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 첫 산행地
응봉, 설흘山 봉수대에서서
숱한 영광과 아쉬움을 남긴 기축年 소의해도 지나갔다.
올 한해도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저 성스러운 조국강산을 겹겹이 둘러싼 장대한 능선과
그 사이사이로 쉼 없이 흐르는 강줄기는 우리네 삶의 흔적이고 역사였다.
산맥과 물길의 역사는 때론 시련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끝내 영광과 희망으로 나아갔다.
굽이진 갈등의 응어리를 씻고 우리는 경인년 백호의 해에 새 희망을 찾아나서야 한다.
년 초부터 서울이 눈 폭탄을 맞았다고 난리다.
시베리아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고기압이 중국대륙에서 유입되는 따뜻한 공기와 충돌하여 생긴 눈구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서울25.8cm를 비롯해 춘천23.0cm, 인천22.3cm, 문산20.2cm, 대관령26.2cm를
기록하는 많은 눈을 쏟아 부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것은 1904년으로 당시는 기온 강수량 등 초보적인 수준의 관측이었다.
새로 내린 눈(신적설량)의 관측은 1937년에 시작됐다.
이후 가장 눈이 많이 온 곳은 울릉도로 1955년 1월 20일 150.9cm가 내렸다.
서울의 경우 4일 내린 눈을 제외하면 그동안은 41년 전인 1969년 1월 28일 22.8cm
이였으니,
기상청은 이번에 내린 폭설은 103년 만에 가장 많이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눈을 전후로 소한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며칠째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인 6일에도 강원 춘천시 의암 호반에 있는 소양강
처녀像 주변에 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게재되었다.
이날 강원지역 최저기온은 철원-26.7도를 비롯해 홍천-23.8도, 영월-22.4도, 인제-21.4도
춘천-19.7도, 원주-19도, 서울도-13.3도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 중부지방과 강원 산간지역, 충청 서해안일대가 눈과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뉴스는 보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위해 도심의 적설상태와 눈 쌓인 산간도로의 자료
화면을 시시각각으로 내보내고 있었고,
지하철의 고장, 지 정체 및 결항상황을 신속하게보도 하고 있었다.
이런 보도를 접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은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폭설로 산행이 취소된 적이 두 번이나 있었고,
성탄절과 신정으로 두 번 산행을 쉬어 한 달 만에 가는 오늘 금요산행은 경인년 들어
첫 번째 산행이기도 했다.
원래 일정상 산행地는 경남 의령군 자굴山이었으나 강추위와 폭설을 걱정해서 따뜻한 남쪽 山을 선택한 것이
설흘山 봉수대와 가천마을 다랑이 논이 있는 경남 남해를 택한 것이다.
설흘, 응봉 두 산이 있는 남해 가천마을은 2005년 1월 3일 명승 15호로 지정되었다.
전해오는 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었으나, 조선중기에 이르러 가천으로 바뀌었다.
다랑이 논은 선조들이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곳이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은
설흘산과 응봉산아래 바다를 향하는 산비탈 급경사지에 100여 층의 곡선형태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있다.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에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주위에 있는 가천암수바위, 밥 무덤, 설흘산 봉수대, 서포 김만중의 유배재지인 노도 등이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산행버스는 남해고속도로를 달리며 주암 휴게소에서 잠시 쉰 뒤,
순천, 섬진강휴게소를 지났고,
고속도로를 벗어나더니 남해대교를 지나 줄 곳 순환국도인 남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풍광 좋고 경관이 아름다운 남해의 바다와 섬,
그리고 전형적인 어촌마을이 어우러져있는 여러 마을을 순례하듯 지나갔다.
남해의 햇살은 우리가 걱정했던 강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맑고 눈이 부셨다.
두툼하게 걸친 등산복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진다.
바다에는 고기잡이배가 한가롭게 떠있고, 유조선이 민달팽이처럼 느릿하게 지나간다.
오늘산행은 석교마을 뒷산을 오르면서 시작되었다.
응봉산 암능지대 -칼바위 -응봉산 정상 -설흘산 입구사거리 -봉수대 -입구사거리(되돌아 내려와서)
-가천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다.
응봉산(473m)은 산의 모습이 매를 닮았다 해서 매봉산이라 불리며,
이런 모습의 산이 전국 여러 곳에 있어서 같은 이름의 산이 몇 군데 더 있다.
응봉산 암능 지대는 그 날카로움이 칼날같이 생겼고,
암능 좌우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위험도가 매우 높아 철제난간이 좌우 겹으로
처 있고 길게 쇠줄이 연결되어있었다.
암능은 계룡산의 용 비늘 바위처럼 뾰쪽뾰쪽해 한 곳에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용봉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무인판매대가 방치되어있고 막걸리 빈병과 맥주 캔이
함부로 버려져있어 보기가 흉했다.
담당하는 분이 있으면 빠른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설흘산 봉수대에 올라 남해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바다로 돌출된 섬의 모습이 악어의 입 같기도 하고 한없이 펼쳐진 남해바다가 오늘에
풍요로운 어촌의 꿈을 꾸게 만드는 듯 했다.
봉수대는 경남도 기념물 제247호로 설흘산(490m)꼭대기에 쌓은 것으로,
봉수대의 모양은 높이 6m, 너비 7m로 사각형이며 왜구의 침입과 재난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남해현읍지)에 의하면 남해 금산과 전남 돌산도 봉수대와 서로 연락하였다고 한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하여 석축 하였으며 평면 형태는 둥글지만, 부분적으로는 각이 져 있다.
가천마을 다랑이 논을 보면서 우리조상들의 지혜와 힘겨운 삶의 현장을 보는 듯 했다.
-경남 남 해 응봉,설 흘산을다 녀와서-
(2010년 1월 8일)
갈대로 사는 법
최 문자 作
두려울 때마다 몸을 줄였다 점점 가슴이 없어졌다
나무가 격해지는 건 떨어뜨려야 할 것들이 떨어지지 않는 것.
내장이 비워지지 않는 것, 열매들이 감정을 가지고 줄기차게 매달려 있는것
꽃이 격해지는 건 꽃이 줄여지지 않는 것
가슴 같지 않은 뺨과 목덜미가 그냥 더글더글 남아 있는 것
그와의
이별은 가벼움으로 격해지는 것
비밀을 묻을 데 없어
가릴 것 없는 갈대로 사는 것
고요에도 뼈가 있다면
뼈처럼 사는 것
그해
습지 모퉁이에서 피를 다 쏟았다
끓을까봐 무릎을 없앴다
더 줄일 수 없는
가느다란 비밀만 남겼다
가끔
이별할 듯한 연인들이 찾아와 허옇게 피를 말리고 갈 때
아홉 번쯤 넘어졌다가
한 번 일어나 이빨 없는 치를 떨었다
갈대 속에서 세상이 흔들렸다
-신년 詩 특집
(현대문학)출신 20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