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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묵상 #157
아 하나님의 은혜로
(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
찬양곡: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영어제목: 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
작사자: 다니엘 휘틀 (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 (James McGranahan, 1840-1907)
찬송곡조(Hymn Tune): EL NATHAN
찬송가사: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보호해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마음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찬송 묵상]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2)
이 찬송의 가사는 ‘나는 모른다(I know not)’는 절과 ‘나는 안다(I know)’라는 후렴의 확신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찬송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이해할 수 없고(1절), 우리의 영적 탄생을 설명할 수 없으며(2절),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3절),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의 미래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며(4절), 주님이 오시는 그날이 언제인지도 모르지만(5절)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에 참되다는 것을 믿음으로 안다!(후렴)는 확신의 찬송이다.
다시 말한다면 이 찬송은 온통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逆說的) 표현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잘 안다고 하는 강조인 것이다.
1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위대하시기에 사실상 모른다고 하는 말이 맞기도 하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너무 오묘하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제한된 범위와 한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사실상 이해 범위 밖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후렴은 디모데후서 1:12 하반절을 KJV의 영어 원문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I know whom I have believed, and am persuaded that he is able to keep that which I ha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우리말 성경을 그대로 인용하면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이다.
우리는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화는 것이 많으며, 또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과 주님의 선하심만 믿으면 된다.
우리 찬송가에는 4절로 되어 있는데, 4절 가사는 원문의 5절 내용이다.
주님 오실 날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주님께서도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6)고 하셨다.
그러나 그날이 우리에게는 두려운 날이 아니라 신부가 신랑을 맞는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이 될 것이다.
우리 말 가사의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이라는 이 찬송의 고백은 우리의 형편, 곧 비천이나 궁핍이나, 기쁨과 슬픔 그 모든 형편을 주님은 다 아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이 "또 이 고난을 받되(kai; tau'ta pavscw)"라고 한 말은 "이런 고난들까지 받되"라는 뜻이다.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주님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잘 알지 못하고서 믿는 것도 귀한 신앙이기는 하나, 알아야 할 것을 알고서 믿는 믿음은 더욱 확신을 갖게 하며 힘이 있다.
우리는 이 찬송 그대로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생명, 또는 영혼을 맡긴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 예수의 보호 속에서 영원토록 안전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찬송가를 부를 때는 ‘나 같이 쓸데없는 자를 왜 구속하여 주셨는지’, ‘왜 굳센 믿음과 복음을 주셔서 내 마음이 항상 편한지’, ‘왜 성령으로 동행하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인지’, ‘또 만나는 그 장소가 어디인지’ 우리가 알 수 없어도 내가 믿는 주님을 반드시 알아야(I know whom I have believed)>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 앞에 선 성도의 의무요 복음으로 말미암아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작사자와 작곡자]
작사자: 다니엘 웹스터 휘틀 (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
다니엘 휘틀은 미국 매사추세츠 치코피폴스(Chicopee Falls, Massachusetts)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미국 출신 정치가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
미국 남북전쟁 때 소령까지 진급한 덕분에 그는 'Major' Whittle로 불렸다.
전쟁 중 오른팔을 잃은 그는 전쟁포로로 종전을 맞았다.
병원에서 회복하면서 읽을거리로 신약성경를 접했지만 기독교인이 되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휘틀은 시카고에 있는 엘진 시계회사 경리로 취직하였다.
10년이 채 못 되어 일을 정리하고 그는 복음 전도단에 가입하였다.
거기서 필립 블리스와 이 찬송가의 작곡가인 제임스 맥그라나한 등 당대의 유명한 복음 찬송가 작가들을 만나 평생을 함께 하였고 그의 딸 메이(May Moody)도 아버지의 가사에 작곡을 했다.
작곡자: 제임스 맥그라나한 (James McGranahan, 1840-1907)
제임스 맥그라나한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펠로우필드에서 태어난 19세기 미국 음악가 겸 찬송작가이다.
그는 생키(Ira D. Sankey)와 공동 작업해 탄생한 79개 찬송 중 39곡을 작곡했다.
휘틀과 함께 무디 전도단에서 음악을 담당했으며, 블리스의 열차사고 현장에서 맥그라나한을 만난 휘틀은 그 때 일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내 앞에 블리스가 선정한 그의 후계자가 서 있구나."
두 사람은 함께 시카고로 돌아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카고에 도착하기 전에 맥그라나한은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온전히 주께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이로써 오페라계는 스타를 잃어버렸고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단은 위대한 복음 찬양자를 얻게 되었다.
맥그라나한은 그 후 미국은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에까지 나가 전도하였다.
그가 세상 일을 다 버리고 전적으로 전도단에 합류하여 일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다.
찬송곡조(Hymn Tune): EL NATHAN
EL NATHAN은 부흥사 다니엘 웰스터 휘틀이 인도한 복음전도 집회에서 찬송을 인도하던 동역자 제임스 맥그라나한(James, McGranahan이 1883년에 작곡한 것이다.
찬송곡명 NATHAN은 작시자 휘틀의 필명에서 따왔다.
전형적인 복음찬송인 EL NATHAN은 몇 개의 선율과 매우 단순한 화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약간의 리드미컬 한 진행을 지닌다.
쉽게 성부를 나눠 노래할 만한 곡조로 한 연을 두 개의 긴 선으로 노래하면 좋다.
후렴의 가사는 하나의 긴 프레이즈를 요구한다.
반주자와 합창단은 엇갈린 호흡을 사용하여 후렴구를 하나의 긴 선으로 연주하면 좋다.
[작사 배경]
다니엘 웹스터 휘틀은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국군에 지원했다.
그는 여러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며 용맹스런 군인으로 인정받았다.
전투 중에 수류탄에 맞아 오른팔을 잃어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괴로운 마음으로 병상에 누워있던 그는 군에 가기 전 어머니께서 주신 성경을 펼쳐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휘틀씨 심한 부상으로 죽음을 앞둔 소년이 있어요.
소년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나요?”
한밤중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와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는 휘틀이 크리스천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휘틀은 상실감에 빠져 성경을 읽지만 제대로 기도해 본 적도 없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경을 헤매는 소년 병사를 못 본채 할 수 없었다.
휘틀은 병실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더듬거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한 후 소년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소년은 세상을 떠났지만 기도를 마친 휘틀이 소년을 보았을 때 그 모습은 평안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은 사라지고 행복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휘틀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년 병사를 위해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이 그에 마음에 직접 찾아오셔서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게 인도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휘틀은 그 은혜가 너무 감격스러워 주체할 수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가 바로 찬송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이다.
[가사 영어원문]
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
1.
I know not why God’s wondrous grace
To me He hath made known,
Nor why, unworthy, Christ in love
Redeemed me for His own.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니에게 알려질 줄은 몰랐네.
또 왜 나 같이 쓸모없는 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지 나는 모르네,
[Refrain]
But I know Whom I have believed,
And am persuaded that He is able
To keep that which I’ve committed
Unto Him against that day.
그러나 “내가 누구를 믿었는지 나는 알고
그리고 주님이 하실 수 있다고 확신하네.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주님이 지키실 것을 확신하네”
2.
I know not how this saving faith
To me He did impart,
Nor how believing in His Word
Wrought peace within my heart.
나는 이 구원의 믿음을 어떻게
주님이 나에게 나누어 주셨는지를 모르며,
또 어떻게 주님의 말씀을 믿어서
내 마음에 평화를 가졌는지도 모르네
3.
I know not how the Spirit moves,
Convincing us of sin
Revealing Jesus through the Word,
Creating faith in Him.
나는 어떻게 성령하나님이 역사하는지를 모르며
우리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계시하고
주님 안에서 믿음을 갖게 하시는지 모르네
4.
I know not what of good or ill
May be reserved for me.
Of weary ways or golden days,
Before His face I see.
나는 나를 위해 에비한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지 못하며
내가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곤고한 길이나 황금길인지도 모르네.
5.
I know not when my Lord may come,
At night or noonday fair,
Nor if I’ll walk the vale with Him,
Or “meet Him in the air.”
나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밤일지 혹은 낮일지를 모르네,
주님과 함께 골짜기를 걸을지
혹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지” 모르네
https://youtu.be/aRajjFaVt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