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영남루(嶺南樓)는 진주 촉석루·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보물로 지정된 영남루는 야경이 밀양 8경 가운데 제1경에 해당한다. 영남루는 남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절벽위에 자리한다. 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 절터에 1365년 지어진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44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의 이색·문익점·이숭인, 조선의 권근·하륜·김종직·이황 등 내노라하는 문인들이 영남루를 노래한 시가 남아있다.
경남 밀양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도 한 번쯤 읊조렸을 법한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의 ‘밀양아리랑’, 아니면 전도연과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밀양’이 아닐까. 여기에 하나 더한다면 진주 촉석루·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인 밀양 영남루(嶺南樓)가 생각난다. 보물로 지정된 영남루의 ‘야경’은 밀양 8경 가운데 제1경에 해당한다.
영남루는 남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기슭 절벽 위에 자리한다. 현재의 영남루는 1844년(헌종 10) 밀양부사 이인재(李寅在)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영남루 건물에 양쪽으로 익랑(翼廊)인 침류각(枕流閣)과 능파각(凌波閣)을 이어 지어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영남루 자리에는 신라 때부터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고려 때 절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1365년(공민왕 14)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새로 누각을 지으면서 영남루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7년(인조 15) 중수했다가 다시 불탄 것을 1844년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 후기에 중수된 누각이지만 영남루에는 1844년 이전에 다녀간 선인들의 발자취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고색창연한 누각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남루 처마 밑에 걸려있는 커다란 편액이다. 계단으로 오르는 중앙에 ‘영남루(嶺南樓)’, 그 좌우에 ‘교남명루(嶠南名樓)’ ‘강좌웅부(江左雄府)’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영남루’ 편액은 진주의 촉석루 편액을 쓴 조선 후기 명필 귤산 조윤형(曺允亨)이 1788년(정조 12)에 쓴 것이다. 이는 지금 남아 있는 영남루 건물보다 오래된 것이다. ‘교남명루’ ‘강좌웅부’ 두 편액은 조선 후기 이유원(李裕元)의 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