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리스도를 그리다_조르쥬루오전(한가람미술관)

[박하]

인간 그리스도를 그리다

루오전_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009.12.15~2010.3.28

이번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조르주 루오전>에 전시된 작품은 총168점으로 프랑스 국립퐁피두센터에서 왔으며

세계 최초 공개작 14점과 해외 최초 공개작 70여 점 등 90여 점의 미공개작을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 루오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가족들이 국가에 기증한 미발표작들로, 거의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20세기 유일한 종교화가이며 자유분방한 칼라와 엄숙하고 굵은 검정테두리, 두터운 마티에르로 기억되는 루오는

마티스, 피카소와 함께 야수파로 분류되기도 하며 프랑스의 국민화가이다.

야수파, 입체주의, 표현주의가 창궐하던 시대에도 어느 주의나 사조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이뤄낸

20세기 현대미술의 대명사로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번전시가 루오전 단독으로 처음은 아니다. 2006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라는 타이틀로

루오전이 열린 바 있다. 외국작가 개인전이 수없이 열렸지만, 외국의 2, 3류 미술관을 순회하는 패키지 전시,

대가의 작품 고작 몇 점에 나머지는 스케치나 편지나 소품 등 주변자료로 들러리세우는 전시 등 관객들의 명화 콤플렉스를

이용하여 낚시성의 제목만 거창한 속빈 강정식의 전시가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어지고 있다.

이번 루오전은 그의 대표작인 ‘그리스도의 얼굴, 광대시리즈,베로니타, 미제레레 등 풍부한 작품들과

귀스타브 모로 문하에서 수학하던 초기 시절부터 20세기 초반 미술가 그룹 활동시기,

1947년 볼라르 상속인들과의 지난한 송사 등 인생의 파도를 겪으면서 토해낸 그의 일생의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실속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전 다운 전시로 여타 소연무찬(騷宴無餐) 대형전시들과는

차별화 된다. 전시는 4가지 테마로 구분되어 전시되었다.

전시 처음부분은 바로 서커스.

18세기말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서커스,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 역동적이며 아슬아슬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던 오락으로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도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전통의 엔터테인먼트로

우리나라에도 70년 전통의 동춘서커스단이 있을 정도다. 서커스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광대다.

삐에로라 일컫는 그들은 우리에게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고 웃음을 짓게 하여 행복감을 주는 몰핀같은 존재다.

최초의 삐에로는 16세기 이탈리아 즉흥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했다.

즉흥극에서 권력자의 종노릇을 하는 광대들 중 하나인 '페드로니노'가 오늘날 삐에로의 시조이며

바보로서만이 아니라 가진자, 권력가를 희화화 하는 서민의 대변자 노릇도 하였다.

오노레 도미에, 툴루즈 로트렉, 피카소, 샤갈, 레제, 페르난도 보테르, 드가, 쇠라, 블라맹크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 참으로 여러 작가들에 의해 많이 다루어졌던 주제이다.

그러나 루오만큼 지속적으로 많이 다룬 작가는 없다.

무엇보다도 루오는 광대에 대한 연민을 그림속에 자아냄으로써 다른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두 번째 주제는 미완성작품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유족과의 10여년 가까운 소송 끝에 되찾은 700여점의 일부로 화염 속에

사라질 뻔 했던 작품들이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미술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로 꼽히는 볼라르는

화상과 비평가들이 인상주의, 입체주의, 야수파 등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인정해 주지 않던 시절 당시

무명이였던 세잔, 피카소, 마티스에게 그들의 개인전을 열어 주었고, 거물급 수집가 반스, 거트루드 스타인,

해브메이어, 모로조프 등에게 이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노예화상이라 불릴만큼 화가들에게 그리 좋은 화상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으로 치면 데미안허스트를 발굴해낸 ‘사치’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고 이해하면 될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이것 저것 작품을 끝을 내지 않고 한꺼번에 작업하는 루오의 스타일을 볼라르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만족을 모르는 완벽주의자 작가 루오에게 있어서는 미완성 작품들이지만 강렬한 색채와 마티에르가

감동을 주는 이 작품들의 회화적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작가가 미완성이라고 말하면 그런가 하는거지 관객들이 그완성도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 번째 부분은 미제레레(Miserere) 라틴어로 '불쌍히 여기소서'

고난의 십자가를 걷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걷는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판화연작집으로

그의 부친을 잃은 슬픔을 달래며 시작한 작업으로 총 58점으로 구성되어있으며 20여년에

걸쳐 완성하여 1948년 출판되었다. 십자가의 길을 모델로 인간의 수난과 고통을 그려내었으며

가장 성스럽고 숙연해지는 믿는 사람들 말로 가장 은혜가 충만한 파트가 아니었나 싶다.

일정한 크기의 판화들에는 골고다 보혈의 역사,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통와 외로움의

흔적들이 흑백톤으로 나타나 있다. 색채의 연금술사라고 불릴만큼 화려한 색감의 소유자인

루오지만 미제레레 판화에서는 단조롭고 어두운 모노톤의 색감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구획된 선으로만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고통의 강도가 더욱 강렬하며, 인간의 피비린내나는 욕심의 실체, 인간을 향한 연민의 눈물,

무거운 십자가, 체액과 혈액까지 다 빠져버린 인간적 고통의 상극이 마치 보는 이로 하여금

그대로 전이 되는 듯하며 동시에 깊은 감동과 영혼의 울림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지막으로 ‘후기작품’부분에서는

강렬한 색채의 부조들과 함께 후기작들은 험난한 인생과 성찰을 통해 이루어낸 작가의 원숙미를 보여준다.

초기 루오는 인간사의 어두운 부분, 가난하고 학대받는 자들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부자나 권력자,

가진 자들을 향한 분노로 충만하여 사회비판적인 주제들로 가득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 또한 그의 깊은 종교적인 감정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는데

카톨릭의 문필가 위스망스와 레온 블르와와의 교우는 루오의 종교적인 인생관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독교도로서 나는 이 무모한 시대에 십자가 위의 예수만 믿는다”라고 했던 루오는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에 대한 관심을 자주 가졌다. 그가 그린 예수의 얼굴은 상당히 인간적이다.

어느 한구석 성스럽고 다가가기 어려운 신으로서의 근엄함 보다는 신의 아들이자 인간으로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인간에 대한 애정까지를 동시에 담고 있어 매우 서민적이기까지 하다.

서양미술사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 종교화는 거의 미술의 모든 것이었고 모든 예술가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얼마나 충실하게 담아내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천편일률적으로 무지한 대중들에게

교리전달용으로 전달되던 종교화는 조토를 시작으로 살과 피가 흐르는 인간적인 그림이 시작되었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 혁명기를 거쳐 이후 수많은 사조와 이즘으로 나뉘어지는 현대미술로 와서는

더이상 성서의 내용을 그린 화가는 없게 되었다. 그래 루오가 유일하게도 종교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다.

직접적으로 성서의 내용들을 다루었으나 진부한 전도와 교리 전달의 의미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연민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그 표현들은 그만의 색감과 독특한 붓터치로 나타내어 진다. 탁하고 거친 색감은 두텁고 거친 마티에르에서

솟아져 나와 깊이감을 더하고, 단순화된 검은 윤곽선은 강렬하고 절제된 거룩함으로

루오의 작품특징을 잘 나타내고 주고 있다.

어설픈 외화내빈의 인상파화가전 류의 전시와는 비교도 안될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루오전은

2010년 절대 놓쳐서는 안될 좋은 전시다. 전시는 3월28일까지 이어진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며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고 올라가던 그의 고독함, 할 수만 있다면

이 고통을 거둬가 달라했던 인간적인 두려움의 기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십자가 위에서의 외로움과 절대고통...

루오의 그림을 보며 그런 것들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선하고 깊은 그분의 눈빛은 나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힘들고 외롭고 너무 아팠단다. 하지만 너를 위해 그랬어.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나는 너를 끝없이 사랑한단다.” 

[지금여기]

고독, 두려움, 절망, 외로움이 그대로 담긴 인간적인 눈빛이 바로 '내 안에 계신 예수'의 모습이네요. 오래 전 김봉준의 '조선의 십자가'란 판화 작품을 봤을 때 느꼈던 만큼의 연민이 솟구칩니다. "너는 소중한 존재란다. 너를 끝없이 사랑한다"는 예수의 속삼임은 계속 이어지는 듯 합니다. "너희들이 씌어 놓은 화려한 금관은 제발 거두어 주렴. 가없는 나의 사랑은 가시면류관의 고통 속에서 나온 거란다." 라구요....

[박하]

내안에 계신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는 '눈'보배, 그나저나 폭설에 무고하신지요

[해랑]

굉장히 자세히 적으셨네요! 저는 지난번 정모때 보았는데, 감탄이 나올정도로 정말 좋은 전시회였습니다.

[박하]

몇몇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 못했는데 이거저거 다하다보면 늘어질 수 있지요, 전시가 좋아서 많은 호평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Jiny+]

그림그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거듭난 크리스찬으로서 위의 글 너무 감동적이예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하]

감사합니다, 감동적 부분은 제가 쓴게 아닌 듯 해요, 그감동을 주신 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죠,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작가의 진심은 누구한테든 꼭 전해집니다. 좋은 그림 그리시길요^^

[신이사랑]

간결하고 좋네요.저도 전시를 보았지만 저런 생각을 가졌는지.또 글로 표현할수 있을는지 모를정도네요.

[박하]

더 짧게 써야하는데 길어졌어요,길고 푸석거리는 글은 힘이 없는데 말입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