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명필름이야. 한국영화 명문 족보의 혈통을 잇는 명필름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심혈을 기울여 만든 [YMCA 야구단]은 애초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냈고 각본을 썼으며 감독까지 맡은 김현석의 영화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기획, 맞춤된 상품으로서 명필름의 독특한 칼러를 덧씨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이 시행되고 일본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던 1905년이 배경인 시대물이지만, 이 영화는 동시에 스포츠 영화며 코미디극이기도 하다. 백년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야구라는 현대인의 감수성 코드와 연결이 되는 절묘한 소재를 발굴한 기획이 돋보이면서, 그 안에 코믹한 감성을 녹여내 만든 각본과 연출도 녹녹치 않다.
추억을 되짚으며 복고적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는 황토빛 칼러가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2.35:1의 슈퍼 35미리 시네마스코프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랬던 것처럼 시각적 시원함을 제공해준다. 특히 전주 향교, 임실 강변부지의 오픈세트 등, 전국 각지에서 꼼꼼하게 헌팅된 구한말의 공간적 재현과 다양한 소품들의 적절한 배치는, 정성을 기울여 만든 영화만이 갖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YMCA 야구단]이 2002년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이 되리라는 예감을 짙게 해주는 것은, 시대물이 갖는 시간적 거리감을 현대의 관객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세밀하게 배려한 감각적 대본과 연출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치미 딱 떼며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체계가 지배하던 조선조 마지막 유생의 도포를 벗어던지고, 듣도 보지도 못한 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황성 YMCA 야구단] 4번타자 송강호의 빛나는 연기 덕분이다.
역시 송강호는 좋은 배우다. 관객들의 웃음은 대부분 송강호에서 시작되어 송강호에서 끝난다. 엄격한 한학자 아버지(신구 분)와 대조를 이루면서도 선비만의 완고한 고집과 신문명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하는 시선은 일품이다. 그러나 여전히 김혜수는 신물이 날 정도로 구태의연한 연기를 비슷하게 반복하고 있다.
[YMCA 야구단]의 승리는, 우선 다양한 신분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선수단 구성과, 영화 곳곳에 포진한 야구해설자(임현식 분)나 마부(조승우 분)같은 깜찍 조연들의 배치도 효과적이다. 지주의 아들과 그들의 종, 소년과 장년의 사내가 부딪히고, 토착 선비와 유학생 출신 인텔리가, 혹은 강대국 귀족 군인과 식민지 지식인이 부딪힌다. 영화 곳곳에는 이렇게 수많은 갈등을 양산시키는 충돌이 예비되어 있지만,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누구도 증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서 가장 어설프게 구성된 부분이, 구한말 처음 등장한 야구라는 스포츠와 당시의 칼날같은 시대적 상황을 연결시킨 부분이다. 야구와 정치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어야만 했다. 야구단 최고의 투수는 밤에는 복면을 쓰고 친일파 제거를 위해 자객으로 변신한다. 또 야구단의 여성 감독은 자객의 애인이고, 항일 무장 독립투쟁 조직에 가담한 사람이다, 이런 설정이 한지에 물이 배듯 자연스럽게 풀어졌어야만 했다. 이 부분이 가장 부자연스럽고 또 결정적 흠이기도 하다.
클로즈업과 롱샷의 극단적 대비, 또는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는 결정적 순간의 움직임 등과 허공으로 날아가는 야구공같은 CG가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바라보는데 기여를 하고 있다. 영화적 테크놀로지는 영화생산자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백년전의 시공간에 끌려 다니지 않고 그것을 힘있게 현대적 감성으로 끌어온 연출의 뚝심이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너무 기획상품같다. 유심히 지켜보면, 이야기 자체의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고 절묘하게 조각들을 뜯어 맞춘 흔적들이 드러난다. 정성들여서 준비한 식탁이지만, 정성을 들인 흔적이 너무 드러나서 눈치 보지 않고 쩝쩝 소리내며 맛있게 먹기가 조금 부담스럽다. 이것이 흠이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의 계발, 독창적 상상력으로 소재에 접근한 연출과 시대물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웃음을 잡아내려는 연기자들의 시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YMCA 야구단]의 경기를 보기 위해 매표구 앞에 줄을 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