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은 천재다. 퉁명스럽게 던지는 나의 이런 말을 매우 의아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늘(天)에서 재능(才)을 부여받았으면 누구든지 천재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항상 과(過)한 구석이 있다. 이태백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황하의 물을 들이키듯 과음을 즐긴다든가, 번뜩이는 재치와 구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일에 몰두하거나, 꺼질 줄 모르는 격정의 화염에 휩싸여 열애에 탐닉하거나, … 하여튼 과한 것은 천재의 한 속성이다. 김석철도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 아키반(Archiban)의 대표로 많은 설계일을 하면서도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장, 베네치아 건축대학·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 초빙교수로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여의도의 모습도 대강 그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며, 한강 연안의 대체적 구상도 그가 초안한 것이다. 예술의 전당, 관악산 서울대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쿠웨이트 자하라의 주거단지, 제주도의 영화박물관 등 우리 주변의 수없는 건축들이 그의 작품이다. 밀양의 한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영남루와 남천강변 솔밭을 거닐면서 철인의 꿈을 키웠던 그에게는 깊은 한학의 소양이 있다.
경기고교시절, 인류문명의 골격을 만드는 건축을 통해서도 큰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박종홍선생의 권유에 따라 서울공대 건축과에 들어갔다고 하는 그는 대학시절부터 이미 김중업선생 설계사무실에서 큰 건물설계들을 도맡았다. 그 후에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 김수근선생 밑에서 도시설계를 주로 공부했다. 그런데 김석철은 요즘 새만금의 구상에 미쳐있다. 너무 새만금에 몰두하다가 건강까지 상했다고 한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강의를 마치고 엊그제 귀국한 그를 나는 재동 한구석의 한옥 두 채를 개축하여 만든 조촐한 아키반 사무실에서 만났다. 10일 오전 11시였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놓고 환경단체와 전북자치단체 사이에 옥신각신 찬반싸움의 골이 깊어지고 있을 때 돌연 등장한 김석철안은 세간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새만금 갯벌이라는 광활한 생명의 보고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전북도민들의 개발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의 언론들은 김석철안이 실현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것이라고 빈축하고 있고, 노무현 당선자나 전북도정을 맡고있는 사람들은 선뜻 그의 구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키엔 이 모든 것이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김석철안은 새만금의 유일한 활로(活路)다. 김석철안은 돌연히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그의 회갑생애의 기나긴 도시설계 체험의 축적이 빚어낸 찬란한 다이아몬드와도 같은 것이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앞으로 오는 인류문명의 대세는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이 아니라 도시와 도시간의 경쟁의 시대로 특징지워진다는 테제에서 출발한다. 새만금문제를 농지의 확보라는 원시적인 발상으로부터 근원적으로 차원을 달리하여, 경쟁력있는 도시들의 집적태인 어반 클러스터(urban cluster)로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미국? 그 거대한 땅덩어리가 대부분 인간의 발자취도 가지 않은 원시림 아니면 산맥, 사막, 대평원, 그리고 목가적인 소도시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하면 그런 풍경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세계 최첨단의 마천루로 가득찬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을 생각하죠. 다시 말해서 미국의 경쟁력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경쟁력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뉴욕이라는 한 도시의 경쟁력이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를 먹여살린다는 것이죠. 뉴욕은 금융의 도시며, 기업의 도시며, 물류의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뉴욕의 경쟁력은 행정도시로서의 워싱턴, 그리고 학문도시로서의 보스턴과 연계된 클러스터를 이루면서 효율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이 역사적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온 복합도시들임에 비하여, 미국 동부의 도시들은 이러한 기능적 분화를 이룩해낸 새로운 개념의 기능도시라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새로운 도시문명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인류문명의 최강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와 같은 고도에는 시청건물 꼭대기의 윌리암 펜 동상 이상으로는 건물을 못짓게 엄격한 고도제한을 하면서도 맨해튼에는 건폐율과 용적률을 무제한으로 허용했습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이 경쟁력있는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미래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현재 상해나 북경을 성공적으로 이끈 지도자들이 정치지도자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앞으로 오는 세기는 국가경쟁력이 아니라 도시경쟁력시대라는 것을 잘 깨닫고 있는 것이죠. 새만금도 경상도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전라도사람들의 한풀이로 이해되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죠. 21세기 세계와 경쟁을 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도시문명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글쎄 생각해보세요. 새만금의 스케일이 1억2천만평이 넘어요. 그것은 그린벨트를 뺀 서울특별시와 동일한 싸이즈예요.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토지계획이 농업기반공사나 지방자치단체의 프로젝트로서 기안되고 종결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반드시 한반도 전체의 경영전략으로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갖는 고차원의 국가전략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향후의 한반도전략이 무엇이냐? 이런 걸 이야기해야겠지요.”
―그게 뭡니까?
“아∼ 그거야 손쉽게 노무현 당선자의 동북아중심국가론을 얘기해도 좋겠지요. 그런데 동북아중심국가라는 말 자체가 어폐가 심해요. 우리나라가 어떻게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된다는 말입니까?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세계대강국들이 버티고 있는데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던 일제우익 비슷한 뉴앙스의 담론들을 내깔기면 이 세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6·70년대를 통해 형성된 국수적 민족주의, 그리고 80년대를 통해 형성된 저항적 민족주의의 검토되지 않은 환상이 있어요. 그냥 단군이래로 한민족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종교적으로 믿어버려요. 자아∼ 동북아사이중심국가라는 말의 구체적 함의는 이제 동북아시아의 중심이 황해도시공동체(Yellow Sea Urban Community)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가 황해도시공동체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할 수 있느냐? 바로 그 기능 속에서 우리민족의 어반 클러스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창조할 수 있느냐? 이런 얘기로 압축된다는 것이죠.”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황해도시공동체”라는 단어를 정밀하게 푸는 작업이 중요하다. 여기 핵심은 또 다시 “도시”라는 말이다. 인류사회의 변화는 구체적으로 농촌인구가 도시인구로 전환되는 과정, 즉 어바니제이션(urbanization)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구라파·미국·일본의 경우 농촌인구가 3%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이제 격변하는 사회변화를 기대할 구석이 없다. 결국 정체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9%다. 앞으로도 약 6% 정도의 변화가능성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농촌인구가 75%며 북한은 80%다. 생각해보라 중국은 인구가 13억이다. 이 13억의 75%가 되는 인구가 앞으로 2·30년내로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을 한번 상상이나 해보자! 중국은 20년 동안 경제성장률 10%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올해부터 매년 1천만호의 아파트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매년 분당규모의 도시 100개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가 대부분 뻬이징·티엔진―상하이―홍콩을 연결하는 황해연안으로 집결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대륙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모든 사람이 동쪽해안으로 때굴때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곧 상하이(上海) 주변으로만 3억의 인구권이 형성된다. 그리고 황해연안과 한국·일본의 황해연결일대만 해도 약 9억의 인구가 집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최대의 시장이다. 그가 생각하는 새만금은 바로 이런 황해도시공동체의 허브마켓시티(Hub Market City)이다.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에도 이미 매우 효율적인 어반 클러스터가 있습니다. 대구·울산 어반 클러스터를 예를 들어보죠. 포항에는 제철공장, 구미에는 전자공단, 울산에는 중공업, 자동차공장, 대구에는 섬유산업과 교역과 교육, 이런 기능이 각기 분화되어 집중투자되었고 이것이 한덩어리를 이루면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어반 클러스터를 형성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근대화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능적으로 분화되어 집중투자된 어반 클러스터가 호남지역에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보세요! 우리나라에는 대체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어반 클러스터가 3개가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을 묶는 경인지역 메가시티 어반 클러스터, 방금 말씀드린 대구·울산 어반 클러스터, 부산, 마산·창원, 광양을 잇는 부산·광양 어반 클러스터, 이 세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개가 모두 경부선을 축으로 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부 어반 클러스터주축은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경제가 미국·일본을 축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국토의 모습은 이러한 미·일 주축경제·사회·문화·학문·예술구도에 따라 결정되어온 것입니다. 보이는 건축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문명의 세계는 이와 같이 하나로 밀착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황해도시공동체라는 것은 세계문명의 주축시대가 미·일축에서 중·일축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한반도 국토의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에 미국이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며, 미·일축과 중·일축의 새로운 긴장관계가 황해도시공동체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조선반도의 운명은 바로 이러한 긴장의 역학관계 속에서 어떻게 창조적인 발란스의 새로운 기축(axis)을 마련하는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황해를 보세요! 현재 메가시티는 3개가 있습니다. 뻬이징·티엔진 메가시티, 서울·인천 메가시티, 상하이·난징 메가시티, 이 세 메가시티가 모두 과밀현상을 일으켜 새 문명의 허브(Hub, 輪軸)로서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여기에 완벽하게 도시 건축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탁 트인 새로운 거대공간이 요구됩니다. 바로 이 거대공간은 새만금밖에는 없습니다. 새만금에는 서울특별시의 3분의 2나 되는 규모의 도시가 형성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배상의 문제도, 철거민의 문제도, 소유의 문제도 없는 완벽한 신천지의 드림랜드입니다. 더구나, 군산·익산·전주·김제·정읍 5개 도시의 기능적으로 분화된 내륙의 어반 클러스터와 연계하고, 이 지역의 군산·김제의 2개 공항을 영종도와 연결시키고, 군산·새만금의 항구시설을 인천·목포항구와 연결시키고, 또 다시 서해안고속도로 그리고 호남고속철도와 연결시키면 20세기의 뉴욕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21세기의 동북아중심도시로서 새만금이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며,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중단이 아닌 개선입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을 제 주변사람들이 너무 이해해주질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호남지역의 정치적 개선은 영남에 대한 ‘균형발전’이 아니라 ‘경쟁발전’이 되어야 하며 그것은 미·일축의 서구일변도 모습에서 중·일축의 다변화가 우리국토에서 새롭게 흥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만금을 이와 같이 어반 클러스터 네트워크의 장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방조제를 막아 갯벌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새만금 방조제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낙동강입구를 완전히 봉쇄한다는 것과도 같은 터무니없는 짓입니다. 낙동강입구를 막는다면 영남일대가 모두 사지화(死地化)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호남평야의 생명인 만경강과 동진강의 강하구를 막으면 시화호의 비극 정도가 아니라, 그 오염이 역류하여 우리나라의 위대한 호남평야 전체가 썩어갈 것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왜 아무도 예견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갯벌 위에는 아무런 공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베네치아를 보십시오. 그곳은 바다 앞에 기다랗게 생긴 섬 3개(리도, 말라모코, 치오기아)가 천혜의 방조제를 형성하고 있고 그 섬 3개 밖으로는 외해(mare), 안으로는 내해(lagoon)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내해는 연안도시와 섬들간의 천혜의 물류·교통의 길을 형성해주고 있습니다. 새만금의 경우도 지금까지 쌓은 방조제와 연안의 개발을 이용하면 베네치아보다 더 위대한 도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새만금 갯벌은 이 도시의 물류의 장인 내해가 되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방조제 위에다 도시를 건설한단 말입니까?
“의아스럽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한번 직접 가보십시오. 바다 한가운데의 방조제의 폭이 자그만치 290m나 되며 그 높이가 36m나 됩니다. 그것이 4.5Km를 남기고 33Km나 뻗어있습니다. 이 방조제 위에 건설할 수 있는 대지면적이 맨하탄 전체를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5·6층 건물은 기초없이 세울 수 있으며 36m 높이의 7배나 올라갈 수 있는 중압을 거뜬히 버틸 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농업기반공사의 방조제공사를 세계사의 경이로운 토목사업의 성과로서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바다를 막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시킨다면 인류사상 돌이킬 수 없는 최대의 환경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
“저의 안은 중단이 없습니다. 저의 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방조제·방수제를 쌓아나가야 합니다. 단지 그 방향과 플랜이 변경되는 것입니다. 저는 환경단체의 주장보다는 농업기반공사 사람들의 납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농기공 내에는 단지 이해부족으로 생각이 못미쳐서 그렇지,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농기공의 사업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활력을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농기공은 이 사업에 계속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은 안을 관계실무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요?
“이 일의 추진과정이 당초로부터 ‘개간’이라는 ‘쌀과 땅의 신화’로부터 로칼한 관심 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지방관리들의 지역적 관심에서 기안된 서류들이 그냥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상부에서 예산도장만 찍혀내려온 실상이 그 원흉이지요. 다시 말해서 국가경영의 총체적 비젼이나 철학, 원리원칙이 있었던 플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기적 관련이 없는 세칙만 있고 전체적인 비젼이 없는 안이었기 때문에, 동네 쬐그만 구멍가게발상을 갑자기 거대한 국영기업체사업으로 뻥튀긴 것과도 같은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현재 와서 그 전체문제를 코디네이션할 수 있는 철학과 원칙이 부재한 것입니다. 게다가 타성의 안일함 때문에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기 어려운 불안감에 떨고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인식의 전환을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도민 스스로가 유족한 감자바위동네의 꿈만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를 연상케하는 선생님의 새만금 아쿠아폴리스를 설명해주시지요.”
“간단히 말하면 1호방조제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세계상설무역박람회를 유지할 수 있는 3억톤 수량의 담수호가 있는 엑스포시티(Exop City)를 건설하고, 2호방조제를 중심으로 항만도시(Human Port)를 건설하며, 3호방조제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할 만한 천혜의 12개 고군산군도를 연결하여 해상관광도시(Tourism City)를 건설하며, 4호방조제와 군산, 금강, 만경강을 활용하여 해양생명과학도시(Marine Bio-tech Valley)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경강과 동진강하구 사이에 돌출한 봉화산일대에 내륙 중심도시인 케이프 타운(Cape Town)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다섯개의 도시 중 2호방조제의 국제항만시설은 글로발 네트워크(global network)의 중심이 되며, 봉화산일대의 케이프 타운은 로칼 네트워크(local network)의 중심이 되어 내륙의 호남평야 5개 도시연합(군산·익산·전주·김제·정읍)의 센터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중 항만시설은 중앙정부가 투자하고 봉화산 케이프 타운은 지방정부가 투자하며, 나머지 세 개 즉 엑스포시티와 관광도시 해양생명과학도시는 국제자본이 투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원가경쟁력, 세계경쟁력, 그리고 공학적 기술문제의 해결이 과제상황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드릴 시간이 없군요. 그러나 한마디만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저 혼자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하바드대학의 건축대학원(GSD)의 피터 로에(Peter Rowe)교수팀, 칭후아대학 우리앙용(吳良鏞)교수팀, 서울대 안건혁교수의 한아도시연구소팀, 조창걸회장님의 한샘연구소팀, 그리고 저의 아키반팀, 이 다섯 팀이 6년전부터 공동으로 연구해온 결과를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저희들의 첫모델은 서울·인천·영종도를 연결하는 인천 앞바다의 거대 수상도시건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너무 스케일이 작아 황해도시공동체의 새로운 물류중심이 되기에는 적정조건이 갖추어지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국제적 여건을 고려하여 우리의 최종결론이 새만금으로 낙착된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저의 안은 일체의 부정이나 중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이고 독단적이질 않습니다. 대체적 방향에 합의를 보면 어떠한 합리적 의견이라도 수용하여 끊임없는 보완과 발전이 가능한 인류공동의 숙원사업이라는 것이죠.”
-선생님의 과거작품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새만금구상에 그러한 하자가 있을 수도 있다면 무어라 답변하시겠습니까?
“뼈아픈 지적입니다. 지금 제가 여의도를 설계했다면 여의도 한가운데로 한강이 흐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참 부끄럽습니다. 서울대학생들에게 죄송스럽습니다. 예술의 전당? 그런대로 기능은 잘 하고 있지만 후회되는 구석이 많습니다. 저는 요즈음 제 인생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는 건축가로서 재능과 기술을 믿고 자연에 오만을 떨어왔습니다. 나의 개념적 구상이 세계를 개벽시킬 수 있다고 자만했습니다. 나는 인위적 도시문명의 가능성만을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새만금구상은 이러한 저의 생명의 죄업을 사함받을 수 있는 구도자적 자세로써 매진해온 것입니다. ’자연친화적’이라는 말도 위선이 많습니다. 자연 갯벌을 있는 그대로 두고, 방조제를 있는 그대로 두고, 주변의 변산경관을 더 이상 해치지 않고, 생명의 바다에 뿌려진 씨앗처럼 스스로 자라나는 아쿠아폴리스, 전북인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고, 인류 공동의 현실적 삶과 생명의 이상을 조화시키는 그러한 구상에 저의 생애의 가치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분노보다는 자기의 업보에 대한 반성, 우리주변에 널려져 있는 오류의 한 형태가 대규모되었을 뿐이라는 무서운 죄책감이 저의 요즈음 생의 순간들을 섬뜩섬뜩 찌르고 들어옵니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은 금강산을 옥으로 깎은 선녀의 입상이라 한다면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좌상의 모임이라 했다. 쳐다보고 절하고 싶은 것이 금강산이라 한다면 끌어다가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 변산이라?했다. 변산 꼭대기 월명암에서 새만금의 낙조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썼다: “뒤에는 고부의 효심산, 앞에는 계화도로부터 고군산의 무더기 섬, 형제의 쌍둥이 섬이 석가산(石假山)처럼 내려다 보이는 밖으로 바다! 구름과 입맞추는 바다가 낙조 없이라도 이미 내 흉금을 탕척(蕩滌)하여 낸다. 물붓이 한번 지나간듯한 구름밖으로 잠자는 광선이 부시시 기동을 하면서 하늘과 바다를 한데 어울려서 응달에서 익은 모과(木瓜)빛을 물들여낸다. 누르다면 엷고 붉다하면 짙다. 울고싶은 정, 소리지르고 싶은 정, 뛰어가서 덥썩 껴안고 싶은 정이 그대로 북바쳐 나온다. 보송보송한 날의 낙조는 내가 어떠한 줄을 모르지마는 약간 운애(雲)를 낀 낙조 그대로에 나는 말할 수 없는 느꺼움을 자아내었다. 무엇이라 할까? 무엇이라 할까? 그렇다! 의성태궁(疑城胎宮)을 격(隔)하여 건너다 보는 극락세계가 저러한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