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생 '동갑내기 거포' 김태균(한화)과 이대호(롯데)는 2001년 프로입단 후 정반대의 행보를 걸었다. 김태균은 데뷔 첫해부터 고졸신인 최다인 20홈런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는 등 차세대 거포로 승승장구한 반면 이대호는 투수로 입단했다 타자로 전향하는 등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이제 같은 출발선상에 섰다. 지난 한해 동안 김태균이 거포 본능을 상실하며 '김똑딱'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이대호는 22년만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리그 최고타자로 우뚝 섰다. 이대호는 연봉싸움에서도 1년만에 김태균을 추월했다. 올 시즌부터 김태균과 이대호의 라이벌 경쟁은 더욱 더 본격화 될 조짐이다.
김태균 '독기 품다'김태균은 유력한 '포스트 이승엽' 후보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고졸신인으로 2001년 데뷔한 김태균은 후반기에만 집중적으로 홈런을 몰아치는 등 88경기만에 20홈런을 터뜨리는 등 일찌감치 차세대 거포로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듬해인 2002년 지독한 2년차 징크스에 시달리며 7홈런에 그쳤으나 3년차였던 2003년에 31홈런을 때려내며 차세대 거포의 부활을 알렸다.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이 데뷔 3년만에 32홈런을 기록한 것과 비슷한 행보였다.
이승엽은 2003년을 끝으로 일본에 진출했다. 김태균은 이승엽의 뒤를 이을 유력한 주자였다. '포스트 이승엽'이라는 수식어도 이때쯤 김태균에게 붙기 시작했다. 김태균은 입단 후 줄곧 팀에서 4번타자로 활약했다. 4번타자는 그냥 4번타자가 아니다. 4번타자는 팀에서 가장 잘치고 한방능력이 있어야하며 중요할 때 주자를 홈으로 부를 수 있어야하는 부담감 백배인 자리. 그 부담스러운 4번타자를 김태균은 데뷔 후 6년째 꾸준하게 맡아오고 있다. '포스트 이승엽'으로서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김태균 지난달 20일 3억1000만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하며 2001년 삼성 이승엽(3억원)을 넘어서는 최고연봉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갑내기 라이벌' 롯데 이대호가 24일 연봉 3억2000만원에 계약하며 김태균의 7년차 최고연봉을 한 달 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2001년 프로 입단 후 줄곧 이대호를 압도했던 김태균으로서는 1년 만에 이대호에게 추월당한 셈이다.
김태균은 독을 품었다. 이대호가 라이벌로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불쾌해하는 김태균이다. 비록 지난해에는 이대호에게 뒤졌지만, 누적성적만큼은 자신이 압도적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연봉에서 역전당한 김태균으로서는 독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김태균은 올해부터 다시 930g짜리 방망이를 쓸 예정이다.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함이다. 방망이 무게가 늘어나면 확실히 비거리는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방망이 무게보다 볼에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방망이 조절이 필요하다. 올해 김태균이 거포 본능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여부도 결국 무거운 방망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이는 곧 이대호와의 라이벌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대호 '멈춤은 없다'
이대호는 지난 6년간 김태균에게 뒤졌지만 지난해 대박 활약으로 1년만에 김태균을 따라잡았다. 김태균은 지난해 타율 2할9푼1리-13홈런-73타점으로 비교적 부진했지만, 지난 5년간 연평균 타율 3할1푼2리-20.8홈런-77.8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꾸준함을 과시했다. 반면 이대호의 누적성적은 자신의 지난해 성적은 물론 김태균의 누적성적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이대호의 지난 5년간 누적성적은 연평균 타율 2할6푼1리-10.6홈런-38.8타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대호는 지난 1984년 이만수 이후 22년만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타격(0.336)-홈런(26개)-타점(88개)은 물론 장타율(0.571) 타이틀까지 거머쥐는 등 타격 4관왕을 차지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지난 2001년 프로 입단 후 철저히 김태균에게 눌려왔던 이대호가 1년만에 김태균을 연봉에서 추월한 것이다.
그러나 이대호의 트리플 크라운은 값어치에 비해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소속팀 롯데가 7위에 그쳐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한데다 기록의 질적인 논란까지 더해졌다. 물론 객관적 지표만을 놓고 본다면, 이대호의 트리플 크라운의 가치는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에서 이대호는 가장 독보적인 타자였다. 규모가 큰 사직구장과 빈약한 팀 타선 등까지 고려할 때 이대호의 트리플 크라운은 객관적 기록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다.
이대호의 진화는 비단 다이어트 성공 뿐만이 아니다.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결과였다. 기술적으로는 테이크백 동작이 간결해지면서 투수들의 공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정신적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 욕심을 버리니 공도 방망이 중심에 맞아가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무심타법'을 깨달은 것이었다.
이대호는 김태균에 비해 출발이 늦었고 부침도 많았다. 투수로 입단했다 뒤늦게 타자로 전향한데다 백인천 전 감독과 보이지 않는 불화도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자기계발에 열중하며 김태균을 따라잡았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활약이 이대호의 커리어-하이가 될 것이라고도 말하지만, '타격에 눈을 떴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보인 이대호가 반짝할 것 같지만은 않다. 게다가 이대호는 프로마인드도 투철하다. 이대로 멈추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들이다.
새해부터 삭발머리로 등장하며 주위를 놀래킨 이대호는 정신무장이 되어있다. 지난해 활약이 반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독기 품은 '라이벌' 김태균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질주하겠다는 의지로 중무장한 이대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