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허 스님의 ‘산중미(山中味)’
세간의 번잡함 끊고 피어오르는 수행의 향기,
“선열의 기쁨은 욕심 집착 내려놓을 때 차오른다.”
산중 수행자의 일상 담은 글
적막 온전히 나를 닦는 바탕
편안함에서 생겨나는 환희심
조선 초기 함허스님이 유학자들의 불교 비판을 논박하고,
유교·불교·도교의 근본이 다르지 않음을 밝힌 글이다.
특히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배불론에 대응한 불교계의 대표적인 반론서이다.
‘산중미’는 수행자의 일상과 선의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 초기의 억불(抑佛) 정책 속에서도 묵묵히 불교의 가르침을 이어간 이가
함허 기화(涵虛 己和, 1376~1433)스님이다.
스님이 남긴 수행의 자취는
오늘날 전해지는 선시(禪詩)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중 <함허당득통화상어록>에 실린 ‘산중미(山中味)’는
첩첩산중에 머무는 수행자의 일상과 선(禪)의 마음을 담아낸 시라 할 수 있다.
이 詩는 깊은 산속의 경치나 한가로운 산중 생활을 읊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세상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자연을 마주하다가, 차(茶)와 향(香)을 곁에 두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행의 과정을 보여준다.
詩 전체와 그 뜻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山深谷密無人到 (산심곡밀무인도): 산 깊고 골짜기 빽빽해 이르는 사람 없고,
盡日寥寥絶世緣 (진일요요절세연): 종일토록 적막하여 세상 인연 끊어졌네.
晝則閑看雲出岫 (주즉한간운출수): 낮이면 한가로이 산봉우리에서 피어나는 구름을 보고,
夜來空見月當天 (야래공견월당천): 밤이 오면 무심히 하늘에 뜬 달을 보네.
爐間馥郁茶烟氣 (노간복욱다연기): 화로에는 향기로운 차 달이는 연기 피어오르고,
堂上인운玉篆煙 (당상인운옥전연): 불당 위에는 옥전 같은 향 연기 자욱하게 서리고,
不夢人間喧擾事 (불몽인간훤요사): 인간 세상의 시끄러운 일은 꿈꾸지도 않으며,
但將禪悅坐經年 (단장선열좌경년): 다만 선열에 들어 세월을 보내네.
수행의 첫걸음은 복잡한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데 있다.
시에 나오는 “종일토록 적막하여 세상 인연 끊어졌네”라는 구절이 딱 그런 모습이다.
바깥일과 얽힌 ‘세연(世緣)’이 닿지 않는 산속은 멀고 외딴곳이 아니다.
이곳에 머무는 건 속세가 싫어서가 아니라, 어지러운 생각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다.
시끄러운 일들을 내려놓으면 내면은 한없이 차분하고 잔잔한 ‘요요(寥寥)’의 상태가 된다.
주변이 텅 비어 쓸쓸한 게 아니라, 복잡한 머릿속이 맑게 비워진 것이다.
바깥이 잠잠해야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듯,
산속의 적막은 온전히 나를 닦는 든든한 바탕이 된다.
복잡한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낮이면 한가로이 산봉우리에서 피어나는 구름을 보고”라는 구절이 그렇다.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산에 걸친 구름과 밤하늘의 달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구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보고 달이 뜨면 뜨는 대로
바라보는 데서 스님의 한가로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구름을 ‘한가롭게 바라본다(閑看)’는 것은 심심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 아니다. 산봉우리에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은 우리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복잡한 생각들과 비슷하다.
흘러가는 구름을 억지로 붙잡지 않듯,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도
애써 쫓아내거나 매달리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밤하늘의 달을 ‘무심히 바라본다(空見)’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본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낮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밤에는 달이 떠오른다.
스님은 구름이 나타나면 구름을 보고, 달이 뜨면 달을 볼 뿐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도 억지로 막거나 붙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
이러한 태도에서 마음을 닦는 수행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구름과 달을 바라보는 모습에 이어 화로와 불당이 나온다.
화로에는 ‘차 연기(茶烟氣)’가 피어오르고, 불당에는 향 연기가 자욱이 서린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여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다 보면 흩어졌던 마음도 차츰 가라앉는다.
차를 달이는 시간은 눈앞의 일에 마음을 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운? ‘연운(煙雲)’은 기운이나 연기가 짙게 어리는 모습을 뜻하며,
여기서는 향 연기가 불당 안에 가득 퍼져 머무는 모습을 가리킨다.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전서 글씨의 획처럼 굽이치며 이어진다고 하여 ‘옥전연(玉篆煙)’이라 했다.
이처럼 차를 달이고 향을 사르는 일은 산중 수행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차와 향이 있는 산중의 생활을 보여준 뒤, 마지막 두 구절에서는 함허스님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는지를 말한다. 그는 세상의 시끄럽고 어지러운 일을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훤요사(喧擾事)’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온갖 소란스러운 일을 뜻한다.
이는 세상일을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세상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수행하면서 얻는 기쁨이 ‘선열(禪悅)’이다.
선열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잠시 느끼는 즐거움과는 다르다.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편안함에서 생겨나는 환희심을 뜻한다.
함허스님이 말한 ‘좌경년(坐經年)’은 이러한 선열 속에 앉아 세월을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다는 말이 아니라, 한자리에 머물러
수행을 꾸준히 이어가며 세월이 지나도 그 마음을 놓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선열은 잠시 느꼈다가 사라지는 기쁨이 아니라, 꾸준한 수행과 함께
오래도록 이어지는 기쁨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함허스님의 ‘산중미’에는 산속에서 수행하며 살아가는 한 스님의 하루가
담겨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구름과 달을 바라보고, 화로에 차를 달이며 불당에 향을 사른다.
세상의 시끄러운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선열을 누리며 오랫동안 수행을 이어가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시가 말하는 ‘산중의 맛’은 특별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차를 달이고 향을 피우며 눈앞의 일을 한결같이 이어가는 가운데 얻어지는 고요와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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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허 스님
함허 스님은 1376년부터 1433년까지 활동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법명은 기화이고 당호가 함허이다. 『금강경오가해설의』, 『유석질의론』 등을 남겼으며,
강화 마니산의 함허동천과 정수사가 그의 수행과 관련된 사적지로 알려져 있다.
1376년 충청도 중원에서 출생
1396년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
1397년 회암사에서 무학 자초의 법요를 들음
1433년 봉암사에서 입적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익혔지만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했다.
이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경전을 강의하고 사찰을 중수했으며,
조선 초 불교 억제 정책 속에서도 불교의 정당성과 가르침을 옹호했다.
그의 사상은 선종 수행, 경전 해석, 불교 옹호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유석질의론』은 유교와 불교를 배척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밝히면서 불교의 진리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6년 9월 15일
불교신문
출처 : 무진장 - 행운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