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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41 - 현무의 로켓 2
S#1. 강의실 앞
40회 앤딩 중 일부분.
경진, 현무가 가는 걸 보고 있다가 한숨쉬고 어깨 으쓱하고 돌아서는데 바로 앞으로 와서 서는 민재.
경진 : 어 너도 이 수업 들어?
민재 : 대충 해라.
경진 : 뭐?
민재 : 니가 그렇게 떠들어대는 여자의 자존심은 엇다가 박아둔거야? 그리고 너, 아이큐 두자리냐? 싫다는 사람한테 그렇게
매달리면 점점 더 질리지 않겠어? 그 정도 머리도 안 돌아가? 넌 작전이란 것도 없냐? 연애소설 같은 건 안 읽어봤어?
경진 어리둥절해서 민재를 본다.
민재 : 왜. 나하고 이런 말 하는 거 또 자존심 상하냐? 그럼 가서 여자 친구 아무나 붙잡고 좀 물어봐. 물어보고 정신 좀 차리라고.
어? 민 경 진!
S#2. 캠퍼스 일각
경진과 민재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다.
민재는 앞서의 말을 자신이 했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화를 내버린 스스로가 마음에 안들어서 불쾌한 얼굴이고.
경진은 아직은 아무 표정도 드러내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걷다가 경진 문득 멈춰서더니 민재를 바로 본다.
경진 : 그러니까, 너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거냐?
민재 : (말하기 싫지만) 보기가 하도 한심해서 그런다. 뭐냐. 하는 짓이.
경진 : (비시시 미소가 새어나오며) 그게 걱정해주고 있다는 말이잖아.
민재 : 그 선배 맞지? 니가 좋아했다는 남자.
경진 : ...안 가르쳐줘.
민재 : (돌아서 가버리려는데)
경진 : 강현무 선배는 강재호박사의 아들이야.
민재 : (돌아보면... 아직 강재호박사가 누군지 모름)
경진 : 강재호박사는 우리나라 로켓 개발팀에 한사람이고.
민재 : 70년대 나라에서 불러들였다는 연구팀 말이야?
경진 : 맞어. 그 때 불려와서 죽자고 로켓 개발에 매달리다가 어느날 버림을 받았지.
민재 : 버림을 받았다느니 어쩌니.. 그런 말은 좀 과장된 거 아냐? 연구라는 게 하다가 중단될 수도 있고 그리고..
경진 : 버림받았어. 그리고, 강박사님은 몇 년 뒤에 돌아가셨어. 독한 화공재료를 다루면서 폐에 이상이 생겼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대로 가셨지. 그 때 여섯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었어. 바로 강현무 선배야.
민재 : (보다가) 그런데.
경진 : 그런데 뭐.
민재 : 그게 너하고 무슨 상관인데.
경진 : (잠시 말을 할 것인지 망설이다가) 노코멘트.
민재 : (어이없고)
경진 : 현무 선배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서 로켓을 만들고 싶은가봐. 난.. 난 도와주고 싶어.
민재 : ..그렇게 해. 도와주라고. (정말 가려는 생각으로 돌아서지만)
경진 : (민재의 팔을 잡더니) 너도 도와줘.
민재 : 어이 민경진.
경진 : 넌 누구나 다 도와주잖아. 그러니까 날 도와주는 셈치고 현무선배를 도와달라고. 넌 나하고 달라서 얼굴만 디밀어도
남들이 다 믿고 친구해주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어떻게 좀 해줘봐.
민재 : (정말 어이가 없고)
경진 : 응? 응? (조르고 있다)
S#3. 동아리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민재. 문을 쾅 닫는다.
안에 있던 정태와 자현과 대욱. 모두 민재를 본다.
정태 : 그렇게 해서 문이 부서지냐?
민재 : (의자를 거칠게 끌어와 앉더니 비로소 정태를 본다) 넌 언제 일루 와 있었냐?
정태 : 뭐..너하고 경진이하고 중요한 얘기를 할 거 같아서. 피해줬지.
자현 : (뭔가를 부시럭거리며 먹고 있다가) 아참 경진이. 경진이가 탕수육 사준다고 했는데.
대욱 : 에에? 경진 선배가 뭘 사준다고? 자기 돈으로?
자현 : 어. 거 무슨 로켓의 추력을 측정해달라고 했거든.
민재 : 로켓?
자현 : 느네과 선배라는 그 무식한놈 있잖어. 그 치가 돈이 없는지 로드셀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컴퓨터를 이용해서 얻지를 못한대.
그래서 조잡한 멀티메타로 측정을 하는 모양이야. 그래가지곤 제대로 체크를 할 수가 없지.
대욱 : 아니 그래서 그 치의 로켓을 측정해준다는 거야? 탕수육 한점에 팔려가지고?
자현 : 한점이 아니라 한접시는 사주지 않겠냐?
대욱 : 이보십시다. 그 치는 선배를 거의 팰려고 했던 놈이야. 그런데..
정태 : 어이 두 사람. 아무리 그래도 선배를 놓고 이놈 저놈하면 되나?
대욱 : 내가 시방 아주 점잖은 단어로 골라쓰고 있는 중입니다. 형은 저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첨부터 못 봐서 그러는데요..
민재 : (벌떡 일어난다)
모두 : (말이 멈춰져 보면)
민재 : 아주 전교생을 다 끌어들일려고 작정을 했구만. 확실히 지정신이 아니야.
정태 : 내 보기엔 너도 냉정한 상태는 아닌 거 같은데?
민재 : ...내가?
정태 : 그래. 내가 저번에 말했지? 여자친구의 연애사에는 끼어들지 마라. 오해를 사게 될 것이다.
민재, 뭔가 말하려다가 그냥 나가버린다. 다시 한번 문이 쾅 닫긴다.
자현 : (먹던 거 계속 먹으며) 뭔 소리들이여? 한국말로 해봐.
대욱 : 민재형의 여자친구가 연애를 해요? 누군데?
정태 : 내 충고하는데 남의 연애는 그냥 모른척 해. 그게 도와주는 거야. 알겠냐?
S#4. 천막 안(밤)
현무, 스테인레스 그릇에 바인드와 알루미늄 파우더 등의 원료를 넣고 있다.
그 옆에 놓여져있는 여러 기기들.. (전선줄이라든지 어쩐지 위험해보이는 것들로...)
현무, 문득 고개를 든다. 어두워져가고 있다.
현무, 전등불을 켠다. 천막 내부에 대롱대롱 매달린 백열등에 전기불이 들어온다.
현무, 교반기를 찾아 써지오에 꽂는다.
현무, ON 스위치를 켜고 돌아서는 순간, 창백해지는 현무의 얼굴.
S#5. 천막 외부
어둠에 묻혀가던 천막. 순간, 안에서 번쩍 빛이 작열하며 폭발음이 들린다.
S#6. 세미나실
전등불이 들어오며 프로젝트 화면이 하얗게 보인다. 그 앞에 서서 자료들을 챙기고 있는 명환.
이쪽에서 보고 있는 이교수와 중희. 몇 명의 박사과정들과 민재, 정태. 만수 등.. 모두 자료를 챙기면서 이교수를 눈치보는 상태.
분위기가 좋지 않다. (명환이 발표를 엉망으로 하고 난 뒤이다)
이교수 : 명환아.
명환 : 예.
이교수 : 왜 그래.
명환 : ...
이교수 : 오늘 발표, 도대체 너답지가 않잖아. 너 방금 그거 제대로된 결론이라고 내린거니? 그따위 데이터 모아놓고 결론이 나와?
명환 : .....죄송합니다.
이교수 : (아이들에게) 모두 나가봐. 명환이는 좀 남고.
아이들 얼른 일어서서 분분이 입구로 나서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뛰어드는 백곰.
어쩔줄 모르고 이교수를 찾아 달려들며.
백곰 : 얼마나 찾았는지 모릅니다. 교수님. 현무가.. 강현무 학생이.
이교수 : 현무가 뭐요.
백곰 : 사고를 냈습니다.
이교수 : (벌떡 일어서는)
백곰 : 큰 사고는 아닌데.. 그게 그래도 사고라서.. 다쳐가지고..
이교수 : (벌써 문으로 나서며) 어딨어요. 지금. 어딜 얼마나 다친 거에요?
백곰 : (후다닥 따르며) 지금 의무실에 있습니다. 병원엔 죽어도 안간다고 해서 일단 거기다가.. 아이구. 이걸 어쩌지요.
모두 놀라서 보고 있다. 그 중에 민재.
만수 : 내 언제고 이럴 줄 알았어. 자기가 무슨 에디슨이라고 말이야.
중희 : (걱정되어 명환을 보며) 우리 교수님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요. 지도교수님이잖아요.
명환 : (골치가 아픈 듯 주저앉는)
만수 : 정말 이렇게 제자들이 속을 썩이니 우리 교수님 연애할 시간이라도 있겠냐 말이야. 내 맘이 다 아파 죽겠어요.
우리 교수님 이대로 시집도 못가보고 인생을 끝내면 안되는데..
만수, 떠드는 사이로 민재가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런 민재를 보는 정태.
S#7. 인공위성 센터 내 실험실 / 밤
경진이 디스켓 뭉치를 들고 총총 걸어와서 컴퓨터 앞에 앉는데.
서교수 : (자료를 들고 지나가다가) 아직 안 끝났어?
경진 : 데이터 백업이요? 그게 그게...zip-disk로도 500장 분량이나 되놔 서요. ZIP-DISK로 500장이면 용량이 얼마지?...
히야, 오만메가바이트?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금방 끝내겠습니다.
서교수 : 어떻게 자네는 입으로 일을 하나? 그거 시작한지가 언제야?
경진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것이..
연구원 : (저만치에서) 민경진 전화왔는데.
경진 : 보십쇼. 지구상에 절 찾는 인간이 이렇게 많아서 말입니다. 그럼 잠시 전화를 받고 와서 계속하겠습니다.
달려가는 경진을 보며 어쩔수 없다는 듯 웃으며 가는 서교수.
// 경진 수화기를 들어.
경진 : 민경진이 수화기 들었습니다. 누구실까요? ...여어 웬일이야? (웃으며 듣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언제? 얼마나 다쳤는데.
결국 그 놈의 로켓이 터진거야? ..지금 어딨어.
그대로 수화기를 던지더니 달려나간다. 서교수와 연구원이 미처 부르지도 못할 속도다.
S#8. 교내 공중전화 앞
민재, 이미 반응이 없는 수화기를 들어 보다가 놓는다. 착잡하다.
S#9. 의무실 앞 복도
백곰이 이교수를 졸졸 따르며 계속 떠들고 있다.
백곰 : 처음부터 느낌이 안좋았습니다. 그 로켓인지 뭔지 하는 게 결국은 화약을 터뜨려서 날아오르는 거 아닙니까?
그게 바로 미사일이라는 거잖아요. 그쵸? 전쟁무기. 그거요.
이교수 : (빠르게 걸으며) 로켓에 탄두를 달면 미사일이 되고, 과학 탑재 체를 달면 과학 로켓이 되는 거죠.
백곰 : 하여간요. 제가 뭘 압니까. 이런 일은 지도교수님들께서 좀 제대 로 지도를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 캠폴이 학생의 안전을 지키는데도 한계라는 게 있는 겁니다. 제 말 뜻 아시겠지요.
떠드는 백곰과 이교수의 모습이 멀어지고.
S#10. 천막 근처 / 밤
민재 가까이 다가가다가 멈칫 서며 본다.
어두운 천막 앞에서 처장이 안을 기웃거리고 있다.
S#11. 천막 내부
민재가 전깃줄을 연결하고 의자에서 내려선다. (두꺼비집 정도를 손보았다고 해도 될 듯)
민재 : 전기는 별 이상없습니다. 차단장치가 작동을 잘 해줬는데요.
처장, 밝아진 실내를 둘러본다.
검게 그을은 탁자 윗부분. 폭발은 탁자 주변에서만 작게 일어났던 것인 듯. 탁자 위의 그릇들이 깨져있기도 하고..
처장,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파우더 봉지를 들어본다.
처장 : 이게 뭔지 알겠어요?
민재 : (안을 들여다보고) 알루미늄 파우더 같은데요.
처장 : 컴퍼지트 추진제를 사용할 생각이었나보군요. 여기에 KCIO4를 섞게 되면 힘은 좋아져도 그만큼 위험해지지요.
민재 : ...로켓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처장 : 한때 로켓 개발팀에 합류했던 적이 있었어요.
민재 : 그럼 혹시 강현무 선배의 아버님과..
처장 : 강재호 박사를 알아요?
민재 : 좀 들었습니다.
처장 : (딩굴고 있는 의자를 들어 툭툭 털어 앉으며) 강박사는 MIT에서 화공을 연구했었어요. 나라에서 부를 당시엔 AERO-JET란
미국 기업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었지요. 거기가 바로 고체 추진 체를 연구하는 곳이었어요. 내가 강박사를 처음 만난 게
그러니까.. (기억을 더듬으며) 1974년도였나.. 그 때 강박사는 결혼한지 몇 개월 되지도 않는 신혼이었지요.
(옆의 책상에 먼지를 툭툭 털며 추억에 잠기는)
민재 : (조심스러워 보다가) 그 로켓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이 나중에 나라에서 버림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처장 : (쓸쓸하게 허허 웃더니) 나야 초반에 잠시 같이 있다가 먼저 나와버렸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어요.
민재 : ??
처장 : 그 때 난 수학공식 하나에 미쳐있어서 로켓이고 뭐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할까. 객관적으로 보자면 비애국자였지. 하하.
그때 모여들었던 연구원들이 제각각 외국으로 유학을 나가게 됐어요.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각자 나가서
기술을 배워오라는 거였지요. 그때 강박사는 맥도널 더글러스사로 갔지 아마.. 난 그냥 남았어요.
그저 연구실에 빨리 돌아가서 공식하고 씨름할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나는 이렇게 안정되게 살아가고.
그 친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추억을 떨치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여긴 하루 빨리 철거를 해야겠군요.
민재 : ...그럼 현무선배의 연구는 중지시키실 겁니까?
처장 : 그 어떤 연구도 생명보다 중요하진 않아요. 특히 내 학생들의 생명은 나에겐 노벨상보다 중요하지요.
이런 식으로 외딴 곳에서 혼자 위험한 연구를 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처장 결론을 내린 듯 일어선다. 민재, 안타까운 생각에 흩어진 주변을 둘러본다.
S#12. 의무실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한쪽 뺨에도 붕대를 붙인 현무가 침대에 일어나 앉아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이교수. 현무를 살펴보다가.
이교수 : 다른덴 괜찮은거야? 정말 병원에 안가봐도 되겠어?
현무 : 약간 화상을 입고 긁힌 정돕니다. (이교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다)
이교수 : ...니가 사고를 낸 천막. 폐쇄를 시키면 어떻게 할래. 학교 안에서 다시는 니가 혼자 연구할 장소를 주지 않는다면.
현무 : ..학교 밖에서 다른 장소를 찾아봐야겠지요.
이교수 : (예상했던 대답이다) 강제로 너의 연구를 중지시킨다면.
현무 : (어이없다는 듯 보더니) 어떻게 강제로 중지시키실 건데요. 전 이제까지 연구비를 받아온 것도 아니고
기술자문을 구한 적도 없습니다.
이교수 : 선생이라는 자격으로 명령을 한다면. 말 안들어줄거니?
현무 : ...자퇴서를 내겠습니다.
이교수 : 너 정말 선생을 화나게 만드는 학생이구나. (그렇게 화나는 표정은 아니지만) ..너의 그런 태도.. 돌아가신 아버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현무 : 돌아가신 아버님 말고, 저도 이제는 기뻐야되지 않겠습니까?
이교수 : ..무슨 뜻이야.
현무 : 전 원래 과학같은 거 취미없습니다. 수학이고 과학이고 한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구요.
(너무 격하게 말고, 그저 덤덤하게 말해버리는 기분) 그런데 아버지 뜻에 따라서 과학고에 들어가고 이 대학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로켓을 연구했구요.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요.
이교수 : (보다가..) 내가 아는 너는 몇 년동안 밤을 새며 혼자 로켓을 연구하고 재료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도 서슴치 않았어.
그런 게 단지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할 수 있는 건가?
현무 : 아버진 로켓을 하나 개발하고는 그 로켓의 이름을 따서 내 이름까지 바꿨던 분입니다. 나 혼자 결심한 게 있습니다.
고도 1킬로미터만 날릴 겁니다. 그것만 성공하면, 이까짓 기술이고 과학이고 다신 쳐다보지도 않을거에요.
이교수 : 그럼.. 뭘 할건데.
현무 : (잠깐 망설이더니) 원래는 철학이나.. 사학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교수 : 고도 일킬로미터까지 로켓을 올릴 수만 있다면, 이 학교 그만두고 새로 철학이나 사학을 공부하겠다?
이교수 대답을 기다리며 현무를 쳐다본다.
현무, 시선을 피해서 고집스레 앞의 벽만 보고 있다.
S#13. 의무실 밖 복도
경진이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서 안의 얘기를 엿듣고 있다. 문이 조금 열려있다.
경진은 열린 문 틈으로 귀를 기울이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잠시 후 현무의 목소리가 들려나온다.
현무 : (E) ...고도 일킬로면 만족합니다. 그 정도면 먼저 가버린 아버지에게 할만큼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진 문득, 안고 있던 가방을 뒤지더니 복사뭉치를 꺼낸다. 강박사의 일기를 A4용지에 복사한 두툼한 뭉치.
겉장을 들춰 첫 페이지를 열어본다. 거기에는 큼직하고 굵은 글씨체로 강박사의 필체가 씌어져 있다.
[사랑하는 아들 현무에게. 언젠가 내가 멈춰야했던 이 길을 이어서 나아가주길 바라며...]
강재호 : (E) 사랑하는 아들 현무에게. 언젠가 내가 멈춰야했던 이 길을 이어서 나아가주길 바라며...
S#14. 천막 외경 / 밤
어두운 밤, 천막 안에서는 전등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S#15. 천막 내부
민재가 혼자 남아 대충 폭발 흔적들을 정리하고 있다.
깨진 기기들을 쓰레기통에 담고, 구석에서 빗자루 하나를 찾아내서 탁자 위를 쓸어내기도 하고.. 그 위로..
강재호 : (E) 맥도널 더글러스사와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들의 요구액수는 무려 2천만달러. 우리는 일단 1단계 사업비를
1백80만 달러로 계약했다. 열명의 연구팀이 엘에이의 이곳 회사로 옮겨왔다. 6개월동안 기초조사 방법만 익힌다는
조건이다.
S#16. 건물 내 / 밤
비어있는 복도.
주욱 팬해서 보면 한쪽의 휴게의자에 앉은 경진이 밖에서 새어들어오는 불빛으로 강박사의 일기 복사본을 읽고 있다.
강재호 : (E 계속) MD사는 명확한 자료를 주지 않는다. 우리 개발팀은 접하는 모든 설계자료를 머리에 넣고 숙소로 돌아온다.
밤마다 지새우며 낮동안 머리 속에 외워두었던 설계도를 기록하는 것이다.
아침이면 모두 충혈된 눈으로 서로 말없이 굳게 손을 잡아준다.
S#17. 천막 내부
정리를 끝낸 민재가 내부를 둘러본다.
강재호 : (E) 오랜만에 전화를 통해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년 설날에는 아내와 함께 있을 수 있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옆 방의 이박사는 며칠째 계속되는 위경련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밤을 새고 있다.
(위의 대사가 끝난 뒤 잠시 여운이 있고)
민재 전등불을 끈다. 실내는 어둠에 잠긴다.
천막을 나서는 민재. 민재의 등 뒤로 천막의 입구가 닫긴다.
S#18. 캠퍼스 / 낮
여늬 때와 다름없이 오가는 학생들..수업이 끝나고 나서거나 들어서는 학생들..
S#19. 박교수 연구실 / 낮
테이블에 둘러앉은 지원과 진수, 남희가 모두 한심해서 보고 있는 곳.
박교수가 자기 책상 앞 컴퓨터에 앉아 모니터의 내용에 완전히 빠져서 검색을 해나가고 있다.
남희 : (기다리다 못해서) 교수님.
박교수 : 어. (대답은 하는데 정신은 모니터 속에)
남희 : 오늘 미팅 취소할까요?
박교수 : ...
남희 : 더 기다려요?
박교수 : ...
남희 : (아이들을 보며)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저러시다가 또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시거든.
지원 : (손목시계를 보는)
진수 : (집드라이브를 남희에게 넘겨주며) 그동안 정리한 자료들은 여기 집드라이브에 다 넣어놨어요.
우선 이걸 검토해보시라고 하고.. 오늘은 그냥 가보는게 좋을 거 같은데요.
남희 : 그럴까? (내키지 않아서 집드라이브를 받는데)
박교수 : 아하.. 이게 이렇게 된 얘기였구만 그래. (혼자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있다가) 우리 로켓이 왜 사정거리 180킬로에서
발목이 잡힌 줄 알어? 모르지? 몰랐을거야.
남희 : 이번엔 또 로켓이에요? 저번주까진 개미집연구를 하셨잖아요. 개미의 행태를 보면 인공지능의 기초가 보인다 그러셨든가..
박교수 : (남희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일어서서 서성거리며) 우리로켓 개발팀이 첨에는 미국의 MD사에서 기초 설계를 배웠다고
해요. 근데 마지막까지 다 배울려니까 걔들이 돈을 엄청 달라고 하는거야. 그래가지고, 중간까지만 배우고는 다 돌아와서
독자적으로 개발을 시작한거야. 대단하지?
남희 : (포기했다)
박교수 : 그런데 문제는 추진제를 만드는 제조시설을 확보하는 거였어. 추진제 알지? 로켓의 동력 말이야. 이걸 구하느라고
미국이니 프랑스니 헤메고 다닐 때,.. 왜 헤멨느냐. 아무도 안주니까. 그러던 어느날 록히드사에서 추진제 공장을
처분한다는 소식을 들은거야.
진수 : 이번주 말에 이 프로그램을 브리핑하셔야 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검토해보지 않아도 될까요?
박교수 : 글세 검토는 해봐야되는데.. 그래가지고 얼씨구나 이게 웬일이냐. 그 공장을 통째로 가져왔어요.
물론 걔들이 장비는 팔았지만 기술은 안 팔았지. 그러나 우리가 누구냐. 이걸 또 우리끼리 기술개발을 한것이야.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이 부분, 내가 읽어줄게. 당시 개발팀의 박사 한분이 증언을 한 거거든.
(모니터를 읽는) 미합동군사고문단 관계자들은 우리의 추진제 시험광경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검은 연기가 나지 않는
최신형 추진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비를 넘겨줄 때 기술은 넘겨주지 않아서 우리의 독자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크으.. (혼자 감격한다)
진수 : (남희를 향해 작은 소리로) 더 기다려야 될까요?
남희 : (손짓으로 좀 더 참으라고)
박교수 : 바로 그때 미국은 일부 기술을 넘겨주면서 사정거리를 180킬로 미터로 제한하라는 요구를 한 것이야.
그래서 문제의 '180킬로미터 제한합의서'를 써주고 만거지.
지원 : (좀 흥미가 있어서 듣고 있다가) 거부할 수는 없었나요?
박교수 : 뭐 그때는 아예 개발을 못하게 막히는 거보다는 그런 조건을 들어주고 개발을 계속하는게 낫다 싶었겠지.
그게 20년이 넘어서 오늘까지 올 줄 누가 알았나.
지원 : 솔직히 이해가 안되네요. 당시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치룬 나라 잖아요. 그런 일본은 미국하고 그런 협정을 안했었나요?
박교수 : (멈칫하더니) 잘 모르겠는데.. (부지런히 컴퓨터 앞으로 돌아간다) 잠시만 기다려봐. 정확한 내용을 알아보고 나서
가르쳐줄게.
남희 : (한숨 쉬더니 아이들에게) 오늘은 그만 헤어지자. 내일 이 시간에 괜찮겠니?
S#20. 석학의 집
미순이 신문을 읽고 있고, 그 옆에는 진영과 마이클이 서로 뭔가를 속닥거리며 웃고 있고.
자현과 대욱은 설계도를 좌악 펴놓고 뭔가를 열심히 고심하고 있고.
미순 : 미국과 일본은 탄도 미사일을 공동 개발키로 합의했다고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이 보도했다.
양국은 향후 5-6년에 걸쳐 탄두, 로켓 엔진 등 4개 부문에서 공동 작업을 벌이며 수주 내로 합의 각서를 교환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 내리곤) 어이 마이클. 이 미사일이라는 건 우리보다 일본이 앞서있냐?
마이클 : 자현누나. 대답해줘.
자현 : (설계도를 보며) 일본이야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로켓을 가진 나라고 우리는 기껏해야 서울 대전도 못가는
로켓밖에는 못 만들고. 잽이 안되죠.
미순 : 아니 니들 그동안 뭐하고 있었던거야. 추자현 너도 맨날 매연가스 내뿜는 자동차나 만지고 있지 말고,
미사일같은 걸 좀 연구해 봐라. 어? 이건 나라체면이 말이 아니잖어어.
대욱 : 어이구 그게 뭐 기술이 있다고 맘대로 개발할 수 있는 겁니까?
미순 : 기술이 있는데 왜 못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겨?
대욱 : 글세 그거 못하게 하는 법이 있다구요. 법이요. 법.
미순 : (진영을 보더니) 이것들이 이젠 별 핑계를 다 대고 있구만. 할래면 할 수 있는데 못하게 해서 못한다 이거냐?
진영 : 차암. 언니는 그렇게 뭘 모르세요.
미순 : 내가 뭘 몰라.
진영 : 아유 설명하자면 길어요. 그냥 다음 기사 읽으세요.
미순 : (삐지는데)
대욱 : (자현에게) 그거 협상해서 거릴 늘렸다고 하지 않았나? 군사용은 300킬로미터. 민간용은 거리 무제한.
자현 : 단 조건이 있지. 연구과정과 기술을 모두 다 미국에 공개할 것. 그래서 협상 중이랜다.
대욱 : ...진짜 자존심 팍팍 상하는구만.
미순 : (버럭) 마이클.
마이클 : (깜짝 놀라서) 예스 맴.
미순 : 얘들이 하는 소리 뭔 말인지 알어 몰라.
마이클 : 나 몰라요. 아직 안 배웠어요.
미순 : 너 앞치마 벗고 도서관에 가. 인석은 그딴 것도 모르면서 맨날 여자애랑 히히덕거리기나 하고 말야.
진영이 너도 얼릉 일어나.
진영 : 아이구 모르면 그냥 조용히 가르쳐달라고 하세요. 가르쳐드려요 말아요.
미순 : (비죽해서 보다가) 시작해봐.
진영 : 지금부터 20년도 더 전에요. 우리하고 미국이 협정을 맺은 게 있는데요. 그게 바로 로켓에 대한거거든요.
미순 : 로켓? 미사일이 아니고?
진영 : 으유.. (답답해 죽겠다)
S#21. 건물 복도 / 낮
민재와 정태가 걸어오고 있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는 중.
민재 시계를 보며.
민재 : 저녁을 먹자니 시간이 이르고, 참자니 배고프고 그러네.
정태 : 점심 안 먹었어?
민재 : 아마 안 먹었을걸.
정태 : 나도 아마 안먹은 거 같은데. 나갈래?
민재 : 그럴까. 자장면?
정태 : 마. 면 갖고 되냐. 밥을 먹어야지.
그러다가 정태 멈칫 선다. 민재도 정태가 보는 곳을 보면.
저 앞에 서교수와 지원이 함께 걸어오고 있다. 둘,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서교수 : (정태를 보고) 어이구 마침 잘 만났네. 두 번째 비디오 편집이 끝났다고 해서 보러 가는 중이야. 같이 가지.
정태 : 아. 예.
서교수 : (걸음을 멈추고) 아 민경진 못 봤나?
정태 : 경진이요? (민재를 보며) 못 봤냐?
민재 : 아니. (서교수에게) 찾아보겠습니다.
서교수 : 오늘 하루종일 볼 수가 없네. 만나거든 이 말 좀 전해줘. 백업을 다 해놓고 사라진 건 좋은데.
밤에 졸면서 한 모양인지 몇 개를 빠뜨렸어. 당장 달려와서 수정해 놓으라고 말야.
민재 : 알겠습니다.
서교수 : (지나쳐가며) 오늘 중으로 해놓으라고 해줘.
민재 : 예.
정태, 민재를 툭 쳐주고 서교수쪽으로 따라 붙는다.
민재, 혼자 남겨져서 잠시 하릴없이 서있다.
S#22. 건물 내 로비 일각
앞서가는 서교수, 그 뒤를 나란히 따라가는 정태와 지원.
저 앞의 서교수가 다른 교수를 만나서 뭔가 반갑게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뒤따르던 정태와 지원이 나란히 서서 기다린다. 그렇게 서서 기다리다가, 각각 자기 앞 서교수 쪽을 보는 자세로.
정태 : (힐끗 지원을 보고는) 그렇게 입고 안 춥냐?
지원 : 기온이 갑자기 내려갔네.
정태 : (자기 옷을 내려다보지만, 스웨터라서 벗어주기는 좀 난감하다)
지원 : (여전히 앞을 보는 자세로 좀 미소가 스치며) 옷을 빌려줄거면 하지 마. 안 입을거야.
정태 : ...왜.
지원 : (돌아보는)
정태 : (앞을 보는 자세) 왜.. 안 입을건데.
지원 : (다시 앞을 보며) 남을 춥게 하면서 내가 따뜻해지고 싶지는 않어.
정태 : ...너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어. 사람들중에는 말이야. 몸이 편한 거 보다 마음이 편한 쪽이 더 만족스러운 사람도 많어.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기분 좋은거지.
지원 : 받는 쪽의 마음이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
정태 : 흠.. (생각해보는) 그건 많이 받아보질 못해서 그런 거 아닐까. 남의 마음을 받는 것도 연습이 필요할거야. 조금씩 연습해봐.
지원, 그런 말을 하는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는 여전히 서교수 쪽만 보고 있다.
저 앞의 서교수는 다른 교수와 이야기가 끝났는지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고 있다.
지원 : 그 책, 도서관에서 찾았어.
정태 : (보면)
지원 : 니가 우리별을 통해서 들려줬던 거. 임철우님의 책.
지원, 서교수를 따라 가기 시작한다.
정태, 멈춰서 있다가 씨익 웃더니 그 뒤를 따른다.
S#23. 노천극장 /
추워진 날씨 속의 노천극장은 텅 비어있다. 계단도. 무대도.
비어있는 공간을 둘러보는 민재. 경진은 보이지 않는다.
민재, 추운 듯 손을 비비고 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다음엔 어디를 찾아볼까..하다가 문득 고개를 든다.
S#24. 천막 앞
백곰이 천막 안에서 박스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앞에 텅 놓는다.
그 앞에는 이미 몇 개의 박스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서, 현무의 로켓 재료며 기기들이 담겨져 있다.
아직 팔에 붕대를 감은 현무, 옆에 우두커니 서있고. 그 뒤쯤에 경진이 서서 보고 있다.
백곰 손을 탁탁 털더니..
백곰 :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높으신 분의 명령이니까 일단 이 천막은 문 닫고 그리고 이 박스들은 어디로 가져갈거냐.
기숙사방은 안돼. 왜? 위험하니까.
현무 : 제가 알아서 할게요.
백곰 : 내가 옮겨다 줄게. 어디로 옮겨줄까. 내가 캠폴차루다가 안전하게 배달해주마. 그리고 그곳이 어딘지
내가 확실히 인지해놔야겠다 이말이지.
현무 : (아주 기분이 나쁘다. 묵묵이 서있는데)
경진 : (눈치보다가 나서며) 제가 도울거에요. 어디로 어떻게 옮겼는지 제가 나중에 상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럼 되죠?
백곰 : 아니 글세 이왕이면 캠폴차루다가..
경진 : (백곰의 팔을 잡아 끌어가며) 아이구 아저씨두 생각을 해보세요. 살던 집이 철거를 당했는데, 어디로 이사갈건지 옆에서
감시까지 한다고 해봐요. 거 기분 좋겠어요?
백곰 : 임마. 내가 시청에 철거반이냐? 난 어디까지나..
경진 : 알아요. 안다구요. 그러니까..
경진이 백곰을 끌어가고 현무 혼자 남았다. 쭈그리고 앉아 상자 위로 비죽이 나와있는 부속을 잘 챙겨넣는다.
잠시 후, 경진의 손이 불쑥 들어오더니 상자를 끙차 든다.
경진 : 자 갑시다.
현무 : (찡그려 보는)
경진 : 내가요. 이럴 줄 알고 기가 막힌 장소를 하나 봐놨거든요. 어딘가하면 노천극장 뒤에 있는 창곤데요.
거기 조명기구니 뭐니 가득 차있어서 뭐 연구를 할만한 곳은 못되지만요. 이 정도 물건은 보관해둘만 해요.
내가 그 창고의 열쇠까지 얻어 왔다는 거 아닙니까.
현무 : 그거 내려놔.
경진 : 아이구 미안해할 거 없어요. 남자도 팔이 다치면 여자한테 도움도 받고 그럴 수 있는거지.
선배는 거기 가벼운거나 하나 들고 따라와요. (돌아서는데)
현무 : (성큼 다가서더니 거칠게 경진이 들고있는 박스를 뺏어서 내려놓는다. 팔이 아픈듯..)
경진 : 아 진짜 까다롭게 구네. 한달에 한번씩 여자한테 실연당하고 살았어요? 어째 그리 빡빡하게 굴어요?
// 천막이 있는 코너를 돌아오던 민재, 둘을 보고 선다. 마침 들려오는 현무의 거친 목소리.
현무 : (E) 너 머리가 안 돌아가는거냐. 아니면 악취미를 가진거냐. 내가 말했지. 옆에서 얼쩡대지 말라고.
민재의 시선으로 보이는 곳에 경진과 현무가 마주서 있다.
경진이 씩씩하게 웃음기를 잃지 않고 말하고 있다.
경진 : 그래서 나도 말했죠.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그리고 다시 왔습니다. 이렇게.
현무 : 너 이름이 뭐라고 했어.
경진 : 민경진입니다. 섭섭하네요. 이름 정도는 좀 외워주세요.
// 다시 경진네들 가까운 쪽. 현무 성큼 다가서 경진의 바로 앞에 서더니 낮은 목소리.
현무 : 너 아주 수상해. 그래서 알아봤어. 너 민성재박사 딸이지.
경진 : (일순 웃음기가 가신다)
현무 : 너 바보냐.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느네 아버지 빚이라도 갚겠다는 거야? 효녀 심청이 하냐?
경진 : (굳어서 돌아 두어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서더니) 인간성 진짜 드럽네. 그런건 알아도 모른 척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래.
온몸에 기브스할 때까지 혼자 잘해봐라. 화약도 하나 섞을 줄 모르면서 무슨 강박사 아들이냐. 모르면 배우기라도 해야지.
평생 혼자 도를 닦아봐라. 아이구 로켓 좋아하네. 꼬리연이나 만들어 날리시지. 연은 만들줄 아냐?
경진, 화가 나서 퍽퍽 걸어오다가 앞에 우뚝 서있는 민재를 본다. 민재를 툭 치며 지나쳐서 그대로 가버린다.
민재, 현무를 본다. 현무는 상자만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다.
S#25. 캠퍼스 일각
민재 어슬렁거리며 걸어와 본다. 저만치에 경진이 등을 보이며 앉아있다.
민재, 다가서서 경진이 옆에 반대방향으로 앉는다. 슬쩍 경진을 보면, 혼자 훌쩍거리며 울고 있다.
민재 : 혼자 있고 싶니? 나중에 올까?
경진 : (울며) 10초만 기다려. 10초만 더 울면 될거 같애.
민재 기다린다.
경진 훌쩍거리며 울다가 자기 주머니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민재, 자기 주머니에서 휴대용 크리넥스를 꺼내 한 장 빼준다.
경진 받아서 코를 풀더니 다시 손을 내민다. 민재, 한 장 더 빼준다.
경진, 닦고 심호흡을 몇번 하더니 겨우 흐느낌을 멈춘다. 후우... 한숨을 쉬고는.. 힘이 없어서.
경진 : 넌 어떻게 그럴 때만 나타나니?
민재 : 내가 어떨 때 나타나는데.
경진 : 내가 완전히 밑바닥에 있을 때.
민재 : (웃고) 알긴 아네. 왜 그렇게 밑바닥에서 헤메구 그래? 천하의 민경진이 남자 앞에서 절절매구 말이야.
경진 : 그럴 이유가 있어.
민재 : 그 이유가 뭔데.
경진 : 말하기 싫어.
민재 : (잠시 침묵하다가) 뭐.. 내가 간섭할 일이 아닌진 모르겠지만 전에부터 널 보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경진 : 좋은 말 아니면 하지 마.
민재 : 너 말야. 가끔은 자기 자신을 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게 어때.
경진 : (묵묵히..)
민재 : 남들이 뭐래도 상관없어.. 뭐 그런 식으로 사는 건 좋은데 최소한 내 자신한테는 대접받고 살아야 되는 거 아닌가.
경진 : ....
민재 : 내가 잘 모르면서 쓸데없는 말을 하는거냐?
경진 : (웃지도 않고) 너무 다정하게 그런 말을 하니까 또 울고 싶어진다야.
민재 : 그럼 화제를 돌려서.. 서교수님이 너 찾으셨어. 백업해 놓은 것 중에 빠진 게 있다든데?
경진 : 역시 울고 싶어.
민재 : 너하고 현무선배, 정말로 무슨 관계야. 아까 얼핏 듣자니까 아버지 얘기가 나오고 그러든데.
경진 : ....
민재 : 말하기 싫어? 그럼 관두고.
경진 : (가방을 열더니 부시럭거리며 뭔가를 꺼낸다. 복사본 강박사 일기다. 의자 위로 다리를 올려 돌아앉더니
나란히 앉은 자세가 된 민재에게 건네준다)
민재 : 이게 뭔데.
경진 : 강박사님 일기.
민재 : 강박사라면... (놀라서) 뭐어?
경진 : 현무 선배가 감춰놓은 거 몰래 훔쳐서 복사해놓은거야.
민재 : (어이가 없다) 너.. 지 정신이냐?
경진 : 난 다 읽어봤어. 너 갖고 가서 읽어봐.
민재 : 일기라며. 그럼 현무 선배에게 이건 아버지의 유물이야.
경진 : 알어. 그러니까 몰래 읽어. 들키지 말고.
민재 :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는다) 어이 민경진.
경진 : 그냥 아버지의 유물이 아니야. 그건.. 우리가 다 읽어봐야 되는 거야. 나같음 책으로 출판할거야.
민재 : (그제야 조심스레 자기 손에 들린 복사본의 표지를 내려다본다)
경진 : 거기 보면 처음 부분에 강박사가 스카웃되는 부분이 있을거야. 강박사를 스카웃한 사람, 내 아버지였어.
민재 : (보는)
경진 : 아버진 그런 식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 스카웃해놓고 그리고 당신은 빠졌어. 왜 빠졌는지는 내가 알어.
바로 그 때 미국 대학에서 너무 좋은 조건으로 모시러 왔거든.
민재 : ...그거였니? 그래서 너, 현무선배를..
경진 : 아들이 있단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 학교에 다니는 줄은 몰랐어. 이번에 처음 알았어. (말이 없다)
민재 : (기웃해서 경진의 기색을 살핀다)
경진 : (기운내듯 고개를 들더니)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야. 아버지도 그 땐 이렇게 될 줄 모르셨는걸 뭐.
그렇지만.. 두고 두고 말씀하셨어. ...죄책감을 느낀다고.
민재 뭐라 해줄 말이 없는데.
경진 벌떡 일어서더니 두 팔을 들어 팔운동을 기운차게 하고. 가방을 들어 멘다.
경진 : 울었더니 배고프다. 난 밥먹으러 갈래. 나중에 봐.
씩씩한 듯이 걸어가는 경진의 뒷모습. 바라보던 민재, 손에 들린 복사본을 내려다본다.
S#26. 기숙사 외경 / 밤
그 중의 한 방에 불이 꺼진다.
S#27. 정태/ 민재의 방
불이 꺼져 있고. 둘 다 각자 자기의 침대에 누워있고. 잠시 후 민재가 살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는 정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책상 쪽으로 가더니 스탠드 불을 켠다. 가방에서 복사본 일기를 꺼낸다.
안그래도 도둑질하는 듯한 기분이라 불안해하며 의자에 앉는데
의자가 삐걱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정태를 본다. 정태는 돌아눕는 듯 하더니 그대로 잔다.
민재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긴다. 앞은 주루루 넘기다가 한곳에 멈춘다.
강재호 : (E) 78년 9월 26일. 마침내 우리 로켓의 공개시사회가 열렸다. 초읽기가 시작되고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시험장을 압도하며 우리의 로켓이 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후 군산 앞바다 표적에 명중했다는 것이 확인되자
감격의 환성이 시험장을 뒤덮었다.
S#28. 밤/ 캠퍼스
민재가 가방을 둘러매고 걸어오고 있다.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밤.
강재호 : (E) 우리 연구원들은 서로 부등켜안고 울었다. 북받치는 울음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 미사일 생산국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만든 로켓은 우리의 평화를 지켜 줄 것이고,
머지않은 그날, 우리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것이다. 이건 우리의 것이다.
S#29. 이교수 랩 / 밤
들어서는 민재, 보면. 명환이 혼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가 돌아본다.
명환 : 웬일이야. 이 밤중에.
민재 : 잠이 안와서요. 선배님은 아직 안들어가셨어요?
명환 : 어. 아무래도 오늘 밤 자기는 글른 거 같은데. (다시 작업에 열중하는)
민재 자기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리고 컴퓨터를 부팅시키며 슬그머니 명환을 다시 돌아본다.
민재 :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명환 : (작업하며) 왜, 시뮬레이션이 잘 안돌아가?
민재 : 선배님은 왜 하필 이 길을 택했어요?
명환 : (뜻밖의 질문이라 작업하던 손을 놓고 돌아보더니) 뭐야. 뒤늦게 사춘기라도 온거야?
민재 : 그냥요. 솔직히 별로 빛나는 직업은 아니잖아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명환 : 돈 많이 벌고. 남들이 알아주려면 운동선수가 되는 게 빠를걸. 골프선수를 하든가. 야구 선수를 하든가..
(웃고) 하긴 그것도 어디 쉽겠냐.
민재 : 이 문제 좀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 있어서요. 나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생각해보니까 답이 안나오네요.
명환 : 글세.. 뭐 멋진 대답도 많겠지만.. 사실은 이게 제일 재미있어서 아닐까.
민재 : 재미..요?
명환 : 넌 안그러냐? 죽자고 안나오던 결과가 나올 때, 절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게 보일 때. 그래서 내 손으로 뭔가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때.. 재밌잖아. 이렇게 재미있는 건 또 없을걸.
민재 : 그런..가요.
민재 어쩐지 따뜻한 기분이 되는데.. 요란한 소리가 나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만수와 중희가 들어선다.
만수는 손에 양념통닭봉지를 들고 있다.
만수 : 백만인의 영양식. 양념통닭이 왔습니다. 어라 이민재 넌 왜 여기 있어. 이거 삼인분도 아슬아슬해 임마.
중희 : (만수를 퍽 치며) 야야. 통닭 기다리면서 일인분 벌써 해치우고 그런 소리가 나오냐.
만수 : 에헤... (명환에게 이르는) 중희선배는요. 고새 맥주 1000씨씨 꼴깍. 예? 홀라당 꼴깍. 밤샐 사람이 1000씨씨나.. 꼴깍꼴깍.
중희가 만수를 잡아채가고 시끄러운데 명환이 테이블로 다가앉으며.
명환 : 민재 너도 붙어. 먹고 기운 내서 밤새 또 싸워보자구.
민재 : 예.
민재 다가앉아 명환과 함께 통닭봉지를 풀며 그들을 본다.
만수와 중희는 투닥거리다가 책상 위의 자료를 흩어놓고는.
만수 : 어어. 이건 고의야. 정만수 필생의 역작을 이렇게 쓰레기 취급했 어어..
중희 : 아이구 임마. 계산기 두들겨서 계산 좀 해놓은 거 가지고 무슨 필생이냐. 필생은..
민재 웃으며 보고 있다.
S#30. 아침 학생처 앞 주차장
처장의 차가 들어와 선다. 처장이 내리고 입구 쪽으로 가는데 입구에서 기다리던 민재가 얼른 달려와 인사를 한다.
민재 : 안녕하십니까.
처장 : 어어. 그래요. 좋은 아침이에요. 웬일이지. 날 기다렸나?
민재 :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처장 : 무슨 일일까. 여기서 얘길 할까요. 아니면 안에 들어갈래요?
민재 : 강현무 선배의 일입니다. 그 선배가 연구하는 장소에 대해선데요.
처장 : 호오.. 그 천막을 다시 사용하게 해달라.. 그런 문제라면 더 얘기할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
민재 : 처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을 생각해봤는데요.
처장 : (보는)
S#31. 동아리방 / 낮
자현이 병석을 데리고 들어선다. 안에는 경진과 민재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가 돌아본다. 어서 와. 등등 인사하고.
자현 : 자아. 응원군 델구 왔다. 그 이름도 빛나는 양병석. 내가 턱걸이로 B하고 C 받았던 연소공학과 제트추진기관을
가비얍게 A 먹은 우수생이지.
병석 : 밥 먹고 졸다가 얼결에 끌려왔어. 무슨 일이야?
경진 : 사실은 로켓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필요하거든.
병석 : 로켓?
자현 : 아아. 깊이 알려고 들지 마라. 넌 그냥 내 옆에 있어주면 돼.
병석 : 글세 내가 왜 니 옆에 있어줘야 되냐고.
자현 : (흐흐흐 기분이 좋아서) 무지하게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말이지. 너하고 나는 그저 분위기 파악만 하고 있다가,
공짜로 로켓을 하나 만들어보면 된다 이거지. 야야 너도 로켓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지? 그치? 진짜 로켓 말이야. 으흐흐
병석 : (점점 어이없어지며 민재에게) 무슨 얘기야? 얘는 설명할수록 복잡하게 만들어놓는 재주가 있거든.
민재 : 임시 동아리를 만들고 있어. 로켓을 연구하는 모임.
병석 : 동아리? 난 동아리 할 시간 없어. 자현아. 먼저 간다.
자현 : (턱 막으며) 넌 말을 귀로 듣냐. 목구멍으로 먹냐. 임시래잖어. 임시. (아예 병석의 등덜미를 잡아 쥐고 경진에게)
그럼 명단에 병석이 이름도 넣어라. 우린 바로 수업이 있어서 간다.
병석 : 야야. 잠깐만 말 좀 더해보고..
자현 : 가면서 설명해줄게. 차근차근 친절하게. 자 가자.
하는데 문이 열리며 대욱과 지민이 들어선다. 대욱, 가까이 붙어있는 자현과 병석을 훑어본다.
지민 : 언니 오빠들 안녕.
자현 : 어. 안녕. 그럼 안녕.
투덜거리는 병석을 끌고 나가버린다.
대욱 그런 둘을 말도 못하고 보고 있는데..
경진 : (가방을 챙기며 민재에게) 근데 잘 될까?
민재 : 해보는거지 뭐. 해볼 수 있는데 까진 해본다. 그 다음에 실패하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게 과학기술자의
기본 자세잖아. (지민 등에게) 우리도 수업이 있어서 간다.
경진 계속 머리를 굴려보며 민재와 함께 나간다.
남은 지민, 갸웃거리더니.
지민 : 어째 우리가 소외된 거 같지?
대욱 : (기분 안좋아서 의자에 주저앉으며) 소외된 거 같은 게 아니라 소외된거지 뭐.
지민 : 근데 아까 자현이 언니랑 같이 왔던 오빠 말이야. 이름이 뭐야?
대욱 : 그건 니가 알아서 뭐할래.
지민 : 어쩐지 느낌이 좋아.
대욱 : 하이구.. (또 시작이다싶어서 외면하는)
지민 : (가까이 붙으며) 모범생처럼 보이면서도 꽉 막힌거 같진 않고 옷 입는 센스도 좋아보이구. 헤어스타일도 괜찮지?
운동화 신은 거 봤어? 아주 깨끗하드라구.
대욱 : 넌 도대체 인간을 보는 기준이 뭐 그러냐. 옷이 어쩌구 머리칼이 어쩌구..
지민 : 오빠. 인간의 외모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야. 똑같은 깍두기라도 이쁜 그릇에 담은 거 하고 플라스틱 쪼가리에 담은 건
맛이 틀리다구.
대욱 : 어떻게 논리가 그렇게 흘러가냐.
지민 : 그러게. 어쩌다 깍두기까지 왔지?
대욱 : 잠깐만.. (갑자기 지민을 유심히 본다)
지민 : 왜.
대욱 : 너 양병석이 그 치가 괜찮다고 그랬냐?
지민 : 그 오빠 이름이 양병석이야?
대욱 : (금방 밝아지며) 내가 도와줄까? 어떻게 도와줄까? 말만 해. 언제 시작할거야. 어?
지민 : (얼레..해서 몸을 뒤로 빼는)
S#32. 박교수 강의실
박교수, 탁자에 턱을 고이고 한 학생의 답변을 듣고 있다.
학생1 : 교수님 말씀대로 문제를 분할하면, 나중에 통합해서 하나의 문제의 해답을 만들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교수 : 잉? 그래? 그럼 내가 틀렸다는건가? 어떡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민재, 뒤를 돌아본다. 여전히 맨 뒷자리에 현무가 혼자 앉아있다.
정태 : 문제를 나눌 때 나중에 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나누면 됩니다.
박교수 : 맞아. 그럼 되겠네. 근데 어떻게 나누지?
정태 : 예를 들어서 상호 관계가 적은 모듈들을 구별하면서 나누면 되겠죠.
박교수 : 오호..그럼 상호관계가 적다는 건 어떻게 알지?
학생2 : AND-OR(앤드오어) 그래프를 이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AND 노드와 OR 노드가 있으니까,
분할할 때 이 개념을 이용하면 쉽게 구분해 갈수 있습니다
박교수 : 그럼 나중에 각각의 해답을 통합할 때는 또 어떻게 하지? 이거 골치 아픈 문젠데..... 어떻게 할까?
민재 : (손을 든다)
박교수 : 좋아좋아. 말해봐요.
민재 : 지난번에 토론했었던 우리나라 로켓 개발팀의 문제 말인데요.
박교수 : 로켓? 그 문제가 앤드오어 그래프와 관계가 있나?
정태 : (얘가 왜 이러나해서 돌아보는)
민재 : 죄송합니다만. 한번 더 그 문제에 대해서 얘길 해보고 싶습니다.
박교수 : 그러면 안되지. 진도와 상관없는 문제로 아까운 수업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안될 말인데.. 그런데 재미있을 거 같군.
어떤 부분을 얘기하고 싶은데? (흥미진진해서 자세를 편히 잡는다)
민재 : 당시의 로켓 개발팀은 70년대말에 성공적으로 로켓을 개발해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선 왜 그 개발팀을 해체한 것이지요?
현무 : (민재쪽을 본다)
박교수 : 바로 그게 나도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래서 이거저거 알아봤는데.. 글세..
80년에 새 정권이 들어선 뒤. 그해 8월 당시 개발팀의 주역들을 모두 쫓아냈잖아. 그로부터 2년 뒤엔 미사일 개발팀 등
800명을 무더기로 해고시켰단 말이지. 왜 그랬을까. (현무 쪽을 본다)
현무 : (말없이 박교수를 보고 있다)
박교수 : 주워들은 건 있는데 여기선 말 못하겠어. 명확하게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너무 정치적이니까. 이민재군.
민재 : 예.
박교수 : 알고싶은 게 그거였나? 정치적인 이유?
민재 : 사실은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그들이 왜 연구를 계속했는지 그게 알고 싶었습니다.
그 연구팀의 박사님 한분은 해고당한 뒤에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를 쉬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단지 애국심때문이었을까요?
박교수 : (뭔가 감이 잡힌다. 민재와 현무를 번갈아보더니) 강현무.
현무 : (보는)
박교수 : 제일 처음 이 문제를 거론했었지? 어떻게 생각해? 그들이 연구를 계속한 건 단지 애국심때문이었을까?
현무 아무 말없이 보고만 있다.
S#33. 강의실 앞 복도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우루루 나오고 있다.
현무가 나온다. 걸어오다가 보면 민재가 기다리고 있다. 정태는 좀 뒤에서 흥미있게 지켜보는 중.
민재 : 잠시 애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현무 : (무뚝뚝하게 보며 서있기만)
민재 : 몇몇 학생들이 로켓을 연구하는 작은 모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거기 팀장으로 모시고 싶은데요.
현무 : ...이건 민경진이하고 관계되는 얘기냐?
민재 : 경진이도 모임을 만들려는 학생 중의 하나죠.
현무 : 니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민재 : 선배, 로켓을 연구할 작업실이 없죠? 모임을 만들게 되면 학교에서 장소를 빌릴 수 있습니다. 처장님께서 그렇게 약속
하셨어요. 단, 여럿이 모여서 위험요소를 철저히 서로 체크할 것. 지도교수님의 지도를 받을 것. 이것만 지켜준다면요.
현무 : (대꾸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나쳐 가려는데)
민재 : 선배, 로켓을 좋아하잖아요.
현무 : (멈췄다가 천천이 돌아보더니) 할 얘기가 아직 더 남았냐?
민재 : 옆에서 슬쩍 봐도 알겠는데 선배 혼자만 모르고 있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 겁니다. 선배는 로켓을 아주 좋아하고 있어요.
현무 : (어이없다는 듯 웃는데)
민재 : 선배만큼 좋아하진 않지만, 선배보다는 로켓에 대해서 좀 더 잘 아는 학생들이 (시계를 보며) 지금쯤 천막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선배 로켓을 다 분해해놓기 전에 가보시는게 좋을걸요.
현무 : 내 로켓?
민재 : 전자과 부품실에서 찾았다고 하던데요.
현무, 뒤도 안보고 빠른 걸음으로 간다. 보고 있던 정태가 다가오며.
정태 : 이건 또 무슨 심리극이냐?
민재 : 나도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내가 맡은 역이야.
정태 : 보아하니 경진이 시나리오 같은데. 아니냐?
민재 : (멀뚱히 보더니) 맞아.
S#34. 천막 외경 / 낮
천막 밖에까지 시끄럽게 들리는 목소리들..
자현 : (E) 봐라 봐. 노즐목이 너무 길잖아.
병석 : (E) 정확하게 노즐목이 아니라 노즐목에 비해서 노즐의 팽창 부분이 긴거지.
S#35. 천막 내부
병석과 자현이 탁자 위에 놓여져있는 로켓을 들여다보며 언쟁 중이다.
자현 : 내 말이 그말이지 짜식이. 하여간에. 이런 식이라면 연소실의 압력이 계속 증가하면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말이다.
병석 : 가만 있어봐. 상식적으로 보자면 노즐목이 작아지고 팽창 부분이 길어질수록 추력이 증가하는 거잖아.
자현 : 어허. 물론 어떤 비율일때까지 증가하는 건 맞지. 근데 초음속 유동의 특성을 생각해보라고.
병석 : 출구의 압력과 연소실 압력의 비가 아무리 커지더라도 더 이상 효율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자현 : 그래 내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야. 확실히 넌 A학점 맞어. 아이구 기특한 것.
이쪽에서 턱을 괴고 앉아 즐겁게 보고 있던 경진이 문득 고개를 돌려보면, 입구에 현무가 서서 보고 있다.
경진 에구..해서 얼른 일어나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가선다.
병석 : (E) 조용히 좀 해봐. 이거 계산 좀 해보고..
자현과 병석, 현무가 온 것은 알지도 못하고 머리를 맞대고 종이에 계산을 하기 시작하고..
경진 : 이 모든 것은 내가 저지른거니까 화를 내고 싶으면 나한테 내요.
현무 : (우두커니 분해된 자신의 로켓을 보고 있다가) 쟤들 말이 맞어. 확실히 노즐목에 문제가 있었어.
경진 : 예?
현무 : (그제야 경진을 본다) 너..이럴 필요없어. 아버지때의 얘기는 너나 나하고 상관없는거야. 아버지땜에 이렇게까지 안해도 돼.
경진 : 뭔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앞으로 날 옆에 두고 보면 아시겠지만 난 누구땜에 뭘 하는 인간형이 아니거든요.
현무 : 그럼 순수하게 로켓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다는거냐?
경진 : 미쳤습니까? 이 골치아픈 것에 관심을 두게. 나는 어디까지나, 내 로켓을 개발할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거죠.
현무 : 니 로켓?
경진 : 아 잘 모르시는구나. 난 앞으로 우주정복을 해야 되기 때문에 내 로켓이 아주 많이 필요하거든요.
현무 : (무슨 소린지 몰라서 찌푸려 보는)
경진 : 아 뭐 자세히 몰라도 됩니다. 좌우지간 저 친구들을 한번 잘 사귀어 보세요. 엔진 달린것만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드는 애들이거든요.
그제서야 현무를 발견한 자현이 반갑다고 소리를 지른다.
자현 : 여어 매너꽝 선배. 이거 말입니다. 엔진에 스테인레스관보다 종이관으로 하는 게 어때요.
병석 : 그럴려면 고무판을 대야지.
자현 : 그렇지 그렇지 그럼 아주 자알 올라갈 겁니다. 스테인레스는 무거워서 성능이 떨어지거든요.
현무 : (말없이 보고만 있다)
병석 : 이거 아무래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어야 계산이 되겠는데.
자현 : (다시 계산종이에 정신을 판다) 확산각도는?
병석 : 가만 있어봐. 계산해보고 있잖아.
자현 : 아 자식. A학점이 뭐 그리 늦어. 빨랑빨랑 좀 해봐아.
경진, 슬그머니 현무의 눈치를 본다. 현무, 자현네를 보고 있다가 경진을 돌아본다.
경진 찔끔해서 보면.
현무 : 여기 있는 내 물건들. 니가 갖고 왔냐?
경진 : 그게 사실은.. 에.. 사실은 그런데요.
현무 : (무표정하게) 설계도는 안 갖고 왔어?
경진 : ...설계도요?
현무 : 같이 놔뒀었는데.
경진 : 그럼..저..우리하고 같이 작업할건가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젠 혼자 작업 안하고.. 우리 데리고 같이 할거냐.. 그건데.
현무 : 니가 원했던 게 그거잖아.
경진 : 아.. 물론.. 그렇지만 너무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니까.. 하하 적응이 안되네요.
현무 : 어차피 마지막 작업이었어.
경진 : 예?
현무 : 이번에 마지막으로 만들어보고 그만둘 거였다고. 어떻게 되도 상관없었어.
현무 돌아서서 나가버린다.
경진, 이게 뭐 이렇게 되지..싶어서 현무가 나간 문과, 실갱이를 하고 있는 자현네를 번갈아본다.
S#36. 연구실
현무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있다. 모니터에는 동체의 모양이나 핀의 개수 등등의 비주얼한 그림들이 돌아가고 있고.
뒤에서 민재와 자현, 병석이 보고 있다. 자현은 완전히 넋이 나가서 모니터에 빨려들 듯이 보고 있다.
민재, 문득 돌아보면, 입구에서 경진이 비죽이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냥 가버린다.
S#37. 세미나실
현무가 프로젝션 화면 앞에서 설명 하고 있는 중. 화면에는 로켓 설계도가 비춰지고 있다.
민재와 자현, 병석, 경진 등이 앉아서 보고 있다.
현무 : 길이는 1.5미터, 직경 7센티미터, 무게는 4킬로그램 정도, 도달 고도는 900-1킬로미터로 예상되는데...
자현 : 쫀쫀하게 1킬로가 뭡니까. 기왕 쏘았으면 2킬로는 넘겨야지.
현무 말이 막혀서 자현을 본다. 민재와 경진도 자현을 돌아본다.
자현, 내가 뭘..하는 식으로 어깨를 들어보이며.
자현 : 왜애? 1키로미터보다는 2키로미터가 좋잖아.
현무 스크린을 향해 돌아서는데 저도 모르게 비식 미소가 나온다.
S#38. 기계 가공실
자현, 익숙한 솜씨로 노즐을 깎고 있다. 그러다 돌아보면 대욱이 저만치서 팔짱을 끼고 보고 있다.
자현 반갑다고 소리지르며 달려가더니 대욱의 목을 끌어잡아 온다.
대욱,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면서도 은근히 좋은데, 자현, 옆에 놓였던 콘을 대욱에게 안겨준다. 아크릴도 안겨준다.
대욱, 황당하고..
S#39. 천막 안 (혹은 다른 작업실)
대욱,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동체를 만들고 있다. 쇠파이프에다가 FRP를 감아 나가는 작업 중.
혹은 콘과 아크릴을 에폭시에 붙이는 작업. 그래도 정교한 부분에서는 입까지 헤 벌리고 집중하고 있다.
S#40. 운동장
병석과 현무가 낙하산을 들고 달리고 있다. 바람부는 쪽을 향하여 들고 뛰어 낙하산이 잘 펴지는지를 확인하는 중.
낙하산이 뒤집어지고. 등등.. 여의치 않는데 그들은 그 작업에 아주 열중해있다.
S#41. 천막 내부
현무가 소비톨 정도를 저울에 달고 있고 그 옆에서 민재가 소비톨과 KNO3를 사기 그릇에 넣어 갈고 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 때 병석과 대욱이 완성된 동체를 마주 들고 들어온다.
그 옆에서 종이관에 고무판을 대며 엔진을 만들고 있던 자현, 우와..하며 일어나 요란하게 달려가 만져 본다.
민재, 사기그릇을 지키느라고 애쓰고 있고.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는 현무. 문득 돌아보면 한쪽에서 경진이 낙하산을 접느라고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S#42. 천막 외부 / 밤
현무가 혼자 앉아서 발사대를 만들고 있다.
경진 배터리를 들고 오다가 현무와 눈이 마주치고, 눈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경진, 잠시 멈춰서 현무가 작업하는 모습을 돌아본다.
S#43. 천막 내부
민재가 점화선을 만들고 있었다. (전선 두가닥과 니크롬선을 이용해서.. 즉 전선에다가 열선을 꼬아 만들고 있는 상황)
돌아보면 경진이 배터리를 들고 와 옆에 놓는다. 시무룩한 얼굴이다.
민재 : 얼굴이 왜 그래. 내일이면 너의 시나리오가 완성될텐데.
경진 : 어째 착잡하다.. (길게 기지개를 켜보는)
민재 : 왜. 니가 생각한대로 다 되고 있잖아.
경진 : 정말 이걸 마지막으로 그만둘까.
민재 : 현무선배?
경진 : 응. 고도 1킬로만 올리면 이 학교 그만두고 철학인지 역산지 그거 공부하겠다고 했거든.
민재 : 그것도 괜찮지. 위험하지도 않고.
경진 : 물론 그렇지. 근데.. 어째 심난하다. 내가 나서대지 않았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 세계에서 계속 붙어있을지도 모르잖아.
민재 : 아이구. 반성도 할 줄 아냐?
경진 : 그러지 마라. 나 지금 진짜 기분 이상해. 불안하고 찝찝하고 개운치가 않다고.
민재 : (작업하던 손을 놓고) 내기할까.
경진 : 무슨 내기.
민재 : 난 선배가 이 정도로 그만두지 못한다는데 걸겠어. 삼겹살에 소주. 통닭에 맥주. 아무거나 좋아.
경진 : (살피는) 어째 그리 자신있어?
민재 : 두가지 이유에서. (자신이 작업한 선을 살피며) 첫째, 내일 우린 고도 일키로 이상 성공할거니까.
이런 고생 끝에 성공하는 거 그 맛을 본 사람은 쉽게 못 잊지.
경진 : 둘째는.
민재 : 둘째는... 너 강박사님 일기 맨 뒷부분 봤어?
경진 : (기억해보는) 맨 뒤?
민재 : 아까 선배 혼자서 그 일기장 읽고 있더라. 낡은 가죽노트 맞지?
경진 : 맞어.
민재 : 읽는 부분을 슬쩍 보니까 맨 뒷부분인 거 같애. 거기 뭐라고 써있었는지 기억나?
경진 : 맨 뒤면.. 강박사님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쓴 부분일텐데..
민재 : 그래. 그 부분을 몇번씩 다시 읽고 있드라고. 어때. 내가 이길 거 같지?
경진 : (생각해보더니) 잘 모르겠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민재 : 왜냐하면.. 내 생각엔 여기보다 더 재밌는 곳은 세상에 없는 거 같으니까.
경진, 허..웃더니. 새삼스레 문쪽을 돌아본다.
S#44. 천막 외부
현무, 마무리 못질을 하고 손을 놓는다. 쉬는 자세로 밤하늘을 본다. 잠시 침묵... 그러다가..
강재호 : (E) 오늘 아들의 손을 잡고 마당에 나섰다. 어쩌면 아들과의 마지막 산책이 될지도 모른다.
여섯 살짜리 아들은 이 다음에 나를 기억 할 수 있을까.
S#45. 로켓 발사 장소
드넓은 장소. 주변 풍경 스케치 잠시..
현무, 민재, 경진, 자현, 병석, 대욱 등이 각자 로켓 발사 준비를 하는 모습들이 몽따쥬로 보여지고. 그 위로.
강재호 : (E)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야구를 할 때 볼을 고르는 법. 번트를 대는 요령.
낚시를 하는 즐거움. 수학은 푸는 게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는 것. 술 마실 때 기분좋게 취하는 방법. 그리고 엄마처럼
좋은 여자를 만나는 법도.. 그러나 그 어느 하나 함께 할 시간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미안하다.
발사대에 발사준비가 끝난 로켓이 세워져 있고. 그 세세한 스케치..
이어져 있는 점화선. 멀리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들까지..
강재호 : (E)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말을 아들에게 남긴다. 아들아.. 아버진 진정 행복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삶이다.
너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너 또한 언젠가 너의 아이에게 이 말을 해줄 수 있기를.. 그것 뿐이다.
이제 아이들은 숨죽여 긴장하고 있고. 현무, 발사스위치에 손을 얹는다. 바라보는 아이들의 긴장.
현무 잠시 로켓을 보고, 하늘을 보더니 호흡을 고르고 발사 스위치를 누른다.
동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 노트북 화면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5,4,3,2,1...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소리가 주변을 울리고 0이 됨과 동시에 힘차게 올라가는 로켓.
아이들, 날아가는 로켓을 본다. 탄성.
노트북 화면엔 고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200,300,400,500,600,700
로켓이 저만치 날아가 잘 보이지 않을 때쯤 아이들, 노트북 근처로 모여 든다.
700, 800, 900, 950, 980, 1000 드디어 1000을 넘었다.
자현, 주위의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얼싸안으며 좋아한다.
1000,1030,1050,1100까지 올라가는 모니터. 점점 느려지더니 1150 정도에서 멈춘다.
민재와 경진도 함께 좋아하다가 현무를 돌아본다.
모니터를 보던 현무, 하늘의 로켓을 본다. 그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있다.
저 멀리 하늘에서 로켓이 이제 낙하산을 펴고 천천히 낙하하고 있다.
그 로켓을 바라보는 아이들.... 그 환한 미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