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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발음상 ‘Ⅲe’라는 기종 이름을 채택치 않아 |
1950년도에는 중요한 기능을 갖춘 새로운 모델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플래시 동조 기능이 내장된 Ⅲf였다. Ⅲf이전에는 플래시가 스피드 다이얼 위나 특수한 바닥판에서 외부로 연결되어 작동되었다. Ⅲd(이는 실제로 Ⅲc에 셀프타이머가 부착된 형태임)와 Ⅲf사이에 Ⅲe가 빠져있는데 이는 ‘Ⅲ’의 독일발음이 뒤로 오는 ‘e’와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Ⅲe를 기종명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
Ⅲg는 스크류마운트를 채택한 라이카의 마지막 기종이다. 그러나 이 기종은 다른 스크류 마운트 카메라와 달리 50mm와 90mm용 플레임이 있는 밝은 선의 파인더를 가지고 있다. 오늘에 와서 Ⅲg는 최후의 스크류마운트 카메라로서 수집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스크류 마운트 카메라는 1960년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
라이카 30년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혁신은 1954년 베일을 벗고 출현한 라이카 M3였다. 이 카메라는 종래의 카메라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종으로 바이오네트 렌즈 마운트에 교환렌즈에 따라 플레임이 변하는 아주 밝은 뷰파인더를 내장하고 있다. 또한 별도로 제작된 노출계를 부착할 수 있도록 하여 반자동기능을 부여하였다. 이 카메라는 프로사진가들과 렌즈교환이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스크류 마운트 방식의 카메라에 염증을 느낀 고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라이카 M3 발매로 또 다른 라이카 30년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역사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
1965년 오랜 숙원이었던 SLR카메라 라이카 플렉스가 발매되었다. 예상한 바와 같이 철저하고 충분한 작업을 통해 스탠다드로 평가받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 기종도 라이쯔의 전통에 의해 제작되었고 후속모델로 라이카 플렉스 SLR과 SL2가 생산되었다. |
레인지 파인더 카메라와 반사식 카메라는 모터 드라이브, 정밀한 거리계, 다양한 렌즈군을 망라한 액세서리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게다가 그 두 시스템이 별개의 시스템으로 여전히 양립되고 있고 특히 렌즈들은 다른 기종과 같이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어떤 시스템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다. |
M시리즈를 발매하면서 라이쯔는 반사식 포커싱과 프레이밍을 쉽게 하도록, 특히 망원렌즈나 접사를 위한 비조 플렉스 시스템을 충분한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비조 플렉스는 현재 생산 중지된 상태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할 때 그 기구의 최대 단점이 렌즈를 통한 노출방식이 내장된 M6의 출현으로 극복되었다. |
반사식 카메라와 뷰 파인더식 카메라 중에서 어떤 기종이 더 좋은 기종인가 하는 오랜 논쟁은 지난 10여 년간 양자가 공히 만족스러운 기종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각 기종은 현대사진에 있어 제각기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라이카 M형은 견고하면서 상당히 가볍고 21mm에서 135mm에 이르는 초점거리를 갖춘 밝은 렌즈로 특히 빛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속사와 정확한 포커싱이 용이한 기종이다. 보도사진에 있어 그 조용한 셔터소리는 이상적이다. 사용범위가 광범위한 라이카 R형은 아마추어들의 일반사진에서부터 정밀을 요하는 과학 사진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종이다. 반사스크린은 프레이밍을 쉽게하여 별도의 뷰파인더나 접사용 포커싱 기구 사용의 필요성을 배제하고 있다. |
사진의 수준을 높여준 라이카 |
아마추어에서 프로사진가에 이르기까지 라이카 카메라가 사진의 수준을 확연히 높여왔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다. 어떤 다른 카메라와도 그 업적은 비교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의 카메라들은 어떤 기본 틀 위에서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라이카는 사진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낸 것이다. 아마추어에게는 예의 그 작은 필름이 감겨있는 한, 자동적인 셔터를 누르는 아주 적은 노력으로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도록 편리함을 제공했고 프로사진가들에게는 라이카의 작은 크기가 주는 엄청난 이점 외에 단 한 롤의 필름으로 많은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촬영의 기동성을 부여했다. 그 작은 크기는 중·대형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밝고 초점거리가 긴 렌즈들의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라이카나 아니면 1913년에 바르낙이 최초로 프로토타입 카메라에 도입했던 35mm필름을 사용하는 다른 유사한 카메라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보도사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라이카가 35mm필름을 사용한 최초의 스틸카메라라는 사실을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오랜 세월 동안 유일한 최고 성공작이었다. 어떤 사람도 라이카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60년 동안 사진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이카가 단순히 새로운 형태의 카메라였다는 사실과 더불어 일종의 첫 번째 ‘사진시스템’이었다는 사실도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사진촬영에서 시작하여 확대나 영사기능을 망라한 기자재들도 라이카에서 공급되었고, 무엇보다 한결같이 일관성 있게 놓은 수준의 생산품들이 디자인되고 제작되었던 것이다. |
수년간에 걸쳐 라이쯔에서 발명되고 생산된 방대한 양의 액세서리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사람들은 단지 목록을 열람함으로써 오늘날 35mm카메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액세서리들이 라이카를 위하여 라이쯔사에서 제작되고 라이쯔사에 의해 실험단계를 거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식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사람들은 라이카의 렌즈를 교환할 수 있었고 카메라 내장 레인지 파인더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초망원 렌즈로 달을 찍을 수 있었고 투시장비를 사용하여 인체의 내부를 촬영할 수 있었으며 시계 작동장치를 찍고, 연속촬영을 하고, 입체사진을 위한 기구를 부착할 수 있었다. 오늘날 카메라 시장에는 성능이 썩 뛰어나고 용도가 다양한 카메라 기구들이 많이 나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30년 또는 40년 전에 라이카를 통하여 이같은 업적들이 전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
라이카는 한 사람의 천재성과 또 한 사람의 지혜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오스카 바르낙은 기계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었고 언스트 라이쯔 2세는 계산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생산하였다. 두 사람 다 라이카 카메라의 성공에 있어 비슷한 무게로 공헌하였다. |
지금, 라이카의 3세대에 이르러 언스트 라이쯔 3세는 애석하게도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되었고 데오키젤바하(Theo Kisselbach)의 우정어린 충고 또한 들을 길 없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추억은 오스카 바르낙과 더불어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이며 우리가 라이카를 가지고 있는 한 이 위대한 업적을 가져온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