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소년의 할아버지는 해마다 참외농사를 지으셨다.
이른 봄, 씨를 심어 모를 기르고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는 터널재배를 하셨다. 노지에서 기르는 것보다 한 달 정도 이르게 7월 초에 수확이 가능했다. 첫 꽃이 필 무렵이면 할아버지는 밭 한가운데에 북어 한 마리를 준비하고 술 한 잔을 부어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는 절을 올리셨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겠지만 아마도 농부 스스로 농사를 잘 짓겠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
수확이 시작되면 파는 것은 시골소년의 어머니 몫이었다.
참외를 완행버스에 싣고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인근 도시로 가서 중개상에게 넘기고 오셨다. 포장박스를 재사용하기 위해 머리에 이고 땀으로 범벅이 된 앞머리를 연신 쓸어 올리시며 집으로 돌아오시던 시골소년의 어머니 ......
참외의 원산지는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답게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에서 동양으로 전파되어 정착된 것은 참외가 되었고 유럽으로 건너가 정착한 것은 멜론이 되었다.
참외는 식물분류학상 멜론과 같은 종이다.
우리나라는《해동역사》《고려사》등의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재배가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한다.
수박이 고려시대에 도입되어 조선 중기 이후에 일반적으로 소비가 된 반면에 참외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식량 대용으로 이용할 정도로 친숙한 채소였던 것이다.
조선 정조대왕이 1795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화성에 다녀와서 그 의전 행렬을 상세하게 기록한 〈능행반차도〉그림에는 금칠과 은칠을 하여 눕혀 놓은 참외가 등장하는데 다산과 다복을 상징한다.
조선중기 박동량의 《기재잡기》에는 세종대왕이 용인, 여주, 이천으로 사냥을 다니면 백성들이 청참외와 보리밥을 대접하였고 왕은 술과 음식으로 답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유배지에 있는 단종에게 ‘사철 과실을 바치고 텃밭을 마련하여 수박이나 참외, 채소를 많이 준비하여 음식으로 활용하라.’고 강원도 관찰사에게 하명하였다.
또한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가면 참외선물을 많이 받았다고 하였는데 일본에서도 여름에 보편적으로 즐겨 먹던 채소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근대잡지《별건곤, 1928》에는 조선시대 정치인 정도전의 탄생설화를 기록하였는데 양반집 여자 노비가 심부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 원두막 피신하였는데 먼저 원두막에 와있던 젊은 선비와 눈이 맞아 사랑을 나누고 탄생하였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도전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서자출신 집안사람이라고 하니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선을 정탐하기 위해서 1893∼1894 일본의 스파이로 활동한 ‘혼마 규스케’는 그가 정탐한 내용을 기록한 《조선잡기》에서 ‘참외, 수박이 익었을 때는 쌀 시세가 떨어지고 일본인의 과자 가게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폐점에 이를 지경인데 조선 사람들이 참외, 수박만을 먹기 때문이고 도로의 배설물에는 참외 씨가 넘쳐난다.’고 하였으니 당시에 얼마나 많은 참외를 먹었을까 짐작이 간다.
참외의 ‘참’은 ‘어긋남이 없이 옳고 바른 것’이라는 의미이고 ‘외’는 ‘오이’라는 것으로 직역하자면 ‘진짜 오이’나 ‘오이보다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고려시대 청자로 국보 94호 ‘청자소문과형병’은 참외 모양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아 참외재배의 대중화와 여름철 채소로 인기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전국 각지에서 강서참외, 골참외, 개구리참외, 열골참외, 먹참외와 같은 재래종이 재배되었고 개구리참외는 지금도 천안 일부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품종개량이 이루어졌고 이후 ‘금싸라기’ 같은 우수한 품종들이 개발되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참외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재배가 되었으나 현재는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중국이나 일본의 참외는 한 개의 꽃에 암술과 수술이 같이 있지만 우리나라 참외는 암꽃과 수꽃이 다르게 핀다. 따라서 우리나라 참외는 벌과 같은 곤충이 수정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나라 참외는 독자적으로 개량되어 왔다는 학설도 있고 2016년에는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국제식품분류에 없던 참외가 ‘Korean melone’의 국제명칭으로 등록되었다.
참외하면 떠오르는 원두막, 서리, 개똥의 아련한 추억도 있지만 풍부한 영양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이뇨작용과 갈증을 없애는 한방 약재로도 사용되었다. 수분이 많아 갈증해소에 좋고 함유된 포도당과 과당은 체내 흡수가 빠르고 칼륨이 많아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관 기능을 개선해 준다. 무엇보다도 아삭한 식감과 달콤한 향기가 우리 입맛을 유혹한다.
진정한 한국의 여름 맛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