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남도여행, 순천 ‘향토정’에서
내게는 처제가 둘이 있다.
막내 처제 미애는 이 세상 처제이고, 그 사이에 끼인 처제 선애는 저 세상 처제이다.
두 처제 모두 형부인 나를 끔찍이 좋아했다.
특히 선애 처제는 살아생전에 내게 특별한 선물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꽃게 간장게장 30마리 선물이다
그 사연은 선애 처제보다 먼저 고인이 되신, 선애 처제 시어머님의 마음씀씀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랬다는 것이다.
“야이야, 네 형부라 하는 그 꽥꽥이 말이다. 고맙게도 내게 돈을 보내왔더구나. 애비 하는 말이, 혼자 몸으로 오랜 세월 아들 잘 키워 자기 동서 만들어줘서 고맙다 하면서 그 돈을 내놨다는구나.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사돈한테 받은 그 돈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네 옷이나 한 벌 사 입어라.”
6.25 전쟁으로 일찌감치 남편을 잃고 홀로 세 아들을 키워내실 정도로 엄격하셨던 시어머니셨다.
그 공을 생각해서, 내가 동서에게 어머니 용돈 좀 드리라면서 30만원을 건넸었는데, 동서는 거기에 자기 돈 20만원을 더 보태서, 어머니 용돈을 드렸다는 것이고 그 어머니는 그렇게 며느리인 처제에게 옷 사입으라는 명분으로 그 돈을 내놓으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어머니한테 옷 한 벌 얻어 입으면서, 선애 처제는 형부인 나에 대해 참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울컥하고 울음이 터질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다 했다.
옷을 얻어 입는 그날, 선애 처제는 밤을 꼬박 새웠다 했다.
형부인 나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꽃게 30마리를 사서 간장게장 담그느라 그랬다고 했다.
그 시장 단골집에 특별히 부탁해서, 큼지막한 생물 꽃게를 먼저 장만했다 했고, 그리고 파 양파 마늘 사과 배 등 온갖 양념으로 맛을 내서, 꽃게 간장게장을 담았다고 했다.
그 게장은 그 일주일 뒤에 내 밥상 위에 올려 질 수 있었다.
푹 익히느라 그렇게 며칠이 더 걸렸다는 것이다.
선애 처제는 그 꽃게를 사면서 덤으로 얻은 한 마리만, 자기 남편인 내 동서의 밥상에 올려줬을 뿐, 30마리 모두를 서초동 우리 집으로 보냈다고 했다.
형부인 나를 위한 놀라운 헌신이었다.
나를 위해 보낸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 게장은 오로지 내 몫만은 아니었다.
그 중 20마리를 따로 떼어냈다.
당시 내가 총무과장으로 있던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식구들의 밥상위에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당신만 드시면 안 될까요?”
아내는 남편인 나만을 챙겨주고 싶어서 그리 말했지만, 나는 아내의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당초 내 생각대로 같이 일하는 청 직원들과의 밥상에 올려놨었고, 그리고 큰 호평을 받았었다.
형부인 나를 그렇게도 챙겨주던 선애 처제였다.
그러나 처제는 불의의 병마와 싸워야 했다.
나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처제의 완쾌를 위해 기도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도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년 세월을 투병하다가,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집 지어 놨어.”
아내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선애 처제가 임종을 앞두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언니인 아내에게 마지막 남긴 말이 그 말이라고 했다.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의 집을 그렸던 것 같다.
“순천에서는 이 집이 맛집으로 소문났다고 하네요.”
저녁 끼니때가 되어 아내가 한 말이 그랬다.
그 말대로 찾아간 집은, 순천에서 한정식 명가로 소문이 난 ‘향토정’이라는 음식점이었다.
그 음식점을 들어서면서 딱 느낀 분위기는, 좀 비싸겠다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되돌아 나올 수도 없었다.
아내가 내 그 속마음을 벌써 꿰고 있었다.
“이 집은 안 되겠어요. 비쌀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목을 은근히 잡아끌었다.
그렇다고 잡아끌려 나올 내가 아니었다.
쪽팔릴 것 같아서였다.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생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남도정식 한 번 먹어봅시다. 이때 아니면 언제 그 맛을 보겠소.”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목을 잡은 아내의 손을 털어 내렸다.
곳곳에 그 집의 전통과 자랑거리를 알리는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 시선을 끈 것이 있었다.
음식에 대한 그 집만의 비법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재료’와 ‘정성’과 ‘맛’과 ‘담음’해서, 네 가지라고 했다.
그 비법으로 차려진 밥상은 참으로 푸짐했다.
한 상 40,000원짜리의 남도정식이었는데, 그 비싼 값만큼이나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차려진 상차림이었다.
아내는 평생 처음으로 받아보는 진수성찬이라고 했다.
“이거 참 맛있어 보이네요.”
그러면서 아내가 집어가는 젓가락에는 간장 게장 한 점이 들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앞에는 스무 해 전에 있었던 그 추억의 사연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