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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청춘] 이경의
S#1. 용달의 집
트로피를 들고 감격에 벅차 있는 용묵 (26, 남)
한동안 말 잇지 못하다가 마음 다잡아 정면(화면) 향하며,
용묵 육십 여명의 스탭들 (갸우뚱)...오십인가... 아무튼 그 스탭들이 밥상을 차려줘요, 그 러면 전 숟갈 들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표정이 분명한 수상소감을 말하며 벅차하는 용묵의 뒤로,
그제야 드러나는 시상식장........ 백열전구가 환한 사장실에서 거울 보며 쇼하고 있는 용묵.
수트 아래로 트렁크 팬티 차림에 트로피 삼아 거꾸로 들고있던 스킨병까지... 가관이다.
용묵 응원해 주시는 아시아 모든 팬 여러분들...... (목 메이는)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남다른 길을 가는 저를 항상 지켜봐줬던 우리 가족들, (하는데)
벌컥 문 열리며, 거울로 비치는 용달. (25, 남)
용달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용묵 (뒤돌아 보며) 왔냐?
용달, 한심한 듯 틱- 불 꺼버리며, 암전.
S#2. 고시학원
암전 위로 빛 환해지면, 사물함 문 열리며, 보리. (28, 여).
사물함 속 책 꺼내 빈 박스에 아무렇게나 책 던져 넣는다.
그런 보리의 뒤로 교실 안, 듬성듬성 앉아있는 학생들 하며, 잔뜩 어수선한 분위기다.
보리, 둘러보고는 결심한 듯 상자 치켜들고 나서려는데, 누군가 턱- 보리의 옷깃을 잡은 듯.
보리 놔. (당겨보는데) 놔. 다 때려칠 거야, 그러니까 노라구, 놔! (하면서 휙- 돌면)
모서리에 걸린 옷자락. 다행히 본 사람은 없는지 안으로 교실, 조용-하고.
보리, 쪽팔려서 후다닥 빠져나오는데, 복도에 ‘합격자’ 벽보 앞으로 헹가레 치고있는 사람들.
공중에 떠 있는 시경(31, 남) 보리 본다.
시경 (공중에서) 보리야~
사람들 들었는지 마는지 다시 공중으로 시경 던지고, 그런 시경 뒤로하고 뒤돌아 나오는 보리.
계단 내려와 닫혀있는 학원입구의 선팅 된 유리문 밀면, 탁 트인 파란하늘.
S#3. 마형네 옥상
파란 하늘 위로, 경쾌하게 펼쳐지는 ‘참이슬’ 비치파라솔.
잘 가꾼 화단에 싱싱한 상치와 고추, 방울토마토 하며, 여름날, 가든 파티 분위기 나는데.
“핫 뜨거~” 후다닥- 비치 테이블에 양은 냄비 올리며 방정떠는 마형. (서른 중반, 남), 딱 봐도 백수다.
보면, 다 쓰러져가는 옥탑방 앞 옥상, 냄비 뚜껑 열어 잘 익은 라면 보며 흐뭇해하는 마형.
마형, 뭔가 아쉬운 듯 마당 한켠 화단으로 가더니 파 한 뿌리를 뽑아서는 라면에 뜯어 넣는다.
휘휘 저어 후루룩- 한 입 삼키고는,
마형 뭔가....... 영양의 균형이 부족해.
S#4. 고깃집
불판 위에 막 올려진 생고기 지글거린다. 화면 빠지면 북적거리는 고깃집.
한 쪽으로 불판 뚜껑에 얼굴 비추며 립스틱 바르고 있는 애량. (21, 여)
(소리) 여기여,
애량 (어딘가로) 엄마~ 9번에 숯불- (하고는) 어느 게 더 이뻐요?
애량 옆에서, 바닥에 넥타이 메고 걸레질하고 있던 남자, 힘들게 고개 들고는,
넥타이맨 (힘들다) 다.
애량 (새침한) 그건 그렇지만. (하다가 문득-) 힘들어요?
넥타이맨 (힘들지만) 아니.
다시 얼굴 비춰보는 애량.
고깃집 창 밖으로 용묵 지나간다.
S#5. 동네 오르막
한여름, 불친절한 변두리 오르막 오르고 있는 용묵.
용묵의 앞으로 힘없이 걸음 옮기고 있는 보리의 뒷모습 보이는데,
용묵의 뒤로, 빵- 자동차 클랙션 소리.
피하며 좁게 그늘 진 담벼락 아래로 몸 붙이는 용묵, 그 서너 발자국 옆으로 나란히 서 있는 보리.
용묵, 흘깃- 보리 보는데...... 앞만 보고 있는 두 사람 앞으로 느릿하게 자동차 지나며,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듯 그 화면 위로 타이틀 자막...
잘 지내나요, 청춘.
S#6. 물 속 (다른 날)
첨벙- 물 속으로 침잠하는 용묵.
일렁이던 물은 점차 핏빛으로 물들고, 용묵, 죽었는지 둥둥 떠서 물살에 흔들린다.
잠시 후, 갑자기 꼬르륵- 콧방울 나오더니, 번쩍- 눈 뜨는 용묵.
도저히 못 참겠는 듯 푸헉- 물 위로 솟구쳐 오르며,
(소리) (극악스런) 컷!!
보면, 어느 촬영장.
멋있게 서있는 주인공 주위로 무릎 정도의 물 위로 주섬주섬 숨 내쉬며 일어서는 검은 양복의 조폭들.
그 가운데 용묵, 구분도 안 가는 같은 복장이다.
감독 죽은 놈이 일어나면 어떡해!! 죽으랬지! 죽어! 죽어! 제발 좀 죽으라구!!
극악스런 성화에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용묵.
용묵 ......죄송합니다.
조감독 (눈치 살피며) 다시 가겠습니다~
엑스트라들, 죽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무릎도 안 되는 물 속으로 하나, 둘, 얼굴 처박는다.
용묵도 엉거주춤 따라서 자세 낮추고.
S#7. 화장실
핸드 드라이어 앞에서 머리 말리고 있는 용묵.
아차! 생각난 듯 젖은 옷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 하나 꺼낸다.
젖은 종이 조심스럽게 펼치면, 잡지에서 찢은 듯 ‘2006 신인 배우 오디션’
젖은 머리 대신, 드라이어에 대고 정성스럽게 종이 말리는 용묵.
S#8. 다세대 앞 (다른 날)
다세대 주택 앞에 있는 재활용 수거함 뒤적이고 있는 마형.
쓸만 한 스탠드 하나 발견하고는 흐뭇해하다가 지나던 사람과 흘낏- 눈 마주치면,
마형 (태연스럽게) 오늘 날씨 죽이네요, 그쵸?
인사까지 나누며 행인 보내고, 다시 재빠르게 하던 일하던 마형.
수거함 근처에 박스, 지난번 보리가 들고 있던 상자다.
마형, 반색하며 열어보면, 책이다.
마형 (실망하는) 하여튼 이 동네 애들....... (뒤적거리며) 어디 제품 상태가...
(보리) 뭐예요?
돌아보면, 어느새 다가와 있는 보리.
마형 (다시 태연스럽게) 오늘 날씨 죽이, (하는데)
싸늘하게 마형 보는 보리.
마형 (말 돌리 듯 하늘 보며) 비가 오려나....
상자에서 차근차근 책 꺼내 가방에 넣고는 그대로 돌아서 가는 보리.
그제야 한숨 돌리는 마형, 내려가는 보리 뒷모습 질린 듯 보며,
마형 (툭- 빈 상자 치며).....줬다 뺐냐...
S#9. 거리 / 백화점 앞 (다른 날/ 낮)
거리 지나던 보리, 백화점 외벽의 쇼 케이스 안에 전시된 핸드백 본다.
그러다 문득- 그 창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 추리닝 바람이나마 이리저리 비춰보는데.
(소리) 보리 선배?
움칫- 돌아보는 보리.
화사한 차림으로 양 손 가득 쇼핑백 들고 있는 여자.
후배 저, 모르시겠어요? 신입사원이었을 때, 멘토링으로 만났던,
보리 (생각난 듯) 아....... (쪽팔려.....)
후배 (반가워서) 웬일이야~ 연락 끊기고 너무 아쉬웠는데, (문득- 차림새 훑으며) 근 데... 어디 가세요?
S#10. 거리 / 자동차 안
경쾌하게 도로를 질주하는 빨간 소형차.
운전하고 있는 후배 옆으로 머쓱하게 앉아있는 보리.
슥- 뒷좌석 보면, 한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브랜드 쇼핑백들.
후배 히로뽕 한 대 맞았죠, 뭐.
보리 (흠칫-) 뭐?
후배 선배가 그랬잖아요. 저 입사하고 한 달도 안 돼서 회사 관둔다 그랬을 때, 이 놈에 회사 때려 친다, 때려 친다 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월급쟁이로 사는 사람들, 다달이 맞는 입금 주사에 중독 돼서 그런 거라고. 그 효과, 궁금하지 않냐고.
보리 (웃으며) 그랬나....
후배 그렇게 저 앉혀 놓고, 선배는 다음 달에 바로 회사 관두시구.... 업무파악은 안 되 지, 물어볼 사람은 없지,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보리 공소시효 아직 유효하지? 미안.
후배 (웃으며) 사면해 드릴게요. 고생은 좀 했지만 생짜로 버틴 덕에 인정도 박고, 회사 코스닥 상장된 이후에, 지금 저, 과장 됐어요.
보리 (헉! 어색한 미소) 축하해~ 너무 잘 됐다....
후배 근데, 선배는 어떻게....... 옮겼던 회사, 뭐였드라... 무슨 무역회사였는데....
보리 거기 아니야.....
후배 아니었어요?
보리 거기 있다가, 관뒀어.
후배 또요? (눈치 없게) 하긴, 원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역마살 있다잖아요.
보리 (은근히 열 받는데)
후배 저기 맞죠?
(장면 전환)
떠나는 차 뒤로 손 흔드는 보리.
어색하게 손 내리며 돌아서면,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피트니스 센터.
통유리 안으로 회색 운동복 입고 일렬로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S#11. 보리네 학원
누군가의 땀 찬 회색 티셔츠.
보면, 수강생으로 꽉 찬 교실. 그 가운데 수업 듣고 있는 보리.
책장 넘기는데, 언제 끼워뒀는지 시경과의 사진.
보리, 찢으려다 얼른 책 맨 뒤로 넣으며, 정신 차리 듯 수업 듣는다.
S#12. 동네길 / 애량네 고깃집 앞
수거함에서 챙긴 물건들 챙겨 가던 마형, 길가에 있는 애량네 고깃집 지나는데,
고깃집에서 씩씩거리며 나오는 남자. 지난번 걸레질 하던 넥타이맨이다.
넥타이맨, 들고 있던 걸레 집어 던지더니, 그래도 화가 안 풀리는 듯 세워진 간판 발로 차고 사라진다.
지나던 마형, 뭐지? 기웃거리는데, 잠시 후 고깃집에서 나오는 애량,
아무렇지 않게 걸레 집어 들더니, 쓰러진 간판 세운다.
얼결에 다가가 도와주는 마형.
애량 잠깐 불 좀 봐주실래요?
안으로 들어가더니, 스위치 올렸는지 간판에 불 들어온다.
마형 (안에 대고) 들어오네~
S#13. 마형네 옥상
마형, 들어서면 기다리고 있던 용묵.
용묵 뭐야~ 또 구청 딱지 붙은 거 가져오다 걸렸..... (뭐지?)
하는데, 마형 뒤로 따라 들어오는 애량.
용묵, 누구야? 하듯 마형 보는데, 애량, 한손으로 고기든 비닐봉지 빙빙 돌리며 용묵 훑어본다.
애량 (불만스런) 탤런트라면서요.
마형 응, 맞어.
애량 첨 보는데.....
마형 좀 순식간에 지나가는 스타일라 그래. 어쨌든 잘 생겼잖아?
애량, 미심쩍은 듯 약간 갈등하는데,
용묵 (못 마땅해서 작게) 저깟 삼겹살에 친구를 파냐?
마형 차돌박이야.
용묵 ! (주저없이) 형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용묵입니다.
S#14. 보리네 방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던 보리.
그런 보리의 뒤로, 낮게 쌓인 박스들과 걸려있는 거울 아래로 화장품 대를 겸한 플라스틱 서랍장,
책상 한쪽, 낮은 책장 가득히 꽂혀있는 고시 책들. 왠지 삭막한 풍경 위로,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
보리, 애써 흔들리지 않으려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뭔가를 외우는 듯 중얼거리는데, 다시 들려오는 웃음소리.
보리, 못 참겠는 듯 휙- 창문 열면, 반 지하 창문 밖, 반토막짜리 풍경 위로 들려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
보리 저, 인간들이 진짜-
S#15. 마형네 옥상
불판 위에 지글거리는 고기.
마형, 화단으로 가더니 그 자리에서 뜯은 아채를 가져온다.
애량 안 씻어요?
마형 유기농이야. (돌러보며) 자리도 남는데 닭이라도 칠까봐.
하는데, 갑자기 벌컥- 문 열리며,
(보리) 저기요!
돌아보면, 두둥- 들이닥친 보리.
보리 알아보며 움찔-하는 마형, 잘 걸렸다 싶은,
마형 (빈정대듯) 우리요?
보리 고시촌이 말로만 고시촌 된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직 공부하는 사람 있거든요?
마형 오리지날 고시촌일 적에도 공부 안 하는 사람 많았어요.
보리 그렇다고 티 낼 필요는 없잖아요? 입은 그냥 조용히 씹는데만 씁시다.
용묵 (얼른 수습하는) 죄송합니다. 거의 다 먹어가거든요.... 아니, 그냥 이리 와서 같이 드세요.
보리 누가 그거 먹고 싶어서 이 꼭대기까지 쫓아온 줄 알아요?
마형 꼭대기 되게 강조하시네, 어디서 왔길래?
보리 B3호요.
마형 B? (하다가) 아- 지하- 허이구- 바로 아래층도 아니고, 맨 아래, 그것도 지구별에 반은 묻혀 살면서...
보리 그러니까 땅속까지 민폐 끼치지 말구, 조용히 소화나 시키시죠.
마형 지금 누구 때문에 소화가 불량한데?
분위기 살벌해지고, 보고있던 용묵 아슬아슬한데,
용묵 (애써 마형 막아서며) 이 형이 취했나봐요.
보리 (둘러보면) 술병 하나 없이, (나뒹구는 부탄가스) 가스 마셨어요?
마형 맨 정신에 주정하기는 그쪽이 대가신데, 뭘-
보리 고만 좀 깝죽대실래요?
마형 입은 씹는데 쓰라면서요, 그래서 씹잖아요.
용묵 (마형 입 막으며) 죄송합니다.
보리, 용묵 봐서 참고 돌아선다.
용묵, 그제야 손 떼며 겨우 한숨 돌리는데,
마형 펴엉-생- 골방에서 공부나 해라.
우뚝-멈춰서는 보리. 다들 움찔.
보리, 뚜벅뚜벅 다가오는데...
애량 오빠...
마형 왜..... 왜 이래.....
용묵 ........저기요.........
하는데,
보리 야!!
그대로 불판 뒤집어엎는다. 천지사방으로 날아가는 차돌박이들...
S#16. 마형네 방
마형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환경 탓해요. 절간에 간들 공부가 되겠냐고, 바람소리, 새소리, 새벽마다 염불소리...
여기저기서 주워온 잡동사니로 꽉 찬 방.
마형, 지난번 수거함에서 가져 온 스탠드, 핸드폰 사진 찍어 경매사이트에 올리고 있다.
‘제가 선물 받은 건데, 거의 새거나 다름 없는...’ 어쩌구 저쩌구....
용묵 그래도 심했어.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냐...
마형 (모니터 향한 채) 공부하는 사람한테 공부하라고 한 게 아킬레스냐?
용묵 형한테 평생 이렇게 놀고 있으라고 해봐. 아니야?
마형 (돌아보며) 얘가 노는 걸 만만하게 보네.... 너, 칠순 넘은 부모한테 용돈 타는 게 쉬운 거 같냐? (다시 모니터 보며)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노는 거야...
용묵 장하다...
마형 우리나라가 선진국 돼봐. 나도 인간문화재 될 날 멀지 않았다... (제법 쓸만한 머리 핀) 이건, 애량이 줘야겠다.
용묵 걔 좋아해?
마형 뭐? (기막힌) 야, 이제 우리 인생에 좋아해, 사랑해, 그런 말은 사라질 때야. 돈은 안 벌고 안 쓰는데, 마음은 사치하면 되겠냐?
용묵 살마 마음이 마은대로 되나, 뭐...
용묵, 아까 일 때문에 마음 싱숭생숭하다.
S#17. 고시원 앞 (다음날 아침)
마형의 옥탑방이 있는 다세대 주택 나서던 용묵.
문득, 땅바닥에 쇠창살 안으로 반쯤 올라와 있는 보리의 반지하창문을 본다.
반에 반쯤 열려있는 틈 사이로 안 들여다보려는데, 잘 안 보이고..
(소리) 뭐야.
흠칫- 돌아보면, 멀쩡하게 서있는 보리.
보리 가지가지 하는 구나, 니네들.
용묵 저기, 그게 아니라...
쭈뼛거리다 보리에게 봉지 내밀고는 후다닥- 도망치는 용묵.
뭐야.... 보리, 봉지 열어보면, 빨갛게 익은 방울 토마토.
인서트
아악- 비명 울리며, 황망하게 화단 바라보는 마형.
화단에 빈 줄기만 남은 토마토 나무.
마형 용묵..... 이 자식.....
S#18. 용달네 집 (같은 날 아침)
들어서던 용묵, 마침 출근하는 용달과 마주친다.
용달 (한심한) 오는 거지?
용묵 (뻔뻔한) 가는 거냐?
용달, 무시하고 나가려는데,
용묵 너는 밤새고 들어온 형한테 밥 먹었냐고도 안 물어보냐?
용달 먹었잖아.
용묵 안 먹었다. 밥 있냐?
용달 쌀은 있어. (나가면서) 오늘 알지?
용묵 (생각하다 핏- 것두 모를까봐) 금요일.
용달 (왜 저럴까..) 엄마 생일. 저녁 때 그쪽으로 와.
용달 나가다가,
용달 공과금 좀 내.
용묵 (발끈-) 내가 이 나이에 은행 쫓아다니면서 그런 거나 내야겠냐?
용달 거스름돈으로 20프로 남겨뒀어.
용묵 (바로) 길 건너 농협이지?
S#19. 학원 (같은 날)
수업 듣고 있는 보리.
가방 뒤적거리며 책 하나 꺼내다 “엄마야~” 그 바람에 시선 쏠렸다가 다시 수업 진행 되고.
보면, 보리의 책, 뭐가 묻었는지 여기저기 빨갛게 엉망이다.
아차! 싶어 가방 열어 보면, 온통 짓물러 빨갛게 새고 있는 방울 토마토.
낭패스런 보리, 가방에 구겨져 있던 아무 종이나 꺼내 황급히 책 닦아내는데,
문득- 종이에 쓰여 있는 20%.... 펴 보면, ‘새봄맞이 20% 정기 바겐세일’
(용묵) 얼마에요?
S#20. 백화점
백화점에서 여성용 스카프 보고 있는 용묵, 슬쩍- 가격표 보는데,
점원 20프로 세일하면,
용묵 아니에요.
후다닥- 자리 피하며,
용묵 바로 옆 시장하고는 한길 차인데, 가격은 완전 천지차이네. 영- 살만한 게 없다.
S#21. 다른 매장
지난 번 쇼케이스에 진열된 핸드백 보고 있는 보리.
점원 (다가와) 세일 할 때 하나 구입하세요. (은밀히) 디스플레이 된 게 마지막 상품이에요.
보리, 흔들리는데,
(소리) 자기야~
간드러지는 목소리 거슬리는 듯 돌아보는 보리, 우뚝-
보리랑 눈 마주치는 시형. 역시 멈칫- 하다가 팔짱끼는 여자친구 따라서 매장 나선다.
멍-하게 뒷모습 보는 보리.
S#22. 백화점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우두커니 거울 보는 보리.
거울에 비친 모습, 영 초라하기만 하다.
보리 왜 하필........ 쪽팔려 진짜......
나가려다, 머리 정리해서 다시 묶는다.
S#23. 화장실 앞
보리, 화장실 나서는데, 시경, 기다리고 있다.
보리, 난감한데.... 하는 수 없다는 듯 어렵게 다가간다.
보리 있잖아.... 이러면 정말 곤란해. 아까 보니까 여자친구도 있던데....
시경 저기....
보리 헤어졌으면 그걸로 끝이야. 나쁜 여자 되기 싫어, (하는데)
(소리) 자기야~
웃! 보면, 아까 그 애교텨, 화장실에서 나온다.
그제야 숨기고 있던 손바닥만한 핸드백 건네며 애교녀에게 다가가는 시경.
이런 망할...... 보리, 쪽팔리는데..... 저 쪽으로 빈 손으로 어슬렁거리고 있는 용묵, 보인다.
보리 자기야~
시경, 가려다 뭐지? 반응 보이고,
그 소리에 돌아보는 용묵. 보리 보고 흠칫-하는데,
보리 자기야-
용묵, 두리번거리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 하는데,
보리, 얼른 달려가 대뜸 다정하게 팔짱 낀다.
보리 어디 있었어~
보란 듯 다정하게 걸음 옮기는 보리.
용묵 (당황해서) 저기....
보리 쭉 가요, 쭉....
S#24. 호프집
그다지 좋을 것도 없는 평범한 호프집, 개업기념 화분 몇 개 보이고,
한쪽 구석에서 나란히 술잔 기울이고 있는 보리와 용묵.
보리 혹시 그 여자 봤어요?
용묵 누구..... 아까 그 남자 애.. (애인 하려다) 옆에 그 여자?
보리 이쁘더라.... (한잔) 어리더라.... (한잔) 직장도 있는 거 같더라....
용묵 보리씨는 뭐, 노나요....
보리 아니에요?
용묵 공부하잖아요. 행정고시 아무나 보나요.
보리 아무나 보더라구요. 아닌 줄 알았는데..... 나만 잘난 줄 알았는데, 더 잘난 놈들이 붙더라구요.
용묵 언젠가는 이뤄지겠죠.
보리 (피식- 귀엽게 보는) 용묵씨.... 사회생활 안 해봤죠.
용묵 해봤어요.. 의자5, 양아지3.... 대사가 없어서 그렇지 별 거 별 거 다 해봤는데...
보리 그런 거 말구, 진짜 사회생활... 아침마다 출근 전쟁에, 직장에선 상사 눈치 보고... 마음 터놓을 사람은 없고, 뒤통수 맞기는 다반사.... 일주일은 주말만 기다리고, 한 달은 월급날만.... 그렇게 제자리걸음 하다 보면, 일년은 뭐.... 세월 축에도 못 끼더 라구요.
용묵 그래도 돈은 많이 벌잖아요.
보리 (피식-) 근데 그게 다 어디로 갔을까?.... 차곡차곡 쌓이는 건 나이 밖에 없어요. 내 년도, 후년도, 서른이 되도, 마흔이 되도, 이렇게 사는구나 싶어서 무섭더라구요, 현 실이. 살면 살수록..... 겪으면 겪을 수록.... 평생 먹여주고, 재워주고, 이런 거 어디 없나? 그래서 공부 시작했어요. 근데 남들도 그런 가봐. 학교 다닐 땐, 아무도 공무 원 한다고 애 없잖아요. 근데 사회에 나와보면 다들 목을 메지..... 나처럼.....
용묵 나도 뻔하게 살기 싫지만, 그렇다고 같은 방법을 택하는 것도 싫어요.
보리 뻔하게 살기 싫을 땐, 더 뻔한 길을 찾는 것도 해답이에요.
용묵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죠.
보리 하고 싶은 일이라........ 이제는 늦은 거 같애.
용묵 왜요~ 이제 겨우, 스물... (하다가) 몇 살이에요?
보리 (손가락 여덟 개 펼치며) 용묵씨는?
용묵 (그 손가락에서 두 개 접어주며)
보리 와.... 어리네.....
용묵 겨우 2년가지고, 무슨.....
보리 지나고 나면 얼마나 아까운 시간인데요. 그때였음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고.
용묵 그럼 서른 됐다고 생각해 봐요. 보리씨 지금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나이지.
보리 (빤히 보며) 용묵씨..... 멋있다..... 막 반짝거릴라 그러네....
용묵 (쑥쓰러운) 뭘요....
보리 근데 난, 관둘래요. 엄마 보기도 미안하고.
용묵 엄마가 뭐, (하다가) 엄마?........ 엄마!
시계 보더니 후다닥 일어나는 용묵.
보리 왜요?
용묵 엄마 생일이에요.
계산대로 가는 두 사람.
보리 내가 낼 게요. 내 푸념 들어주러 나온 자린데.
용묵 에이~ 아니에요~
하면서, 공과금 종이 애써 감추며, 척! 돈 내는 용묵.
종업원 (보다가) 삼천 원 모자라는데....
용묵, 이런~ 하다가 보면, 일어선 테이블에 열지 않은 소주병 하나 캐치!
후닥- 소주병 가져다 올려두며, 계산 끝.
종업원 (포장된 선물 내밀며) 개업 기념 선물이거든요.
용묵 (좋아서) 보리씨 만나니까 좋은 일만 생기는 거 같애요.
S#25. 버스 정류장
버스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
저쪽에서 보리의 버스가 한 대 도착한다.
보리 잘 가요.
용묵 말 놓으세요.
보리 잘 가.
용묵 너두.
보리, 웃으며 버스에 오른다.
보리가 탄 버스 가는 뒤로..... 용묵, 주머니 뒤적여 손바닥에 동전 세는데,
백원짜리, 하나, 둘..... 잘 나가다가 막판에 십원짜리.
용묵, 뛴다!
S#26. 부모님 댁
용묵, 들어서면, 잔칫상 앞에 두고 분위기 싸-하다.
부모님과 용달, 빤히- 용묵 보는데,
용묵 (자리 기어들어가며) 죄송합니다...... 급하게 일이 좀.....
아빠 일년 내 아무 일 없다가, 엄마 생일날 일이 생기지? 꼭 회식 날이면 집에 제사 있 는 것처럼.
엄마 삼백육십오일 빈 날 보다야, 아무 때고 일 있으면 좋지, 뭐.
용달 근데 술 먹었어?
흠칫-
그제야 다들 킁킁거리며,
아빠 이제 술까지 먹고 다니냐.
용묵 일하다 보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자리라.... 아시잖아요~
아빠 그 놈에 일이 뭔지, 남들 하는 건 다하는구나.
엄마 그러니까 좋은 일이지...
용묵 선물도 사 왔는데- 짠-
하면서, 아까 개업기념으로 받은 선물 내민다.
다들, 웬일이야- 하는 분위기.
엄마 (좋아서) 우리 아들 정말 무슨 일 생기려나 보네.
용묵 조금만 기다리세요, 큰아들, 사고 한번 칩니다!
아빠 (귀 후비며) 그 소리, 딱지 않겠다.
엄마, 기대에 차서 포장 푸는데, 상자 속에서 나오는, 유리 재떨이..
용묵, 당황하고, 다들 표정 일그러지는데..
용달 (아래 보더니) 달리자 호프 개업 기념? 이 집에서 먹었어?
아빠 이노무시키, 이게-
용묵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 (서운한) 이제 애미애비는 안중에도 없구나.
용묵 엄마, 노래 불러줄게, 노래. (노래하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하는데)
아빠 어디 와서 술주정이야!!
완전파장.
S#27. 마형네 집 (다른 날)
바닥에 기울여진 비치파라솔 바깥으로 비죽이 나온 다리 두 쌍.
파라솔 안으로 수영복 차림하고 누워있는 애량.
그 옆으로 강판에 생과일 갈아 주스 말들더니, 빨대까지 꽂아 애량에게 건네는 마형.
애량 (한 모금 빨며) 오일 더.
마형 그럴까?
애량에게 오일 발라주는 마형.
애량 (엎드려 눈 감은 채) 오빠랑 있으면 참 재밌을 거 같애.
마형 내가 좀, 재밌어.
애량 야채 기르는 거 보면 재주도 많은 거 같고,
마형 (기대감에 찬)
애량 지난번 보니까 터프하기도 하고.
마형 (손사래치며) 아휴- (신났다)
애량 (대뜸 돌아보며) 근데, 그 오빠는 진짜 배우에요?
마형 응?
(소리) 너나 잘 하세요.
S#28. 오디션 장
잠자리 선글라스를 쓴 여자 (그러나 이영애와는 사뭇 다른)가 ‘친절한 금자씨’연기를 펼치고 있다.
보면, ‘2006 신인 배우 오디션’ 현장. 책상 앞에 나란히 앉은 대여섯의 감독들, 표정 썩 안 좋다.
감독1 지금 무슨 추석특집 장기자랑인 줄 알아요? 연기를 해요, 연기를. 남 흉내내지 말 고.
그 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짝퉁 오대수, 장도리 챙기다가 흠칫-
짝퉁 이영애 멋쩍은 듯 선글라스 벗고 들어가는데, 시뻘건 눈 화장에 더욱 민망해지고.
다음으로 들어서는 용묵, 주눅 들지 않는 눈빛으로 심사위원들 보며,
용묵 (느닷없이) 개 같은 새끼들....... 비겁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려... 소멸 되길 기 다리느니, 한꺼번에 타버리라구!
감독들, 무덤덤....
다오항스런 용묵, 후다닥- 가방 뒤적이더니, 언제 준비했는지 휘발유통 꺼내 온 몸에 뿌려댄다.
갑작스런 난동에 심사위원들 책상까지 튀기면서 “뭐야, 이거-” 아수라장 되는데,
용묵, 갑자기 휙- 라이터 치켜들면서,
용묵 다 죽여버릴꺼야!!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 오디션장.
감독2 야, 끌어내~ 아니, 경찰 불러, 경찰~
감독3 미친 놈 아냐, 저거~
들이닥친 스탭들에 의해 끌려 나가는 용묵.
용묵 (찍어 먹으며) 물이에요, 물~~
라이터 막 켜는데, 그 바람에 사람들 더 놀라고.... 일망타진, 완전개판.
S#29. 보리네 집
막 샤워하고 나오는 보리.
책상 서랍에 잔뜩 구르는 샘플 화장품 꺼내 바르다가, 문득-
보리 두 살이면 뭐.... 별로 차이도 안 나잖아. (하다가) 정신차려, 나보리. (때리듯 화장 품 바르는데)
이때 어디선가 탁- 탁-
손 멈추는 보리. 보면, 반지하 창문으로 탁-탁- 작은 돌멩이 부딪치는 듯-
보리 어떤 새끼가--
드르륵- 창문 열면, 바닥에 앉아있던 용묵과 시선 마주친다.
깜짝 놀라는 보리, 애써 반가운 마음 감추는데, 용묵, 보리 향해 안녕하듯 손 흔들며 방긋- 맑은 미소.
S#30. 동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나란히 걷고 있는 용묵과 보리.
창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이 가로등을 대신하고 있는 변두리 동네.
보리 불빛 좀 봐....
용묵 (따라 올려보며) 이쁘다.
보리 (보다가) 겁난다. 저 중에 나 같은 사람도 있을까바.
용묵 (그런 보리 보며) 초조해?
보리 처음 시험에 떨어졌을 때, 우리 아빠가 나 보고 뭐랬는 줄 알아? 괜찮다... 남들 보 다 늦게 시작했는데, 일찍 붙으면 그게 반칙이지. 그리고 두 번째 떨어졌을 땐, 거 봐라... 남들보다 늦었드면 더 빨리 따라잡아야지. 그러다 세 번째 떨어지니까..... 그냥, 잘~한다.
용묵 (가만히 웃다가) 처음에 시험에 떨어졌을 때,
보리 (시험을 봤나? 하고 보는데)
용묵 우리 아빠는 나한테 기특한 내 아들,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그리고 두 번 째 떨어졌을 때, 장한 내 아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끝까지 밀어주마. 그러다 세 번째 떨어지니까, 한 십년 만인가... 아빠한테 맞아 본 게.
보리 왜? 세 번, 네 번 밀어주신다며.
용묵 그게 연기자 오디션인 줄은 모르셨거든.
보리 (웃다가) 저깄다!
보면, 언덕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버스 정류장 팻말 옆으로 자동판매기.
(장면 전환)
달칵- 커피가 나오고 나란히 서서 커피를 마시는 두 사람.
아래로 새벽녘 서울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보리 (풍경 보며) 만약에 말야.... (용묵 보면) 또 떨어지면, 어떡할 거야?
용묵 (아무렇지 않게) 또 하지, 뭐.
보리 자꾸 떨어지면? 자꾸자꾸 떨어져서 결국 아닌 게 되면?
용묵 (생각하다가)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결국 아닌 게 되도 그건 남들한테나 아닌 거지, 나한텐 아니야. 또 해보고, 또 해보고. 언젠간 지치겠지. 근데 그게 언제일지 는 아직 몰라. 그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뭐, 그때 일은 그냥.... 그때 생각할래.
보리 그때 드는 생각이, 늦었구나..... 는 아니겠지?
용묵 에이- 참- (주머니 뒤적이더니 이백원 꺼내서) 자! 이 백원 건다! 나중에 잘 되면, 아니, 아니더라도 여전히 살아볼만하다 생각되면, 이걸루 다시 커피 마시자.
가만히 용묵 보는 보리.
보리 (이백원 받으며) 콜!
S#31. 골목길 / 버스 안
덜컹거리는 마을버스 안에 나란히 앉아있는 용묵과 보리.
보리, 용묵의 어깨에 가만히 머리를 기댄다.
용묵 비누 냄새...... 좋다......
그렇게 새벽길을 달리는 버스.
S#32. 고깃집
역시나 불판 뚜껑에 얼굴 비추며 립스틱 바르고 있는 애량.
애량 (옆 보며) 오빠, 힘들어요?
보면, 바닥에 앉아 죽어라고 걸레질하고 있는 마형.
마형 (힘들지만) 아니....
다시 걸레질한다.
S#33. 영화사 회의실 (다른 날/ 낮)
그리 크지 않은 사무실, 벽 한쪽으로 몇 개의 영화포스터 보이고....
긴장된 듯 둘러보고 있는 용묵.
(소리) 왔어요?
회의실 문 열리며, 지난번 오디션에서 봤던 감독1.
(장면전환)
감독 읽어 볼래요?
시나리오 건넨다.
용묵 이게......
감독 우체분데, 작지만 중요한 역할이에요. 그 사람 때문에 주인공이 헤어지거든. (웃으 며) 대사는 많지 않아도 결정적 장면이니까, 연구 좀 해야 될 거에요.
용묵 (감격) 대사요.....?
감독 지난번처럼 사람들 다 혼비백산하게, 해줄 수 있죠?
그 말에 용묵, 창피하면서도 감격스럽고....
S#34. 거리
희한한 비명 소리 들리며, 사람들 사이로 신나게 내달리는 용묵.
마주 오는 사람 뱅글 돌아 피해가며, 부딪치는 사람마다 “죄송합니다!” 멘트 날리는데,
죄송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용묵의 정말 환한 얼굴.
S#35. 학원 앞 횡단보도
수업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보리 보이는데,
(용묵) 보리야~~
보면, 길 건너에서 손 흔드는 용묵.
용묵 (소리 지르는) 나, 됐어, 됐다구~!!
보리, 쪽팔리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초록불 들어오기 무섭게 길 건너오는 용묵.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마주치는 두 사람.
보리, 쪽팔리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초록불 들어오기 무섭게 길 건너오는 용묵. 횡단보고 한 가운데서 마주치는 두 사람.
용묵 (시나리오 내밀며) 이 안에 나 있다~~!!
보리, 어이없는 듯 웃는데, 놓칠 새라 그런 보리의 손잡는 용묵.
보리, 보면, 왜? 능청스럽게 보고는 길 건너려는데, 갑자기 휘청-
보리, 용묵 끌고 반대방향으로, 꽉 잡은 보리의 손에 끌려 나가는 용묵.
(장면전환)
뜨거운 여름 한낮, 낮은 담에 앉아있는 보리에게 차가운 음료수 건네는 용묵.
보리, 음료수 마시는데,
용묵 (가만히 보리 보다가) 너 참, 예뻐....
보리 (살짝- 사래 거리며) 알아.
용묵 그래서 너한테 더 멋있는 사람 되고 싶어. (보리, 보면) 이제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놓칠 거야.
보리 그래두 용묵아... (말 하려는데)
용묵 그냥, 잘 하라고만 해줘.
보리 (가만히 용묵 보다가) 잘 할 거야.
용묵 내가 말했었지?
보리 뭘?
용묵 너랑 만나면 좋은 일만 생긴다구.
S#36. 마형네 방
끙끙거리는 소리 들리며,
방구석에 세워진 전신거울 보며, 등에 파스 붙이고 있는 마형.
마형 걸레질이 그게, 장난이 아니네..... 사람을 잡네, 그냥.
거울로 등 비추며 팔랑거리는 파스 하나 겨우 붙이는 마형.
S#37. 용달의 집
환하게 밝혀진 창문.
안으로, 용달 자고 있고, 그 옆에서 엎드려 시나리오 넘기며 낄낄 거리고 있는 용묵.
용달 (괴로운 듯) 제발 좀 자자, 쪼옴--
그런 용달에게 이불 뒤집어씌우고는 다시 시나리오 들여다보며 낄낄대는 용묵.
그런 모습, 너무 행복해 보인다.
S#38. 보리네 학원
여기저기 술렁거리는 분위기.
삼삼오오 잡담 나누는 학생들 한쪽으로, 심각하게 앉아있는 보리.
손에 든 모의고사 성적표.
창밖 보는 보리. 비가 오고 있다.
S#39. 촬영장
비속에서 우비 입은 스탭들 분주하게 촬영 준비하고 있다.
한 켠에서 마련된 천막 안으로, 우체부 옷 입고 있는 용묵, 시나리오 들고 마지막 대사 점검 중.
읊조리는 표정이 꽤 긴장돼 보이는데, 그런 용묵에게 다가오는 조감독.
조감독 저기, 용묵씨....
S#40. 촬영 버스 안
갖가지 소품들이며 잡동사니가 들어 차 있는 촬영버스 안.
멍한 표정의 용묵 앞으로,
조감독 주연배우 걸고 들이미는데, 어떡하겠어요... 촬영은 해야하구... 감독님 잘못도 아니 고 그렇다고 용묵씨 잘못은 더더욱 아니고.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만납시다. 이해 해요. (툭- 치고 나간다)
커다란 버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용묵.
잠시 후, 주섬주섬 우체부 옷 벗기 시작한다.
S#41. 촬영장
빗속에서 진행되는 촬영.
호기심에 모여있는 사람들 헤치며, 애써 발길 옮기던 용묵.
그런 용묵의 앞으로, 누군가 우체부 옷 입고 촬영장으로 들어선다..
우뚝- 멈춰서 그 모습 보는 용묵.
S#42. 은행 현금지급기
화면 가득, 현금지급기 화면 ‘잔액 360원’
그 앞으로 절망스런 표정의 마형, 들고있는 커다란 쇼핑백 안에 팔랑거리며 나오는 백화점 영수증.
마형, 영수증 들어보면, ‘여성 원피스 34만원’
마형 내, 피 같은 월세.....
S#43. 애량네 고깃집
마형이 사줬을 새 원피스 입고 가게 통유리에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는 애량.
내리는 비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듯, 가까이 다가가 슥슥- 유리 닦아 보는데,
밖으로 양복 입은 젊은 남자 하나가 빙그레 웃으며 애량을 보다가,
넥타이맨2 (입모양) 예.뻐.요.
S#44. 보리네 집
책상 앞에 앉아있는 보리의 뒤로, 핸드폰 진동소리.
아무렇게나 던져진 핸드폰 액정으로 ‘엄마’
전화 끊겼다가 다시 울리고, 보리 화나는 듯 전화 받아들며,
보리 알았어, 알았다구, 좀!! 나도 아니까 그만 좀 해!!
끊어버린다. 다시 조용해진 방안.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만 요란한데, 어디선가 “보리야~” 용묵의 목소리.
S#45. 보리네 집 앞
마형, 등 뒤로 ‘동방신기 콘서트’ 써 있는 우비 입고 용묵 말리고 있다.
마형 여기서 쌀, 보리를 왜 찾아- 들어갖, 응? 이러다 지난번 그 까칠한 애 나와 봐, 이 번엔 감당 안 돼~
하는데 우산 쓰고 나오는 보리.
마형 (헉!) 왔다, 왔어....
다가와 용묵의 위로 우산 씌워주는 보리.
마형 아니, 내가 들어가자고 하는데도, 이 자식이 언제부터 굶었나 자꾸 보리, 보리 하는 데.... 원래 비 오면 숨어있던 동네 광년이 광식이들 뭐, 우르르... (횡설수설하는데)
보리 얘기 좀 해.
마형 (둘 번갈아 보며) 알어?
S#46. 동네 길
프롤로그의 그 자리, 담벼락 낮은 처마 아래로 나란히 선 두 사람.
우산 쓰고 있는 보리의 옆으로, 다 가려지지 않는 얕은 처마 때문에 용묵의 옷자락 비에 젖는다.
보리 아무래도 이번이 나한테는 마지막 기회인 거 같애.
용묵 ....응.
보리 떨어지면 그냥, 고향에 내려가야 될 거야.
용묵 .....응.
보리 고작 그게 다야?
용묵 ....뭐가?
보리 과두자. 하긴, 우리가 무슨 대단한 사이라고 이런 얘기, 우습지.
용묵 말하면,
보리 (우뚝- 멈추는)
용묵 마음 받아 줄래?
보리 (대답할 수 없고).....
용묵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야. 약속 같은 거, 나 못해. 지금은 너한테 있으라고도, 가라고도, 아무 말도 못해.
처마 밖으로 나서는 보리.
보리 (가려다) 참, 촬영은 잘 했어?
용묵 ....응.
S#47. 다세대 주택 앞
우산 아래로 걸어오는 보리.
다세대 입구에 들어서는데, 그 앞으로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마형.
보리, 마형 지나쳐 들어가려는데,
마형 (느닷없이) 용묵이..
보리 (보면)
마형 무조건 좋은 놈이에요.
S#48. 용달의 집
용묵, 집으로 들어서는데 깜깜하다.
용묵 야, 뭐해? 불도 안 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 옮기는 위로, 턱! 라이터 불빛 앞으로 용달의 얼굴.
용묵 깜짝아.... 뭐야-
용달 공과금. 냈어? (용묵, 아차!) 안 냈지?
용묵 깜빡 했다.
용달 그것도 안내고 뭐 했냐? 차비했냐? 밥 사먹었어? (용묵, 자존심 상하는데) 돈 쥐어 줘 가면서 달랑 그거 하나 부탁한 것도, 꼭 이 지경으로 만들어야 돼? 얼마나 바쁘 길래!
용묵 그래, 씨발 졸라 바쁘다, 왜!
결국, 폭발하는 용묵.
용묵 되지도 않는 오디션 뺑이치느라고 바쁘다, 왜! 촬영이랍시고 깐죽대다가 그 날 기 어들어온 생짜한테 까이느라고 바쁘다, 왜!! 연애랍시고 궁상떨다가 맥없이 보내느 라고 바쁘다 왜!!
용달 하는 일 없이 꿈만 쫓으니까 그렇지!!
용묵 뭐?
말 끝나기 무섭게 달려드는 두 형제.
그 바람에 어둠 속에 와르르- 뭔가 무너지며, 작은 방에 씩씩거리는 두 사람의 숨소리.
용달 솔직히 말해 봐. 남들처럼 사는 거 싫지? 평범하게 사는 거 우습지? 웃기지마... 남 들처럼 돈 버는 거, 남들처럼 결혼하는 거, 남들처럼 사는 거! 그거, 만만한 거 아 니야. 그건 적어도 애쓰고 있다는 거야.
용묵 그럼 나는.... 아니냐?
용달 영업사원 뛰는 거, 쪽팔리지? 보험회사 들어가는 거, 하기 싫지? 근데 걔네는 왜 그럴 거 같애? 누구는 꿈이 없는 줄 알아? 있어도 포기하는 거야, 현실이라는 걸 알 만큼 나이가 먹었으니까!
용묵 그래? 몰랐네... 나이 먹으면 다 알게 되는 건데, 왜 나만 몰랐을까? 근데 너도 모 르는 거 있어. 꿈이라는 거, 버릴 수 없는 사람의 심정도 버리는 사람 못지 않게 힘든 거야.... 막현히 갖고 싶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죽을 만큼 이루고 싶어서 버 티는 거라구....
털썩- 힘 풀고 주저앉아 버리는 둘.
밖으로 빗소리만 요란하다.
인서트
불 나간 창 밖으로 집 앞.
조용한 동네에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비만 추적추적 내리는데,
(용달) 형, 우냐?
(용묵) 미쳤냐.......
S#49. 용달의 집
촛불이 동그렇게 빛을 밝히고 있는 아래로,
등 돌려 잠들어 있는 용묵과 용달. 그런 채로 눈은 말똥말뚱...
용달 있잖아.... 꿈이 뭐라고 생각하냐?
용묵 (생각하다가) 깨는 거.
S#50. 보리네 집 앞 / 버스 정류장
다세대 입구로 우산 펼쳐들고 나서는 보리.
비가 그쳤다. 쓰고 있던 우산 젖히며, 그 위로 보이는 마형네 옥상 담벼락. 아무도 없다.
/
어느 버스 정류에서 버스 기다리고 있는 용묵.
핸드폰 열어 비어있는 화면 보다가 천천히 전화번호 누른다.
/
우산 접어든 보리. 막 걸음 옮기려는데, 걸려오는 전화.
용묵인가? 보리, 핸드폰 찾아 드는데, 실망감이 스친다.
보리 (전화 받으며) 응...... 엄마.
/
정류장을 출발하는 버스.
차창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는 용묵의 모습 지난다.
용묵의 손에 무심히 쥐어져 있는 핸드폰.
S#51. 애량네 고깃집
비장하게 안으로 들어서는 마형.
서빙하고 있던 여자, 일행 없나 살피며,
아줌마 몇 분이세요?
대꾸 없이 누군가를 찾는 마형의 눈에 때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애량. 지난번 그 원피스 입고 있다.
애량, 마형 보고 흠칫-하지만 이내 무시하는데, 마형 저벅저벅 애량 앞으로 가더니.
마형 벗어.
일순간 조용-해지는 고깃집 안.
S#52. 인력시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을 싣고 바쁘게 오가는 봉고차들.
사람들 사이로 쌀쌀한 듯 옷깃을 여미고 있는 용묵.
(소리) 어이- 아저씨-
소리에 용묵, 봉고차로 가는데, 어디선가 전화 걸려온다.
용묵 여보세요?
S#53. 파출소
헐레벌떡 들어서는 용묵.
급히 두리번거리는데, 유치장 안으로 비죽이 용묵 향해 고개 돌리는 마형.
용묵 (다가가며) 어떻게 된 거야.
멀찍이 자리에 앉아있던 경찰관, 참견하듯.
경찰관 성추행 신고 들어왔어요. 배짱도 좋지. 백주대낮에 사람들 우글거리는 고깃집에서 엄한 여자 옷을 벗긴다고 지랄발광을 했으니. 술주정이라 셈치고 넘어준다고 했으 니 다행이지, 요즘 세상에 딱 영창 감이야.
용묵 (마형 보며) 어떻게 된 거야....
쇠창살에 매달려 애처롭게 용묵 보고 있는 마형.
S#54. 고깃집
카운터에 앉아있는 애량,
(소리) 어디부터 할까?
보면, 지난 번 넥타이맨2, 와이셔츠 소매 오리며 걸레 들고 온다.
S#55. 동네 편의 점 앞
파라솔에 앉아 캔맥주 마시고 있는 용묵과 마형.
마형 그냥 재밌을 거 같애서 만났대. 백수들은 어떻게 노나 궁금해서. 돈 많은 사람 사 귈 기회야 앞으로 얼마든지 있으니까.. (발끈-) 그게 스무살 짜리 기집애 입에서 나 올 소리냐?
용묵 형도 뭐, 잘 한 거 없지.
마형 내가 뭘- 남들처럼 고급 레스토랑은 못 데려가도 직접 기른 토마토며, 얼마 전에 그 힘들다는 버섯재배까지 성공했는데... 걔 피부 좋아진 거, 그거 내 공이 반이다.
용묵 사랑 같은 거 사치라며, 남은 인생 바꿀 수 있는 건, 여자 잡는 기회라고 해 놓구 선.
마형 그래... 그랬지.... 근데, 용묵아.
용묵 (보면)
마형 나, 애량이 진짜로 좋아했다.
용묵 형....
용묵의 품에 기대 서럽게 흐느끼는 마형.
지나는 사람들 흘낏-흘낏- 두 사람 쳐다보지만, 마형을 꼭 보듬어 주는 용묵.
마형 용묵아...... 무슨 변명을 해도, 사랑을 놓치는 건, 너무 비겁한 거야.....
마형, 다독이고 있던 용묵. 그 소리에 묵득-
용묵 형, 잠깐만...
훌쩍이는 마형을 두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용묵.
마형 용묵아- 야, 임마- 형이야-
S#56. 다세 대 주택 앞
달려오는 용묵, 다세대 입구에 다다르는데,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사람들.
비가 그쳤는데도 반지하의 낮은 계단 아래 잔뜩 고여있는 빗물.
후다닥- 안으로 뛰어 내려가는 용묵.
S#57. 보리네 집
용묵,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빗물이 가득 찬 보리의 방 안. 여기저기 바닥에 있던 책들도 다 비에 젖어있다.
그 가운데 황망히 서 있는 보리.
보리 (용묵 보며) 비 내리는 거.... 참 좋아했는데....
S#58. 마형네 옥상
옥상 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용묵, 보리, 마형.
마형 예전에 말야, 대학 졸업하고 나서 면접을 한 이백 군데 정도 봤어. 근데 볼때마다 계속 떨어지니까, 나중엔 면접을 봐도 떨리지가 않는 거야. 줄줄줄... 그래, 대사 외 우는 거 같더라. 어느 땐 면접관 앞에서 하품까지 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더라. 씨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보리 할 줄 아는 게 왜 없어요? 저렇게 싱싱하게 야채 기르는 재주도 있고, 용묵이 같은 애 거둬주는 거 보면, (풋- 웃음 터트리는 용묵) 다정한 구석도 있고, 지난번에 나 한테 윽박지르던 거 보면, 터프하기까지 하던데. 안 그래요?
하고, 마형 보면.
마형의 눈엔 주륵- 양 옆으로 눈물 흐른다.
마형 에이씨....
용묵 형...
마형 그거 애량이가 했던 말인데....
용묵, 마형 안아서 도닥여주며,
용묵 에- 몰라, 몰라- 다 잊어버려- 세상에 여자가 걔 하나냐? 옆에 가면 배고프게 고 기 냄새만 풍기고, 립스틱은 또 뭘 그렇게 시뻘개 갖구. 몸 버려- 그게 화학물질이 얼마나 많은데, 키스 할 때마다 그거, 형이 다 먹는 거다-
마형 먹구 확..... 뒈져 버렸음 좋겠다....
용묵 (악 쓰듯) 그래, 죽어라, 죽어-
어디선가, “야, 이 새끼야 조용히 해!!”
용묵 니가 더 시끄럽다, 너나 조용히 해!!
보리 (질 세라) 닥치고 골방에서 평-생- 공부나 해!!
소리 지르며 깔깔거리는 용묵과 보리,
주섬주섬 눈물 훔치며, 따라 웃는 마형.
(장면전환)
잠들어 있는 마형과 용묵.
그리고 옥상 난간에 기울여 아래 내려다 보고 있는 보리.
보리, 위태롭게 아래 보는데, 문득- 아래로 넥타이맨2와 나란히 팔짱끼며 걸어가는 애량 보인다.
가만히 애량 보고 있던 보리, 우물우물 입 안 가득 침 모으더니, 아래로 퉤!
애량의 머리에 정통으로 침 떨어지고,
애량 뭐야!
넥타이맨2에게 짜증부리며 수선 피우는 애량.
S#59. 마형네 옥상 (다음날 아침)
뻗어있던 마형, 새벽 공기가 쌀쌀한 듯 옆에 있던 용묵에게 찰싹 감긴다.
그 바람에 숨 막혀서 잠에서 깨는 용묵.
겨우 마형 떨치며 일어나면, 어지러운 주위로 보리, 없다.
S#60. 보리네 집
용묵, 들어서면 방안을 가로지르는 긴 빨랫줄.
보리, 바닥에서 다 젖은 책 주워 줄에 널고 있다.
보리 (책 널며) 고향에 내려 갈 거야. 거기서 정리하려구. (용묵 보며) 이 공부, 계속할 지... 말지...
용묵 ....괜찮겠어?
보리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회 안 해. (하고는) 생각해 봤는데...
용묵 (보면)
보리 그동안 나..... 참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애.
그 말에 가만히 보리를 보는 용묵. 그리고... 두 사람의 마음 같은 입맞춤.
S#61. 용달의 집
집으로 들어서는 용묵.
방 한쪽에 웬일로 신문지 덮힌 밥상이 있다.
신문지 들어보면, 밥상 위로 나란히 놓인 숟가락, 젓가락과 김치, 그 옆에 컵라면.
그 아래로 흰봉투 보인다.
용묵, 뭐지? 열어보면, 만원짜리 지폐 여러 장과 쪽지.
-고흐도 동생이 열라 밀어줬대드라. 고흐처럼 오래는 안 걸릴 거지?-
용묵 (시큰해지는) 엄마..... 아니, 용달아....
S#62. 마형의 옥상 (다른 날)
비치 파라솔 걷히며, 폐허가 된 옥상.
잘 가꿔온 아지트를 폐쇄하고 있는 마형의 비장한 표정.
S#63. 거리 / 차 안 (다른 날)
도로를 달리는 이삿짐 트럭. 트럭 안으로 타고 있는 보리.
가만히 창 밖을 보던 보리, 창문을 내린다.
바람에 날리는 보리의 머리칼, 그렇게 마주오는 바람을 맞는 보리, 가만히 웃는다.
그 위로.
(소리) 액션!!
S#64. 촬영장 (다른 날/ 낮)
한낮의 분주한 촬영 현장.
사극 촬영장인 듯 말이며, 전통 복장의 엑스트라들, 그 사이로 분주한 스탭들..
한 쪽으로 도포에 갓을 쓰고 있는 남자. 보면, 용묵이다.
분장사, 수염을 붙여주고 있고, 혼자서 대사를 읊조리고 있는 용묵, 예사롭지 않은데..
조감독 자, 준비하세요-
용묵, 휴- 심호흡을 하며, 슛- 들어갈 준비를 한다.
감독 액션!!
소리와 함께 와!! 함성을 지르며 내달리는 용묵의 주위로,
같은 복장을 한 수 십명의 유생들..
여전히 여럿 속에 파묻힌 단역이지만, 그 속에서 달리는 용묵의 진지한 얼굴 위로...
화면 정지.
S#65. 면접 대기실 (이후 에필로그)
작은 회사 한 켠에 마련된 대기실.
몇 명의 대기자들, 넥타이를 추스르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마형.
처음 보는 양복 차림에 몰라보게 단정한 모습.
문 열리며, 직원 하나 나온다.
직원 마동탁씨-
마형 예!
들어서는 마형.
양복 앞가슴에 달린 면접표에 실린 증명사진 아래, ‘마동탁’
이름이 동탁이었구나... 의지를 다지는 마형의 진지한 표정, 마동탁, 파이팅...
S#66. 버스 정류장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용묵.
옆으로 여고생 서넛이 자꾸만 흘끔흘끔 용묵을 쳐다본다.
용묵, 왜 저러나... 신경 쓰이는데,
여고생1 저기여....
용묵 ?
여고생1 혹시, 쥬스 광고 나오는, (하다가 친구들한테) 무슨 쥬스지? (친구들, ‘석류, 석류’) 맞다, 석류 주스 광고 뒤에서 사람들이랑 노래하던 오빠 아니에요?
용묵 (맞힌 한테, 당황스러운) 예/
여고생2 아닌가봐..
여고생3 (발끈-) 그럼, 이번에 연쇄 살인범 잡는 영화에 나오지 않았어요? 뭐드라, 주인공 친구였는데.
용묵 (날 알아보다니) 예....
여고생들 “맞대, 맞대-” 자기들끼리 수선 피우는데..
여고생1 (불쑥-) 싸인해 주세요.
S#67. 동사무소
(소리) 감사합니다-
사람 많지 않은 동사무소.
등본을 기다리는 민원인 앞으로 서류를 내미는 보리.
행정고시는 못 됐더라도 공무원이 됐나보다.
보리 여기, 등본 세장 맞는지 확인해 보시구요, 천 팔백원입니다.
민원인, 이 천원 내고는 서류 살피다가 무심결에 가버린다.
보리 저기요, 거스름돈 받아가셔야죠-
사라져버리고,
보리, 그냥 자리에 앉는데, 문득- 손에 든 이백원...
S#68. 언덕길
용묵이 탄 마을버스가 언덕 위로 버스 정류장에 멈춰선다.
홀로 내려서는 용묵.
아래로 아득히 서울의 풍경 보이고, 익숙한 정류장 표지판 옆으로 자동판매기..
용묵, 주머니 뒤적이는데,
(보리) 아직도 이백원이야?
보면, 예전 그 자리에서처럼 서있는 보리.
용묵, 놀라고, 반갑고.... 또..... 애틋해지는데...
용묵 잘..... 지냈어?
가만히 웃는 두 사람.
(장면 전환)
커피 들고 아래로 서울 내려다보고 있는 용묵과 보리.
용묵 저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가?
보리 글쎄.... 사느라고 바쁘겠지? 일하거나, 놀거나, 쓸쓸해하거나, 사랑하거나..
용묵 그럼 우리는...
보리 (보면)
용묵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런 용묵 보며, 아래로 손 꼭 잡는 보리.
다정하게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 뒤로..
(v.o) 글쎄..... 전에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던 거 같애.
엔딩.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