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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신들과 거인족의 전쟁 그리고 철학
(기간토마키아)에 대한 철학적 해석
인류의 문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 토대로 숱한 예술과 건축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들 중에서도 소위 신족과 거인족의 전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티타노마키아” 혹은 “기간토마키아” 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들과 거인족의 전쟁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철학자들도 많은 흥미를 느끼고 이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이 있습니다.
1) 신들과 거인족의 싸움.
신들과 거인족의 싸움은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일부입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아폴로도로스의 “신화집”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화의 이야기들이 세부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약간의 수정을 했습니다. 다음 클립이 신족의 전쟁 서사입니다.
태초의 신인 우라노스는 하늘의 신이다. 우라노스의 아내는 대지의 신인 가이아이다. 둘 사이에 자식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은 헤카톤케이레스, 키클롭스, 티탄들이다. 티탄 (거인)은 여러명이고 티탄들 중의 막내가 크로노스이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무슨 이유로, 아마 자식들에게 왕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여, 자식들을 모두 저승 타르타로스에 가두어 버린다.
이들의 어머니 가이아는 자식들이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워 자식들을 부추겨 우라노스에 대항하게 했다.
이에 티탄들의 막내 크로노스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우라노스를 제거하는데 그는 칼로 우라노스의 고환을 자르고 이를 바다에 버렸다.
이후 우라노스는 하늘에 올라 갔다고 한다.
이때 우라노스의 불알에서 떨어진 피가 땅에 떨어져 기간테스, 에리누스, 메리아데스, 아프로디테가 생겨났다.
크로노스는 자신이 우라노스를 폐하고 권력을 잡자 형제 거인들을 (티탄족과 기간테스족) 모두 다시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가이아는 다시 자신의 자식들이 감금되는 것을 보고 크로노스를 저주하여 이렇게 말했다. "너도 똑같이 너의 자식에게 당할 것이다."
그래서 크로노스는 자신과 그의 아내 레아가 낳은 자식들 즉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그리고 제우스 등을 잡아먹으려고 했으나 제우스만은 어머니 레아의 책략으로 죽이지 못한다.
화를 피해 도망친 제우스는 장성하여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약을 먹여 자신의 형제들을 토해내게 했는데 그 때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이 크로노스의 목구멍에서 튀어 나왔다.
구출된 제우스의 형제, 자매들은 제우스와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포함한 기간테스족과 전쟁을 벌였다.
티탄족이나 기간테스족은 모두 거대한 바위나 불이 붙어 있는 떡갈나무를 하늘 높이 던져 올려 하늘에 있는 제우스를 주신(主神)으로 하는 올림포스의 신(神)들에게 도전하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번개를 운전하고, 다른 신들이나 친구들도 각각 참전하여 드디어 그들을 다 사살하고 천지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고 한다. 여기는 특히 헤라클레스가 큰 역할을 한다.
기간테스들은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고 거대한 거인의 상반신을 한 모습이라고 한다.
이상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기간토마키아 즉 거인족과 신족의 투쟁이야기 입니다. 여기서 하나 교통정리를 하자면 많은 경우에 티타노마키아와 기간토마키아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혼동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필자는 이를 다른 두 개의 전쟁으로 봅니다. 즉 티타노마키아는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족과 우라노스의 전쟁이며, 왜냐하면 크로노스는 티탄들 중의 막내이기 때문입니다.
기간토마키아는 크로노스와 그의 아들들 (기간테스족)과 제우스 족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티타노마키아는 거인들 간의 전쟁이며 기간토마키아가 신들과 거인들의 전쟁입니다.
2) 신족과 거인족의 싸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거인들과 신들의 싸움을 철학적으로 처음 언급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책 “소피스트”에서 이를 처음 언급했습니다.
소피스트 대화편은 보통 플라톤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입니다. (안재오 미출판 원고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참조)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들과 거인(巨人)족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신족(神族)이란 간단히 말해서 관념론을 의미하고 거인족이란 유물론을 의미합니다.
이 문제의 발단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서양 철학사에서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은 영원히 있다”, “변화와 생성은 환상이다” 라고 주장한 다음부터 “존재의 의미” 혹은 “참다운 존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소피스트 대화편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서 엘레아에서 온 손님은 존재와 비존재, 정지와 운동, 존재와 하나 등의 범주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손님: “그런데 그들 사이에는 있다는 것을 에워싸고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군요. 이를테면 올림포스의 신들과 거인족(巨人族)과의 싸움에라도 견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소피스트)
여기서 보면 있는 것 즉 존재를 에워싸고 “신들과 거인족(巨人族)과의 싸움에라도 견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고 합니다. 유물론자들은 신화 속의 거인족과 같이 바위나 떡갈나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있는 것을 물체와 동일한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바위나 떡갈나무의 의미는 물체와 감각입니다. 즉 물체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상식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진영은 관념론입니다. 그런데 이는 실은 당시의 플라톤 학파를 지시합니다. 이들은 감각이나 물체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이데아가 (형상) 참다운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손님은 말합니다.
손님 : 참으로 있는 것은 (참된 실재(實在)는 사고에 의해서 파악되는 어떤 비물체적인 형상임을 억지로라도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소피스트)
바물체적인 형상은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에 해당합니다. 즉 이데아(idea)를 다른 말로 형상(form)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기간토마키아 (거인들의 전쟁)에서 신들이라고 한 집단은 바로 플라톤주의자들을 말합니다. 이는 보인는 것, 만져지는 것보다 관념적인 것 즉 이데아의 존재론적 우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거인족은 유물론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실은 헤라클레이토스주의를 말합니다. 알다시피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변한다 판타 레이 (panta rhei) 라는 말을 한 철학자입니다.
이것만 가지고 그를 유물론자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문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유물론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또 동시에 이 둘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을 감각을 인식의 근본으로 보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사실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이성의 역할을 처음으로 강조한 사람입니다. 그는 로고스 (logos) 란 개념을 처음으로 쓴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족은 관념론 혹은 플라톤주의를 말하고 거인족은 유물론 혹은 헤라클레이토스 주의를 말합니다. 이는 또한 존재와 생성의 대립이고 사유와 감각의 대립을 말합니다.
3) 헤겔 : 제우스족과 거인족의 관계
헤겔은 그의 “역사철학 강의”에서 “제우스족과 거인족”의 관계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신족과 거인족과 같은 의미입니다.
헤겔은 거인족을 자연에 비유하고 제우스족을 정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신족과 거인족의 전쟁 역시 자연과 정신의 대립으로 봅니다.
자연을 정신이 극복한다고 하는 사실을 헤겔은 제우스 족이 거인족을 몰락시킨다는 신화에 적용합니다. 헤겔은 그리스 정신의 개념 안에 정신과 자연의 두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인류의 문명은 자연에서 출발하여 정신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자연은 물질계를 말하고 동식물 등도 포함됩니다. 정신은 인식과 사유를 의미하고 또 인간의 경우 영혼이기도 합니다. 헤겔은 특히 역사철학에서는 세계역사는 정신의 발전이고 자유의식의 확대 발전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인류의 문명은 자연에서 정신으로의 발전이다고 합니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과 거인들의 싸움으로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즉 제우스족이 거인족을 몰락시키는데 헤겔은 이를 정신이 자연을 극복하는 의미라고 해석합니다.
거인족은 신족에게 패배를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우라노스는 성기가 절단되어 왕좌에서는 쫓겨나지만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거인들은 권력을 빼앗기고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이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말인즉 거인족은 자연적인 것, 자연존재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 자연적인 것의 지배력이 이제야 박탈되기 때문이다. 물론 거인족은 그 뒤에도 여전히 숭배되지만, 벌써 통치자, 지배자로서 숭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인족은 지구의 변두리로 추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거인족은 우라노스(Uranos. 하늘), 게아(Gea. 땅), 오케아노스 (Okeanos 바다), 셀레네(Selene. 달), 헬리오스(Helios. 해) 등의 자연력이다.
크로노스(Kronos)는 추상적인 시간의 지배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는 자식을 먹어버린다. 거기서 이 야만적인 생식력이 억제당하게 되어, 여기에 정신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 자신의 정신인 신들의 두목으로서 제우스가 등장한다. (역사철학 강의 1권381쪽)
여기서 헤겔의 착각이 보입니다. 즉 야만적인 생식력을 억제당한 것은 크로노스가 아니라 우라노스라는 사실입니다. 하여간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를 제우스가 죽이는 것을 헤겔은 자연에서 정신이 출현하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이 말하는 바의 “여기에 정신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 자신의 정신인 신들의 두목으로서 제우스가 등장한다” 는 구절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헤겔은 거인족과 신족의 싸움을 자연과 정신의 싸움으로 해석한 뒤 이번에는 같은 신 내에서도 이런 의미의 변화를 찾아 냅니다.
즉 제우스는 번개와 구름의 신인데 동시에 정치의 신이고 도덕과 우애의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포세이돈은 자연력(바다)의 신이자
성벽을 구축하고 말을 창조한 신이다 라고 합니다.
“헬리오스는 자연요소로서의 태양이다. 그러나 이 빛은 정신적인 것과의 유비(類比)에서 자의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게끔 변용되어서 아폴론이 헬리오스에서 나온다.
이 의미에서 아폴론은 예언자이고, 지자이고 일체를 조명하는 빛이다. 그 위에 또 그는 병을 고쳐주는 자이고, 원기를 돋아주는 자인 동시에 또 파멸시키는 자이기도 하다. 그 말인즉, 그는 인간들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속죄자이고, 순화의 신이기도 하며. 이를테면 가혹하고 염격한 재판을 하는 고대의 명부의 신 에우메니데스를 유화시킨다.” (역사철학 강의 1권382쪽)
여기에서 보면 아폴론의 역할이 거의 기독교의 신과 비슷합니다. 그는 병을 고쳐주는 자이고, 속죄자이고. 중보자이고 동시에 죽이는 자입니다. 그는 인간이며 신인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헤겔의 역사철학의 구조는 그리스의 신 관념에서 그리스도교의 신 관념으로 발전합니다. 그는 아름다운 그리스의 신들은 정신을 나타내기는 하나 이들은 운명과 필연성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지가 않다. 이에 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신인(神人) 예수 안에서 진정한 자유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요약 94. 신들과 거인족의 전쟁 그리고 철학
(기간토마키아)에 대한 철학적 해석
인류의 문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를 토대로 숱한 예술과 건축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들 중에서도 소위 신족과 거인족의 전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인족은 크로노스와 그의 형제들입니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을 잡아먹으려고 했으나 막내 제우스가 반항하여 결국 거인족을 모두 죽이고 신들의 왕이 되는 전쟁입니다.
이를 “티타노마키아” 혹은 “기간토마키아” 라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들과 거인족의 전쟁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철학자들도 많은 흥미를 느끼고 이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족을 관념론 (플라톤주의) 그리고 거인족을 유물론 (헤라클레이토스주의) 라고 해석을 합니다. 헤겔은 신족을 정신 그리고 거인족을 자연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철학적 해석은 그리스 신화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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