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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발행. 2002.10.10. 문화 제133호 등록
[여는시]이자영.[탐방]조돈만.[초대석]신진.문무학.[두레문학상]박봉
준.시평/김영승.[문학산책]김현철.[특집]시/권정욱.박동덕.엄태우.시
조/김민성.아동/이승민.수필/김금희.
[시단]강현옥.김영천.박세영.이병훈.이용일.임정택.허용.허양희.황말
남.[신인상]김대근.김현태.[추천시]권기만.김정숙.김현철.성자현.이민
화.이상태.[초대시조]이택제.[시조읽기]추창호. [시조]박희곤.한분옥.
현임. 수필/고영예.김숙이.
[초대시]권정일.고경숙.김연성.김혜영.마경덕.문정영.박윤배.안효희.
이동호.이인주.이효녕.최동문.추종욱.하재청.
[시세계]김광련.김삼주.김은수.김종제.박가월.서순옥.성은경.엄덕이.
이경숙.이경례.이미자.이은심.조성범.지석동.한영채.현혜숙.[특집/문
예대학].[산행기].[여행기].[전국충의백일장]작품&심사평.
[천우로고]
[뒷표지/편집자 주]
[세로글자]
2007
상반
제6호
두감
레성
문과
학
상지
성
발을
표
통
한
감
동
찾
기
[천우]
[2007 두레문학 임원]
[두레문학 안내]
문화 제133호 비영리민간단체(NGO)등록 『시와비평문학회』 공인
단체가 http://cafe.daum.net/emunhak 시와비평『두레문학』, 계간
문예지『시와비평&시조와비평』http://cmunhak.com 웹사이트를
운영합니다. 매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수혜사업으로 [전국충의백
일장], [문학 강좌&세미나], 종합문학지『두레문학』을 발간합니다.
[앞표지 이면]
[목련]표지그림 원숙이 화백
* 대한민국여성미술대전특선 *대한민국수채화전람회특선
* 대한민국승산미술대전특선 *경남여성미술대전특선
* 전국바다사생대회특선 *중국국제아트페스티발 초대전
* 현재:대구 달서 아르미 미술학원장
* http://blog.daum.net/armiblog/8749696
[뒷표지 이면/도서출판 천우(신인상/구독 안내 등)]
도서출판 [천우]
[초대시&초대석]
권정일
고경숙
김연성
김혜영
마경덕
문정영
박용신
박윤배
안효희
이동호
이인주
이택재
이효녕
최동문
최종욱
하재청
문무학
신 진
[신인상&자문위원]
김대근
김현태
자문 김성춘
자문 박구하
자문 한분옥
두레문학
http://cmunhak.com/ 『시와비평』
http://cafe.daum.net/emunhak/ 『두레문학』
----------------------------------------------------
여는 글
초대하는 시/이충호
[탐방]맥문재/김금희 수필가
[초대석]강은교/
최재선/
[논단]임정택/
[2007년 두레문학상]
000/외 9편
신 진/시평
[문학산책]000/
[신작특집]
[시]김현태/~외2편
김혜영/~외 2편
고경숙/~외 2편.
[시조]추창호/
[아동문학]이승민/
[수필]김대근/
[시단]강현옥/
권오정/
권정욱/
김영천/동백 숲. 북극성
김현철/
박동덕/
박봉준/
박세영/어둠은 새가 되어. 종이배
성은경/빈방Ⅱ. 말 태우기
성자현/
송문희/
엄태우/
이병훈/숨은 벽. 고령의 달
이상식/
이용일/
허 용/
허양희/
황말남/?
[2007년 신인상]
서순옥/아동문학
박순숙/수필
[초대시]
권정일/다큐멘터리
고경숙/불온한 풍경
김연성/공개미의 하루
김혜영/양송이 수프
마경덕/폐가
문정영/시 읽는 남자
박윤배/우연법
안효희/장수 구간
이동호/그늘
이인주/한통속
이효녕/가을편지
최동문/시인과 숲
추종욱/밤의 여행자
하재청/푸른 독
[추천시]
권기만/
김명숙/
김정숙/
이경례/
이민화/
두레문학
기획위원/도희종.엄태우.조경근.황말남.
자문위원/김성춘.박구하.한분옥
----------------------------------------------------
[초대시조]임종찬/
[시조]김민성/
[시조]박희곤/
[시조]한분옥/
[시조]현 임/
[아동문학]홍미영/
[편지]000/
[수필]
고영예/
김금희/
김숙이/
000/
[시세계]
김광련/
김명숙/
김명희/
김삼주/
김은수/
김종제/
박가월/
서순옥/
성기화/
안재동/
엄덕이/
이경숙/
이경례/
이미자/
이은심/
조성범/
지석동/
최순자/
한영채/
현혜숙/??
[시평]권기만/
[시평]심정란/
[문예대학]
강동화/
김종환/
도희종/
박명남/
박향자/
손갑식/
이소현/
이영돌/
이희규/
장득규/
조경근/
이상태/ 감성과 지성을 통한 감동
찾기
[수필]이양섭/
[여행기]노강웅/터키여행기
[계간시평]박봉준
[계간시조평]추창호
[전국충의백일장]
장원작품
심사평
『두레문학』문예대학 안내
2007 두레문학 화보
[작가창]
고영예
고은희
권정욱
김광련
김순선
김민성
김삼주
김영천
김은수
김종제
김현철
박동덕
박세영
박가월
서순옥
성은경
엄덕이
엄태우
이경례
이경숙
이미자
이병훈
이은심
조성범
지석동
최순자
한영채
허양희
허 용
현혜숙
2007년06월 발행. 2002년10월10일 문화제133호 등록
[천우로고]
[두레문학] 여는 글
[두레문학]
문화예술과 제133호 비영리민간단체(NGO)등록 [시와비평문학회] 공
인단체가 http://cafe.daum.net/emunhak 시와비평[두레문학], 계간
문예지『시와비평&시조와비평』웹사이트 http://cmunhak.com 운영
합니다. 매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사업으로 [전국충의백일장],
[문학강좌], 문학지 [두레문학]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비워둔 산정을 먼저 가꾸는 진달래꽃을 봅니다. 모진 눈보라
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기다리고 산고(産苦)를 인내하여 잎사귀보
다 먼저 탐스러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급변하는 현대정보사회의 도심 속에서 ‘나만의 섬’을 가꾸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들지만 한 편의 문학 작품을 피워내는 시심
(詩心)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문학지『두레문학』 발간이 벌써 여섯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수없이
하얀 밤을 태우며 한편의 옥고를 출산하기 위해 몸부림치신 작가님들과
회원님들께 감사와 더불어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생업에도 바
쁜 세상인데 『두레문학』발간을 위해 애써주신 임원진들께 심심한 감
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두레문학』이 해를 거듭할수록 알차고 수준 높은 문학지로 거듭나
는 것은 님들의 고귀한 손길 때문입니다. [전국충위백일장]을 비롯하여
[문학 강좌]를 통해 신인들을 발굴하고 회원 상호간의 창작능력을 북돋
아 주는 것을 『두레문학』이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각
박한 세상을 아름답고 인정 넘치는 사회로 가꾸어 가는 것은 우리 문인
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두레문학』발간을 회원님들과 함께 자축하며 문운을 기원합니다.
『두레문학』은 문학지 출판을 도와주신 도서출판『천우』와 두레문학
회 회원, 그리고 옥고를 주신 문단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두레문학회장 이용일
[본 도서는 2007년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 일부를 지원받아 발간합니다]
[초대하는 시]
꽃
이 자 영
그녀의 입
안에는 지칠 줄 모르는 혀
가 바람을 길어 나르고 있다
?
그녀가 은밀히 피
우는 것도 지
우는 것도 바람이었다
?
행복의 절정에는
왜 비극이
스며 있어야 하는지
?
바람을 당쳐 안은 꽃술만이
슬퍼야 아름다운 까닭을
알고 있었다
?
?
이자영 ?blazingsea@hanafos.com -------------------------
*개천예술제(1984) 문학대상, 문예사조 등단.
*녹색 신인상, 한국 글사랑 문학상. 박재삼 문학상, 울산문협
올해의 작품상 수상
*성신여대 영어교육과.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울산대 국
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시집<하늘을 적시고 가는 노을같은 너는>, <밤새 빚은 그리움
으로>, <單文이 그리운 날> 외. 공저시집 <시와 숲> 다수
현) 울산대 국문학과 외래교수, 울산대 평생교육원 독서지도사
과정 주임교수, 영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 주임교수.
?[탐방]
젊은 열정의 논픽션 소설가
- 울산문인협회 조돈만 회장???????????
? 인터뷰 : 고은희 수필가
‘아픔ㆍ한’의 작가 조돈만 울산문인협회 회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햇
살이 좋았다. 울산문화예술회관 쉼터 레스토랑 앞에 다다르자, 성숙한
여인네 같은 영산홍이 햇살을 받아 붉은 유혹을 한다. 붉디붉은 꽃을
보며 조돈만 회장의 문학 열정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만남과 각종 행사, 그리고 생활의 쉼표가 되고 있는 ‘쉼터’다. 문예회
관 앞마당이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조 회장은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의 문학적 열기가 영산홍 보다 더 붉게 타올랐다.
논픽션적 성격의 작품 많아
조 회장의 소설이 갖는 문체적 특징은 기사체의 짧고 명료한 문장으
로 표현하는 사실적인 묘사와 서술이다. 무엇보다 내용에 있어서 논픽
션적 성격이 강하며, 개인적인 아픔과 한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젊은 시절 부산 국제신문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울산에서도 경상
일보, 울산매일에서 편집국장을 지냈다. 그랬기에 평소 언론인 출신 소
설가라는 말을 곧잘 한다.
아픔ㆍ한을 담은 작가
조 회장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군대
영장을 받고 입대, 군 생활 후 제대하면서 교사 대신 언론직을 선택했
다. 국제신문 수습13기로 언론계에 뛰어 들어 왕성한 활동을 통해 기자
를 천직처럼 여겨왔다. 그러던 중 80년 군부에 의해 해직을 당해야만
하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당시 해직 기자들은 재취직하기
가 너무 힘들었기에 고난과 역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들이닥쳤
다. 그래서 그의 아픔과 한은 점점 쌓이고 작품을 통해 사회 부조리 현
상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MBC신인문학상 ‘안면도’ 당선
조 회장은 기자였기에 논픽션 소설을 주로 많이 썼다. 1986년 <신동
아>에 ‘C 반점의 데카메론’이 논픽션으로 당선됐다. 이를 두고 조 회장
은 글재주가 좀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부산 MBC신인문
학상에 ‘안면도’가 당선, 등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웃사이더로서 외침
조 회장의 소설은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아웃사이더로
서의 외침이며 인사이드에 대한 반항의식이 담겨 있다. 그는 자신의 대
표작으로 ‘하늘아, 하늘아’를 들었다. 위선으로 가득 찬 기존의 벽에 대
한 갈등문제를 다룬 역사 소설로써, 천주교인들이 유교에 대한 반항의
식이이 녹아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시대별로 분류하면, 80년 해직기자의 아픔을 담았
던 시기로 반항적인 시대가 그 첫 번째가 된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한
의 시대라는 점이며, 세 번째는 종교적인 시대이다.
종교적인 작품인 중편 ‘하늘아, 하늘아’는 창작하기까지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다. 이 작품은 울산의 동천강변에서 순교한, 1800년대 실존
했던 세 남자의 이야기이자 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 하면서 조선왕
조의 관헌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천주교 신자들의 이야기다.
유창한 말솜씨 일품
작품에는 역사의식, 아픔ㆍ한ㆍ종교를 담고 있을 정도로 무겁게 쏠리
고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특유의 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말솜씨로 유
명하다. 현재 남부도서관에서 문예대학을 개설하고 주부 및 일반 성인
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조 회장은 “‘문학인구가 저변 확대’돼야 하며, 사회가 밝아지고 살벌
해지지 않으려면 종교도 전파해야지만, 문학의 확대가 무엇보다 절실하
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어렵게
만 생각해도 안 된다고 말했다. “가령 심사하는 사람도 작품을 다 이해
하지 못하고 당선시키는 경우가 있는데요, 무조건 비틀기와 낯설기를
시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누구나 쉽게, 한글해독이 가능하다면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재미있고 대중교화적인 작품이 돼야
특히 조 회장은 문학작품을 천박하게 대중화시키라는 뜻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재미있게 쓰되 비록 허구적인 내용이지만 대중교화적인 작품
이 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실제 그의 작품은 읽는 재미에 푹 빠져 들게 한다. 가짜가 진짜처럼
날뛰는 사회 현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작품 〈바이러스〉 등이 소
설 읽는 재미를 부추긴다. 작품은 울산에서 발간되는 「소설 21세기」
와 「울산문학」을 통해 주로 발표하고 있다.
해외문학교류 등 현안 해결해 가기
울산문인협회의 현안 중 일환으로 해외문학교류 첫 번 째 행사를 무
사히 치렀다. 45명의 울산문인협회 회원이 부산에서 49km 떨어져 있
는, 일본 본토보다 더 가까운 대마도를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울산문인협회원들은 만고충신 박제상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박제상 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장승재 시인의 헌시 낭독을 지켜보았고, 면암 최익
현 선생의 순국비가 안치돼 있는 수선사를 찾아 묵념을 올렸다.
대마도는 한국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으로 울산문인들은 역사의식을
갖고 저마다 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울산문인협회
40년 만에 처음으로 이룬 해외문학교류라는 점에서 조 회장은 교두보
적인 역할을 담당, 울산문인협회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됐다.
또한 조 회장은 부산 경주와의 교류의 장을 마련할 것과, 울산대공원
내 시비 건립과 문인회관이 설립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지겠다는 포부
를 갖고 있다. 지금껏 나타내고 있는 강한 추진력을 보며 희망을 갖게
된다.
한편 조 회장은 1941년 부산 출신으로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했다. 작품집으로「그물 빠져나가기」, 「멈추지 않는 세상」, 「원줄과
목줄」 등이 있다.
- 고은희 기자
<사진 2매 나란히 편집>
고은희 약력 go5752@hanmail.net
부산 출신. 월간 문학공간 수필부문 당선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수필가협회 회원
울산공단문학회 사무국장. 울산여성신문 취재부 차장
[초대석]
은 자 (隱者)
신 진
까치산 동쪽 기슭 베고 산 지 삼 년여
나만의 산책길 정해 두었네.
당두충 나무 사잇길, 조릿대 밭 사이 오솔길,
돌중 안씨가 진돗개 매어 점령한 소나무 숲 에돌아
밀양박씨 가족묘지 올라서면
닫히는 듯 열리는 나만의 산길.
참나무 잎에 부끄럼 떨고,
솔가지에 어깨동무 걸었다 폈다 하면서
장끼에 놀라고, 까투리마저 날리고,
토끼 똥 밟고, 노루 똥 헤아리며,
재를 오르다 능선 길 갈아타고, 다시 내리면
멧돼지가 매일 헤집어놓는 묵은 논뙈기.
사계절 허리 넘는 잡풀더미 밟고 내려서면
언제나 배가 고픈 개 사육장 식구들.
그런데 누구일까?
언제부터인가 내 산책길을
나보다 먼저 밟은 자취 남기네.
아침 일찍 나서면 미리 이슬 떨고 간 자취.
저녁나절에도 풀더미 밑동 지례 밟고 간 자취.
검은 흙에 미끄러지고 간 자국.
누구일까,
이른 시간에도 나 먼저 다녀가신 이
이슬일까? 달빛일까? 바람일까?
몰래 사는 산사람일까?
장끼 먼저 날면 까투리 뒤따라 날리는 이
토끼 똥, 노루 똥 길 가으로 조금 밀어놓는 이
길이 아닌 길을 걸을 만한 길 되도록
숨어서 야금야금 다듬어 두는 이
지금도
저만치 앞서 가시는 듯하네.
신 진(辛 進) jshin@dau.ac.kr ---------------------------
부산 출생.『시문학』천료(‘74-’76). 성균관대 문학박사. 시
집『목저 있는 풍경』(아성출판사.1978.), 『장난감마을의연
가』(태화출판사.1981.).『멀리뛰기』(민음사.1986), 『강』(시
와시학사.1994.),『녹색엽서』(시문학사, 2002), 『귀가』(신
생, 2005) 등. 논저『우리시의 상징성 연구 』, 『상징과 해
석』 『문예창작론 강의』등 다수. 시문학상, 봉생문화상, 부산
시인협회상 등 수상. 현 동아대학교 문창과 교수.
[초대석]
낱말 새로 읽기-9
????????????????-새-
문 무 학
‘새’는 ‘사이’를
줄인 말일 것이다
땅과 하늘 사이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
날 수 있는 것은
새뿐이지 않는가.
문무학
* 대구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대구대 겸임교수.?
* 제38회 월간문학작품상/시조문학 문학평론 천료.
* 현대시조문학상, 대구문학상, 유동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수
상.
* 시집 : <풀을 읽다> 외 5권, 시조선집 <벙어리뻐꾸기>
* 현 : 대구문인협회장, 대구시민예술대학장.
[작품 해설]
???? ??詩
박 목 월
<나>는
흔들리는 저울臺
시는?
그것을 고누려는 錘
겨우 균형이 잡히는 位置에
한 가락의 微笑.
한 줌의 慰安.
한 줄기의 韻律.
이내 무너진다.
하늘 끝과 끝을 일렁대는 해와 달.
아득한 振幅
생활이라는 그것.
??- 박목월 시선,『백 일편의 시』, 삼중당, 1978.에서.?
-작품 해설-
??봄밤, 낡은 시집을 뒤적인다. 삼중당 문고 182권, 박목월 시선 -백일
편의 시- 1978년 중판본이다. 세로쓰기 판으로 82쪽과 83쪽에 실린
<詩>라는 작품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 시집을 읽는 것이 처음은 분
명 아닌데, 그 언젠가 읽었을 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품이다.
??시를 쓰며 산지도 4반세기가 넘었는데,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시는 이것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으니 이러고도 시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 참 한심한 생각이 스쳐가기도 한다. 조금 알 것 같
기도 하다가, 어떨 땐 또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시다. 아마도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300여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 라는 제목으로 두 편을 썼
다. <나의 시>, <시와 시인>이라고 제목한 것이 그것들이다. <나의 시>
는 1990년대 초반에 “내 시는/ 눈물이다/ 뜨거운 눈물이다.// 끝내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눈물이다.// 그 눈물 닦고 지우며 일어서는 연습이다.>
라고 썼다.
??<시와 시인>은 2007년 봄에 발표했는데, 시조 두 수로 첫 수는 ‘시’
에 관해서 둘째 수는 시인에 관해 썼다. ‘시’에 관한 그 첫수는 “시는
애당초 밥 되는 게 아니었어,/ 시는 애당초 힘 되는 것도 아니었어, /한
없이 가벼워지는 세상 / 추 하나 다는 것이었어.” 라고 썼다.
??박목월 선생의 선집에서 이 작품을 오래 바라본 것은 바로 이 <추>
라는 단어 때문이다. 박목월 선생의 추는 저울대의 균형을 맞추는 추였
고, 내 시의 추는 무게를 더 한다는 의미의 것이지만, 같은 제목 아래
같은 시어가 들어있다. 물론 그 의미는 달리 드러나지만, 박목월 선생의
추가 훨씬 더 시에 가까워 부끄러워 질 수밖에 없다.
??박목월 선생의 <詩>. 이 작품은 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시인은
그냥 저울대가 아니라 ‘흔들리는’ 저울대이며, 시는 시인의 생각을 고누
려는 추다. 겨우 균형이 잡히는 위치에서 잠시 잠깐 미소를 얻고, 위안
을 얻고 가락을 얻지만 이내 무너지고 만다. 시인은 절망할 수밖에 없
지만 ‘하늘 끝과 끝을 일렁대는 해와 달’로부터 새로운 사실 하나 읽어
낸다. ‘아득한 진폭, 생활이라는 그것’을,??
?저울의 추로 균형 잡으려는 그 팽팽한 긴장, 짜릿하게 한다. 그 짜릿함
은 시를 쓰는 기쁨인가, 전율인가. 그것이 기쁨이든 전율이든 그런 긴장
속에 놓이는 것이 시인의 삶이라고 나는 읽고 싶다. 이 작품은 결국 시
쓰기가 한없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나에
게 시로 하여 무너지는 가슴을 따듯하게 감싸준다.
??봄밤에 옛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
나 얻는다. 저울대의 균형을 맞추려는 그 팽팽한 긴장감, 그것이 시 쓰
기라는 것은 나를 긴장시키고도 남는다. 이 작품을 내가, <시와 시인>
이라는 작품을 쓰기 전에 알았더라면 나는 쓰지도 발표하지도 않았을
텐데, 긴장을 외면한 나의 시에게 미안하다.??
- (문무학)
[두레문학상]
푸른 경계
? 박 봉 준
박봉준 qkek1165@hanmail.net ----------------------------
강원 고성출생. 강원대학교 졸업.『시와비평&시조와비평』등단.
두레문학회 부회장. 산다촌문인회원. 글벗문학회원.
다울문학회장.
공저/『글벗』『시와비평』『두레문학』
홈피/ http://wolfeyes09.kll.co.kr/
강원 고성 출생
시와 비평&시조와 비평 등단
현재 다울문학회장. 두레문학 회원. 글벗문학 회원
이메일; qkek1165@hanmail.com
이민영(李旻影) leejoomin02@hanmail.net
----------------
1953~/보성출생. 경기대대학원. 1971년/kbs라디오 전설
의 고향<제암산> 공모입선. 1980년/ 詩초혼外 국방일보
발표. 2002년/<한겨레신문>에 詩 보고프고 그리운 사람.
<대구신문>에 <메일꽃 아버지>가 추천됨. 시화집 전9집.
시사랑사람들 대표.
1)? 눈깔
목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개똥이 아버지 얼굴엔 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나는 한동안
그 좋아하던 생선을 먹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다
오래전 집들이에 갔는데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려댔다
동탯국을 먹다가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을 보니
개똥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요즘은 내가 문어인지 골뱅인지
눈깔을 제압하는 것이 사는 것인지
자꾸 눈이 스멀거린다
2) 고로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전장으로 떠난 사내는 머리카락을 남겼다
그의 분신
용맹스럽고 건장한 그의 몸이다
딸이 외출한 자리에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딸의 것이 분명하다
긴 머리의 소유자는 딸밖에 없으므로
청소기로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며 혀를 찬다
쓸고 쓸어도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내가 가는 곳
네가 가는 곳 어디든지
퍼질러 앉아 투정을 부리고 있다
뼈다귀처럼 뒹굴고 있다
한바탕 청소기로 요란 떨고 돌아보니
방금 내가 지나온 자리에도
나의 머리카락들 조롱하듯 숨어있다
언젠가는 무덤 속에서도
내 몸의 수액을 남김없이 빨아올릴 때까지
저놈의 머리카락은 죽지 않을 것이다
고로 내가 죽어도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 아득할 어둠 속에서
3) 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심심한 육손이는 무얼 하고 놀았을까
막내 삼촌만 한 육손이 골려 먹는 재미가
사시사철 쏠쏠했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한 개씩 더 달린 육손이
아이들은 늘 그가 만만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꼭, 떨어졌을 것 같은
손바닥선인장 끝에 달린 그의 막내 손가락
조무래기들이 육손아! 육손아! 부르면
심사가 뒤틀린 육손이 어머니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쫓고
발가락도 한 개 삐죽 머리 내밀어
벗겨질 듯 말듯 고무신을 걸치고 다니던
코밑이 시커먼 육손이
날 선 보망* 칼 들고 그물 손질할 때면?
영락없는 어른이어서
반 토막짜리 덤이 달랑거리는 손으로
바다가 빠져나간 자리 촘촘히 꿰매기도 하고
아이들의 조롱을 웃으면서 쓸어 담던
덤으로 평생 덤을 지고 가야 할 그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보망: 그물을 손질하여 고침
4)?? 청호동 아바이?
내 장인은 북청 짜꼬치 아바이다
사변에 아가리 배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 왔다가
갯바위에 죽기 살기로 붙어있는 따개비처럼
남은 생 송두리째
아바이마을에 뿌리를 박다가 가셨다
뒷바람*에 실려오는 고향
새벽녘이면 삼삼하게 눈眼 밟히다가도
끝내는 다 털어내지 못하고 비린내로 남았다
내가 처가 집에서 묵은 그날 밤에도
형수와 마주앉은 내 작은 장인의 눈물은
이슥토록 소주병에서 출렁거렸다
살다가 진저리치는 날
깡 소주로 나발 불면 창지가 모두 녹을 거라고
불쑥불쑥 이마가 닿는 골목마다
식전부터 아마이들이 억세게 목청을 높여도
청호동 아바이들,
무시기 소린가 깡 소주 마셔대더니
바다보다 깊은 쪽빛 멍 시름시름 퍼져서 죽었다
함경남도 북청 짜꼬치 앵꼬치*
홍원 이원 단천 신포로 가지 못하고?
북녘 하늘이 손끝에 닿는 공동묘지에 누웠다
*짜꼬치. 앵꼬치: 함경남도 북청의 지명
* 뒷바람; 북풍의 방언 (강원)
5) 귀신고래
냉장고에 병따개며 온갖 쿠폰이
어지럽게 나붙었다
저 덩치 큰놈이 자리를 잡자
집안 훤하던 그날?
참, 세월이 많이 흘렀다
검버섯이 생기면 오래 산다고
텔레비전에 비친
그룹 회장님 같은 어르신을 보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귀신고래가 하늘로 솟구치자
거대한 몸에 붙은
따개비며 굴 껍데기가 스산하다
몇 살이나 잡수셨을까
고래의 몸에서 풍상이 인다
사람이나 고래나 오래 살고 보면
귀신 소릴 듣는가
6) 향수鄕愁?
느닷없이 풀빵이 먹고 싶은 것은
늙어간다는 증거인가
옛날식 풀빵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사거리 노점 앞을
그냥 지나칠 것 같아도
아내는 내 심중을 용케도 알아챈다
파치 명태며 양미리를 얻어서
쪼르르 달려가던
내 유년의 무쇠 풀빵 틀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부둣가 아이들의
눈빛이 익는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오는 길에
풀빵 좀 사오라고 하였더니
풀빵은 없고 붕어빵은 어떠시냐고
발목 깊숙이 빠진 겨울
주머니가 허전할수록
봉지 속 풀빵이 어른거리는 것은
7) 대박
복권을 사러 갈 눈치면
아내는 꿈 이야기를 못 하게 한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처럼
입 꾹 다물고 있어도
번번이 허탕이다
어쩌다 돼지꿈이라도 꾸는 날
들뜬 기분에 그만
꿈 자랑을 해 버리고 나면
이미 효험이 없다고 판정을 내린?
현명한 아내는
내 꿈을 헐값에 처서 복권을 산다
그래도 역시 꽝이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인지
아내는 요즘 대박에 시큰둥하다
별이 대낮처럼 밝은 꿈을 꾼 오늘
복권을 한 장 샀다
영하의 날씨
햇살이 찰랑 허공에 걸린다
8) 친구
양계장 배수로에 비름이 무성하다
들풀인가 싶어 관심도 없는데
세월이 눌어붙은 헛간에서
냉큼 고무 대야를 가져온 친구는
식구가 없어 미처 먹지도 못한다며
뜯어가라고 성화다
쭈뼛거리는 나를 제쳐놓고
고무 대야 가득 비름나물을 채우는
친구의 눈에 설핏한 여울이 인다
언젠가는, 바빠서 농약도 못 쳤다며
잎사귀마다 고단함이 숭숭 드나드는
구멍 뚫린 가을배추를
승용차에 가득 실어주던 그 사내
휘어질 줄 모르는 성격 탓에
멋대가리 없는 남자라고
그의 아내와 내가 더러 흉을 보지만
그런 그에게
나는 가끔 무공해 신세를 지고 산다
9)?? 삼겹살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취직을 하여?
서울로 올라가는 일요일 날 저녁
평생 섭섭할 것 같은 마음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갈빗집에 갔다
메뉴판을 보며 망설이는 사이에
눈치 빠른 아이들이
생 삼겹살 3인분을 주문하였다
불판 위에서 노릿 노릿하게 익어가는
주검을 보고 있자니, 어느 날
순댓국밥집 골목에서 웃고 있던
그 돼지의 일생이 눈물겨운 것인가
매운 연기가 자꾸 내게로 몰려왔다
죽어서도 제 살을 아낌없이 내주는
그를 돼지라고 불렀는데
돼지보다 못한 내가 성스러운 그의
육신을 보시 받는 것이 부끄러워
소주 한 잔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착하고 복된 돼지의 무던한 의지가
불판마다 지글지글 타올랐다
10) 적막강산 寂寞江山
어머니 돌아가시자 괘종시계가 멈췄다
긴 긴 하루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료한 탓이었을까
어머니는 꼭, 괘종시계만을 고집하셨다
삼십 년 넘도록 벽에 기대 함께 살아온
세이코 시계는 목소리도 거칠어지고
밥 한술 뜨고 나서야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어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만만한 아범을 불러서 수시로 밥을 주자니
아들의 불만도 서서히 원을 따라 돌았다
건전지를 한 번만 넣어도
오랫동안 제 본분을 다하는 디지털시계
뻐꾸기 소리 정겨운 그런 시계도 지천인데
하필 제 구실 성치 않은 불알시계
툭하면 허기져 늘어지는
늙은 시계의 심줄을 조이라 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쉰 소리 들리지 않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아들 딸 서울 가고 아내 없어 혼자 사는 날
방 한구석에서 아직도 벽을 기대있는
그 늙은 괘종시계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어머니 마음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을
[시평]
?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
?김 영 승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탐구??나, 그 탐구를 통해 도출된 ??진리
??는 내 ??앞에??(pro-) 장애물로서 ??던져진 것??(blema) 즉, ??
문제??(problema)를 직시하는 그 ??발견??의 소산이라면, 박봉준
의 시는 그러한 발견의 시이다. 박봉준은 연속적으로 혹은 불연속
적으로 시시각각 주마등처럼 스치는 그 현상의 파노라마를 외면하
거나 간과하지 않고 부단히 포착하고 의미부여를 하는데, ??개별
적인 사례의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동일한 것??을 ??정의
(定義)??라고 한다면, 박봉준의 시는 그 자체가 세계(또는 대상)에
대한 그러한 시적 정의이다. ??눈깔??, ??개똥이 아버지??, ??동태
??, ??동탯국??! 9;(이상「눈깔」), ??딸??, ??머리카락??(이상
「고로 나는 살아 있을 것이다」), ??육손이??(「덤」), 자신의 ??
장인??인 ??청호동 아바이??(「청호동 아바이」), ??냉장고??에 붙
은 ??병따개??며 온갖 ??쿠폰??(「귀신고래」), ??풀빵??(「향수
(鄕愁)」), ??복권??(「대박」), ??비름??(「친구」), ??삼겹살??
(「삼겹살」), ??괘종시계??(「적막강산(寂寞江山)」) 등등 일상에
서 포착된 소재들을 소도구처럼 배치하여 방편처럼 자유연상을 통
한 시적 정의를 내리는 박봉준의 시는 일단은 소재주의의 시이다.
소재주의는 소재가 없으면 시도 없거나 그 소재의 속성에 전부 혹
은 일부가 의존하게 되어 시인의 시상이 흡수되거나 매몰된다면
한계이나, 박봉준은 그 소재를 새로운 물상으로 창조하거나 변형
시키는데, 그 소재가 원관념이 아니 보조관념으로서의 수단으로만
동원되어 시적 공간 속에서 용해되었기 때문이다. 즉, 박봉준의 시
는 그 소재를 시적 언어로 풀! 어서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제시하는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박봉준에게 있어서
의 그 모든 현상은 다 소재이며, 그 소재의 발견(혹은 포착)은 박
봉준의 의식과 무의식이 함수하는 시간적? 공간적 좌표 상에서의
무수한 한 점으로서의 삶 그 자체이다. 박봉준의 삶은, 아니 시인
으로서의 박봉준의 삶은 그가 포착한 소재들의 연결이며 그 총량
인데, 그러한 소재를 징검다리처럼 놓아가며 박봉준은 바라밀다,
즉 도피안(到彼岸)하고 있는 듯이 보이며, 독자들은 그 징검다리가
곧 그의 삶의 궤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며 함께 건너갈 수 있다.
?그러니까 박봉준이 무엇을 발견하였는가, 아니 박봉준이 포착하
여 박봉준의 시적 공간에 편입시킨 그 소재들이 무엇인가를 보면
우리는 그 박봉준의 인간을 조상(彫像)할 수 있다. 즉, ??눈깔??을
포착한 박봉준은 ??눈깔??을 포착했을 때의 박봉준의 ??지금-여기
??이며 그 ??지금-여기??의 전 영토과 영해와 영공을 함께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랭보의 ??견자(見者)??와는 다른 견자로서의 박봉
준은 그러나 정밀(靜謐)이다. 추정하건대, 박봉준은 청소기로 머리
카락을 빨아들이며 혀를 찰 만큼,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쓸고 쓸
만큼 완벽주의자? 혹은 결벽주의자의로 여겨지는데 그러한 집착과
경도(傾度)는 놀랍게도 ??죽음??을 직관하며 그 삶의 중심에서부
터 그 죽음을 관통한다.
?여하튼 박봉준의 시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바 소위 ??P ⊃ S??의
형식과 그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즉, ??P면 S이다??, 혹은 ??만일
P이면 S다?? 형식의 함언(含言, implication) 구조에 그 시간적 선
후관계와 공간적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시세계의 심리적 안정감과
구도적 안정감을 동시에 획득한다.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소설이
전개되는 소위 ??액자소설??과는 다른 통칭 ??액자시??, 그러니까
시인이 설정한 그 시적 틀로서의 그 액자 안에서 그 자체로 완결
된 그러한 액자시가 아닌 박봉준 식의 그 끊어진 흑백영화의 필름
한 컷 한 컷 같은 액자시는 그러나 불연속적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연속적이며 그 이미지와 아우라의 현현으로 영사되고 있었다.
?일단은, 박봉준이 소위 객관적 상관물이며 동시에 인식의 소재로
포착한 그 시적 징검다리를 독자는 마치 자기가 놓은 징검다리 마
냥 하나 하나 건너갈 수밖에 없게 한다.
??목선을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개똥이 아버지 얼굴엔 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어린 나는 한동안
??그 좋아하던 생선을 먹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다
??오래 전 집들이에 갔는데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려댔다
??동탯국을 먹다가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을 보니
??개똥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요즘은 내가 문어인지 골뱅인지
??눈깔을 제압하는 것이 사는 것인지
??자꾸 눈이 스멀거린다
??―「눈깔」 전문
?예(例)의 그? ??P ⊃ S??의 형식이므로 이야기는 간단하며 그 이
해는 더 간단하다. 어린 시절 그는 ??목선을 타고 바닷가에 나갔
다가 / 가마때기에 둘둘 말려온 / 개똥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
는데 그 ??얼굴엔????눈이 없었??다. ??고기나 문어가 뜯어먹었을
거라고 / 골뱅이가 파먹었을 거라고 /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
는 소리를 듣고는 ??그 좋아하던 생선도 먹지 않았??으며 ??바닷
가에서 고동도 게도 잡지 않았??었다. 그 기억은 저 무의식의 심
층에 침전된 충격으로서의 정신적인 외상, 즉 트라우마이다. 그리
고는 그 사실을 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집들이에 갔는
데 / 유심히 나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더니 / 눈깔을 먼저 파먹더라고
?? 그래서 ??바닷가 사람이 틀림없다고 / 연신 감탄을 하면서 놀
려댔??던 사실을 상기하면서 시인은 그 회사 동료의 지적처럼 그
많은 산해진미 중에서 제일 먼저 생선으로 젓가락이 가는, 그리고
그 생선 중에서도 그 생선의 ??눈깔??을 제일 먼저 파먹었다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소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굴절된 표출로 파악되는데, 그 유년의 충격
이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순간의 발견이다. 가령, 20세기
남미에서의 소위 ??피압박자의 실존적 이원성??처럼, 그러니까 가
령 사탕수수 농장에서 학대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이다음에 자기
가 그 사탕수수 농장의 주인과 같은 위치에 되면 나는 그러지 말
아야지, 나는 그 노동자들을 지극히 인간적으로 대우해야지 하는,
미래의 자기 자신을 놓고 그 가혹한 사탕수수 농장 주인이나 그
노동자가 아닌 제3의 인간상을 상정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
게 먼 훗날 자신도 그 사탕수수 농장 주인처럼 노동자들을 부리며
살리라 하는 결의가 서서! 히 자라 결국은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
된다는 그 ??피압박자의 실존? ? 이원성??처럼 그러한 상반된 이
원성을 보이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발견은 이제는
자기가 그 얼굴에 눈이 없는 개똥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그 개똥이 아버지 눈을 뜯어먹고 파먹는 ??문어??며 ??골뱅
이??라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문어나 골뱅이와 동일시시키면서
피해자에서 가해자라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또 하
나의 충격이다. 즉, 시인은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시적인
정신적 외상, 그 ??트라우마??를 독자에게 가하면서 그 변증법적
인 치유의 합일점을 제시한다.
눈깔은 눈의 비어이다. 그 멀겋게 눈을 뜬(?) 동태 눈깔이나 사람
눈깔이나 그 눈깔이 그 눈깔이라는 탄식과 절망이 그 여운으로 동
시대인들을 끝까지 소위 방법적 회의의 무대에 홀로 남겨 놓는 것
이다.
그렇다면 눈, 눈깔은 무엇인가. 눈은 일차적으로 세계(또는 대상)
을 보는 신체기관이다. 가령, 우리가 본다고 할 때 그 ??본다는 것
??(to see)은 ??s??에 ??e??가 네 개 혹은 다섯 개가 붙은 ??to
seeee?? 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일차적으로 ??눈??(eye)으로 보
며, 그의 ??경험??(experience)으로 보고, ??환경??(environment)
으로 보며, 그가 제도적으로 혹은 비제도적으로 받은 그 모든 유
형무형의 ??교육??(education)으로 보고, 마침내는 그의 어떤 ??기
대??(expectation)로 보는 ??to seeeee??라면, 우리가 본?! 鳴?
할 때 그 본다는 것은 우리의 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서 본
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눈깔을 제압한다는 말은 그 상대를
죽인다는 말이다. 즉 눈깔을 제압한다는 것은, 그러니까 눈깔에 제
일 먼저 젓가락이 가 그 눈깔을 파먹는다는 것은, 눈깔을 공격한
다는 것은 상대를 죽인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전 영역을 다 말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누군가의 현재만을, 그 현재의 장점, 아름다운 점만을 사랑
하는 게 아니라 그 상대가 통과해 온 그 상대의 시간과 공간의 전
영역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동시대의 소위 사랑이라는 것도 그러한
공격과 공격, 그러니까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수비, 혹은 최선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이라는 속언(俗諺) 같은 생존의 실존적 이원성
에서 파악될 것을 박봉준은 시사하며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설과 반어는 동시대의 인간 일반, 그 데드마스크 같은 얼굴들에
대한 월인천강(月印千江) 같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심심한 육손이는 무얼 하고 놀았을까
??막내 삼촌만 한 육손이 골려 먹는 재미가
??사시사철 쏠쏠했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한 개씩 더 달린 육손이
??아이들은 늘 그가 만만하였다
??자고 일어나면 꼭, 떨어졌을 것 같은
??손바닥선인장 끝에 달린 그의 막내 손가락
??조무래기들이 육손아! 육손아! 부르면
??심사가 뒤틀린 육손이 어머니는
??막대기를 휘두르며 아이들을 쫓고
??발가락도 한 개 삐죽 머리 내밀어
??벗겨질 듯 말듯 고무신을 걸치고 다니던
??코밑이 시커먼 육손이
??날 선 보망* 칼 들고 그물 손질할 때면?
??영락없는 어른이어서
??반 토막짜리 덤이 달랑거리는 손으로
??바다가 빠져나간 자리 촘촘히 꿰매기도 하고
??아이들의 조롱을 웃으면서 쓸어 담던
??덤으로 평생 덤을 지고 가야 할 그 남자
??이름이 뭐였더라
???*보망: 그물을 손질하여 고침
???― 「덤」 전문
?고은의 「만인보」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그러나 김광규의 시편
들처럼 보다 더 주지적이다. ??덤??은 원래의 것에 조금 더 얹어
주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덕이니
진정한 지식이니 로고스니 사유(思惟)니 등은 인간에게 ??덧보태
어진 것??(epiktesis)으로 언표되는데 그 말을 뒤집으면 그러한 것
들은 원래 인간에게는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원래 없었
던 것에 얹어서 준 것, 그 덤의 소유자 육손이는 그 덤 때문에 아
웃사이더가 된다. 노자나 장자에는 소위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 데 없음의 쓸데 있음으로서의 비유와 그 예로서 무수한 기형적
인 동식물과 인간이 등장하는데, 맹자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
온다.
?? 지금 여기에 무명지가 굽어서 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
자. 별로 아프지도 않아서 일하는 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지만, 만
약 이것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고만 하면, 진(秦)이나
초(楚) 같은 먼 곳이라도 멀다 하지 않고 찾아갈 것이다. 손가락이
남 같지 않음을 부끄러워함이다. 손가락이 남 같지 않음은 싫어하
면서, 마음이 남 같지 않은 것은 싫어할 줄 모르니, 이것을 일컬어
일의 경중(輕重)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 고자장구상(告子章句上)
?수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육손이는 가난하다. 노장(老莊)과
공맹(孔孟) 철학의 양극단에서 우리는 그 ??덤??이 ??짐??이 되는
순간, 그 초월과 수용의 그 경계(境界)를 본다. 그것은 박봉준이
시로써 보여준 그 경계의 우화이다. 타자와 다르다는 것은 저주이
며 은총 아닌가?? 그러한 시적 관상(觀想)은 생과 사의 경계조차
도 넘나들며 다음과 같은 반짝이는 돈오(頓悟)를 낳는다.
??어머니 돌아가시자 괘종시계가 멈췄다
??긴 긴 하루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료한 탓이었을까
??어머니는 꼭, 괘종시계만을 고집하셨다
??삼십 년 넘도록 벽에 기대 함께 살아온
??세이코 시계는 목소리도 거칠어지고
??밥 한술 뜨고 나서야 터벅터벅 길을 나섰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어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만만한 아범을 불러서 수시로 밥을 주자니
??아들의 불만도 서서히 원을 따라 돌았다
??건전지를 한 번만 넣어도
??오랫동안 제 본분을 다하는 디지털시계
??뻐꾸기 소리 정겨운 그런 시계도 지천인데
??하필 제 구실 성치 않은 불알시계
??툭하면 허기져 늘어지는
??늙은 시계의 심줄을 조이라 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그 쉰 소리 들리지 않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지
??아들 딸 서울 가고 아내 없어 혼자 사는 날
??방 한구석에서 아직도 벽을 기대있는
??그 늙은 괘종시계 물끄러미 바라보니
??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 어머니 마음
??죽어서 살아야 할 그 길고 긴 적막강산을
???―「적막강산(寂寞江山)」 전문
???괴로워하기를 그만둔 자들??…… 고대 희랍인들이 인식한 사자
(死者)들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그 세속화된 불교의 세계관
같은 그러한 사생관(死生觀)은 박봉준에게서는 어머니 돌아가시자
멈춘 괘종시계로 촉발되어 오고감도 없다는 원래의 불교적 시간관
과 그 사생관을 일상의 짧은 에피소드와 그 직관적인 단상(斷想)
을 통하여 육화(肉化)시킨다. 죽는 것을 ??입적(入寂)?? 혹은 ??적
멸(寂滅)??이라고 표현하는 영혼들을 생각하면 박봉준의 시적 직
관은 반딧불이다. 반딧불은 그 배경이 어둠일 때만 빛나는, 그리고
현존하는 생명이 내는 빛 아닌가.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같은
박봉준의 이 「적막강산(寂寞江山)」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실존적
고독이며 그 시적 정각(正覺)인 것이다.
?박봉준의 시는 시의 인공적 자연미와 자연적 인공미를 동시에 충
족시켜 주는 인공적 자아의 노래이다. 즉, 그 자아는 자연스러운
자아이되 인공적인 자아, 그러니까 만들어진 자아라는 것이다. 그
러면서도 박봉준의 시는 모두(冒頭)에 언급한 그 소재주의와? ??P
⊃ S??의 형식과 구조에 의해 이미 상당한 부분은 고정화되고 정
형화된 소위 ??투(套)의 시??의 편린이 여전히 산견되는데, 그것은
각각의 시편들이 일상적 소재의 사소주의와 매너리즘에 의해 다소
는 과도 하리만큼 절제되어 있고 세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소월의 시는 소월의 시풍이라 할 만한 특수한 어보(語步)를 보이
나 각각의 시편들이 각자 독립된 발상과 그 진행을 보이지만 박봉
준은 어떤 소재가 포착되면 그 소재를 놓고 시가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결말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그 시의 귀결이 약간은 예측이
가능하기에 그 시 쓰기, 혹은 시적 발화의 투(套)가 때로는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사족을 첨언한다. 「귀신고래」, 「향수(鄕
愁)」,「대박」, 「친구」, 「삼겹살」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앞으
로도 그런 식의 소재 포착과 시적 발상을 통한 자유연상, 그런 식
의 형상화가 반복된다면 박봉준은 어쩌면 독백과 같은 동어반복의
크고 작은 동심원에 갇힌(?) 파문만을 그 잔잔한 수면에 만들고
그려나가리라. 여과되지 않은 육성과 격정도 시의 지극히 소중한
부분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러한 육성과 격정을 수용하고 분
출할 또 다른 형식의 창조와 파괴 그 실험도 부단히 병행돼야 하
리라. 군자(君子)는 불기(不器) 아닌가. 그렇다면 시의 그릇도 박봉
준의 그 투명한 세계인식 만큼 다양해야 한다.
김영승(金榮承) 略歷
?계간「세계의 문학」1986 가을 「반성?序」외 3편의 詩 발표.
?시집 『반성』(민음사.1987). 『車에 실려가는 車』(우경.1988),
『취객의 꿈』(청하.1988). 『아름다운 폐인』(미학사.1991),
『몸 하나의 사랑』(미학사.1994), 『권태』(책나무.1994). 『무소
유보다도 찬란한 극빈』(나남출판.2001). 에세이집 『오늘 하루의
죽음』(문음사.1989). 제3회 현대시작품상(2002) 수상.
[문학 산책]
목마와 숙녀 / 박인환
김 현 철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전문>
1. 마음산(心山)에 들어가자
살다 보면 별 이유 없이 그냥 쓸쓸해지는 날이 있다.
이유 없이 쓸쓸한 이유를 의사들이 연구를 했다지만 결론은 이유 없
이 쓸쓸하다는 것이다. 나비들은 이리저리로 팔랑팔랑 봄을 뿌리지만
왠지 마음산에는 펄펄 낙엽이 지니, 뉘라 쓸쓸한 봄날 없으랴만 오늘처
럼 화사한 봄날에도 시인의 마음골(心谷)엔 골마다 바람 부니 낮술이라
도 한잔 하든지 아니면 마음 다듬을 詩라도 한편 읽어야 숨을 돌리겠
다. 가을인양 봄을 앓으며 “목마와 숙녀”를 뜯어보자. 봄비라도 내려 이
더운 마음 씻어줄는지.
2. 詩人의 뒤꿈치 따라가기
이 詩가 가지는 정처 없는 고독감, 알 수 없는 쓸쓸함 정도는 누구나
짐작한다. 요사이 읽고 또 읽어보니 이 詩가 음탕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음탕한 것은 두고 보지 못해 음탕을 문화로 격상시키지 아니 하
고서는 잠이 오지 않으니 음탕한지 아니한지를 살펴보고 싶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우선 첫 연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이거부터 되게 맘에 든다. 사람
의 마음을 확 채어간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지금부터는 저 깊은 의식
의 나라로 들락거리는 문이 열린다는 뜻이고 그래서 숨어 있는 마음들
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근사하지만 못다 이룬 지순지고의 사랑 이야
기나, 불륜이지만 치정(痴情)이라고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사랑의 판타
지 같은 것들이 은근히 기대되는 분위기인 거라.
더구나 “우리는”이라고 덧붙이면서 독자를 공범 혹은 동류로 만들어
버리고는 박자도 멋있게 3,4,3,3(4)의 편안한 운율로 독자를 시적 리듬
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가버린다. 솜씨와 수완이 대단한 시인이다.
첫 연을 읽으면 이 술판의 정서는 시끌벅적 시장판이 아니라 분위기
우아한 스탠드바에 한 남자가 쓸쓸히 앉아 있는 화면이 쫘악 보인다.
그런데 술 마시고 하는 이야기가 모두 사각사각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
리 같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어떤 떠나간 숙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여자는 목마를 타고 떠났다는 거라. 그리고 그 목마는 주인을 버리
고 거저 방을 소리만 울리며 떠났다는데 그것도 가을 속으로 시인이 전
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이를 풀어보면 때는
가을이고 숙녀는 목마를 타고 떠났고, 또 목마는 숙녀를 버리고 떠났고,
가면서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방울 소리 딸랑거리며 갔다는 거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버리고 떠난, 쓸쓸한 분위기가 우울하게 깔려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아세요?
제 삶을 다 짐 지지 못하겠다고 어느 날 강가에 즐겨 쓰던 지팡이 하
나 달랑 남겨두고 주머니 속에 돌멩이를 가득 채우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는 여자,
- 지팡이를 남겨두었다는 점이 아주 상징적이지요. 제 몸을 지탱해준
지팡이는 있었지만 정신의 지팡이가 없었다는 반증 같지 않나요? -
교과서에서 의식의 흐름이니 슈르레알리즘이니 다다이즘이니 뭐 그런
전후(戰後)의 사상조류를 배울 때 대표적으로 이름이 나왔던 여자.
등대로(To the light house)라는 스토리 알쏭달쏭하게 긴장 없이 집
안이야기만 풀어헤친 소설로 유명해진 여자.
이런 분위기 알싸한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름까지 멋지게 울프 (여우,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인데 온통 떠났다는 분위기로 도배
가 되어 있으니 시적 배경이 더 할 수 없이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런 분위기에서 나누는 대화가 또 심상찮다.
떠나간 숙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
기하다니 화제가 숙녀가 아니고 숙녀의 옷자락이라는 점에서 옷자락이
가지는 표층적 정서를 강조하면서 기실 숙녀는 주인공이 아니며 숙녀의
실존적 고뇌와 통찰 보다는 감각적 이미지를 은근히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이제 목마의 이미지를 그려보자.
목마라 하니 나무로 만든 회전목마를 얼른 떠올리게 된다.
트로이의 목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외에 또 우리가 떠
올릴 목마가 있나? 나의 상상력으로는 더는 없다. 그러니 이런 실물적
상상으로는 이 詩를 다 읽어낼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詩에서 목마는 남자를 상징한다. 이 詩의 주조(主
調)가 여성성이지만 여류에 대비되는 남성성은 목마와 방울소리에 숨어
있다. 목마는 숙녀에 대비되는 남자이며 방울은 남자의 거시기(生殖器)
를 의미한다.
멋 부리기 좋아하는 낭만파 박인환다운 설정이다.
남자는 떠나면서 방울 소리를 내며 떠났다는데 이는 그 남자에게서 남
은 가장 유효한 추억은 "몸섞음"이라는 거다.
그런데 왜 살아있는 말이 아니고 하필 목마라는 거냐?
목마의 느낌을 생각해보자. 생각하면서 목마에 상상의 생명을 넣어보
자. 목마의 차가움, 목마의 말없음, 목마의 무심함으로 볼 때, 결국 감정
이입불가(感情移入不可)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설혹 가슴 문드러질 감정
이 있었다 해도 이를 적절히 전달할 정황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목마는 남자이되 떠나간 남자이다.
여자의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히 말없이 떠나간 차가운 남자
라는 것이다. 온기 없는 남자, 한 때 사랑의 열병을 앓았건만 이제는 차
갑게 돌아서서 떠나간 남자.
목마의 꿈이나 목마의 슬픔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목마가 살아있는 말을 보며 부러워하고 그가 살아 있는 말이라면 하
고 싶었을 일들을 생각해보자.
- 갈퀴를 휘날리며 들판을 달리는 일,
- 주인(여자라면 더욱 좋다.)을 태우고 주인이 깜짝깜짝 놀라도록 즐겁
게 달려보는 일,
- 사랑하는 말을 만나 서로의 목에 목을 대고 히힝 거리며 사랑을 나누
는 일.
- 저녁놀이 내려올 때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다리를 쉬는 일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쯤 생각하고 다시 詩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마는 숙녀가 타는 말이
고 어느 날 숙녀를 태우고 떠나갔다. 아니 숙녀가 목마를 타고 갔다. 목
마란 것이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이 떠날 수 없는 목마를 타고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여자가 말을 탄다는 것은 성적행위를 의미한다. 숙녀가 원했든, 목마
가 원했든 그들은 방울소리가 나는 성적행위를 하고 그리고 헤어졌다는
뜻이다. 목마가 주인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으로 보아 일견 남자가 떠난
것으로 보이지만 이 詩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루지 못하고 보낸 사랑을
한탄하고 떠나간 숙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떠났지만 정은 남는 법.
숙녀는 잠시 알았던 여자이었고, 잠깐이지만 눈 뒤집어지게 좋았던
모양이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니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마시고 있는데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별들이
초롱하다.
별은 이상의 나라이며 가고 싶은 나라이며 이승에서 안 되는 일이 그
곳에서는 될 수 있는 나라이다. 별을 보니 눈물인 듯 떠나간 사랑이 보
이는데 눈물 속에 어룽거려 정신이 혼미한데 갈 수 없는 별의 나라, 이
룰 수 없는 사랑을 가진 내게 저 별은 무엇인가?
아직도 나에게 저 별은 희망의 별이며 가고 싶은 나라인가?
제2연은 이 詩의 결구(結句)에 직결되어 있으며 읽을수록 가슴이 저
려온다.
마지막 연을 먼저 읽어보자.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는 하늘에 있고...... 주인을 버리고 가을 속으로 떠난 목마가 어
디로 갔는가? 박인환은 그 답을 마지막 연에 수수께끼처럼 숨겨두고 있
다. 목마는 하늘로 갔으며 하늘의 별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詩가 정처 없고 막연한 고독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렇게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구성을 곳곳에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상심해 술을 마시는 화자의 가슴 속으로 목마는 돌아온다.
별이 되어 술병 속으로 떨어진다. 한 때 따뜻했던 숙녀의 체온을 기
억하는 목마.
떨어지는 별은 무겁지 않다. 회한이 사라진 별, 이미 윤기를 잃은 사
랑의 무게는 가벼울 뿐.
사랑은 진실한 것이지만 또한 언제나 사춘(思春)의 열정처럼 유치하
고 통속해서 바람처럼 가벼이 떠나갔지만 목마가 돌아오듯 가을바람
소리도 돌아와 쓰러진 술병 속에서 함께 운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떠나갔지만 마음 속 소녀로 남아 일상의 매듭마다 살아나고 또 자라
나는데 정원의 초목이 자라듯 자라서 함께 사는데 떠나고도 떠나지 않
은 삶으로 자라는데 사랑은 가고 부질없는 허상만 정원에 자라네.
사람이 가니 문학도 죽고 인생도 가벼이 바람에 날리는 휴지 같네.
무엇이 사랑의 진리인지 모르겠으되 사랑의 출발이 호불호(好不好)라
면 이별의 끝은 왜 불호(不好)로 매듭하지 못하며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 즈음에 어찌하여 애증의 이분법은 폭
풍처럼 닥쳐와서 헤어짐 앞에 애증의 그림자는 부질없이 흔들리는가?
그렇구나, 내 진실한 사랑의 대상이 숙녀인 줄 알았더니 사랑할 땐
몰랐더니 헤어지니 알겠구나,
내가 사랑한 것은 기껏 숙녀의 체온, 숙녀와 나눈 애증, 숙녀의 옷자
락에 불과했구나.
어찌하나, 내가 나를 용서하는 방법을 나는 모르겠구나.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내가 나를 용서 할 수 없으니 세상으로 나가기 부끄럽다.
사랑이 그렇듯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참으로 행운이다. 사랑이 세월을 닮아있으니 세월은 만병의 치료사
가고 오는 세월을 보며 사랑의 덧없음을 깨달아 간다.
세상 부끄러워 고립으로 시들어갔지만 지금은 작별의 시간.
숙녀의 옷자락 같은 애증의 그림자까지 버리고 작별할 시간.
오래도록 정원에서 초목처럼 자라 오르신 당신과 작별할 시간.
작별의 날, 당신과 함께 술병이 쓰러질 때까지 마시자.
영혼의 지팡이를 잃은 늙은 여자의 눈이 들려줄 이야기들을 듣자.
훠이훠이 강물에 목숨을 풀어버린 늙은 여류작가의 이야기를 듣자.
<……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등대는 가고 싶은 곳이며 삶의 지표(指標), 삶의 지표 같은 사랑도
떠나고 이제 등대는 불 밝히지 않으니 차가운 바다를 표류할 내 삶을
지켜줄 것 없네.
남은 건 낡고 헤어진 페시미즘 뿐, 어쩌랴 그나마 가진 것의 전부이
니 떠나간 목마소리라도 기억하여 등대의 불로 삼아야 하리. 등대를 잃
은 서러운 이야기라도 들어야 하리.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두개의 바위틈이란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
삶에 있어 성(性)만큼 강렬하고 확실한 유혹이 어디 또 있을까?
삶에 지친 사내들이 찾아드는 바위 틈.
세상의 험한 길을 달려온 부르튼 발들을 녹여 줄 따스한 여자,
지친 뱀들이 피난처처럼 숨어들어 청춘을 찾아가는 바위 틈.
뉘라 쉬고 싶지 않으며, 뉘라 용서받지 못하랴.
세상은 지치고 쓸쓸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사는 것이거
늘 내게 내어줄 어깨 있으며 내가 가서 기댈 어깨 네 있으니 따스하게
등대며 살자.
세상은 외롭지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데 한탄할 그 무엇
이 무서워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이루지 못할 거라며 시작도 못한 사
랑이며 사랑 후에 닥쳐올 독한 고독이 무서운 것인가. 한탄할 것들에
속지 말라고 한다. 사랑은 얼마나 유치하고 통속적이니 한탄할 그 무엇
도 아니더라.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소리마다 살냄새 나는데 목마는 하늘에 있네.
3. 두 개의 바위틈을 나오기.
이 詩는 결코 술 한 잔 마시고 단숨에 써내려간 詩가 아니다. 많은
사유 끝에 감각을 부르는 시어(詩語)들을 고르고 다듬어서 암호처럼 숨
겨두고 힘들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목마를 남성 혹은 한때 사랑했으나 지금은 떠나간 사랑으로 배치하고
숙녀를 소녀에서부터 늙은 여류작가까지로 변용시키면서 삶과 사랑의
순수성과 회한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남녀 간의 성적결합을 배경으로 깔아두고 그 결합이 결코 순수성의
훼손이 아니며 한탄할 일도 아니니 사랑과 존재의 확인 과정인 성적결
합에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있다.
실패한 사랑 뒤에 찾아온 독한 고독에 몸서리치는 사람이거나, 사랑
하면서도 고독한 사랑 중독자이거나, 이유 없이 쓸쓸한 봄을 보내는 사
람까지, 모두의 가슴을 쓸어주는 치유의 詩로 오래오래 읽혀져라. 사람
들아, 이 詩 읽고 나서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라. 등대에 불을 밝혀둘
테니.....
등대로 와서 한잔 하자.
숙녀의 옷자락 가득 봄꽃을 그려둘 테니 꽃구경하며 한잔 하자.
김현철 ceokimhc@hanmail.net ---------------------------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대학교 졸업.『시와비평』등단.
시와 비평 두레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울산)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신작특집]
강 변
권 정 욱
누가 득음(得音)하며 죽어 가는가
피 비린내 나는 노을
서녘 하늘에 확 불이 붙는다
감물 든 바람에 흐드러진?갈대
비워 오히려 눈부신 쉰 목소리
짧다
진창 움켜 쥔 깊고 어두운 혀뿌리
떠밀리는 기형의 언어와
가슴 물고 떠있는 어눌한 말더듬
편도선?부어오른다.
?
?
?
권정욱 qhfltn@hanmail.net -------------------------
1961년 마산출생. 『문학저널』등단.
청파문학 동인.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거 리 -노숙자
?권 정 욱
머리를 빡빡 밀었다
알몸 이었다
밤새 서 있었다
어떤 언어로도
이런 모욕 이런 몰락은 표현할 수 없다
강추위는 살아 버틸 확률을 줄이기에
몇 병의 알코올 털어 넣고서였다
이른 새벽
지하철 역사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퍼포먼스
우르릉 발끝으로
짜릿한 침몰의 살얼음이 박혔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증오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가해하지 않았으며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넘보지 않았다
설혹 내 삶은 짓이겼다 하더라도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자살과의 황홀한 外道는 사치라고
철저하게 검문하는 거리 앞에서
나는 지금 시위중인 것이다.
화려하게 내리쏟는 지하 분수대와
발자국 포개져 종일 신음하는 이 환승역에서
질긴 생의 흡반(吸盤) 씹으면서 자연사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으며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며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다.
풍 경 - 신평공단에서
권 정 욱
?
지하철 터널이 시작되는 곳
축 쳐진 하늘이 엉킨 전선에 묶여있다
그 뒤에 깡마른 전봇대가 서 있고
그 뒤에 돼지국밥집과 오렌지 노래방 간판이 환하다
그 뒤에 공장 굴뚝들이 상호 문신한 귀두 발랑 까고 서 있고
국방색 산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전선에서도 전봇대 끝, 건물 모서리에서도
으깨진 바람 윙윙 톱날처럼 운다
누군가 겹쳐놓은 중증 X-LAY 필름 혹은 기워 펄럭이는 누더기
얼음장 같은 거리의 가로수 사이로 출렁이는 현수막들
수배된 뺑소니와 착한 베트남 신부감, 물 좋은 부킹의 천국나이트
침묵하는 세상이 두른 오염된 마스크
대각선으로 잘려나간 지하 방 창문으로 올려다 본 1월은
내게 심한 자위를 권하거나 무기력을 강요한다
핏기 없는 한 줄 햇살 엑스레이로 몸 훑고 지나는 동안
관 속 비좁은 여기 시체처럼 누워
내 죄가 무엇인지 얼마만큼 악성으로 자라고 있는지 숨죽인다
터진 관절 사이에서 흘러내린 폐윤활유,
야근 마치고 삼킨 해장술 썩은 피를 돌린다
잠들지 못하도록
깊고 어두운 지층으로 함몰하는 전동차의 울림
절망 역으로 가는 진단결과를 애타게 기다린다
달리 기도할 희망 없으므로.
수첩을 정리하며
玟訂 박 동 덕
검게 빛나는 머리카락은
헐벗은 머리를 덮어주는 내 몸의 일부분
촘촘한 빗살 사이를 빠져나가고 또 생겨나는
고마움 내 모르는바 아니지만
이미 나와는 무관한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한다
긴 골목을 돌아 나오며 함께했던 시간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망설인다, 한참을
냉혹한 현실 앞에 혀를 내두르며
기억 속에 가물가물 한 이름부터 그어버린다
생기는 것보다 빠지는 것들이 자꾸 많아진다
두렵다, 내가 버리는 저것들은
언젠가 나를 버릴 것이다
이게 아니야, 나는 소리친다
육은 썩어도 머리카락은 살아있다
지워지더라도 내 영혼 안에 머물러다오
흩어지는 이름들을 중얼거린다
박동덕 ac684729@hanmail.net ------------------------
경남 창녕출생. 계간『시인정신』등단.
시인정신 작가회 회원. 시하늘 동인.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
강아지풀과 칡
? 玟訂 박 동 덕
서울 간 누이를 기다리며 토담 위를 기웃거린다 털털 재봉틀 소리가 내며 자갈길을 달리는 버스가 그냥 지나쳤다 고무신으로 자동차놀이를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을 때 풍성한 양분을 빨고 무럭무럭 자란 너는 운동화를 신고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하루치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휘청거리는 다리를 가누며 발품을 팔 동안 너는 무성한 푸른 이파리를 앞세우고 잡목들을 말뚝 삼아 새끼줄을 치고 땅을 넓혀갔다 너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여름을 건너오면서 수확도 없이 가을을 맞이한 나는 마음만 바꾸면 맘대로 아무에게나 나눠줄 수 있는 재물을 지하 곳간에 가득 묻어 둔 네가 부럽다 이제 너도나도 황혼의 붉은 노을 강을 건너야한다 청렴한 소나무를 인질로 잡고 질긴 인연 줄을 놓지 못하는 너는 묘지를 만들고 장례를 준비하는구나 늦게나마 햇볕을 가득 받은 나는 육신을 활활 태우고 남은 재를 강물에 뿌려 왔다간 흔적을 없애련다 누가 잘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꽃샘바람
玟訂 박 동 덕
웅크렸던 삿대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고개를 드는 둔치, 뒷발을 걷 어차는 바람이 있다 꽃잎이 비늘처럼 헤엄치는 *사지포 쓰러진 갈대숲에서 기러기 떼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날아오르는 방천을 걷다 콜록거리던 나는 먼 하늘에 그려진 화살표를 보고 있다 때로는 엎어져도 오뚝이가 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다 아침. 태양의 후광을 받지 않은 생은 없으니 저 바람을 잡아 진흙 속에 가둔다면 그들의 화석은 오라를 친친 감은 주름만 남을 것이다 수천 번도 수면을 휩쓸었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온 늪은 흔들리면서도 흔들지 않았다 나는 새 떼가 남기고 간 화살에 발을 얹고 시위를 당기는 늙은 궁사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저 바람을 뚫어야 한다 *우포에 따른 늪으로 모래가 많이 떠내려 온다고 이름 붙여짐
변기에 대한 관찰기
엄 태 우
일찍이 저만한 큰 그릇을 본 적이 없다
나는 하루 한 번씩 꼭 그 앞으로 나아가
숨김없이 속에 것을 다 꺼내놓는데
변기라고 하기보다 성자라고 해야겠다
어떤 날은 몇 번을 그 앞에서
내 한 짓을 싹 쏟아놓아야 할 때도 있으니까
스무 살 부끄럼 많은 아가씨도 와서
남자 만나 커피 마시고 소주도 한 병 마셨어요
이실직고하고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는데
남의 눈물 한 방울 받아준 적 없는 내가
너도 한 번 받아 보겠느냐 또는
물을 내릴 때 이 물이 무엇이 되겠느냐 하는 식의
턱도 없는 답을 찾느라고 끙끙거리고 힘을 쓰게도 한다
어떤 이는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다 묵직한 속을 그냥 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뒤에서 끌끌 혀를 차는 일도 없고
다시 오라는 말도 없다
그러나 곧 그는 그 앞으로 나아가
속에 것을 다 꺼내놓게 된다
어찌 이만한 그릇이 또 있단 말인가
습관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 미스 정이
들어오자마자 아침까지 한 일을 들고
불이 나게 그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손들어 보라 그에게 속을 꺼내놓지 않은 자 있다면
엄태우 mtewo@hanmail.net -------------------------------
청주 출생. 충주 칠금동 대학학원 경영.
등단 『문학세계』 공저『두레문학』.
시와비평『두레문학』충청지회장.
퓨 즈
엄 태 우
?
끊어져다오 내게 과부하가 걸렸을 때
퓨즈가 녹아 툭 떨어져
모든 것들이 처음으로 돌아가 편안히 정지하듯
그렇게 원위치 시켜다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것이므로
이를테면?책 한 권 읽기에 충분한 그?이상의 빛 또는
큰 집으로의 이사를 꿈꾼다든지
아주 소박하다고 여기면서 전혀 소박하지 않은
그런 것들에 비질비질 밀려갈 때
사정없이 차단기를 내려다오
그로 인해 안에 것이 푹 썩고
한동안 관심 밖에서 녹슬고 있을지라도
싹 비워진 다음 욕심도 없이 돌아가고 싶다
나사 하나가 빠져 털털거리면서
가끔 누군가의 손을 빌리기도 하고?
더는 요구르트 한 병 차게 얼리지 못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퓨즈를 잡고 멈춰서는
고물 냉장고와 같이
?
끊어져다오 내게 과부하가 걸렸을 때
사랑 . 3
??????????????????????? 엄 태 우
?
?
?
인도를 새로 깔면서?
콘크리트 경계석을 들어내고 있다
그 순간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사라지고
무경계의 합일
가는 선 한 줄도 경계로 세우지 마라
들어내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
다 헤진 목장갑을 벗어놓는
인부의 거친 두 손바닥이 풀어낸 화두
진작 알았어야 했다
너를 보내고 깨달은
저 경계
너라는 것과 나라는 것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도?
피가 나도록 들어올리면
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음을
인제야 너의 고운 것이 보이고
여기는 내 구역 들어오지 마시오
단단하게 박아놓은 경계석
때늦게 물렁물렁해진다
못 들어낼 것도 아니었는데
[시조]
소나무 분재
김 민 성
마음대로 자란 키는 가차 없이 잘린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번뜩이는 가위 손 더 낮게 웅크린 몸짓 나이테만 늘리라고 뒤틀린 껍질 위로 푸른 힘줄 꿈틀댄다 꾸역꾸역 먹인 햇살 성급한 욕심이지 우러러 보는 눈길에 옹이 하나 늘어나고 구겨진 뿌리들이 또아리로 엉켜있다 최고의 정성인양 승화 되는 노란 액체 차라리 갈증을 품고 절벽 위에 서리다
김민성 650901us@hanmail.net ---------------------------
양산출생. 전국충의백일장 시조 입상.
『시와비평&시조와비평』 시조 부문 등단.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삽량문학』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만어사 종석
김 민 성
너덜에 물고기가
떼를 지어 산다기에
종소리 푸덕거리는
비단 그물 펼쳤더니
후르르
새벽별 하나
비늘마저 떨린다
처마 끝 녹슨 하품
예불은 나 몰라라
턱 괴어 풍경 물고
산 노을을 부르는데
와르르
바다 무너져
승천하는 물고기
작천정 벚꽃놀이
김 민 성
성급히 삼킨 바람 급체한 가지마다
밥 알갱이 한 입 가득 함성을 지르는데
후두둑 벚꽃이 피는 밤하늘이 하얗다
보름달 구경 나와 난간에 기대서다
헛디딘 발걸음이 작천정에 일렁이고
가만히 꽃잎 건지려다 저린 사연 쏟아낸다
술잔에 꽃잎 찾아 휘둥그레 살피지 마
벚나무 머리카락에 은하수 찰랑찰랑
휘저어 새긴 십자수 이부자리 덮는다
청설모 흔들고 간 이파리 속이 쓰다
눈도 껌벅이지 않고 토라진 해 바라보고
솔잎차 한 입 물려다 꽃샘바람 비운다
[아동문학]
풍경소리Ⅱ
이 승 민?
뜨겁던 여름
바람이 걷어찼는지
뗑그렁 뗑그렁
푸른 하늘
흔들며 울리는 소리
?
지나던 구름 몇
어쩔 줄 몰라 도망가며
가을 왔다고
알리는 풍경소리
뗑그렁 뗑그렁
이승민 http://cafe.daum.net/perfumepoem ----------------
제주도 출생. 계간『시세계』등단. 한국지저스작가동인.
울산공단문학 시 부문 수상. 울산 공단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울산). 울산자유기고가 협회 회원. 시와 그리
움이 있는 마을 동인. 작가코리아 문학(시) 부문 금요일의 작가
현 대경기계(주) 기술지원팀 근무.『두레문학』운영위원.
사과가 쿵! 떨어져?
이 승 민
사과가 쿵! 떨어져한숨쉬던 뉴턴은 만류인력발견했고요떼구르르 굴러서짝꿍에게 먼저 사과했더니얼굴에 예쁜 보조개도발견했어요 사과가 쿵! 떨어져아담과 하와는 낙원에서쫓겨났고요떼구르르 굴러서하나님께 먼저 사과했더니내가 지은 죄 모두용서해줬어요사과가 쿵! 떨어져파리스는 헤렌과 결혼하지만트로이는 멸망했고요떼구르르 굴러서엄마께 먼저 사과했더니우리가족 행복이지켜졌어요사과가 쿵! 떨어져윌리엄 텔은 스위스 독립을이룩했고요떼구르르 굴러서아빠 손에 당도했더니벗겨지고 쪼개져 우리 가족후식으로 나눠 먹었죠.
붕어빵(2)
이 승 민개구리가 겨울 잠자러땅속으로 들어 가버리면 둥그런 연못을 끌고아파트 가로등 아래로매일 밤 나오는 아저씨가 있다.덜그럭 덜그럭 작은 연못돌릴 적마다 파삭하게 구워진황금 붕어가 튀어나와뜨끈뜨끈하고 맛있는 정을이집저집 퍼 나른다.저녁 먹고 숙제도 다 하고동생과 놀다가 배가 출출해베란다 창밖으로 살펴보니뻐끔뻐끔 피어오르는 연기아직도 아저씨가 있다.둥둥 떠다니는 누런 봉지 속고소한 유혹 엄마와 가위바위보붕어빵 사오기 게임을 하는데딩동딩동 초인종소리아빠가 오셨다!!
[수필]
길을 걷다가
김 금 희
“자장면 시키신 분-!”
몇 해 전 모 이동통신회사에서 내 보낸 광고이다. 이 이동통신사의
강력한 전파의 힘은 외딴 섬 마라도에까지 자장면이 배달된다는 내용이
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장면 배달의 신속성에 이동통신의
전파의 힘을 연결시킨 절묘한 광고 카피이리라. 해서 한 동안 이 광고
카피는 사람들 사이에 심심찮게 회자되며 알게 모르게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졌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통신의 강력한 전파력은 진화
에 진화를 거듭해 급기야 우리를 IT 강국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한편 점점 가속화 되어 가는 속도에 한 쪽에서는 이러한 빠름에 대한
경고로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있지만, 무한경쟁에서의 속도는 한가한
사람들의 물정 모르는 말쯤으로 밀어 붙여 버린다.
아침마다, 어제 입고 벗어 놓은 후줄근한 옷을 다시 주워 입고 단단
히 허리띠를 조여 맨다. 항상 모자라는 잠은 만성피로함에 저장해 두고,
아수라장 같은 삶의 전쟁터로 향하는 비장함엔 푸른 서글픔이 배어 있
다. 이것이 매일 치루는 현대인들의 절규에 가까운 각개전투인데 나는
원시시대의 전사들을 떠올리고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때는 바야흐로 매트릭스가 지배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속도전을 치루며 지나가는 한 무리의 거센 바람의 잔상을 온 몸
으로 느끼며 플라타너스 잎이 무성한 가로수 길을 걷는다. 느린 것을
타고난 나는 빠르다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
을 안고 걷는 발아래, 땅속에 박혀 아주 작고 동그란 얼굴을 내밀고 있
는 “지적 도근점”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발길을 멈추고 한참동안 말
없이 그 녀석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네는 추운 겨울 도로에서 도근점 매설을 했단다. 때마침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가다가 묻는 말이 “엄마! 저 사람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하더라고. 그런데 이어진 엄마의 대답이 “응! 못 배
우면 저런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너는 저런 일을 안 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해. 알았지?” 기가 막히고 씁쓸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모자
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휙- 지나치는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나더란다.
지적 도근점. 길을 걷다 보면 쉽사리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무심
히 지나칠 수 없는 한 직장의 희로애락이 배여 있는, 책으로 치면 겉표
지와 같고, 직장에선 배지와 같은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빠른 발걸
음으로 무심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과, 그 보다 더 무심하게 달리고 있
는 자동차의 물결 끝에서, 아득히 이십오 년 전을 떠올려 본다.
사무실 바닥의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직원들은 측량장비를 갖춰
현장으로 나가기 위해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고 있다. 측판, 삼각대, 줄
자, 폴 대, 지적도면, 측량용연필, 면장갑. 등. 특수업무란 이름으로 도
로측량과 하천을 등록하는 측량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르는 직원
들. 업무 시작시간, 한 시간 반전에 벌써 측량장비를 들쳐 메고 현장으
로 나가는 일이 다반사인 아침 풍경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은 서울과 바로 붙어있는 지리적 위치임에도 불구
하고 손바닥만한 시가지와 농경지가 대부분인 군 지역이었다. 측량장비
를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수단은 개인이 마련한 오토바이와 택시를 이용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대부분 일선 출장소의 사정이니 특별할 것
도 없지만 어쨌든 지금에 비하면 대단히 불편한 이동수단이었다. 더구
나 손전화는 고사하고 변변한 공중전화마저 없는 지역에서 하루 종일
내리쬐는 햇볕과 싸우며 측량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도로측량은 그런
대로 할 만하다 하겠지만, 하천을 등록하기 위한 측량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하천에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면 차라리 낭만이라도 있을 법한
데 악취 풍기는 오수라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점 하나를 찍기 위해 바
지를 걷어 부치고 코를 움켜쥐는 오수와 썩을 대로 썩은 시궁창을 마다
않고 들어가 기사님이 지시한 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니 그 애
로사항이 오죽하겠는가. 만약에 이러한 모습을 가족들이 보았더라면 안
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백발백중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이러한 문제보다 더한 문제는 식사문제이다. 오가는 것은 가
뭄에 콩 나듯 가끔씩 나타나는 자동차뿐이고, 무심히 떠가는 하늘의 구
름뿐인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은 업무로 오는 외적인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입사 이듬해 가을, 도로측량이 시작되었다. 나의 가슴에 아직도 잊지
못하고 빠알간 능금처럼 남아있는 가을 이야기이다. 논과 밭은 수확을
기다리는 열음들이 풍성하게 자리 잡고 있어 어디를 둘러보아도 마음이
풍요롭기만 하다. 가을 햇살은 그 사이사이마다 후덥지근했던 여름날의
열기를 걷어 버리고, 바람도 햇살도 알맞게 풀어져, 고슬고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미스 김, 이따가 도회 엄마랑 점심가지고 현장으로 나와. 아마 그 때
쯤이면 노온사리 근처쯤에서 측량하고 있을 거야.” 팀장이신 김모 기사
님이 아침 일찍 측량을 하러 나가면서 일러 준 말이다. 그러잖아도 가
을바람에 오감이 근질근질하고, 자꾸만 창밖으로 목을 길게 늘이며 그
유혹을 견디고 있는데, 이게 웬 반가운 소리란 말인가. 나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분된 가슴으로, 점심때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은 왜 그리 더디게 가고, 분침과 시침은 덩달아 기울기를
외면하는지.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장부를 뒤적여 보지만 눈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소장님과 단 둘이 지키는 사무실은 가을 햇살의 무차별 침입에 무담
시 멀쭉해지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미스 김, 나야. 도회 엄마. 사무실 아래로 내려와.” 조심스럽고도 다
정다감한 목소리에
“네, 네.” 나는 다급하게 대답하고 돌아서
“소장님, 김기사님 사모님이신데요. 직원들 점심 준비 해 가지고 사무
실 아래서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저 사모님과 함께 현장에 다녀올게요.”
소장님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다녀올 뜻을 비쳤다.
“어, 어! 그래, 그래. 얼른 가지. 배들 고프겠구만.” 소장님께서도 아
침에 김기사님한테 들었던 터라 한사코 얼른 가라고 하신다.
얼마나 기다렸든가. 아침과 점심이란 단어 사이가 이렇게 길 줄이야.
나는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사모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택
시를 잡았다. 사모님은 오전 내내, 아니 어제부터 준비했을 직원들 점심
을 얼마나 푸짐하게 마련했는지 양손이 묵직하였다.
사모님과 나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직원들이 측량하고
있는 노온사리를 향해 달렸다. 회색 벽에 둘러싸인 갑갑한 사무실을 벗
어난 기분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직장에서 직원들의 점
심을 준비해 나가는 이 특별한 경험을 그 무엇에 빗대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마치 모내기의 새참을 내 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 어떤 직
장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정말 그 기분은 미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곁에 계신 사모님은 나와는 기분이 다르실 것 같았다. 남편의
애로사항이 피부에 더 가까이 다가와 만감이 오고갔으리라. 사모님은
평소에도 김기사님께 극진하신 분으로 늘 넉넉하고, 누구든지 포근하게
감싸 주시는 그런 분이시다. 내가 결혼을 하고도 근무를 계속 할 때, 아
기를 가져 입덧이 근 여덟 달 동안 계속되었었다. 그 때도 사이사이 불
러다 먹을 것을 챙겨 주시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어코 해 먹이셨
던, 큰언니 같으신 분이셨기도 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를 아끼는 방법이
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 분은 남다르신 데가 있었다. 바로 사심 없는
정성이 온 몸에서 우러나와 김기사님 이상으로 직원들을 아끼고 보살펴
주시는 것이었다.
직장 직원이 아니라 한 가족과도 같았던 정말 까마득한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런 모습을 그 어디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모내기 새참마저
도 손전화 한 통화이면 해결되고, 심지어 다방 커피까지 마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은 때로 곤궁에 처해 보고 불편도 해 보아야 사
람살이의 참 맛을 알 때가 있다. 무한경쟁에서 약육강식이 따로 없는
이 속도가 지배하는 삭막한 제 3세계와 같은 곳에서, 직원들의 손장갑
을 빨아주던 여직원의 손길을 기대하는 것은 과연 페미니즘을 역행하는
것일까? 양성평등시대를 거슬리는 것일까. 결혼한 여직원을 터부시하던
시절에, 결혼을 하고도 과감히 근무를 했던 나였지만, 업무 중 동료 간
에 오갈 수 있는 자잘한 정이, 속도가 갖는 미명아래 점점 이질화되어
가는 것이 때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속도는 또 다른 속도를 요구하고, 가속도가 붙은 속도 속에 소우주는
또 무엇일까.
내 머릿속의 속도를 생각하며 씁쓸한 기분으로 계속 길을 걷는다. 훗
날 누군가 나처럼 길을 걷다 “지적 도근점”을 만나게 되면 무슨 생각에
잠길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순행을 하거나 역행을 한다 할지라
도 어쩔 수 없이 속도 속의 자장면보다는 가을 길을 달려 직원들 점심
을 나르던 아날로그 시절이 더욱더 간절할 터.
바람이 분다. 자동차는 아까보다 더욱더 그악스럽게 달리고 있다. 플
라타너스 나뭇잎이 장중하게 흔들린다. 푸른 물기 머금은 낙엽 한 장,
가만히 떨어져 살포시 지적 도근점을 덮어 준다. 나는 나무 끝을 바라
보았다. 아니 그 너머 하늘을 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기사님
사모님 얼굴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에 보름달처럼 환하게 떠올라
빙긋이 웃고 있다.
-제8회 지적문예수상작.
김금희 수필가 sowoun59@hanmail.net-------------------
여수출생. 인천 거주. 월간『문학세계』수필등단.
시와비평『두레문학』수필분과회장.
공저 『두레문학』. 국어국문학 글쓰기 교사.
말하지 않아도
김 금 희
?
?
세탁기에 침대 커버를 한바탕 돌려, 앞 베란다와 복도 건조대에 툭툭
털어 널어놓았다. 그리고 우두커니 한참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이불 빨
래 참 쉬워졌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푹푹 삶아 풀 먹이고 다림질해서
이불깃 시치느라 부산했었는데.’ 혼자 중얼거리며 커피 한 잔을 탔다.?
이불?빨래하는 날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새 하얀 옥양목이 파아
란 하늘과 어우러져?바람에 펄럭이는 것도, ?널어 둔 빨래 사이를 오고
가며 술래잡기 하는 것도?, 넓은 이불 호청을 온 몸에 휘감아 보는 것
도 좋았다. 풀 먹인 호청을 어머니와 맞잡고 기우뚱 기우뚱 접는 것도,
?무엇보다 어머니의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듣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
이 좋았다.
이 세상에 그 어느 음악기호가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따라 올 수 있
을 것인가.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안 주어서도 안 되는 그 소리는 지
금 와서 생각해 보면,?다름 아닌 중용의 소리가 아닐까 싶어진다. 툇마
루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며 듣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는 나에겐 참
으로 안온한 소리였다.?그것은 마치 어머니 등에 업혀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소리와도 같았다고나 할까.
어쨌건?공들여 손질한 이불 호청을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 시치시는
데, 바늘땀도 아주 고르게 간격을 두시고 ,네 귀퉁이의 귀도 정확하게
잡아 고르게 하셨다.
나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넓게 펼쳐 놓은 이불 위에 벌렁 누워 철없이
뒹굴라치면, 애써 귀를 맞추어 놓은 호청이 비뚤어지건만, 어머니께서는
단 한마디 나무라시거나 책망을 하지 않으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어
머니의 마음이 다사롭게 전해져 공연히 “엄마-.” 하고 길게 불러 보곤
했었다.
?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손질한 이불은 해 어름이 다 되어 시
치기를 마치게 되는데, 그런 날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잠자리에 눕게 된다. 또 그런 날은 씻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얼른 가
서 씻고 오게 되는데, 어머니는 이불을 덮어 주시며 잊지 않고 “우리
강아지, 고운 꿈꾸고 잘 자소.” 하시곤 엉덩이를 다독여 주셨다.
사실 이 인사는 잠 잘 때마다 잊지 않고 해 주시는 내 어머니의 잠자
리 인사였다. 그러나 ?깨끗하게 새로 손질한 이부자리를 덮어 주시며,
해 주시는 잘 자란 인사는 왜 그렇게도 다정다감하고, 가슴 뭉클하도록
?행복했던지. 바삭바삭하고 고실고실한 호청의 상쾌함과 하루 종일 노
고를 아끼지 않으신 어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에, 내가 정말 공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어쨌건 어머니께서는 먹는 것은 조금 부족한 듯해도 잠자리는 공주처
럼 왕자처럼 가려 자야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이 일은 내가 결혼할 때까지, 아니 결혼을 하고서도 친정에 가 혹시
라도 자야할 일이 있으면 어머니는 내게 그 인사를 잊지 않고 하셨다.
“우리 강아지, 이쁜 꿈꾸고 잘 자소” 그리곤 예의 엉덩이를 가만히 두
드려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시는 엄마의 손길이 싫지 않았지만 괜
스레 “엄만-, 내가 애기예요?” 그러면 엄마는 “그러엄, 애기지.” 하셨
다. 나는?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고, “엄마-.” 하고 괜히 길게 불러 보기
도 했었다.
이런 내가 살림하기에 어설퍼 보이셨는지, 결혼하고 얼마 간 맞벌이
하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이불 손질만은 어머니 손으로 ?꼬박꼬박 해
주시곤 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 두고 아이들 낳은 후에는 '곱게 키워
주신 것도 고마우신데 결혼 한 딸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나' 싶어 그런
일로는?못 오시게 했다. 그리고?나는 나 혼자 이불 손질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내가?여전히 못 미더우셨던지 ?어머니는? 새로 나오기 시
작한? 비단 이불 호청을 마련해 주셨다. 하지만 풀 먹이는 일이 필요
없는 비단 호청은 일손을 덜고 가벼워 좋기는 한데, 쓰면 쓸수록 뭔가
허전하였다. 나는 얼마간 사용하다 다시 풀 먹이는 옥양목으로 이불 호
청을?바꿔 버렸다. 그랬더니?아이들도 좋아라 했다.
부전자전 짝퉁 모전여전(?).?나도 내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셨듯이 나
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해 주었다. 이불을 덮어 줄 때마다 해 주는 인
사도 그렇고, 새 하얀 이불 호청에 풀을 먹여 고슬고슬한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그랬다. 사실, 어머니 품을 떠나서도 한 동안, 아니
내내 잊지 못하는 것은 풀 먹인 이부자리이다.??다사로운 어머니의 품
같은 그 이부자리를?그 무엇에다 비유하겠는가. 호청을 빨며, 삶으며,
풀을 먹이며, 다림질을 하며 떠오르는 것은 오직 아이의 행복해 하는
얼굴인데, 어느 어머니가 자식의 그런 얼굴을 보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또 그렇게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종일 곤하게 지낸 피로를 풀어야 하는
데, 또 어느 어머니가 싫다고 하겠는가.
그랬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 없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태 전부터 이
불 커버에 풀 먹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또 나의 이러한 소리 없는 변
화에 가족 모두들 별스럽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체력이 달린 탓도 있고, 바빠진 탓도 있고, 꽤가 나는 탓도
있고.?
그런데, 며칠 전 아들아이가 느닷없이
“엄마, 요즘엔 왜 이불 호청에 풀 안 먹이세요?” 하질 않는가!
“왜? 해 줄까?” 했더니.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 사랑이 식은 것 같아-”
해서 둘이 한참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었다.
그래. 그건데. 그런 건데. 입을 열어?굳이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
도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내가 알았고, 또 내 아이들이 안 것인데.
나는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고, 널어놓은 이불 커버를 쳐다보았다. 그리
곤 엊그제 아들아이가 한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데... ’
나는 일어나 냉동실에 넣어 둔 감자 전분을 꺼냈다. 그리고 가스레인
지에 불을 켜고 풀을 쑤기 시작했다. 오늘 밤 제 침대에 펴진, 풀 먹인?
고슬고슬한 이불 커버를 보고 아들아이가 뭐라고 할까를 생각하니 빙그
레 웃음이 나왔다.
“오- ㄹ. 엄마, 사랑이 돌아왔나요?”
[신작시]
혼자 떠도는 섬
강 현 옥
바다 안,
조용히 아침 물안개 거느리고
서 있는 작은 바위섬
쉼 없이 어루만지는 물살 간지러워
멋쩍은 표정 짓고 있는 그대지만
빈 가슴 위무하듯 물새 떼 날아와
총총걸음으로 훌훌 떠나면
파도에 밀려오는 고독을 감추려
밀물 속으로 자맥질 한다
소금기 절은 몸으로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안을 수 없지만
낮의 거친 파도소리 가슴에 품고
하루를 접으면 가만 가만
별들이 다가와 단절된
언어들을 풀어 놓는다
잊혀버린 시간들,
초록색이었던 나,
산자락에 연기 피워 올리고 있는
마을을 걷고 싶다
겨울을 밀고 있는 봄
미처 다 녹지 못한 마음의 언저리
추억의 갈피 넘기며 읽고 또 읽는다
갈피갈피 깃든 추억 새기며
육지가 되는 꿈 꿔 보지만
허상의 메아리로 돌아올 뿐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내 자아상은
밤이면 별들의 언어를 찾아 길 나선다
강현옥 ksw0500@hanmail.net -----------------------------
경남 가야 출생. 동명대힉교 신문방송학과 석사.
월간『한국시』(1994)등단.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관리국장.
부산지회장. 시집 『패랭이꽃』.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반딧불이가 있다
강 현옥
애기소* 계곡에는
반딧불이 유충이 아직도
다슬기 안에 살고 있다
은하수처럼 흘러
노숙을 감행한 반딧불들은
어느 깊은 계곡의 쉼터를 찾아 흘러 다닐까?
쉼터를 찾아 날갯짓 할 수 없는
지체부자유의 반딧불이
외줄에 걸린 양, 숨줄 팔딱이며
흘러간 은하의 세계를 꿈꾼다
만성 기관지염에 하루하루가 적자인 삶이
다슬기 사는 마을에 이주하면
반딧불이처럼 꺾인 생에 불 밝힐 수 있을까?
소용돌이에 휘감긴 삶의 문턱에
시대의 거친 숨소리
애기소 다슬기 속 유충처럼 갸름갸름
배회하는 바람에 깃들고 있다
*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계곡 이름.
동백 숲 - 첨찰산
김 영 천
?
?
더러는 머문 채
활짝 피우진 않았으나
저리 반기며 사모하는 눈빛을 보라
너의 인고의 물관부를 따라 가지 끝에 이르고
마침내 멍울처럼
한 송이 꽃망울로 머물고 싶으나
겨울바람만 차다
가지를 힘차게 뻗은 상록수림에 벗하여
눈 끝은 하늘에 있나니
떨어진 꽃잎을 무심코 밟아
비릿한 내음이 산중으로 꽉 찬다
盆 안에 갇혀 홀로 핀 꽃 한 송이는 차마
어찌할까
*첨찰산 ; 전남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산
김영천 poet48@hanmail.net -------------------------
1948년 광주출생. 목포 한일약국 경영(現). 2001년 목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문학 석사). http://member.kll.co.kr/poet48/.
http://www.cyworld.com/poet48(나무나루)
http://cafe.daum.net/poet48(시의향기로 여는마당)
북극성?
김 영 천
한번도 완전히 떠나지 못하면서
미명의 깊은 새벽마다
북극성을 치어다봅니다
언제쯤 풀썩,
바람처럼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유가 그리 쉽던가요
무너지듯 주저앉아
상한 발등이나 주무르면서도
마음은 이제도 하늘에 두어서
언젠가는 떠나리라 작정합니다
그 때쯤이면 깊은 잠의 당신도
비로소 깨어날까요
해가 미처 떠오르기 전
맨날 상처 같은 별자리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제 삶을 안도합니다.
아버지의 자동차
김 은 수
내 소유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반사경 앞에서 겉옷을 벗었다
너무 춥다
매몰찬 의료 정비사는 재생 불량를 외친다
바람이 부풀은 다리에서 빠져나간다
공구에 옹골지게 얻어맞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사이좋게 위기를 맞는다
잘려나간 팔뚝의 아우성
호흡곤란으로 잠시 마취상태에 놓여있다
세상은 마취상태라는, 카피라이터의 글귀를 새기며
묵묵히 성형수술대에 오른다
한때 역주행하던 반항아 지금 자동차를 내려다본다
겉 싸게 밑으로 구겨진 주름살
일방적인 달리기
가해자가 망가뜨린 자동차는
아버지를 떠나 부서진 내 다리였다
김은수 kjs3973@hanmail.net --------------------
평택 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철학) 과정 중.
『시와비평』등단. 한?중작가회, 산다촌문인회원.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두레문학』.
현 논술학원 강사&학원장.
어둠은 새가 되어
박 세 영
맨 날 비슷한 어둠이 을씨년스럽게 숨을 쉬었다
반듯하게 누워 하늘로 쏘아 올린 별
은하수 별 무리 사이로 되돌아올 때마다
내 몫이 있어 그리움도 늘 익숙했다
밤새도록 낡은 문 삐걱대는 그림자
안으로만 소가지를 부렸다
빛바랜 천장을 누비다가 벽에 붙어 결국
떨어지지 않던 징소리 유폐되어 멈추는 발걸음소리
목까지 차올라 온 퀴퀴한 곰팡내 침묵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 감각은 후각뿐이었다
오감이 살아나는 해가 다시 떠오르기는 하는 걸까
원을 그리며 떠밀려가는 어둠은 새가 되어 날았다
박세영 young04894@hanmail.net ---------------------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월간『문학세계』시 등단.
문학넷회원. 세계시낭송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향기나는 편지』.『청산호의 노래』.『두레문학』
종이배
박 세 영
잠시 머물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빈약한 시간을 타고 곤두박질치는 초침이
조급한 흐름을 알고 허둥댄다
깔딱 깔딱 짧은 직관으로 뒤척이며 내비치는 속마음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항해법을 후회하면서도
이미 늦어버린 망설임에 서슴없이 물결이나 타야지
자신만을 의지할 식구를 생각하다 보면
작정 없이 흐르는 물결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게다
시간이 갈수록 하냥 젖어오는 마음 무거워도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피안을 품고
그냥저냥 흘러가야만 되는 줄 알았을 게다
불안한 흔들림에 초조하게 두 팔 벌리고
허망하게 물에 빠졌을 때를 차마 말하지 못한다
십자가 발뒤꿈치에 끌리는 긴 그림자
지는 해 벌겋게 물든 수면 위를 흘러간다
찰랑찰랑 흔들리는 조바심 추스르고 또 추스르며
빈방Ⅱ
성 은 경?
문을 열자 햇살 한 줌 들어서며 잠자던 먼지를 흔든다 잠이 깊어 민망했던 먼지 풀썩 일어서더니, 햇살에 섞여 잠시 어룽거리다?다시 드러눕고?방구석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날아와 내 볼을 비비다가 머리카락을 만진다 다시 앞가슴 단추구멍으로 들락거린다 건전지 닳아진 기계톱 소리를 내며
길거나 짧거나 혹은 높거나 낮은 그 소리, 같은 소리가 아니다 창틀에 웅그려 숨 고르던 무당벌레는 방안 여기저기를 곡선으로 이어놓는다 귀엣말 같은 속삭임을 달고 순간과 영원을?이어놓는
저 소리, 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을까 그간의 하고 싶었던 말 다 해보려는 것일까 그래서 여태 기다렸다고, 날개 터는 법 잊지 않았다고, 내 얼굴 잊지 않았다고 말하는 웅웅, 앵앵, 잉잉, 빙글빙글 돌며 털어놓는 저 소리를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가 바깥으로 나와 주기를 바래 함께 호흡하기를 바래 문 열어 기다리지만 빈 방안만 맴도는 무당벌레, 거기서 최후를 맞겠다며 창틀에 가만히 엎드린다
등짝에?달라붙는 환청 가만히 떼어놓고 빗장을 지른다?닫히는 문에?튕겨 나온 햇살이 일그러진다 비가 내리려는지 우레 소리에 창문이 흔들린다
성은경 sedmsrud@hanmail.net -----------------
경남 창녕출생. 한국방송대학교 초등교육학과 졸업.『문학저널』등단. 대한문인협회 운영위원. 사랑의 연가(시사랑음악사랑)당선. 내 앞에 열린 아침(엠아이지).
『두레문학』 공저. http://myhome.naver.com/sedmsrud56
말 태우기
?????????????????????????????성 은 경
세모의 밤은?초저녁부터 ?익어버렸다 홍조 짙은 사람들의
2인분, 3인분 말들로 왁자한?식당 한 켠?중년 부부,
소주병 두어 개 금세 가벼워졌다?삼 겹 오 겹으로 돌돌 말렸던?말들을 조심스레 불판에다 굽는다
잠시 굽히는가 싶던 말들이?눈물 맺히다 타고 있다?
말 바꿀 겨를 없이 아니,
앞뒤 뒤집어도 똑같은 말이 말없이 타들어간다 어렵사리?추가한 둥근 마늘 같은?말을 젓가락으로 끌어내려 애쓰지만 끌려나오지 않는다
자정 지나도록 태워버린 말들 불판에 두고 나선 문 밖, 가슴에서 차마?꺼낼 ?수 없었던
말은, 훅~! 시커먼 연기로 빠져나온다
숨은 벽
???????? ? 이 병 훈
?
벽을 붙잡고 있던 타일 한 장이
우연히 금 간 후로
뾰루지 난 양심의 가시처럼 늘 가슴이 아팠다
?
큰맘 먹고 아침부터 서둘러 금 간 타일을 뜯어냈다
타일 뒷면을 붙잡고 있던?딱딱한 시멘트 덩이 사이로 어수선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
벽 뒤에 또 다른 벽이 숨어 있었다
늘 뒷모습도 잊고 살았다 금 간 자국 뒤에 허공이 숨어있는 줄 모른 채 살아왔듯이…
이병훈(서울) eunseo6319@hanmail.net --------------------
전북 부안출생. 계간 『문학사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간사
『보리수』시낭송 회원. 공저『두레문학』.
고령(高靈)의 달
???????? ? 이 병 훈
?
우륵 선생의 가야금도 곤히 주무시는데
누군가 작심을 한 듯 *회천에
*소가천에 풍덩 빠져있다
구름 속을 들락거리더니 더는 참을 수가 없는지
알몸으로 들어가 있다
별들도 덩달아서,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목욕을 하고 있는지
물소리만 찰랑거린다
*고령(高靈)땅 어디엔가 은밀히 숨겨져 있을
대가야의 보물을 찾아내려는지
시리게 흐르는 물속을 비추며
행여, 부정이라도 탈까 싶어
구석구석 씻고 또 씻고 …
*고령(高靈) :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대가야국의 도읍지 * 회천과 소가천 : 가야산 계곡에서 흘러 운수면, 덕곡면을 각각 통과하는 하천
할미꽃
이 용 일
“메누리 앞세우고 딸년 둘 있는 것, 그마저 디져 버리고……”
죽지 못해 산다며 검버섯 주름을 치켜뜬다.
주태백이 아들놈이 던져 놓은 예닐곱 살 조막손 움켜쥐고
밭두렁 길 절며 멀어지는 꼬부라진 걸음이 더디다.
여린 봄날 어머니 무덤가에 핀 할미꽃 한 송이
돌아앉아 고개 숙인 속울음이 검붉다.
모진 시집살이 지워 줄 겨를 없이
첫눈 따라 떠나 간 여식(女息)
눈 감고도 못 잊어 말없이 찾아와 돌아앉아 피었나?
책장 속 먼지 쌓인 앨범을 편다.
회갑기념 사진 속 환한 얼굴들
그 안에 나를 닮은 모습들이 웃고 있다.
한 평생 남김없이 주고 떠난 속 빈 달팽이들이
흑백 웃음 짓고 있다.
꿈속에라도 오시려나, 얼른 잠자리를 편다.
이용일 yilee-62@hanmail.net ----------------------------
이천 출생. 『문학세계』등단. 세계문인협회 회원. 세계 시낭송
협회 회원. 문학넷 회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장.
현직/바스프건설화학 코리아㈜ 근무(부장). 공저『시와비평』.
『두레문학』. http://myhome.naver.com/yilee_62/
등굣길
이 용 일
내 어릴 적.
째깡이네 집 앞 골목길에서는
무시로 부지깽이가 춤을 추었지.
돈 달라고 떼 쓰는 잰 걸음 좇아
달래다 지친 젖은 손, 헛 매질 바쁘고
동구 밖 돌아 서는 쓰린 가슴엔
종일토록 소쩍새 울고 있었지.
장대 끝, 쌀 잠자리 젖은 날개 마를 즈음.
봉자네 집 앞 신작로에서는
희한한 왕복달리기 벌어졌었지.
육성회비 내 놓으라고 악을 쓰는 잰 걸음 좇아
거친 입, 늙은 걸음 아침을 흔들고
지아비 잃은 설움 토해낸 봉당에는
동전 몇 잎 찡그려 나부라졌었지.
울다 지친 어린 손
꼬-옥 안아주던 할머니 치마 속엔
꼬깃꼬깃 묵은 돈 눈물 훔치고
언덕 위 우뚝 선 초등학교는
늦은 걸음 종소리로 마중 나왔지.
사랑, 그 이후
임 정 택
와룡산 연못가
수런수런 안겨들던 안개비
하, 사랑으로
가슴 숭숭 뚫려
수면 밑으로 첨버덩!
사랑은 곡예를 하듯
외줄기 안개비 타고 내리며
가없는 자맥질만 할 줄이야!
임정택 lim3204@hanmail.net ------------------------------
삼천포출생.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수료. 『시와비평』등
단. 울산문학교과연구회 사무국장. 울산문인협회. 전국충의백일
장 장원. 현상문예공모 장원. 『두레문학』부회장.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홈피 http://eelp88.com.ne.kr
감나무 밭에 서면
임 정 택
당신이 떠나던 날
들몰 쪽으로 멀어져가던
상여 꽃자락 여울진 감나무 밭.
엷은 햇빛 받아 일렁이는
정갈한 진진초록 감잎들 사이
알맞게 자란 감들
가을 한 켠 올망졸망 무춤 서 있다.
텅 빈 감나무 밭 사이
가을 낮볕에 그을린 당신의 웃음살
낯익은 환청으로 가만히 밀려오고
그리움은 먼 가을 언저리를 넘는다.
낙동강에 비 온다
허 양 희
봄비가 온다 매말랐던 몸들이 젖어든다 밖으로 멀어졌던 심장 박동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두 눈 부릅뜨고 문 두드린다 고욤나무 마른버짐 속으로 스며드는 봄비소리 귀 기울이면 말라가던 우듬지가 환해지고 집 멀리 발걸음 여울진다 돌아온 동박새 붉은 부리 깃털 내려 걸터앉은 참샘골 가장자리 두드려 본다 두드리면 푸르게 쑥물 빠지고 태초에 눈빛 밝아오는 촉 울긋불긋 붉은 꽃물 들어버리면 어찌해 강물 가볍게 시작을 알린다 헝클어진 머리 곱게 비질하듯 봄기운 고쳐먹은 들녘 바람 낙동강 너머 환하게 비가 내린다
허양희 silverbrain2004@hanmail.net --------------------
경남 지수 출생. 마산 거주. 월간『문학세계』등단 문학넷회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시와사상』회원.공저『두레문학』『젊은 시인들』
우주 관측
허 양 희
마스카라 올린 검은 눈썹 사이로
반짝이는 싸라기별이 보인다
우주를 목 빠지게 바라보던 눈송이가
밤새도록 녹지 않는다
몽상에 젖은 별의 노래는 블랙홀 속에서
의식불명 잠꼬대로 촉수가 자라난다
발을 뻗지 못한 무중력 상태의 꿈들이
빙글빙글 돌다가 굴절되어
천장에 탁탁 박히고 있다
카시오페이아자리에 몰래 들어와
머리맡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빙점을 넘나드는 유리창이 깜빡거리자
눈빛 딱 마주친 동공으로 막 따라 들어온
오리온 별 팽팽하게 당겨
궁을 일치시킨 내 남자를 바라본다
검색을 허용하다
허 용(許 鏞)
?
플러그에 꽂힌 전기가 뜨겁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
자유롭게 끓어 넘친다
버튼을 누르고 검색을 해본다
서툰 활자들이 더듬거리며
손가락 끝을 타고 모니터 화면에
검색어 ‘허용’을 쏟아낸다
~을 허용하다 외 0개의 카테고리
15개의 사이트
낡고 빛바랜 글자들 보다
때론 바코드가 엉덩이에 찍힌
325429 시(詩)를 쓰고 싶다
<325429 네 이름 맞아>
허 용 hbleh@hanmail.net --------------------------------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근무.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시와창작』시, 수필 등단. 시와창작작가회.
홈페이지 / cyworld(허용), 네이버 블러그(허용)
시집『삶의 노래와 향기』.공저『두레문학』외 다수.
난지도
허 용
나 어릴 적 섬에는 종달새 지저귀고
모래밭 땅콩고랑에 아담한 새둥지가 있었네
어머니와 나룻배를 얻어 타고
큰아버님 땅콩 밭에 추수하러 갔었네
엉겅퀴, 민들레꽃 홀씨 흩어지는 버드나무 길
한참 걸어가면 메뚜기 튀어 오르고
다리 힘 오른 개구리 펄쩍 펄쩍
쇠 삼태기로 한강변 모래밭을 훑으면
이름 모를 조개가 한 아름
현대판 난지도에 물은 흐려지고
쓰레기 더미 위에 골프장이 들어섰네
종달새 지저귀고 조개가 놀던 때
민들레꽃 홀씨 흩어지는 둥지 찾아
모래밭에 새 발자국 선명하였네
꼭꼭 숨어라, 삼짇날 머리카락 보일라
황 말 남
엄마 나, 어디서 태어났어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겨울잠
에서 깨어나는 삼월 삼짇날 다리 밑에서 주워왔나요 그 해 산이나 들에
나가 나비를 맞아 처음 본 나비 색깔로 그 해가 좋은지 나쁜지 내다보
는, 다리 밑에서 의례 나는 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나비점을 보고
싶어요 진달래꽃 찹쌀 반죽에 봄을 지져 먹은 엄마 젖을 빨고 싶어요
엄마 나, 주워 오는 날 능선에 걸린 노을처럼 환희로 물들었나요 엄마
의 다리 밑으로 얼마나 많은 강물이 물살을 높이며 흘러갔는지 알아요
내 짧은 다리 사이로 아이가 태어나고 엄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희망
이 생겼는데 비닐봉지에 묶여 다리 밑에 버려진 아이는 숨도 못 쉬고
꼭꼭 콘돔을 뒤집어 쓴 배신감 어느 지상의 흙에 닿았을까 숨바꼭질 할
때 엄마 다리를 잡고 머리카락 보이지 않게 숨으면 세상이 다 가려질
것 같았는데 앙 하고 울어버리면 엄마가 달려 올 것 같았는데 엄마는
이제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되어 태아처럼 다시 둥글게 휘어지고 있는데
엄마, 다시 다리를 부여잡고 차곡차곡 올라가고 싶어요 탯줄을 다시 잡
고 올라가요 엄마가 다시 내 딸이 되고 나는 다시 엄마의 엄마가 되어
동글동글한 우주로 돌아가요 삼짇날 태어나 무성하게 자란 머리카락이
땅 속 양기를 다 빨아 먹었나 봐요 벌어진 입 사이로 자꾸만 헛물켜는
기호가 나와요 정성껏 약수를 길러 날름거리는 입을 막아야겠어요 하늘
밑 추적추적 허물을 덮는 봄비가 내려요
황말남 rmfldna2002@hanmail.net -------------------------
1968년 울산출생. 『시와비평』등단. 다울문학. 산다촌문인회.
글쌈.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http://member.kll.co.kr/rmfldna200
장 마
황 말 남
비어 있기에 다시 출렁이는 말 위에서 돌보지 못한 당신의 갈색 비밀병
하루에 두 번 촉촉하게 매끈한 아름다운 비밀을 환하게 넣어 봐요 매력
적인 눈매를 만날 수 있는 순간이죠 눈부신 하얀 반전을 갈색병에 넣어
봐요 투명함의 깊이가 차곡하게 비칠 듯 병의 색깔이 투명해져요 깊숙
이 숨겨둔 멜라닌색소 하나하나까지 추억 밖으로 녹아들게 하죠 부드럽
게 수직을 세우는 빗살 수평선의 빨랫줄에 걸린 젖은 말과 조화를 이루
죠. 작은 책방에서 여름을 지키고 있는 당신의 어깨 위로 바람의 비눗방울이 무지개로 퍼지는 것을 즐기고 있어요 위험한 여자 그녀가 두려운가요? 흑색 눈동자가 비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갈색 비밀병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세상을 향해 또박또박 침묵의 덮개를 벗어 던지고 지지고 볶으며 까발려주는 저런 여자도 사랑을 하네요 세상이 점 점 좋아지려나 봐, 비어 있기에 다시 출렁이는 말 위에서 낡았지만 벗겨진 하트와 진분홍 입으로 쫀쫀하게 짠 열쇠꾸러미 벽에 걸린 물컹한 언어들. 왜 하필 반대쪽으로 계속 내렸는지 깊게 물어 보지도 않고 급기야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지구촌을 수직으로 내리고 있는 무료한 점, 사소한 변수라도 생겨 달려와 줄 수는 없는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 앞서 갈 뿐인데 동기도 모르고 수식어가 되었죠 제3자의 눈엔 물어보지도 않았고 유난히 탈도 많은 광폭한 장마가 휩쓸고 간 황량한 자리 모든 변수가 오직 보슬비로 변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할 일이지요 구멍 뚫린 하늘밑 공포로 머리에 꽃을 꽂고 옥상에서 스트립쇼를, 훌쩍 번지점프를, 딱 거기까지 몇 년 전 처음으로 거침없는 당신의 그림을 찬찬히 훑는 텅 빈 갈색 무표정이 툭 터지는.
격월간『문학미디어』신인문학상
2007년 1.2월호 김대근 시인
조롱박꽃
김 대 근
세월 흘러 귀밑머리 색 바래고
세월은 눈매마저 깎아 궁글어졌지만
육신은 고기 몇 근 남기고 있는데
낡은 양봉원 간판
길게 그림자로 눕던 곳
15 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깊게 팬 흉터도
세월은 갈아낸다지만
여전히 아프게 남은 상처 하나.
담 넘어 조롱박꽃
그녀처럼 웃는다.
매미 우는 사이로
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샌다.
가을볕, 된장단지
김 대 근
가을은 한숨을 쉰다.
스쳐가는 바람이
똑... 똑... 똑...
단풍소식을 전해도
떠나버리면 가을햇살이 찾아왔다가
힘없이 돌아갈까 봐
제자리를 지키는
단지 속 가을이 한숨을 쉰다.
찬 서리 맞아야 사과도 맛이 들듯
가을볕 아래 된장단지는
구절초 향내로 익어간다.
가을은 스스로 익어가며 한숨을 쉰다.
九節草
김 대 근
마치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끼리 눈빛으로 말 하듯
꽃, 들에 피는 꽃들도
가을에는 타박타박 걷는 나그네에게
또르르 말을 건다.
코스모스는 살랑거리는 바람 일으켜
후욱~ 가슴 때리고
골에, 들에 九節草는
香氣로 말을 건다.
구절초는 꽃이 아니다.
눈뜨고 보는 그런 꽃이 아니다.
눈감고 온 몸 비우고서야 비로소
뼈마디에 오롯이 담겨지는 꽃이다.
[심사평]
김대근님의 복고풍의 토속적 이미지를 높이 산다. 자칫하면 세월 너머로
숨어버릴 귀한 기억들이 숨을 쉰다. 그것이 꼭 ‘하늘과 눈’에서처럼 민중의
한이 아니어도 좋다. 너와 나의 어제의 그 풋풋함과 아늑함으로 충분히 미
학적이다. <가을볕, 된장 단지>의 ‘익어가며 한숨을 쉬는’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의 고운 한숨을 닮았다. 된장 단지의 묵은 된장맛 또한 그렇지. <조
롱박 꽃>도 정답다. ‘담 넘어 조랑박 꽃.../매미 우는 사이로/그녀의 웃음이
그렇게 샌다.’
<구절초>의 ‘온 몸 비우고서야/뼈마디에 오롯이 담겨지는 꽃’도 좋다. 그
리고 <보리밥 한 광주리>의 소박한 묘사, 예를 들면 ‘파란 하늘이나 띄어
서/단숨에 들이킨다’ 라든지, ‘없어도 하냥 좋았던 그날,/보리밥 한 광주리
의 그 행복’이 정답다.
어떻든 많이 써본 솜씨여서 수준급이다. 앞으로 좋은 시가 기대된다.
- 민용태(고려대학교 교수)
김대근 roadtour@hanmail.net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등 준교사(1982 경북교육청)
『문학미디어』등단. 『두레문학』회원.
한국불교문인협회. 미디어작가회 아람문학공모전 수필당선.
블로그“반디불”운영(www.bloginfo.net)
[등단시인 신작]
소 금
김 대 근
너는 네 아버지 닮았다.
반짝이며 빛나는 눈빛
눈부시게 하얀 살빛
네가 가진 모든 건
네 아버지 닮았기 때문이야.
네 아버지는 매일 아침이면 熱에 들떠
온통 붉어진 몸을 이끌고
내게로 와서는 정념을 태우곤
아쉬움에 풀이 죽어 돌아가지.
올 때와 같은 빛깔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날마다 게처럼 자궁 가득히
네 아버지의 그 하얀 마음을 잉태하곤 하지.
鹽夫들이 삶의 가래를 들고 와
내 자궁을 따글~ 긁어
그 마음을 가져갈 때마다
나는 처얼썩- 처얼썩- 그렇게 울지.
나는 밤마다 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반짝이는 별로 태교를 하지
네가 작은 빛에도 반짝이는 건
밤마다 삭힌 그리움이지.
너는 눈부신 태양
그 잘난 정액마저도 펄펄 끓어 넘치는
네 아버지의 자식이야.
육봉화 은어(陸封化 銀魚)
김 대 근
찰나의 시간 동안도 꿈을 잊지 마라.
순간순간이 우리의 귓불을
칼날처럼 스치고 지날 때마다 꿈을 찾아 떠나라.
꿈을 잊으면 그 순간
바다를 망각한 슬픈 은어가 되리라.
그리움이란 가는 자
그리고 오려는 자의 전유물이다.
바다를 상실한 은어는 그저 피라미에 불과하다.
살점에서 풍기는 수박내음도 구린내로 변해 가리라.
회귀(回歸)한다는 것은 솔롱고스 찾아 헤매다
비로소 깨어난 꿈같은 것.
사람에 의해 바닷꿈이 거세된
대청호 육봉화 은어들
더 이상 가야 할 곳도 와야 할 곳도 없다.
그들에게 남은 꿈은 무엇일까?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신인문학상
2007년 1.2월호 김현태 시인
염 낭
김 현 태
천 번을 생각해도비천한 길 걸어 왔다."뼈"야 한 울 속의 뼈야."살"아 한 울 속의 살아.그렇게 곱씹으며 부를 때한 몸 문드러져철철 흐르는 추깃물 소리.생육의 뼈와 살 사이염낭.
봉 인
김 현 태
친구야, 세상에 매장된 비밀은 없단다.우편배달부의 오토바이에 실려오니까.점선을 따라 아래로 당기면쉽게 드러나니까.위험천만한 세상,흰 티 하나 달랑 걸친 나.봉인되어 있다.
타루(墮淚)
김 현 태??
주객 간 생욕生慾의 경계는 없는 듯한데누구의 분진도그리운 통제구역이 있는 듯한데액체로 증발하는 내 피두루마리 화장지에둘둘 말려모난 놈처럼 정 맞을 때신생의 아침이 내 타루에 젖지 않을 때.
[추천의 말]
육체의 상상력과 극적인 반전김현태 씨의 응모작 가운데 짧은 시 세 편을 골랐다. 다소 긴 시편들은 버려야 할 군더더기가 더러 눈에 띠었다. 김현태 씨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 혹은 육체에 대한 자폐적인 상상력이다. 자기비하에 도취된 이 폐쇄성은 묘하게도 갇혀 있지 않고 극적인 반전을 이루며 세상을 향해 발을 내민다. 그럴 때 김현태 씨의 시는 반짝 빛을 발한다. <봉인>에서 보듯이 시적 화자는 위험천만한 세상에 흰 티 하나를 걸친 채 봉인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에 매장된 비밀이 없을 때, 봉인을 뚫고 한 발을 내밀 때,
생육의 뼈와 살 사이에 염낭이라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생긴다.(<염
낭>)
이 염낭이 바로 김현태 씨의 자화상일 것이다. 그 모습은 물론 고정되
어 있지 않다. 다양한 표정을 우리 시단에 보여주기 바라며, 정진을 부
탁한다.추천위원 : 오세영 원구식
[등단시인 신작]
정다면체 외 1편
김 현 태
천 번을 생각해도
비천한 길 걸어왔다.
얼핏 뒤돌아보아도
앙꼬 없는 찐빵,
옆구리 터진 만두,
누가 보아도 구미 당기지 않는 길
걷다 절박한 순간 발 멈추었다.
볼록한 정다면체를 구상하고
지표 관계없이 자유자재로
잘 구를 수 있기 바라며,
달처럼 둥글게 만들어
꿈자리 끝까지 구르기 위해
올가미에 걸린 사슴처럼 발악한다.
첫걸음의 의미에 다가가지 못해
휴지로 버려진 긴 시간 횡단해 버린 지친 몸.
사지를 벌리고 쓰러졌다.
쓰러진 몸은 무광의 별이었다.
내 몸이 광채 없는 한 개의 오각형이라니??????.
공식은 내 몸속에 투명하게 붙어있어
수많은 종이 자르고 버리는 동안
덧없이 쌀벌레로 너무 멀리 기어왔다.
이제 수많은 나를 복제하는 일이다.
내 몸 오각의 꼭짓점에 복제한
수많은 나를 하나둘 이어가는 것.
유리벽에 붙은 마음하나
김 현 태
"잠시 부재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인 없는 가게입구에 불쑥
마음하나 붙어있다.
바라본 눈이 을씨년스럽다.
항상 있어야 할 사람
오늘은 자리 비워둔 채,
흰 가슴에 박힌 파편 한 조각이
마음하나 붙들고 이리저리 흔든다.
다양한 삶들이 넘나드는 초입에서
오늘 흔들리는 것은 어찌 나뿐이랴?
저 유리벽에 붙은 마음하나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떨어질듯 아슬하다.
바람에 덜미 잡힌 저 삶은
내 중심 흔드는 인과응보다.
벽에 걸린 시계가
내 시선에 독을 품는다.
10분, 20분, 30분 바라보며
내게 묻는다. "잠시"와 "조금"의
길이가 얼마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고 본적 없는
그 길이의 수치를 자꾸 되묻는다.
"잠시"라는 사슬에 묶인 몸속으로
밀려와 출렁이는 붉은 파도가
빠르게 시간을 걸러내며
간과 폐 사이를 왕래한다.
김현태 ksw6718@hanmail.net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수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등단.
『구팡돌문학』 편집장.
『두레문학』회원.
[초대시]
다큐멘터리
권 정 일
?
1분
벚나무 그늘 아래, 런닝바람의 노인 셋이서 민화투를 날린다
청홍의 붉은 마디가 서로의 손끝에서 부러진다
훈수하듯 바람은 몇몇 구경꾼들 틈을 뱀처럼 지나간다
2분
개 한 마리가 주인을 끌고 벚나무 밑을 끙끙거리며 지나간다
가랑잎처럼 주글주글한 주인의 가장자리가 줄을 잡고 끌려간다
내다보던 햇빛이 묶인 줄을 자른다
3분
각시붕어 같은 여자가 굽고 있는 붕어빵 지느러미, 염천(炎天)이다
업고 있는 아기는 옆으로 삐져나와 연신 입을 오물거린다
아기의 어항에는 똑같은 붕어가 모로 눕는다
4분
추파춥스를 물고 한 여대생이 지나간다
Touch Me. 싱싱한 빨간 가슴이 주위를 긴장시킨다
5분
우주에 금을 내며 쌔엥~지나가는 오토바이의 머리는 연두빛이다
꽁무니에선 실한 매연이 쏟아진다 초록이파리 하나 떨어진다
6분
허리에 찬 국방색 전대를 찰방거리며 노인이 골목을 끌고 사라진다
보루박스를 찢어 만든 팻말에 <대박+덤>이라고 씌어 있다
노점상의 손수레를 단속하는 노란 완장이 지나간다
7분
마을버스 한 대가 지나갔고, 그 사이 <대박+덤>이 골목을 밀고 고개를
내밀었고,
아기의 붕어는 일렬횡대로 누워있고, 청홍의 꽃은 계속 떨어졌고,
찬찬히 들여다본 칠 분 동안의 거리는 어머니였고,?
?? * 탄줘잉은 말했다 ‘마음을 열어놓고 세상을 관찰하라고.’ ?정말 그
랬다 짧은 시간 동안...
권정일 시인 약력?----------------------------------------
1961년 충남 서천 출생.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지막 주유소』. 사화집『숲은 길을 열고』
http://blog.naver.com/heilsi/140025842967/
불온한 풍경
고 경 숙
불우했던 저녁은
하늘에 핏빛 노을을 불 지르고 달아났다
기진맥진한 산들이 사지를 늘어뜨리고
바다로 빠진다
어둠을 옹호하는 것들은
풍경의 외곽을 좁혀왔다
짠내 나는 바람이 그물코를 빠져나와
내걸린 망둥어 몸통을 관통하는 소리
숲을 치고, 문짝을 치고, 들판을 향한다
종일 빛에 우호적이던 작물들은
흰 비닐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저항했다
사방은 이제 명도 제로
문명은 없다
밤이 길까?
가끔 갯벌 밖으로 능쟁이 몇 마리
정찰 나왔다 사라진다
지리멸렬한 해안선을 따라 술 취한 파도
한소리또하고한소리자꾸또해도
휘청이는 것이 바다뿐이랴
속 깊은 갯바위, 밤새 그 주사(酒邪) 받으며
불온한 풍경 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고경숙 계간『시현실』2001년 등단. ----------------------
서울 출생. 제2회 수주문학상 우수상. 제4회 하나. 네띠앙 인터넷
문학상 대상.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회원. 부천여성문학회 회원.
수주문학상 운영위원. 『난시』동인. 부천예총 기획위원. 시집
『모텔 캘리포니아』
* [두레문학] 구독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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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과 제133호 비영리민간단체(NGO)등록 시와비평문학회 공인
단체가 운영하는 http://cafe.daum.net/emunhak 『두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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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강좌], [두레문학]을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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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미의 하루
김 연 성
?
다시 하루가 시작 된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에게나 안전지대란 없다 어제의 평화가 오늘, 우리의 불행으로 닥쳐올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를 꿈틀거리게 하는 건 스스로를 버리지 못한 마지막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씨발, 세상을 통째로 산으로 옮기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살았던 나무며 강이며 집이며...가 모두 수마에 휩쓸려 떠내려가는데 고통을 움켜잡고 잠시 쳐다본 하늘은 시커멓게 덮쳐 오기만 하는데 내가 그렇게 탐내던 `매미`가 온 세상을 단 하룻밤에 망가뜨리는 동안 다만 캄캄한 공포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 오직 나 하나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면서 내 식구들이 안전하기를 바라면서 비닐하우스보다도 얇고 가볍게 살고 싶었을 뿐, 희망이란 얼마나 찢기 우기 쉬운 욕망이었던가 절망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희망이었던가 폐허 위를 헤매던 슬픔이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분노가 될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비 그치고 바람 잔잔한 오늘, 꽉 막힌 구멍을 기어 나와 쳐다 본 하늘은 시리도록 맑고 서러운데 다시 무너져 내릴 집을 지으려고 서둘러 먼 길을 재촉 한다
?
김연성(金淵星)? -----------------------------------------
1961년 강원도 양양 출생.
2005년 계간『시작』등단.
웹월간 詩『젊은 사람들』동인.
서울시청 재무과 근무.
양송이 수프
김 혜 영
터키에서 온 남자가 제가 만든 양송이 수프를 홀딱 다 마셔버렸지요. 가스에 불을 켜고 양송이 수프를 다시 끓였어요. 밀가루가 하얀 눈처럼 내리면 지루한 당신과 나는 스키를 타러 갔던 그 해 겨울을 떠올려요. 당신의 눈은 머루처럼 새까맣고 난 당신의 하얀 맨발이 궁금했지요. 그 발 만지고 싶었어요. 못에 찔린 흉터가 있는 두 발로 방으로 들어왔지요. 잠잘 시간이 지났군요. 화로에 불을 지피고 양송이 수프는 식어가고 당신을 닮은 아이가 태어났지요. 찢어진 청바지에 얼룩이 졌지요. 아이를 무서워하는 아빠 외계인처럼 꾸물거리는 태아를 보며 하얗게 울었지요. 요리사는 양송이 수프에 하얀 통후추를 갈아서 뿌리는군요. 물렁물렁하게 스며드는 양송이 수프를 그릇에 담아 터키 남자에게 건넸지요. 한 스푼 마시더니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양송이 수프도 잊을 수 없을 거야 양송이 수프 더 없나요? 요리사는 다시 앞치마를 두른다. 내일은 출장 요리를 가야 돼요. 레바논 남자들이 몰려온대요
김혜영 시인&문학평론가. ---------------------------------
경남 고성 출생. 부산대학교(1999) 영문학 박사.
1997년 [현대시] 등단. 계간 [시와 사상] 편집위원.
동의대, 부산대 출강.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웹 월간詩 [젊은 시인들]발행인.
http://cafe.daum.net/youngpoets
폐 가
마 경 덕
부스스 머리를 풀어헤친 집이 운다 빗물 고인 장독을 들여다보고 앞마당 잡초더미 봉숭아 한 그루 붉게 터졌다 조랑조랑 꽃을 달고 어리둥절 서있다 바람 한 점에 픽, 바지랑대 쓰러지고 놀란 집이 퍼뜩 한쪽 발을 쳐든다 사타구니 뵈는 집 더는 숨길 게 없다고 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턴다 누가 알맹이를 빼먹고 껍질만 남겼을까
마경덕 --------------------------------------------
전남 여수 출생.??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시향』동인.??시집 『신발論』?
시 읽는 남자
?문 정 영
?
봄 깊어서 문 밖은 풀향으로 아득한데
새로 쓴 시 몇 편 전화로 읽어주는 남자의 목소리가 명자꽃 피운다
산중에서 우는 새는 적막도 들어 올린다든 데
시 읽는 동안 꽃들은 남자의 몸에서 조금씩 붉어져간다?
그래서 아직 청년인 것 같으나 들려주는 시가 시리다
기어코 세 편의 시를 다 읽고서야 마음의 결 다듬는지
낮술 한잔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쉽지 않다
지는 해 담아서 누군가에게 한 편, 한 편 시를 읽어준다는 것
나만 알고 너는 모르는 시가 아니다
서로의 가슴에 꽃불 지르는 거다
동백과 동박새와 같다
시 읽어주고 수화기 밖으로 나간 남자의 등 뒤로
명자꽃 노을이 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붉은 구름떼를 읽어주고 싶다
*? 2007년 4월 8일 오후에 신현정 시인이 시 읽어주다
??
문정영 --------------------------------------------
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현재 계간 「서시」 부주간
우연법
박 윤 배
큰물 휩쓸고 내려간 뒤 강의 중심에서 밀려난 흙더미에 떠내려가다 멈춤 씨앗일까 뒤늦게 밀어올린 참외의 싹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급기야는 둥근 열매 매달고는 넘실대고 있다 곧 무서리가 내리면 제대로 익지도 못할 열매를 맺어서 어쩌겠다는 것이냐 늦게 본 자식 하나 이웃들 걱정해도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는 늘 어여쁨인 개똥참외 척박한 살림에 자식 하나 더 키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만은 굴곡의 강이 만들어 준 희망 하나가 넝쿨이 되고 잎이 되고 열매가 되고 세상의 낮은 곳을 휘도는 물길 곁에서 다부지게 살아내는 생이길 우연이 아닌 필연의 생이길 낮은 가을 강물 목청을 들려준다 근력 약해진 내 팔을 베게 삼아 품에 밤새 파고들면 웅크린 늦둥이 숨결이 고맙다 무서리 내리기전 잔뿌리 다치지 않게 아이와 삽으로 떠와서 집안에 옮겨 심은 뒤, 베란다를 건너온 아침햇살이 게으른 내 늦잠 깨우기도 전에 나는 씩씩하게 일찍 일어나 사냥을 나선다. 오늘도 수렵도의 사내처럼
박윤배 ybpsss@ yahoo.co.kr ----------------------------
강원도 평창 출생. 대구매일(1989)신춘문예 시 당선. 『시와사상』(1996)신인상. 시집[쑥의 비밀],[얼룩]
장수 구간(區間)
안 효 희
전주에서 장수 구간은 장수長壽 구간이 아니다 구불구불 26호선 국도에는 피 흘리며 잠든 족제비, 수달이 누워 있다 쏜살같이 달려온 눈부신 빛 보았을 뿐 순간 그 다음의 기억은 시간에서 사라졌다 맨 살을 뚫고 뼈 속까지 빛화살이 박히고 목숨은 완벽하게 제 역할을 해 내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널브러지는 것 굽어 있는 전신을 펴는 것 온 몸의 피와 그 피가 가진 힘을 빼고 마지막 통증까지 쏟아내는 것 쏟을 것 모두 쏟고 피륙만 남아 마침내 바닥이 되는 것 생은 그렇게 한 번 떠오르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경계를 넘었다 몇 개의 신음이 탄생하기까지 그 신음의 뼈가 오롯이 가루가 될 때까지 길은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장수 구간이 해체될 때까지
안효희 --------------------------------------------
부산 출생. 계간『시와 사상』(1999) 등단.
『시와 사상』편집장.
시집 『꽃잎 같은 새벽 네 시』
?그 늘
?????????????????????????????? 이 동 호
오동나무 아래 누워있었다. 푸른 잎사귀들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그늘의 애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그늘을 껴안고 잠들었다. 사랑이라도 느낄 듯 하였다. 숲 밖은 땡볕이 클라이맥스였지만, 빛은 아직 나무의 그늘을 침범하진 못했다. 그늘은 세상의 중심지처럼 어두웠다. 그늘 밖에는 오동나무 잎사귀 그 한 장의? 그림자라는 듯 낮 시간이 드리워져 있었다. 세상의 모든 그늘들이 나무 밑을 빠져나가 활보하기 시작하는 저녁이 오면, 하늘에는?표식처럼 붉게 노을 어리고 나는 오동나무 아래 텐트를 치고, 오동나무 그늘은 오동나무를 빠져나가 캄캄한 밤이 된다. 세상의 모든 빛은 낮 시간 동안의 오동나무 그늘처럼 작아져서 텐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 나를 포근히 끌어안는다. 까만 그늘들이 빠져나간 오동나무 밑에는 여기저기 밝은 빛의 그늘이?생겨나고?그것을 껴안고 사랑이라도 나눌 것처럼 나는 이리저리?뒤척인다.
이동호 ------------------------------------------------
김천출생. 대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대구매일신춘문예(2004)등단.
부산 신라중학교 근무.
제6회<시산맥상>대상.
한통속
???????????????????????????????? 이 인 주
?
?
?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듣지 않는 몸을 끌고
자갈치 시장을 들어선다 출렁거리는 마음
고누지 못하는 몸은 삐거덕거리는 고물선이다
녹슨 몸에서 물새울음소리가 난다
물결에 감겨 이리저리 뒤채는 마음
몸이 풀어주지 않는다 바다를 항해하는 일이
늘 짝사랑이다 마음은 벌써 오륙도인데
몸은 아직 자갈치이니
마음에서 몸을 빼내는 일이나
몸에서 마음을 떠내는 일이
고집 센 선장과 항해사다
고장난 선체에 지친 그들이
노를 던지고 파도에 밀리는 걸 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몸은 마음을 꽉 껴안고
마음은 몸을 키처럼 붙들고 있다
결별을 꿈꾸며 끊임없이 귀속하는
한통속
자갈치 시장에서 마음이 몸을 막 떠난
아나고 한 접시를 오독오독 씹어먹는다
우리가 꿈꾸는 자유는
죽음 뒤에야 씹힌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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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주 --------------------------------------------
경북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2006년 <서정시학> 등단
<수주문학상> <신라문학대상> 수상
시인과 숲
최 동 문
그는 살아가면서 자주 점점 낱말에 걸려 넘어졌다
그를 외면하고 떠난 진실한 재주꾼들 뒤에서 넘어졌다
그는 넘어지는 순간이 모인 삶이 전부라고 믿었다
넘어지는 순간에 넘어지지 않는 무한의 시간을 꿈꾸며
그는 만유인력이 지배하는 숲으로 들어섰다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나 걸음을 옮길 때 나뭇잎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는 숲 속에서 정맥이 돋아난 주름진 손으로 거목을 만졌다
나무는 흘러내리는 송진 속에서 나이테를 감추고 침묵했다
해마다 나이테가 늘어나고 솔방울 사이로 품은 둥지는 폭풍우에 흩어졌
다
폭풍이 지나간 숲은 공포를 걷어내고 전기톱에 하나씩 넘어졌다
숲은 종이로 다시 태어났고 나이테만 남은 밑둥치는 어린이 놀이터로
남았다
그는 숲에서 놀았다, 잤다, 불을 피웠다, 먹었다, 시를 썼다
시는 차곡차곡 통나무 집안에 쌓였다 그는 사전에서 글자를 깨물며 도
약했다
숲이 내뿜는 향기를 관통한 혀가 시계를 멈추는 노래를 불렀다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래에서 와서 과거로 지나가는 숲 속에 선 뿔을 잃은 유일한 동
물이었다
그는 네 발과 꼬리를 얻고 나서 숲을 예언할 수 있었지만
상상력을 깊은 숲의 수맥에 맡기고? 망각의 강에 띄웠다
상상은 오랜 전 금 책 표지에서 반짝거린 적이 있다
그는 영감을 숲의 유일한 우물에서 길어와 맑은 물과 섞었다
가속이 붙은 편리한 기계들이 상상력을 규합하여 시장을 만든 시대에
저물어 가는 밤 앞에서 그는 여명의 숲에게 발자국 씨앗을 뿌리며 떠돌
았다
숲은 해풍으로 모래 언덕을 경계 짓는 방풍림을 허물었다
그는 그 순간에 숲이 만든 씨앗을 먹는 한 마리 짐승으로
숲의 세력 속에서 숲이 만든 경계선을 지우고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그가 거친 나무를 탈 수 있는 손발을 가진 것을 흙은 거부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에서 시인의 피가 흘러내릴 즈음에
숲을 감싸고 있는 푸른 운명이 그와 함께 시를 쓰기 시작했다
최동문 ------------------------------------------------
1967년 경주출생. 가톨릭신학대학. 동국대학교.
『현대시』1996년 등단.
시집 “즐거운 거지”, “아름다운 사람”
밤의 여행자?
추 종 욱
바람이 불고 습도가 낮은 우주를
그가 배회한다
별빛이 켜진 대문들을 지나,
거기 그의 행성이 있다 채널을 바꾸듯
대문을 들어서던 그가 외계인처럼 중얼거린다
그의 눈이 잠시 은하계 속을 떠돌았다
벌써 이만큼 우주가 웃자라
행성으로 오는 행로를 좀체 찾기 어려웠다
그가 살았던 행성 속에는 오래 전부터
먼지만이 이사와 살았던 흔적,
라이트를 켜자 지문 같은 거미줄이,
안방 문을 열자 목소리 같은 문소리가
먼지 쌓인 소파가 등 뒤에서
그를 조용히 껴안는다
창밖은 무성하게 자란 우주로 극성이고,
그의 삶은 애초부터 무성의했다
방구석 고물TV는 같은 채널에 고정된 채
또 다른 은하 한 곳을 비밀처럼 알려준다
마음은 엔진을 달고 마음껏
우주 끝을 활보했던 적이 있었던가.
불빛처럼 지붕에 올라 멀리 떨어져 있는
수많은 행성들을 찾으며
그의 여행은 좀체 깨지 않는다
그가 꿈속에서 다시 깜빡 존다
예전에 날린 적 있던 비행접시가
거실 잠든 머리맡에 불시착한 채
깨진 창 길게 불어오는 바람과 교신한다
그의 집이 무중력 상태로 우주 속을
날고 있다는 것을, 잠든 그는
잘 알지 못한다
추종욱 --------------------------------------------
월간『문학세계』 2002년 등단.
난시(暖詩)동인. 시산맥회원.
푸른 독
하 재 청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가구처럼 말이 없는 아내
허리가 아프다며 찜질 방 가잔다
말없이 앞정서니 따라나서는 아내
한쪽으로 기우뚱한다
벌써 나무토막만도 못한 몸이다
누구는 풍이 들었다 하나
그녀의 몸에 언제 바람 들 날 있었던가
바람도 잘 들면 오히려 새처럼 가벼울텐데
아마도 바람 먹은 것은 아닐 것이다
어둑할 무렵 길리 찝질 방에 가서 보니
어둠 속에 푸른 독이 빛나고 있었다
세상의 독기를 내뿜으며 앉아 있는 아내
토굴 속에서 눈만 반짝 빛내고 있는데
어찌나 섬뜩한지 눈 둘 바를 몰랐다
아침적저녁으로 내뿜는 내 몸의 독기
고스란히 다 받아주느라 온 정성 다했구나
아, 저것이 바로 낯선 그 사람이 되게 하였구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낯선 그 사람
부부는 닮는다더니 바로 내 몸의 독기였구나
도무지 알 수 없던 얼굴 이제 알 것 같다
저 낯익은 푸른 독
하재청 ohorahjc@hanmail.net ---------------------------
경남 창녕 출생, 『시와사상』(2004) 등단,
[추천시]
디스코텍
권기만
박새 꽃기린 괭이눈 노루귀 제비동자 기생풀 홀아비바람꽃 애기똥풀 흰각시붓꽃 각시취 며느리밑씻개 미나리아재비 노인장대 악수를 하자는 것인지 한판 붙어보자는 것인지 춤판, 무더기 무더기 벌여놓고 들어와 놀아보라고 맘껏 투정을 부려보라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은근슬쩍 꼬집는다 은근슬쩍 입술을 내민다
<시작 노트>
어느 날 우연히 길가에 피어 있는 애기똥풀을 보다가 발돋움하듯 피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부터 내게 꽃은 자기 주체가 분명한 존재로 다가왔다.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화려하고 멋스런 모습으로 내게서 다시 태어났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고 노래 하고 있지만 내가 만난 꽃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았는데 내게로 다가와 있었다. 다가와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유혹하고 꼬집고 내 입술을 향해 발돋움하듯 입술을 내밀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듯 은근슬쩍 내 감성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은근슬쩍이 가지는 뉘앙스는 아주 치명적이다. 거기에 유혹당하면 기억 끝까지 함께 흔들려야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바람이 분다는 것은 꽃의 투정이 시작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권기만 약력]
권기만 poksel@hanmail.net ------------------------------
월간 [문학저널] 등단. 울뫼 동인.
한국문협.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시산맥회 회장. 『두레문학』사무국장.
공저: 『두레문학』. (주)현대자동차 근무.
http://www.openminded.co.kr/you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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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8 ⓒ 울산여성신문
주남저수지
권 기 만
누가 벗어놓은 신발일까
신지 않으면서 다 신고 있다
달도 신고 구름도 신는다
무당벌레 장수하늘소도
발성법 연습하듯 또박또박
나뭇잎 떨군다
가창오리 날개에 돋아있던
천둥과 번개의 잔뿌리
구름 운에 맞추어 물결 첨벙인다
발 디딜 틈 없는 고요
물방개로 수놓은 신발코
개구리도 풍덩! 신어본다
갈대는 언제부터 신발 군락지가 되었나
풀로 자란 무성한 바람
우우- 떼지어 신어보고 있다
우우- 떼쓰듯 신어보고 있다
무중력?
권 기 만
테라스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본다
지구를 관통해 달 플랫폼에 착지하는
먼저 떠난 내 안의 발걸음
지금쯤 인간의 시간을 돌아보고 있겠지
사랑 속에도 이별 속에도 있는 인력
아픔이 커서 끄는 힘도 큰
풀리지 않는 저 마법 같은 중력을 넘어
그는 지금 어디서 떠돌고 있을까
카페 타임머신에 가는 사람들은 다 우주인이다
-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로얄 위스키 무중력
선불입니다
얼마죠
일만 광년입니다
안드로메다행 열차는 언제 떠납니까
카프카의 城에는 왜요
제 아내가 거기에 살죠
빛치마로 얼굴을 가린 안드로메다는
무게를 버린 나의 눈동자
천정에 떠 있는 무수한 소행성 사이로
도대체 나는 누구를 떠돌았나
술잔 가득 출발을 서두르는 빗방울
한입 털어 넣으면
혈관을 미끄러지며 뿌옇게 달려가는
은하철도 999
거칠 것 없다 없다
시동을 거는 천둥소리, 단 한번의
저항도 없이 쏟아지는 한여름밤의
폭우! 포우!
먼 바다 협주곡 5번
카페 타임머신이 거문고자리를 횡단하고 있다
[추천시]
상 처?????????????????????????????? ?김 정 숙참 다행이네요 이 부위는 주름이 지는 곳이라서 나이 들수록 상처가 숨어 버리지요?봉합을 마무리한 환부에 반창고를 붙이며 의사는 말한다 상처치료 전문가라는 반백은 어쩌면 상처 날 부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저물 녘, 피 철철 흐르는 이마를 감싸고 그를 찾아온 '사랑'이란 면역 없는 이름의 병 그 무모한 스토리의 에필로그를 미리 읽기라도 한 것일까??아니면 환부에서 흐르는 피를 세월의 흔적 지나는 길목으로 안내하는 기막힌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저 익숙한 손놀림의 정확한 박자 속에는 반백의 머리칼 아래로 흐르는 무심한 표정 뒤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가 주름인 양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까
[시작 노트]
익숙하다는 말 속에는 상처가 켜켜로 쌓여있다. 하여 파도치는 격정을 잠재우고 견고한 박자를 만들어 낸 그 말은모퉁이를 돌 때에도 유연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이른 아침 엄마의 도마소리가 그랬다.도마 위에서 정확한 박자로 물러나던 왼손과 같은 박자로 다가서던 오른 손.그들이 만든 음표가 지나간 자리에 가지런히 줄을 서던 무채. 당시엔? 그저 눈부신 마술이었다도마소리를 품은 엄마의 한결같은 옆모습에 이따금 상처가 숨쉬고 있었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나서야 알았다. 아마도 오월의 어느 저녁이었을 것이다.
봉합을 마무리한 의사의 익숙한 손놀림이 응급실 밖에서 달달 떨고 있
는 내게 말했다.
"주름 지나는 곳이라 괜찮아요" .엄마의 옆모습에서 숨 쉬던 상처가 의사의 손가락 사이에서 환하게 웃었다.익숙하다는 말 속에는 상처가 켜켜로 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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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3 [07:18] ⓒ 울산여성신문
육아일기Ⅰ
김 정 숙
외출에서 돌아 온 딸아이가 피아노를 친다
Let it be? Let it be
비틀즈가 연신 딸꾹질을 해 댄다
분명 더듬거릴 실력은 아닌데
되돌이표 부딪고 올 때마다 더욱 출렁이는 악보
가는 허리가 위태롭다
하루를 조금씩 당겨오던 오선지의 발걸음 빨라진다
되돌이표 붙들고 제각각 다른 박자의 연주를 시작한다
건반 위에서 길 잃은 손가락
급기야 어깨 들썩인다
이쯤에서 붉은 치마라도 덮어줘야 하나
점점 박자는 속도의 옷을 입고 또 입고
숨가쁜 악보는 오르가즘을 향해 질주한다
Let it be Let it be
한 때는 시간을 넘나드는 연결어미였던 비틀즈가
모서리 거친 배를 내민다
미완의 문장이 뜨거운 눈시울로 두리번거린다
너도 나중에 네 자식 키워 봐라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어머니의 눈물이
칼날 되어 와르르 쏟아진다
오선지의 얽힌 선들이 정사를 끝내고 벌러덩 드러눕는다
끈끈한 정액들로 축축해진 심장에다 대고
비틀즈가 여전히 딸꾹질을 해 댄다
굳이 내 아킬레스건 찾아 뿌리 내리려는 열일곱 내 딸, 내 사랑아
Let it be? Let it be
골 절 김 정 숙
궁금하다
재결합을 꿈꾸며 누워있는 뼈들
가장 극적인 장면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일일연속극처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
액땜한 셈 치세요
관록과 연륜을 자랑하는 엄지
화려했던 감탄사들이
붕대 속으로 몸을 숨기자
뼈와 뼈 사이로
칼자루 쥐고 있는 시간이 들어 앉아
면죄부를 팔고 있다
재빠르게 전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진액들
관성을?누르며 시간과의 뒷거래를 시작한다
?
보험금은 잘 챙겨 보았나요
상처 치료가 우선입니다
홍화씨가 최고이지요
기운 넘치는 문장들이 목소리 높일 때마다
더욱 욱신거리는 손가락
어느새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뒤엉킨 사랑판에서 살아남은 글자들이
붕대를 풀고 나올?새로운 역사서
내 삶의 다음 이야기가 무지 궁금하다
?김정숙? kjs4451@hanmail.net ---------------------
『한맥문학』등단.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시인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편집국장.?공저『두레문학』.?홈피 : http://river.kll.co.kr/
[추천시]
해파리 ????????????????????? 김 현 철
해파리 가네 삼킨 것들 토해내고 쿨렁거리며 하얗게 속이 질린 해파리 가네 삼킨 것이 무엇이든 토해내면서 받았던 것 모두 주고 앞으로 가네 남긴 만큼 멀어지는 수평선 앞에 남은 것 없이 죽을 해파리 가네
[시작노트]
<해파리를 보는 몇 개의 시선>
앞으로 간다는 것은 떠난다는 것이리라.
오늘을 버리고 내일로 가는 것이며
관습과 전통에 배반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리라.
비우는 것의 고통으로 해파리는 쿨렁이며 가네.
마신 만큼 토해야 길을 나서는 역마의 천형(天刑)으로 해파리가 가네.
버려야 앞으로 가는 것도 뱉어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도 한낱 욕심이
라면, 수평선을 꿈꾸는 해파리가 마시며 뱉어내는 것들은 물인가, 환희
인가? 고통인가?
앞으로 나가는 자가 감내하는 고통의 희망,
자신을 비워내고 가벼워진 영혼으로 떠나는 자만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러 가네, 해파리가 가네.
비워내는 자만이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네.
받은 만큼 비워내야지.
그럼, 그렇고말고.
비워내지 않고서 어찌 새 세상을 보나.
허나 어쩌나, 남겨두고 싶은 달콤한 사랑이면 어찌하나.
남겨두면 남겨둔 만큼 줄어드는 삶, 짧아지는 삶, 저기 수평선은 아득한
데. 뱉어내는 아픔? 다시 하얗게 삼키며 해파리가 가네.
차마 뱉지 못하고 머금고 싶은 사랑이면 어쩌나.
김현철 약력
김현철 ceokimhc@hanmail.net --------------------
울산 현대중공업. 부산대학교 졸업.『시와비평』등단.
두레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울산)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http://www.uwnews.co.kr/
2007/05/09 ⓒ 울산여성신문
[추천시]
장미의 침실
성 자 현
?
속살 같은 꽃잎 몇 장으로
단단히 아물린 성곽
꽃봉오리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아득한 냄새
비밀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려고오래도록 그 앞을 서성였네내 눈은 꽃 보다 느리고모르는 사이 장미꽃 벌써 만개했네
붉은 융단이 펼쳐진 장미의 밀실
뿌리도 줄기도 잎도 아닌
그 무엇을 위해 단 한 번 피었던가
?
무구한 샘, 씨방이 부풀고
장미꽃 스러지네
끌어안고
그 샘으로 함께 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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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달콤한 향기로 넘실대는 장미의 계절이 되면
세상이 거대한 침실처럼 느껴진다.
꽃의 피어남을 보려고 오래도록 지켜보지만
그것은 헛된 수고,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기도 전 장미는 활짝 피어나고,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을 눈치 챈다.
그곳이야말로 우리가 당도하고 싶은 곳이 아닌가......
지고지순한 아름다움 앞에서
무한한 슬픔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단 한 번 피어나서 씨앗 하나 남기고 스러지는 장미의 일생이
나의 일생과 닮아 있는 것만 같다.
성자현 프로필
??
?
성자현 seaofluv@hanmail.net 대전 출생. 『시와비평』등단. 산다촌문인회.
『두레문학』웹마스터. 울산문인협회.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http://www.uwnews.co.kr/
2007/05/16 ⓒ 울산여성신문
막(膜)
성 자 현
?
?
밤이면 서로를 바라보는
달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얇은 막이 있습니다
?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이편에서
낯모르는 우주를 건너다봅니다
아니,
비눗방울 같은 우주 밖에서
달을 훔쳐봅니다
아니아니,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는
?
모스 부호 같은
푸르고 붉은 별들의 깜빡임
해독할 수 없어
그저 바라보는 광활한 우주
어두운 공간을 배회하면서
?
당신을 훔쳐봅니다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짜여진
희미한 막을 통해
새어나오는 선율을 따라 흥얼거리거나
당신의 실루엣을 보면서
막연히 추측해 볼 뿐입니다
?
나의 시선을 느끼나요?
당신이 이편을 바라볼 때
어리석게도 나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
당신에게 가는 통로는
무중력의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적막을 찢고
무한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드는 일입니다
기억할 수 없는 기억?
성 자 현
내 기억의 동굴은시작에서 닫혀? 있다? 나의 희망은 끝날 것이다 희망의 은빛 실을? 잡은 그 끝에오랜 기억이 기다리고 있는가 기다려 꽃 같은 얼굴로기쁘게 날 맞아줄 것인가비밀스럽고 두려움에 가득 찬문이 열리는 순간침침하고 눈물 나는 기억들도 먼지가 되어 날아갈 것인가
?
그렇다면 나는기억의 창고를 소중히 안고 갈일말의 고통도 느끼지 않으리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며시시각각 어깨를 누르는모호한 무게를 벗고기억 저편에 있는 내 어머니를 맞으리
[추천시]
파도?????????????????????????? 이 민 화물언덕을넘고 넘으며무수한 새끼를 안고먹이를 찾는 양떼처럼서로들 몸을 밀어가면서 움찔움찔 달려가다가움찔움찔 되돌아오는퍼런 고리의아우성?<시작노트>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바다에 갔다. 알프스의 새소리가 끊이지 않
는 햇빛 만발한 푸른 초원 위로 복사꽃보다 더 고운 어머니의 미소가
잔잔한 파도를 능숙하게 조절하고 있었다. 수많은 어미양이 새끼 양을
데리고 언덕을 오르내리고 있는 모습처럼 이른 아침의 정자바다는 어릴
적 내가 오랫동안 노닐던 어머니의 가슴, 섬진강이었다. 먹잇감이 나타
나면 곧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잠깐의 휴식을 취하게 하고, 새끼양이
큰 바위에 걸려 넘어질라치면 서로의 몸을 밀착시켜 위험성을 좁혀주는
잔잔한 파도, 파도는 영락없는 이 땅의 내 어머니였다. 정갈한 모습을
잃지 않으시고 내 저린 마음을 싹싹 씻어내려 주셨다. 파도에 닦인 내
작은 심장은 꽃잎처럼 하르르 웃었다.'퍼런 고리의 아우성'은 어머니가 자식에게 요구하는 약간의 훈계라고 볼 수도 있고 또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바라는 약간의 소망이 깃든 것이라 하겠다. 어머니와 자식의 연결고리인 탯줄처럼 퍼런 고리의 인연은 영원불멸의 사랑이라 하겠다.이민화 약력
?이민화? uree77766@hanmail.net? -----------------------
하동출생. 『문학저널』등단. 『시와비평』등단. 두레문학회 부회장. 문
학저널. 산다촌문인회. 한국문인협회(울산). 울산시인협회 회원.공저/ 글벗, 내 앞에 열린 아침, 『두레문학』
http://www.uwnews.co.kr/
2007/05/01 [14:02] ⓒ 울산여성신문
아버지의 고무신Ⅴ - 막내편
? 이 민 화
몸에 열이 올라 오후 내내 이불을 들고 있던 그녀가 아프다
아버지가 두고 가신 사랑 때문이라면 누구나 큰 사치라고 생각할 일,
그런데 그녀는 아직 아버지에 관한 세심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야 맘대로 가늠할 일, 다만 수수께끼 같은 한 가족사를 자연
스럽게 해독했을 때, 제 안에 박혀 있는 옹이 소리는 조금씩 낮아질 거
라고 했다 또 다른 스무 살의 한 소녀가 봄만 되면 봄물을 찾아 헤매는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또, 어떤 바람의 바짓가랑이를 양껏 물고 늘어
지며 앙탈을 부리는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아니, 인격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혈연, 지연을 비평의 도마에 올려놓고 밤마다 썰진 않을 거라고
했다
목을 가리고 얼굴을 덮어오는 꽃무늬 이불에 섬진강이 무식하게 밀려든
다 눈썹달이 진저리 치며 몇 가닥을 건져 먹는다 그래도 그녀의 입술이
아프다, 아프다
환상특급 수유실
이 민 화
보슬비 내리고 나니
산부인과 수유실에 바다소리가 들려요
양털 같은 햇빛이 아가의 볼을 스윽 닦으면
분홍빛 입술은 잔잔한 파도를 타고
따끈한 두 섬에 도착해요
퉁퉁 부은 양 섬을 둥글게 마사지하는
엄마의 손등 사이로 모유가 주르륵,
우주물고기 닮은 배가 수없이 쏟아져요
파도에 휩쓸리는 배들을 순식간에 삼키는 아가들,
새하얀 팔다리를 새처럼 파닥거려요
용궁이야기를 신나게 풀어 놓는 오디오에 올라
샛노란 방귀를 끼기도 해요 커튼에 그려진
꽃밭에 들어가 꽃술을 건드려보기도 하는,
나비보다 아름다운 장난을 쳐요 까르르 까르르
아가의 배냇짓은 봄바람에 꽃잎편지를 띄워
파도가 양수임을 일러주네요
아가들이 있는 힘을 다해 젖을 빠는 사이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
임신한 향유고래가 뒤뚱거리며
걸어 나와요
여보세요,
저……. 여기 예약해도 되나요?
[추천시]
바다가 그리운 날?????????????????? 혜관(慧觀) 이 상 태????
그대여 눈물 시린 파도치며 와도 좋다 따라온 해안 너머 머리 풀고 거닐다가 젖어서 열리는 가슴 말리는 손이 차다.빗소리 그늘 찾아 이끼는 무성해지고 파닥이는 포말처럼 팽하니 토라진 꽃 비린내 강물로 흘려 옷자락에 편지 쓴다. 몰래 품을 파고드는 바람으로 속삭인다 부식층 넘나들며 묘판을 만들어 놓고 때 묻은 발목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갯바위 물이끼 입고 홀씨 하나 건네주며 빗물에 꽃가루받이 씻겨서 교배한다 흐느껴 콧등이 찡한 바다가 그리운 날. <바다가 그리운 날> 해설?바다는 동경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바다가 가진 상징성은 우리 삶의 희망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일 수도 있다. 바다는 그래서 우리네 삶의 꿈이 있는 곳으로 상징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상태의 ‘바다가 그리운 날’은 몰개성적일 수 있다. ? 그러나 이상태의 바다는 이상태의 바다라는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이른바 창조적 상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태의 바다는 ‘포용’의 상징성을 창출한다. ‘시린 가슴을 녹여주는, 토라진 꽃에게 편지를 쓰는, 뿐만 아니라 ‘때 묻은 발목을 잡고 싶은’, ‘교배’가 이루어지는 긍정의 상징이다. 그의 이 상징은 이 작품집 전체를 주도하는 물줄기가 되어 포용과 긍정의 시학으로 쏟아지고 있다.??문무학(문학평론가)의 ‘포용과 긍정의 시학’ 중에서
이상태 약력
혜관(慧觀) 이상태 cmoonhak@paran.com ---------------------
울산대학교 교육행정(석사)6기회장. 시와비평문학회장.
『시와비평』시 등단. 『현대시조』새시대시조 등단. 문학넷회원.
울산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울산문학연구회장.
한국『시조문학』. 한국시조시인(울산)협회. 공저 『좋은문학』.
『시와비평』.『두레문학』발행인. 시집『사랑 갈무리』 시조집
『바다가 그리운 날』
http://www.uwnews.co.kr/
2007/04/09 ⓒ 울산여성신문
등꽃이 핀다
혜관(慧觀) 이상태
기다린다는 건 고개 숙이는 일이다
수석 아미 쓰다듬다 손가락 깨물고
길 묻지 마라 에밀레종 내다 걸었다
발이 보이지 않는 산을 돌아
온몸 아린 종소리 따라 걸어왔다
어둠은 종매를 들고
십자성 따라온 빛을 때리면
손바닥만큼 하늘 열고 등불을 켰다
때론 꽁지 내린 등 뒤를 트고
국화문양 남은 그림자 밟고 갔다
종소리 업고 가야할 길이 멀수록
더욱 아름다운 눈빛 훤했다
대문 앞 지키고 선 등꽃
마중해야 할 길이 남은 탓이다
열대야 바람 찾기
혜관(慧觀) 이 상 태
밤안개 떠도는 해변에 나왔다
파도소리 겹치는 신방 차리고
발가락으로 노래하는 시를 적었다
밟혀서 마냥 좋은 모래성
틈을 타서 끌려나온 파도는
해수욕 나온 글자를 따라 읽고 있었다
발자국에 알 낳을 때마다
사랑은 행간도 구분하지 못 한 채
귀밑머리에 뜨거운 열기 불러주었다
끈적끈적 혓바닥 핥는 열대야
누워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일어선 솜털 건져 동영상 비비다가
마주앉은 바다가 엎치락뒤치락
문자 찍는 바람 찾아 들썩거렸다
[초대시조]
어떤 巫女圖 -줄장미 스냅-
이 택 제
담장을 기는 무희
끝길 없는 초혼의 불꽃.
피 밴 자락이
바람 타듯 펄럭이며
낭자한 난간 위에다
이승과 저승 잇네.
이택제. 충남 태안 출생. 현대시조 추천 완료(1984).
제16회 여류문학인회 전국주부백일장 시부 1등(1982)
워싱톤문학 당선(시조분과위원장). 한국문인협회 회원(한국 본
부). 순수문학 시 당선(2002). 국제팬클럽 회원(2002). USA TAZU
KO KAI 회원, HOTOTOGISU HAIKU KAI 회원. 한국시조대사전 수록.
[시조읽기]
짧은 시 그리고 긴 여운
? 추 창 호
문예지와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 참으로 많은 문학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학의 위기란 말이 심심찮게 거론 되
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
다도 독자들에게 쉽게 읽혀지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부족한
탓이다.
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5년 째 매일 시 한 편을 전 직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반응은 가지각색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점
은 시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이 갖춰지
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이야
기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진다. 그런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시를 일반 독자들이 즐겨 읽을 리는 만무하
기 때문이다. 요즘 발표되는 시의 경향 중의 하나가 산문적이고, 길이가
길며, 난해하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제목에서 시사한 것처럼 '짧은 시 그리고 긴 여
운'을 나에게 준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 몇 수를 내가 읽은 느낌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데 있다. 따라서 고상한 문학적인 이론과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한 평론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나의 단견과 편견도 포함되어
있음도 부언해 둔다.
몹시 추운 밤이었다
나는 커피만 거듭하고
너는 말없이 자꾸
성냥개비를 꺾기만 했다
그것이 서로의 인생의
갈림길이었구나
- 이호우 시인의 '회상' 전문 -
운명적인 이별을 앞에 둔 연인의 미묘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을 이처럼
절제된 감정으로 한 폭의 그림 또는 한 편의 심리극을 보듯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이것은 시조가 가진 절제와 함축미 때
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 산문으로 표현한다면 책 반 권 이상의 분량
은 족히 될 수도 있었으리라. 따라서 이 짧은 시의 길이 외의 분량은
독자들의 상상의 폭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愛淸에
삼가한 듯 들렀다.
- 이영도 시인의 '團欒' 전문 -
자식농사는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어렵다. 그 주요인 중의 하나가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재를 들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호롱불 밑에서 이마를
맞대고 도란도란 교감의 정을 나누는 모습’은 우리에겐 감동과 부러움
이다. 노래하듯 자연스럽게 읽히는 맛도 맛이지만 밀레의 '만종'처럼 평
화스럽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시인의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머금도록 만든다. 참 소박하고 아름답다.
눈 감아도
환해 오는
기억의 무궁한 늪
숱한
사람들을
밤새껏 맞고 보내다
네 차례
네 차례에서는
한참 맘이 설렜다
- 권오신 시인의 ‘네 생각’ 전문 -
우리는 무수한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나간다. 눈
감아도 환해 오는 기억의 무궁한 늪을 열면 함께 오래 머무르고 싶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루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스쳐 지난 이런 세월 속에 아직도 한참 마음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이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만남의 의미를 곱새
겨 보게 한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 이우걸 시인의 ‘팽이’ 전문 -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채팽이를 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비틀대는
채팽이는 맞으면 맞을수록 팔팔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이런 단순한 팽
이의 속성을 통해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을 발견해 내는 시인의
혜안이 무섭다. 이 시를 여러 잣대로 깊이 있게 해석을 하지 말자. 그
냥, 살면서 힘들고 숨이 가빠올 때 이 시를 읽어보라. 불끈 솟는 오기
그리고 다시 꿈틀거리는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꽃은…
피는 게 아냐
그리움이
터진 거지…
내 온몸의
피가
피가
열꽃 되어
터진 게야…
꽃비로
당신 적시려
혼(魂)을 활활
태운 게야…
- 이구학 시인의 '꽃은...' 전문 -
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열꽃 같은 그리움이 터진 것이라니... 엉뚱한
생각의 발상이 신선하고 재미있다. 한 편으로는 대상을 향한 사랑이 아
프기도 하지만, 새겨보면 참 아름다운 사랑이다. 우리 사는 일도 혼신의
힘을 다한 이런 사랑이면 좋겠다.
시가 길어야 좋은 시는 아니다. 고고한 위치에서 독자들을 내려다보
는 시가 좋은 시일 수 없다. 짧아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고, 상
상의 폭을 넓혀줄 수 있으며, 긴 여운을 남겨줄 수 있는 시가 좋은 시
이다. 아무쪼록 이런 좋은 시들이 많이 창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시를
즐겨 읽었으면 좋겠다.
추창호 (시조사랑) http://user.chollian.net/~ckd18/ ----
울산대학교 대학원. 『시조와 비평』신인상. 『월간문학』신인
작품상. 부산일보 신춘문예(시조) 당선. 울산문인협회 부회장
역임.『두레문학』회원. 시조집『낯선 세상 속으로』. 공저『두
레문학』.
[시조]
변 태 (變態)
박 희 곤
?
갈라산 등산로에서 만난 한 무리
무척 급했나 보다. 해동이 시작된 산길을 따라 한 치도 못되는 웅덩이
에 쏟아 놓고 간 어미 개구리는 아마 분신들의 안위에 밤새 울었나 보
다. 족히 수 십 마리가 넘는 생명체가 일제히 떨어내는 욕심. 지금부터
다.
한줌 물
말라버리기 전
변태를 마쳐야한다.
?
?
박희곤 bhg5646@hanmail.net -------------------------
1968. 경북 안동 출생. 『시와 비평&시조와 비평』등단.
다울문학회원. 산다촌문인회. 시와비평『두레문학』경북지회장.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개인서재 : http://myhome.naver.com/bhg5646/
화 두 (話頭)
박 희 곤
?
눈이 참 예쁘던 여배우가 자살했다
비디오 가게에 들려 그녀가 출연한 작품 몇 편을 챙겨 집으로 향하며
몇 해 전 친구 아버님의 자살을 떠올린다. 응급차에서 내려지는 넥타이
* 맨 늙은 주검의 눈엔 마지막 담았을 아파트 베란다 밖 세상이 흔들거
린다. 고통이나 거부도 없는 덤덤함. 유서 한 장 없이 세상과 결별을 선
언한 주검은 10만 원짜리 싸구려 관을 반값에 얻어 고단한 육신을 구
겨 넣는다. 구석자리 사위는 담배만 죽이고 딸년만 서럽다. 몇 해 연락
두절 된 아들은 끝내 찾지 못하고 파출부 나간 아내도 나타나지 않는
다. 주검은 널짝도 닫지 못한 채 낯선 세상을 응시한다. 빨간 사인펜이
엑스(X)자로 지나간 낡은 종이가 하얗게 강물을 떠다닌다.
낯이 선
話頭에 떨었을
술잔이 비워진다.
*넥타이 : 목을 매 자살한 사람을 말하는 은어
?
하루는
한 분 옥
새벽은 첫차를 타고 플랫폼에 닿아 있고
?
하루치 삶의 무게, 이고 메는 억센 손들
?
발 빠른 조바심들이 개찰구를 통과한다.
[샘터시조 장원작]
한분옥 1951년 진영 출생. 부산교육대학교 대학원 졸업. 울산대
학교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시와비평문학회 고문. 샘터시조상.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87년 『예술계』수필 당선. 제7
회 가람이병기 추모시조공모전 장원. 울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역
임. 대한문학상. 탐미문학상. 행자부장관상 등 수상 다수. 부용
만향(수필집). 저서/꽃과 여자 그리고 정염. 진홍가슴새.
하얀 밤
현 임
오솔길 친구 삼아 달빛을 등짐 진다
재 넘어 걸어온 길 아련한 숲은 멀고
이제는 이루지 못한 한세상도 꿈이다.
깨어지는 파도가 포말로 쏟아진다
옷깃을 여미고 선 찬바람 가까운데
하얗게 별빛 맞으며 쉬엄쉬엄 가야지.
현 임 graceih2004@hanmail.net --------------------------
서울 출생. 『시조월드』등단. 세계한민족작가연합회원.
두레문학회. 워싱톤열린문학회 회원.워싱톤 문예창작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동양정신문화연구회 회원. http://ihc87.kll.co.kr
Fellowship Senior Center Work out exercise teacher
풀잎 소리
현 임
실바람 고운 자락
5월 숲을 거니니
풀잎의 숨소리
귀를 간질인다.
긴 겨울
가슴조린 그리움
기다렸다 속삭인다.
?
?
[편지]
4월, 작은 소리와 고요??????????
박 용 신
? 아직 미명의 시간,
달그락 달그락 조심스럽게 식탁을 준비하는 작은 소리가 있다.
움찔대며 기지개 켜는 나무들의 잔기침 소리, 화사한 햇살아래 분홍으
로 연록으로 혹은 붉음과 노랑으로 취하며 사랑하며 흔들렸던 어제의
알싸한 꽃들이 다투어 기척하며 부산하게 아침 조반을 준비하는 시각.
?저산 구릉, 언저리 그리고 봉우리까지 피고 지는 꽃들의 가쁜 숨소리,
눈처럼 내리는 산 벚꽃 여린 꽃잎의 사뿐한 발자국 소리, 간밤을 뜬눈
으로 지새우게 했던 소쩍새의 "지집죽고 자식죽고" 하는
탄식의 소리까지,
작게, 아주 작게 지직 거리며 울리는 고물전축의 익숙한 올드 팝에서
조차도?즐거움을 흑단젓가락으로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미소가 여
린 찔레 파릇한 잎사귀, 송골송골 맺힌 영롱한 이슬만큼 반짝인다.
설렘으로 환하게 다가서는 봄날의 새벽, 밝음의 작은 소리와 고요, 이
렇게 사월은 아주 작은 소리들이 살아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아침마다 해수 같은 가슴앓이를 한다.
이렇게 느긋하게 새벽을 즐기는 호사가 얼마나 다행인가.
늘 훌쩍 어디론가 혼자 떠나 이 곳 저 곳 헤매다?찬바람 부는 겨울이
되어서야 빈 들녘 허수아비처럼 외로워 질 때 비로소 돌아와 잠시 안주
하곤 하던 역마살이 나이 들며 잠잠해져 이젠 "다행"이라고 말하던 당
신을 생각한다.
그 지겹던 젊은 날의 외로움을 이제는 다행이라고 나직이 귓전에 속
삭이는 그대의 애절한 토로가? 눈물겨운 아침.?알싸한 새벽공기를 가르
고 우물로 나가 정갈한 냉수 한 사발, 나는 그대를 위해 이 새벽, 차를
우린다.
? 스르르 도르르 주전자에 물 끓어오르는 소리
조심조심 깨끔 발로 다가가 그대의 어깨를 흔든다.
고단한지 미동도 않는 그대.
조용조용 물러 나와 나는 혼자 차를 마신다.
여린 햇 찻잎에서 번져 오는 비릿한 배냇향.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
라 이제는 스스로 머무는 기쁨을 알았기에, 적당한 체념과 적당한 배려
가 그대 마음에 "다행"이라는 안도로 저렇게 곤한 잠을 잘 수 있게 했
으니.
모처럼 혼자 마시는 찻잔에도 여유롭게 접시받침을 하고 호젓하게 무
광택 순은 악세사리 같은 음향, 오페라 아리아를 듣는다.
꽃잎이 지는 창가로 아기사슴 한 마리 돋음 발하고? 엿듣는 새벽.
???
- 풀잎편지 (poolip.net)
백암/ 박용신 (시인,한국화가, 기행작가)
철도문화(1992)시부문 신인상. 철마문학 동인. 칠요시 동인.
1993년~2003년 레일로드, 한국철도,SK,한국타이어 사보 등 기
행작가
2003년 9월 ~ 풀잎편지(poolip.net)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공무원 서화전 심사위원 역임
[수필]
입추에 부는 바람
수필가 고 영 예
“우리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이토록 절충이 되지 않는데 20년
동안 살붙이고 살아 온 것 생각하면 참 용하기도하지 대견스러울 뿐이
다. 성격을 놓고 보면 둘 모두 다혈질이라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불꽃
튀는 행동이 말을 앞질러 가기가 일쑤인데, 그것도 한세월 보냈다고 불
쾌한 일이 있어도 입 꾹 다물고 한 사흘은 거뜬히 넘길 수 있게 되었
다.
대부분은 내편에서 먼저 시비를 걸고 화해를 청하는 것도 내편에서
하는 일이지만, 말을 걸면 10초 후에 대답하면서 아주 농담조로 엉뚱하
고 성의 없는 태도에 발끈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을 저질러 놓고는 그
기간이 길어지면 마음 편치 않는 내가 먼저 곰처럼 꿈쩍이지 않는 사람
에게 집적거리곤 했다.
그러나 서로가 잘못한 일이 없다고 여길 때는 장기전으로 들어갈 위
험성이 있지만, 엎드려 기도하는 측에서 마음이 변하여, 더러는 너그럽
게 용서하는 차원에서, 더러는 낮아진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서곤 한
다. 결국은 승리자 없는 무승부로 끝나기가 일쑤다. 부부라는 것이 목숨을 다 내어줄 것처럼 사랑하다가도 다투고 돌아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남처럼 낯설어 보임은 어인 일인지. 죽도록 사랑한다 해도 그건 입에 발린 소리일까. 죽도록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행하는 실수나 잘못, 그 무엇인들 용납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며,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토라질 일이 또 무엇 있으랴.
사랑은 하지만 내면의 이기적인 심리가 발동하여 상대가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 할 때는 마음의 빗장을 꽉 닫아버리는, 흔히 말
하는 헌신적이지 못한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모습이다. 주는
만큼 꼭 받아내고야 마는 악착스런 마음의 동기는 내 속에서 솟아나던
사랑의 샘이 기근으로 말라버렸기 때문일까? 메뚜기 6월이 한창이라고, 열정이야 눈에 콩깍지 덮어쓴 신혼 몇 년,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서로와 주변의 이해관계에 노출되지 않을 때 있을 법한 일이고, 서로 주려고 애쓰던 마음이 받으려는 마음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섭섭함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때로 시작한 불평의 시간은 축척되어, 아가페적인 사랑을 소원하지만 출렁이는 파도에 밀려나는 배처럼 아주 조금씩 멀어졌다가 그것과는 아주 먼 외딴 섬이 되어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상대가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라고, 신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내가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선택된 남자라고 생각할수록 황홀하고 감
사해서 가슴 벅차던 순간을 놓쳐버리면, 그가 내게 베풀던 지나온 일들
을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지극정성 사랑해주던 그것이 현재 나의 올
무가 되어 예전의 당신이 변했느니, 어쩌니 입만 열면 독기 서린 파편
조각을 내뿜어 사정없이 그의 심장을 찔러놓곤 한다. 그것도 사십 고갯길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마음이 넓어지고 상대를 가슴팍까지 싸안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사랑이라기보다는,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꼴을 들여다보니 우스꽝스러워서다. 정신을 가다듬고 허리에 창과 검을 차고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확대경을 끼고, 선하지 않은 군대의 병사처럼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잘못된 행동을 꼬집어 내어,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아니
내가 원하는 규격에 맞추어내는 놀라운 능력이 나에게 있는 줄 아는 착
각에서 깨어났음이다. 그가 부여받은 특별한 색채를 가지고 너의 색은 왜 그런 색을 띠느냐고, 그가 부여받은 독특한 향기를 들먹이며 너의 향기는 왜 나와 다르냐고 따지고 드는 건 우스운 일이다. 이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성품을 내가 고쳐보겠다고 안달하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수 십 년 동안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살다가 어느 날 만나서 부부라는 공동의 이름표를 달고 두 인격체가 하나인 거처럼 살아가는데, 부딪혀서 삐걱거리던 소리도 뾰족한 모서리도 닳고 닳아 옛 말인 듯하다.
내가 그를 답답한 사람으로 여겼듯이, 난들 그에 대해 만족스런 대상
이었을까. 내가 그를 향해 속을 끓이듯이 그가 나 때문에 끓인 속은 얼
마나 될지 상상이나 해 본적이 있었나. 치약을 손이 닿는 대로 쿡 눌러 짜 쓰는 그나, 날카로운 것으로 치약을 싹싹 문질러 납작해진 끝을 돌돌 말아 쓰는 나나 같다. 호두를 망치로 깨어 먹고 온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어 둔 채로 하루 밤을 지내는 그나, 호두 껍데기를 기어코 그의 손으로 치우도록 볶아대는 나나 같다. 묻는 말에 10초 후에 대답하는 그나, 10초를 못 기다려 두세 번 다그치는 나나 같다. 밥한 그릇을 눈 깜짝 할 새 먹어치우는 그나, 같이 보조를 맞추기기 위해 허겁지겁 따라 먹는 나나 같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는 그나, 양말 제대로 벗어 놓으라고 날마다 앙탈부리는 나나 같다. 이정도 되면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 알만할 것이다. 공존할 평화는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닌 듯하다. 서로 부딪히고 찢어지고 깊게 난 상처는 치유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반복되는 사건들을 통해 알았다. 아이들은 커서 둥지를 떠나고 중년이 들어 시들어지는 육체의 곤고함과 정신적인 외로움은 혼자서 감당하기는 큰 짐이다. 지쳐있을 때 한마디의 작은 위로가 큰 힘이 되고, 실패했을 때 희망이 되는 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뼈 중의 뼈요 살줄에 살이라는 신혼초의 열정은 아니지만, 가을날 초가지붕 위의 누릿한 호박처럼 보는 사람이 정겹고, 살아 갈 맛이 나는 삶의 이유가 되는 그가 있고 내가 있어, 호사스런 웃음이 아니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평안이 머무는 줄 알기에 하루하루가 귀하기만 하다.
뜨거운 태양이 과실과 들녘의 곡식들을 영글게 하듯이 그와 나에게
있는 시골 흙담 닮은 풋풋한 눈빛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돕
는 배필이라는 그 이름이 마흔 중반의 나를 설레게 한다. 입추를 지나는 바람이 코끝은 스치고 지나간다.
고영예 gyl1760@hanmail.net -----------------------------
1963년 청송출생. 부흥파인텍대표.『문학세계』수필 등단.
문학넷 회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http://gyl1760.kll.co.kr
[수필]
나에게 넌
김 숙 이
철이 들면서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사고로 갑자기 세상
과 이별을 한 후 혼란 속에서 헤매시는 어머니를 보고서야 어머니의 존
재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랐고 그런 내가 좋았는지 아버지는 내가 원하
는 것은 대부분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내 응석까지는
아니고, 나는 어려서 많이 아팠고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지칠 수도 있
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내 편이었고 늘 내 곁에 있어 주셨다. 뭘 해
달라고 요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미술도구만큼은 욕심을 부렸고, 시간만
나면 그 도구들을 챙겨 다락방으로 올라가 저녁시간이 되어도?모르고
있었었다.
?
"아버지! 스케치북 없는데."
"벌~써?" 아버지께 제일 많이 하고 듣던 말 중에 하나다.
난 달력에 나와 있는 난초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몇 번이고 그리고 또
그리고 했었다. 아버지는 소나무 그리는 법이라며 슬며시 다가와서 알
려 주시곤 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난 아버지를 찾았지 엄마를 찾은
적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기억이 없다. 생각하니 어머님께 죄송
한 마음이 든다.
아팠던 탓일까 나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 있었고 친구들이 찾아와
도 빨리 다락방에 올라가 나 혼자 그림 그리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
성인이 되어 유화에 빠져 있었던 몇 년이 있었다. 전문 화가는 아니
지만 나의 허기가 조금은 채워졌는지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
?
버릇일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꼭 가진다.
"엄마 뭐해?" 아들이 가끔 찾고 나의 짝이 찾아도
"엄마 혼자 노는 중~" 하며는 다 알아 듣는다.
나만의 시간이란 가져 본 사람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하
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것이다. 이런 나에게 이제는 어머니가 보인다. 아
주 작은 모습으로 보이기도하고 때론 편안한 휴식처로 보일 때도 있다.
내 어머니가 이렇게 작았었나?
'그래, 아버지 등에 가려져 있었구나.'
?
아버지가 떠나신 후 어머니는 많은 자식 중에 유독 나에게 요구를 많
이 하신다.
때론, 투정까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미안하단다. 며칠 지나면 언제 오냐
며 또 전화하신다. 내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아서 일까. 그렇다고 내
가 제일 여유 있는 자식도 아닌데
'나에게 넌 네 아버지 같은 거야.'
언젠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날 보시면 정말로 아버지와 같이 계신 마음이실까. 이번 주는 못가겠
다고 했다가 틈만 나면 휭~ 차를 돌린다. 내 아버지 내게 사랑을 그리
주시더니 먼저 가실 줄 아셨나. 그래서 유독 내게 준 사랑! 그 사랑 어
머니께 돌려주시라고 그리하셨나 보다.
?
오늘도 그랬다.
두어 시간만 있다가 와야지 하고 갔는데
"야, 야~, 너희 고모 생신이 지났는데 올해는 전화도 못했다."
"그래요. 그럼 지금 해 보세요."하구선 생각지도 않게 내 입에서 나온
말!
"엄마, 고모님 뵙고 싶어요? "
"내가 보고 싶다고 갈 수 있냐?"
" 가~요. 우리!"
"너 시간 없잖아"
"지금 만들면 되지 뭐 힘드남?"
?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며 투덜거리면서도 그 좋아하시는 모습이란.
그래서 갑자기 여든을 넘긴 시누이와 올케는 오랜만에 냉면집에서 만나
기로 하셨다.
댁으로 가면 손님이라 젊은 사람 싫어한다며 식당을 정하라신다.
?
결혼 초 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었다. 시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
셨는데 언젠가 그랬다.
'한복 곱게 차려 입고 나도 내 친정 한 번 가고 싶다.'
하지만 시어머님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자리에 누우신지 얼마 못가
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왜 하필 그 생각이 그 때 나는 걸까. 나이든 어르신들은 그런 것이다.
'밤새 안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여든을 넘긴 두 어르신 몇 시간을 두 손 꼭 잡고 놓을 줄을 모르신
다. 괜히 눈물이 흐르려고 하기에 하늘을 보았다. 차마 갈 시간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한 시간을 더 있었다.
식당 주인님이 "참 보기 좋네요." 하신다.
점심시간인데 너무 오래 있어서 죄송하다고 하니 아니란다.
두 분 다 지팡이에 의지하시는 몸이라 장소를 옮기기에도 힘이 들어
차라리 냉면집 주인께 양해를 구하고 후식도 주문했다. 그런데 후식에
는 눈길도 없다. 그리 좋으신가.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데. 나이가 들면
그 어떤 위치든 상관없다하시더니.
?
헤어지면서 고모님께 오래 사시라고 했더니 노인네 욕하는 것이라며.
그래도 싫지는 않으신지 활짝 웃으신다. 어머님 댁으로 모시다 드리는
차 안에서도 눈길은 뒤를 향해 고모님을 보고 계신다.
고모님 그 자리 그대로 계시고
"다음에 또 만나시면 되잖아요." 하니 너한테 미안해서 하신다.
며칠 있으면 또 전화 하실 거면서.
'아~ 어머니!
저도 늙으면 자식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될까?'
?
'두 어르신께 축복을 주소서.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여든을 넘긴 두 어르신!서로의 지팡이에 힘을 실어주소서.'? 나도 모르는 사이 기도를 부르는 오늘밤은 아마도 두 어르신 꿈을 꿀 것 같다. 나에게 넌 무슨 꿈을 불러다 줄까?
행주대교를 지나 집으로 오는데 유난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
었다.
?
김숙이 ksookiy@hanmail.net -------------------------------
상주출생. 『시조생활』(2004)등단.
고양시거주.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무창포
김 순 선(金順善)
무창포 떠나는 봄날 길가 도로 야산에는 연분홍 진달래 곱게 피어 옷
고름 풀어헤치고 오고가는 나그네 마음 설레게 하고 산허리 구비 구비
돌아 설 때 마다 벚꽃 꽃망울 터트려 야광 등처럼 환하게 밝혀주고 노
란 개나리꽃 바라보는 여인 절로 감탄에 아~아름다워라 소리가 입에서
연발 감동에 소리를 하게한다.
산 아래 다랭어 논둑길에 찔레덩굴 듬성듬성 숲을 이루고 파릇한 잎
새 유난히 반짝인다. 논에서 일하는 농부 가래질 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밭두렁 괭이질 하며 흙파 엎느라 아낙 수건 질끈 동여매고 몸 배 바지
에 장화신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니 예전 내가 농사짓던
모습을 연상 하게 되며 아~나도 저러고 살아온 세월도 있었지. 지금 저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젠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하는 육신 되어 나
이 들어도 시골로 가기란 쉽지만은 않을 듯싶다.
야산에 산 두릅 이제 싹 틔어 뾰족뾰족 새순 돋아 오르고 밭두렁엔
냉이 쑥 지천으로 깔려있고 맘성 같아선 내려서 나물 도 좀 뜯고 하고
싶었는데 시간상 할 수 없어 아쉬움만 지닌 채 무창포 바닷가에 도착하
니 봄바람인지 바다 바람인지 알 수없는 바람이 여인의 속살을 파고들
어 스치며 지난다.
주꾸미 축제 기간 이란다.
축제 한마당 무대 위에선 흘러간 옛 노래가 가슴을 흔든다. 참 어떤
여인인지 정말 노래 잘하네,
한참 무대 앞에서 눈을 즐겁게 즐기고 이곳저곳 좁은 바닷가 축제 마
당을 돌아다니다가 식당을 찾아 들어섰다.
자리를 잡은 네 식구 시퍼런 바닷물이 출렁대며 파도치는 방향을 바
라보며 주꾸미 넷이서 먹을 량을 시켜놓고 기다리는데 일 하는 사람.
반찬을 접시에 담아다 주는데 남이 먹다 남은 것처럼 접시에 담아서 가
져다 주 길래 아니 무슨 반찬을 남이 먹다 남은 것처럼 해서 가져다주
느냐고 했더니 접시를 가져가서 다시 깨끗하게 담아다 준다.
기분은 좀 상했다.
그냥 나올까도 생각을 했는데 에이 이왕에 앉은 거 먹고 가자하고는
주꾸미 볶음을 시켰다. 처음 기분은 그러했는데 주인아줌마 손끝이 야
무졌다. 음식 맛이 괜찮아 맛있게 먹고 그 집을 나온 시간이 3시 반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청추를 향해 구비 구비 산허리를 돌고 돌아 시골풍경을
가득 마음에 담은 채 딸이 머무는 곳으로 온 시간 어느새 해는 어둑어
둑 땅거미가 내려앉아 기울고 있었다.
딸이 하는 말 아빠 나 티브이 흑백으로 나오는데 티브이나 중고로 한
대사주고 가지한다. 두말도 않고 중고가게 가서는 중고티브이 한대를
사들고 딸 자취집으로 찾아가 설치를 해주고 잠간 쉬며 머물다 이제 그
만 가자고 해서 딸을 남겨두고 돌아서서 집을 향한 시간 늦은 밤 차 안
에서 남편한테 그래도 딸이라 그런지 알뜰하긴 하네.
웬만한 애 같으면 티브이 새것 사달라고 할 텐데 그냥 제대로 잘 나
오면 된다면서 중고를 사달라고 하는 딸애를 생각하니 어미가
가슴이 뭉클한 게 뜨거운 눈물이 속으로 흘러내린다.
딸을 또 그렇게 혼자 나두고 돌아서야 하는 어미 속 늘 찬 바람이 훑
고 지나간다. 그래도 어찌 하겠나 이별은 해야 하는 걸 딸, 잘 하고 지
내 알았지 응~엄마 하는데 마음이 아파온다.
어서 돈 벌어 한군데로 가족이 모여 살아야지 딸을 멀리 떨어트려놓
고 살아가려니 어미마음 갈기갈기 찢겨져 아파온다.
무창포 하루 속에 시간 나름대로 편안했고 즐거웠던 가족들의 나들이
였다. 저 산 너머에서 산새가 고운소리로 귀를 즐겁게 해주고 산 들녘
으로 가득 향기 품어 피어난 꽃 들 속에 여인은 봄날의 화창함을 맘껏
즐긴 하루의 행복이었다.
김순선 anfakd1229@hanmail.net --------------------
월간『문학21』(2005)시 등단. 『한비문학』(2006)수필 등단 계간『국보문학』이사. 한국문인협회. 국보문인협회 회원.
2006년 8월7일 월요일 [경기일보]시가 있는 아침/기원
[시세계]
나 비
김 광 련
?
모처럼 친정어머니 모시고 백화점 가서 빛깔 고운 블라우스 한 벌 사드리고 딸아이 브래지어도 하나 샀다. 얘야 나도 브래지어 하나 사다오! 요즘은 할머니들도 다 하더라. 아차! 어머니 가슴에도 나비 한 마리가 숨어 있었구나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나비는 죽어 버린 줄 알았다. 그 후 다섯 송이 꽃이 어머니의 나비였고 비바람이 불어와도 거뜬하게 잘 지켜주었다. 친절한 점원이 어머니 가슴에 날개를 달자 처음 입어본 브래지어가 어색한지 수줍게 웃으시는 어머니 뺨 위로 연분홍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오늘 밤도 나비는 스물네 송이 꽃을 찾아다니다 지친 날개 접고 꿈나라로 갈 것이다.
麗傘 김광련 anfakd1229@hanmail.net --------------------
울산출생. 『한비문학』 등단 한비문학 운영위원. 다울문학 동인. 시인과 사색. 『두레문학』회원.
가장 행복한 여인 외13곡 작사.
주근깨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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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하얀 웃음 짓는다 추운 겨울에도 훈김이 나오는 아담한 집 얼굴만 마주봐도 정답다 줄다리기하듯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면 간혹 꿀벌 윙윙거리는 날개 간지럽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사랑방을 만든다 한 잎 두 잎 살포시 포개고 호빵 같은 입술 방긋 오므린다 밀실에서의 뜨거운 포옹 더위도 잉태하는 기쁨으로 참아낸다 주근깨 얼굴 내어 보인다 따사로운 태양이 머물고 간 자리 따끔따끔 거리는 사랑 하얀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오밀조밀 빨간 점박이가 된 순진한 소녀 까르르 깔깔 아이들의 환호성이 먼저 들린다 “와~ 딸기다”
?김삼주? ksaju7430@hanmail.net ---------------------------
남원 출생. 『문학21』 (2004) 시 등단
문학21.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태화강
김 은 수
물속에서 야윈
그림자 도시엔
할머니가 있다
잠투정 밥투정 세상투정 다
받아주던 할머니
갈퀴품은 빌딩숲 언저리에
홀로 서 있기 무서운
언제나 사거리에 서 있는 나
어찔한 물속세상 시름
함께 품어준다
어릴적 꿈의 도시
허물수도
세울 수도 없는 도시
오로지 품어주고 안아줄 뿐
신호등 없는
할머니 품속은
오늘따라
키가 쑥쑥 커 있다
뜨습다
김은수 kjs3973@hanmail.net --------------------
평택 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철학) 과정 중.
『시와비평』등단. 한?중작가회, 산다촌문인회원.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두레문학』회원.
공저『두레문학』.
현 논술학원 강사&학원장.
멍 게
김 종 제
칼로 살갗을 가르자 무너지지 않을 기둥 같은 생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 속의 팔십이 물이었다 어깨와 허리 치고 밀려오는 해일을 흠뻑 맞아서 내 아버지가 말이다 울음을 밖으로 토해내지 못해서 소금기가 너무 짙다 목숨이 짜다 늙은 아버지의 몸이 말이다 봐라, 멍게를 닮았다 목도 이도 흔들거려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계시다가 꿀꺽 속으로 삼키시라고 멍게 한 봉지 샀다 이리 저리 손 흔들며 가는데 폭풍 치는 바다가 그 속에 들었다 난파당한 아버지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손도 없고 발도 없는 저 멍게 말이다 머리도 없고 다리도 없는 저 멍게 말이다 꽃이불 뒤집어쓰고 병석에 드러누워 계신 아버지 한 접시 올려놓은 멍게 같다
김종제 gusukgy@hanmail.net -------------------------
등단 『자유문학』. 서울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
시집<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내안에 피는 아름다운 꽃>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서재 http://gusukgy.kll.co.kr
수덕사로 간 여인
박 가 월
승려가 된 것을 회유라도 한다는 것인가무엇을 얻고자 여기에서 묵고 있는가날 미워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벗어난 지금에그녀의 사연을 궁금해 할 이유는 없지만서로 관심을 주고받은 한 때 인연으로명문가의 여식이 하필이면 이렇게승려가 된 것을 무관심하게 치부하게엔초여름 앵두 알은 너무 빨개서 서럽다사유를 결정해야 할 근거도 없는데이 시점에서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인가수덕여관에 며칠 묵으며 곰곰이 생각해도뒤뜰에 난 명아주가 지팡이가 된들그녀의 마음을 돌려 세울 명분이 없다.
?
박가월(완규) pwk@snu.ac.kr ------------------------------
서울대학교출판부. 월간『문학세계』등단.
『두레문학』회원.대한문학작가연합 회원.
시집『내 어이 당신을 잊으리오』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바람 잦은 언덕
서 순 옥
입 다문 호수 안으로 조약돌 하나 던진
꿈 맞은 호기심에 점점 커지는 성난 포물선
바람 잦은 언덕에 혹시나 하여 밑동을 흔들면
목근(木根)은 발아래 감춰 놓고
파르르 몸 떨며 화를 낸다
덩칫값이 허름하다고 개구리는 개굴개굴?
나잇값도 늘 적자라고 후드득 날갯짓하는 학
늘 속고 사는 기분에 등 돌리며 토라져?
이성 잃고 부아 질러도
한마디 변명도 못하는 그대
늘 탁정(託情)타가도
야속함이 솟구치는 얄미운 내 눈의 콩깍지
그런 당신을 속상하게 했으니
서순옥 sosunok@hanmal.net
등단 『육필문학』. 한국육필문학협회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시인협회 회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벚나무 당신
안 재 동
세상이 갑자기 어찌 이다지도 휘황해졌더란 말인가요 돌아보니 사방에 하얗고 불그스레한 꽃, 꽃, 꽃 바닥에 떨어져 쌓인 꽃잎조차 참으로 아름 찬란하여 밟을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이맘때면 저 벚꽃잎처럼 무심코 흘리고 간 당신의 작은 마음 한 조각조차 생생히 되살아나 봄비처럼 온몸을 적시지만 말리기가 싫습니다 오래도록, 수많은 벚꽃잎이 산들바람에 함박눈 송이처럼 흩날리며 다른 곳도 아닌 애꿎게 마음속으로 자꾸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짜르르 짜르르, 지금 내 앞에 선 벚나무 한 그루는 시간 흐르고서 꽃잎 모두 지고 계절 바뀌어 잎새들마저 다 떨어진다 하여도 언제나 지금 같은 모습일 바로 당신입니다
안재동 korea@kbs.co.kr ---------------------------------
함안 출생.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맥문학> 수필 등단.
<시인정신>,<시세계>,<문학21>,<문예사조>시 등단. 『두레문학』회원. 韓國文人協會. 韓國現代詩人協會. 한국수필가협회. 무원문학상 본상(시부문) 수상. 문학21 문학상(평론부문) 수상. 시집 <별이 되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껍데기> 산문집 <당신은 나의 희망입니다> 공저 <새벽안개에 젖은 꿈>
구채구 여행
엄 덕 이
?
물은 산짐승도 사람도 잘도 다룬다
라마경전 팽이 돌리듯
장족여인네 머리장식 틀어 올리듯
?
물이 진주로 탄환으로
옥빛 하늘아래
심해어 헤엄치듯
?
아홉 부족 함께 일어나
창날 부딪치며
세월마저 새벽이슬 열듯
?
그저 물이 흐르는 눈으로 보소서
?
엄덕이 umyi0333@hanmir.com --------------------
하동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사. 『시와비평』신인상.
울산문인협회. 『두레문학』회원. 농소고등학교 교감.
시집『꽃의 미래』2003년. 『작동 가는 길』2003년.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아름다운 직각
이 경 례
기역자로 몸을 접고 저 할머니
생의 모서리 밟고 집으로 돌아가신다
뒷짐 진 양 손에 온기 채 가시지 않은
토끼, 늘어진 몸 같은 푸성귀 데리고
길쭉한 귓밥 같은 하루 찬을 데리고
직각으로 구부려 할머니 가신다
빳빳하게 수직으로 목울대 세워
살았던 적 있었나
판판한 수평으로 언제 한번 널러리하게
퍼져 본 적 있었나
굽히는데도 나름, 지조 있게 팍 꺾어서
땅의 소리 바싹 귀 기울여 들으며
아귀가 맞지 않는 어떤 생이라도
거뜬히 한 모서리 해 낼 직각으로
뜨거운 한 생이 걸어가신다
무게 더는 지팡이 하나 데리지 않고
매듭 올올 풀려있는 가장자리 밟고
모서리 향해 곧장 가신다
군더더기는 싫여
군말 삼킨 채,
이경례 sohorogaja@hanmail.net ------------------------
월간『심상』(2006) 등단.울산문인협회 회원.
공저『두레문학』.
아 총 (兒塚)
이 경 숙
개울 건너 외딴 집 한 채
갓 두 돐 지난 오대독자 젖 물려놓고
간밤에 쌓아 올린 둑
폭풍과 번개가 도랑 치고 갔다
아장아장 엄마 찾던 걸음마도
회오리바람 아기울음 성난 개울이 삼켜버렸다
늦은 밤 횃불 동네 어귀 휘돌고
도깨비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른 새벽 개울이 토악질한 아이는 잠만 자고 있었다
창호지 돌돌 말아 뒷산 돌무덤에 파묻고 오는
비 갠 하늘에 구름 산발한 어미손이 창백했다
개울물 불어오듯 돌무덤 더듬거리는 소리
어미 젖가슴 풀어헤치고
비 오는 날마다 봇물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이경숙 leelovelatter@halmail.net -----------------------
강원도 홍천출생. 『문예사조』등단.
2003년 하남기예경진대회입상.
하남문인협회원. 『두레문학』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불 륜 (不倫)?
이 미 자
찜통에 삶아 데칠 더위 놈
야금야금 껍데기를 벗기더니
마지막 남은 팬티 끈을 붙잡고 사정 중이다
안 되는데! 이러시면...
홀연히 출장 중 돌아오신 서방
이 여편네가 미쳤나!
벌건 대낮에 벌거벗고 뭐하는 짓이여!
난데없이 들이닥친 한파에 등골이 오싹!
초복이도 그 후로 중복이도
이제까지 말복이도 소식 없는데
문밖 낙엽 밟는 소리에
후줄근 달아오르는 가슴
볼 붉은 홍시가 뚝!
오메 그놈인게 벼!
이미자 ehrtnfl1966@hanmail.net -------------------------
1969년 강원도출생. 남양주거주.
『한울문학』등단. 남양주문인협회.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
발퀴레기행 -출사표 [소설시]
이 은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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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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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성격이 나의 운명을 만들어가니 인생의 도전은 끝이 없어라 백발의 노장이 마구를 손질하여 파발마의 잔등에 안장을 올리고 만승의 깃발을 꽂았구나 이번 전쟁에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꺼여요 사랑스런 큰딸이 말리지만 평생 전장에서 피어오르는 화연과 백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살아온 전사는 노천의 침식에서 얻은 병이 씻은 듯이 나은 듯 자신감에 넘치는 홍안! 헌신적인 아내의 덕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구나 영웅의 꽃, 특별한 무용담을 만들러 나는 다시 전장으로 떠난다네 콘돌의 그림자 짙게 드리우는 죽음의 협곡에도 한 줄기 빛이 비쳐 들어 새로운 여정을 재촉하지 않는가 나의 심장이 튼튼하고 나의 오장육부가 멀쩡하니 다시 한 번 나의 손에 창과 칼을 들려다오 죽은 병사들의 영혼이 나의 발아래 양탄자를 깔고 길을 열어주니 승리의 여신이 나에게 손짓해 다시 보니 행운을 가져다 줄 기회의 여신이로다
은매/이은심 yies0307@hanmail.net ----------------------
동국대학교 영문학과. 『문학21』등단.
국제펜클럽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구로문학회원.
한국철학회회원. 여성철학회회원. 성숙한 시민가꾸기 회원.
논저 <엘리오트의 다면주의에 대하여>
봄 마중 ?
청무 조 성 범?
?
창가로 오랜만에 햇살이 쏟아져
휑한 산기슭
찬란한 하늘과 헐벗은 나무가 꼭 부둥켜안고
길을 나서야겠다
모두가 무료한 일상
들뜬 이별 하나가 하나는 아닌 것
눈꺼풀 위로 휙 휙 時間들은 줄달음
하나, 둘, 셋
속도가 너무 빨라
잔뿌리를 내리지 못할 신발 속
발가락이 움찔움찔
길을 잃은 건
안중에도 없는 정적 속
창밖으로 봄
청무 조성범 rj929@hanmail.net -------------------------
『아람문학』등단. 아람문인협회.
인산문학회. 『두레문학』회원.
사단법인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인천광역시 자치행정 모니터 문화분과위원.
살구꽃 누이
지 석 동
?
하얀 저고리 등에 업혀서 보던 울타리 밖에 살구꽃 부끄럼탄 누이 얼굴같이 빨갰다 그때 누이 등에서는 오이 냄새가 났고 말 할 때마다 우렁우렁 울렸다 가을 눈물 뿌리는 어머니 치마폭을 떠나 고개 넘어 논 섬이나 하는 집에 맏며느리로 들어가 누이 등에서 꽃구경이 마지막 봄이었다 50여 년을 대문 밖 모르고 치마저고리 속에서 품위를 고집하던 하얀 할머니 창가에 목련 피는 병실에 누워 웃음 마른 입술로 분홍빛 살구꽃이 지천으로 피던 고향집을 오물오물 씹다 등에서 나던 오이 내 조용히 빠져나갔다
지석동 makdong3@hanmail.net -------------------------
포천 가산 출생. 현대시문학(2003) 등단.
『두레문학』회원.
e문학상 수상. 현대시문학 공로상.
바다 숲 이야기
曉烱/崔 順 子
사랑한다는 것이 살아갈수록 낯설어 가슴에 싸한 바람 불면 한 획 스쳐간 자리 은빛 물결위로 하얗게 밀려오는 포말의 언어에 귀를 연 다 숱한 낮과 밤을 가는 피멍으로 떨며 한사람의 꽃으로 피기 위해 범선 뱃머리에 빛살 가른다 어두워지는 바다 끝 타는 노을 속으로 끌려간 아직도 내 가슴 허무는 사내 그 사내의 꽃으로 한자리 못 앉는 서러운 바람은 빈 바다를 떠돌며 무너지는 육신 언제였을까 종다리 지저귀는 숲길에 꽃술보다 보드랍고 달디 단 입맞춤으로 온 산을 꽃물들이고 봉긋한 가슴 수줍던 날은
曉烱 최순자(崔順子) csj4602@hanmail,net --------------
강원도 평창출생. 『한맥문학』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의선문학회 이사. 문예비전 회원. 세계시인대회 서울집행위원.
한맥문학가협회상(2006)수상. 리틀 노벨 어린이집 대표.
시집 『그대 스치는 바람이라 해도』
수묵화에 달 뜨고
한 영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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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해인사 극락전 뜨락 진성의 묵은 언어들이 푸르게 푸르게 몸을 풀고 있다 오랜 고요를 견딘 쌍둥이 목각 햇살아래 아린 숨결로 천년의 넋 위홍의 설화 신라 수묵화 되어 계곡마다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학수대 전나무 가지, 가지에 빛 되어 비로자나 비로자나불 그날 밤 어슴푸레 달은 떴다 은하수 멀리 오작교가 들썩인다 광명, 연등에 불을 밝힌다
영채 한영철 hyc0114@hanmail.net ---------------------
1960년 경주 건천. 울산 거주.
『문학예술』등단.
『두레문학』회원.『시와 사람들』
http://ziziwyo.wo.to/
해일이 지나가고?
현 혜 숙
침묵은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끝도 없이 퍼내어도 불어나는 물줄기
해일이 낯선 도시에 남긴 세상은
반짝이는 철탑을 가린 채
아직도 송전할 수 없다
공포는 캄캄한 내장인 게지
비누 거품 같이 혈관 속으로 차오르고
풀어진 동공을 이탈하는 무수한 뼈
망가진 채로 옷을 벗겨 거둔다
살아있는 어디까지가 쓰레기 더미일까
악취 나는 발 내딛지 못하고
사람의 쓰레기에 비명 지르며
한 발자국씩 관절을 풀어낸다
어둠이 잠잠해질 때까지
몸 다 뉘인 하루 서러운 천형
따스한 가슴 껴안을 수 있게
먼발치에서 완만한 길을 찾는다
물결엔 비린 꿈의 숨소리 가득하다
현혜숙 poksel@hanmail.net ------------------------------
부산 출생. CHICAGO 거주.
『문학세계』등단. 『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http://ncolumn.daum.net/hyunrachel
[시조]
[문예대학]
감성과 지성을 통한 감동 찾기? ?
혜관(慧觀) 이 상 태
현대시를 읽고 즐거움을 더하는 것은 음수율에서 나오는 가락의 흥이
나 내재율에서 풍겨는 곡조에 감흥을 느끼게 되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지성에서 순화되어 흐르는 심연의 전율이 더해야 한다는 정론에는 변화
가 있을 수 없는데 이는 현대시가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가 이성적인
지성에 호소하는가 구분하여 단정하는 것은 편협한 안목으로 시를 몰아
갈 가능성이 많으므로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독자의 감동을 얻기 위
하여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찾아보는 일은 문인으로서 당
연한 일이 일이 것이다.
문학작품 창작은 첫째로 감성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순수문학을 외면
하고 자연을 통한 이성적 감동도 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세류에 편
협한 상업적인 작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일기나 편지글 같이 작가
의 개인감정을 일반 독자에게 이입하도록 강요하거나 그 감정의 수렁에
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실족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음풍농월이나 하는 지난 시대의 문학작품이 일부분이라 하였을
때 순수시를 지향하는 현대시의 새로운 시도로 현실에 맞게 삶의 현장
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문학작품에 접목해야 한다는 기류에서 보면 개인
감정은 다소 삭감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된 계기로 작용
하였다 할 것이다.
둘째로 문학작품 창작에 임하는 자세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나 지성
을 강조하다 보면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꼴이나 다름없이 격문이나
구호 같이 주장하는 바만 강조될 수도 있고 논설문이나 재판 판결문처
럼 정연한 논리만 앞서갈 가능성이 농후하여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문학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시가 지성적인 성향으로 고착하게 한 것은 작품을 선하거나 평하
는 사람이 대부분이 작가에서 석학들로 바뀌게 된 다음부터, 작가 스스
로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자신의 창작 작품성이 떨어지는 사람일지라
도 석학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초빙하여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례가 빈
번해지면서부터 이제는 오히려 작가가 선자나 평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석학들의 논리에 따라 다니는 격이 되어버렸다.
신춘문예 등의 심사에서 영향을 받은 문학도들이나 작가 이전의 교수
들에게서 배우는 학생들도 가슴으로 작품을 창작하지 않고 머리로 작품
을 쓰며 지성이 아닌 오직 지능으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일부 석학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문학창작은 우선 작가가 자아만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성이나 지성을 외면하는 작품도 구시대적 감상에 빠져 독자의 감동을
얻을 수는 없다. 대중 앞에 내놓는다고 생각할 때 작품은 현실과 독자
를 외면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지성과 감성을 통하여 문예대학에 올린
작품의 감상을 함께 하기로 한다.
믹서기? ?
강 동 화
콘센트 꽂힌 심장이 열심히 돌아간다. 재료의 각각 색다른 맛 쥬스 한잔 이른 아침 식탁에 올려질 빼어난 색채로 섞이고 섞인다. 선과 악이 삼팔선처럼 경계를 지을 때 일상의 테두리에 마음을 긋고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 싸움한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믹서기 심란한 속과 겉은 제대로 섞이지 않는다.
강동화 eunseo6319@hanmail.net ---------------------------
67년 부산출생. 동의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부산 전원문학회.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컵 라 면
강 동 화
뜨거운 물을 붓는다. 선을 넘어선 안 된다. 그어진 선 안에서 이탈하고픈 일상은 되돌이표를 그린다.
삼분을 기다려야 한다. 가끔은 조갑증이 나 뚜껑 한번 열어 보기도 하지만 시간은 쉬이 가지 않는다.
뚜껑을 덮은 채 손을 갖다 대면 따뜻한 온기가 찬바람을 내어 쫓는다.
새벽바람이 흔들리는 대로 라면 가닥에선 김이 나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따스한 기운은 선 안에서 지켜온 삶의 절제와 기다림의 일부일까.
강동화는 ‘믹서기’에서 ‘콘센트에 꽂힌 심장’ 으로 시작하여 ‘조금이라
도 앞서기 위해 싸움하는’ 자아에 대한 갈등을 ‘속과 겉은 제대로 섞이
지 않는다.’로 마감하고 있다.
‘컵라면’에서는 ‘그어진 선 안에서 이탈하고픈 일상은 되돌이표를 그
린다’ ‘삼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출발에서 ‘선 안에서 지켜온 삶의 절제
와 기다림.’ 을 찾아낸 작품의 심상 표현을 높이 평가한다.
?새벽안개
김 종 환
?
대지가 토하는 엷은 수액에서 꺼낸
하얀 실안개로 서산 능선을 짠다
행여 풀어 없어질까
풀잎 이슬로 한 올 코바늘 뀌어 짠 걸
목젖까지 걸쳐 덮어 준다
하얀 실안개 저미던 손마저
엄마 치마폭 속으로 기어들며
발갛게 젖어 내리는 여명의 여울로
소리 없이 숨어 버리려한다
잔가지 사이 흩어져 내려오던 수막마저
어디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으로
하얀 대지위에 누워 버린다
김종환 dido119@hanmail.net ----------------------------
경북 의성/교육자
『문학저널』.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 『두레문학』.
홈피 http://cafe.daum.net/emunhak
석 양
김 종 환
감홍 빛 모시 적삼 걸치고
서산을 넘어가며
너풀너풀 춤춘다.
쉬 눈을 감고 갈 수 있으련만
조급한 마음으로
홍조 띤 얼굴만 만지작거리다가
먼발치 고갯길 자락
미루나무에 걸린 옷깃 풀고
긴 꼬리 남긴 채
종종걸음으로
쌓이고 쌓인 새하얀
낙엽을 눌러 밟으며
저 산 너머로 썰매를 탄다.
2007. 1. 31.
김종환은 ‘새벽안개’에서 ‘대지가 토하는 수액’과 ‘이슬로 짠’ 이미지
를 찾아 보여준다. ‘엄마의 치마폭, 여명, 알몸’을 발견하고 이들의 상호
관계 설정을 모자이크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석양’은 홍조 띈 얼굴만 만지작거리다가 ‘미루나무에 걸린 옷깃 풀고
/ 긴 꼬리 남긴 채’ 산 너머로 썰매를 탄다는 표현은 동심으로 돌아가
정심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맑은 시안을 보이게 한다.
염장(鹽醬)
도 희 종
시장골목에서 동태상자와 마주할 때
웅크린 자세로 입관되었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순간
어정쩡하게 돌아누운 마른 몸
뿌릴 필요도 없는 웃소금을 끼얹는다.
그물에 걸려 육화의 순간을 맞은 동태눈엔
싱싱한 바다의 풍경이 착상되지 않았다.
쓰러진 고목의 어깨뼈를 갉아대던 욕창.......
뿌연 유리창을 투과하여 떠나실 준비를 하고 계셨는지
반쯤 닫힌 동공에 더는 자식의 모습을 담지 않으셨다.
태아의 모습으로 관에 들어가
따뜻한 바다를 유영하는 꿈을 꾸던 아버지
여전히 바람 속을 회유 중인 아들은
닳아버린 꼬리지느러미가 시리다.
한파가 몰려온다는 아홉 시 뉴스를 들으며
어쩐지 맹숭맹숭해 보이는 파장의 생선 가판대에 얼음을 친다.
하관에 뿌렸던 소금 섞인 흙을 기억하면서
사후에야 이루어진 방생의 의미를 저장한다.
도희종 poetbell@hanmail.net -------------------
1968년 서울 출생. 인천 세종기업.
『예촌문학』동인.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두레문학』
무 좀
도 희 종
소금물에 담구어?소독을 해도
빙초산 차가운 불기운에 집어넣어 태워도
가려움증 사그러들지?않는 아웃사이더의?발?
밟고 선 영역에 또 비가 오려는지
자꾸만 걸음이 더딘 목발이 가렵다
민간요법으로 부축해 온
허름한 길
도희종의 ’염장‘작품은 시장의 동태상자에서 아버지의 입관을 연상해
낸 독창적인 시안을 가지고 있다. 일반 독자가 읽고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 작품으로 ’바람 속으로 회유하는 아들은 닳아버린 꼬
리지느러미가‘ 시리고 생성 가판대에 얼음을 치다가 하관에 뿌렸던 소
금 섞인 흙을 기억해 내면서 방생의 의미까지 저장할 줄 아는 수준 높
은 작품이다.
‘무좀‘ 작품은 소금물과 빙초산으로 가려움증 다스리지 못하는 발과 ’
자꾸만 걸음이 더딘 목발이 가렵다‘고 민간요법으로 부축해 온 허름한
길을 찾아낸 수작으로 현장감 있는 표현을 찾아낸 함축성 있는 작품이
다.
동 짓 날
修賢 박 명 남
?
?
몇 번 휘저으면
달보다 커 보이던 당신 손
새끼 닮은 하얀 새 알 뚝뚝 떨어뜨리며
강물에 어떤 소망 담금질하셨을까
고시네고시네
언 병아리 같은 내 새끼들
가시 같은 액일랑
어미 정성 봐서 그냥 지나치소
옹가지 푹푹 퍼 담은 죽 한 사발
겨우내 더디게 가더니
세월의 강 몇 번 지난 동짓날
단돈 삼천오백 원에 내 유년을 샀다
재래시장 노파가 건네준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일회용 동지
하얀 달이 떠오르다
낌새도 없이 사라진다
다시 건널 수 없는 저 붉은 강
수현(修賢) 박명남 myung8028@hanmail.net ----------------
1960년 경북 의성출생. 대구 거주.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두레문학』
다 리 미
박 명 남
난, 예열 중이다
이어진 선 하나 흐르는 힘의 위력을 믿고
지금 성형수술대에 서 있다
비뚤어지고 구겨진 허물
제 모습 찾아주려고 시술 중이다
홀로는 할 수 없다
누군가 밀어주는 손끝의 압력과
발바닥 고온이 맞닿는 순간
신기하게도 구겨진 것들은 끽소리 없이
마음 따라 푸지직 하얀 김 피우며
저마다 이맛살 펴고야 만다
들쑥날쑥 생활의 탄피가 어지러 놓은 길
발걸음 가로질러 오롯한 줄 하나 세우리라
그대, 헝클어지고 모난 모습이 있다면
기필코 올곧은 선 기필코 찾게 맡겨봐
修賢 박명남의 ‘동짓날’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일회용 동지 / 하얀
달이 떠오르다’ 팥죽 그릇을 통하여 유년으로 다시 건널 수 없는 저 붉
은 강으로 형상화 시키는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작품 ‘다리미’에서는 옷감이 성형수술대에 선 작가로 분신한다. 비뚤
어지고 구겨진 자신의 허물도 이맛살을 펴고 발걸음 가로질러 오롯한
줄 하나 세우려는 다리미 장면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여 독자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좋은 작품이다.
폭탄주
박 향 자
오늘은 개구리가 되고 싶은 날 삶의 자잘한 근심걱정을 보류하고
개구리 알을 만들자 커다란 잔 가운데 작은 잔에 독한 술을 넣고
맥주를 채워 넣으면 변색을 재촉하는 손가락 감촉 온몸에 털이 오소소 들고 일어난다 우리밖에 없는 대망에 냅킨 덮고 콰앙,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크소리 젖은 밤을 조명하는 원시의 느낌으로 유년의 야망과 부딪혀 보자 포근한 커턴 여미면 물이 차오르고 오물거리던 손발에 갈퀴가 돋아나 우리가 뜨는 날, 오늘은 개구리의 날 지성도 교양도 문밖에서 어지럽다 찰랑거리는 개구리 알 높이 들고 헤엄치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개굴개굴’
박향자 insyalla41@hanmail.net -------------------------
강원도 정선 출생.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두레문학』
왜 곡
박 향 자
사진 찍는 일은 늘 만만치 않다 신께서 만든 세상 감추고 드러내어 내 시각으로 보아달라고 한다 버스비 아끼려 걸어서 가던 어머니 길 따라 헤어진 사람 그리는 여인의 슬픈 눈과 마주친다 호시탐탐 길을 잠식하려는 숲 굴절된 언덕을 넘어가는 바람은 불편한 사진 속에서 그림자를 지운다
박향자는 사진을 찍어서 나타나는 현상과 현실과의 ‘왜곡’ 사실을 찾
아낸 독창적인 시안을 가진 수작이다. ‘불편한 사진 속에서 그림자를 지
운다’는 표현이 습작 경륜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얼마간의 공백을 두고 작품을 묵힌 흔적은 ‘폭탄주’에서도 나타난다.
사실로 보이는 폭탄주의 형상을 개구리알로 환치시킨 이미지가 선명한
좋은 작품이다. ‘우리가 뜨는 개구리의 날’로만 그치지 않고 ‘헤엄치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 '개굴개굴’ ‘노래할 줄 아는 심안의 세계가 정립된
믿음으로 독자 앞에 다가서는 작품이다.
우 럭
손 갑 식
여섯 사람 테이블 껌벅껌벅 눈어림
화들짝 아가미 풀썩거림
놀란 가슴 놓으려는 즈음
꼬리지느러미 바르르 문풍지 운다
살점이 없어져 가는 것을
눈물 없이 눈 껌벅여 보는 우럭아
피부가 벗겨져도 피 튕기지 못하고
살점이 헤져도 혈관마저 없는데
눈 시리게 하이얀 접시에
박제된 등골뼈 겨우 얹혀 나온 우럭아
산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아서 도려내는 살육의 고통
무슨 억울한 천형을 업었기에
안간힘 다해 꼬리지느러미만 바르르르
아득히 햇살 한 가닥 저며 오는 바다 깊이
나붓이 놀리던 앞가슴지느러미
아름다운 빗살로 차라리 슬프게 누워
살점이 들춰질 때마다
빈 가슴을 쓸어내린다
삶이란 이렇게 헤진 살점인 것을
타인의 입맛에 봉사하며 발겨지는 것을
휴~ 소리가 소주잔 굽을 타고 흐르고
지느러미 떨며 곧 파르르르
?
손갑식 nadonse@hanmail.net ---------------------------
울산/교육자.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학 석사.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좋은문학』.『시와비평』.『두레문학』
보성 녹차밭에 가면
손 갑 식
보성 녹차 밭에 가면
한여름 땀방울 녹색으로 맺힌다
쉴 새 없이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 마찰음 한 모퉁이
본 적 없는 여행객들 필름지에
내가 거꾸로 선 녹색인간으로
매달려 있을 터이다
높은 전나무 사이로 내준 산책로 따라
그늘에 가린 속잎마저 진녹색이다
세상살이 더도 덜도 말고
녹향(綠香) 번지는 녹차밭만 같았으면
땀을 훔치는 바람이 발자국 앞서간다
손갑식은 학생들의 교육에 힘쓰면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석학이다.
‘우럭’ 작품은 접시 이에 횟감으로 오른 우럭에 대한 작품인데 오랫동안
습작해 온 표현이 건강한 작품으로 문학의 기본이 사실에 기저를 둔 진
실한 표현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삶이란 이렇게 헤진 살점인
것을’ 타인의 입맛에 봉사하는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보성 녹차밭에 가면’ 작품에서도 ‘세상살이 더도 덜도 말고 / 녹향
번지는 녹차밭만 같았으면’하고 노래하고 ‘땀을 훔치는 바람의 발자국’
을 징명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갓바위 가는 길
이 영 돌
팔공산 갓바위 가는 길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사람들이 다녀간 발자국 같다 마른 솔잎은 가슴 속에 담아 온 바늘을 뽑아내 길에 버린 게지 갓바위 아래 촛농처럼 앉아 우는 사람 저 초 다 타고나면 눈물이 마를까 청빈한 손을 보니 파르라니 솟은 핏줄 검불처럼 살아온 길이 보인다
이영돌 프로필 yyoung820@hanmail.net --------------
경북 포항거주. 동양석판주식회사 근무.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시와비평』『두레문학』
도시형 인간
이 영 돌
햇살보다 먼저 일어나
전보보다 빨리 달려도
하루는 늘 바늘 끝보다 짧다
시간이 악마처럼 달려와 불끈
목을 조를 때면 혀끝이 다 타들어간다
속도의 돌림병을 앓는 도시의 사람들
피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신호등에 걸어놓고
흔들리지 마라
흔들리지 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과녁의 붉은 점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이영돌 작가는 개인사정으로 작품의 수가 그리 많지만 문학보다 가정
우선인 문학관과 상통할 것으로 생각한다. ‘갓바위 가는 길’에서 ‘마른
솔잎은 / 가슴 속에 담아 온 비늘을 / 뽑아내 길에 버린 게지’ 초가 다
타고나면 눈물이 마를까 하는 감성과 손등에 선 핏줄을 보고 ‘검불처럼
살아온 길’을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도시형 인간’은 무엇인가 신호등과 속도의 관계 설정을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작가의 심안이 내다보인다. 철학적 사유를 묵혀서 직접
내놓지 않고 작가가 다만 독자 앞에 내놓기만 할 뿐인데 읽고 난 다음
에 느껴오는 감동은 크게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대흥사 겨울, 2006 - 본다는 것의 외형 -
이 희 규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초의 선사는 좌선만 하고 있었다.
싸락눈이 바람 속에 떠돌다가
두륜봉에 한 숨 고르는 사이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가
휘익 던져 뿌린 먹물로 그린 가련봉 능선
아직도 날 세우고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퍼득이는 바다를 건너 온 눈 파란 행자승이
산다화가 붉게 익은 겨울 쏘시개로
다관에 다글다글 찻물 끓이다가
잣나무 그림자에 취해 가만히 조는 사이
풀옷 걸친 스님은
일지암 지붕 위에 배광을 두른 채
묵언, 결가부좌 끝내 풀지 않았는데
머슴새 목탁 소리에 젖은 백설차 이파리
입술 끝만 새벽까지 오돌돌 떨고 있었다.
이희규 프로필 hopenut@hanmail.net-------
대학원 석사. 교육자.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두레문학』
봄날 아침풍경 - 본다는 것의 그 外形
이 희 규
겨울 너른 공간을 지나온 사람들이
너울너울 멍울진 봄 사이에 살고 있다.
골리앗 같은 콘도라 깃발이 몸부림치며
간밤 눈 내리는 소리를 내지른다.
골조를 드러낸 돌산 언덕배기가
간밤 잠시 눈꺼풀을 덮는가 싶더니
문득 아파트 골격을 터는 어둠
바람은 신열을 내며 끙끙 앓는다.
고속이 좋아 알 수 없는 굉음으로
먼지 날리며 오토바이 질주하고
도회의 거리는 싸락눈 떨고 있다.
아직 꿈에서 저린 왼손을 들고
그윽한 안개를 휘저으며 떠날 채비다.
수묵화 덜 깬 눈썹에 주욱 쭉
색조연필로 문신만 긋고 있다.
이희규의 ‘봄날 아침풍경 - 본다는 것의 그 外形’작품은 ‘골조 드러난
언덕배기’와 ‘아파트 골격을 터는 어둠’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현 연구
를 거친 습작에 의한 강건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수묵화 덜 깬 눈썹
에 쭉 / 색조연필로 문신’을 긋고 있다는 표현은 가히 수작이다.
‘대흥사의 겨울, 2006’에서도 ‘싸락눈이 바람 속에 떠돌다가/두륜봉
에 숨 고르는 사이’ 귀양 가던 추사가 휘익 던져 먹물로 뿌린 능선을
발견하고 잣나무 그림자에 취해 조는 행자승을 찾아낸다. ‘목탁소리에
백설차 이파리 입술 끝만 새벽까지 오돌돌 떨고 있다’는 표현은 순수시
가 지향하는 표현, 상황 자체만 보여주어도 독자는 그 깊이와 숨겨진
내면의 철학까지 읽히도록 하는 석학의 저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둘뱅이의 바람
장 득 규
얼음골은 물 한 바가지 숨기라 하고 구만골에 궁둥이 까고 앉은 탑골산을 살살 헹구어라 하네 산봉우리 서로 기대어 병풍치고 모락모락 수줍은 물안개랑 동사리랑 어울러 자는 못생긴 바람 안개 엉금엉금 산을 오른 자리 바위에 머리 기댄 솔 그림자는 둘뱅이의 어릴 적 동무 산까치 질투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네
* 둘뱅이 : 밀양 얼음골 소 이름 중의 하나.
장득규 프로필 korjdg@hanmail.net-----------------
밀양출생 진주거주. 한국항공우주산업(주) 공학사.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 『두레문학』
가을이 간단다
장 득 규
수송아지 혓바닥만한 잎으로
살찐 여름을 가린 굴밤나무랑
뒤꿈치 들고 부름을 넌 들었을 텐데
입장 바꿔 보라며 능청스레 다가와
까만 밤 뒤적여 노랑 이파리 바꿔 달았네.
시월 어느 날,
손가락 꼬부려 멱살 잡은 허공
촉촉한 눈으로 밤새 너를 품을 때
내 몸에 매달리던 꼬리표 하나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장득규의 ‘둘뱅이 바람’은 문학작품의 함축미를 느끼게 해 주는 좋은
표현을 선보인다. 첫 연에서는 문장구조가 ~하고 ~하네 인데 습작 경
륜을 쌓아 가면 ‘안개 엉금엉금 산을 오른 자리 / 바위에 머리 기댄 솔
그림자’와 같이 대성할 수 있는 저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산까치 질
투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네’로 마감하여 여운을 준다.
‘가을이 간단다’ 작품은 시의 표현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다. 작가가 스스로 작품 속에 휘말려들지 않고 관조의 기저를 견지할
줄 아는 안목이 좋다. ‘손가락 꼬부려 멱살 잡은 허공’ 표현에서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를 연상하며 작가의 품속으로 따라 들어가 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쟁 기 질
조 경 근
이틀 품앗이로 겨우 소고삐 받아 쥐고
굽실거린 허리처럼 휘어진 다랑이 논
조롱조롱 매달린 진흙에 허리춤 흘러내릴까
넉살 좋게 보채는 허기를 새끼줄로 단단히 묶고
가자 이놈아, 무딘 발굽
펑퍼짐한 등짝을 후려 모로 누운 뿔을 세운다
서슬 퍼런 보습에 슬금슬금 갈라지는 땅
억새가 파고들어 길섶 분간 없는데
토막토막 뒤집힌 흙이 해묵은 논배미에 요동을 친다
엎어진 생살 비린내가 산을 깨우고
이랴, 이랴 들머리 부리는 잔등을 넘어
마을을 쩌렁쩌렁 호령(號令) 해도
머슴살이 육십에 성(姓)하나 얻지 못하고
고함소리 ‘덕칠이’ 하고 희롱하는 메아리
핏발 선 고삐를 말아 쥐고 뚜벅뚜벅
발굽 따라 돌아오는 길
어둠에 번뜩이는 쟁기 날은
아직 흙 비린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조경근 zabewon@hanmail.net -------------------
1956 완도출생. 광주거주.
시와비평『두레문학』남도회장.
공저『두레문학』
창(窓)
조 경 근
발정 난 시간이 이 벽 저 벽을 타고
날뛰다가 제풀에 겨운 새벽
갓 스물 빨간 입술이
싸구려 담배에 타고 있다
객기 부추겨 주머니를 홀리던 손짓이
쥐꼬리처럼 제 몸 숨기고
넉살 좋은 가로등은 게워낸 안개 긁어모아
젖은 농(弄)을 태운다
물머리 쓸려간 거리에
신발코를 빠뜨린 주정뱅이 노래가
질펀한 갯벌을 더듬어 가고
호들갑 떠는 바람에 선잠 깬 아침
창(窓)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
조경근은 ‘창’을 통하여 투영되는 사물과 상황을 건강한 필치로 잘 그
려낸 작품이다. 마지막에 ‘창은 시치미를 떼고 있다’로 마감하여 독창적
인 시안이 엿보이고 문학도로서의 경륜을 가늠하게 한다.
‘쟁기질’에서 ‘허리처럼 휘어진 다랑이 논’과 ‘엎어진 생살 비린내가
산을 깨우고’는 심안을 열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경계이다. 발굽 따라 돌
아오는 길에 보습 날의 발견은 역시 순수시를 지향하는 표현법을 습작
한 저력을 엿볼 수 있다.
문학 작품을 건축물에 놓고 보자면 뼈대가 없는 건물은 힘이 없어 외
력에 쉽게 무너질 것이고, 뼈대만 있는 건물은 골조공사만 하고 고객에
게 내 건물이 좋으니 사라는 격이 아닐까. 또한 생선에 놓고 비유하자
면 마치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도려내고 뼈만 쟁반 위에 담아서 독자의
상에 내놓은 격이라 할 수 있으니 위험한 발상이라 할 것이며, 뼈와 살
이 있고 비늘과 꼬리가 있고 물결을 헤치며 유영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실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레문학이 한국 현대문단을 대표하는 문학회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문예대학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열심히 문학창작 수련을 하여 일반 독자
에게 다가가 그 이름을 드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문인들이 순수문
학의 대열에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자리에 현대적인 상술을 부려 현혹
하거나 세류에 편협한 감언이설로부터 문학의 본질을 지켜내는 일이 쉬
운 것은 아니다. 이젠 한국문단에서 문학 그 참사랑의 의미를 공감하고
두레문학으로 달려오는 문학도들이 많다. 이렇듯 시와비평문학회가 반
년간 종합문예지 『두레문학』을 통하여 문단의 자리매김과 동시에 그
만한 책임과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고, 순수문학의 초석을 다지고 새로
운 문학세계를 향하여 도전과 응전을 계속하여 문학 발전에 기여할 할
것으로 기대한다.*
[수필]
은유의 숲을 지나는 시간여행
이 양 섭
??느낀다. 뭔가 있다 순간순간, 어떤 이치의 실마리가 잡힐 듯도 한데,
아주 막연한 간지럼을 태우고 종내 잡히지 않는, 구태여 숨어있지도 않
은데, 일부러 드러나 있지도 않은, 그냥 그렇게 묻혀있는 듯하면서, 문
득 문득 나를 일깨우는, 살아있는 바로 곁의 경우들. 반짝 빛을 발하고
시간에 실려 사라지는 현상들.
??그 아무리 헤어나지 못할 미로일지라도, 우선은 그 입구를 알고 싶은
데, 탈출을 위해 미로를 선택해야 한다면, 길을 찾는 갈구의 유혹을 뿌
리치지 못하리라. 한 생을 탕진하여 어느 구석에 지쳐 쓰러져, 몸의 한
계에 갇힌 죽음이 있을지라도, 나름의 용기가 맥없이 잊힐지라도, 어쩌
면 내 숨이 정신과 화합하는 동안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세상의 모든 기쁨과 희열을, 순간에 보여 줄 그 출구. 빛. 환희. 혹은 아
직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데도, 어떤 느낌은 자주 나를 곤두세우고, 나는
기어이 머리를 털고 개미집으로 향하는 길이든, 거미줄을 타고 오르는
숲 속이든, 송사리의 재빠른 지느러미 짓이든 좇아가야 한다. 아, 저기
움트는 새싹은 어찌하란 말인가! 그래, 아니 어쩌면 이미 여기가 미로
속인가? 길은 정녕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어지는데.
??무엇을 갖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참
을 것인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허물 것인가, 강한 욕구가 덜 강
한 욕구를 이기는 듯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약속은 이미 되어져
있었다. 약속 속에서 나의 의지를 시험하는 듯 약속을 한다. 서툰 약속
속에서 몸이 이기거나 정신이 이기거나 하는, 착각 속에서 안타까워하
는 나는 누구인가? 왔으되 온 길을 모르고, 가되 가는 길을 모르고, 모
르기에 통과해야 하는 못마땅한 시험과 약속이 점철된 관문들이 살아있
는 길 위에 이어지는데.
??도저히 다가서지 못할 내 살아있음의 근원에 대하여와 마찬가지로,
조화롭게 어지럽게 온갖 것들이 들어찬 이 땅의 가장 신비한 까닭은 뭇
생명의 발현이다. 드러나 보여도 미처 알지 못하는 메타포 우거진 숲
속에서, 개운치 않은 재채기와 간지러움, 그 느낌을 일으키는 것들, 고
향이거나 여인이거나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는, 짙은 안개 속 자기
소외의 길, 발걸음은 무겁고 의미는 까마귀의 울음소리로 스러지고, 알
지 못할 서러움, 그 뜨거운 욕구가 덜 다듬어진, 나는 이렇게 헤어나지
못하여 너에게 길이 된다.
??바벨탑 계단을 오르거나 함정에 빠지거나, 지난 다음에 웃는 욕구는
치졸한 것이다. 되어지는 삶과 살아주는 삶 사이에, 무슨 기준으로 어떤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시간을 넘어서려는 욕구를 줄 세우기 위해, 미
로 속에서도 시간은 외줄기로 나아가고, 가늠치 못할 그 표면은 단단하
고 미끄럽다. 양보하고 포기하고 잃어버리고 남은, 한 가지 욕망을 그러
쥐고 어렵사리 시간을 타더라도, 단단히 그것의 가슴팍을 붙들고 머리
를 그 속에 처박지 않으면, 시간의 부력에 튕겨져 나가, 정체 모를 어둠
에 잠길 수도 있으리라.
??시간을 제대로 타고 어우러져 흐른다면 공간에서와 달리 나는 늙지
않으리. 환경은 기차 밖의 풍경처럼 뒤로 지나가고, 나는 언제나 내 모
습으로 다가 올 시간대에 이르리니. 아, 가없는 열망으로 그리 될지라
도, 어딘가에 붙들린 그 꼴이 다가 아닐진대, 꼭 어디에 다다르지 못했
을지라도, 변하고 구부러진 한 가지 욕망마저 시들해지면, 그 구도의 상
처까지 결국은 퇴색되어 다시 내 자리가 그리워지면, 진땀나도록 부여
잡고 매달리던 여행은 지리멸렬해지고, 이제 그만 손을 놓을 때가 된
것이다. 미로는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 버리고 허물고 포기할 수 있었더라면, 악착스레 이 시간을
붙들려 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무슨 까닭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몰라, 나
는 저절로 맡기어졌다. 빛과 어둠을 반사하는 시간의 표피를 어렵게 뚫
고 나와 이제야 크게 숨쉬고, 어느 순간 튕겨져 나동그라지면 나의 시
간은 정지되고, 정지된 공간을 스쳐지나가는 남의 시간을 잠시 보다가,
이제는 알만한 어둠이 진공된 저 어느 곳, 부유하는 자리에서 천천히
점 하나로, 그 점조차도 희미해지며 소멸하리.
??별빛 하나 아슴푸레하게 빛나는 날, 가늠할 수 없는 어느 동굴 속에
서 아이가 웃음 짓더라도, 나는 이미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길이 되리
라. 숨 쉬는 염원이여!
[20070428]
이양섭 general-mgr@hanmail.net --------------------------
현재 서울 노원구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좋은문학』『두레문학』
[수필]
검은 목관[木棺]이 있는 풍경
권 영 섭
날마다 비가 내렸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이따금 푸른 탱자가 맥없이 떨어졌다.
늙은 탱자나무 울창한 가지는 이 낡은 슬레이트집 지붕을 감싸고 있었
다. 바닥이 낮은 부엌은 이제 직사각형의 어항이 되고 말았다. 이 사글
세방의 주인이자 친구인 김 정효씨는, 날씨가 아주 맑은 날, 직장으로
나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날마다 비가 내렸다.
“늙은이의 쓸쓸한 해학[諧謔]이라고....”
방 한 구석에는 당연한 가구마냥 놓여진 검은 목관에 대한 설명이었
다. 그 직장이라는 표현도 알고 보면 짓궂은 풍자였다. 이 공업도시 입
구라 할 수 있는 역 화장실 곁이 직장이었다. 아주 구어체의 언문으로
사주팔자에서 신수까지 잔뜩 적어 놓았다. 봄이 깊어지던 어느 날, 마땅
히 기댈 언덕도 없이 떠돌다가 이 늙은 동양 철학자를 만났던 것이다.
“내가 제자를 한 명 키우려고 했거든.....”
이렇게 하여 명목상 제자가 되었다.
밤이 깊어진 다음에야 자리를 걷어 일어서기에 묵묵히 뒤를 따랐다.
장터 곁에서 콩나물국밥을 사 먹은 다음에야 좁다란 골목길로 들어갔
다. 노인은 그래도 사글세 오막살이라는 최소한의 근본은 있었다.
“자네도 이 공부를 하여보게나, 밥벌이는 될 걸세.”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한 시절 같이 어울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명
리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 동양철학자도 제자라 칭하기는 하
였으나, 애써 무엇을 알려주려 하지도 않았고, 나 역시 그 무엇을 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이 있다네.” 노인은 실향민이었다.
이렇게 하염없이 늙은 노인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기이
하고 슬픈 회한처럼 들렸다. 청천강이 내려다보이는 회천이 고향이라
하였다. 그 평안북도에는 이 김 정효의 많은 재산들이 문서로 보관되어
있었다. 아직은 연한 송진내가 나는 검은 목관 속에는, 그 외에는 고향
에서 가져온 갖가지 물품들이 간직되어 있었다.
20세기 한반도 역사에는 참으로 가슴 아픈 슬픈 기록들이 얼마나 많
았던가!
“머지않아 통일이 되면 우리 같이 청천강에다 뗏목을 띄워놓고 한 바
탕 노래도 부르고 술을 마시세나.“
이런 로맨틱한 희망을 노인이 품고 있었다.
이 마당이 넓은 집에는 네 가구의 세입자가 살고 있었다.
포장마차를 하는 중년의 내외와 섬유공장에 다니는 두 아가씨와 극장의
간판을 그리는 곱추사내가 바로 그들이었다. 집주인은 시장에서 생선가
게를 하는데, 방 계약 같은 일 외는 집에 오는 경우가 없었다. 집의 시
설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알아서 고치라고 오지 않았다. 부엌이 지금
어항이 되어 버렸지만, 연락을 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이 동양철학자는 너무나 오랫동안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오직 술 한 잔 마시는 얼큰함으로 쓸쓸한 세월을 견디어왔던 것이다.
나하고는 날마다 대단한 내용은 없지만, 밤이 깊도록 긴 이야기를 지치
지도 않고 떠들어댔다. 벌써 소식이 끊어진지 일주일이 넘었다.
자칭 화가라는 그 꼽추사내에게 이 노인의 행불을 상의하여 보았지만
마땅한 궁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포장마차 부부도
“글세, 노인네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찾아갈 데도 없다고 했는데...
어디로 갔을까?“ 오히려 묻는 표정을 지었다.
취사는 휴대용 가스렌지로 방에서 해결하였다. 단칸방에는 검은 목관
을 제외하고는, 사실 살림살이라 할 것도 없었다. 방바닥도 눅눅하여 아
예 검은 목관 위에서 잠을 이루었다.
그 지루하였던 장마가 끝이 났다.
사암층으로 이루어진 부엌바닥의 물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곰팡
이 냄새가 진동하는 옷가지와 이불들을 마당에 널었다. 집이 없는 달팽
이들은 끊임없이 행진을 하였다. 정말로 징그러운 달팽이와의 전쟁이었
다. 오래전에 문 닫은 제제소의 톱밥 때문이라고 하였다. 송판울타리는
길게 담을 만들고 있었으나 이미 허술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역 앞의 파출소에 들어가 물어보았다.
아! 진작 물어볼 것을 그랬다. 술이 취하여 비 내리는 화장실 곁에서
죽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갔을 때는 이미 숨이 끊
어져 있었다. 아무리 옷가지를 찾아보았으나 신원을 밝혀낼 신분증이
없었다. 시체안치소에도 보관기간이 있는지라, 시청에 연락하여 무연고
행려자로 화장을 하였다고 알려 주었다.
고인을 위하여 향 한 개 피울 방향도 없었다.
설사, 나에게 연락이 온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로 모르는 일이었다. 차
분하게 오막살이로 돌아와, 노인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다 보니 언제부터
인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검은 목관을 열고, 노인의 희망이
라는 그 평안북도 회천땅 부동산문서를 살펴보노라니, 서러움에 흐느끼
면서 울었다.
이제 이 문서는 어찌하여야 하는가?
내 방랑의 시절 오랫동안 이 문서들을 가지고 다니기는 하였지만 세
상의 어느 길목에 이 문서를 잃어버렸는지, 이제는 알 수 없다. 대충 기
일[忌日]을 기억하여 한 잔의 술을 부어 드리기만 하였다.
권영섭 time-8022@hanmail.net --------------------------
현재 경기도 의정부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두레문학』
[여행기]
터키여행기
노 강 웅
중국으로 여행하려던 계획이 사스로 인해 여행이 취소가 되어 지난
겨울은 그냥 국내여행이나 하자 했었다.? 하나 옆지기가 터키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준비 없이 터키로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여러
번 다녔으나 이번 여행처럼 힘든 여행은 처음이었다.
?애초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국적기가 아닌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러
시아 항공을 이용하는 여행상품을 선택한 덕에 고생스럽고 힘든 여행이
되었다.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있으며? 6.25때
참전용사를 보낸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고 박
정희대통령이 앙카라에 석가탑과 다보탑을 믹스한 것 같은 위령탑을 헌
납하여 한국공원이라 명명하여 공원화 하고 있다. 터키는 우리나라(남
한)의 8배가 된다고 하고 농업 국가이기도 하다. 건강에 좋다는 올리브
유며 밀 등 농산물과 살구. 무화과. 석류 등이 주로 재배되는데 지중해
성 기후라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그래 그런지 빵이 맛있고 매우 싸다.
??물 저장량은 많은데 석회가 많이 섞여 있어서 먹을 수가 없고 식수는
매우 비싼 편으로 물을 사면 빵을 거저 덤으로 준다고 하니 상상해 보
시라! 화폐는 리라라는 단위를 쓰는데 우리 돈 100원이 100,000리라
1000원이 1,000,000리라, 처음에는 하도 황당하여 돈 계산하는데 헷갈
려서 절절매었다. 가이드 말이 동그라미 세 개를 빼고 계산하면 된다고
해 그리해 보니 좀 나아졌다. 같이 간 일행들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터키에 와서 봇장만 키워 갔나보다 하고? 농담을 해서 씁쓸한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화장실이 그리 깨끗한 편은 아니고 돈을 받고 있어서
1달러로 4명씩 짝을 지어 다녔다. (우리 돈으로 250원에서 500원) 기
후는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은 우리나라보다 더 춥고 여
름은 더 덥다고 한다. 앙고라염소라는 뜻에서 따왔다는 터키의 수도 앙
카라는 ?! 탓? 춥고 눈이 무척 많이 온다고 한다. 해발 900미터라서 그
런 것 같다. (앙고라토끼가 아니라 염소라고 한단다) 시차는 우리나라보
다 7시간이 느리며 여름엔 8시간(썸머타임 적용). 가량 되어 시차 때문
에 고생을 좀 했다.
??집에서 떠나 정확하게 24시간 만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 9시간20분, 모스크바 공항에서 5시간, 소비 모스크바에서
터키까지 3시간,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2000킬로미터의
여행이었다. 어마어마한 유적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느라 고생 좀 했다.
막상 여행기를 쓰려고 하니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난감하지만 그래
도 일정에 따라 세부적으로 올려 볼까 한다.
??유럽과 아시아 간 동서 문화의 십자로에 위치해 있는 터키는 과거 히
타이트, 로마, 비잔틴, 오스만 대제국이 번성했던, 소위 "문명의 발상지"
로 일컬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1923년,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아타튜르크의 지도 아래 정치와
종교의 분리된 터키공화국이 설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터키는
다양성과 역사적인 깊이라는 측면에서도 인접하고 있는 유럽의 여러 나
라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여러 가지 훌륭한 문화적 유산을 보유하고 있
는 나라로서 역사적인 문화유산 외에도 아름다운 바다, 울창한 숲과 높
은 산들, 다양한 문화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다.
??아침 5시 모닝콜,5시30분 아침식사,6시30분 출발,
아침 눈 비비고 일어나 식사부터 시작되는 여행이었다. 밥을 잘 먹는
나는 그런대로 먹을 만 했는데 집사람은 힘들어 했다. 다른 여행에서는
보름을 밥을 안 먹어도 밥 생각을 별로 안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먹는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아침식사로 삶은 달걀 1개와 토마토
4쪽이 전부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스탄불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답게 도로는 매우 좁아 버스
한 대 지나기가 쉽지가 않고 길 양 옆을 보면 한 쪽은 중세영화에서나
봄직한 옛 건물들이 다른 한쪽은 현대의 건축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
며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처음 도착한 곳이 오밸리스크와 뱀
기둥이 서 있는 히포드럼 광장, 이슬람교의 사원인 블루 모스크, 기독교
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성소피아 사원, 지하 궁전이라고 불리는 지
하 저수저. 히포드럼 광장은 옛날 벤허에서 보았던 것 같던 마차경주도
하고 사형수를 처형하기도 했던? 곳이라 한다, 여기저기 전몰 품을 옮
겨다 놓은 기둥들이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가이드의 설명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파란 타일이 깔려 있어 블루 모스크사원은 탑이 6개로 터키에서 제일
큰 사원으로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사람을 압도하며 서너 명이 양팔을
벌려야 할 정도의 원통형의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돔형의 중앙의 높이
는 아파트 3층 높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터키의 종교는 이슬람교로 국민의 98%가 이슬람신도이다. 사원의 건
축과 사원 안을 장식한 그림들을 보며 ‘여기는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 역사학자들과 교인들은 한 번쯤 와보는 것이 좋
겠다’고 생각했다.
?성 소피아사원은 다음에 소개할 에베소에서 기둥을 가져다 지었다고
하는데 블루 모스크와 길을 사이에 놓고 있어 이스탄불의 꽃이라 생각
되었다.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등 옛 기독교가 왕성할 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지금은 모든 성화들을 그대로 둔 채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
고 있으며 군데군데 코란이 새겨져 있어 생경함과 경이로움으로 마음이
경건해졌다. 역대 25명이 살았다는 톱카프 궁전은 현존하는 오스만제국
의 건축술의 가장 광범위하고 훌륭한 기념물인 거대한 궁전이다. 이곳
에는 건축술과 역사적인 흥미와 함께 박물관으로서 왕족의 소유였던 도
자기와 보석, 무기, 원고, 서예 품 그리고 많은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
으며 이들은 필적할 수 없는 훌륭한 것들이었다.
??약 70만 평방미터로 궁전, 정자, 모스크 그리고 우물의 복합체이며
비잔틴시대의 해안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이 궁전을
TOPKAPI (CANNON GATE 대포 문)라 불렀다고 한다.
??MEHMET 2세는 1453년 이스탄불을 점령, 첫 번째 궁전을 현재의
이스탄불 대학과 슐레이마니에 모스크가 있는 지역에 세웠으나 규모가
작아 1478년 하렘을 제외한 현재의 궁전을 지었으며. 톱카프 궁전은 압
둘메짙 왕이 새로운 궁전으로 옮기기(1843~1856)까지 공식적인 왕의
저택으로, 왕국의 황금시대에는 4000~5000명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
다.
??화려하고 웅장한 터키의 궁전을 보며 아담하고 정겨운 우리의 궁을
생각해 보았다. 동, 서양 모두 왕족들의 화려함이 너무 똑같아 웃음이
나왔다.
??거대한 터키-르네상스 양식의 돌 마바흐체 궁전 관광 후 제우스가 애
인과 밀회를 하다 아내 헤라에게 들키자 애인을 소로 만들어 바다를 건
너게 했다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말
마라 해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절경 중 하나다.
??총 연장 길이는 31.5Km, 최장 폭 3,2Km, 최단 폭 550m이며 최대
깊이는 118m 로. 제 4지질대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시대 초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형성 되었으며, 비잔틴 시대와 오스만 시대에 보스포로스
양쪽에 조그만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 했다고 한다. 18세기 때에는 왕
들과 대신, 장군들에 의해 각광을 받게 되어 그들의 별장과 해안 주택
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목조 건물들이 낡고 부서짐에 따라
새로운 건물들로 대체 되었으며, 목조로 된 베식타쉬 궁전이 현재의 돌
마바체 궁전으로 개축되었다. 베이레베이 궁전 역시 석조 건물로 개축
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보스포로스의 자연적 경관과 건축물과의 조화는 다른 어떤 것
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다.
??푸른 나무 언덕에 감싸여 자유롭게 흐르는 물결 위로 건축물들이 해
변을 수놓고 있는 전체적인 관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즐거움을 만
끽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는 TOPKAPI궁전, 소
피아 성당 그리고 슐레이마니에 사원을 뒤로 하고 출발한다.
??해협의 한 쪽은 아시아, 반대편 쪽은 유럽, 바다물이 얼마나 깨끗하던
지 부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우리나라나 터키나 경제공황이긴 마찬가
지 터키에도 실업자가 많다고 한다.
??해협 크루즈 하는 동안 많은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거의가 다
실업자로서 맑은 바다를 상대로 세월을 낚는 사람들이 시름을 잊기 위
해 줄을 늘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퍼졌으며 점심은 해협에서
잡은 생선으로 요리한다는 식당으로 갔다가 모두들 웃음을 지었다. 생
선요리라는 것이 그저 생선 두 토막 튀겨서 나온 것? 뿐이었기 때문인
데 하지만 빵은 부드럽고 너무 맛이 있어서 모두들 빵에만 손들이 갔
다.
??터키는 우리나라로 부터 약 8,000KM 떨어진 나라입니다.
이스탄불을 기점으로 시계방향으로 일주일간 약 2,000킬로미터를 돌아
터키를 섭렵(?)할 예정이다.
(다음 호에 계속)
노강웅 yesgo204@hanmail.net --------------------------
남양주 거주. 숭실대학교 영문과. 동 교육대학원 교육행정과.
시와비평『두레문학』회원.
공저『좋은문학』『두레문학』
[특집]
2007년 전반기[전국충의백일장] 보도자료
비영리민간단체 제133호 등록단체인 시와비평문학회는 울산광역시교
육과학연구원의 문학교과연구회와 함께 4월 30일까지 사이버 [전국충
의백일장]을 열었다. 또한 문학 행사의 활성화와 시민의 문학 사랑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민정서 함양을 위하여 [두레문학]문예대학도 겸하
여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겨레의 숨결인 문학의 보급발전과 문학창작을 통하여 참신하고 역량
있는 문인을 발굴하고자 개최되었다.
[초등부]
장원 ; 민들레-명정초 2-11 이수진.
차상 : 바람-인천 후정초 3-5 구승희. 지우개-명정초 5학년 박성진.
차하 : 바다-상진초 2-4 박선민. 나팔꽃-명정초 2-4 김예림.
방학이 끝나고-온양동신초6-4 김자은
참방 : 나무-명정초 5학년 이현석. 개나리-상진초 2-3 김부용.
파리지옥-명정초 3학년 현창민. 동생-상진초 2-3 허은지.
[중등부]
장원 ; 내 인생의 반려자, 내 통장-농소고등학교 2학년 김다솜
차상 : 내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진해용원고교 2학년 이승민
진정한 안티는 문화를 발전시킨다-안골포중학교 3학년 이동규
차하 : 테니스의 왕자-학성여자중학교 3학년 권소정.
손톱-농소중학교 2학년 김연정
참방 : 거울-농소중학교 2학년 박지양
봄-학성여자중학교 3학년 김수연
초등부에서는 [민들레]라는 글제로 명정초등학교 2-11 이수진 어린
이가 운문으로 응모하여 장원의 영예를 차지하였다.
민들레 /이수진[명정초 2-11]
봄에 피는 민들레 레몬 맛 막대 사탕 같아요! 붕붕 꿀벌들이 찾아오면 “어서 오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민들레 우산 같은 솜사탕을 나눠 주어요
중고등부는 [내 인생의 반려자, 내 통장]을 글제로 깔끔한 문장을 선
보인 산문 작품을 쓴 농소고등학교 2학년 김다솜 학생이 차지하였다.
내 인생의 반려자, 내 통장
/김다솜[농소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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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축을 많이 한 적이 거의 없다. 글짓
기를 눈앞에 두고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가만히 처음 저축을 한 때를
떠올렸다. 어렴풋하게 내가 기억하는 건,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처음
만들었을 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진 프라자의 검은 외관과는 대조적인 연둣빛 농협 마크가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늘 엄마와 함께 갔던 곳이라서 그런 건지, 혼자서 들어서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다. 조심조심 번호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번호표를 뽑았다. 그 때의 번호가 742번이었던가. 내 번호가 전광판에 뜨자마자 급하지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창구로 걸어갔다. 그 때의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다. 그리고 뛰어왔었기 때문에 내 얼굴은 평소보다 배로 상기되어 있었고, 땀을 줄줄 흘렸다. 일단 창구 앞에는 갔는데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다. 전에도 친구와 함께 통장을 만들러 갔는데 학생증과 도장이 없다는 이유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뭇거리다가 말문을 어렵게 열었다. “저기.....” 정말 소심하게도, 이렇게 말문을 시작하고는 얼른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얼굴에서 열이 확 뻗치면서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통장 만드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닌데. 왜 이럴까. “뭘 하러 왔니?” “저...... 토.. 통장 만들러 왔는데요.” 평소와 다르게 말을 더듬거리며 여직원의 얼굴을 힐끔 훔쳐봤다.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그 분은 살포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통장을 만들려면 신분증이랑 도장이 있어야 하는데, 학생증이나 주민등록 등본 있니?” “아, 네. 가져왔어요.” 긴장을 너무 한 탓일까, 군인 아저씨처럼 대답을 했다. 호주머니와 가방을 한참동안 뒤적거렸다. 이상하다, 챙기는 것을 두 눈으로 몇 번이나 확인하고 왔는데 왜 없을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찾아낸 내 분홍빛 도장. 가방 주머니 속 깊숙이 숨어 있었다. “앗! 찾았다!”조금 크게 소리를 친 터라 주변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여직원이 내놓은 바구니에 나를 고생시킨 도장 녀석과 학생증을 넣었다. 여름 방학 때 받은 용돈 중에 통장을 만들면 저축할 거라며 모았던 3만원과 함께. 통장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저축을 해서 무엇을 할까, 이자는 얼마나 받을까, 내가 이 통장을 가지고 있는 한 얼마나 더 저축할 수 있을까, 이번 해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을까....
길게 느껴지던 5분이 지나고, 드디어 내 손에 곱게 포장된 통장이 쥐
어졌다. 환하게 웃으며 통장을 만져봤다. 조금은 까슬까슬하지만 친숙한
느낌... 기쁨에 넘치는 가슴을 안고 가방을 메고서 농협마크를 뒤로 하
고 집으로 걸었다. 아직도 내 기억에 따뜻한 추억을 남아 있는 그날. 난 집에 가면서 통장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앞으로 저축 열심히 해야지. 이제 엄마가 저축해 주시는 것이 아닌, 내가 저축하는 통장이 생겼으니까. 토끼 한 마리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새털 같은?웃음이 간지럽게?터져 나왔다. 그리고 현재, 그 통장은 명절 때마다 배부르게 되었다. 1년에 두세 번, 친척 어른들께 받은 용돈 중 쓸 것을 빼고는 모두 넣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 때의 내 목표액(50만원)을 못 채우고 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내 통장은 배고픈 상태인데, 정작 나는 그 때 했던 나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키지 못해서 부끄럽기만 하다.이제라도 저축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실천을 못하고 있다. 하지만,?올 해엔, 꼭 그 때의 저축 목표액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겠다.
?
? 시상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2007년도 전반기 [두레문학] 출판기념
식장에서 함께하기로 하여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할 수 있어서 성
황을 이루었다. 이는 우리 문학 저변이 튼튼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좋은
결과라고 자평하였다. 최근에 학교 저변에서 문학창작 교육이 많이 활
성화되고 있으며, 아울러 전국 대학 입시제도에서 백일장 입상자를 우
대하여 중, 고등학생의 참여를 초등학교 수준으로 올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축사를 위해 참석한 조돈만 울산문인협회장은 주말에도 불구하고
2006년도와 같이 울산예술열린한마당 행사와 병행하여 감사를 전했으
며 문학 행사 참여자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흐뭇한 마음
을 전하고, 꾸준한 행사 진행으로 대표적인 전국문화행사로 자리 잡아
나게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국충의백일장] 2007-1 심사평
이번 사이버 백일장에 응모해 온 초등부 작품은 운문의 수가 우세했
다. 전반적으로 저학년들의 시는 생생하게 표현과 생각이 살아있는 반
면, 고학년들의 시는 표현도 다소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이수진 어린이의 <민들레>에서는 봄을 레몬맛 막대사탕으로 그려냈
다. 초등학교 2학년다운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레몬맛 막대사탕이 솜
사탕으로 변모해 가는 것도 흥미로운 시선이다. 레몬 맛의 시고 상큼한
맛을 좀 더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승희 어린이의 작품 <바람>은 얼음을 먹고 산다. 아이는 여기서 이
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람’과 ‘얼음’, 충분히 개연성을 읽을 수 있고 또
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눈이 참 신선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함께 응
모해 온 <우리집 문>이라는 작품 역시 열리고 닫히는 문소리를 통해
행복한 우리 집의 일상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 구승희 학생의 다양한 생
각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박성진 어린이의 <지우개>를 보자.
//전략/매일 똥 싸고 /사고뭉치 지우개 /틀린 글자 먹고 산다/후략//
틀린 글자를 먹고 사는 것과 사고뭉치의 상관관계가 멀지만 아이의 상
상력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대상에 생명력을 좀 더 실어준다면, 그렇
게 해서 지우개가 완전히 살아나 움직인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완전한 숨결을 불어 넣지 못했지만 어린이의 상상력을 어
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 좋았다.
박선민 어린이는 <바다>에서 바다에 가서 귀신을 나올 것 같다고 상
상하는 아이, 조금은 생뚱맞지만 어린이들의 상상력으로 충분하다. 그러
나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대상을 보는 눈을 키워나간다면 더 좋은 작품
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현석 어린이는 <나무>에서 '나무 한 그루 있어요/봄에 /푸른 아기
를 낳아요' 라고 하여 아이들의 상상력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봄에 낳은 아이를 어떻게 계절이 키워 가는가를 아이의 시선, 상
상력으로 봄에 낳은 아이를 키워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만들었을 것이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외에도 방학이 끝난 후 개학날의 마음을 진솔하게 잘 나타낸 온
양 동신 초등학교 김지은 학생의 <방학이 끝나고>, 현창민 어린이의
<파리지옥>, 허은지 어린이의 <동생> 김예림 어린이의 <나팔꽃> 등이
재미있는 상상력과 어린이다운 생각을 잘 나타낸 좋은 글이었다.
어린이들의 글을 보면 참 발랄하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글이 발랄하다는 것은 그만큼 때 묻지 않은 맑고 순수한 영
혼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백일장에서는 얼마나 순수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또 얼마나 맑은 눈으로 대상을 그려나갔나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다소간 글의 기교나 탄력성이 부족하거나 글의 대상이 흔들려도 글을
풀어나가는 신선함이 있는가에 초점을 두고 읽었으며 이는 어린이들의
글을 읽는 가장 큰 재미일 것이다.
이번 백일장에 출품한 학생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글을 써 보라!
잘 짜인 글 보다는 가슴을 울리는 글을 써라.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
로의 가슴이 먼저 울림이 있어야 한다.
자유롭고 발랄하고 신선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응모해 온 어린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큰 점수를 주며 격려의 박수
를 보낸다.
<중등부>
중등부는 운문과 산문의 작품 수가 서로 비슷했다.
중간고사 지필고사와 겹치는 때문이라서 그런지 작품의 수가 초등부
에 비해 적었다. 무척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
김다솜 학생의 <내 인생의 반려자, 내 통장>는 통장을 처음 만들 때
의 어려움과 마음먹었던 만큼 목표액을 실천하지 못한 마음이 잘 나타
내고 무리 없이 잔잔하게 잘 표현한 글이라 여겨져서 가점을 주었다.
이승민 학생의 <내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존재>는 부모님의 수고
에 비해 자신은 그다지 마음의 표현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위치에서 이제나마 감사하려는 마음이 곱다. 하지만 뒷부
분에 가서 다소 산만한 것이 흠으로 보여 아쉽다.
권소정 학생의<테니스의 왕자>는 일본만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삶에 적용하여 나가는 모습이 신선하다. 우리는 지은이가 이
야기 하듯 만화를 가벼이 여기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싶다. 좋은
만화는 문자로 된 문학작품과 버금가기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연정 학생의 <손톱>은 손톱과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것으로 반
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덧없는 삶을 표현하려 애썼음을 엿볼 수 있지만
마지막 연이 모호하게 끝나 아쉽다. 함께 응모해 온 작품 <도플갱어>는
자아와 비자아가 ‘도플갱어’로 함축되어 흥미로웠다.
그리고 <한국 유학생,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작품은 시사적인 문제를
접목시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노력이 나타나 있지만, 맞춤법과 문
맥이 혼란스러운 흠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주장하는 글 이동규 학생의 <진정한 안티는 문화를 발전시
킨다>는 사이버 시대에 있는 탓에 글감도 좋고 전형적인 논술문이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답지 않은 논리전개가 선자를 조심스럽게 했다.
박지양 학생의 <거울>은 좀 다루기 힘든 글감이 아닐까 싶은데도 거
울 너머의 자신을 드러내려 애쓴 모습이 보인다.
중등부 심사에서는 자기 생각을 얼마나 조리 있게 표현 했느냐에 중
점을 두었다. 청소년들의 건전한 사고와 독창성을 찾아내는 역동성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습관적 사고나 일반적인 답습에 머문 작품
들은 일차적으로 배제 되었다. 그리고 초등부와는 달리 맞춤법과 문장
의 구조도 함께 심사 대상이 되었다.
백일장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수가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줄어들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가면서 점점 더 글쓰기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청소년들의 탓만이 아닐 것이다.
사고가 쑥쑥 자라고 내면의 언어가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
출구를 막아두는 것은 아닌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작품을 응모한 모든 학생들의 정진을 빌어본다.
--- 심사위원 <권기만/박봉준/박희곤/이용일/이상태>
*심사방법은 작품과 학령 자료만으로 각각 5단위 점수로 평가한 다음
합산하여 수상자를 선정함*
『두레문학』문예대학 안내
문화예술과 제133호 비영리민간단체(NGO)등록 시와비평문학회 공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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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비평문학집 『두레문학』2002년 창간 통권 제6호
초판/1쇄 발행 200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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