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타인들> 2006년, 프랑스,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 103분, 드라마
나도 물론 영화를 먼저 제목과 포스터로 고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거기에 베를린이나 칸 등 영화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없으면 대체로 두말하지 않고 믿고 본다. 전문적 영화비평가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이 검증받은 영화를 보는 것이 시간낭비를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숨겨진 영화를 놓칠 수도 있지만 불가피한 일 같다. 그리고 감독이 물론 중요한 선정 요인이다.
이 영화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특별히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제목과 포스터의 매력이 질감 있는 영화가 될 것같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역시 프랑스 영화특유의 남녀 사이의 긴장을 풀어나가는 재미난 영화다. 영화를 보는 중에 영화음악이 전체적으로 스릴러같은 분위기를 줘서 이게 어디로 튀어가는 것은 아닐까 망설이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스릴러나 공포는 딱 질색이 편이다.
굳이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해보라면 일과 관계로부터 소외된 현대인의 고독과 소통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야 있지만, 그런 거창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단지 약간은 엉뚱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서로의 닫힌 문을 여는 과정을 관객이 따라가면서 소통의 방식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타인이기에 역설적으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고백하고 동료애를 느낄 수도 있다.
엊그제 뉴스에서 프랑스 변호사들의 시위를 보았다. 프랑스에게 이혼절차를 간소화해 변호사 없이도 간단히 할 수 있게 하자 변호사 수익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밥그릇이 사라져 벌이는 시위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프랑스는 남녀 관계가 참으로 자유롭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단히 합리적 개인주의의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개인들이 서로간의 감정문제에서 완전히 초월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의 영화를 보다보면 그들 문화에서 남녀 관계는 자유롭지만 초월적이지는 못하다.
어쩌면 우린 누구나 친밀한 타인을 원하는지 모른다. 누군가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우리의 작은 꿈을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 시놉시스 -
마법같이 찾아온 낯선 타인에게서 시작된 사랑에 관한 우아한 상상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심리치료사를 찾기로 결심한 안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외모의 편안한 그에게 안나는 모든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은밀한 부분까지
재정상담사로 그만그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윌리엄.
어느 날 그를 심리치료사로 착각한 미모의 젊은 여성이 찾아와 은밀한 사생활을 털어놓는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그녀와의 다음 예약날짜가 빨리 기다려지는 건…?
심리치료사를 찾아간다는 것이 잘못해서 재정상담가인 윌리엄을 찾아가게 된 ‘안나’. 윌리엄을 심리치료사로 착각한 그녀는 자신의 모든 비밀들을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자신을 심리치료사로 착각한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한 ‘윌리엄’. 그러나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느낌을 주는 그녀와의 상담시간이 그는 점점 기다려지기만 한다.
그녀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에 매료당하면서도, 사생활을 듣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윌리엄은 결국 안나에게 자신이 심리치료사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크게 화를 내며 돌아가고, 윌리엄은 이제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