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천국을 엿본듯 마음이 아득해진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그곳은 광명시 철산동에 위치한,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게 낙후된 그런 곳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그 동네에 다다랐을 때까지도 동네는 그래도 어린이도서관인데, 제법 그럴듯한 건물이 나타나겠지 했다.
간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여느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철대문(조금 벗겨졌지만 그림이 그려져 있긴 했다)을 만나고, 철문을 지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때 먼저 여기 왔었던 지인이 "화장실은 저쪽이야"라는 말에 엄연히 누군가 살고 있는 집에다 대고 "여기가 화장실이라고?"라고 묻는 실례까지 범했던, 아무튼 나의 상상과는 너무나 달랐던 곳이 이곳 넝쿨도서관이었다.
주중에는 도서관, 일요일엔 교회
이곳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던 분은 넝쿨도서관을 만들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지켜온 최미자 님이었다. 도서관 안은 하나의 방에 벽을 둘러싸고 책들이 있었고, 방옆에 베란다처럼 좁은 공간에도 낮게 책들이 깔려 있고, 그 위로 큰 유리창 너머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들과 광명시가 내려다보였다. 전망은 확 트였지만 보이는 풍경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그런데 도서관 안 정면에 커다란 십자가가 걸려있다. 알고보니 이곳은 바로 교회였던 것. 일요일엔 여기서 예배를 보고, 주중 오후시간에는 도서관이 문을 연다. 처음 도서관을 열 공간이 없어 고민할때 최미자 님이 목사님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는데, 목사님이 흔쾌히 응해 주신 것이다. 아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이런저런 교회기물이 부서지고 망가졌을텐데 묵묵히 참아주시고, 주말을 이용해 넝쿨도서관에서 캠프를 한다고 공고문을 붙이면 목사님이 알아서 신도들에게 전화해 다른 곳에서 야외예배를 보시고, 주중에 노자강의도 하는 멋진 이 분의 이름은 이승봉 목사님이시다. 전해듣기로 예전에 빈민운동을 하신 분이라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뵙고 싶다.
아이들에겐 놀이터, 엄마들에겐 수다방
넝쿨도서관의 처음 시작은 이 곳에 사는 최미자님을 포함한 생협활동가분들이 이 지역 가난한 아이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부터이다. 이 낙후된 곳에서도 더 열악한 곳이 있는데, 집을 짓다가 만, 채 완성되지도 않고 퇴락해버린 낡은 집에 부모는 일 나가고 한겨울에 아이 혼자 냉방에 이불 뒤집어쓰고 차려진 밥을 먹는 것을 본 뒤, 본인들도 가난하지만 이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결의했단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어린이도서관이고, 노무현 정권때 이런저런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어 도서관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새 정부 들어서면서부터는 지원도 거의 없고, 지역 새마을문고에서 책을 지원받고, 몇몇 자원봉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서관은 아이들이 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땅한 보육시설이 없어 가난하지만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수다방이 되어주기도 하고, 마을 일을 같이 의논도 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 오후에 아이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거리도 주는데, 가공식품은 피하고 생협이나 시장에서 사온 먹거리를 이용해 만들어준단다. 기왕이면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도서관 말고 공부방을 차리지 그려셨냐고 내가 물으니 최미자 님은 '잔소리 하기 싫어서' 공부방은 안하고 싶었단다. 그러고보니 이곳 책들이 비교적 새책들이다. 애들이 이곳에 와서 책을 읽기보다는 즐겁게 놀다가는 곳인갑다. ㅎㅎ
마을공동체 역할
도서관은 미술, 독서교육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외부 자원봉사자들 외에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최미자 님을 제외하고, 이사를 가거나 아이가 커가면서 일을 시작해 자원봉사자들이 계속 바뀐다고 한다. 이곳의 일종의 터줏대감인 최미자 님은 자원봉사자들과 일거리를 나누는 문제로 마음 속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것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화장실청소까지 손가는 데가 한두가지가 아니었을텐데 최미자 님은 누구에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지 않는단다. 자원봉사자들끼리 일정표짜서 역할분담 나누지 그러셨냐 했더니, 안그래도 그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게 불만이어서 나간 엄마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뭘 잘 시키지 못하겠단다. 시키지 않고 내가 움직이고 있으면 엄마들이 따라서 같이 일을 한다고 한다. 처음엔 나 역시 그런 최미자 님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최미자 님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도서관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있다보니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더 잘알게 되었다고 한다. 저녁이면 마을을 돌아다니는 두 할머니가 있었는데, 굳은 표정하며 행색도 그렇고 좀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단다. 그런데 식당일을 다녀온 딸이 집 안에 갖혀 하루종일 딸을 기다렸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산책을 다니는 거라는 것을 알게되자 이제 서로 오가며 인사와 안부를 묻게 되었다고... 돈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그저 서로의 사정을 조금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의 질이 이처럼 달라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최미자 님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어보았다. 전에는 여기 도서관 앞 마당에 묻히는 것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니라고. 나만 계속 도서관을 부여잡고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다른 누군가도 여기서 책임있는 역할을 하고, 또 그만큼 자기 성장을 맛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 없냐고도 물어본다. 하루 열두번도 더 그런 생각이 든다고.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나 싶어 어떤 때는 화딱지가 나서 도서관에 온 애들 조금 일찍 내보내고 도서관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버리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다보면 늘 여기 있게된다고...
도서관이 번듯해지면 좋겠다든가, 아이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든가 그런 꿈은 없냐고 또 물었다. 그런 꿈은 없다고, 다만 여기 다닌 아이들이 커서 어렸을때 이 도서관을 즐겁게 추억하면 좋겠다고, 그것 뿐이라고 한다.
After
최미자 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다 같이 이 동네 명물 중국음식점에 갔다. 간판도 없고, 배달도 하지 않고, 그날 음식재료가 떨어지면 장사를 접는 나름 엣지있는 가게였다. 실내디자인도 독특해서 가게 주인의 어머니가 바로 옆 가게에서 옷수선을 하면서 천을 가져다가 직접 벽면을 장식했는데, 꽤나 운치있다. 테이블도 대여섯개 밖에 되지 않는 동네 후미진 곳의 가게지만 자리가 꽉 차고 앉아서 기다리는 자리도 있을만큼 음식도 훌륭했다. 미리 재료를 다 만들어놓고 면만 데워내는 여느 중국음식점과 달리 그 자리에서 국물이나 소스를 만드는 듯 했다. 이날 재료가 떨어져 맛보지 못한 해물볶음밥도 명물이라던데 다음에 와서 꼭 먹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