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예진이의 신나는 교회 생활이 깊은 신앙생활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오늘은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갑니다.
할미와의 친근한 밀착이 예수님을 알아가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저녁 월요 복생 모임 위에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지정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또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14.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목을 곧게 하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 그들 조상들의 목 같이 하여
15.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뒤따라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따르지 말라 하신 사방 이방 사람을 따라
16.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17. 또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1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들을 그의 앞에서 제거하시니 오직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19.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
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버리사 괴롭게 하시며 노략꾼의 손에 넘기시고 마침내 그의 앞에서 쫓아내시니라
21. 이스라엘을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나누시매 그들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더니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
22. 이스라엘 자손이 여로보암이 행한 모든 죄를 따라 행하여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므로
23.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드디어 이스라엘을 그 앞에서 내쫓으신지라 이스라엘이 고향에서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본문 주해)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이스라엘이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이 쫓아내신 이방 나라의 풍습을 따랐다.
셋째, 무엇보다 북이스라엘은 초대 왕 여로보암이 제정한 유사 신앙을 답습하였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죄를 더 구체적으로 냐열한다.
13~18절 : 13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유다를 언급한 것은, 유다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함께 생각하는 저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구절을 통해 열왕기서의 저자가 유다 멸망 이후 포로 기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선지자들을 통해 명령하신 주의 말씀을 끝내 듣지 않은 것을 두고 ‘목이 곧다’이라고 표현한 것(14절)은 모세가 인도한 광야 시절을 회상하였기 때문이다.
출애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후손들도 마찬가지로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말씀’이 떠나면 바람같이 ‘헛된 것들’을 집착하게 된다.(15절)
두 송아지 형상은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명명한 것이다. 아세라 목상은 바알과 더불어 가나안의 토착 신이며, 일월성신의 숭배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도입한 것으로 앗수르에서 성행하였다. 자녀를 바치는 인신 제사는 모압의 몰렉 신의 숭배였다. 그 외에 백성들은 복술과 주술을 행하는 등 총체적 타락을 자행하였다.(16~17절)
백성들은 미친 듯이 우상숭배를 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들을 면전에서 내쫓으셨으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18절)
19~20절 : 그러나 유다도 이스라엘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규례를 그대로 따랐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내쫓으시고, 그들을 징계하여 침략자들의 손에 넘겨주셔서, 마침내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내쫓기까지 하셨다.
‘이스라엘의 온 족속’은 유다를 포함하고 있다. 유다의 멸망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회상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21~22절 : 이스라엘의 죄의 원형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서 시작되었음을 다시 한 번 언급한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다윗의 집으로부터 갈라졌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초대 왕이 되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유사 신앙을 제정하여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서 큰 죄를 짓게 했다.(21절)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여로보암이 지은 그 모든 죄를 본받아 그대로 따라갔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다.(22절)
23절 : 이스라엘의 멸망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종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그 면전에서 내쫓으셨다. 그래서 이날까지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땅에서 앗수르로 사로잡혀 가 있게 된 것이다.
(나의 묵상)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한 것은 남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지 않은 자들의 결국이 어떠함을 알려주시기 위한 본보기였다.
그러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교훈을 받기는커녕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여로보암의 죄를 답습한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려다 결국 바벨론에게 망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을 말씀하시는 것은 오늘날 믿음을 가졌다고, 교회를 다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그 교훈으로서 첫째는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여로보암의 죄는 두 송아지를 세워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따르게 함으로써 참신이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행위이다.
그것은 오늘날 행위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여 자신이 원하는 복을 얻어내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선한 일에 초점을 둔 모든 행위까지 포함한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한 뜻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함으로써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교회 중심의 어떤 봉사적 행위(선한 의미를 둔 선교적 행위까지도) 등이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란, 말씀을 통한 그분과의 친밀한 교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자기의를 드러내는 것과 연결이 되니 누가 알아주면 교만하게 되고,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허망하여 낙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자라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곧 방전되고 마는 것이다. (영혼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선교사가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 된 자는 하나님의 대한 갈급함이 없으니 세상 직업을 가진 자처럼 그저 고단하다고만 할 것이다.)
둘째, 하나님 외의 것들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열왕들 중에 나라를 굳건히 한 자들은 외교적 수단이 뛰어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치적은 역대지략에나 기록될 뿐, 하나님께는 인정받지 못한다.
다윗은 나라를 든든히 했어도,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만을 소원한 왕으로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27:4)
인간적으로 의지가 될 만한 수단이나 방법을 구함으로 나라를 든든히 하고자 한 열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구하거나 찾지 않았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것들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머물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을 어떤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자주 나오는 것으로 유도한다.(나도 과거에는 내가 교회에 자주 들락거림으로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원하는 자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교회 출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만든 하나님을 세워두고 내 만족을 추구하고자 하거나, 세상적인 방법을 찾아나서려고 하는 마음이 솟아날 때가 있는데 이는 나의 죄적 본성이 그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함으로 진리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
그런데 그 진리의 길을 내 힘으로는 갈 수가 없다는 것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내가 십자가를 붙들 수 있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망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여 주시는 것은 그 멸망의 길로 가지 말라고 훈계하시는 것이다.
나의 본성은 그것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매일의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날마다 십자가를 붙들 때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십자가를 붙들 때 상황에 반응하는 나는 주님과 함께 죽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죽음으로 인해 원망과 불평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 안에서 평강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새언약 백성이 된 자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간 멸망의 길이 아닌, 영생의 길로 주님께서 이끌어 가 주시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창세전 전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새언약입니다.
지긋지긋한 여로보암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세상적 수단이나 방법도 십자가에 못 박고 살아가는
새언약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감으로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