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적 물음의 이론화
발 표 자 : 장 래 일
예술, 철학, 진리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한마디로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그 대신 예술작품의 본질을 규명하는 서술을 가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상보다는 본질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에는 근본적으로 개념을 신뢰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아도르노 역시 개념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개념과 관련하여 그가 거부한 것은 개념의 진리 능력에 한정되어 있다. 개념은 진리를 담보하거나 전달할 수 없다. 아도르노는 철학과 달리 예술에는 진리를 담보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아도르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작품에 들어 있는 미적 긴장을 감각적인 요인보다는 정신적인 요인에 훨씬 더 많이 귀속시킨다. 예술작품에서는 철학에서 부정사유를 하게 만든 ‘거짓된’ 현상과 이를 넘어서려는 ‘참된’ 사유 사이를 가로지르는 심연이 미적 긴장이라는 이름 하에 ‘감각적’으로 나타난다. 철학보다 예술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했으므로 아도르노가 감성의 자발성에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요인이 주도하는 예술작품이라도 미적 긴장을 감각적으로 실행하려면 경험적 소여들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예술작품이 경험적 조건의 구속을 받아 한계에 봉착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한계를 수용하여 아도르노는 조건과 실현 가능성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구도로 이론을 구성했다.
아도르노는 시민사회 형성기의 예술작품이 자연조화미 범주에 부응하는 독특한 미적 질을 확보하고 있지만, 시민사회라는 틀 때문에 알레고리에 멈추고 말았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알레고리 수준을 넘지 못한 까닭은 조화미 범주에 들어 있는 정신적 내용을 실현하기에는 경험적인 조건이 너무도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이런 식의 해명은 예술을 둘러싼 논의에 다시금 철학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험적 구속성은 예술의 필연적인 조건이지만, 이 조건은 동시에 정신의 힘으로 극복해야할 대상인 바로 그 경험계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는 현재의 세계 상태에서 경험 가능한 소여들은 모두 비진리의 계기들에 따라 움직인다고 선언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즉 인공품인 작품을 ‘예술’이 되게 하는 것은 정신이다. 하지만 예술의 정신은 예술작품이 경험계에서 알레고리로 현상하도록 한다. 이 알레고리, 즉 현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정신과 맺는 관련을 ‘독해’하는 일은 오직 철학만이 할 수 있다. 미학과 개념(이론)은 이처럼 서로 침투하나, 궁극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최상의 기관은 철학이다.
미적 긴장
예술은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품이 가공 과정에서 내부로 흡수한 정신에 의해 예술작품이 된다는 예술의 존재방식이 미적 긴장을 일으키는 경험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미적 긴장을 아도르노는 예술이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예술작품은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드러나는 현상을 넘어서는 무엇을 내적 필연성으로 지니고 있으므로 현상을 상대화한다. 이처럼 현상이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인공품을 우리는 예술작품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이 없다면 현상은 그 천진스러움 때문에 그저 비본질적으로 될 뿐이다. ?부정변증법?에서 아도르노는 비동일자만이 참된 진리를 보장한다고 설파했다. 이 논증은 우리로 하여금 즉물적?감각적인 것을 부정하게 한다. 사고와 현존사이의 심연을 인지함으로써 비타협적인 사고를 연마할 수 있게 되고, 갈고 닦은 비타협적 사유는 자기부정을 수반할 것이다. 비동일자는 예술?작품의 성립원칙이다. 이 원칙은 현상의 발현에 직접 간섭하면서 예술작품이 미적 긴장 관계 속에서 드러나도록 한다.
예술의 이중적 성격
예술작품의 이중성은 자율적임과 동시에 사회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표상 능력에 의지해 개인은 사회에 대한 대립항으로 상정된 자율적 주체라는 정체성을 구현하면서 사회로부터 오는 자극에 반응한다. 그뿐 아니라 그가 어떤 종합을 구성하여 사회적인 체험 자체가 가능해졌다면, 이 역시 전적으로 표상 능력에 의지해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는 개인이 자신의 인지 능력과 반성 능력을 통해 개인과 사회 사이의 모순을 터득함으로써 가능하다. 개인이 모순을 깨닫게 되면, 깨달음을 통해 획득한 인식은 사회를 거스르는 ‘내적 운동’을 강화할 것이다. 이 내적 거스름이 아도르노가 예술이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다. 이렇게 하여 사회적 대립의 주관적 내재가 예술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이는 정신화됨으로써만 가능한 과정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이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예술작품의 존재론
예술은 정신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경험 세계에 한쪽 발을 딛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은 자신의 현존에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내적 모순을 등에 업고 자신의 경험적 실존을 관철할 수밖에 없다. 부정사유의 비동일자와는 달리 예술의 경우에는 정신적 계기들이 사유상의 원리로만 들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존재 기반인 경험적 계기들에 스스로를 대립시켜 설정하는 정신적 계기가 경험계로 발을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경험적 실재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여타의 경우라면 동일성 강제에 의해 밀려났을 비동일자를 자기 속으로 흡수해 들일 수 있다. 따라서 아도르노에 의한 예술적 종합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처리에 의해 비동일자가 경험적으로 실행되는 것이다. 인간의 ‘손놀림’에 의해 비동일자가 예술이라는 현상계의 사물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미적 태도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을 예술적 구성 속으로 끌어들여 종합하는 능력이다. 예술작품을 ‘창작’한다고 말하는 연유가 바로 이런 구성 방식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창조의 결과물, 인공품으로서의 예술작품은 창작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해 다시금 자신의 존재론적 자명성에 손상을 입는다. 비경험적인 것이 예술작품의 존재론적 근거를 이루기 때문이다. 인간적 창작의 경험적 결과물에 대한 존재론적 손상이라는 문제는 예술이 인간의 욕구능력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로 설명된다. 아도르노는 미적 구성에서의 이른바 ‘관계적인’ 태도를 명확하게 드러내려고 한다. 그리고 예술에 잔류한 욕구가 ‘관계’를 정리하는 자기상대화의 힘이 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아도르노는 예술작품에 따라붙는 쾌락의 계기에 대하여 예술작품 그 자체가 관심과 거부 사이의 그 어떤 관계에 해당된다는 명제를 제출한다.
이 저항이야말로 현재 실행되는 관계들 속에서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지배 질서에 귀속된 ‘실천’에 대한 반발이요 대립이다. 그러므로 이 대립은 행복을 추구하는 욕구로 환원될 수 있다. 저항이 욕구라는 추진력으로 변환되는 이 고리가 현재 예술 창작의 조건을 이룬다.
인간의 욕구 능력에 대한 이러한 통찰에 이어 아도르노는 미적 쾌락주의에 들어앉은 진리의 계기에 대하여 말한다. 미적 진리는 ‘대자적인 것의 총체성으로서의 경험계’로부터 추방된 채로 남도록 자신을 몰아가는 움직임 속에 들어 있게 된다. 이 움직임은 일종의 전진운동으로, 주체가 이런 ‘추방 상태’를 추구하면서 경험계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있는 주체를 설정하면서 아도르노는 주관적인 쾌감이 예술작품의 창작과정에서 미적 구성을 주도한다고 설명한다. 이 쾌와 ‘뛰어넘음’의 복합체를 칸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숭고의 감정’이 될 것이다. ‘그 사이’ 내지는 미적 긴장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론화는 이로써 ‘견뎌냄의 감정’도 도달한다. 감정은 예술 속에서도 매개되어야 한다. 행복의 미적 형태, 이른바 숭고한 감정이 예술작품 형성 과정에서 구성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아도르노는 전제하고 있다.
※ 예술작품의 진리 담보 가능성에 대하여
개념은 진리를 담보하거나 전달할 수 없지만 예술에는 진리를 담보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예술작품에 고유한 미적 긴장을 감각적인 요인보다는 정신적인 요인에 훨씬 더 많이 귀속시킨다. (190P.7L) 그런가 하면 미학과 개념(이론)은 서로 침투하나, 궁극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최상의 심급 기관은 철학이다(193P.1L)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이 담보하는 진리는 결국 개념(철학)에 귀속되는 것이 아닌가?
※ 예술과 철학의 관계문제
손으로 만들어진 인공품이 가공 과정에서 내부로 흡수한 정신에 의해 예술작품이 된다는 예술의 존재 방식이 미적 긴장을 일으키는 경험적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이 긴장을 기존의 미학은 통상적인 진리 개념과 결부시켜 ‘실증적으로’ 인식에 귀속시켰다. 예술을 절대정신의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인식에 귀속시킨 헤겔 미학은 예술을 정신과 감각 사이에서 어떤 실증적인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상정했고, 결과적으로 긴장관계를 풀어 무마시키고 말았다.(196P.3L) 아도르노는 자기부정의 사유 원리와 그 원리에 부응해 짜이면서 드러나는 경험계, 그래서 진리 관련성도 획득하는 경험계가 어우러져 미적인 것이라고 지칭되는 경지가 열린다고 설명한다.(197P.4L) 예술과 철학의 관계문제에 있어서 헤겔과 아도르노 이론의 차이점은?(실증적인 매개 역할과 자기부정의 사유 원리에 의해 드러나는 경험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
※ 부정변정법에 대하여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미적 물음에 대하여 아도르노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다른 결론에 이르기까지 아도르노가 밟아간 길은 예전부터 있었던 그 길이다. 아도르노도 다른 사람들이 갔던 그 길을 가면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전통 미학의 통상적인 틀을 부정변증법으로 헐어내는 일이었다.
부정변정법을 통하여 전통 미학의 통상적인 틀을 헐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