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러 집을 나선다.맨날 늦잠을 자다가 새벽 열차를 타려니
빡빡하다.
잠을 못 자고 간단히 짐을 챙겨 들고 24일 새벽 다섯시 반에 집을 나선다.
'좀 늦었나?'하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장항행 통일호를 놓칠 지도 모르겠다.
장항선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통일호를 타기 위한 여행이다.
장항엔 고등학교 때 처음 갔었다.
군산대학교 원서를 사 온다는 핑계로..
원서만 사오고 군산대엔 원서접수를 안 했지만..
그저 장항선 타고 배타고 군산선 타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었던..
장항은 기차역 앞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내려 또 기차를 탈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런 곳이 또 있을까..
이 장항행 새벽 통일호를 종종 타지만 항상 승객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5시 20분이 되어 열차는 바로 출발하고..
옆의 전철 플랫폼들을 지나가며 새벽을 휙 가른다..
아..이제 잠을 좀 자야겠군..
앞의 의자를 뒤로 제끼고 자기 편한 자세를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취해 본다.
이리저리 자다가 보니 열차는 어느새 경부선을 지나 장항선으로 진입하고..
모산을 시작으로 장항선의 노선이다..
장항선은 그리 북적북적이지 않는 한적한 곳들을 많이 지나면서
그리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지만 정겹고 여유로운 풍경을 선물해준다.
거의 종착역에 다다를 때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못 잔 잠을 잤다..
아직은 자고 있을 시간이니..
10시경 간이역인 삼산역을 지나고 죽죽 갈라지는 선로와 함께
종착역인 장항역에 진입한다.
내려서 잠시 쉬다가 도선장으로 향한다.
화물열차가 지나가면 구경하고..
10시 50분 경이었던가..
군산행 배가 출발을 한다..
육지에서 육지로의 배 여행..
군산에 내려 군산역으로 걷는다.
걷기에는 조금 먼 곳이긴 하지만..
가다가 군산역 근처에 챠오챠오라는 곳에서 짜장면을 먹었는데
싸고 괜찮다..
다음에 들르면 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군산역에 도착하니 12시 10분발 군산-임실 통일호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열차에는 승객들이 많다.
물론 앉을 자리는 없고..
작은 역들과 드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이윽고 익산에 도착한다.
여기서 몽탄까지 열차를 타고 가서 여수행 통일호를 탈 생각으로..
오후 1시 18분 목포행 열차에 오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열차엔 입석 손님이 가득하다.
엇 이상하군..
주말도 아닌데 여기에 사람이 왜 이리 많지..
열차의 다른 객차로 가 보았다..
한 차에 군인들이 가득타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객차로 가려고 했더니 그 뒤로 모두 군용 칸이란다.
열차의 절반이상을 군용으로 잠시 운행하는 중이었다.
군인들은 모두 장성에서 내리고 내린 자리에는 텅텅 비어 편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열차는 광주 시내로 진입하고..
목적지인 몽탄역에 내렸다..
세시가 좀 넘은 시각이다.
몽탄역 앞의 몽탄 초등학교에 잠시 가서 바람 쐬고..
수퍼에서 먹을 것을 조금 사서 3시 27분에 몽탄역을 출발하는
통일호 1566열차에 탄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광주에서 경전선으로 진입한다.
한적한 서광주역을 지나고 이제 많은 간이역들을 지난다..
팻말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간이역들..
정겨운 기차의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열차의 뒷 칸에서 멀어져 가는 역들을 바라보며 행복에 젖는다..
경전선은 기차 여행의 냄새가 또 다른 노선이다..
마치 고향에 오는 거 같은 느낌..
보성역..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이제 점점 해도 기울어져 가고..
열차는 여러 역들을 지나 순천역으로 진입한다.
열차 밖으로 나와 열차가 오래 머무르는 동안 바람도 쐬고..
다시 열차에 올라 여수로 향한다.
어느덧 해는 기울어지고 밖은 어두컴컴해지고.
드디어 종착역인 여수역을 앞두고 미평역에 도착했다.
작년에 태풍이 왔을 때 여수행 열차에서 종착역을 앞두고
열차에서 세 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미평역에 내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수역을 코 앞에 두고 해안 철로에서 거센 파도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물로 선로가 갑자기 침수되어 일부 사태도 발생하고..
지나고 보면 열차가 못 빠져나왔으면 열차가 탈선해서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는데 과감하게 침수된 선로를 뚫고 후진하여 나온 것이다.
그 때 수고하셨던 승무원님들이 생각난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여수역에 도착..
여기서 하루밤 묵고 아침 7시에 출발하는 통일호를 타고 나가
경전선에서 부전행 통일호로 갈아탈 예정이다..
일단 찜질방에 묵기로 하고 찾아보았으나 역 주변엔 없었다..
예전에 여행하면서는 무조건 여인숙에 묵었고 그게 편했는데
요새는 가끔 찜질방을 찾게 되고 지금 보니 찜질방이 쉬기에도 편하고
좋은 거 같다.
역 주변에 없어서 터미널까지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여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니 밤늦은 시각이 되고
결국은 택시를 타고 알아본 찜질방에 가지 않고 여수에서 가장 좋다는
찜질방에 갔다..
과연!시설은 최신식이었다..
샤워하고 잠을 자러 출발..
피곤했던지 뒤척뒤척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늑장을 부리다 보니 이미 열차 시간은 늦었고, 7시 45분
열차를 잡기에도 늦어버렸다..
그래도 시간이 있으니까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수서 광주가는 버스이다.
순천역까지는 9시 경에 도착할 듯..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버스는 다행히 무리없이 순천역에 도착해서 순천역을 9시 6뷴에
출발하는 부전행 통일호에 오른다.
열차는 광양을 지나 잠시 후 경상도 땅을 달리기 시작한다.
같은 남쪽이라도 경상도는 좀 더 북적이는 느낌이다.
진주, 마산, 창원 등의 큰 도시를 지나 이제 경부선과 합류를 하기
시작한다.
열차는 오후 2시 20분경 종착역인 부전역에 도착한다.
좀 더 타고 싶으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열차에서 내린다.
부산 사는 후배와 만나 광안리에가서 바닷바람도 쐬고, 경성대 쪽으로
가서 저녁도 먹고 헤어진 후 이제 밤에 청량리로 가는 열차로 제천에서 내려
영주행 통일호로 추전역에 내려서 태백으로 가서......이렇게 저렇게 등등
죽죽 이런 구상을 하고 있는데 어디에 빠뜨린 모양인지 그만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직 반도 못 왔는데 허무해졌다.몸에 힘이 쭉 빠졌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음..
잊어버린 것은 할 수 없지 뭐..
돈은 별로 안 들었지만 이것저것 다 잃어버리니 좀 그랬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리고
부산역으로 와서 창구에 사정을 말하고 철도회원 마일리지로
밤 10시 30분 서울행 표를 끊어서 열차에 올랐다.
힘도 빠지고 그러니 잠이 잘 왔다.
금방 서울이다..
그러고보니 집에 갈 전철비도 없네..
다시 매표소서 사정을 얘기하고 무임권을 끊어 집으로 와서
쿨쿨 잠이 들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다음 여행은 위하여..
카페 게시글
기차여행(전라도)
새벽열차로의 시작...그리고 아쉬운 상경..2.24-26
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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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09 21:5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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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 무임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