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여 머물렀던 추위가 물러가고 설 연휴는 포근하였습니다.
주말까지 이어져 길었던 설 연휴 덕분에
가족, 친척, 친구, 선후배 분들 많이 만나 즐거운 시간 함께 하였고
사정상 못만난 반가운 친구들, 선후배와 전화통화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세뱃돈 주느라 내 지갑은 홀쭉해졌지만
뱃살과 행복감은 더욱 충만하여진 것 같습니다.
휴일의 마지막날, 이제부터는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지요.
설연휴 전날 농협하나로마트 갔다가 엄청난 가격표 보고
몇번이나 숫자를 확인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쪽파 한 단에 24,000원. 너무나 놀라 다른 채소류를 보았더니
정구지 한 단에 6,900원, 평소 가격의 2~6배 정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니 작년 11월 말 대비 현재 돼지고기 가격이 2.5배 정도 올랐다더군요.
비싸면 안사먹으면 그만이지 하겠지만
구제역 때문에 시름겨운 축산농가 생각하면 비싸도 사먹여야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2~6배의 가격 상승이 농가에 그만큼 혜택이 돌아갈지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부들의 절망적인 표정과 하소연을 들어보면 말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어찌되었건 평소에도 그렇지만 명절 때면 맛있는 음식은 더욱 넘쳐납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보면 배를 두드리며 먹고 마시고 끝이 없습니다.
평소와 달리 고기가 오르는 제삿날과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참 포시라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참 곤궁했던 삶과 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뚫어진 창호지문 사이로 까만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이 총총하고
자그마한 방 안에서 깜빡이는 호롱불 아래 콘돔으로 분 풍선으로 놀았던 기억,
신작로를 먼지 폴폴 날리며 지나가는 귀하디 귀한 '도라꾸'에 손 흔들고
검정고무신 벗져지는 줄도 모르고 뒤따라 뛰어가던 기억,
조그만 화덕에 밥 해 먹느라 바깥에서 추위에 떨었던 기억...
영원히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그시절은 근검절약이 최고의 덕목이던 때였지요.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양말 구멍나면 전구 끼워넣어 바늘로 기워 신고
광목교복 엉덩이 헤지면 천조각 덧대서 누벼 입고
무릎 튀어나오다 못해 구멍 나면 천조각 덧대서 꿰메거나 누벼 입었던 기억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억의 장면들이지요.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져오셨던 브라더미싱이 현재는 앉은뱅이로 모습이 변하였지만
60여년을 어머니의 손길과 함께 해온 우리집 보물입니다.
집 전체, 가족 통틀어 시계 한 개,
신이라면 검정고무신 한켤레가 전부였고
도시에서는 비닐가방이었지만 시골에서는 보자기에 책을 묶어 다녔지요.
고깃국은 가족 생일날, 제사날에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고
아버지 월급날 저녁이면 돼지 목욕하고 지나간 돼지콩나물 찌개가 최고였습니다.
20원짜리 숫자퍼즐을 사지 못해 선생님과 제 짝이 퍼즐맞추기 게임하는 것을
마냥 부러워하며 구경만해야 했고
미술 실기로 금속공예, 장식품만들기를 할 때면
어머니께 재료비 달라는 말씀을 못드려 다른 아이들 작품 만드는 구경만 하였지요.
하여 미술 점수는 다른 과목보다 한참 낮았습니다.
7~90년대까지만 해도 금성사의 가전제품은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광고카피로 기술력을 어필하였고
제가 지금 보고 있는 TV도 14년차입니다만
요즘 전자제품 특히 IT제품을 보면 채 2년도 사용않고 교체되는 것 같습니다.
'소비가 미덕'이고 싶던 시절을 지나 '미덕'이 되었지만
'지나친' 소비를 '죄악'시 하여야 할 때가 이미 지난 것도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방마다 있는 벽시계, 알람시계, 서랍에 자고 있는 손목시계까지 치면
인당 2개 이상의 시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만 하더라도 정작 제 것은 구두, 운동화, 등산화 포함 4켤레인데
아이들 것은 10개를 훌쩍 넘기고 있네요.
물론 운동화만 하더라도 테니스, 조깅 등 용도별로 세분화된데다
패션을 중요시하는 아이들의 특질도 있지만...
가방을 보더라도 여행용 가방 말고 인당 서너개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떨어지지만 않고 헤지지만 않으면 오래된 옷을 즐겨입는 편인데(유행 불문)
유행 지났거나 오래되었다고 버리기 위해 내어 놓는 옷이 매년 한 보따리입니다.
(그나마 폐품 수집하는 분들께는 가장 돈 되는게 옷이라기에
모아두었다가 박스 모으시는 할머니께 드리기는 합니다만)
음식은 넘쳐서 버리는 것이 태반입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매일 넘쳐나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우산고치는 분, 칼 갈아주시는 분 등
재활용을 위한 수선공들이 많았습니다.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전파사도 자주 눈에 띄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이런 모든 풍경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얼마 전 본가에 들렀다가
어머니께서 서문시장 좀 같이 가자시기에 물건을 사려는가 싶어 모시고 나섰더니
우산, 양산 고장난 것 고치러 가시는 김에 해산물을 사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문시장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1평 남짓한 우산,양산 수선집이 보이는데
수선 대기 중인 분이 몇 분 보이시더군요.
1평 겨우 될까말까한 공간에 온갖 부자재가 빼곡한 가운데
팔순 가까이 되어가는 할아버지와 50대로 보이는 분 부자가 수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뚝딱 수리를 해주셔서 기분 좋게 돌아서며 보니
맞은편에 칼국수골목이 보이길래 들어섰습니다.
조그마한 가게라 탁자 3개가 전부였지만 주인아줌마의 밝은 표정이 좋았습니다.
1인분에 3,500원인데 성별, 연령대에 따라 양을 조절해 주시기에 더욱 좋았고,
저도 어머니도 맛있게, 배불리,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때문에 난전의 양념오뎅, 납작만두를 먹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은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누리고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많은 물질을 소비하고 소유할수록 생태는 파괴되고 환경은 악화됩니다.
그 풍요로움 속에는 자연의 망가뜨림이 있었고
그 뒤에는 아직도 하루 밥 한끼 누리지 못하는 13억의 인구가 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지요.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궁핍한 삶을 살아갈 것은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어렵던 시절의 근검절약 정신을 되새기면서
아끼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아나바다를 생활화하고
불요불급한 물건은 사지 않는 생활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산대 하나 부러졌다고 버리지 말고 고쳐쓰면서
시장통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도 느껴보고
작은 돈으로 자원을 재활용한 뿌듯함을 느껴보시는 것도 좋을겁니다.
이러한 생각과 실천이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발전을 우리에게 약속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조금만 적게 만들고 조금만 적게 먹고 적게 쓰고 나누면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 자식들을 위하여 그리고 지구를 위하여.....
마음을 깨우치는 글(모셔온 글)===============================
자허원군의 성유심문(誠諭心文)에 말하였다.
복은 맑고 검소한 데서 생기고
덕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데서 생긴다.
도는 편안하고 고요한 데서 생기고
생명은 화창한 데서 생긴다.
근심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재앙은 탐욕이 많은 데서 생긴다.
과실은 경솔하고 교만한 데서 생기고
죄악은 어질지 못한 데서 생긴다.
눈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그릇된것을 보지 말고
입을 경계하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말하지 말고
마음을 경계하여 탐내고 성내지 말고
몸을 경계하여 나쁜 벗을 따르지 말라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내게 관계없는 일을 함부로 간여하지 말라.
임금을 높이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윗어른을 공경하고 덕 있는 사람을 받들며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분별하고
무식한자를 너그러이 대하라.
물건이 순리대로 오면 물리치지 말고
물건이 이미 가버렸으면 뒤쫓지 말라.
몸이 좋은 때를 만나지 못했으면 바라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으면 다시 생각하지 말라.
총명한 사람도 어리석은 때가 많고
잘 짜인 계획도 편리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히면 결국 자신도 손실을 입고
세력에 의존하면 화가 잇달아 온다.
경계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지키는 것은 기운에 있다
절약하지 않음으로써 집을 망치고 청렴하지 않으면 지위를 잃는다.
그대에게 평생을 두고 스스로 경계하기를 권고하노니.
탄식할 만하고 놀랄 만하고 두려워할 만하니라.
밝은 곳에는 삼법(왕법)이 서로 이어져 있고,
어두운 곳에는 귀신이 서로 따르고 있느니라.
오직 바른 도리를 지킬 것이요.
양심을 속이지 말 것이니
이의 가르침을 경계하고 경계하라
-----명심보감 正己편 26장
윗글은 인터넷 상에 '마음을 다스리는 글'로 원저자 미상으로 널리 퍼져있는데
추적해 보니 명심보감에 나오는 글이었습니다.
한문을 해석함에 따라 조금씩 표현이 다르긴 하지만...
첫댓글 카페지기님의 글을 읽노라면 같은 시대를 살며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