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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³о 개인 여행기 스크랩 남인도 기행 16일차 (2012. 01. 14(토요일. 마말라뿌람)
윤상현 추천 0 조회 50 12.09.18 14: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2. 01. 14(토요일. 16일차. 마말라뿌람)

 

늦게까지 잤다. 입안이 텁텁하고 머리가 맑지 못한 것이 작취(昨醉)가 미성(未醒)이다. 밥을 한 뒤 고구마도 한 냄비 쪘다. 얼마 남지 않았던 멸치조림과 오징어젓갈이 드디어 바닥을 보였다.

 

 

천년 고도 ‘마말라뿌람’에 가려면 버스로 세 시간을 가야 한다. 다행히 바로 호텔 옆이 버스터미널이다. 버스의 성능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비용을 좀 더 지불하고서 냉방버스를 탔다. 한적할듯하여 가장 뒷자리에 앉았는데 그만 유리창의 썬팅이 벗겨져 따가운 햇빛이 들이친다. 귀마개와 눈가리개를 하고서 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니 어김없이 졸립다.

 

두시간만에 ‘첸나이’ 못미처에 있는 ‘마말라뿌람’의 초입에서 하차하였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다. 다시 릭샤를 타고서 ‘마말라뿌람’ 시내로 들어갔다. 말이 시내이지 사실 이곳은 동서남북으로 채 이 킬로미터가 못되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마을 안쪽에 자리한 ‘비노다라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이제까지의 호텔들과는 달리 민박에 가까운 숙소가 고향 같은 편안함을 준다. 이층의 객실로 올라와 사방의 문을 열치고서 대짜로 누우니 세상 편안하다. 벌써 정오가 넘어간다. 조금 귀찮긴 해도 직접 점심을 준비한다. 식당의 음식들이 대부분 지나치게 기름지고 향이 강하하여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냄비가 끓다말고 정전이 되었다. 난감하다. 전열기의 과도한 부하 때문인지도 모른다. 뜨끔하다. 가만히 다른 곳의 동태를 살피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골목 전체에 전기가 나갔다. 하릴없이 테라스에 나앉아 골목길을 내려다본다. 길가 세탁소의 다리미는 숯불을 몸 안에 담은 무쇠 다리미다. 정전에도 문제없는 추억의 다리미를 만나고서 어릴 적을 떠올린다.

 

 

바닷가에 나왔다. 숙소로부터 불과 이백 미터의 거리다. 푸른 하늘에 어울려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이다. 하지만 바다 안에는 몇몇 극성스러운 써퍼 만이 파도 위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대도시인 첸나이에서 가까운 탓으로 바닷물이 많이 오염된 상태여서 다들 해수욕을 꺼린단다. 직접 푸른 파도에 몸을 맡기지 못함이 아쉽다.

백사장의 남쪽 끝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세기경에 설립된 남부인도 최초의 석조사원인 ‘해변 사원’이다. 바닷가의 암벽지대였던 곳을 몽땅 평탄작업을 한 뒤 갉아내고 쌓아서 ‘쉬바’와 ‘비쉬누신’을 모신 힌두사원이다. 고대에는 대부분 석굴에 사원을 조성했지만 중세로 들어오면서 석조로 바뀌었는데, 이곳은 그 과도기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두 가지 양식을 함께 볼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오랜 세월 바닷가의 모래 바람에 많이도 닳았다. 건물의 외벽을 장식한 부조물들이 거의가 본 모습을 잃고 두루뭉수리하게 세월을 안았다. 오늘이 마침 주말인지라 많은 현지인들과 외국인이 뒤섞여 북적댄다. 외관상 두 동으로 보이는 사원은 지하부분이 하나로 뚫려있어 실상은 한 건물이다. 시원한 지하에 모셔진 파괴의 신 ‘쉬바’와 평화의 신 ‘비쉬누’를 예배하는 그네들의 모습 경건하다. 이방인의 참관이 허락된 몇 안 되는 힌두교 성소이다.

 

 

남쪽을 향하여 석공예 거리를 가는 사람들의 목적지는 오직 한 곳, ‘다섯 개의 마차사원’인 ‘파이브 라타스’다. 많게는 열 대여섯씩 무리를 이룬 인도의 아낙들이 붉은 사리로 작은 체구를 휘감고서 상기된 표정으로 사원을 향한다. 해변사원을 뒤로하고 그들을 따라 이 킬로미터 정도를 걷다보니 염천(炎天) 하에 익어버릴 것 만 같다. 손수건을 두건삼아 온 얼굴을 가린다. 여행 내내 부지런히 썬크림을 발랐어도 피부는 이미 검게 그을린 지 오래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한눈에도 신비한 건물 군이 섰다. 칠 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축물들은 돌을 깎아서 세운 게 아니다. 커다란 바위 언덕을 온통 정으로 파내려가면서 건물을 앉히고 섬세한 조각을 새겼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오랜 세월 흙 속에 묻혔다가 19세기 초에 와서야 발굴된 때문인지 ‘해변 사원’에 비해서는 훨씬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다섯 개 ‘라타(신여거(神輿車))’는 서로 다른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사당으로서 인도 고대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판다바의 다섯 형제’ 이름이 붙어있다. 그 중에서도 ‘나꿀라 사하데바 라타’의 곁에 조성된 실물 크기의 코끼리상은 사실적인 묘사로 인하여 금방이라도 소리치며 걸어 나올 것 만 같아 더욱 놀랍다.

 

 

커다란 나무아래 바위 언덕에 올라 사원을 굽어보며 다리쉼을 한다. 때 마침 그늘지고 바람까지 불어주니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가족단위의 순례자들과 부족단위의 순례자들이 섞였고, 또한 서양에서 온 탐방객들로 인하여 사원의 작은 공간들이 복작거리는 가운데 행복한 웃음으로 즐거워함이 한 결 같다.

‘파이브 라타스’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고바르단(신성한 소)마운틴’은 ‘마말라뿌람’의 시내에 있는 작고 낮은 돌산이다. 하지만 동쪽으로는 ‘뱅갈만’의 넓은 바다를 품었고 서편으로는 끝없는 평원을 거느렸기에 온 세상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능선의 곳곳에 세워진 신전과 바위벽에 산재한 석굴사원 등등, 볼거리가 집중되어있는 곳이다.

 

 

돌산의 초입, 아열대의 울창한 수목이 하늘을 가린 아래로 기념품상가가 즐비하다. 주로 이곳의 명물인 돌 공예품을 취급하는데 몇몇 장사꾼들은 아예 다가와서 흥정을 걸어온다. 남쪽 계단을 통하여 산정으로 향한다. 바위틈에서 저들끼리 어울린 원숭이들은 인간과 공생 관계로 여기는 듯 피차간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열흘 전, ‘함피’의 ‘마탕가 힐’에서 만났던 갱스터 원숭이들과는 달리 표정과 행동이 선하다.

산정에 우뚝 선 등대 끝에 오르니 가슴이 뻥 뚫린다. 온 사방으로 끝 간곳없는 지평선과 수평선이 푸른 숲 너머로 장쾌하게 펼쳐있다. 때마침 기울어가는 태양도 호수의 물빛에 어울려 그윽함을 보탠다. 가까운 바위 언덕의 곳곳을 차지한 신전은 순례자들로 북적댄다. 검푸른 바다 위를 헤매던 선원들이 등대로 부터 얻었을 안전과 위안을 생각하니 이곳 산정이 몽땅 성소가 된 이유가 알겠다.

 

 

산 전체가 고대 박물관으로서 경주의 남산을 압축해 놓은듯하다. 등대에서 내려오니 코끼리 잔등 같은 바위 언덕 끝에 ‘올락깐네스바라 템플’이 천년 세월을 품었다. 그 절벽 아래는 바로 동굴 사원인 ‘마히 샤마르디니 사원’이다. 겉보기에는 위 아래로 둘인 것이 결국은 하나가 되는 이치를 본다. 원숭이 녀석들이 천연덕스럽기도 하다. 오가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퍼질러 앉아 온갖 민망한 짓을 다한다. 하기야 힌두교에서 원숭이는 ‘하누만’이라는 신(神)으로 대접받아 인간을 피할 이유가 없으니 그들의 이런 행동이 당연하겠다.

작은 계곡을 건너 옆의 봉우리를 오른다. 도봉산 마당바위를 스무 개 쯤 모은 듯 한 평평하고 비스듬한 길이다. 뒤에 두고 온 등대와 ‘올락깐네스바라 템플’을 되돌아 볼 때마다 풍광이 새로 그려진다. 기울어가는 햇살에 산 그림자가 겹쳐진 그림이 어찌나 그윽한지 정말 두고 가기가 아깝다.

 

 

느린 걸음으로 산을 내려간다. 저만큼 완만한 경사의 바위언덕 위에 난데없이 집채 만 한 공깃돌 하나가 놓여있다. 족히 설악산 흔들바위의 열배는 되리라. 이른바 ‘크리슈나의 버터 볼’이다. ‘마말라뿌람’의 명물로 통하여 그림엽서 등에도 빠짐없이 등장하지만 어인 일인지 특별한 전설이나 사연이 없단다. 예전에는 약간의 힘으로도 흔들리던 바위인데 요즈음은 안전 문제로 고정을 시켰다니 호기심을 달래지 못한다.

이곳의 최고 볼거리인 ‘아르주나의 고행(苦行)’은 산 아래의 바위벽에 부조되어있다. ‘아르주나’는 인도 고대의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이다. 그가 작품 속에서 고행(苦行)하던 장면 장면을 실물 크기로 새겨놓았는데 그 높이가 무려 십오 미터요 폭이 이십칠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벽면에 다가서서는 무수히 많은 조각품의 정교함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이십 여 명의 석공이 십년 세월에 걸쳐 완성했다는데 특별히 하단을 채운 두 마리의 코끼리는 얼마나 사실적이던지 금방이라도 바위를 떨치고 걸어 나올듯하다.

 

 

바로 곁에 나란히 놓인 동굴사원 ‘크리슈나 만다빰’을 대충 둘러본다. 왼 종일 구경에 진력이 났는지 석굴의 구조와 기둥 모양, 부조된 신상 등등, 이제는 모두가 그게 그것 같다. 피곤도 하니 숙소에 돌아가 쉬는 게 행복이겠다. 길가의 튀김집에 ‘사만사’가 보인다. 이것은 네팔식 튀김만두로서 두해 전의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올리게 한다. 거리음식이 다소 지저분해 보이긴 하다만 고온에 익히는 것이니 어떠랴. 으깬 감자로 채워진 만두소와 고기가 채워진 고추튀김에 입맛이 돋는다.

시장에 들러 계란과 과일을 샀다. 씨 없는 청포도가 시지도 않고 아주 달다. 우선 계란탕을 끓여 안주를 장만한다. 소금 간을 하고서 몇 가지 채소로 맛을 보태니 담백한 음식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아까의 ‘사만사’와 고추튀김이 좋은 안주가 되었겠지만 오던 길에 적선을 하고 말았다. 구걸하는 두 명의 걸인에게 저녁식사로 내주었던 것이다.

 

 

배도 부르고 딱히 할 일이 없다. 테라스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며 골목길을 내려다본다. 밝은 가로등을 보니 낮처럼 정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길 건너 이층의 카페는 밤이 되어 환골탈태하였다. 창문도 없이 초라하던 곳이 현란한 조명 과 음악이 넘치며 복작댄다. 시끄럽다. 잠깐이라도 조용한 백사장을 산책하는 편이 낫겠다.

바람도 별로 없는데 파도가 높다. 어두움 속에서 하얀 포말이 거칠다. 백사장에 올려둔 고깃배에 걸터앉아 밤바다를 응시한다. 이런저런 상념이 든다. 지난 세모(歲暮)에 출발하여 남인도를 돌아본지 벌써 보름을 넘겼다. 일상의 번다함을 내려놓고서 떠나온 두 번째의 인도여행도 막바지다. 이제 내일이면 ‘첸나이’로 이동하여 이틀을 지낸 뒤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귀국할 것이다. 아우와 함께한 여정이 많이 행복했다. 짧지 않은 인생길에 늘 성원을 해주는 든든한 동생이다. 함께 가는 길에서 좋은 마무리와 행복한 미래를 믿는다.

 

 

‘가네샤’는 코끼리모습의의 신상(神像)으로 지혜와 부귀를 준다하여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호텔에서도 상점에서도 눈에 가장 잘 띠는 곳에 모셔진 것이 바로 ‘가네샤상’이다. 이곳 ‘마말라뿌람’은 석공예로 이름 나 연도의 대부분 상점에서 ‘가네샤 신상’을 취급한다. 날이 저문 지 이미 오래라 상가는 거의 철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어디선가 정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가자 한 석공이 열심히 ‘가네샤상’을 다듬는 중이다. 사포질을 겸하는 것이 거의 막바지 작업인가보다. 섬세하게 조각된 붉은 옥돌이 투명한 빛으로 아름답다. 기념으로 하나쯤은 배낭에 넣어가는 것도 좋으리라. 여러 번의 흥정 끝에 파장임을 감안하여 좋은 값에 살 수 있었다. 바로 옆 상점은 가죽공예품을 취급한다. 이국적 스타일의 신발들이 영 맘에 든다. 발가락 쌘들을 사려했으나 발에 맞는 것이 없다. 주인은 선주문을 하고서 내일 저녁에 찾으라지만, 빠듯한 여정인지라 그때까지 머물 시간이 안 됨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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