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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서 고대사회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고분이 조성되었다.
지석묘(支石墓, 고인돌), 옹관묘(甕棺墓, 독무덤), 토광묘(土壙墓, 木棺墓 → 木槨墓, 돌널무덤, 나무널무덤),
적석총(積石塚, 돌무지무덤), 전축분(塼築墳, 벽돌무덤),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 굴식 돌방무덤)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나무 널무덤(木棺墓)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널을 넣은 것으로,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다가 남부 지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특히 낙동강 주변 경상도 중부지역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한반도 남쪽 지역에는 일찍부터 진(辰)이 성장하고 있었다.
고조선 사회의 변동에 따라 대거 남하해 오는 유이민에 의하여 새로운 문화가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한강 유역에 형성된 토착 정치 세력과 북방에서 내려온 이주민이 연합하여
기원 전 2세기경 마한, 진한, 변한의 연맹체가 성립되었다.
이중에서도 진한(辰韓)은
대구 ·경주 등 경상도 내륙 지역에서 발생하여 12개국 40,000~50,000 여 호의 규모였다.
그 중에서 큰 나라는 4,000~5,000호, 작은 나라는 600~700호였는데,
사로국(斯盧國)이 성장하여 중앙 집권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면서 신라로 발전되었다.
이때는 공동체의 전통을 보여주는 두레 조직을 통해 여러 가지 공동 작업을 하였는데,
이와 같은 전통은 삼국 시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장례 때 새 깃털과 우마를 함께 묻는 후장(厚葬)의 풍습과 상투·문신의 풍습이 있었다.
노예는 달아나지 못하도록 상투한 다른 사람과 쉽게 구별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
순장(殉葬)이라 하여
왕이나 족장 등이 죽으면 부인,신하, 노비 등 여러 사람을 껴묻거리로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순장(殉葬)은 부여에서 시작하여 대부분의 삼한사회에서 이어지다가
신라 지증왕 때 와서 법제적으로 폐지되었다.
2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금성산 고분군은
금성산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해발 162m 모지산(暮知山)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과 그 사면에 약 200여 기의 분포하고 있다.
기본적인 발굴조사를 마치고 지방자치제 활성화에 발맞춰 광활한 공원으로 탈바꿈하였고,
그 중 규모가 큰 경덕왕릉(景德王陵) 고분 내부를 전시관으로 조성하였다.
의아하여 문화유적 해설사에서 물어 보니
신라 38대 경덕왕(재위 742∼765)이 아니라
조선 후기 어느 농부의 꿈에 나타난 조문국 경덕왕이라고 한다.
『삼국사기』기록에 보이는 185년 신라 벌휴왕 때 정벌되었다는 소문국(召文國)을
조문국으로 읽고 있었고,
고분은 5세기경에 조성된 형태이다 보니 혼돈을 가져올 수 있기에
안내문에 조금은 정돈된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공산에서 고속도로 진입로로 이어지는 대구 불로동에는 주택가 뒷편에 야산이 있는데,
이곳에는 200여 기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펼쳐져 있다.
이는 금호강이 흘러가는 이곳 불로동 고분들은
5, 6세기에 조성된 토착지배세력의 집단묘지로 추정된다.
해발 1192m 팔공산은 봉황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고 했고,
그 줄기가 이어진 불로동 지역은 예전부터 강력한 권력집단이 자리하였다.
이곳 주변이 내 집사람이 태어나고 어릴 적 자랐던 땅이라고
금호강, 동촌 비행장, 철길, 복숭아 밭 등 추억을 떠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팔공산의 정기를 이어받고 호족의 딸이어서
신라 왕족과 혼인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그런 왕녀, 또는 공주의 마음을 달래고자
불로동 전통시장에서 코다리찜을 먹었다.
울산직할시에 편입된 울주 대곡 박물관은
울산 시민의 식수원인 대곡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된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로 인해
출토된 유물 13,000점을 정리하여 전시하고 있다.
특별전시관에서는 ‘하삼정의 비늘갑옷’이 열리고 있었는데,
제목만 보아서는 현대 디자이너의 패션쇼인줄 알았다.
지방 박물관과 어울리지 않다고 하면서 들어서니
수몰된 하삼정 지역의 5, 6세기 수십 개의 고분에서 발굴된 유물 중
통째로 발굴된 갑옷이더라.
판갑(板甲)은 철판을 일정한 크기로 재단해 쇠못으로 연결한 갑옷이고,
비늘갑옷(札甲)은 비늘모양의 쇠붙이를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판갑에 비해 활동성이 향상된 갑옷이다.
이외에도 변형된 갑옷 형태도 소개하면서
갑옷의 종류와 제조과정에 관한 상세하게 설명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북한에 고향을 두었으면 통일되면 갈수나 있지,
자신의 고향은 수몰되어 다시는 찾아 볼 수도 없다고 푸념하던 친구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서 대곡댐에서 하삼정 지역을 바라보면서
몇 천 년 동안 대를 이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3
경북 울진 죽변항 부근에는 봉평신라비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울진 봉평비는 법흥왕 때 율령 반포한 사실을 전해주는 신라 최고(最古)의 비문이다.
울진지방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뒤 이 비가 세워지기 얼마 전에
대규모의 군대를 일으킬 만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한 뒤 모즉지매금왕(牟卽智寐錦王, 법흥왕)과 13인의 신하들이
그에 대한 사후처리로서 이 지역에 모종의 조처를 취하고,
소(斑牛)를 죽이는 등 일정한 의식을 행하였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결국 중앙에 항거한 토착세력을 벌주는 내용이다.
한국사 교재에서는 흔히들 부족연맹체, 혹은 초기국가형태였던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2, 3세기에 각각 백제, 신라, 가야로 병합되고
이후에는 그 흔적이 역사에서 사라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5, 6세기까지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독자적인 토착세력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던 큰 수확이었다.
경주 대능원이나 부여 능산리 고분보다 봉분의 크기는 작지만,
경상도나 전라도 곳곳에서 수백 개의 고분이 한 지역에 집중되어 분포되어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12개의 소국들
사로국(斯盧國), 기저국, 불사국, 근기국, 난미리미동국, 염해국, 군미국, 여담국, 호로국,
주선국, 마연국, 우유국 말고도,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에 병합된 소국들
감문국, 골벌국, 병합다벌국, 비지국, 소문국(召文國), 실직곡국, 음즙벌국, 초팔국
등의 이름을 불러 본다.
이번에 둘러 본 고분군들은 바로 이들 나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거겠지.
28번 국도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의성 금성동 고분들 사이를 거닐었고,
대구 불로동시장을 끼고 있는 야산을 올라 수많은 무덤들 사이로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울주 대곡박물관의 하삼정 고분에서 출토된 비늘갑옷을 입었을 주인공과
울진 신라봉평비에 기록된 장(仗) 100대 형벌을 받은 이들도 떠올려 본다.
고분은 죽은 자들이 쉬는 집이자, 살아있을 때의 흔적을 유물로서 남기고 있다.
또한 당시의 생활상을 기록한 비문은 생생하게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
나는 이번 여정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퍽 다행스런 일이었다.
첫댓글 갑자기 공부를 하는 느낌이라 머리에 잘 새기어지지가 않네요.~ㅎ~
아마 나이가 들어가는걸 아나 봅니다.
그래도 글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읽어주시고, 하나하나 댓글 달아 주기는 것만 해도 늘 고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