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오브 더 씨], 미국, 드라마, 2015

영화에 '프리퀼(prequel)'이라는 용어가 있다. 시간적으로 본편 보다 앞선 속편을 말한다. 예컨대, [스타워즈] 시리즈가 전개되다가 속편이 나왔는데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설명해주거나, 종족 간의 대립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함으로써 관객이 재미있게 본 영화보다 앞선 시간대를 설명해준다.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소설 <모비딕>(백경)은 모비딕에 의해 한 쪽 다리를 잃은 포경선 피쿼드 호의 선장 에이 허브가 흰고래 모비딕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만 결국 모비딕과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진 줄거리로 유명한 세계문학전집이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흰 향유(향)고래 모비딕의 등장을 그려내어 소설 <모비딕>의 프리퀄에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소설이나 영화 모두 허구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낸 소설, 영상으로 제작한 영화 모두 진실에 가깝지만 진실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소설 <모비딕>을 하나의 진실로 가정하고, 소설 <모비딕>의 출발을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참으로 대단한 상상력이다. 창작에는 소재의 제한이 없다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상상을 초월하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소재에 대한 감탄은 잠시 뒤로 미루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 <주홍글씨>로 유명한 너새니얼 호손에게 라이벌 의식이 강한 허먼 멜빌은 자신의 작품 소재를 찾아 나선다. 자신이 가진 현금 전부를 주며 토마스라는 노인에게 침몰한 고래잡이 배 에식호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14살 소년 시절, 고아로 성장해 부두를 떠돌다 에식스호에 탔던 토마스는 한참 동안의 설득 끝에 비밀로 감추어두었던 그 날의 일들을 이야기 한다.
고래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불을 밝히던 시절, 한 척의 고래잡이 배 에식스호가 출항을 준비한다. 1등 항해사로 섭외된 오웬(천둥의 신 토르의 크리스 햄스워스 분)은 선박회사로부터 언젠가는 선장에 임명해준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이번에도 선장이 아닌 1등 항해사 자격으로 출항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물론 이번 사냥에서 목표치를 채워 돌아오면 다음 번에는 선장으로 직책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 말이다.
반면 에식스호를 지휘할 선장으로는 현장 경험이 미천한 회사측 금수저 조지가 임명된다.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들은 선장 조지에게 경험 많은 1등 항해사 오웬을 그의 발아래 두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잦은 마찰을 일으킨다.
우여곡절을 거쳐 1년 3개월 여의 항해 끝에 엄청난 양의 향유고래떼를 찾는다. 고래잡이 작살을 손에 쥐고 세 척의 보트에 나눠 탄 에식스호의 선원들은 고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거대한 고래 한마리에 의해 에식스호는 침몰하고 보트에 나눠탄 스물 너댓 명의 선원은 표류하기 시작한다.
지나가는 배에 의해 발견되든지 아니면 육지를 발견해 상륙해야 만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텐데 물밑에서 조용히 이들을 미행하는 물체가 있었으니 바로 에식스호를 침몰시킨 거대한 고래였다.
고래에 의해 습격 당해 간신히 살아남은 선원들은 무인도에 표류하지만 그곳 동굴에서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다른 선원들의 시체와 맞닥뜨린다. 이곳에 계속 남았다가는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 선원들은 보트를 수리해 다시 바다로 나선다. 물론 그곳에는 거대한 고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찌보면 지금부터의 일 때문에 늙은 토마스는 그 당시를 회상하기 싫었던 것이다.
자신의 무리를 사냥하러 온 인간들에 대한 복수를 웬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거대한 고래는 더 이상 이들을 괴롭히지 않는다. 표류하는 보트에서 이들은 갈증과 음식 부족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그러던 중 보트 한 대에서 사망자가 발생하고 1등 항해사 오웬은 그 시체로 남은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가길 제안한다.
또다른 보트에서도 선장 조지의 제안에 의해 제비뽑기를 한다. 표시된 제비를 뽑는 사람이 자살을 결행하고 남은 자들이 그 육신으로 살아남자는 것이다. 표시된 제비는 선장 조지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조지의 사촌이 총의 방아쇠를 자신의 머리에 겨눠 자살한다.
그렇게 죽은 자와 죽인 자로 인해 목숨을 유지하던 이들은 지나가던 배에 발견되 극적으로 구조된다. 함께 탈출하지 않고 섬에 남았던 3명이 생존자 대열에 합류해 모두 8명이 살아남았다.
출항한 지 2년이 훌쩍 넘어 돌아온 선장 조지와 1등 항해사 오웬에게 회사는 거짓을 강요한다. 다른 포경선들이 출항하는 것을 꺼려할까봐 거대한 고래의 존재는 감추고 단지 태풍으로 인해 좌초했다고 말 할 것을 지시한다. 오웬에게는 선장의 직책과 많은 돈을 약속하고, 조지에게는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무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진실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말한 진실이 외부로 나가지는 못한다. 기록에는 태풍에 의한 좌초와 표류하던 선원들이 구조된 것으로 남을 뿐 죽은 동료를 먹고 살아난 극한 상황은 남겨지지 않는다.
오웬은 결국 선장이 된다. 고래잡이 배가 아닌 상선을 지휘한다. 조지 역시 선장으로 일한다. 운이 없게도 두 번째 배도 좌초한다. 그렇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지고 거대한 고래는 감춰진다.
8명의 생존자 중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유일하게 살아남은 노인 토마스는 그동안 가슴에 묻어둔 회한을 쏟아내고는 탄식한다. 그리고 허먼 멜빌에게 부탁한다.
"내가 이야기한 그대로를 쓰지는 않을 거지?"
허먼 멜빌은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쓰여질 것이라며 날이 밝은 거리로 나선다.
위에서 말했듯이 소설 <모비딕>의 탄생을 설명한 프리퀼에 해당하는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창작에 있어 소재가 얼마나 다양하며,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가늠하지 못하게 하는 수작秀作이다.
<사족> 표류에 관련된 영화
- 톰 행크스 [캐스트 어웨이](2000)
- 호랑이와의 표류 [라이프 오브 파이](2012)
- 로버트 레드포드 [올 이즈 로스트](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