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8일(주)
* 시작 기도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
주께서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섬김은 단순히 무엇을 도우는 정도가 아니라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것까지 섬김입니다.
목숨을 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주는 것이지요.
저 역시도 무엇을 주기를 좋아하지만 목숨까지는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을 주고 나면 그것을 주었다는 자부심으로 나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섬김이 아님을 압니다.
그것은 섬김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나의 의요 자기주장 의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 종은 오늘도 그 자기 의로 인하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나는 죄인이요 죽은 흙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은혜로 나를 내려놓게 하소서.
하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주를 예배하는 귀한 시간 되게 하소서.
우리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복이며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 하루도 진리 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 오후에 우리 새가족인 황성준성도가 이사를 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사 잘 마무리 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7:1-12
제목 : 호세아 제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1 유다의 왕 아하스 제12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9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3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9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7 이 일은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의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9 이스라엘의 자손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 이르도록 산당을 세우고
10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우고
11 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 같이 그 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며
12 또 우상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BC 1050년경 초대 왕 사울로부터 시작된다.
그 이후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가 끝나는 BC 930년까지 통일 왕국 시대에 해당한다.
그리고 BC 930년경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리된 후부터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는 BC 722년까지 분열 왕국 시대가 이어진다.
그리고 BC 722년부터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BC 586년까지는 남 유다의 시대가 지속된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관련하여 기록하고 있다.
북 이스라엘의 19대 왕인 호세아는 북왕국의 마지막 왕으로써 친 애굽 정책과 함께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치면서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에 대해 기록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는 북이스라엘의 호세아가 친 애굽,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침으로써 앗수르 왕의 분노를 사서 정복당한다.
그러나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했던 것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은 앗수르를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삼아 북 이스라엘을 벌하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계획하고 결정하여 일을 진행시켜 나간다.
호세아가 애굽을 가까이 하고, 앗수르를 멀리한 것 역시 당시의 국제 정세 등 여러 가지 상황을 파악하여 왕으로서 나라를 위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앗수르의 손아귀에 있던 이스라엘이 조공도 바치지 않는 등 반역을 꾀하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에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왕 호세아를 옥에 가두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멸망시킨다.
그러나 이는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그에 대한 이유가 ‘이 일은...’으로 시작되는 7절 이후에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종살이 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디.
다른 신들을 섬기는 등 우상을 숭배하고, 가나안 사람들의 규례를 지키며, 산당을 짓고 아세라 상을 세워 온갖 불의를 저질렀다.
이처럼 북 이스라엘은 여러 왕들이 지은 죄를 여전히 행하는 등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12b)...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일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셨다.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도 본인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보내신 이, 즉 아버지의 명령대로 행하셨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지상 사역에서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고 그 명령에 복종하셨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셨으며 이를 전하기 위하여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가난한 자들을 먹이기도 하셨다.
그런 주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지상 사역에서만 복종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에 계시던 창세전, 만물 위의 세계에서조차 복종하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 양식은 철저하게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으로 관계하신다.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시고 아버지는 그 복종을 받으시므로 당신의 사랑을 내어주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어주시는 사랑은 본질의 계시로써 바로 영광이다.
따라서 아들되신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라는 말은 주님이 창세전부터 아버지께 복종하심으로 아버지의 사랑 그 자체인 영광을 받으셨다는 말이다.
그 주님은 이 땅에서 어디까지 복종하셨는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본체이신 주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과 같이 되신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는데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처럼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난다.
영광을 계시하시는 것은 아버지께서 어떠한 유익도 취하지 않으시고 자신을 다 내어주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들의 복종하심으로 죄에서 구원받은 자이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지만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는 이런 엄청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았으며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죄를 먹고 마셨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스라엘 왕과 백성들이 지었던 그 불순종과 우상 숭배의 죄가 내 안에 그대로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였다.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그 결과 나에게 폐암이 온 것이다.
그 때는 이 복음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런 고난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고, 이 복음을 통하여 이 심판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나는 심판 받아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그렇다.
나는 정말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심판은 인정하였으나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여전히 그 이후에도 자주 넘어지곤 하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앞으로 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말씀 앞에 나아가 나의 비참한 실존(죽은 흙)을 발견하고 오직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기에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는 말씀 앞에 나아가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주님이 그토록 우리가 보기 원하셨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았던 그 영광을 말이다.
나는 이제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는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아들이 보았던 그 영광을 본다.
그 영광은 창세전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심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셨던 영광으로 오늘 이 시간 영원에 잇대어 사는 나에게도 주시는 영광이다.
나의 영은 새롭게 회복되어 주님과 함께 기쁨을 누린다.
오늘도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주님은 나의 전부이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은 나의 전부이십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이처럼 값진 생명의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죄 가운데 죽어가는 불쌍한 자였나이다.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종교성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고 보니 더 이상 땅의 것, 육신의 것, 옛 사람은 별 가치가 없어 보였나이다.
이제는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내 것이 내 것이 아니요 주의 것이오니 주의 것으로 주께 드리나이다.
나눔의 기쁨이 내 안에 배가 되게 하시고 날마다 선을 행함으로 그 안에 주님만 나타나게 하소서.
나의 이름은 감추어 주시고 오직 예수의 이름만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기도가 오늘 내게 임하여 성취되게 하소서.
그 은혜를 다시 주께 돌려 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