈아입는다
서리 맞은 거미줄 아래
눈물방울 가득한 들국의 무리들
가슴 저며 새겨 둔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 놓는다
봄 써레질에 뒤집어 쓴
질척한 흙탕물 털어
꽃을 피운 들국을
한아름 꺾어 자식의 영혼인양
머리 깃에 꽂으면
숨골이 막힐 것 같은
적막한 긴 한숨이
성지골 골짜기를 구비 돌아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저 멀리
여항산 피바위 능선 너머
창랑한 하늘 한 모서리
사선으로 날으며
목덜미 부어 피울음 흘리는
한 마리 새가
오늘은 툇마루에 앉아
피바위 능선만
바라보고 있네
*[성지골 골짜기] [여항산 피바위] 경남 함안군 가야읍내에
소재한 지명
집 착(2) / 박민철
재회, 시간의 간격이 달아나고 싶다
이집트의 벽이 아직도 두꺼운 데
내 곁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 뭉친 술잔
포스트모던의 웃음
눈물 서러운 퇴적 관계
아주 잠깐 다이아몬드를 쥐어 보는 것
보상 심리를 위한 극소수의 치달음
하얀색의 페인트가 과거의 건망증에 걸렸다
속도 안으로 빨려 나간 장난감
프리마돈나의 자리를 비워줌
시간의 공감대엔 벌레가 스물스물
메타픽션 같은 미래의 만남이 병 안에서 꿀떡거린다
스톡홀롬의 신드롬
눈물
게걸스러움
움직이는 시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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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철/프로필]
현) 예솔학원 원장, 현) ‘하동신문’ 작품 기고가
현) 대한 문협, 한국 문학 도서.시와비평
공저/개밥그릇, 장미향기
등단/ 문학 21, 이달의 시인
신춘문예 특별 초대 작가
운영 ‘나무늘보의집’ http://cafe.daum.net/tapgun
메일 js999111@hanmail.net
소상강변의 버드나무 / 박민철
월반추루에 달빛 사이가 벽상하다
쌍교는 도망가고 이별은 생초목인데
벽오동에 갸륵한 심정 그 누가 알리오
주홍당사에 여인이 달빛에 걸렸으니
일촌간장의 임은 대체 어디메 있는고
홍삼자락이 저렇게 세류홍당이니
소상강변의 버드나무도 그만 비틀 일세
황 소(2) / 박민철
질퍽해진 밥풀눈의 황소
황소는 칡 넝쿨을 다섯 투가리나 먹었다
실팍한 몸으로 고랑둔덕 벽촌 모시밭까지 걸어왔다
아버지는 거름 넣는 뜰광에다 소를 매어 놓았다
커다란 황소의 눈이 지점지점 젖어갔다
겨드랑이 풍기는 냄새, 오이 냄새를 닮은 누나
그들은 함초로히 소만 보고 웃었다
말짱한 하늘는 소녀의 수줍음을 타고
그 귀밑머리 소녀는 어느새 무거운 쟁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파리 긴 감나무가 바둥바둥 가여움을 말아 올렸다
황소의 충혈된 눈이 버슥버슥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흩어져 버린 희망의 복구
산골은 여름 땡볕에서 투쟁할수 밖에 없었다
황소는 태반 잠을 자지 못했다
일을 하고 온 마굿간은 겨울 그늘 마냥 썰렁했다
여물통에 마른 콩깍지, 고구마 넝쿨,
황소는 굼벵이 처럼 뉘엇뉘엇 기어들어 갔다
아버지는 어려운 소잔등을 쓰다 듬었다
"힘들지- 왜 이리 산골 벽촌엘 왔어"
"좀 좋은곳을 가지않고, 많이 묵고 기운 내거라"
답답한 황소는 늘 사릿문 밖을 벗었다
황소의 체격은 토끼똥을 눌 만큼 왜소해져 갔다
아무도.. 눈물을 닦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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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지점:망근하게 *여물통:소죽을 담는 밥 그릇
아내 / 박봉준
늦잠 자는 아내를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달라붙기를 좋아해
껌 딱지라고 놀려도 마냥 웃기만 하는 아내
꿈속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간간이 키득거리는 웃음
새벽 종소리처럼 흩어집니다
문득, 내가 먼저 임종을 맞이하면
저 평온한 웃음으로 나를 보내줄 수 있을지
햇볕이 따사롭고 한가한 날
낮은 음성으로 물어볼까, 아니면
둘이서 호롯이 산길을 걷다가
널따란 바위에 걸터앉아 넌지시 물어볼까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먼저 부탁을 하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말해야하나
아내는 아직도 한밤중인데 날이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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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준/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출생/ 1954/강원 고성/학력/강원대학교
현직/ 대전충청 한/시문협 회장/자영업
동인/ 글벗문학회/회원/산다촌문학회원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qkek1165@hanmail.net
홈페이지 http://quek2003.kll.co.kr
신축 교회 / 박봉준
자투리 남은 땅
망치소리 여름내 동네를 달구더니
아파트가 들어서고
때 맞춰 교회도 세워졌다
금빛 찬란한 명패가 박히고
가을 하늘에 십자가도 높이 걸렸다
성큼 교회가 차지한 자리만큼
앞산은 자신의 한 부분을 도려내고
갈걷이하는 나무들
맥박소리 희미하게 들려온다
신축 교회 종소리 어둠 밀치고
새벽을 열면
가난한 영혼들 선잠에서 깨어나
무슨 생각들을 하랴
가을이 오는 이 아침
어쩌자고
십자가 위에 꽂힌 피뢰침은
저리도 위풍당당한지
차마 쳐다볼 수 없다
위험한 영혼들
피뢰침 날 끝으로 몰려든다
지팡이 / 박봉준
어머니 돌아가신 일 년 내내
현관문 입구에 쓸쓸히 기대있는 지팡이
생전에 경로당 가뿐히 드나드실 때
지팡이에도 물이 올라 꽃을 피우더니
문밖 출입 끊기고 자리보전하실 때에는
차라리 마른 삭정이고 싶었을 것이다
지팡이 볼 때마다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
아침저녁 들며 나는 식구들 챙기시고
종일 빈집을 지키는 지팡이
탈상 날 태우지 못하여 가슴에 걸렸는데
오늘은 늦은 밤 귀가하는 아들에게
기어코 눈총을 주신다
모세는 지팡이로 기적을 보여주었다는데
혹시 부자로 만들어주시지는 않을까
아내는 복권을 살 때마다 꿈 얘기를 꺼낸다
바랠 걸 바라야지
효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거짓말하는 자식
벽에 걸어놓은 사진 속의 어머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단 풍 / 박승도
공연은 시작됐다.
지상 최대의 스트립쑈!
단속반원이 있을 리 없다.
어머나,
세상에나,
어쩜 저리도……
보는 이마다
외마디 탄성을 지른다.
시월이
한 겹
한 겹
옷 벗을 때마다
오후 산책 길
나선 흰구름 발걸음
꼭,
붙들고.
...............................................................
[박승도/프로필]
출생/ 서울
등단/ 한맥문학/동인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three48@hanmail.net
밑 빠진 허공에
밤 낮 없이
물 길어 나르던 폭포도
느슨한 일손으로 구경한다.
비너스 살빛보다 더 뽀얀
속살에 익사한 눈
자다 말다 흥건히
몽정하겠다.
단 풍(2) / 박승도
어제만 하여도 멀쩡한 가을
밤새 괴질에 걸렸다.
약을 먹고 한숨 자고 나면
나을 줄 알았다.
낫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상태가 이상해졌다.
백약을 써도 효험이 없는
돌림병이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질 대로 구겨진
체면을 잃어버린 산신령
급기야는 전국에 내놓으라하는
기라성 같은 무당을 불러들이기에
이르렀다.
불덩이 같은 열 오른
혼수상태 빠진 가을을 위하여
신물이 나도록 굿판이 벌어졌다.
죽음을 불사한 무당
혼신 다 한 굿을 벌였지만
가을은 점점
병색이 깊어져만 갔다.
단 풍(4) / 박승도
요즘
동네가 씨끌벅적하다.
마을 한복판에
빌딩이 준공되었는데
건물 전체가 백화점 흉내 낸
복합상가 쇼핑몰이다.
오픈 기념으로 펼쳐진
다채로운 행사 중 하나
방금
제작사로부터 배급받은
국민배우 가을이 열연한
영화가 절찬리 상영중이다.
더 더군다나
공짜 관람이라 하니
입소문 듣고 찾아온 구경꾼들로 인하여
연일
북새통 이룰 정도로 장사진을 이룬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가 아닌
너, 나 할 것 없이 입모아
감동 없이는 볼 수 없다고 하니
종영되기 전에 짬을 내어
보러 가야겠다.
내 사랑은 / 박태남
내 사랑은
짚신 한 짝
비 오는 날
흙벽에 걸어 두고
맨발로 마중 나서는
내 사랑 은
고향의 동네 안길
다져진 흙 속에
정이 묻은
내 사랑은
시골의 초가집
세월이 가면
향수만 남기고
헐어질
...............................................................
[박태남/프로필]
등단/ 월간 문예사조
회원/ 한국문인협회/자유시인협회/경남여류문학회
/경남문인협회, 시와비평/동인
현직/ 시-시조비평 기획위원/동백문화편집장
수상/ 자유시인협회시인상/동백문학상 시부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시집 [새벽 강에 나와 서면]도서출판 영하/1994
메일
tnpark0517@hanmail.net
청마루 찻집 / 박태남
저녁 한 때
네 품에 안기어
등잔불 심지를 돋구운다
무슨 얘기를 담아야
더 많이 익을 것인가
끝없는 기다림은
차 잔 든
손가락 사이로 흐르고
사계가 쉬고 있는 청마루 찻집
금정산 못 오른
청노루 한 마리
긴 다리 접으면
몰아쉬는 숨소리
동트는 다대포
한 바다 여노니
나그네
여정에
지친 세월이 누워있고
낮아지는
청마루 댓돌 위엔
차향처럼
번지는 정겨움이
솔 대문 사이로 흐르고 있다
평화댐에서 / 박태남
누가 나를 바람이라 불러 다오
누가 나를 물이라 물러다오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달음에 갔다
여기 쌓아올린 저 둑을
밀고 밀리라
누가 나를 임꺽정이라 불러다오
누가 나를 홀길동이라 불러다오
남북의 힘센 자 모두 모아
여기 이 댐의 물
남과 북으로 뿌려
한겨례 생명수 만들게
누가 나를 용광로라 불러 다오
가고 오지 않는
저 철책을 빗물처럼 녹일 수 있게
우리 언제쯤
한 장의 지도로
한겨례의 가슴을 안을 수 있을지
도공 / 박희곤
주왕산 자락에서 만난 여인과
배를 맞추고 닫아버린 서울 살이
한 나절은 걸어야 하는 두메 깡촌
일흔 넘긴 노부부 한 쌍
솔 같이 살아가는 산골마을.
무너진 초막 열어 세간 얹고
기어들기도 어려운 황토 가마 열어도
사흘 못가 무너져 내린 애물단지.
몇 해
영 죽은 줄 알았더니
청송백자 재현했으니 구경 오라네.
집 앞은 온통 양물 천지
진흙으로 빚은 시커먼 혈기
하늘 향해 발기하고 선 자리
민망한 눈 둘 곳 찾자니
소주나 한 잔 하라하네.
...............................................................
[박희곤/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재/ 1968/경북 안동
현직/ 안동성소병원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bhg5646@naver.com
홈페이지 http://myhome.naver.com/bhg5646
안주라야
얼어붙은 개울 열고 건져낸
송사리 하얀 수의 입혀
젖몸살 앓는 새댁 속살 같은
백자 몸통에 그렸더니
훌쩍 개울에 내렸다가
슬쩍 하늘로 유영하네.
관요도 못되는 지방요
두 세기만에 재현이라
한 세월 살아도 25만 원 짜리
허허로운 웃음에 취기가 오르네.
일곱살 아이 / 박희곤
일곱 살 유년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
문밖에서 서성이며
두꺼비를 부른다.
“두꺼바,
두꺼바,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뚜꺼바.”
까막고무신 아이들
세상을 배우는 동안
눈 먼 꿈 삼키며
덩치만 키운 아이
두꺼비
버린 둥지에
홀로 자라 서있다.
서른 해 훌쩍 지난
아이의 모래밭은
시월의 바다만큼
발이 시려 오는데
간극을
좁히지 못한
길이 하나 울고 있다.
채커리아리랑(9) / 박희곤
일요일 오후 내내 건조한 비가 내렸다.
아낙의 월남치마는 할 일 없이 나불거렸고
마른 웃음은 나무 주변을 맴맴 돌다 사그라졌다.
타이어를 따라 구르던 빗방울이 일제히
우~ 일어서기도 했고
점점이 쫓다 다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바람 올려 비상을 꿈꾸다 급하게 추락했다.
도로 가장자리에 떼로 뭉쳐 고였다가
더러는 타닥타닥 말라 가기도 했다.
밟힌 흔적을 지워 그림도 그리고
엉겅퀴 가시처럼 강아지 몸에 붙어
게으른 자리를 옮겨가기도 했다.
산 구비 길이 막힌 어쩔 수 없는 종착지였다.
두 달이 넘도록 젖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스스로 자정능력을 놓아 버린 호수는
황토색을 지우려 들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없는 미련한 오후
자살하듯 뛰어든 마른 빗방울 따라
자동차를 몰고 호수를 횡단하려던 가장은
여전히 물에서 물결을 벗어나지 못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미처 내리지 못한 빗방울들이
산 너머 분주한 이동을 준비했다.
오늘도 닦습니다 / 성기화
지난 밤 비가 세차게도 두드려
굵은 자국들이 오래된 먼지와 뒤섞여
당신마저 온통 얼룩진 모습
뜨거운 커피 넘기다가 올려다 본 것이
그만 나의 묵은 찌꺼기까지
창문을 뿌옇게 덮어 버렸지 뭐예요
언젠가 둔탁한 저 문을 열고 나가
그저 파랗기만한 당신
온 몸을 휩쓸고 가는 바람에도
끄떡없이 두 팔로 힘껏 안아
벅찬 감동으로 울어도 보고
내 눈 속의 부끄러운 들보
찌그러진 양철 냄비에 가득한 눈물
눈부신 햇살에 말려도 보았으면.
그런 당신 좀 더 맑게 보고 싶어서
닦는 순간에도 손끝을 따라
자꾸만 생기는 얼룩이 속상하지만
멈춘 걸레질 다시 힘주어 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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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화/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재/ 1969/김해/거림중공업(주)/회원/ 한국문학
도서관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vksduf@hanmail.net
서재 http://member.kll.co.kr/dreamdorim
선로 위에서 / 성기화
좌충우돌 얼마나 흔들렸길래
그 육중한 몸이 덩그러니 서 버렸나
기관사는 보이지 않고
콩나물시루에 확성기만 찾아대는
자신을 높이기에 바쁜 아우성에
순번 매겨 가며 품었던 깨알같은 약속들이
하나씩 차창 밖으로 던져지는데도
멱살잡은 손은 쉬지 않는다
아직도 철마는 달리고 있는 줄 안다.
가야할 곳이 있어
입석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며
17호의 승객들을 향해 꿇은 무릎
포기할 수 없는 절대 희망인지라
서로 발등 밟혀 가면서도 끝내
닿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웃어야지
뜨겁게 쏟아내는 눈물 앞에
어느새 모여드는 마음들이 손을 잡고
허름한 출구로 기관사 찾으려 나서는데
바퀴 아래 기름투성이
깃발 들고 일어나 환하게 걸어온다.
풍란(風蘭)의 꿈 / 성기화
부석(浮石)에 오장육부
다 드러내고 묶인 난초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익숙한 바람 찾으러
은하수 길 따라 밟고
지구 몇 바퀴나 돌아 나와
머리맡에 통통 발아 하나
초록빛 의연하게 품어 낸다.
푸석한 돌덩이 틈 비집고
발가락 바짝 애간장 다 태우더니
죽지 않을 만큼만 허락 받은 사랑
결박당한 영혼을 풀어
유배지 흙바람 마시고 싶다.
넘치는 분무질에도
보란 듯이 금세 말라 버린다.
건조한 날씨 탓이 아니라고
애꿎은 창문 덜컥 열어젖히니
불어오는 산바람 흙냄새 물씬
아! 네 꿈이 보인다.
처용의 해무 / 성자현
해는 이미 중천인데
동해 신암 앞바다 해안도로는
오리무중입니다.
밤새 물 위를 걸어 나온 한 떼의 구름
미궁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옛이야기가
길목을 지나 마을의 지붕에 피어납니다.
막 천지창조를 끝낸 듯
김이 오르는 개운포의 설화
한 무리의 해무가 걷히고 나면
처용이 춤을 추며 나타날 것도 같은데
하늘과 바다가 혼돈 되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안개의 바다에
스스로 제물이 되어
맨발로 눈감고 걸어 들어가
오랜 전설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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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현/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직/ 1961/울산/GM대우자동차판매(주) 과장
회원/ 산다촌문학회/한국문학도서관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solar@dm.co.kr
서재 http://member.kll.co.kr/solarfire
인 연 / 성자현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인연의 다리를 놓았다.
무심한 내가 너의 시선을 느낀 것은
네가 지나쳐서가 아니다.
내가 네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이니
우리의 망설임은 위태로운 것.
착각이라고 묻어버리기엔
안타까운 정열
다리는 끊어질 듯 가까이 있는데.
너와 내가 연(緣)을 맺음은
생(生)의 내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망설임이 오랠수록
정열 또한 깊어지리니
오락가락 하는 마음에
이른 밤이 슬몃
젖은 바람을 물고 내려와 앉는다.
너는 너대로 잘 살았고
나는 나대로 잘 살아왔는데.
환절기 / 성자현
황사바람이 인다.
산을 내려와 도시를 덮는 회색구름들
물이 오르던 꽃들은 혼절하였는가.
어디로 가야 할까?
깊은 침묵으로 빠져드는 3월의 오후
창백한 가로수 아래를 낙엽 하나가
멈칫 길을 잃는다.
오래 전에 집을 떠나 와
화석처럼 길목에 남은 고엽
오는 봄을 반길 기력 모은 무게조차
어디에도 뿌리를 덮지 못하고
어느 곳에 몸을 의지할까.
익숙해지면 벗어야 하는 옷처럼
가볍게 다가서다 달아나는 계절
코끝이 간지럽다.
신음소리를 내는 아스팔트 위에서
마른 잎 뒹굴다 오래도록 서성인다.
봄은 오겠다고 하고
되돌아갈 수는 없을까?
노란 꽃 알레르기 입자들이 내리지 못하고
공중을 떠도는 동안 눈이 가렵다.
고려청자(1) / 손갑식
하늘에 노는 학들 몰아
항아리 속에 가두었다
하늘빛 옥색이 뒤따라와 푸르게 학을 담았다
밤바다 건너는 은하수 한 바가지 퍼내어
항아리에 담았다.
천 년 동안 익으라고
입술 좁은 아귀처럼 입 막았다.
푸르게 젖어 날개 접은 학
하여 항아리 저 아래 고요히 잠든 학 무리
술익는 내음에 날개 편다.
항아리 허리 타고 윗가슴에 몰렸다.
아귀 좁아 세상 밖에 차마 나올 수 없어
지금도 날갯짓 퍼덕인다.
날갯짓 퍼덕일수록 깃에 묻은 옥색
연푸른 먼지처럼 일어
항아리 가득 가을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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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갑식/프로필]
현직/ 울산/교육자
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nadonse@hanmail.net
도시에 사는 개구리 / 손갑식
어떻게 중앙분리대 넘었을까.
개구리 한 마리 도로 한가운데 앉았다.
한가위 고향들 간다고 마음부터 들뜬 자동차
뒷꽁지 무겁게 선물 싣고 날듯이 바람 일으킨다.
비는 멎었으나 빗물가루 바퀴에 감겨 먼지처럼 일어나면
시원스레 즐기는 듯 고개 쳐든 개구리 하나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차 양 바퀴 한가운데 앉아서
어디로 뛸까 고민하는 개구리 하나
갓난아기 주먹만한 몸통
나는 그 몸통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대도시 외곽 국도
시속 80에서 100킬로미터 넘나드는 가운데도
저렇게 초연할 수가
저 개구리 한가윗날 잊었는가.
찾아갈 고향, 가서 반겨줄 고운 이들 잃었는가.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
개구리는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곳으로 뛰더라도
저를 노리는 검은 바퀴들 사이에서
차라리 멈추어 눈감는 게 편했던 것이다.
새로 비가 내리고
한가위 달도 떠오르지 않는 도시 외곽 국도
홀로 앉은 개구리 오금이 저려
도로 건너 저리도 먼 숲에 닿지 못해
개굴개굴 혀가 굳고 있었다.
정선 아리랑 / 손갑식
비탈 여울마다 깎여드는
아라리 노랫가락 능선마다
칠순 노파 그렁그렁 숨소리마냥
막내딸 떠꺼머리총각 따라
대처로 떠나던 날 밤.
목청 긁어 토해내는 아리 아리랑
강원도 깊은 두메산골 울장
서너 채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반쯤 눈뜬 등불 아래
눈물로 부른 한(恨) 덩어리
굽이굽이 용천(龍天)의 태백고개
숨이 가빠 꺾일 듯 꺾어질 듯 이어지고
날도 더디 새어 꼬불꼬불 해 뜬다.
여름 한철 동여맨 비탈 무밭
서울서 공부하는 아들놈 어깨 펴고 살라고
여름 내내 도토리 목 껍질 매미처럼 붙어서
모질게 비탈 타며 가꾼 무밭
간밤 땅 패는 비바람에
허연 알몸 내어 널브러진 아라리
애가 타고 기가 막혀 피 토한다.
올해도 연보라 도라지꽃
돌무덤 가에 소복이 피어
해묵은 아우 주검 비늘 털듯 몸 흔든다.
수십 년 전 해거름 녘 무렵
아홉 살 고운 아우 뜨겁게 달구어진 몸 비틀다
놀 짙은 도라지 꽃밭에 앉아
서녘 놀 아라리로 퍼져 몸을 식혔다.
머리통보다 굵은 돌무더기
이불처럼 아우 몸 덮을 때
돌 하나 아라리 돌 둘 아라리
아리아리 아라리 해가 지고 있다.
건넛집 영월댁 외오라버니
두 해 걸쳐 목침 베고 누워
등창 쓰려 누워도 저승인데
언 땅 녹여 제 무덤 팔 때쯤
이마에 주름 걷고 두 눈이 세상 덮었다.
두멧골 이웃 네들 떼옷 대신
철 늦은 눈 내려 무덤가 꽃피울 때
긴 막대 땅 짚어 두드리는
목청 쉰 아라리 눈가에 맺힌다.
황토 갈목 긁어 무덤가 불 지핀다.
가신 임 땟국 절은 옷가지
얼기얼기 몇 올 머리카락 목침이며
메추리 알 같은 등창 자국 이부자리
매워, 매워서 눈물마저 말라버린
가신 아픔 다홍 불꽃으로 오른다.
훠어이훠어이 뜨겁게 달아오른
저 영혼 눈송이 목이 시려
울컥이는 쉰 소리 아라리 고갯마루
굽이굽이 차마 쉬어 넘는다.
마 당 / 송문희
오늘도 어머니는 마당을 쓸고 계신다
오십 여 년을 쓸었건만 여직 쓸어 낼 것이 남았는지
어머니는 구석구석 비질을 하신다
다섯 자식 키워 출가시킨 마당에 무슨 미련 남았는지
자식들 길어진 키만큼 작아진 마당
갈수록 힘드는 빗자루 무게에
텅 빈 미소 손때 묻어 버리지 못한 지문들은
반질반질 형기(刑期)를 훌쩍 넘겼건만
빗자루의 추적은 그칠 줄 모른다
머리칼 한 올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듯
대문 밖 서성이던 햇살이 모퉁이 돌아
달과 교대하러 갈 때쯤 어머니는 허리를 펴신다
쓸어 놓은 마당에 한참 서 있으면
우당탕 떠들던 자식들 소리가 마당 밟고 지나간다
텅 빈 곳간에 빠른 손놀림으로 창조한 자식 농사는
가을걷이 밭농사와 다르다
씨 뿌리고 진자리 마른자리 애써 키워도 거둘 게 없다
오늘도 어머니는 마당을 쓸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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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희/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등단
1963/ 밀양 출생/학력/경북대학교 대학원
현직/ 한국문협(밀양)사무국장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thddksptm@hanmail.net
옹 이 / 송문희
생명수 가느다란 나무줄기에
작은 응어리가 여럿 박혀버렸네
새순이 맺는 희열과 맞먹는 고통으로
요로결석을 앓는 파리한 기억들
무수한 빗방울을 받아 마시고
하나하나 단단한 바람의 씨를 풀어낸다
곳곳에 묻혀있는 충혈과
겹겹이 포개져
뚜글뚜글 맺혀 내리는 핏발도
어느새 더운 기운이 송골송골 솟아난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줄기의 응어리는 여과되어
뿌리가 잇닿은 사랑의 샛강을 되새김한다
생명수를 정화시켜 주기 위해
다시 눈뜨는 가혹한 사랑
계절 속에 오래 머문 고통의 흔적들이
맑은 아침의 대지를 펌프질한다
우당의 밤 / 송문희
어둠이 쌓이는 겨울바람이
창살처럼 내리꽂힌다
내가 살아온 날의 몸짓으로
동그랗게 살아가야 할 날들이
죄다 여기 몰아세울 수 있는 것인가
저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는 돌아누워야 하는 것인가
벌써 존재하지 않는 경륜으로
어제의 온정 같은 내 손으로
짙은 어둠과 악수를 건넨다
우당의 불빛 속에 던진 속도로
빗방울이 되어 톡톡 튀어 오른다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가로등
불빛으로 시신경을 깨닫는 순간
힘줄 당기며 가만히 사라지는
우당의 젖은 주차선 밖에
차들은 바퀴를 멈춘 지 오래다
차와 차 사이 비집고 내 그림자가
바퀴선 아래 깔려 있다
*우당:경북대학교 교육관 이름
내 속엔 아픈 새 한 마리 있다 / 송연주
내 속엔 죽은 듯 꼼짝 않고 있기도 하고 이리 저리 머리 박으며 울부짖기도 하며
차라리 죽어지기를 소원 하지만 죽지도 못하는 음울한 새 한 마리 살고 있다.
끊이지 않고 일어서는 열망에 날개를 달고자 불러들인 새
내 속에 들어와 샴쌍둥이 되어 날아오르자 말하고, 누워 있자 말한다.
이름 하나 지어 두었지만 얼마나 더 많은 이름을 지어야 할지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늘어난 새로 인해 내 품은 더 이상 새가 날 수 있는 하늘이 못 된다.
오늘 밤 나는 사형 집행자가 되어 둥지를 모두 태울 것이다.
아픈 새들의 주검 앞에서 자책 하지만 머잖아 나는 다시금 새를 불러들일 것이다.
죽지 않는 내 열망에 날개를 달아 십의 오백승이라는 우주 속을 날아
오래 외침을 잊은 목청을 뽑아 올리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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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1966/서울/문학창작과/동백문학회이사/산다촌문
인회 이사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skyseafun@hanmail.net
홈페이지 http://skyseafun.com.ne.kr/
가시연 꿈을 꾸다 / 송연주
뜬눈으로 잡아둔 밤
물결 따라 놓아주고
힘줄선 루미네넨스가 되어
단칠[丹漆]한 눈으로 여명을 맞는다.
맑음은 어데 두고
붉은 아침이 단두[斷頭]대에 걸려
떠나는 시간을 잰다.
검었다 붉어지고 다시 파란 호수엔
수면을 거부한 가시연꽃
비상[飛翔]을 꿈꾸며 가시를 돋운다.
기다림의 언덕엔 피바람 일렁이고
농혈[膿血]한 가슴을 찔러봐도
고름은 빠지지 않고 비린내만 풍긴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는데
알 수 없는 결연[結連]의 시간을 잡고
마주보는 익숙한 은파 타래를 풀어
가시연 열매를 만든다.
*루미네넨스:물질이 빛 열 x선, 방사선 화학적 자극을 받아
서 빛을 내는 현상
나는 매일 앓는다 / 송연주
한 계절이 다 지나도록
시린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절마다, 날이면 날마다
푸른 멍울로 앓고 있는 내가 있어 힘겹다.
입김 불어 박박 가슴을 닦고 보니
온 몸으로 서고 느끼는 마구잡이 촉수와
담쟁이덩굴같이 얽힌 병 덩어리 보이고
치유법을 알고도 감성이 살아 말미잘이 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언제나 나이고 보면
시를 쓴다는 것은 눈 속에 난 발자국 위를
조심스레 겹쳐 밟고 지나야 하는 고지[誥識]
뒤돌아보지 말자.
두려운 시간을 견디지 못한 나를, 내가 차마
버리지 못할 때, 열에 달뜬 시가 제 목을 내밀어
몸 속에 숨은 말들을 꺼내 침묵의 언어로 전하며
언 발로 눈밭을 헤매는 나를 불러들인다.
제 2부
[시와비평문학회 (ㅇ-ㅎ) 회원작품]
엄덕이/우성식/유영애/윤석금
이명주/이미자/이민화/이상식
이상태/이영돌/이용일/이우복
인이숙/임대성/임정택/장성훈
정정용/차시환/추창호/한휘준
황말남/현 임/현혜숙
충남 아산시 배방면 / 엄덕이
딸아이가 서울 근교의 대학에 갔다.
원룸을 찾아 책이며 옷을 차에 싣고
하숙집이 마땅히 없어 돌아다녔다.
쓸쓸하기는 하지만 고속전철역이 들어서서
차량 통행이 제법 많았다.
천안 삼거리 흥~ 하고
노래는 안 나왔다.
아산시 배방면에 서 있는 원룸촌
그 곳에서 내 아이가 보내야 하는 대학 신입생
시절을 그려본다.
왜 그렇게도 입학식장에서
눈물을 쏟고 돌아왔는지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가야
...............................................................
[엄덕이/프로필]
등단/시와비평/동인
1956/경남 하동 출생/전원문학회 활동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방법 전공 석사
1998년 첫 시집[꽃의 미래] 발행
2002년 두 번 째 시집 [작동 가는 길] 발행
울산문학교과교육연구회부회장
메일 umyi0333@hanmir.com
이 모 / 엄덕이
작은 체구에 늘 바쁘시던 이모
밥이란 밥은 다 해서 동네 사람 먹이고
홀시아버지 잘 모시고
효부상 받던 우리 이모
어이 그리 바삐 가시오이까
내 동생들이 사촌 동생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자란 이모의 젖도
관속에 묻히겠네요.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던 해 49제에서
부처님께 누구보다 두 손 모아
천당 가기를 비시던 우리 이모
늘 떨리는 음성으로 사람을 대하던
우리 이모.
이모와 엄마가 함께 시모노세키라도 다녀오라 했건만
그 흔한 해외여행 하나 못하고
아들의 애들을 거두다가
마지막까지
여자로 사시던
당신은
여름 땡볕 비탈에 핀 흰 찔레꽃이셨습니다.
도서관에서 / 우성식
도서관 뒤 약수터
꼬마와 여인이 슬프도록 약수에
단풍 담고 있다
그때 연인이 호흡하며 멈추는 걸음
가을 숲으로 숨고
벗고 있는 고목나무에 앉은 까치집 공허
전선 위의 참새가 보고 있다
침묵을 먹는 단풍나무
도서관 담벼락에 붙어
처절하게 공부하는 손님 기다리는가
한 모퉁이 대나무 작은 숲에
한 그루 은행나무와 가로등이
가을을 닦고 있다
방음벽 올라탄 가을의 고백
자판기에서 방금 뽑은 커피
향기에 머뭇거리다
공간에 걸린 초승달 집어
...............................................................
[우성식/프로필]
현재/ 1959/인천
학력/ 숭실대학교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woo1023@hanmail.net
은행잎에 넣고 키스한다
가까이에서 초겨울만 신났다
이동도서관 버스가
심등(心燈)을 책갈피에 숨기는데
생명들이 무겁게 정서 보이며
책상 서랍 속으로 사라진다
도서관 정문 앞에서
콘크리트 바닥을 핥는 바퀴
- 시대에 끌린 무언의 몸부림
인천 대공원에서 / 우성식
곧게 뻗은 대공원 길가
가로수에 삼라만상이 박힌다
공원 관리소 뻐꾸기 시간 풀고 있다
인간이 팽개쳐진 대지, 놀란 코끼리 열차
허둥지둥 낙엽 속으로 숨는다
사냥터에서 가을을 한 발 쏘았다
조각 공원 내 누드로 서성거리는 몸짓
애써 지나치려는 관객
감상 먹은 호흡 거칠고
공원 호수 분수 부끄러워 잠수한다
엄마 궁둥이 자전거에 앉고 미소 푸는데
젖무덤에서 떨어진 침묵
방패연 타고 정상에 올랐다
공원 내 눈썰매장 입구 지키는
장승 머리 풀리어 시린 날
눈바람이 사냥하여 모은 동심(同心)으로
눈밭 거칠게 뒹굴 소풍 즐거움
향기 취해 움직이는 노을이 손짓하고
햇살 가다듬는 가을 수놓으면
화음으로 어울린 공원 나들이가
살며시 둥지로 숨는다
창에 비친 하루 / 우성식
동녘에서 천지가 여명 부를 때
몸부림치는 영혼이 토해낸 속삭임
온갖 세상으로 흩어지면
창에 비친 하루 바쁘게 열린다
콘크리트 거리에 왁자지껄한 발자국 소리
순간순간 거침없이 공간에 입맞춤하면
대지의 흔들림이 있고
떨어지고 있는 시침이 품속에 길을 연다
주위 맴도는 인간애 먹고 호흡하는 빌딩 숲
별 의미 없는 몸짓 피하고
사색하는 군상이 벌거벗기는 거울에
자태를 들키고 난무하는 두려움
산란시켜 가꾸는 거칠기만 한 시간
수혈이 필요한 의지가 피부 속에서 화학반응 할 때
촉매에게 아부하는 역할의 적임자가 되고 있다
시간마다 삶의 터를 두드린 발자국 거두고
아늑한 공간에서 향기 취하면
창 밖에서 나는 눈감고
명월이 몸을 일으킨다
검은 색 공간에 기대고 있는 시간이
정성을 쏟아 온갖 세상을 닫은 후
동녘으로 옮겨가는 기다림이 반복된다
밀서리 / 유영애
밀밭언저리에 고물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안개를 헤집고 피어난다.
꼬막 같은 손으로 후후 비벼 검정 콧등에 문지르고
함박꽃 같은 행복감 젖어든다.
해지면 나온다던 문둥이 따라오기도 전에
유년의 향수는 정수리를 때린다.
덜 익은 소녀의 젖꼭지처럼 전율을 일으키고
밀 알 영글기 전에 사랑이 먼저 다가왔다.
타닥타닥 알갱이 튀어 오르고
불꽃같은 사랑이 연기되어 피어난다.
손과 손이 절정의 오르가슴 맞을 때
감미로운 손바닥 핥고
행복한 웃음
깜부기 땅바닥에 덧칠하고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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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애/프로필]
현재/ 울산/남부도서관 문학창작과
학력/ 방송통신대학교
회원/ 글쌈문학/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clean8331@hanmail.net
동백꽃 떨어지고 / 유영애
춘도 가는 도로변
한적한 곳에 붉은 동백꽃
혓바닥 낭자한 혈 흩뿌리고
숨죽이며 피를 토하고 있다.
붉은 입술로 관능을 꿈꾸던
탐스런 자태 지나가던 행인
저 꽃 좀 봐
소리치며 관심도 가졌겠지.
못 다한 연정 들통 날까봐
소리 없이 하나 둘 모가지 떨구고
푸른 옥양목 이불 속
꼭 쥐어든 옷고름마저 풀고
마지막 남은 정열 다 바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구나.
소음에 귀먹고 헐떡거리며
매연에 가쁜 숨 맥 놓아 버린 날
아름다웠던 자태 추스르지 못하고
초연히 널브러져 탈색을 받아들인다.
푸른 잎 사이에 숨어 수줍음 타던 너는
환한 불빛에 부끄럼도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몸통 하얗게 질려 꽃망울 꿈꾸며
푸른 잎사귀 수의를 갈아입는다.
뻐꾸기 우는 밤 / 유영애
나뭇가지에 숨어
달빛에 몸 숙이고
뻐꾸기 운다.
간간이 아랫마을 개짓는 소리
구성진 울음 어우러져
이 가슴 화음으로 헤집는다.
뻐꾹뻐꾹 무슨 눈물 많아
절절이 어둠에 털어놓을까.
이슬에 젖은 깃털 파닥거리면
새벽까지 떨어지는 슬픔.
뻐꾸기 우는 밤
어머니 목 메인 목소리
어디라 하염없이 놓지 못하고
가는 떨림으로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내게도 그리움 있어
자꾸만 귀 열어 가까이 다가가면
끊임없이 다가오는 선율.
서슴없는 자동차 소리 희석되어도
숨어 울리는 음악처럼
풀 먹인 깃 곧추세우고
뻐꾸기 우는 소리 따라간다.
중매쟁이 시인 / 윤석금
남원 광한루 찾아가다
운현궁 가로지르는 화풍
나뭇가지에 그네 매고
가락에 너울댄다.
근육질 몸매 초록 단풍
사모관대 폼 잡고
붉은 족두리 쓴 당 단풍
앳된 꽃 보조개 드러내며
푸르런 봄의 정원
팔짱 끼우고
백년가약 맺으니
아카시아 꽃 초롱 밝힌다.
중매쟁이 시인
사랑 시 읊조리고
부리 맞댄 비둘기의 축가
가야금 연줄 댕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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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금/프로필]
등단/ 문학21동인
현재/ 1965/서울/ 문학창작과
시와비평문학회/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white1240@hanmail.net
홈페이지 http://sukgum.com.ne.kr
새만금 갯벌 / 윤석금
풀각시 흙밥 짓던
소꿉놀이 그리운 어느 날
흙내음 가로질러 격포에 섰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줄친 새 공책에 정성껏
비뚤 삐뚤 이름 적듯
이윤도 없는 진흙 쌓인 논고랑에
봄 씨앗 심듯
내 이름을 썼다.
고향 하늘 밑에선
한 조각 땅으로도
그득그득 천 섬의 알곡 수확했다.
고둥각시 모래집 짓던
갯내음 그리운 어느 날
방조제를 가로질러 해창 갯벌에 섰다.
이윤도 없는 뻘 쌓인 갯벌
바다 생물의 부르짖는 외침인 듯
새만금 전시관 앞에
꽃상여 뒤따르는 근조라는 푯말
흰 수건 두른 어부가 절규하는
외침에 갯바람 비명 지른다.
닻도 없는 조각배에 오른 농발게
자작자작 솥은 염분에도
하늘빛 만선이다.
야 화 / 윤석금
어질한 지구
한 바퀴 돌아온 듯
가물거리는 별빛 내려와
눈 커플도 무겁다.
새벽녘 달빛에 삭혀내는
뜨듯한 보온밥솥 안
고두밥풀 곱슬곱슬
흰 꽃 피어 빙빙 돈다.
어금니에 물린 세월
내뱉지 못한 찌꺼기들
소화하지 못한 앙금들
쟁여두었던 것들.
거품으로 끓어오르며
가슴 복판에 만들어진
수년간 쌓인 난지도
한 순간에 무너진다.
가슴 뒤집어지듯
닳아 오른 열기로 끓여낸
식혜, 살얼음 꽃 핀 야화
후라보노 향 그윽하다.
귤타령 / 이명주
귤 상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허허!
그놈의 귤이 나보다 낫단 말이지“
비행기는커녕 버스 타기도 힘든 세상
나름대로 바쁘기만 하다.
“그래도 이놈은 비행기 타고 왔단 말이야“
삥그르르 돌아가는 시간 속에
비행기타고 온 귤 녀석
궁둥이 쓰다듬어
한 입 깨물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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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주/프로필]
출생/ 1969/강원도 춘천시
현직/ 후평꽃직매장 플로리스트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qorentks8481@hanmail.net
꽃병의 눈물 / 이명주
새벽이슬이 내려앉을 즈음에
그녀는 창문을 내린다.
불을 끄고 잠에 든다.
아침 아홉시쯤 눈을 비비며
조그만 주점 문을 열며 청소를 시작한다.
여유가 될 때면 꽃병엔 꽃이 꽂혀 있다.
항상 밝다.
슬플 때도 웃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무시해도
살기 위해 술집을 하고
가끔은 몸 팔기도 주저할 수 없다.
주워 담지 못할 말도 많이 듣고
때론 가구들을 때려부수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욕하지 않는다.
되레 가엾다 여긴다.
자신을 꺾어 꽃병에 꽂아 두고
가족들은 편안히 살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행복이라 여긴다.
그녀를 해하는 손가락질도
나보다 불행하기 때문이라 여기며
꽃은 화를 내지 않는다.
다만, 꽃병에 눈물이 절로 흐를 뿐이다.
피멍 / 이명주
여름날도 더운데 으앙으앙
아가는 소리 높여 울고 있다
애 엄마 젖솔기는 뱅뱅 돌고
젖을 먹이지 못하는 젖통에선
비릿한 액체가 피멍으로 흐르고
발을 동동 굴리며 빠른 손놀림으로
끝내려 하지만 자꾸 들어오는 일거리에
아가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뚫고야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눈만 충혈된다.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삶의 터전
젖 쉰내 펄펄 내가며 일하는
아직은 젊은 엄마는 냄새 들킬라
홍조 띤 얼굴로 고개 숙이고
이해해주던 손님들에 감사하며
미소지어도 돌보지 못했던 젖을 물리며
피멍 삭여 펑펑 울어야 했지
아기 자라 젖몽오리 앓는다니
옅어진 가슴 피멍을 문질러 본다
달빛의 꿈 / 이미자
달빛 겨워 쓰러지던 밤
청상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올라
만삭의 달덩이 살포시 올려놓고는
서둘러 내려 와
사다리를 부숴 아궁이에 밀어 넣고
불붙은 부지깽일 내저으며 얼굴 붉히더라나
그리고는 밤이면 밤마다 하늘 우러러
두 손 모아 정화수그릇 눈물로 채우며
애태우더란 거야
기어이 감복한 하늘이 달님을 내려주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곁눈질로 흘기다간 한숨으로 돌아누워
시름시름 앓더니
이런 말을 하더란 거야
오라해도 오지를 말지
이제 내겐 사다리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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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자/프로필]
등단/ 한울문학
출생/ 1969/강원도/현재 남양주시
현직/ 정옥보석사우나/대표
회원/ 남양주시인협회,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ehrtnfl1966@hanmail.net
멸치볶음의 전설 / 이미자
은백색 띠에 동백엿기름 곱게 분단장하고
요가 하듯 몸을 틀어 오동통 참깨 한 알
품고 누우니 허기진 눈 광란하는 침이 고인다
이글대는 하이에나 떼로 몰려와
허기 채우고 떠난 자리 흩어진 멸치들
뒤틀린 몸뚱일 질질 끌면서 한탄한다
어느 날 원치 않는 뭍에 끌려와
대기하던 뜨거운 물에 데쳐지더니
삭풍 오가는 거리에 뉘여 피를 말리고
컴컴한 상자 속 몇날 며칠 방황하다
도시에 들었는데
온몸에 기름 부어 지글지글 튀겨
정념 불타는 눈 불에 데이고
젓가락 두 개에 단단히 꼬집혀
잘게 부서져 흔적 없이 사라지니
이 한을 어찌 다 갚을 소냐!
그래도 할 말 있는 주둥인지라
하늘 가리켜 말하노니
왜 내겐,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입을 주셨나이까. 다 당신이었나이다
분개한 신에 몽둥이에 얻어맞은
잘 먹은 주둥이 깊이 혼절한다.
회 귀 / 이미자
버거움 이젠 벗고 싶다.
가쁜 숨을 몰아
나를 벗고 있을 헝클어진 꿈결
차마, 어루만지지 못하여 어색한 손 길
어스름 달빛만 할퀴고.
너무도 오랜만
이른 된장국을 끓이고 또 끓이며
기다려 본 적 없는 서툰 안녕히
다녀오셔요, 잘 다녀오렴, 마음 졸인다.
엘리베이터 안과 밖
짧은 순간
새벽 내 졸였던
안녕......,다녀오세요.
가슴에 얹혀 실없는 눈물만 나돈다.
신발장 깊은 곳
차곡차곡 가두며
다시는 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쏟아진 아침을 흘리며
널려진 신발들 사이로 폭풍 속을 질주했던
돌아와야 할 먼 거리를 발견한다.
반구대 암각화 / 이민화
새파란 맨살 물 속을 은비늘 유영한다.
아득한 원시 바람 아는 듯 말을 걸면
파드닥 절벽 벗기고
고래 떼가 나온다.
어스름 안개 타고 가을로 넘어선다.
화석이 되어버린 돌무덤 토닥이면
그린 듯 바다 올린 꽃
전설 바위 일렁인다.
암벽의 깊은 물에 옥집을 짓고 산다.
억 겹 물결 품고도 배고픈 파도 철썩
반구대 석양빛 쪼아
갈대밭에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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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프로필]
등단/ 문학저널/시와비평
출생/ 1966/경남 하동/현재 울산대/시창작과
회원/ 산다촌문인회/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
한국문학도서관
동인/ 글벗문학회/문학저널/시와비평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E-mail/ uree77766@hanmail.net
서재/ http://member.kll.co.kr/uree77766
빨간 꽃삽 / 이민화
철쭉꽃 옮기면서 함께 딸려온 꽃삽
팔딱이는 호흡 한 뼘씩 흙을 덥는다.
속닥대는 봄 햇살 깃털 세운 날
빨강색 꽃망울 벙긋 피우겠다고
조석으로 달랜 열기 퍼 담은 땅
허리 뒤틀려 가시 부서진 바람처럼
요염하게 나무와 나란히 동침했지.
바닥까지 늘어진 화초의 이파리들
가르마 타 수평 몸 가누어 주다가
이마 깎이고 온 몸 빗물에 뜯기어
벌겋게 변해 가는 발목이 너무 아파
볼썽시럽게 밀려드는 중반의 주름엔
유난스레 커다란 눈물샘이 삐죽였어.
시든 세포처럼 쭈글지게 앉아
뿌리 파고 누운 무덤 덮어주며
제 무덤도 같이 파고 있는지 몰라.
발바닥이 녹슬어 간다는 것은
머리카락도 갈라진다는 사실인 걸
꽃삽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하얀 거미줄로 얼굴을 가리면
무겁게 패인 눈자위 감추어 질려나.
고칼슘이 듬뿍 발린 갑옷에 갇혀
빨갛게 하늘 닿는 사랑 심으려고
꽃삽에 유영하는 햇빛 퍼 담는다.
별 / 이민화
큰 계곡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손끝에 하늘이 쉽게 닿아
젓가락 하나만으로도
별을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젓가락 두 짝으로 밤하늘을 꾹 눌러 보지만
차가운 바람만 손등을 맴돌 뿐이었지요.
가운데 손가락을 움직여 밀어내도
그 넓이만큼 걸음이 부족해서인지
늘 입안은 수분이 줄어들어
가슴이 쪼그라들어 가는 거여요.
별들을 떠받드는 큰 바위 정수리에 올라
안간힘 쓰며 커다랗게 젓가락을 뻗어 보아도
신기루처럼 손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만큼 보폭 따라
자꾸만 달아나는 그림자 같은 별
안을 수 없는 안타까운 거리에서
말없는 빛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등 대 / 이상식
갈매기 울음 안고 먼 육지를 바라보는
등대 얼굴이 밀물에 떠밀리는 나뭇잎 같다.
수척한 어선의 힘겨운 날숨소리 끊임없이
잔주름을 만들고 있는 바다의 등을 내리칠 때마다
등대는 오랜 골다공증에 허리가 휜다.
말없이 육지를 다녀 온 기러기들
정수리 맴돌며 하나 둘 별자리를 만들 때면
한번쯤은 풍덩, 바다에 뛰어들어
육지를 향해 거침없이 헤엄치고 싶겠지.
태양에 봉인되었던 어둠이 슬쩍 찾아들자
묵묵히 붉은 꽃을 피워내는 석양은 알까.
실바람만 불어대도 뼈 속 구석구석
추억이 밀려드는 가을 저녁, 등대는
오늘도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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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식/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출생/ 1970/경남 거창
현직/ 거북철물상사, 회원/ 한국문학도서관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lee4571@hanmail.net
홈페이지/ http://lee4571.kll.co.kr/
검색 오류 / 이상식
인터넷 검색에 내 이름도 나올까?
인터넷을 항해하다, 문득
한번도 내뱉지 못한 내 이름을 떠올린다.
똥 석 장을 손에 쥔 고스톱 게임처럼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려온 세월
어디 한 번이라도 나를 뒤돌아 본 적 있던가.
언제인가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던 것처럼
인터넷 검색 창에 내 이름을 집어넣자
금새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메일함을 새까맣게 포획하는 포르노 광고처럼
눈부신 화면을 뻑뻑하게 차지하는 내 이름들
연속된 행렬에 시선을 빼앗기고
간 밤 내내 소외를 곱씹던 왜소함이라니
무더운 여름날 갑자기 몰려와 평온한 낮잠을
깨우는 소나기처럼 일상을 헤쳐 버릴까.
어디선가 왱왱거리며 모기 한 마리 달려든다 싶더니
이내 천정을 향해 솟구친다.
아니, 서서히 시들어 가는 내 상념 속으로
종, 종, 종, 달려 들어온다.
철물점의 하루 / 이상식
1.
눈 시리도록 풍성한 아침이다.
물 흐름소리가 좋아 눈길 닿는 곳마다
검붉게 녹슨 철물들 새 둥지를 찾아 바삐 떠나가고
이른 새벽, 철물점을 떠나간 식솔들이
어디론가 휙 실려 갔다 다시 돌아오기도 하면서
부산한 하루가 시작된다.
한바탕 물 결속에 공사장 인부들이
썰물처럼 아스팔트 위로 밀려나고 나면
아침 마당에 줄을 지어 늘어선 식솔들
이따금 행인이 지나갈 때마다
행여 저를 불러줄 듯하여 절로 몸체가 기울어지고
끝내 부름을 받지 못해 남루한 옷자락 위로
두꺼운 먼지가 켜켜이 쌓여 가는 것을 보면
나는 문득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2.
한가로이 구름이 지나가는 한 낯
간만에 철물점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에 불을 댕겨 본다.
두 귀 쫑긋 세우며 주린 배를 움켜쥔 잿빛 쥐 한 마리
눈이 마주치자 천장 모서리를 가볍게 돌아
날래게 몸을 숨긴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곤 한다.
기다림에 지쳐 서서히 녹슬어 가는 저 잔못들도
내가 그리워 까맣게 타고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이 너무 많아 더욱 부끄러웠던 사춘기시절
모두들 대학 간다며 인문고로 우르르 몰려갈 때
나는 한 발자국 물러서서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습관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우르라며
40KG짜리 시멘트를 1톤 트럭 가득 싣고 현장에 부려주면
하루가 지독히도 피곤하였지만
그 흔한 대학 졸업장을 따라잡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아랫목에 두 발을 담그고 끙끙 신음소리를 뱉을 때마다
날 낳으신 어머니 아무 말씀 없이 돌아누운 채
눈물 떨어뜨리셨기에, 나는 모른 체 해야만 했다.
나로 인해 아직도 가슴에 박혀 있을 대못
이제 녹슬어 폐기처분할 때도 되었건만 어머니
지금도 망치를 들고 더욱 깊숙이 대못을 박으신다.
3.
철물값이 두 배나 껑충 뛰었다며 모두들
입을 모아 노래하는 동안 기울던 서녘 해 넘는다.
어머니 얼굴에도 황금빛 노을이 그려졌을까.
밀린 외상값을 두고 목청껏 외치던
삼류영화 대사 같던 김 목수와의 걸쭉한 입씨름도
한 시간이나 더 끌다 끝난다.
자, 가야지 이제는 오늘 하루 잡다한 흔적을 털고
묵전에서 뜯어 온 냉이로 구수한 된장국 끊여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를 만난다.
*묵전: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밭
낯선 통화 중 / 이상태
낯선 통화 하나에 궁상떨다가
어찌 보낼지 무작정 속만 타고
차마 웃음 걸고 일어나다
문 밖에 덥석 주저앉는다.
멈출 수 없는 화음 싱긋이
이제 시작이야. 그저 좋은 자리
목소리 비운 하늘로 가는 길이
차라리 너무 멀어 짐이 된다면
죽어도 풀 수 없는 숨결 삼키다
울렁거리다 목젖만 멍에 걸린다.
먼저 고이 보내고 속 혼자 끓이다
아무 손 잡히지 않아 뒤척인다.
설마 떠나며 족히 망설이다 멍하니
전화해 말못하고 몇 바퀴 맴돌다가
수화기만 손톱으로 긁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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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프로필]
등단/ 현대시조/시와비평/동인
출생/ 1954/밀양/현재 부산/울산대학교대학원 석사
회원/ 시조문학/한국시조시인협회원/한국문인협회
/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원
직책/ 교원문학회장/문학교과연구회장/산다촌
문인회부회장/시와비평문학회장.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E-Mail:emunhak@hanmail.net
Homepage:http://cmunhak.com [시와 비평]
꿈길에 어떻게 갔는지 몰라.
힘들어. 나도 모르게 아파.
시간 잡아 웬 통화야? 깨어나
메일 열어보니 잘 기다렸다고
별빛 날려보내 확인한다.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인데. 그지?
우두커니 밤하늘 봄꽃이 총총
속상해 몸서린 이슬 수놓고
내 그림자와 아직도 통화 중이다.
낚시터의 연인 / 이상태
개운포 바람이 떨고 있다.
낚이지 않은 하늘을 바다 밑에서 채 봐도
올라오지 않는 바람의 뼈
찌를 불러 마침내 솟아오르고서야
수면 위에서 눈을 뜬다.
바다 흰 내장을 모두 내놓고도
건져 갈 수 없는 꿈을 찾는다.
얼룩진 지렁이나 깻묵으로 무장한
독침을 감추며 미끼를 물리고
소매 펄럭이고도 손 한 번 잡지 못한
구름을 휘감아 낚싯대 날린다.
속상해도 울지 않는 파도는
바늘 끝에서 파리하게 질린다.
입술에 걸려 찢기더라도 물고기
눈물이 많아 눈감지 못하고
어지러운 뱃멀미에도 춤을 추는 부표
거품 물고 물결 끓이다가
방생한 거북이등 타듯 잦아진다.
한이 많아 입술만 벙긋벙긋
헛말만 맹물로 들이키고 내뱉으며
죽어도 고백하지 않겠다고
사랑한 게 죄라고 바다는 말한다.
미역처럼 미끈한 갯내음 풍기며
낚시터의 연인은 파도가 되어 보챈다.
섬진강 재첩국 / 이상태
섬진강 엎질러 범람하는 물소리
새벽잠 깨우고 아파트로 나왔다.
모래밭 긁어 건져낸 조개
혼 불에 열반한 바다 해처럼
행상 머리 둥실 올랐다.
손수레 걸음에 골진 강물 퍼다
시원한 목청으로 파는 노래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한 손에는 하동댁 차양 부채를 들고
화계장터 골바람을 일으켜 보냈다.
조개껍질에 올라붙은 무늬 결마다
덫을 놓았던 지리산 노을이 숨었다.
물결 둥둥 밀고 다니던 주름살도
해장국 한 그릇 기우뚱
'재첩국입니더, 섬진강 재첩국!'
식구들 불러 한솥밥 마주 놓고
황톳물 게워 낸 웃음소리
아침 햇살이 따라 나왔다.
아내의 태양 / 이영돌
초승달 잡아다가
가두어 두었더니
이제는
방향감각을 잊어버렸나보다.
서있는 그곳에서 맴돈다.
열아홉에
빗장이 걸려 멈춰버린 성장
탈수기 속에서 시름시름 앓는다.
태양은 온 종일
입을 귀에 걸다가
환희, 고단함이 어떠한지
묻지도 않고 걸어간다.
저마다
빌기도, 삿대질도 하지만
살육이 벌어지는 체스판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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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돌/프로필]
현재/ 1950/포항시
현직/ 동양석판주식회사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yyoung820@hanmail.net
시비를 가리려는 듯
호통 한번 없이 그냥 그대로다.
광장 같은 긴 여백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
소나무 껍질 같은 소리로
홍수처럼 울더니
외려 안다고 큰소리다.
아내의 시커먼 가슴을 열면
파-란 대문이 있어
그 속이 들여다보여
꽃밭과 넓은 그림책 한 권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지금도
아내의 꽉 찬 창고 속에는
밤에도 게걸스레 빛을 잡아먹고
하루를 토해 내다가
또 하나의 태양을 띄운다.
장미의 전쟁 / 이영돌
직장생활 이십오년 오십 일째
까딱없이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모습과
그들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소풍 같은 여행 한번 가본 적 없고
아파서 병원에 누워본 적도 없다.
하늘이 넓은지 바다가 푸른지
풍문으로 들어서 안다.
촌집 하나 구해서 아내에게 바쳤더니
그 안에 있는 것은 죄다 자기 것이란다.
나는 날마다 조금씩
아내 것을 얻어다가 쓰는 꼴이니
아내는 나의 부처다.
꽃밭과 잔디밭에 잡초를 뽑으며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뽑혀
버려질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
기를 쓰고 아내만 꼭 붙잡고 산다.
장미꽃이 떼를 지어
그 모습 보기 좋다며 깔깔 웃는다.
천 직 / 이영돌
밤새 들이킨 꿈 걸어 나와
헛배 잔뜩 부른 배 쓸어내려
게으른 동쪽 하늘에 탁!
가래침을 뱉는다.
중증 천식인 경운기 멱살
논두렁에 떼기 장을 치니
겁먹은 경운기 탈탈탈 떤다.
불지른 가름 미처 꺼질 줄 모르고
겨우내 언 땅 지킨 벼 그루터기
경운기 화풀이에 엎어진 속살로
하늘 향해 자궁을 연다.
땅이 곧 임 인양 등촉이 꺼질 때쯤
초야를 치렀지만
하늘도 반기는 기색이 없어
아내처럼 뽀얗게 담배연기 가라앉는다.
가슴에 멍울이 하나 둘 튀어나와
가로 세로 짜여진 직조 무늬 위에
한 땀 한 땀 퍼즐을 메워 놓으니
온통 꼿꼿한 바늘이 된다.
달팽이 / 이용일
그가 꼭, 살다 오라하기에
최소한의 몸집으로 태어나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다만 느낌만으로
작은 한 몸 의지조차 부끄러워
감긴 껍데기.
사랑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지도 않았다.
흔적마저 지우고파 오뉴월 빛 그대로를
폭풍의 어둠 넘어
칼바람 이는 길을
눈물 적시며 느릿느릿 타는 걸음.
그래도 살다 왔다
조막손 펴 내밀며
미소짓곤 껍질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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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일/프로필]
현재/ 1962/성남시
현직/ degussa korea 근무
동해로 가는 동행/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yilee-62@hanmail.net
발리에서 / 이용일
생각만큼 벗어 나
남으로, 해에게로
첫인사 야자수, 어깨 집고
하얀 모래 놀던 쪽빛 물결
또록또록 눈을 뜬다.
비운 가슴에 가득 채워
머리맡에 내어놓고
아로마향 꽃잎 띄워 헤픈 물장구
이름 모를 열대새 빗긴 햇살 물고 와
한 잎 떨군다.
작고 까만 그들!
여린 삶 같은데
그 안에 놓는 발길 여전히 흩어지고
설운 가슴만 젓고 저어
눈 밟히던 어제만 아직 헤고 있다.
돌아 갈 길임을 알고 나선 길
돌탑 끝 금빛 라지브
만트라 경소리 일렁이고
한켠 조각구름 꼬깃꼬깃 깁고 있다.
*라지브:흰두교 어머니 신
*만트라:찬송가
흔 적 / 이용일
벌써 며칠째 마른입이다.
하얀 밤을 태워버린 담배꽁초
신새벽 서리로 내려앉은 연기
구름 위를 뒹굴고 있다.
나를 버린 것이 아니고
너를 보낸 게야.
너와 함께 걷고 있을
나를 버린다.
하늘 기리며 가슴 설레던 날들
마른 가지로 보낼 더 많은 날들
오늘도 지워야 할 너를
맨살로 부딪히고 있다.
자동차 등받이에 갈빛 머리카락
지나는 바람에 날려보내니
은행잎 하나 떨어져
빈 거리 바람으로 보챈다.
그녀는 예고없이 오더라 / 이우복
인기척이 느껴진다.
그녀다. 나체를 좋아하는
그녀의 냄새다. 옷을 벗어야한다.
윗도리를 벗는다.
똑- 똑-
문을 두드리는구나.
바지를 벗다가 우당탕 넘어진다.
얼른 벗어야 하는데
가증스런 이 옷을 다 벗어 버려야 하는데
문이 열렸다. 그러나
아직도 위선이 반쯤 무릎에 걸려있는 나.
놀란 그녀가 돌아선다.
다시는 오지 않으려는 듯
휑하니 열린 문을 뒤로한 채 떠난다.
찬바람 한 자락
후회를 뼈 속 깊이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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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복/프로필]
등단/ 시사문단
현재/ 대전시
동인/ 글벗문학회/시와비평
공저 [글벗]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2woobok@hanmail.net
홈페이지/ http://lwb.zoa.to
불 춤 / 이우복
한바탕
불춤을 추고 싶다.
전신의 기를 실은 타오르는 불꽃은
나의 왼발을 돌아
오른발을 지나
배꼽으로
가슴으로도
온몸을 휘어 감고.
이제
머리 위에서 관객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껄껄껄"
소리내어 웃는다.
그것은
마지막 불 살음
미친 듯 혈소(血笑)를 토해 내다
한 순간
나의 입으로 그를 죽인다.
불꽃은
그렇게 사그라져 갔다 .
불꽃은 식었다.
내 안의 정열은 낯선 벌판을 헤맨다.
불춤을 추고 싶다.
다시 불춤을 추고 싶다.
불꽃을 피우고 싶다.
또 다시 불꽃을 피우고 싶다.
샤 워 / 이우복
새 물줄기 쏟아지고 비누 칠 후 온몸에 피어 오른 안개 속으로 타월이 헤집고 다니면
종일 묻은 때 스멀스멀 기어 나와 추락한다. 금세 하수구멍엔 더러움 가득 차고 욕조는
찰랑찰랑 바다로 변하며 시체들 떠오른다. 배불뚝이 사장이 뜨고 점심때 유혹하던 여인이
뜨고 빵빵거리며 새치기하던 운전사가 뜨고 집을 빨리 비우라던 주인댁이며 텔레비전
속 난장판 국회의 정치인들이며, 아이 냄새야 막 씻겨진 손이 꼬챙이 들고 구멍 쑤시면
바다는 해일이 일고 삶은 빙글빙글 돌아 오늘을 삼키기 시작한다. 야아 블랙홀이다.
참 시원스럽게도 끈적거리던 하루가 사라져 간다. 오늘 밤, 꿈이 샤워기 속을 유영한다.
빵 다비식 / 인이숙
밀가루 방부제에 뒤섞여 누렇게 취해
180도 오븐에 몸부림치다가
정신을 잃고 누워 버렸다.
가식의 부풀림
가슴에 가득 품고서 열과 함께
다비식 준비한다.
불빛 아래 진열장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몸부림일까
유리창 넘어 햇살의
노크에 참깨 알 잉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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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숙/프로필]
등단/ 시사문단 /시사랑 동인, 시와비평/동인
현재/ 1969/부평/경인교육대학교 시창작과
회원/ 인천갯벌문학회, 동인/ 시인의 바다 시선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is67714@hanmail.net
홈페이지/ http://inleesuk.com.ne.kr/
대공원 정상에서 / 인이숙
팔각정 두 팔 끼고 서서
무서운 인상을 쓰고 내려보고 있었다.
500계단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소나무 사이에 작은 보리수나무도 힘을 주었다.
청솔모 비웃듯 날쌔게 달려 올라가고
호랑나비 노랑나비
휠훨 날갯짓에 난 울음만 나왔다.
도토리나무 개암나무 박수소리
귀에 담고 힘을 내어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시흥과 인천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정상이란 노력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것이구나.
좌절과 유혹이 있어도
오로지 먼저 밟고 지나간 선배가 있으니
그 발자국에 누가 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힘든 정상의 길 벌떡 들어 누워
하늘과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내려왔다.
북한산 가는 길 / 인이숙
구파발 지나 우회전하니
북한산 국립공원 간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잿빛 하늘이 웃고 있을 때
푸르런 북한산이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 버렸다.
계곡 물줄기 귀를 맑게 해 주고
대원사 굿당에는 돼지 한 마리 누워 다비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곽 넘어가면 이승과 저승에 길이 닿는 듯이
까마귀 기분 나쁘게 울어대고 있었다.
애기똥풀 찔레꽃 향기가 나의 코를 취하게 하고
남편이 따 준 산딸기 한 알에
산도 시샘을 한다.
양화사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보시하고
하늘의 길이 열리는 대로 발길을 옮겼다.
남문 정상에 올라
토마토와 오렌지로 요기하고
읽은 간판
"화장실 위치도" 정상에 무슨 화장실 위치도
우리 부부가 부러웠을까.
구름은 어두운 얼굴을 하며 비를 내리고 있었다.
통화권 이탈 / 임대성
정체된 도로 창밖에 떨어진 휴대폰 하나
복잡했던 사연을 증명하듯 짓이겨진 채
숨겨온 내면을 드러내 놓고 있다.
처음 명함에 숫자가 나란히 새겨져
일련번호가 첨단으로 작동되었다.
디지털 탯줄이 되어 어머니 음성을 전하고
연인의 사랑이 멜로디로 울렸으며
사회 친구의 노이즈를 전하기도 하였다.
생산과 소비의 뫼비우스 띠 속에서
이름은 잊혀지고 일련번호만이 요구되면
가늘게 휘청대는 안테나를 세운 채
신용불량 통보로 배터리는 소진되고
잊혀진 멜로디 되었을 때
바닥에 던져진 천연색 액정은
검은 멍으로 물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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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성/프로필]
출신/ 부산/전원문학회
시와비평/동인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ydszero@hanmail.net
몇 분전 거대한 도로 흐름에 몸을 던져
병렬화된 세상과 통화권 이탈했을 때
질주에 짓이겨진 미궁의 다이얼은
숨겨왔던 금빛 찬란한 문양을
세상에 증명하듯 내보인 것이다.
순간 질주는 멈추어지고
우리의 삶은 통화권 이탈되고 만 것이다.
도로에 맞물린 정체는 금세 풀리고
통화가 다시 시작되듯이 바람 스며들어
거대한 회로 속으로 사라진 전파가 온다.
움켜쥐는 것들 / 임대성
살아있기에 움켜쥔다.
움켜쥐고 놓기가 힘든 것은
그때마다 자신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는 선율을 움켜쥐고 건반에서 흐느끼고
무용수는 공간을 움켜쥐고 온몸을 던진다.
시인은 평생 가슴을 움켜쥐고 살아가는데
시는 다른 이의 가슴을 움켜쥐기도 한다.
혼령(魂靈)이 움켜쥔 사람은 작두를 타기도 하고
다른 이의 한(恨)을 움켜쥐고는 춤을 추며 풀어낸다.
사람이 아닌 해바라기 같은 꽃도 낮에는 태양을 움켜쥐고
밤에는 자신의 숙명을 알알이 쥐고서 씨앗으로 키워낸다.
고흐는 자신과 닮은 해바라기를 자주 그렸는데
색채를 움켜쥐고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그림을 그려냈다.
삶의 마디가 굵어질수록 놓기는 더 힘든 법이다.
삶을 놓을 때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 하느님마저 두 손으로 움켜쥐고 평생을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농부는 흙을 움켜쥐고 생명을 키워내고
누구나 마지막에는 흙이 부드럽게 움켜쥐면 흙이 된다.
각자의 숙명을 움켜쥐고 걸어가는 길을
수없이 움켜쥐기에 발가락은 그렇게 짧은 법이다.
천상타운 / 임대성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조차
마을의 화제일정도 작은 시골에도
산업화 공장이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돌아왔다.
눈에 띠는 변화는 먼저
작은 개척교회를 허물어내고
궁전 같은 교회가 들어서는 것이다.
신도들은 은혜라며 놀라워하고
목사님은 신도들이 늘어간다고 기뻐하셨다.
몰고 다니던 경운기가 승용차로 바뀌고
누구네 전답을 백배로 팔았느니 하는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으로 바뀔 쯤
대대로 가꾸던 전답위로
거대한 주상복합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크기에 한번 놀라고
하루가 다르게 지어지는 속도에 놀랐다.
어느 날 거대한 건물의 벽에
푸른 하늘과 구름의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진 것을 보며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건물의 이름조차 천상타운이라고 지어졌다.
아버지 땅을 팔고 천상타운으로 이사가자구요.
그곳에서 극장부터 없는 게 없데요.
먹고사는 건 제가 공장 다니면 되고요.
농사 지어봐야 빚만 늘고
벌이도 농사보다 좋데요.
사람들은 속속들이 천상타운으로 들어가고
공장들이 연기를 뿜으며 들어서던 날
새들이 천상타운의 벽을 부딪쳐서 자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새조차 하늘과 구분을 못할 정도인
벽의 그림을 칭송하며
새 대가리는 어쩔 수 없나보다고 비웃기 시작했다.
마을의 새들이 보이지 않게 될 무렵
천상타운에서 일가족이 뛰어내렸다.
그들의 삶은 천상타운 위에서 봤을 때
한낮 핏빛 방점에 불과했다.
날개가 그리웠는지 천상타운에서
새처럼 뛰어내는 사람은 많아져 가고
공장의 연기가 쉼 없이 흘러나와
푸른 하늘이 가려진 채 태어난 아이들은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자라났다.
기억 속에서조차 새가 사라져 버린 날 사람들은
벌레 떼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바다에 내리는 비 / 임정택
보이질 않는다.
후줄근한 비는 내리고
바삐 움직이는 어판장 사람의 물결
아버진 보이지 않는다.
받쳐 든 우산을 타고 내리는 불안감
지난 밤 창문을 빗겨 검은 비는 내리고
아버지 십팔번 ‘아리랑’노래는
비의 선율 속으로 자맥질하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아~리랑 고~개에~로 너~머어 간다~”
엇박자로 갈라지는 소리 사이로
추적추적 봄비는 내린다.
소주 반병이 주량인 아버진
평생 이 노래 한 곡을 안주 삼아
살아온 날들 가만히 흥얼거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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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택/프로필]
등단/ 시와비평 신인상/동인
현재/ 1969/울산/문학교과연구회 사무국장
학력/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박사과정
수상/ 전국충의백일장/현상문예공모 장원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lim3204@hanmail.net
홈페이지/ http://eelp88.com.ne.kr
초등학교 4학년 다니던 해인가
음악 시간에 이 노랠 듣고
아마 제목을 알았던 것 같다.
“나~아를~ 버어~리고(쿨~룩)
가~시는~~ (쿨룩 쿨룩) 니~이믄(쿨~루욱)”
과속 방지턱을 넘듯 살아온 날들
털컹거리며 다가서는 걸까.
소금기 절은 캐캐한 얼굴
백열등 불빛 사이사이로
살아온 세월만큼의 주름살을 내며
스물스물 번져난다.
잠시 소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못다 부른 노래 속으로 다시 잠겨든다.
“심~니도(쿨~룩) 모오~가서~(쿨룩)
발~병~~ 나~안다(쿨~룩~)”
밤새워 내리는 어눌한 빗줄기
아버지 기침 소릿결 따라
새벽 바다로 놓아만 간다.
쉬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은
바다로 가는 빗길을 연다.
대문을 여닫는 소리
그예, 아버진 바다로 가시는구나.
옹알진 가난만 밀물로 보내주고
살아 세울 꿈들 썰물로 몰고 갔던
무심한 바다가 그렇게 좋은지.
‘미움이 깊어지면 그것도 정으로 품어진다’는
당신의 입버릇처럼 그렇게 다가서나 보다.
먼바다 너머 새벽을 안고 나간 배들
비 내리는 아침 뱃길을 트며
하나 둘씩 수척한 모습으로 밀려오고
아침 파시가 저물어도 아버진 보이질 않는다.
새벽길 당신의 검은 그림자 흔적
자취 밟으며 이리저리 헤매인다.
부둣가 줄지어선 포장마차 끝 모퉁이
귀에 낯익은 아리랑 노래 가락
모두가 젖어 있는 날의 선율로 전해진다.
오늘도 바다는 아버질 외면했구나.
얼큰히 달아오른 취기 속으로
아버지 아리랑 가락은 흥을 돋우고
순간, 까닭 모를 서글픔이
내 가슴으로 흔들려 내린다.
아리랑 가락이 빗줄길 타고
바다로, 바다로 쓸려 내린다.
아버지 꿈들이 쏟아져 내린다.
안개 비 / 임정택
쌍발 비릿한 소금기
바람결 잦아드는 안개비 따라
멀금한 눈으로 파고들면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다.
힘없이 주절대는 빗소리
길 곳 잃어 헤매던 누렁개
추운 듯 축담에 몸 비비며 떤다.
관절염으로 밤잠 설친 어머닌
부도난 수표 같은 연통 들고
쥐포공장 안개비 걷으며 가신다.
몇 년 전 형수 폐병으로 죽어
할매 밑에 던져진 어린 조카 놈은
땅바닥에 팽개쳐진 쥐포 마냥 되긴 싫은지
할매 치마 꼭 쥐고 그림자처럼 따라나선다.
뒤안 댓잎 갈리는 소리
소스라쳐 뒤돌아본 마루 벽엔
덩그렇게 걸려있는 아버지 사진
골패인 이마 위로
축축한 바람 넘쳐흐른다.
짧은 남방만 걸쳐 추운 듯
바래버린 얼굴 더 창백해 보인다.
축축이 쌓이는 안개비 그칠 줄 모른다.
자꾸 머리가 일렁인다.
*쌍발:경남 고성군 월흥면에 있는 바닷가
장마 비 / 임정택
- 아버지의 초상
켜켜이 바닷길 내며 내려앉는 장마 빗길로
살아 세운 허술한 삶의 기억 뒤로 한 채
당신은
돌아 돌아보며
가뭇없이 가십니다.
실안 방파제 부대껴 쟁쟁 울리는
고운 숨결 멀금한 눈으로 파고들면
당신의
따사로운 목소리
온몸으로 번져납니다.
장마 비 묻어오는 하늬바람 끝자락으로
아른아른 눈물져 오는 설운 기억들
당신은
잊어버리라
여린 눈망울로 다가섭니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주름살을 드리우며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초상으로 남아
당신은
살며시 다독이며
맑은 미소로 지켜섭니다.
길 / 장성훈
어디가 길이냐고
묻지 않았다
평생 보지 못한 눈
눈뜬 이의 손가락을
바라본 들
스스로
내딛는 행보가 아니고는
날 저문다는 말
부러 듣지 않았다
기왕에도
붉은 해를 본 적 없는데
서산에 걸리우던
동녘에 피어나던
부르튼 발가락
고난이 아니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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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훈/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현재/ 1965/충주
동인/ 글벗문학회
공저/ 어울마당1/2집/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polyhs@hanmail.net
홈페이지/ http://cmunhak.com
산 중턱 즈음에서
계집 하나
더운 숨으로
길이 어디냐고 황망히 묻는다
대답 대신
가만 계집의 손을 끌어
풀을 만져 주었다
바람이 지나간다
막장 모니터 / 장성훈
머리에 하나씩 램프를 달고
같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생 땀 흘려야 했다
누구의 램프이건 중요하지 않았지
단지 막장 속에서
빛에게 추방당한 쥐처럼
지구의 억만년 숙변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면 하나일 수 있었다
갱 밖의 허세야 상관할 바 아니고
나이는 버리고
지식조차 버리고
같은 불빛으로 움직일 뿐
서 있어도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훌쩍
새로운 막장에 앉아 있다.
헤드램프로 모니터를 켜고
시커먼 석탄 대신 활자를 찍어가며
깨어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불빛을
기다리는 일이다
엉겅퀴꽃 / 장성훈
당신을 사랑한다고
부끄럽게 꽃망울 피우면
나 보아줄래요
샘물
고운 물결에 비치는 모습
아무리 보아도
꽃은 아니었어요
거친 바람에 잎은 갈라지고
무시로 서럽던 시절
한 몸 지키려
가시만 둘렀지요
생존의 방편인 줄을
당신은 알까요
당신의 화원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
지나는 걸음
스치는 눈길에
어색한 몸짓으로
당신 향해 피었거든
그저
피었다가 스러지는
부질없는 꽃이라고
그렇게 보아주어요
미운 꽃 한 송이 피었더라고
소양호 사람들 / 정정용
그 어디 묻어 두었던 천만가지 풍경인가
별무리 표정이 익어 둥지 틀고 사는 사람들
풍토의 어둠 너머에 눈물 깊은 사랑이야
풍경이 풍경을 포개어서 첩첩산중이 되고
산 아래 또 어울린 산 사람보다 산이 많다
그쯤에 물이 물을 따라 호수 하나 안고 섰네.
-시와비평 여름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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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프로필]
아호/ 봄내(春川)/ 문학박사
등단/ 시와비평,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장원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문인협회/한국시조시인협회
한국여류시조시인협회
현직/ 강원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시조세계
운영위원, 강원도 국어교과연구회 회장.
수상/ 황산시조문학상(본상)/동백예술문학상 수상
시집/ 그대 위한 설악
('99강원국제관광 엑스포 기념시집)외 3권
영월 동강 / 정정용
산 여울 쓸어내린 오늘도 길가는 강
가수리 수미마을 대충대충 짚어보며
좀생이 별하늘처럼 제멋대로 흩어졌다
자갈밭을 깔아두고 비단인 듯 흐르는 강
운치리 수동마을이 추억 속의 그림인지
산나물 이파리처럼 손 흔들고 살고 있다
물길 백 리 길을 내고 내일도 흐를턴즉
문산리 눈뜰마을이 상좌처럼 반짝이니
살아서 눈물나도록 서강보태 흐른다.
-시와비평 가을호(2004)-
만물상 바람개비 / 정정용
자유 그 줄기를 따라 섶짓는 내 목숨
불 밝혀 망루를 세워 설레임을 감았네
숨죽인 눈물의 달팽이 산천초목에 오르네
하늘보고 눈을 뜨면 굽 높인 바람소리
층층이 피어오르던 햇살 비켜 출렁이고
강물이 산마루 넘어와 바람개비를 돌린다
손바닥 덮어 누른 만리 밖 그대 산문(山門)
꽃물든 무한천공이 갈망처럼 익어서
허물린 세월의 노래 개벽할 듯 새싹내네
뜨겁고 차가운 것 하늘을 다시 날고
만월이 은은히도 축등인 양 켜질 때
과묵한 바람개비에 물소리가 득도했어.
은행털이 / 차시환
가을 한낮 장대 끝에
하늘이 쨍그랑 깨지고
우르르 털린 은행이 떨어진다.
노란 빛무리 눈부신 나무 아래
황금 편린 쏟아진다.
길섶 누렇게 물들인다.
노랑 냄새 뒤로 숨은
가마솥 누룽지 같은 구수한 맛.
씻고 또 씻어도 가시지 않는
짙은 가을 향
온몸 가득 베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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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환/프로필]
현재/ 1963/울산
근무/ 동신교통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ro2080@hanmail.net
검정고무신 / 차시환
여덟 자식 뒷바라지 정신 없던 엄니
뒷산 자락 쉬엄쉬엄 일궈낸 텃밭에서
고추 호박 푸지게 거두어
오일장에 사다주신 검정고무신
은빛 모래 반짝이는 강가 모래밭에
산을 만드는 지프가 되고
계곡을 어우르는 불도저가 되고
만든 운하를 타고 나온 물길 따라
때론 유람선이 되어
강물 위를 떠다녔지
강둑 넘어 먼 산아래
고무신 잡아타고 지나간 세월
집 앞 놀이터에 어스름 내리면
누군가의 조그만 모래발자국 위로
쏜살같이 달리는 빨간 무선자동차
네 살배기 까닥이는 여린 손길 따라
검정고무신 일렁거리며 지나간다
아버지 / 차시환
검게 그을린 얼굴 뒤로
언제나 다정한 음성
자상하게 안아주던
새하얀 치아 반짝이고
손가락 마디마디
굳은살 박힌 손으로
깃털처럼 사뿐사뿐
면도질하시던 아버지
낙엽 뒹구는 쓸쓸한 대지에
이슬비 서러웁게 내리던 날
병약한 어미와
철없는 어린 자식 남겨두고
까닭 모를 아픔에
한 많은 생을 접어
거실 한편 조그만
액자 속에 머물렀다가.
희뿌연 거울 속
또 다른 내가 있어
흐뭇한 미소지으며
사뿐사뿐 면도질하고 있다.
서커스를 보다가 [2] / 추창호
- 버나잡이
꽃 떨어져
잎 떨어져
가랑가랑 가랑대는
내 생활을
접시에 올려
빙글빙글 돌려댄다.
한 목숨
세워 사는 일
어디 쉬운 일이냐며...
...............................................................
[추창호/프로필]
등단/ '96[시조와 비평]. [월간문학].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출생/ 1954/밀양/울산대학교대학원 석사
회원/ 울산시조 사무국장/울산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현직/ 울산문인협회 이사 및 시조분과 회장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시조집/ 낯선 세상 속으로
운영자/ 시조사랑 http://user.chol.com/~ckd18
우화(寓話)[2] / 추창호
- 스크래치
언제쯤 네 알몸을
볼 수 있을까?
흘러내린 속옷 너머
첩첩산중의 길은 놓여
정(情)으로
닿는 길 하나
만날 수 없으니.
*스크래치:기물의 전부나 일부를 2-3겹으로 채색한 뒤 말린 후 긁어 문양을 얻는 미술 기법
우화(寓話)[5] / 추창호
- 말
대목수 솜씨로 걸쭉한 사설 엮어낸다.
구경꾼의 추임새로 판은 점입가경
끝내는
난장(亂張)의 대본
교본(敎本)으로 놓인다.
*난장(亂張):책장의 순서가 틀린 채로 철해져 있는 일.
공작새(孔雀鳥) / 한휘준
시(詩)를 쓴답시고 밤새 끼적거려도
눈물 젖은 가슴속 응어린 쉽게 시(詩)가 되진 않아
곤륜산의 옥돌처럼 읽어주는 사람 하나 없고
밤새워 허공을 치는 요란한 방언기도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코드만
헝클어진 머리 미친 듯 흔들며
사방에 긁어대는 보컬그룹 락 기타처럼
나의 시(詩)는 오래 전 소음(騷音)이 되다.
시인이랍시고 종로를 껄떡거려도
알아주는 독자하나 없는 시인(詩人)이라지.
먹을 것 없어 배가 고파도 배부른 척
현학적(衒學的) 언어의 유희만 즐기는 족속
팔리지 않는 시집을 짓밟고 침을 뱉어라.
삼십 년을 들꽃 흐드러진 강물이 흘러가도
병신 같은 불구의 詩는 나에게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술 한 잔 먹여주지 않는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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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휘준/프로필]
등단/ 한맥문학[시]. 시사문단[시조]
동인/ 시령창작동인 /한국 시사랑문협동인
연재/ 월간시사문단 연재시,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ssayhani@hanmail.net
홈페이지 http://cafe.daum.net/ssayhani
날개 짓 화려한 교태의 몸짓이지만 가슴엔
뻥 뚫린 구멍 있어 온종일 찬바람 드나들지.
언제부턴가 하늘을 나를 수 없는 족속
푸른 하늘 훨훨 깃을 칠 푸른 자유를
스스로 상실한 새가 아닌 우리 속 현란한 사이비 새
날개 잃은 타락한 귀족의 공작새여
오늘도 온몸을 흔들며 발정(發情)만 요란하다.
송도 째즈바 앞에서 / 한휘준
언젠가 대학로 째즈바에서
째즈연주를 들으며 열광했었지.
숨이 끊어질듯 불어대는
색소폰 소리에 나는 미칠 것 같았지.
섹스폰 연주음에
나도 숨이 멎을 것처럼 목을 죄어 왔어.
이번 연주만 끝나면
죽어 버릴 것처럼 미친 듯 긁어대는
전자기타리스트의 선율에
나도 모르게 미쳐서 열광했었지.
연주가 끝난 후 나는 기립 박수를 쳤었지.
먼바다 떠나 온 파도가 지쳐서
모래밭에 허우적이며 드러눕던 송도에서
나는 째즈바에 들어 갈 수 없었어.
옛날의 형편없던 음악 성적이 생각났어.
秀秀秀한 타 과목 앞에서 음악은 늘 바닥이었어.
연습하다 그만 둔
하모니카나 클래식기타도 마찬가지였고.
주어도 또, 주어도 그녀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내 서투른 사랑의 연주 앞에
그 옛날 일어서서 부끄러워하던 음악 시간처럼
얼굴이 붉어져서 눈물 글썽이며 용서만 빌었지.
바닷가 째즈바 앞에서 난 정말 어쩔 줄 몰랐지.
을숙도에는 새가 없다 / 한휘준
을숙도에는 새가 없다.
내가 사랑하던 비비종 비비종
노래하던 내 마음의 연인
짭조름한 바다 내음 풍기며
눈물 글썽이어 소리 없이 울음 울던
날개 깃 알록알록한 고운 물새도 없었다.
물결 살랑이던 그 바다에서
그리움에 지쳐서 드러눕다 못해
갈대가 갈대를 부둥켜안고
밤새 외로움에 나신을 떨던
긴 머리 갈대밭은 어디 갔나.
부산히 오가는 자동차 불빛 속에
그 옛날 살포시 가슴속 찍어 둔
사랑의 발자국 흔적 없이 씻겨가고
하늘거리던 코스모스도 볼 수 없다.
가을 을숙도에는 하얀 손짓을 볼 수 없다.
비비종 비비종 종종걸음 부르던
고운 노래가 없는지 오래된
을숙도에는 새가 없다.
나의 사랑하는 새가 잠들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황말남
3월 13일 조간신문 펼쳐놓은 두 아이
무릎 꿇은 조선 뼈아픈 역사 생생히
라는 타이틀 관심 없는 듯
찰흙모양 만들기 놀이에 열중이다.
떼었다 붙였다 모양이 다채롭다.
천혜자연(天惠自然) 갯벌사업
호랑이 가죽 콩팥이 썩어가고
어린 새싹 이름 모를 병마에 운다.
울다 지쳐 문드러지면 보릿고개 넘어
밀가루 수제비조차
먹기 어려운 시절조차 먹기 어려운
시절조차 잊었다.
토종종묘 사라진지 오래
제 이름 잃어버리고
주변국의 애환
중심국 변주곡에
삼공육경(三公六卿) 누가 있어
함께 진흙 위에서 배례를 할까?
...............................................................
[황말남/프로필]
등단/ 시와비평/동인
필명/ 황다예/1968/울산
회원/ 산다촌 회원/글쌈 동아리
학력/ 방송통신대/울산대학교 문창과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rmfldna2002@hanmail.net
서재/ http://member.kll.co.kr/rmfldna200
용인지 뱀인지 이쑤시개 뿔을 꽂아
날개를 달아주면
등판때기 비늘모양 물과 불에
조화로운 이체동심 용트림이
짜아악 짜아악 실핏줄로 터진다.
점심공양 찰흙 수제비
던지기 탕
웃음소리 해맑은 내 새끼들
목구멍으로 붉게 넘어간다.
생태공원조성 / 황말남
수술기간 7개월
수술목적 자연보호
인공미인 꿈꾸며 나의 조형도
문신으로 도려낼 부위 접목시켜야 할
줄기세포 해부도가 내 몸에 그려진다.
원형탈모증 앓아가던 십리대숲
돌아가는 분쇄기에 순서를 기다리는
나의 몸통 불면증에 시달리며
동맥 경화증 앓는 태화강 옆
번호대기표를 단 채
잘려져 누워 있다.
수요공급 기호가치 떨어져
태화강 둔치 일차 수술자국
시퍼런 흉터가 뒹굴고 있다
자연적 조형물로 눈을 가려도
조화로운 두 바퀴 공회전 속
강인한 잡초들은 이별하며
또 어디로 가야하나
짜-앙 짱 예각으로 베어진 강물 위로
발그레 태양이 걸어간다.
애정결핍 / 황말남
미완의 눈물이 바닥에 뒹구는데
애비의 공갈 젖 물고
골목어귀 첫 생명 죽어라 울어댄다
파리한 실핏줄 딱딱한 금속의 차가움
따스한 젖 분수처럼 흘러내리면
젖 찾을 새끼 보고파 꺼어-억 운다.
추위 잘라먹고 자란 어머니
젖가슴 닮은 다산의 여인
하늘과 마주하고 누우면
줄줄이 임파선을 타고 도는
자두나무 아래 계시던 어머니
강물 같은 빨대로 힘껏 빨아보고 싶어
산 깊숙이 뿌리박은 강줄기
산밑으로 촘촘히 파고들면
부드러운 당신은 무위(撫慰)의 눈물샘 열어
유두를 내어준다.
내가 빨고, 네가 살아 연초록의 가슴
산은 온 통 무의식의 결핍을 채워준다.
자두 꽃 흩날리는 당신의 무형(無形)을 매만지면
봉창 새벽달이 만삭되어 울고 있다.
*붙힘:제목은 밀란 쿤데라의 저서에서 인용
반딧불 / 현 임
은하수 등불 업고
반딧불 춤을 춘다.
관객 부른 강아지
밤무대 지휘하러
입장표
사는 별들이
하늘 창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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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임/프로필]
현재/ U.S.A. 거주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graceih2004@hanmail.net
마싸이족 사랑 / 현 임
할례를 받은 증거로
까만 옷 입어야만 하는 소녀들
순진한 웃음 구김살 없이 입가에 묻어나고
신기한 듯 쳐다보는 해맑은 눈동자들
가시 되어 눈물 고이네.
여자란, 재산의 일부
소와 염소와 닭이 많을수록
아내가 많은 마싸이족
큰마누라 둘째 마누라
남편의 집이 어깨를 다투어 서 있네.
시샘도 할 줄 모르는 그녀들
할례가 주는 이점일까?
아니면 숙명처럼 알고 사는 걸까?
남정네들은 치마 속에 칼을 감추고
지팡이 하나 들고 족속을 지킨다는 명목아래
빈둥거리며 장터에서 놀아나네.
여자들이 소똥으로 지은 창문도 없는 집
비가 오면 누런 물로 목욕하고
바퀴벌레도 친구 삼아 살고 있네.
애써 섬겨온 추장 아들
아내 하나 더 얻겠다고 포고하니
비통한 하나님 사람 땅을 치며 통탄하네.
가뭄에 땅거죽 갈라진 여름이면
풀도 사람도 가축도 누렇게 바스러져
떠나야만 하는 유목민 마싸이족
애환은 언제 막을 내릴지.
그들을 버리시지 않고
당신의 사람들로 섬기게 하여
오늘도 양철 지붕에 금탑을 쌓고
검푸른 들녘 곡식 밀알로 거듭나게
그들이 필요한 만큼
신이여, 단비 내려 주소서.
해바라기 / 현 임
별빛 울려 은은하게
은빛 가루 흩날린다.
황홀한 밤의 요정
손짓 내저어 유혹하고
은하수
무리를 찾아
사다리를 올린다.
일편단심 해바라기
찬이슬 한 사발로
도리질 노랫가락
축축이 목적시고
버선발
맞이한 고개
오매불망 내민다.
맞바라기 하는 사랑
애타며 우러르다
떠나야만 하는 오열
서산 길 숨길 수 없어
까만 눈
들썩이던 어깨
바랜 숨을 뱉는다.
건강검진 / 현혜숙
예약 시간 늦을 라 빠른 걸음만 바쁘다.
체온계 입에 물은 신호등은 꿈쩍 안 하고
귓바퀴 살 깎는 소리에
부르르 떠는 엔진 따라
심장은 펌프질을 시작한다.
후끈한 열기 촘촘한 솜털 자지러진다.
병원 문을 밀치는 발걸음 추월하여
앞서간 사람들을 통과하고
대기실 책장 넘기는 공기 혼란스럽다.
푹 파묻힌 의자의 검은 물체들
빨려나가는 시간 속으로 점점이 사라지고
벽시계의 움직임 귓불을 조여 온다.
덧 입혀진 세상 돌기 차단하려 한다.
한 때는 융단처럼 까시럽지 않은
심해의 잔잔함이 아니었나.
탁한 흐름은 공기의 저항조차 앗아가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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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숙/프로필]
현재/ CHICAGO 거주
동인/ 글벗문학회/시와비평
공저/ 글벗/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rachehyun @sayclub.com
밀어 올린 웃옷에 얼마의 시간 흐르고
단 몇 분의 풍경 속에 정지한 기류.
환하게 파고드는 냉랭한 스테인리스
막대기로 번지는 불빛에
벗어 놓은 인내를 힘껏 움켜쥔다.
여전히 변한 것은 없다.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지 모른다.
두드리는 심장의 박동 느껴지고
씻어 내릴 듯 전율하는 바람의 소리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것이다.
양수막 터진 것처럼.
세상이 밀려들어온다.
막차의 꿈 / 현혜숙
막차는 오지 않았다.
길 떠난 정거장 어디 있는지
긴 세월 패인 등에 기웃대던 발걸음
닳아진 무릎만큼 떠나야 하는 날.
뿌리깊은 나무의자에 기대어
드러난 굴곡마다 묻은 손길
끊임없이 울리는 노래로
보이지 않는 저만치 닿아 있는데.
군데군데 고인 시간
일어난 표피에 묻어 나오면
새벽까지 버티던 바람
사람 오고 가는 길을 부른다.
아주 작은 조각까지 놓아주지 않는
어둠을 털어 내고
길 보다 먼저 떠나는 눈길
가슴 떠나는 아픈 소리를 낸다.
바다빛 무늬 / 현혜숙
지독한 해일 바다는 며칠째
성난 갈기로 폐선을 거머쥔다.
파도 받치던 늑골 간간이
뒤엉킨 하늘과 살점 찢긴 말들
등뼈를 타고 흘러내려도
씻기지 않는 정수리
고이는 바람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일까
헝클어진 뱃머리 기진한 하루의 뼈
삶은 막장처럼 불 커진 눈빛으로
묽은 어둠을 바치고 있다.
두려운 것은 해풍이 아니다.
온몸으로 물결 밀어내는 파장도
바다 밑 드러나지 않는 기다림을
잠재우진 못한다.
육지를 뒤로한 폐선은 안다.
언제나 햇살 풀어놓은 수면 너머
잠들었던 섬들이 깨어나고
아득한 수평선 산란한 공기방울 떠올리며
새파란 해안 뿌리를 내린다.
세상 것들로부터 스스로 투명 하려던
바다 구부러진 파도의 슬픔
계절이 바뀌어도 영원히 얼지 않고
투영하는 달빛 등살에 빛난다.
제 3부
[산문/비평/사이버초대작가 작품]
[산문] 고영예/이정미
[시와비평/대학] 이상태
[사이버 초대작가] 김종제/김영천/정일근
산 문
나 한번 업어 줄래요 / 고영예
“나 한번 업어 줄래요?”
엉뚱한 내 말에 남편은 욕실에서 나오는 나를 업고 침실로 들어간다. 나를 내려놓는 남편에게 웃으면서 한마디 거짓말을 했다.
“당신 아직 옛날처럼 든든하네!”
마음에 없는 말이다. 낑낑거리며 뒤뚱거리며 억지로 옮겨놓는 발자국은 아파트가 아래층으로 내려앉을 거 같은 소리를 낸다.
25살 새신랑과 23살 색시가 결혼을 해서 새살림을 차렸다. 시내 중앙로 외출하던 어느 날 밤 달은 훤칠해서 사랑처럼 생긴 빛이 쏟아져 내리는데 굳이 걸어서 집으로 가자고 신랑이 졸라댄다. 신혼의 외출은 힘들었다. 그래도 내색 못하고 따라오는데 피곤해 보였던지 불쑥 등을 내밀어 업히라 한다. 거절하는 나를 독수리 병아리 취해 가듯이 업고 노래 부르며 한 시간 이나 도심의 밤거리를 행복 자랑 하듯 걸은 적이 있다. 행인들은 내가 걷지 못하는 환자라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남편이었다.
나는 그대로 있는데 몸이 많이 불어난 남편, 자기 몸뚱이 감당 못해 숨이 쌕쌕거린다. 측은 한 마음이 생긴다. 괜히 업어 달라 했나. 그냥 옛날 그때의 모습 기억하며 그 환상 가만히 덮어 둘걸, 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희끗 해지고 세상은 그를 좋은 남편으로만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
살면서 19년 알콩달콩 좋기만 하던 부부에게도 삶의 위기가 생기고 풀어 나가지 못할 거 같은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문제 중에서도, 위기 중에서도 잘 극복하고 더 아름다운 부부 관계를 유지 해 갈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가을이 왔다. 남편 마음도 내 마음도 풍요하다. 뿌려놓은 씨앗이 싹 터 한파와 폭풍 중에서도 꽃을 피웠으니 이제 좋은 열매 거둬들이기 위해 남은 땀방울 아끼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처럼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두 녀석의 웃음소리가 보석처럼 집안에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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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예/프로필]
현재/ 1963/대구
현직/ 부흥파인텍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gyl1760@hanmail.net
산 문
여군이 되려면 / 이정미
유년시절 크게 꿈이 두 가지 있었다. 그 하나가 여군이 되는 것이었다. 1982년도에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여군 모집에 자신 있게 응시 원서를 떠억 하니 냈다. 부산 국군통합병원에서 1차 신체검사 통과, 그런데 검사 결과 서에 빨간 글씨로 미달이 두개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체중 미달, 또 하나는 가슴둘레 미달......,
“아니 이게 머야? 그래 키에 비해서 체중이 덜 나가는 거는 내가 인정한다고 치고, 가슴둘레 미달은 뭐야? 여군 되려면 젖가슴도 빵빵해야 된다는 건가? 젖가슴하고 여군하고 뭔 상관이 있단 말인가? 젖소여군 비디오라도 찍을 일 있나?” 순간 황당했다. 그래도 부산에서는 1차 신검 통과니까 2차는 서울 여군본부에 가서 신체검사하고 필기시험하고 치러야 한단다. 준비해서 정해준 날짜 시간에 부산역으로 와서 군용열차 칸에 타라고 통보가 왔다.
이후로 열흘정도 시험문제집 사서 나는 눈꺼풀이 무거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지. 아마도 4과목이었을 거야. 그리고 정해진 날에 부산 역에 집합, 생전 처음 타보는 군용열차 칸! 지금 기억으로 대략 2칸이었던 거 같다. 와! 이럴 수가, 푸른 제복 입은 장교들, 일반 사병들, 특공대 아저씨들, 헌병들....., 진짜 정신
못 차리겠더구먼. 아찔하대. 몽롱하기도하고. 내 생전 그리 많은 남자들, 것도 잘생기고, 핸섬하고 멋져 보이는 남자들 틈에 껴 보기는 그 때가 첨이면서 마지막 이었지 아마? 뭐 개개인 일일이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닌데, 하여간 전부다 멋져 보이고 잘생겨 보이는 것이었다.
헌대 그 때만 해도 순진이 극에 달해 제대로 말도 못해 보고 기죽어서 한쪽귀퉁이에 같이 가는 일행들하고 끼어서 조신하게 서울까지 갔다. 오후에 출발해서 서울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그 때는 육군본부하고 여군본부하고 같은 건물을 사용하던 때였다. 지금은 따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배치해 주는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필기시험보고, 곧바로 2차 신검, 여기서는 산부인과검사까지 받았다. 그리고 다시 면접 보는데 면접시험관이 전부 여군장교들 열 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는데, 나 살면서 지금껏 내가 이날 면접시험장에서 만났던 여군장교들보다 더 이뿐 여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 푸른 군복을 입었는데 치마였고 모자는 착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보았던 그 장교들만큼 예쁘고 당당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여자는 그날 이후로 난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물론 그런 부분에 반해서 더 여군이 되고 싶었던 것도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에 진짜 미인들은 여군에 다 있다고 지금도 난 믿고 있다.
우선 면접장에 들어서면 열 명의 장교들이 차례대로 질문을 했다. 그리고 위아래 좍 눈으로 훑어 내리는 듯하면서도 손가락 발가락까지 놓치지 않고 다 살펴보
는 예리함이 날카롭기만 했다. 그렇게 열 명을 다 통과하고 나면 일단 시험과정은 끝이 나고 그날 저녁에 바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데 나는 보기 좋게 불합격 판정이 나고 말았다. 우앙! 신검에서 미달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이나 되니 뻔하지 머 아마도 젖가슴이 규격에 미달 된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엉뚱한 추론을 하면서 그래도 뭐 아들 놓고 딸도 놓고 할 짓 다 하고 사는 데야 크게 지장 없음에 감사하다.
한가지 꿈은 이렇게 보기 좋게 무너진 난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 때 합격한 친구들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을이 익어 가는 지금, 푸른 창공 위로 이름 모를 철새들 아낙의 신발을 훔쳐 신고 한 없이 날개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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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프로필]
출생/ 1962/부산가락동/현재 울산
현직/ 제일문구사
시와비평/동인
공저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me8906@hanmail/
시와비평/대학
메타포를 찾기 위한 감상 / 혜관 이상태
여기까지 오게 된 작품들은 우리들의 산고를 공유한 밤을 기억할 것이다. 한글 맞춤법부터 시작하여 문장의 주어 동사가 무엇인지부터 경험한 시차 맞추는 걸음걸이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 호에 언급한 어문학적 퇴고를 두로 하고 작가론도 접어두고, 오직 시의 메타포를 찾기 위한 작품 감상만 순수하게 서술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먼저 염두에 둘 것은 역시 ‘장학’차원의 감상문을 쓴다는 것이 그동안 책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하나의 격려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강동화는 [고스톱]에서 ‘간혹, 치고 빠지는 ’내 손금의‘축소판인지 몰라.’ ‘새는 철없이 날아가서’로 이어지는 시상 접목이 일품이다. [정지선]은 직설법을 사용해서 ‘파란 신호를 기다려 하늘을 본다.’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고운애는 [부조]에서 ‘어머닌 몸으로 때우고/나는 돈으로 때우고.’ [미자 실내포장]에서는 ‘몇 대의 낡은 자전거가/거미줄처럼 진을 치고 있다.’ 사실적 접근을 시도하고, ‘깨알같은 반성문 하나’를 [캘린더]에서 발견한다.
김광련은 [빨간 우체통]만 보고 수취인불명을 연상하여 건져내고 [참 이상한 일이지]에서 바람 부는 날
‘바다는 숲에서 나와/신나는 춤사위’ 벌이는 것을 발견한다. [추어탕 속에는]에서 ‘따스한 김 따라 올라’ 오는 오빠를 건져낸 기지를 보인다.
김민성은 [나이트클럽 백악관]에서 소리가 ‘마술에 걸려 버린다.’ [법당에서] ‘모두가 열쇠라 하더니 무심한 바람만 불고.’ [봄날의 장송곡]에서는 ‘뒷집 할머니 잔디 집 마련하고’ ‘멧새 한 마리/저만치 날아간다.’로 어려운 장송곡을 형상화하기에 성공한다.
김순이는 [멈춰버린 시계]로 ‘나는 어쩌면 내가 잊고 사는/시간인지 모른다./바람인지도’ [목화솜 이불]에서 ‘월경이 채 시작되지 않은/ 딸 아이’ 앞에 ‘어머니의 젖내음에 젖어 보고 싶다.’ [바람벽에 걸린 달력]으로 ‘진정 바람이고 싶다.’ 스스로 바람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김정희는 [가시나무새]에서 ‘어미의 목청에 엉켜 올 모습’을 보고 [별 바라기] 다 주고 없는 껍데기뿐 ‘기다림은 애처로운 나의 허세를’ 인식한다. [장돌뱅이]에서 시집살이에 한 모금 마시던 샘물마저도 하늘이 ‘물길 걷어’가는 한을 노래한다.
김종환은 [등나무 아래서] ‘온 몸 말아 하루를 빙빙 꼬고’ ‘등 이파리 너도 오라 너스레’뜨는 여유를 보인다. [물안개 따라] 시조의 함축미를 한껏 뿜어내고 [비에 젖은 술 한 잔]에서 가득 줄타기하는 비에 젖을 줄 안다.
손갑식은 [고려청자 1]에서 하늘에 노는 학들 ‘항아리 속에 가두었다’ 날갯짓 퍼덕일수록 ‘깃에 묻은 옥색/항아리 가득 가을’ 하늘을 본다. [도시에 사는 개구리]에서 ‘어떻게 중앙분리대 넘었을까.’ ‘개굴개굴 혀가
굳고 있었다.’ 환경시를 보이는가 하면, [정선 아리랑]으로 강원도 한을 장시로 펼쳐 내는 저력을 보인다.
우성식은 [도서관에서] ‘자판기에서 방금 뽑은 커피 향기에 머뭇거리다’ 시대에 끌린 무언의 몸부림을 발견하고, [인천 대공원에서] 가족 나들이에도 철학을 접목하려 한다. [창에 비친 하루]는 ‘창 밖에서 나는 눈감고/ 명월이 몸을 일으킨다.’는 인식을 꺼집어낸다.
유영애는 [동백꽃 떨어지고]에서 ‘푸른 옥양목 이불 속/꼭 쥐어든 옷고름마저 풀고’ 동백을 의인화시켜 시상을 전개해 나가고, [밀서리]로 ‘깜부기 땅바닥에 덧칠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기발한 표현을 보인다. [뻐꾸기 우는 밤] ‘달빛에 몸 숙이고/뻐꾸기’ 우는 소리를 ‘풀 먹인 깃 곧추세우고’ 따라갈 줄 안다.
이명주는 [꽃병의 눈물]에서 ‘살기 위해 술집을’ 해도 ‘꽃은 화를 내지 않는다.’ 다만, 눈물이 절로 흐를 뿐이다. [귤타령]에서는 ‘비행기타고 온 귤 녀석/궁둥이 쓰다듬어/한 입 깨물어 볼까나.’하고 진실한 이야기로 감동을 얻는다.[피멍]은 ‘아기 자라 젖몽오리 앓는다더니’ 옅어진 가슴 피멍 쓰다듬는 자세로 열반한 모성애를 얻고 있다.
이영돌은 [아내의 태양]에서 ‘초승달 잡아다가/가두어 두었더니’로 심상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장미의 전쟁]은 ‘기계가 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기를 쓰고 아내만 꼭 붙잡고’ 사는 모습을 ‘장미꽃이 떼를 지어/그 모습 보기 좋다며 깔깔 웃는다.’ 참 좋은 표현을 발견한다. [천직]에서 ‘중증 천식인 경운기 멱살’ 잡이도 ‘초야를 치렀지만/아내처럼 뽀얗게 담배연기’ 가라앉는 절대절명의 인식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여유가
보인다.
이용일은 [달팽이]에서 ‘그가 꼭, 살다 오라하기에/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다만 느낌만으로’ ‘그래도 살다 왔다/조막손 펴 내밀며/미소짓곤 껍질 벗는다.’ 대유는 범상하지만 표현법이 걸작이다. [발리에서] 돌아갈 길임을 알아내고 ‘만트라 경소리 일렁이고/조각구름 꼬깃꼬깃 깁고 있다.’는 독특한 표현을 선보이며 [흔적]에서 대상과 화자가 관념적이지만 ‘은행잎 하나/빈 거리 바람으로 보챈다.’ 좋은 표현법을 발견한다.
임대성은 [움켜쥐는 것들]에서 ‘수없이 움켜쥐기에 발가락은 그렇게 짧은 법이다.’ 철학을 접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천상타운]에서 ‘궁전 같은 교회’ ‘벌레 떼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고 [통화권 이탈]에서 교통사고로 박살난 휴대폰을 세밀하게 접근하여 미시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차시환은 [검정고무신]에서 네 살배기 아들 손에 빨간 무선자동차로 유년시절 ‘검정고무신 일렁거리며’지나가는 것에 시상을 접목시키는 데 성공한다. [아버지]는 액자 속에서 면도하는 형상까지 발견하고 있으며 [은행털이]에서는 ‘하늘이 쨍그랑 깨지고/우르르 털린 은행이 떨어지는 형상’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현 임은 [마싸이족 사랑]에서 할례를 받은 증거로 까만 옷 입어야만 하는 이국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반딧불]은 시조의 음보를 밟아 단시조로 ‘입장표 사는별들’ 등으로 이미지의 독창적인 형상화에 성공한 수작이다. 고태를 나타내 보이는 ‘일편단심’ 시어가 목에
걸리는 [해바라기] 역시 3수로 어우러진 연시조인데, 현대시조를 접하는 작가라면 음보만 다를 뿐 표현법이나 창작법이 현대시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먼저 앞서야 할 것이다.
현혜숙은 [건강검진]에서 난해한 듯하면서도 진실한 묘사력을 엿볼 수 있고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지 모른다.’는 철학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막차는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꿈 이야기]는 ‘길 보다 먼저 떠나는 눈길’을 인식하고자 한다. [바다빛 무늬]는 폐선에서 ‘바다 구부러진 파도/영원히 얼지 않고/투영하는 달빛 등살에 빛나는’ 표현법을 건져낸 걸작이다.
이렇듯 시의 메타포를 찾기 위한 감상이 있기까지 토론이나 퇴고 도움말이나 꼬리말로 삭이고 엮은 역사를 작품 하나하나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몸으로 부대끼며 직접 노력하여 얻은 결실에 자만하지 말고 더 나은 작품, 아니 한 구절 문장이거나 하나의 시어라도 더욱 정성을 다하고 정선하는 마음의 자세를 바로 세우고 창작에 임한다면, 우리 문단은 물론 세계를 지향하는 건필을 여기 [시와비평문학회]회원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 초대작가
사기리 탱자나무 / 김종제
목울대에 걸린
가시 같은 시절이 한 때 있었다.
아니 오히려 억센 가시가 되어
제 몸을 제가 스스로 찌르며
서슬 퍼렇게 밀려오는 저 폭풍 같은 세월을
눈 부릅뜨고 막아 보려고 했던
시절이 가까이 있었다.
아, 강화도 함허동천 가는
화도면 한적한 사기리 길목
수백년 지키고 선 탱자나무 한 그루
때때로 새들과 나비 날아와
제 몸 지키기 가장 좋아서
야단스럽게 나무 속으로 모여들면
외적에 맞서 성벽 아래 울타리 되어
죽음에 맞서 안간힘을 쓰는 듯한 표정으로
길고 험상궂게 생긴 손가락 내밀고
피 흘리며 소리치다 쓰러지던
슬픈 역할을 맡은
그런 가시 많은 나무가 있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게
목숨의 끝까지 깊숙하게 박혀 있어
숨쉴 때마다 아프게 하늘을 찔러대는
사기리 탱자나무가 운다.
섬의 혼백이 운다.
세상에 얼마나 속이 탔으면
먹을 수 없이 시디신 열매를 매달았을까.
제 몸이 스스로 가시가 되어
고운 향기 다 드러냈으니
겨드랑이 돋아나는
여린 꽃잎마저 이제 울음이 되는구나.
흰눈을 뒤집어 쓴 탱자나무가
백의(白衣)처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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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제/프로필]
등단/ 자유문학
현직/ 1958/서울 신진과기고등학교
시집/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내안에 피는 아름다운 꽃>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메일/ gusukgy@hanmail.net
서재/ http://gusukgy.kll.co.kr
사이버 초대작가
바다 일기 / 김영천
모두 다
그 머언 수평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근원을 모르는 곳으로부터 줄기차게 밀려오면서도
한 번도 뭍에 오르기를 성공하지 못하고
번번이 부서지고 마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며,
까마득한 단애 위에서 단숨에 내려와
물 밑 깊숙이 머리를 처박고 물고기를 잡거나
꾸룩꾸룩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물새를
바라보는 것이며,
모래톱까지 밀려온 바닷물에 두 발을 담그고
그 안의 모래가,
바닷물이,
그처럼의 세월이
꼼지락거리는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쓸쓸히 바라보는 것이며,
마지막 몇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물결 위에서
수 없이 흔들리는 제 모습을,
제 목숨을,
드러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떨림으로 지켜보는 것이며,
아아,
더러는 일몰처럼 처진 어깨로
쓸쓸하게 돌아서는 당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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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천/프로필]
현직/ 목포 한일약국 경영
회원/ 한국문인협회/전남/목포문인협회
수상/ 제4회 창조문학가상/제4회 전남시문학상
2004년 목포시예술문화상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동백문화/2004
서재/ http://poet48.kll.co.kr/
사이버 초대작가
울란바토르행 버스를 기다리며 / 정일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
울란바토르 행 버스를 기다린다.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면
나는 혁명할 것이다, 조국에서
내 사랑의 시작은 신기루였고
내 사랑의 끝은 폐허였다.
세계는 오래 전부터 하나인데
사랑하는 조국은 여전히 나눠져 있다.
21세기의 하나 뿐인 분단민족이여
나는 이 이분법이 이제는 지겹다.
초원으로 가서 사랑을 하고 싶으니
쇠를 녹이는 끓는 사랑을 하고
칸*이 될 수 있는 사내를 낳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 내 성씨를 물려주고
네 제국을 만들라 유언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반도는 사랑하기에 너무 좁다.
북쪽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남쪽에서의 꿈은 꿈마다 숨이 막힌다.
칸이 아니면 또 어떠랴, 딸이 태어난다면
바람이라는 뜨거운 이름을 주고
초원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아시아의 처음에서 유럽의 끝까지
그녀의 시가 하나의 언어가 되는
유라시아의 시인으로 살게 할 것이다.
나는 울란바토르 행 버스를 기다린다.
나는 몸에 꿈 하나 숨기고
남쪽과 북쪽의 국경을 넘을 것이다.
국경을 넘는 것이 죄가 된다면
나를 구금하라, 대륙의 피에
반도의 피를 섞으려는 것이 유죄라면
나도 혁명가처럼 서서 죽을 것이다.
*칸Khan:중세기 몽고 원수의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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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약력]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1984년 실천문학(5권) 신인 작품 발표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0년 한국시조 작품상 수상/2001년 시와 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2001년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수록
2003년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창작과 비평사)외 7권
시선집/ 첫사랑을 덮다(1998, 좋은날)
산문집/ 시인의 편지 유혹(2002, 새로운 눈)
제 4부
[특 집]
[전국충의백일장] 장원작품
일반부 장원/이정화
고등부 장원/정왕교
중등부 장원/김성심
초등부 장원/송해욱
[사이버백일장] 추천작품
문예교실/강둘이
고등부 작품/문승업
중등부 작품/한아름
[전국충의백일장]-일반부 장원
갈꽃 피는 반구대 / 이정화(울산 동구)
바람도 멈칫대는 초록 떠난 빈 둥지엔
이름 얻지 못한 갈꽃 흐느낌만 넘실댄다
저 혼자 섬이 되어서 세월 속에 누워 있다
침묵의 이불 덮은 태고의 그리움들
수천 년 거슬러서 세월강 건너서면
꿈꾸는 고래 한 마리 무얼 찾아 헤매나
빈 그늘 밝히면서 길어지는 갈바람
하늘길 걸러 가며 손끝 붉은 물이 들면
슬며시 손 내밀고서 새벽별빛 붙잡는다
[전국충의백일장]-고등부 장원
태화강 바람 아래 / 정왕교(현대청운고등학교)
‘반동필절’, 모든 것은 흘러 동쪽으로 통한다.
아집일까? 이러한 철학을 고수하고 대한민국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두 개의 특별한 강 중 하나인 태화강은 오늘도 서두르지 않고 유유히 동해로 흘러들고 있다. 흔히 강물은 역사의 흐름에 비유되곤 한다. 태화강도 이 고장 사람들의 삶을 머금고 불어 드는 태화강 바람에 스치며 물결이 되어서 출렁이고 있다.
태화강은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의 여느 강처럼 크거나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것도, 셰느강이나 도나우강처럼 그림 같은 낭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듯하다.
그저 울산이 자라면서 함께 이곳저곳이 개조되고 꾸며져서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숨결 아래, 태화강의 청량한 바람아래 우리는 우리들만의 소중한 추억과 행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의 손길은 태화강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연인과 함께 거니는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사람들 모두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마치 이 고장의 어머니 같은 손길로, 나는 태화강의 바람을 맞으며 매일 스쿨버스를 타고 태화강을 건넌다. 햇살이 물결에 비치는 것을 반쯤 감긴 눈으로 보면서 아직 꿈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나의 얼굴을 시원하게 쓰다듬어 준다. 태화강의 바람을 학교까
지 가지고 가는 것이다.
공업 도시 울산이라 바람도 많이 탁해졌을까?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태화강 바람은 상쾌한 기지개와도 같다.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또다시 태화강 바람을 맞이하게 된다.
저 멀리 아름다운 울산의 공단 야경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공단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다니, 바람은 그런 공단 야경을 보지 못하게 세차게 불어대서 눈을 뜰 수 없게 하기도 한다. 공단이 태화강을 괴롭히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태화강 바람을 만나고, 같이 집으로 향하게 된다. 직접적으로 만날 수 없더라도 태화강 바람은 항상 우리와 만날 수 있다.
바람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부는 거야’ 라고 말한다면 너무 삭막할 것이다. 우리는 태화강 바람아래서 모든 일을 한다. 울산은 멋진 곳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울산의 환경오염도가 전국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울산의 운전자들이 난폭하다고 해도 울산은 무척 정겨운 곳이다.
생활하는 데 특별히 불편한 점이 없고, 가끔 유명한 외국 그룹이 와서 공연도 하고, 나름의 전통과 문화가 있으며,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각자의 패션과 욕망을 고집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도시의 활력을 느낀다.
울산과 함께 자라오면서, 곳곳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추억이 어린 장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이 특별한 곳이 나에게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나의 도시의 한가운데는 태화강이 있다.
[전국충의백일장]-중학부 장원
문수산 흰구름 / 김성심(옥동중학교)
지금 현재 가장 친한 친구 예솔이는 백혈병에 걸려서 열심히 치료 중이다.
항상 예솔이는 너무 바깥공기를 쐬고 싶다고.
어차피 죽을 텐데 왜 바람도 못 쐬게 하냐고.
맨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린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찢어져서 멍든 것만 같아 눈물이 나온다. 밖에 나가면 병이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솔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솔이 부모님께서는 엄청난 치료비 때문에 제대로 예솔이 병실에 들어올 기력조차 없어 보이시고, 굉장히 이성적이신 분이다. 나는 예솔이가 백혈병에 걸리기 전에도 말랐는데 지금은 너무 말랐고, 심한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까지 빠진 예솔이를 보면 먹을 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공부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예솔이가 오늘은 항암치료를 잘 받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항상 걱정이 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예솔이의 몸과 나의 몸을 바꾸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의사선생님께,
“선생님, 오늘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네? 제가 꼭예솔이 안전하게 데리고 갔다가 올게요. 네?
제발요......”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의사선생님은 나가셨다, 한참을 있다가 다시 들어오셨는데,
“휴! 그래, 알았다. 오늘 하루 만이다!! 꼭 오늘 하루만!! 그리고 오늘저녁에는 예솔이 부모님 오신다고 하셨으니깐 그때까지는 꼭 오너라!! 알겠지?”
“네!! 의사선생님!! 너무 고맙습니다!”
예솔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럴만했다. 너무나 오랜만의 외출이니까......
예솔이는 엄청 빨리 외출준비를 하였다.
“예솔아!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은 있니?”
“응!! 나 예전부터 문수산에 꼭 가보고 싶었어. 헤헤!”
“그래! 가자 기분이다!! 근데 너~~ 산을 만만하게 보면 안돼!”
“그럼~ 걱정 마셔!”
버스를 타고 무거동에서 내렸다.
먼저 문수산 삼림욕장에 갔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굉장히 아담하고 느낌도 좋았다.
“성심아~ 우리 민속놀이 코스 한번 가보자~~”
“근데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이 더운 날..” 땀은 뻘뻘 흘리면서 예솔이가 말했다,
“괜찮아! 얼른 가보자!”
민속놀이 코스에서 나는 항상 조바심이었다. 예솔이가 쓰러지기나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에솔이만 보고 있노라고 정신이 없었다. 민속놀이코스에서 여러 가지를 하고 중봉쉼터까지 올라갔다.
솔직히 예솔이 부축해 준다고 힘 다 뺏지만 예솔이가 너무 가고 싶다고 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건
데, 힘들어도 꾹 참았다. 중봉쉼터에서 먹기도 하고 휴식을 취했다.
“성심아! 저기 하늘 좀 봐~~ 진짜 예쁘지?”
“응 그러네...... 엇! 저기 너랑 닮은 못생긴 버섯모양 구름 있다!”
“치잇! 뭐라고?? 어라?? 저기 너랑 닮은 못생긴 곰 모양 구름도 잇네??”
“히히~ 너무 재미있다, 그렇지? 예솔아 너 병 열심히 치료해서 여기 다시 오기 하자!! 저기 버섯모양 구름이랑 곰 구름도 다시보고. 알았지? 약속!”
“응! 약속......”
“야~ 여기까지 와서 울기니? 너무한다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같이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는 저 버섯모양 구름. 너랑 같이 다음에 또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예솔이 네가 백혈병 걸린 것도 꿈이라면......’
“자~ 이제 내려가자!”
“성심아! 그래두 정상까진 올라가지”
“너 그 몸으로 정상은 무슨~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야~ 기적~”
“그래도......”
“됐어. 많이 늦었어. 빨리 가서 쉬지 않으면 내가 혼난다구! 다음에 또 오기로 약속했잖어! 응?”
“응!! 그래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깐!!”
예솔이의 환한 웃음이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우리의 문수산 여행이 끝이 났다.
예솔아, 정말 사랑해. 우리 다음에 꼭 다시 오는 거야!! 약속!
[전국충의백일장]-초등부 장원
아버지와 연필 / 송해욱(상진초등학교)
우리집안 살림은
세 식구가 겨우 먹고 살 정도입니다.
올해 생일도 나는
선물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습니다.
생일날도 다름없이 나는
차갑고도 차가운 밤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잤습니다.
부스럭부스럭 아침에 깨보니
머리맡에 놓여진 기다란 물체 하나.
그 옆에 놓여진 카드 하나.
카드에 서투른 글씨로 적혀있는 말.
‘미안하다, 딸아.
이것밖에 해주지 못해서......’
“아버지......”
울컥 쏟아져 나오려던 울음을
간신히 참고 또 참았습니다.
선물은 유행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연필 한 자루.
난 아버지가 주신 연필로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시다
퉁퉁 부르튼 아버지의 손을 정성스레 그렸습니다.
그 선물을 받고 찔끔
눈물을 보이시는 아버지.
그러곤 나를
꼬옥 안아주십니다.
내가 안기엔 너무 큰 아버지.
이 작은 팔로나마 꼭 껴안고 싶습니다.
[사이버백일장] 추천작품
장미 가시 / 강둘이(문예교실운영)
나를 향하여 감각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시위를 겨냥한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장미의 눈.
내가 원하는 것을 거부할 때
서릿발처럼 새워진 배반의 흔적들을
잊어보려 책을 펼쳤으나.
내가 가졌던 기억들이 일어서서
일제히 삽을 쳐들고 장미의 흙을 떠
살 속에 살을
피 속에 피를
흔적 없이 지우려 한다.
살아 꿈틀거리는 감정
날이 선 육신의 감각은
피를 맛본 거머리처럼 내 안에 들러 붙어있다.
장미여 아침에 일어나 아부하며 아무 걱정 말라더니
저녁에 베개 맡에서 배반의 죄를 고발한다.
너는 내게 향기도 주었지만
너는 내게 가시를 깊숙이 박았다.
[사이버백일장] 추천작품
등교 길 / 문승업(효정고)
‘승업아!’ 달콤하게 더듬는 꿈길을 깨우는 아침입니다.
일요일엔 잘 떠지더니 등교하는 날 눈꺼풀은
왜 그리도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한 걸까요.
부시시한 두 눈 이끌고 대문을 나옵니다.
오늘따라 날씨가 한결 더 독기를 품었네요.
이곳저곳 짓궂게 몸을 찔러대는 바람
마치 저 프로메테우스의 독수리를 보는 듯합니다.
무심결로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집나간 자식 기다리는 부모님 마음처럼
버스를 기다리는 맘도 다급해집니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버스를 휙 둘러보지만
오늘도 앉아 가기는 틀렸나 봅니다.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에 보조 맞추기라도 하듯
전깃줄에 앉아있는 참새처럼 창문을 내다봅니다.
하나 둘 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무리
크고 듬직해 보이던 버스도 왜 이리 작아 보일까요.
이리 저리 부대껴 양팔로 지탱하기조차 힘듭니다.
마치 사하라 사막에 서 있는 듯 어지럽기도 합니다.
겨우 버스에서 내려 교문을 향해 들어갈 때도
도로를 점거하고 있거나 때때로 위협하고 스쳐가며
차 매연까지도 우리들을 반겨줍니다.
전쟁 나선 병사처럼 긴장을 무기 삼아 진격합니다.
추운 날씨에도 땀이 찌꺽찌꺽 배어 나옵니다.
[사이버백일장] 추천작품
바람이 되고 싶다 / 한아름(화진중)
바람이 되고 싶다
물결 같은 바람이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지만
절대로 꺼지지 않는
횃불 같은 바람이
산에도, 바다에도
이 세상 어디라도
하얀색 커튼 사이로
살며시 불어오는
포근한 한줄기 바람
그것이 되고 싶다
시와비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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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일/2004. 11. 01.
발행일/200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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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이상태(공저)
엮은이/성기화?이민화?임정택
펴낸이/최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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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민곳/시와비평문학회
펴낸곳/도서출판 [시와비평] http://cmunhak.com
서울사무소/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1동 37-호
전화/02-325-8988 팩스/02-312-3045
부산사무소/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224-5 동백문화재단
전화/051-582-1900 팩스/051-516-0532
메일/db190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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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7,000원
*저자와 협의에 의하여 인지를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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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2004년 문예진흥기금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합니다]
*잘못된 책은 구매처에서 교환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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