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347
를 보십시오.
“수영을 할 줄 안다”, “피아노를
칠 줄 안다”의 의미가 애매합니다. 어쨌든 상식에 어느 정도 부합하도록 정의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아가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특수 장비를 쓰지 않는 이상
수면 밖으로 입이나 코가 나와야 산소를 마셔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을 “주기적으로 수면 밖으로 입이나 코를 들어올려서 산소를 마실 줄 아는 것”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피아노를 칠 줄 아는 것”은 “악보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음을 낼 줄 아는 것”으로 정의하겠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바이엘>이나 <체르니 100번> 정도는 어느 정도 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정의해 보았을 때 갓난 아기는 수영을 할 줄 모르고 피아노를 칠 줄 모릅니다.
제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식으로 정의한 다음에 문제제기를 하시면 될 것입니다.
저는 선천적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 또는 피아노 연주 학습 메커니즘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 이유는 건반 악기가 만들어진 지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를
아무렇게나 치는 것이 아니라 악보에 어느 정도 맞게 연주하려면 상당히 복잡한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건반
악기가 발명된 이후로 많은 세대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복잡한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을 통해 새로 진화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자연 선택으로 복잡한 메커니즘이 새로 진화하려면 아주 많은 세대가 필요합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음성 언어를 배우는 데 특화된 메커니즘이 진화했지만 글 읽기에 특화된 메커니즘은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글을 가르치지 않아도 글을 깨우치는 아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글 읽기 메커니즘 또는 글 읽기 학습 메커니즘이 따로 선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음성 언어 학습 메커니즘, 시각 메커니즘, 다른 여러
가지 학습 메커니즘 등이 결합해서 작용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피아노의 경우에도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상당히 잘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에서 피아노를 항상 연주한다면 그러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때에도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 또는 피아노 연주 학습 메커니즘이 선천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메커니즘들이 결합해서 작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림치즈베이글 님이 지적했듯이 저는 계속 자연선택을 언급하면서 적응을 암시했습니다. 제가 선천적 피아노 연주 메커니즘 또는 선천적 피아노 연주 학습 메커니즘이 없다고 이야기할 때 암묵적으로 염두에 둔 것은 "피아노에 전문화된 적응이 없다"입니다.
물론 선천성 개념과 적응 개념은 서로 다릅니다. 또한 선천성 개념에 애매함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어 수정합니다
쇼야노의 IQ 200 이상은 비율지능으로서 편차 15로 환산하면 169 이상이고
이는 533337명 이상 중의 1명 비율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