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탈 이렇게 벗었다.
충남 대전시 문창 2동 지도자 이 장 호
새마을의 싹을 새마을금고에서
대전시 남부 변두리에 위치한 문창 2동은 주민 대부분이 날품팔이 또는 행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영세한 동으로서 주민 60%가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어 시내 47개 동 중에서 재산세 부담세율이 가장 낮은 아주 가난한 마을로서 학교나 병원, 여관 기타 어린이 놀이터 등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낙후되고 빈한한 지역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월 5%이상의 비싼 고리채를 빌려 써야하는 이곳 영세한 주민들은 생활의욕을 잃고 대낮부터 윷이나 음주로 소일하는가 하면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며 도박도 서슴지 않고 툭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3등 인생들이 모여 사는 어지러운 마을이었다.
퇴폐한 생활 그대로를 반복하며 서로를 불신하고 상호 갈등으로 살벌한 생활을 하여가는 주민들을 보다 못한 문창 2동 지도자 이장호 씨는 놀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 다른 마을과 같이 잘사는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결심하고 동장과 마을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1977년 3월 15일 조그마한 사무실을 임대 내어 회원 35명으로 자산 45만원을 모아 문창 2동 새마을금고를 창립했던 것이다.
우선 봉사 체재를 확립하기 위하여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협조를 갖고 회원모집에 불철주야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으나 약 1년 전부터 창립을 본 회원 6백여 명에 자산 1억 8천만 원의 남대전 협동조합과 천주교도를 중심으로 한 자산 1억의 문창 신용협동조합이 이미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금고를 설립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남대전 협동조합과 문창 신용조합이 있는데 무엇 하러 새마을금고를 새로 설치하느냐며 아예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지도자 이 장호 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주미들이 출자한 자금은 주민에게 분배되며 마을을 위하여 사용 된다는 것을 누차에 걸쳐 설득한 결과 회원이 늘게 되고 비협조적이었던 주민들이 조금씩 마을금고에 출자하는 성의에 힘입어 어떻게 하면 회원들의 자산을 늘려 바람직한 새마을금고를 만들 수 있을까? 에 전념하게 되었다.
끈질긴 집념으로 5억을 돌파
회원들의 편익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해주고 봉사 태도를 확고히 하면 새마을 회원 참여와 자금조성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주민들의 애경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여 같이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하는 등 상부상조의 생활태도를 가짐으로써 주민들과의 인간적인 유대를 한층 더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
또는 매월 실시하는 반상회를 순회하면서 새마을금고에 대한 홍보에 전력을 다하고 예비군 훈련 시에도 30분씩 시간을 할애 받아 회원가입을 호소하여 많은 성과를 얻게 되었다.
가정에는 가훈이 있듯이 동에도 동훈을 만들자고 주민들에게 제의하여 문창2동 동훈을 “한 가정 한 통장 갖기”로 정했으며 통별로 경진대회를 열어 선의의 경쟁의식을 갖도록 노력했다. 이사회를 열어 금리를 조정하고 단 하루를 예치하더라도 이자를 계산해 주는 마을 예금제도를 신설하였으며 영세민의 고리채를 없애기 위해 가난한 주민 위주로 1백만 원 이하는 신용 대부해 주는 혜택을 주기 시작했다. 일수놀이를 없애기 위해 일일 적금제도를 신설 10만원 대출시 고리채보다 1만 5천원을 적게 받는 편익을 주민에게 주어 일수놀이도 근절시켰던 것이다.
또한 마을금고 임직원들은 친절과 봉사로서 근무에 임하고 타 금융기관 보다 한 시간 먼저 문을 열고 두 시간 늦게 문을 닫는 자세로 주민을 위해 봉사했으며 관내 50여개의 자생조직 대표자와 개별적인 접촉으로 회원을 흡수하는데 성공하여 77년 결산 결과 3천여 명의 회원과 자산액 2억을 돌파하여 도내 시범 새마을금고로 발전하게 되었다.
새마을금고를 주민 복지사업에
이제 회원 6천 8백여 명에 자산액 9억을 돌파한 문창 2동 새마을금고는 충효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매년 효부 효녀 4명을 선발 표창했고 1인당 2만원씩을 상금으로 전달했으며 30평의 노인 회관을 건립 45명의 노인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하였음은 물론 연 3회 25만원을 들여 경로잔치를 베풀고 연간 37만원의 운영비를 지원 연탄을 공급하고 장기바둑 등 오락시설을 갖추어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하였다.
건평 40평의 공동구판장을 마련하여 1천5백만 원을 투자 가전제품 1천여 종 및 생활필수품을 판매하여 중간 상인의 이익을 회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였다. 또 2.5톤의 화물자동차를 구입, 구판장 상품을 직접 운반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회원들의 이삿짐 운반과 연료 파동에 대비 연탄 판매 허가를 얻어 연탄을 싼 값으로 운반 공급해주고 있다.
마을금고 회원들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구판장은 주민들이 적극 이용하여 이제 1일 매상 3십여 만원 연간 1천 2백만 원의 순수익이 회원들에게 고루 배당되었다.
어린이 예금창구를 개설하여 어린이들의 저축심을 길러 주는가 하면 매주 수요일에는 관내 문창국민학교에 직원이 파견되어 예금 수납업무를 취급하고 저축실적이 우수한 학생 150여명을 선발 시상하여 저축의욕을 높여 주고 있다.
3천여 권의 책을 비치한 독서실을 마련하여 언제든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어린이 놀이터를 설치하여 어린이들이 활달하게 놀 수 있고 신체단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하였으며 회원의 자녀들 중 성적이 우수하거나 가난하여 진학을 못하는 모범학생 55명을 엄선하여 144만원의 장학금을 분기별로 지급해 주기도 하며 새마을 학교를 개설 노인반 부녀반 청소년반으로 구분 새마을 정신교육을 실시 4백 8십 명을 수료시켰다.
도시 새마을사업으로는 휴지통 30개 이동식 화단 50개소를 설치 도시 미관은 물론 밝고 명랑한 거리를 조성하고 주민 숙원사업인 하수구 120m를 설치하는 등 크고 작은 사업을 마쳤다. 회원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한편 점진적으로 지역사회 개발에 참여하여 공과 사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찾아와서 상의하면 불편 없이 도와주는 새마을금고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한 가정 한 통장 갖기에서 한 사람 한 통장 갖기로 동훈을 바꾸고 착실히 성장하고 있어 79년도 하반기에는 10억을 무난히 돌파하리라 확신한다.
복지 마을을 향해
90평의 현대식 건물에 아담하게 사무실을 꾸미고 16명의 직원이 성심껏 일하고 있는 문창 2동 새마을금고는 7천만 원의 순이익금으로 25%에 해당하는 4천여만 원을 회원에게 고루 배당하고 나머지 3천만 원 중 1천만 원으로 청소차 1대를 구입 청소업무를 대행 주민의 편의를 제공할 방침이다.
또한 1천여만 원으로 지저분한 하수구를 다시 개수하고 비포장 된 마을 안길을 포장하여 명실 공히 깨끗한 마을을 만들고자 한다. 80년도에는 7백여만 원의 장학금을 마련 전 회원의 자녀가 중 고등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게 하여 백년대계를 이어받을 역군을 길러내는 교육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며 현재 새마을금고 사무실을 증축하여 지하에는 새마을공장을 설치 유휴 노동력을 흡수 소득증대에도 힘쓰고 2층에는 새마을예식장을 만들어 무료로 대관함으로써 회원은 물론 영세민들의 부담을 줄여 가정의례준칙도 이행토록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계획이다.
이제 문창 2동 새마을금고는 이사장 이하 임직원 전원이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새마을금고를 모체로 굳게 몽쳐 80년대에는 전국 제일가는 새마을금고를 만들기 위하여 회원 전체가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1979 내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