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통
小珍 박 기 옥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사문진 나루터는 특별하다.
100년 전 선교사 부부가 한국 최초로 이곳을 통해 피아노를 실어 왔기
때문이다. 나루터에 도착한 피아노는 짐꾼 20명에 의해 사흘에 걸쳐
대구 약전 골목의 선교사 사택으로 옮겨졌다.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은 주민들은 무서웠고, 신기했다.
나무 통 안에 귀신이 들어앉아 내는 소리라 하여 귀신통이라 불렀다.
내가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친구 해자가 제 방에서 그것을 치고 있었다.
독일 유학 간 이모가 보내 준 것이라 했다. 나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하여 한참동안 피아노의 앞, 뒤를 살펴보았다.
어른들 말 데로 나무통 안에 귀신이 들어앉아 있는 것도 같았다.
자랑하듯 피아노를 치던 해자가 한 손으로 건반을 주루룩 훑어 보였다.
“너 이거 건반이 모두 몇 갠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88개다!”
그 순간 귀신통 하나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매일 해자의 집을 드나들었다. 피아노 때문이었다.
돈으로 사기에는 너무 비싼 피아노. 몰래 훔치기엔 너무 큰 피아노.
어느 날 레슨 간 해자를 기다리다 피아노 건반을 가만히 눌러 보았다.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나의 몸이 귀신이 든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뜨거운 피가 내 몸 속에서 한꺼번에 휘몰아쳤다.
나는 왠지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피아노가 들어온 지 100년 후 사문진 나루터에서는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렸다.
풍류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기획이었다. 별이 총총한 가을 밤
5,000여명의 관객이 나루터에 모여드니 피아노 100대가 무대를 차렸다.
100대의 귀신통이 모여든 셈이었다.
박수가 터지자 귀신통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양음악, 가요, 산조협주곡이 귀신통을 통해 울려나왔다.
임동창은 기인(奇人)이었다. 동서양의 음악을 믹스하여 관객들을
몰아치는데, 강은일이 해금을 들고 와 열기를 보탰다.
그들은 관객보다 연주자가 더 신나는 연주를 선사했다.
어쩌면 그들은 미치지 않았나 몰랐다. 즈네들끼리 서다가 앉다가,
연주 중 마주보고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피아노가 쉬는 사이 반가운 얼굴들이 등장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브루흐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피아니스트 조재혁은 쇼팽 연주로 100명의 연주자들을 격려했다.
뮤지컬 배우 이태원은 <명성왕후> OST를 불렀고,
최덕술과 쓰리 태너는 오페라 아리아를 선사했다.
장사익은 앙코르에 앙코르를 거듭했다.
<대전 블루스> 도중 그는 관객을 향해 외쳤다.
“사모님. 오늘밤 가정을 버리세~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 마음 속의 귀신통은 꼬리를 내렸다.
형제 많은 중산층 가정에서 피아노를 갖는 일은 언감생심 입도 뻥끗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사회에서 빨리 망하려면 정치를 하고,
천천히 망하려면 악기를 하라 했을까.
그러나 나는 열병처럼 한 번씩 어린 시절 해자네 집에서 남몰래 피아노
건반을 눌러 보던 감회를 떠올리곤 했다.
몸 전체가 뜨거운 귀신통이 되어 후덜덜 떨리던 그 감동을 어찌 잊을까.
삶이 시시하고 허망할 때, 때로 서럽고 울적할 때면 나이에 관계없이
가슴 한켠에 뜨거운 귀신통 하나 품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막이 내리고 나루터에서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하나 둘 조명이 꺼지면서 100대의 피아노도 뚜껑이 닫히리라.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100명의 연주자들도 행사 기간 내내 그들과
한 몸이 되었던 귀신통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도 행사가 끝나면 귀신통의 열병을 앓게 되지 않을까.
늦은 밤, 가을바람은 차가웠다. 하늘을 가르는 폭죽을 눈으로 따라가니
잊었던 달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