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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리라(사 41:17-20)
할렐루야! 지난 일주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날씨가 매우 추웠습니다. 비록 날씨는 차갑고 추울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늘 따뜻하고 포근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은혜로 여러분의 마음이 늘 따뜻하기를 축복합니다.
한번 따라 해 볼까요?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리라”
추운 날씨 탓으로 땅들이 말라 있습니다. 풀도 서리를 맞아 축 쳐져 있습니다. 땅만 말라 있는 것이 아니라, 추운 날씨 탓으로 우리의 마음도 메말라 있는 듯 합니다.
오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어, 생명수가 흘러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 2:10-14절을 보면, 에덴동산의 모습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1-2절을 보면,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에도, 그리고 우리들이 가서 살아야 할 새 하늘과 새 땅에도, 아름다운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메마르지 않는 땅, 온 들판을 적시는 맑은 물, 강 좌우편에 먹음직한 열매들이 있습니다.
시편 1:3절을 보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7:7-8절을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물이 있는 곳에 살아야 합니다. 물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풍부하여도, 마실 물이 없으면 안됩니다. 언제든지 마실 물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든지 물이 나온다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야 자랄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진짜 얻어서 먹고 마셔야 할 생명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4:13-14절을 보면, 수가성 여인에게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 때,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53-5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참된 음료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살 수가 있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시는 생명수가 되시는 하나님은 첫째, 가련하고 가난한 자를 위로하십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죽음입니다.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내일이 없는 삶입니다. 당장 먹을 물이 없기 때문에,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도, 돈이라도 있으면 사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련하고 가난한 자는 돈도 없습니다. 구할 물도 없거니와, 구한다 해도 살 수 있는 돈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사야 55:1절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습니다.
목마른 자들은 물로 나아오는데, 돈 없는 사람도 오라는 것입니다. 공짜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 공짜로 주십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가련하고 가난한 자”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라는 것은,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느다란 한 줄기 기대감이, 점점 사라져감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은, 밝은 희망의 불빛이 아니라,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의 말을 전해줍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년, 20년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자녀들과 오순도순 잘 산다 하여도, 그들은 포로일 뿐입니다. 포로생활을 하는 그들이, 아무리 편안하고 호화롭게 살아간다고 하여도,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포로일 뿐입니다. 그런데 포로생활하고 있는 그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만 마실 물이 없습니다. 실제로 마실 물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극심한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기본적인 것입니다. 물을 구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본적인 생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처참한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온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하겠습니까? 역사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받을 때, 억압받고 헐벗은 삶을 견디다 못하여, 만주와 중국으로 많이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극심한 가난과 고난 가운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 번째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17절) 아멘.
마실 물이 없을 때,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다른 나라에서 노예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유인의 신분으로 내려갔지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노예생활이 무려 400년이나 이어졌습니다.
출애굽기 2:23-25절을 보면,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에도 힘들었습니다. 고된 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고된 노동을 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어떻게 돌보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아갈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먹이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시원한 바람을 불어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한 바람을 주어,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목이 마를 때는 반석을 터뜨려서 물을 주셨습니다. 옷이 낡아지지 않게 하셨고, 신발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40년 동안, 그들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농사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샘을 파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굶어 죽게 하지 않았습니다. 벗고 살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 중에도,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있습니다. 물을 구하지만 물이 없어서 혀가 마릅니다. 물질의 문제로 속이 타 들어갑니다. 건강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자녀들이나 직장의 문제로 갈급합니다. 목말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할 수 있습니다. 억눌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5:13절을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고난당할 때, 시련의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16:1-4절을 보면, 극심한 고난 가운데 기도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내 음성과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십니다.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십니다. 내 눈을 눈물에서 건져주십니다.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져주십니다.
신명기 32:10-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먹을 양식이 없으십니까? 마실 물이 없으십니까? 입을 옷이 없으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염려와 고민 가운데 계십니까? 질병과 아픔 가운데 계십니까?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밤을 지새우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우기가 구한 것보다, 생각한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시지요. 기도해야 기도응답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응답은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극심한 가난과 고난 가운데,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그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첫 번째 약속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17절)
이사야 41:8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하여,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택함 받은 자요, 하나님의 벗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싫어하지 않으시고, 결코 버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도 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배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해 놓고, 하나님이 우리를 배반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자유이지만, 그것은 엄연한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적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목마르십니까? 우리는 육신의 목마름만이 아니라,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뭔가 늘 허전합니다. 채워질 것 같으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 허전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있습니다.
그 목마름을 해결해주실 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만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이사야 55:1절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목 말라 하면서도 하나님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오지 않고 다른 데로 갔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가서 그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공짜로 주신다고 했는데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나오지 않았습니다. 돈도 받지 않고, 거저 주신다고 했는데도, 다른 데 가서 쓸데없이 돈을 썼습니다. 수고의 땀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사 55:2)
하나님은 그들을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 55:2-3)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어렵게 왕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환난을 당한 뒤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후, 그는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그의 남편인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몰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엄청난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 정도의 죄라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울왕을 버리셨던 하나님께서 다윗도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큰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을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너희들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습니까? 사울왕에게 한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들어보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삼상 15:26)고 했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사울왕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사울왕이 먼저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여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여러분!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영적인 목마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여러분! 영생하도록 솟아나시는 생명수가 되시는 하나님은
둘째, 마른 땅에서 샘물이 터지도록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바꾸어 주십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아멘.
18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헐벗은 산, 골짜기, 광야, 마른 땅”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과거와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땅을 변화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서 역사하십니까? 광야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빌립보 감옥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그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헐벗은 산과 골짜기와 광야에서, 마른 땅에서 새롭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 일어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자연적인 원리를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변화로 바꾸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광야와 헐벗은 산, 골짜기, 메마른 땅은, 고난의 장소가 아니라, 은혜의 장소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훈련장소입니다. 예수님도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훈련받았습니다. 다윗도 광야에 나가 10년 이상을 훈련받았습니다. 광야에서는 세상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도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강한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 앞에 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헐벗은 산에 강을 내게 하십니다.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주신 비전입니다. 소망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에게 주신 비전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비전이요,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주신 꿈과 비전입니다.
에스겔 47장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을 이룹니다.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나무가 살고, 죽은 바다가 살고,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고기들이 번성합니다. 강가에는 어부들이 삽니다. 각종 먹을 나무가 자라서 달마다 새 열매를 먹게 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입니다. 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이 강물처럼 흐르게 될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나고, 번성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풍성한 축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붙잡고 계십니다. 함께 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메마르고 황폐한 땅을 쳐다볼 것인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과 비전을 볼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19절을 보면,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라고 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입니다.
광야와 사막에, 백향목, 싯딤 나무, 화석류, 들감람나무,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을 심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나무들은 기름진 땅에서만 자라는 나무들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같고, 황무지와 같은 이스라엘을 기름진 땅으로, 비옥한 땅으로 바꾸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상입니다. 비전입니다.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환상과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을, 황무지와 같은 땅을, 숲속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작가 스피노자는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축복의 나무들을 심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놀라운 축복의 비전을 마음 깊이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늘 이 축복의 말씀이, 심겨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효성선교교회의 모습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작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우리 교회 가운데 한 알의 밀알처럼 심겨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시는 생명수가 되시는 하나님은 셋째, 새 일을 행하여 주십니다.
2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함께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아멘.
이 모든 일을 행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예언, 환상,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구로 사용하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의 비전과 환상을 신뢰합시다. 내 환경을 바라보지 맙시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3:18-20절을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을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광야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강을 주시는 곳입니다. 골짜기에서 샘이 되게 하십니다. 광야가 호수가 되게 하십니다.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광야와 사막에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와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심으십니다. 광야와 헐벗은 산에 숲을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은 광야와 사막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 피곤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같은 이곳에,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사막과 같은 이곳에 강을 만드셔서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며, 영생의 샘물을 맛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효성선교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새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마른 땅을 샘 근원 만들어 주시는 것처럼, 마른 땅과 같은 우리 교회를 축복하사, 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는 비전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광야와 같고, 마른 땅과 같았던 우리의 심령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 교회가 샘 근원이 되는 새 역사가 속히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껏 아버지의 넓은 사랑에 품에 우리를 품고, 보호하여 주셨던 것처럼, 지금껏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도,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헐벗은 산과 골짜기 같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광야와 사막 같은 우리를 싫어하지 않으시고,
마른 땅과 같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샘 근원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도응답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며, 항상 주님을 찬송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것, 다 주님의 것이오니,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