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수도원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은 뒤, 오후 6시경 명상홀에 집합하여 입제식이 진행되었다. 30일 동안의 주의 사항이 전달되고,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할 스님들에 대한 소개와 인사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현지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참석자 500명(비구 300명, 재가자 200명) 중에서 외국인은 나 혼자 뿐이었기 때문에 별도로 통역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 MCU 영어 강사가 이번 위빠사나 수행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녀를 통해 중요한 사항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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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간 진행되는 수행에는 비구300명과 재가자 200명이 참석했다. 외국인은 필자 혼자뿐이었다. |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는 자발적으로 이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왜 박사과정에 위빠사나 수행을 이수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위빠사나 수행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학칙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리고 명상 코스 참가 희망자들은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자세와 구비해야 할 물품 등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태국의 스님들보다 몇 배나 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우선 태국 말을 모르기 때문에 너무 불편했다. 옆에 있는 태국스님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눈치껏 움직였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오전 7시까지 정진시간이다. 간혹 아침공양 전에 수도원 주변을 걸으면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지도하는 위빠사나 스승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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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가불자들이 스님의 안내로 수도원 주변에서 걷기명상을 하고 있다. |
새벽정진이 끝나면 아침공양을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줄지어 서서히 움직인다. 태국의 사찰에서 아침에 탁발하려 나갈 때와 똑같은 분위기다. 아침공양의 메뉴는 대개 밥에 야채와 버섯이나 고기들을 넣어 끊인 죽과 같은 음식이다. 후식으로는 요구르트나 과일들이 나온다. 나는 아침식사에 고소와 향신료가 가득 들어간 음식이 역겨웠다. 그래서 향신료를 넣지 않은 흰 쌀죽을 끊여 달라고 주문했다. 그들은 나를 위해 특별히 별도로 쌀죽을 끊여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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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공양을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는 스님들 |
아침공양이 끝나면 자신의 꾸띠나 텐트로 돌아와 주변을 청소하거나 샤워 또는 빨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식당에서 일하는 재가자나 매치(Mae Chi)들은 곧바로 점심공양 준비에 들어간다. 하루 500명 혹은 700명의 공양물을 준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많은 인원들이 먹을 음식물을 소수의 인원들이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로 매치(Mae Chi)들이 이 엄청난 하루의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다.
태국어로 매치는 비구니가 아닌 여성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다. 현재 태국에는 약 1만 여명의 매치들이 있지만 대부분 사찰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식모 혹은 하녀처럼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육 받은 매치들은 사무적인 업무에 종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매치들은 청소나 공양 준비 등 매일 반복되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공부나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았다.
오전수행(08:30- 10:30) 때에는 각자 자기의 발우를 가지고 명상홀에 참석해야 한다. 오전 수행이 끝나면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해서 발우에 음식을 받아 와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가 먹을 만큼 음식물을 챙긴 다음 다시 명상홀로 돌아와 다 같이 공양한다. 점심공양 때에는 외부에서 공양물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오히려 과식할 염려가 있다. 그러나 오후에는 음료수 외에 일체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하루일과 중에서 점심공양을 받으려 갈 때가 가장 기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점심공양을 받으려 먼저 가는 팀이 공양 후 명상홀 청소를 담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좋은 음식을 많이 먹었으니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첫날 발우가 없어서 혼자 식당에서 점심공양을 했다. 그러자 수도원에서 발우를 하나 빌려주었다. 그 후부터는 태국 스님들과 똑같이 발우공양을 했다.
위빠사나 수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걷기 명상(walking medit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좌선 명상(siting meditation)이다. 30분 혹은 45분 간격으로 걷기 명상과 좌선 명상을 번갈아 가면서 반복적으로 실시한다. 걷기 명상은 제1단계에서부터 제6단계까지 점차적으로 심화된다. 좌선 명상은 복부의 ‘일어남(rising)’과 ‘내려감(falling)’을 알아차리는 수행법을 반복적으로 실시하여 자기 스스로 위빠사나 수행의 테크닉을 익히도록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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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빠사나 수행중 하나인 걷기명상.걷기 명상은 1단계부터 6단계까지 점차적으로 심화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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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홀에서 좌선명상중인 스님들 | 오전수행(08:300-10:30)은 명상홀에서 단체로 걷기 명상과 좌선 명상을 번갈아 가면서 실시한다. 하지만 오후수행(13:00-16:00)은 비교적 자유스럽게 각자 적당한 위치에서 수행해도 상관없다. 오후수행이 진행되는 동안 그룹 혹은 개별적으로 인터뷰가 실시되기도 한다.
간혹 휴식시간에도 쉬지 않고 수행을 계속하는 스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수도원 내부를 산책하기도 한다.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서 인터뷰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인터뷰는 우리나라 선원의 선문답과 같은 것이 아니다. 개인의 수준에 따라 위빠사나 수행을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이때 개인적인 의문사항이나 애로사항을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위빠사나 스승에게 말하면 바르게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 주기도 한다. 전체 참가 인원은 조별로 담당 위빠사나 스승이 지정되어 있다. 위빠사나 수행자 중에서도 수준이 높은 단계에서부터 아주 초보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매치나 여성 불자들은 위빠사나를 오랫동안 수행한 매치나 여성 위빠사나 스승이 맡아서 지도한다. 율장에 비구는 여성과 단둘이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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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가 위빠사나 스승이 인터뷰하는 모습. 신경정신과의사로 재가위빠사나 전문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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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장이 그룹으로 인터뷰하는 모습.위빠사나인터뷰는 우리나라 선원의 선문답같은 것이 아니고 개인의 수준에 따라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기 위한 것이다. |
저녁수행(18:00-21:30)은 저녁예불로부터 시작된다. 예불은 약 30분간 진행되는데,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비록 위빠사나 수행이지만 예불(Chanting)은 매우 중요한 수행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다. 예불은 비록 깨달음으로 이끄는 직접적인 수행은 아니지만 신심을 돈독히 하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정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심어주기 때문에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된다.
예불이 끝나면 약 1시간가량 법문이 실시된다. 매번 다른 사람이 설법했는데 그 누구도 원고를 보지 않고 청산유수로 설법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영어 강사를 통해 오늘 법문한 내용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면 위빠사나 수행과 관련된 조리 있는 법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법 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시간에 밖으로 나와서 혼자 걷기 명상을 하거나 휴식을 취했다.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