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 남다른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친구입니다.
중풍병에 걸린 친구 : 자신의 몸으로는 넘을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침상을 들고 나아갈 네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집에 다 달았을 때 그들이 가는 길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중풍병자 : 육신의 질병이 인생의 광풍이었습니다.
친구들은 : 가지 못하는 환경이 광풍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1) 육신의 연약함을 원망합니다.
2) 길이 막힌 것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번째가
귀신들린 딸을 위해서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입니다.
귀신들린 딸 :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광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유대인에게 찾아가 간청할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딸을 위하여 간청했음에도
예수님이 그 간청을 거절하셨을 뿐 아니라 모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은
1) 귀신들림을 원망합니다.
2) 예수님이 들어 주시지 않았음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전혀 다른 믿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을 따를 믿음은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할 믿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과 함께 했음에도 광풍이 불었을 때
1)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2) 여전히 주님을 바라볼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제자들처럼
인생의 광풍이 오기만 하면 언제든지 원망하고
너무나도 쉽게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것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는 예배는 나옵니다.
기도는 드립니다.
그러나 지붕을 뚫어내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믿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