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반듯하기만 한 사람에서는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 힘들다.'서울 사투리'를 쓰는 김희애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빈틈없이 꽉 조여진 듯한 반듯함과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은 것 같은 냉정함,상대를 긴장하게 만드는 예민함.
그러나 브라운관 밖에서의 그녀는 허를 찌른다. 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유롭고 내면은 10대소녀보다 수줍고 생기발랄하고 질박하다.그런 그녀를 두고 남편 이찬진씨는 "생긴 건 여우인데 속은 곰"이라고 했다던가.
"늘 감사해요"
그날,김희애는 이 말을 가장 많이 했다.아마 두 마디의 말 앞에는'지금까지의 삶이,현재의 내 모습과 가족이,연기자로서의 삶이'등이 생략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간혹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많이 가진 사람이건,적게 가진 사람이건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에서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두들 알다시피 그녀는 요즘 드라마<아내>의 나영으로 살고 있다. 수개월째 드라마 촬영에 힘을 쏟느라 품안의 두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 이젠 제법 이력이 붙었다고 한다. 애초에 복귀할 작품으로는 다른 작품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제작이 연기되면서 같은 제작사에서 준비하던 <아내>에 출연하게 되었다. 기왕에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역할 또한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얘들 때문에 쉬었는데 아이들이 크니까 정반대가 되었어요.거꾸로 제가 아이들에게 얽매이더라고요. 애들이란 독립적으로 키우면 스스로 성장하는 부분이 있는데,(이렇게 매이다가는)제가 헤어나지 못할 것 같더라고요. 시간이 더 지난 다음 아이들과 떨어지면 제가 더 우울해할 것 같기도 했고요."
최진실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권희덕이 "한국에서 가장 대사를 잘하는 여배우로 김희애를 꼽고 싶다.김희애의 대사는 기승전결이 분명하며 간단한 대사 한 마디에도 여운이 있고 분위기가 있다"던 그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한다.청초한 외모와 연기실력이 예전 그대로인 것처럼 특유의 카리스마도 녹슬지 않았다.
하이틴스타로 데뷔해 똑 부러지는 연기와 재능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희애.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그녀의 소식은 바람처럼 들려왔다. 벤처기업가 1세대인 이찬진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고 결혼 후에는 철저하게 아줌마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미디어가 사랑하고 대중이 궁금해하는 스타이니까.
"애들과 떨어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정작 닥쳐 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애들 봐주시는 분이 그만 두셔서 지금은 남편이나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요. 밤 촬영이 있을 때면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애들을 봐주는데 뒷전으로 나앉았던 남편의 변화가 재미있게 느껴져요.아이들에게도 좋은 것 같고."
남자가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일을 양보하는 일은 외국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이 마냥 신기한지 방긋 웃음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일은 여전히 그녀의 몫.그녀의 지갑 속에 들어있는 형제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러나 활동을 재개하면서 아이 문제만큼 무겁게 고민했던 것이 연기력의 회복이 아니었을까.1999년 일일 드라마<하나뿐인 당신>에서 얼굴을 내밀었던 것을 제외하면 정식으로 복귀하는 셈인 <아내>의 작업이 얼마나 긴장되었을지는 지레 짐작할 수 있는 일.
시들지 않은 연기력은 지난 3월의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 수상으로 확인되었지만,그녀의 긴장은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본부터 찾는 그녀는 잠들기 전에도 대본을 읽고,이동하는 차 안에서조차 그것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 전보다 더 열심이다. 드라마 의상을 챙기는 스타일리스트가 "언니,고시 공부해?"라고 눙치는 것도 다 이를 두고 하는 말.
오죽하면 백상예술대상 수상을 기념해 그녀가 한턱을 '쏘고'돌아오는 밴 안에서 만났던 '은표엄마'엄정화가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언니는 너무 완벽해요. 글쎄 눈뜨면 대본부터 본대요"일까.브레히트는 아침저녁으로 연인의 마음을 읽었지만 김희애는 대본을 읽는다.
"연기는요.다른 예술과 마찬가지예요.기본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나면 자신의 재량에 맡겨야 해요. 외운 대본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거든요.역할을 자기 걸로 만드는 것은 마음과 정신과 노력에 달려 있죠."
혜화여고 1학년이던 1982년 제일모직의 CF 모델로 출발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한국 여인상을 보여주었던 <여심>의 송다영,집안의 홀대를 극복하고 소설가가 되는 <아들과 딸>의 후남이,복잡 다단한 사랑에 괴로워하던 <폭풍의 계절>의 여주인공,옛 소련의 정책에 희생된 고려인으로 등장한<까레이스키>등 데뷔할 때부터 정상에 있었던 연기자 김희애는 지금까지 줄곧 그런 자세로 연기를 해왔던 많은 작품에서 등장했던 그녀를 돌이켜보면 이질감을 주는 배역이 없었던 것 같다.
그녀의 대한 인상이 자의식 강한 여성으로 남아 있는 것도 아마 그녀가 맡았던 역할들 때문이었으리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간혹 그녀의 연기가 '너무 완벽해서 인간미도 없고 매력도 없다'고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열심히 하는 태도를 접을 수도 없는일.
그러나 실제의 김희애는 겁이 많고 무서움을 많이 탄다. 싸움 나오는 액션 영화를 싫어하고 가슴 아픈 영화도 싫어한다. 간혹 배우의 연기를 보기위해 달갑지 않은 작품을 볼 때도 있지만 일상의 그녀는 따뜻한 영화를 좋아한다.
풍부한 감성과 완벽한 준비는 조화로울 수 없는 관계일까.그녀의 완곡한 어법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 역할에만 어울리는 것일까.하지만 그녀가 과거의 연기 활동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다른 지점에서 나온다.
"돌이켜 볼 때 기억에 남는 상대 배우가 없는 걸 보면 제가 남자 상대역에 대한 운이 없나 봐요.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장만옥인가?상대와의 연기를 설명하는데 '은밀하게 테니스를 치는 기분이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저도 러브스토리에 많이 출연했지만 연기하면서 그런맛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남자 복'이 없다지만 그녀는 기억에 남는 상대 배우 중 한 사람으로 한석규를 꼽는다. 아주 오래 전의 작업이었지만 그에 관한 기억이 아주 꼼꼼하다. <아들과 딸>후반부에서 그녀의 남편이 될 엘리트로 출연한 한석규는 이 작품을 발판삼아 <서울과달>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녀의 기억속에는 좋은 연기를 통해 역할의 비중을 단역에서 조연급으로 끌어올렸던 무명의 한석규가 남아있다.
긴 생머리 찰랑이며 데뷔한 그녀의 연기 경력은 19년.올해부터 연기자로 살아온 인생이 평범했던 시간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노래도 부르고 방송도 진행하고 연극.영화에도 출연했던 '만능 엔터테이너1세대'이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를 보면)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싶어요. 제 젊음도 돈 주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네요.20대도 마찬가지예요.20대의 저는 혼란스러웠고 정체성을 찾지 못했고 열병을 앓았어요.
지금 느끼는 행복함도, 감사의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제가 겪은 시행착오들 때문이지 않겠어요?"
20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개 둘 중 하나이다.너무 좋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그녀는 후자을 선택한다. 어쩌면 그녀는 연기생활과 학업의 병행,이중 생활이 주었을 괴리감, 어디에서나 쏟아졌을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20대의 시간으로 모조리 써버렸을지도 모르겠다.그녀가 서른살을 한 달 앞두고 천주교에 귀의해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갖게 된 것도 자연인 김희애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으리라.
"때로는 실수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죠.저는(말끔한 사람보다는)상처도 입고 실수도 해본 사람이 좋아요. 그런 사람이 상대를 받아줄 수 있거든요. 실수 없이 편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대하기가 불편해요.
그러면서 식당을 예로 들어 설명을 덧붙인다.
"제가 설겆이를 하다보면 깨끗이 했는데도 그릇에 마른 밥풀이 붙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어느 식당의 숟가락에서 밥풀이 묻어나와도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게 되죠. 그런 것처럼 실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상대의 실수를 이해하는 법이에요."
그녀가 실수 이이기를 꺼냈다고 해서 20대였을 때의 그녀가 좌충우돌 실수만 했으리라고 섣불리 추측하는 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실수까지도 감싸안는 넉넉함이 있었기에,지금의 김희애가 존재할 수 있었을 터이니.
"연기 생활이 제게 준 선물은 바쁘게 보냈던 시간이에요.안 그랬으면 허송세월로 살았을 것 같거든요. 잃는 것은 현실감이조. 하지만 배우에게는 실수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버릴 게 없어요.사람이 어떻게 실패와 실수 없이 살겠어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녀는 1995년 말에 방여된 <연애의 기초>를 끝으로 방송 출연을 자제하고 수원과학대학에 출강하고 있었다.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결혼을 발표했고 그해 가을 이찬진의 아내가 되었다. 연기파배우와 촉망받던 젊은 기업가의 결혼소식은 더없이 센세이셔널했다.
"남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촌스러운 남자지만 도전 정신과 당당함과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제가 보았던 남자 가운데 괜찮은 남자 중의 한 명이지요."
말을 하던 중 "최고로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가 "괜찮은 남자 중의 한명"이라고 수정하는 그녀가 결혼을 생각하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존경할 수 있는 사람".
돈과 물건등 물질적인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살 수 있지만 정신적인 것은 아무리 큰 돈을 주더라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신뢰하고 존중하지 못하면 힘든 쪽은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남편은 그녀의 든든한 멘터(mentor)이기도 하고,때로는 좋은 후견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남편은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남에게는 그렇지 않는 사람이죠.무엇이든 선입견을 갖지 않는,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에요.고민을 이야기하면 쉬고 간단하게 해결해 줘요.아주 큰 일도 복잡하지 않게 풀고 나서 하는 말이 '다 그래'라는 거에요."
남들처럼 실망도 하고 이해도 하면서 만6년을 살아왔다. 남편으로부터 건네받은 첫월급을 쥐고 어찌랄 바를 몰랐던 그녀는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다고(이 돈은 나중에 회사가 어려울 때 나편이 되가져갔다).
반찬거리를 사면서 비싼 갈치 대신 싼 고등어를 고르던 새댁은 여섯 살과 네 살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 생활이 좋은 만큼 나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일정 부분 포기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나도 포기하는게 많은데 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서.
"결혼 전에는 지구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어요. 연기할 때만 조금 좋았을 뿐 우울했거든요.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결혼하면서 자연인이 되었어요.예전에 길거리를 지나면 사람들이 '김희애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름 뒤에'씨'자를 붙여주고(웃음)"
무중력 상태의 그녀에게 중력의 힘을 실어준 것은 '생활의 발견'.여고 시절부터 해온 방송 생활에서 벗어난 그녀는 현실감각을 되찾았다.1997년이던가?<대학가요제>게스트로 잠깐 오랐던 '아줌마 김희애'는 그 어느때보다 쾌활하고 상큼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녀가 주었던 발랄한 느낌의 정체를,그저 '정말 사랑하고 행복한가 봐'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집 앞에 구멍가게가 있어요. 한번은 아이를 업고 구멍가게로 나가는데 남편이 '당신 배우였어.그러고 나가면 사람들이 남편 욕해"라고 하는 거예요.그래서 주섬주섬 포대기 풀고(우아하게)안고갔어요(웃음)"
여느 엄마들처럼 살고 있고 그 생활이 아주 편하다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이제 다시 배우가 되어 돌아왔다. 땅 위를 단단히 디디고 선자세로.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녀의 복귀를 좀더 앞당길 수도 있었을 드라마<위기의 남자>캐스팅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휴,또 그 얘기"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고는 이미 지난 이야기이고 자신에게는 맞지 않았을 뿐더러 이미 연기한 배우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말로 깍듯하게 자른다.
"히트작이라도 출연하지 않은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고 제게 아니 것에는 욕심이 없어요. 어떤 스님이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지 오지 않았으니 현재가 최고'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이 아니어도 이미 지난 것에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앞으로 할 것도 많은데.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하죠"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되던 날.뉴스를 보던 초등학생 소녀 김희애는 가만히 세월을 꼽았다. 소녀는 까마득한 시간을 기다려야 1988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대학 4학년 스물 세살.소녀는 "와,할머니가 되어야 열리겠네,조금만 더 빨리 열리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은 금세 흘렀고 인생에서 스물셋은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다.어린 시절 까막득하게 늙어 보이던 그 시절도 놀면서 보냈고 나이 드는 게 괜찮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들 놀아봤잖아요?"라고 되묻는 그녀.한때 그녀에게 노는 일은 친구들고 옷 사입고 좋은 물건 사서 두고두고 품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보니 남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그저 그렇게 즐기고 나면 별 게 없었다.
'모범생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오늘 하루가 힘들었으면 푹 쉬어야 컨디션이 좋아지고 스태프랑 술 한잔씩 마셔도 좋은 거잖아요.그냥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좁은 사회라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아이콘 스튜디오에서의 김희애는 "잘 나와야 하는데..."라며 조바심을 낸다.수도 없이 카메라 앞에서 서 봤을 테지만 촬영하는 내내 긴장한 모습이다.몸이 풀리지 않는다면 음악을 바꿔 가볍게 몸을 흔들고 수다도 떨어본다.대중과 만나는 연기자의 조바심은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다.
수원의 갈비집에서 <아내>출연진과 연기자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김희애는 앞에 앉아 있는 엄정화와 김승수에게 잘 익는 고기를 먹이느라 바쁘다."우리 아줌마들은 말이야. 고기 쌓이는 걸 보면.."슥슥 고기를 뒤집으며 두 사람의 공기밥에 고기를 얹는 모습이 여간 숙련된 게 아니다.
최고 탤런트에서 엘리트 CEO의 아내로 자리를 바뀌 앉았던 김희애.7년간의 담금질 끝에 돌아온 그녀가 이번에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다시 출발선에 섰다. 한 손에는 대본을,다른 한 손에는 포대기를 들고.예순의 그녀 모습이 궁금하다.
첫댓글 희애누님 역시 ㅋㅋㅋ
와 넘 감사합니다 좋은 기사 잘읽었습니다
음 인터뷰 내용이 너무 너무 좋네여 음 이잡지 사야게따 ㅡㅡ; 돈없는데 요즘 ㅠㅠ
ㅋㅋㅋ.....기사 내용보니깐..언니의 인간미..같은..그런면을 느꼈는데..^^정말....언닌...ㅋㅋ 말이 필요없습니다...하하하^^
소식기사란에 있어야 할 내용인데 여기에다 써서 죄송해요(그곳에 쓰기권한이 없어서)다른 분들께서 소식기사란에 옮겨 주세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읽고 싶었는데... 근데 기사내용. 역쉬 예상대로 좋으네요 배울게 많은 희애님^^
변함없는 김희애님입니다.... 오래 전부터 희애님의 기사는 꼼꼼히 봤었는데, 항상 말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