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들가지 늘어진 강변은 생각만으로도 상쾌하다. 찌는 삼복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가를 찾는다. 그곳에는 버들이 있어 발길을 머물게 하고 버들의 그림자로 물은 푸름을 더한다. 자잘한 가지는 누군가 큰 빗으로 가지런히 빗질을 해 놓은 것 같다.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버들가지의 모습은 한없이 평화롭다. 맑은 물과 빛깔 고운 버들, 게다가 매미소리라도 들리는 오후라면 호수의 서정은 어느 때보다 즐길 만하다.
버들은 세찬 바람에도 꺾이는 법이 없다. 엉클어지지도 않는다. 바람에 몸을 맡긴 녹색의 발이다. 버들의 힘에 순응하는 자태를 보고 옛 선비들은 자신을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그저 거스르지 않고 큰 물결에 이끌려 가는 중용(中庸)의 도를 배웠다.
강변에 늘어진 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차분히 가라앉는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가지 사이로 오리 한 쌍이라도 한가롭게 떠 있을 때 조선의 화가들이 그 진귀한 풍경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민화(民畵)에서도 강변 풍경은 중요한 작품의 소재였다. 강변에는 갈대가 우거지고 하늘을 나는 물새하며 달이라도 떠 있다면 한적한 풍광이 된다.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이용하여 제작된 12세기 고려 청동은입사정병(靑銅銀入絲淨甁)은 우리 겨레의 심미안을 유감없이 드러낸 걸작이다. 버드나무는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예술작품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버드나무가 불교의 자비사상과 결합하여 관음보살로 비유되기도 한다.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언제나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 꽂는 모습이다. 수류관음보살입상(水柳觀音菩薩立像)은 현재 남아 있는 몇 안돼는 고려불화 중 걸작에 꼽힌다. 불교 용구에서는 버들이 불경함이나 향로 등의 장식문양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버드나무의 유순함을 통해 한없이 온화한 관음보살의 성정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민화에서는 버드나무 늘어진 가지 아래 오리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버드나무의 유(柳)는 머문다는 유(留)와 발음이 같다. 게다가 오리의 압(鴨)에서 갑(甲)을 떼어놓고 보면 '첫 번째(甲)에 머물러(留) 있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병풍에 버들과 오리가 그려져 있다면 과거에 장원급제하라는 축원의 뜻이 담겨 있는 셈이다.
또 버드나무 아래 기러기와 원앙을 그리기도 한다. 기러기는 부부가 백년해로(百年偕老) 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혼례상 위에 얹는다. 노부부의 방에 치는 기러기 병풍 노안도(蘆雁圖)가 있다면 노안(蘆雁)의 발음이 노안(老安)과 같으므로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는 축수(祝壽)의 뜻이 된다.
물론 기러기나 원앙, 오리 같은 물새는 수생식물인 갈대 버들과 함께 그려질 때 사실 감이 있다. 수변풍경을 표현하는데 있어 갈대와 버들을 빼고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는가. 버드나무는 꽃이 화려하다거나 빛깔 고운 나무도 아니다. 열매가 크고 먹음직한 관상수는 더욱 아니다. 그저 가느다란 가지에 이파리 몇 장을 갖고 있는 지극히 검소한 나무다.
□ 동양에서는 버들을 미인에 비유
동양에서는 버들을 여인에 비유한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강직하고 지조 있는 선비를 뜻한다면 버드나무는 미인에 비유된다. 세기의 미인이라는 오(吳)의 서시(西施)는 허리가 버들가지처럼 가늘었다고 한다.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버들을 일컬어 "솔은 장대한 기품 때문에 뭇 사람들의 환영(歡迎)을 받고, 매화는 낭만적 기품 때문에 만인의 애상(哀想)을 받고, 버들은 날씬한 가인(佳人)을 연상케 히는 기품이 있어 만인의 사랑(愛)을 받는다."고 했다.
버들은 아무래도 여인의 나무라는데 공감이 간다. 17세기 중국의 문장가 장조(張潮)는 "버들은 만물 가운데서 가장 사람의 마음을 때리며 감상적으로 만든다. 또 버들을 심는 뜻은 매미를 불러들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글인가. 버들이라는 평범한 대상도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장조는 미인의 조건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미인은 꽃 같은 얼굴을 갖고 있어야 하고, 새 같은 목소리에, 달의 혼, 버들가지 같은 몸매, 가을 호수 같은 맑은 아름다움, 경옥(硬玉) 같은 뼈, 눈(雪) 같은 하얀 피부, 시(詩)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인의 조건에 버들가지처럼 가느다란 허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것 같다.
중국 여인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유요(柳腰)라 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가는 허리를 가진 미인의 애교 어린 몸짓을 유태(柳態)라 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버들 하면 여인이 떠오른다. 버들잎 같이 아름다운 눈썹(柳葉眉)을 가진 미인을 최고라 했다. 중국 무용의 특징이라면 긴소매를 나부끼며 조용히 움직이는 무용수의 동작이다. 가느다란 허리에 감기는 부드러운 비단 자락의 펄럭임을 최고의 운치로 여긴다. 그 몸놀림은 살랑대는 버들가지의 녹색 물결 그대로이다. 실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의 일렁임을 유랑(柳浪)이라 했던가.
□ 유년의 추억을 간직한 갯버들
버들의 아름다움은 화창한 봄날 연못가에서 감상할 일이다. 막 피어오르는 버들개지의 보송보송한 털빛이 곱다. 나무 중에서 가장 먼저 물이 올라 검붉은 껍질을 빗기고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버들개지. 버들개지의 새하얀 솜털은 손댈 수 없을 만큼 순결한 관능미가 깃들어 있다. 새끼손가락으로 살며시 다가가면 범할 수 없는 처녀성이 그곳에 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흔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올 것만 같다. "오요요요……." 딸랑딸랑 방울 소리를 울리며 달려올까?
버드나무 하면 봄이 생각난다. 버들피리 소리는 성급한 초동들이 봄을 부르는 소리이다. 물오른 갯버들 가지를 꺾어 손으로 비틀어 목질부를 빼내면 껍질만의 대롱이 남는다. 한쪽을 납작하게 눌러 겉껍질을 손톱만큼 벗기고 불면 '필닐리리 ―' 소리도 상큼한 버들피리가 된다. 그 버들피리의 추억을 찾아주기라도 하듯 종각 지하도에는 가끔씩 버들피리를 파는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버들피리가 마를세라 물그릇에 버들피리를 담가 놓고 마냥 손님을 기다린다. 몇 번인가 지나다 구경을 했지만 버들피리를 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갯버들에 매달린 버들개지가 꾸덕꾸덕 여물어 갈 때쯤이면 날로 먹을 수 있다. 다 익은 것은 섬유질이 생겨 못 먹고 덜 익은 것은 몹시 쓰다. 적당하게 미숙된 것을 따 입에 넣고 씹으면 달착지근하여 먹을 만하다. 북극의 툰드라에 사는 에스키모 인들이 가장 먼저 따먹는 것이 버들개지이다. 강변의 지면에 붙은 낮은 버들에서 몇 개씩 붙은 버들개지를 따 생으로 먹거나 튀김을 해 먹는다. 중요한 비타민 공급원이다.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버들은 동쪽에 심으면 잘 자란다. 서쪽에는 심지 않는 것이 좋다." 고 했다. 버드나무가 양수인 까닭에 볕이 잘 쬐는 장소에 심으라는 것 같다. 수질정화에 뛰어난 식물인 것을 알았는지 옛 정원의 연못가에는 어김없이 왕버들 몇 그루가 서 있다.
수(隨)의 양제(煬帝)는 대운하를 완성하고 운하 양편에 버드나무를 심도록 했다. 버들 한 그루를 심고 가꾸는 사람에게 비단 한 필을 상으로 내렸다고 하니 황제의 버드나무 사랑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버들을 수류(隨柳), 또는 양류(楊柳), 수양(水楊), 수양(垂楊)이라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수나라 양제의 나무라는 뜻에서 파생된 이름들이다. 도연명(陶淵明)은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고 버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남겼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열하일기(熱河日記)》7월 9일자에는 당시의 중국에서는 버드나무를 가루수로 심어 가꾸는 것을 적고 있다. "요동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집들이 빽빽하고, 길의 너비가 수백 보나 되는데 길을 따라 양편에는 모두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었다.(自入 東以來 村間不絶 路廣數百步 沿路兩傍 皆種垂楊)" 연암은 수양버들을 가로수로 심어 보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청의 앞선 정책을 그냥 보고 지나치지 않았다. 연암 같은 실학자들이 있었기에 영정시대의 과학문명을 이 땅에 꽃피울 수 있었다.
【신화·상징】 《삼국유사》에는 복수의 화신으로 나타난다. 신라의 혜통(惠通)이 당나라 공주에 붙은 병마 교룡을 쫓았더니 교룡이 혜통을 원망하여 신라에 가서 많은 인명을 해쳤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간 정공(鄭恭)이 이 소식을 전하자 혜통은 귀국하여 다시 교룡을 쫓아버렸다. 교룡은 정공을 원망하여 버드나무로 변해서 정공의 집 앞에서 자랐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정공은 이 나무를 매우 좋아하였다.
신문왕이 세상을 뜨자 효소왕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길을 닦는데, 이 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이를 베려 하였으나 정공이 한사코 반대하였다. 화가 난 효소왕은 정공을 죽이고 집터를 묻어버렸다. 용은 마침내 정공에게 복수한 뒤 기장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물가 어디서나 잘 자라는 나무로서 줄기찬 생명력을 상징하고 칼처럼 생긴 잎은 장수나 무기를 나타낸다. 학질을 앓고 있을 때 환자의 나이 수만큼 버들잎을 따서 봉투에 넣고 겉봉에 유생원댁입납(柳生員宅入納)이라 써서 큰 길에 버리면 쉽게 낫는다고 믿었다.
불교에서는 대자대비의 관세음보살이 양류관음(楊柳觀音)으로 현신할 때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쥔 모습으로 나타난다. 먼 길을 떠나는 낭군에게도 버들가지를 꺾어주어 보냈는데, 이는 여인의 젊음은 오래가지 않으므로 청춘을 외롭게 보내지 않게 빨리 돌아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