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은 여행의 미래다”
여행지의 자연과 주민을 생각하는 양심 여행
글 / 이상미 기자(sangmi@newsone.co.kr)
동남아 리조트의 이면
부담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여행사를 통해 동남아로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패키지로 여행을 가게 되면 좋은 호텔에 머무르며 한국에서와 다름없이 전기를 쓰고 물을 마시며 관광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여행에는 감춰진 다른 얼굴이 있다. 이를테면 각 여행객이 하루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만들고 현지인보다 30배 많은 전기를 쓰고 여행객이 머문 호텔 하나가 인근 다섯 마을이 쓸 물을 소비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또 호텔 세탁실에는 점심시간 10분 외에는 종일 서서 다림질을 하는 여성이 있고, 호텔 밖에는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조상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기고 강제이주 당한 소수부족이 있다.
이는 시민단체 ‘이매진피스’가 발행한 공정여행 가이드북 ‘희망을 여행하라’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타벅스가 제3세계 원두농가를 착취한다는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원두를 생산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듯 우리가 무심코 선택하는 저렴한 패키지여행에서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이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100만원을 소비할 때 현지의 마을에 돌아가는 돈은 고작 1~2만 원뿐으로, 관광의 경제적 이익 대부분이 G7국가에 속한 다국적 여행기업에 돌아간다고 한다. 관광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씩 성장하지만 지역주민들이 여전히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관광객들의 즐거운 여행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힘겨운 노동과 정당하지 못한 임금으로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히말라야를 오를 때, 여행자들의 짐을 들어주는 포터가 그들. 포터들은 여행자들의 파라솔, 벤치, 텐트, 가스통 등 많게는 50kg 족히 넘는 거대한 짐더미를 이고 슬리퍼차림 혹은 맨발로 경사 60도의 가파른 계곡을 오른다.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250~300루피(4~5천원). 거기서 또 고용처의 수수료를 떼고 식사 값을 제하고 나면 열흘 일해서 남는 돈은 10달러 정도다.
자연파괴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에 의하면 109개국의 산호초 군락 중 83%인 90곳이 크루즈 여행으로 파괴됐다. 또 카리브해 연안은 연간 8만2000t에 달하는 쓰레기로 전쟁을 치른다. 동남아 지역에 건설되는 골프장은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골프장 한 곳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살충제는 1500㎏, 물은 6만여 농가에서 쓸 수 있는 양과 맞먹는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주민들은 당장 농업용수는 물론 식수마저 구하기 힘들 게 된다.
동물들도 학대를 받는다. 태국, 네팔 등에서 1만 원에 코끼리를 타고 대자연을 둘러볼 수 있는 코끼리 투어 이면에는 코끼리를 쇠고랑에 묶어두거나 쇠막대로 때리는 등 잔혹하게 사육하고 다루는 조련이 숨어있다. 성매매와 같은 인권유린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편이다. 스리랑카의 Kalutara라는 지역 학생들 100명을 설문한 결과 86명이 첫 성경험을 12~13세에 외국여행객과 가졌다고 답한 사례가 있었다.(리스판서블트래블닷컴 보고) 한국 남성들의 성매매 관광실태는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워낙 성매매 관광도 많이 가지만, 콘돔사용 거부와 미성년자 선호 등의 행위로도 악명이 높다. 현행법상 해외성매매 및 성폭력은 우리나라 법과 현지법에 따라 이중 처벌을 받을 수 있지만 적발 건수는 한 건도 없다.
공정여행 캠페인
‘여행객은 여행하는 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책임여행 개념이 1992년 리우회담에서 제시됐다. 착한 여행이라고도 불리며 최근에는 공정여행으로 자주 불리고 있다.
2001년에 런던의 공정여행사 ‘리스폰서블트래블닷컴’이 처음 설립된 후, ‘슬로트래블’, ‘그린글로브’, ‘에티컬이스케이프’ 등의 여행사와 단체들이 생겼다. 이들 여행사는 자전거 투어, 걷기 투어처럼 이산화탄소 배출을 지양하는 상품이나 여행 수수료의 일정 금액을 그 지역에 기부하는 상품을 가지고 있다.
히말라야 트래킹의 경우 가장 싼 짐꾼을 알선하는 여행사 대신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여행사를 관광객들과 연결해준다. 리조트여행도 거대 체인 리조트 대신 현지 주민이 운영하는 작고 친환경적인 리조트를 소개한다. 또 군사독재 국가 여행 거부와 일회용품 안 쓰기, 비행기 타지 않기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6년에 ‘이매진피스’가 설립되어 공정여행을 알려 왔다. 이매진피스는 여행을 떠날 때 ‘무엇을 보고 먹을 것인가’라는 기초적인 생각 외에 좀 더 깊은 생각을 해보라고 권해온 시민단체다. 지난해와 올해엔 ‘트러블러스맵’과 ‘공감만세’라는 공정여행사가 설립됐다. 이들은 국내외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 판매하고 있다.
트래블러스맵은 지구온난화, 경제적불평등, 사회적 차별 등의 사회적 문제를 여행과 연결시킨다. 종적 다양성 확보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문화다양성을 보존하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또한 대안여행 전문가와 사회적 과제를 함께 해결해나갈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트래블러스맵의 여행 프로그램은 일회용품 사용금지와 이산화탄소 배출 지양을 기본으로 현지의 공정여행사와 연계하여 진행하고 있다. 히말라야 여행은 현지 여성 가이드를 육성하는 네팔의 여행사 ‘쓰리 시스터즈’와 연계, 포터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며 적정한 노동 강도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중국 차마고도는 현지 공정여행사 ‘신투어에코투어리즘’과 연계, 10명 이하 소수인원으로 여행단을 구성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현지숙박시설을 이용한다. 또 수익금의 10%는 지역사회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
‘공감만세’는 “여행은 가는 게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모토 아래 현지인 운영의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면서 걷고, 나무를 심고, 지역축제에 참여한다. 여행 수익금 중 일부는 필리핀 아동의 복지기금으로 쓰인다. 또한 공감만세의 공정여행에 참가하면 유네스코 필리핀 위원회와 국제기구 시트모가 참여하는 공정여행 증명서와 봉사시간을 준다. 공감만세의 공정여행 프로그램은 서울 북촌 투어와 필리핀 문화유산 복원 겸 트레킹 여행 두 가지다.
이 외도 공정여행사들이 있긴 하지만 구호만 내세울 뿐 어디가 공정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국사회의 공정여행 인식은 아직 시작단계다. 한해 출국자가 1200만 명에 이르지만 공정여행을 하는 사람은 0.2%정도다. 그러나 태평양지역관광협회(PATA)가 지난 2월 한국·인도·중국·독일 등 10개국 5050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 응답자의 63%가 ‘현지의 문화와 환경을 보존하는 책임 있는 여행에 여행경비의 25%까지 더 쓸 수 있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나 인터넷으로만 살 수 있던 공정무역커피가 어느새 대형마트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언젠가 한국에서 공정여행이 기존의 먹고 즐기는 여행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도 희망사항만은 아니다.
사진 / 트래블러스맵 제공,
출처 / 뉴스원 2010.12.8 http://www.newsone.co.kr/New/new_org2.php?id=164409&code=59&p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