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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라산 관음사(漢拏山 觀音寺)를 찾아서 ①
12월 12일 한라산 산행을 마치고 쉴 사이도 없이 관음사로 향했는데 관음사 휴게소에서 관음사로 이동한 시간은 차로 5분도 채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걸어 오자면 한참을 걸어 야 할 것입니다. 길상님이 여기까지 차를 운전해 주셨는데 도착시간은 3시 50경이었습니 다. 그런데 날씨가 하수상했습니다. 기온은 하강했고 비가 내릴 태세였습니다. 한라산 을 무사히 내려왔으니 관음사 부처님을 뵙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갑니다. 어제(11일) 사찰순례를 빼놓은 것은 등산 후 바로 참배하려는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한라산 관음사(漢拏山 觀音寺)
관음사는 제주시 아라1동 387번지 한라산(漢拏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本寺)입니다.
관음사에 대한 안내글을 옮겨 봅니다
『제주도의 지리적 위치로 보아 이곳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시기는 제주도가 한반도에 귀속되기 전인 탐라국 시대이고 불교 유입 경로는 본토의 북방불교와 달리 해로를 통하여 남방불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관음사는 불교전래 초기에 창건되어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바, 그 근거는 제주도의 여러가지 전설, 설화, 민담에 관음사를 괴남절, 개남절, 동과남절이라고 민간에 유포되어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탐라지에는 관음사가 조천포구 위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숭유배 불의 조선조 시대에 제주에는 사찰의 규모와 숫자가 점차적으로 축소, 폐쇄, 철거 되었는 데 이러한 과정에서 관음사도 폐사된 듯하다.
조선 숙종임금 때인 1702년 당시 목사(牧使) 이형상에 의하여 제주의 사찰들이 완전히 폐 사되었고, 이후 200년간 제주에는 불교와 사찰들이 존재하지 아니하다가 1908년 10월 비구니 안봉려과(安蓬廬觀) 스님이 이곳에 옛 관음사를 복원 중창함으로써 민간에 스며들 어 전해오던 제주불교를 재건하게 되었다.
안봉려관 스님에 의하여 복원 중창된 이곳 관음사 도량을 터전으로 승려와 신도들이 모여 들어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켜 23교구 본사로서 우리나라 불교의 정통성을 제주지역에서 대표하는 사찰이다.』
우선 기념사진부터
지나가는 참배객에게 부탁하여 저도 섰습니다.
여기서 기념사진부터 찍은 것은 한라산 산행후 황심행님과 보화님이 춥기도 하거니와 힘드셨는지 관음사 참배를 유보하시는 바람에 기념사진부터 찍었습니다.
새로 조성된 석가모니불좌상(釋迦牟尼佛坐像)
예전에 갔을 때는 일주문 옆에 팔부신장 석상이 도열해 있었는데 보이지 않고 새로이 석가모니불좌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수인을 보니 전법륜인(轉法輪印)인데 전법륜인은 부처님께서 법륜(法輪)을 굴리실 때 하시는 수인(手印)입니다. 이곳이 제주 불교의 전법 도량임을 나타내려고 조성한 것 같습니다.
원불이 도열해 있는 길에서의 길상님, 좀 으시시 춥지요?
일주문에 들어서면 천왕문 앞까지 좌우에 108 분의 부처님이 도열해 계십니다. 관음사를 찾는 불자들을 변함없이 맞이 해 주십니다. 마치 갓을 쓰신 미륵불 형상인데 여기에는 다양한 수인을 하신 부처님이 등장합니다. 비로자나부처님,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 여래부처님, 미륵불, 합장하신 부처님, 염주를 드신 부처님 등 다양합니다. 이는 주지 중 원(中圓) 스님의 원력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부처님
약사부처님
염주를 돌리시는 부처님
선정에 드신 부처님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여 두려움을 없애 주시는 부처님.
1973년에 12평 규모로 지어진 천왕문(天王門).
여기에는 대개 우람한 사천왕 조각상이 조성되게 마련인데 아직 조성이 안 되었는지 사천 왕탱만 조성되어 있습니다.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또 다른 원불(願佛) 앞을 지나갑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대웅전에 들기 전에 길 양 옆에 이와 같은 원불이 장엄하게 도열해 계십 니다. 돌을 모아 탑을 만들고 이것을 좌대 삼아 원불을 조성해 모셨습니다. 여기에는 좌 우 70위의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앞서 원불과 같이 각각 시주자의 주소와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길상님.
스님 석상을 담으시는 길상님.
해월굴(海月窟) 앞에 조성된 이 스님은 누구이실까요?
근대 제주 불교의 개산조(開山祖) 안봉려관(安蓬廬觀) 스님.
스님은 1865년 2월 14일 제주도 화북에서 아버지 안치복과 어머니 평산 신씨 사이에 차 녀로 태어났습니다. 출가 전 결혼하여 1남 4녀를 두기도 했습니다. 1889년 탁발 나온 한 고승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건네받고 불교와 인연이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 데, 뜻한 바 있어 삭발출가를 결심하고 1907년 해남 대흥사에 출가하여 유장(有藏) 스님 을 은사로, 청봉(淸峰) 스님을 계사로 계를 받았습니다.
다음 해에 제주도에 가서 불사를 하려는데 반발이 심하여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가 피신하 였다가, 뒤에 내려와 관음사를 짓고 여러 사람을 교화하였으며 제주 전역의 사찰창건에 주력하여 불교 중흥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938년 5월 29일에 입적하였습니다.
해월굴(海月窟)
해월굴(海月窟) -안내판에서 옮김-
『이 토굴은 본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스님이 1908년 10월부터 3년간 기도 정진한 토굴이다. 안봉려관 스님은 관세음보살의 선몽에 의하여 이곳을 제주불교 재건과 중흥을 위한 기본도량으로 정하고 관음사 창건 당시부터 3년간 이 토굴에서 기도 정진하였다
안봉려관 스님은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이곳 관음사 도량이 앞으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유명한 성지(聖地)가 될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토굴은 천왕문에서 곧장 올라가다가 보면 만나게 되는데 우측에 있습니다.
해월굴 참배
석가모니불과 스님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참배객들이 많이 다녀가신 듯 합니다. 1.8m × 2m의 조그마한 자연굴이지만 원력 (願力)과 가피(加被)가 많은 굴입니다.
제주 관음사를 찾으면 무수한 부처님의 내영(來迎)을 받습니다.
관음사 영지
관음사 종무소
날이 흐려서 사진이 어두컴컴합니다. 참배객의 자취도 잦아든 오후, 경내가 조용합니다. 이제 대웅전 참배를 하러 갑니다.
☞ 다음은 관음사 순례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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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석상이 많군요. 사진 찍으신 모습이 추워보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제주도가 무슨 도입니까 三多島 아닙니까 風多, 石多, 女多... 역시 많은 돌로... 날씨가 좀 싸늘했습니다. 흐려서 사진이 좀 흐리고 색상이 잘 나지 않네요. 흐린 날은 사진을 천천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_()_
해월굴은 전에 갔을때 놓쳤던 곳인데, 이번에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_()_
그때는 주변이 덜 정비되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참배하여 흐뭇합니다. 원력의 굴이지요. 제주불교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입니다. _()_
언젠가는 제주가는 기회가 있으면 관음사 참배할것입니다 많이 아쉽네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