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학원에 가지 않는다는 큰 아이 한결에게 무등산에 같이 가자고 하니 싫단다. 강제로 가자할까 하다가 꾹 참고 혼자 나선다. 바람이 차다.
555번을 타고 증심사에 내리니 9시 30분쯤. 김밥을 하나 사고(맥주는 집에서 넣고) 증심교에서 토끼등 쪽으로 오른다. 사람이 참 많다.
토끼등을 지나쳐 동화사터 길로 오른다. 눈이 미끄럽다. 아이젠을 찬 사람들이 많지만 그냥 오르기로 한다. 남녀가 함께 오르는 팀도 많다. 넷도 있고 여섯도 있다. 직장인들인 모양이다. 모두 건강하다. 너덜이 끝나는 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시내 쪽을 보며 쉰다.
동화사터 지나 능선 길은 눈이 깊다. 풀에도 눈인지 서리인지 얼어있다.시내를 배경삼아 그들을 찍어본다. 손이 춥다. 모자에서 귀마개를 내리고 웃옷의 모자도 뒤집어쓴다.
서석대를 보고 바로 오른다. 카메라를 대고 앉은 사람들이 많다.
빙 돌아 ‘내 자리’ 찾아가 맥주를 마신다. 속이 따뜻해진다.
서석대 위의 나무들이 하얗다. 언 손으로 셔터를 누르기 쉽지 않다. 싸구려 장갑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손가락 끝이 시려 장갑을 벗고 바지 주머지에서 문지른다. 눈이 녹아버린 입석대는 길에서 두 번 사진을 찍고 장불재에서 길을 망설이다가 지난 여름 길 잃은 길 따라 가보자고 그리로 접어든다.
망가진 철조망을 넘어 내려오다 따뜻한 햇볕 받아 김밥을 먹는다. 기다리는 ‘친구’의 응답은 없고, 상호 형에게 전화하여 기홍이랑 정화 형이랑 식사를 제안한다. 기홍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리 말하며 다음을 기약하는데 혼자 일곡지구로 오란다. 내려가는 사람이 가끔 있다. 길을 아느냐 물으니 자주 다닌다 한다. 오십 가까운 아주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시는데 참 건강하다. 무등중 옆길을 따라 올라오셨단다. 지난 여름의 동산마을 길 삼거리가 보이는 데, 무시하고 양 선생의 집게봉 안내를 따라 계속 능선을 간다. 집게봉엔 돌탑을 많이 쌓아두었다. 쌓아가고 있는 탑도 많다. 무슨 염원을 담았을까? 작은 돌을 모아 사다리 놓고 올라가 탑을 쌓은 그의 힘과 의지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붙잡고 있는 허망함은 저 돌탑보다도 어이없는 것은 아닐까?
새인봉의 바위 벽이 보기에 좋다.
자랑하기 싫어하는 무등이지만 구석에 해맞고 해지는 것을 보는 새인같은 작은 봉우리를 두었다. 원효사에서나 시내에서 보는 무등의 모습과는 다른 선이 보인다. 집게봉 내리길을 따라 기다리고 있을 상호형에게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마음대로 자란 참나무며 느티나무를 타고 올라간 마삭줄과 송악 이름모를 넝쿨이 우거진 원시림 같은 숲을 지나고 마지막 산딸기 가시 길을 벗어나자 밭이다. 녹슨 철대문으로 다리를 놓은 개천을 따라 마을을 통과하여 내려오자 금방 월남마을 버스 종점이다. 오후 2시 30분쯤.
수 많은 차들이 지나는 것을 지켜보는데, 시내로 외출하는 할머니가 ‘이렇게 추운 날 옷 든든하게 입지 춥게 보인다. 따뜻한 집안에 있지 뭐 할라고 돌아다니까’고 한 마디 하신다. 1번을 타고 그 분이 떠나고 난 12번을 타고 일곡초교 앞에서 내려 술을 마셨다.
형의 친구분 이화식 선생(숭일고)도 오시어 같이 마시는 데 배건 장학사가 전화했다. 상호형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니 혼자 이야기 후에 상무지구로 오라한댄다. 임영효 선생과 함께 오인성 형님의 일을 마치고 마무리 한잔에 어찌 내 생각이 났을까? 가족과 백아산에 다녀 온 기홍이까지 합류하여 술 마시고 ‘들국화’에 가서 가수에게 무례하며 소아암 돕기 통에 돈도 넣고, 또 어디로 술 마시러 가는데 뒤에 쳐저 상호형 택시타고 가신 걸 보고 집에 왔다.
산에서는 종일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는데 어찌 사라져 버렸다. 이 산행기의 제목은 어긋났다. 그런들 어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