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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엄경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이 화엄경 입법계품(華嚴經 入法界品)을 설하려고 할 때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데 첫째 보살대중들을 소개를 했죠. 보살대중 오백 명을 소개를 했습니다. 오백 명 중에서 이름을 다 호명한 사람들은 142명이었고 보살전체 숫자는 오백 명이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지난 시간에 있었고 또 그분들은 불교에 어떤 신심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능력, 어떤 마음의 지혜, 또 수행은 얼마나 됐다라고 하는 그런 것들을 열 가지 항목을 들어서 보살덕의 십종찬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를 쭉 했습니다. 이 가운데 공부하시는 여러분들도 뭐 좋은 점 서로서로 낱낱이 열거하기로 하면 상당히 많을 거에요. 내가 일일이 여러분들의 재능과 또 마음의 넓이, 수행, 인격, 이걸 자세히 몰라서 그렇지 각자 자랑하기로 하면 한 사람이 한 열 가지씩 안 되겠나 하는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성문대중이라고 해서 부처님 설법하는 장소에는 여러 종류의 대중들이 모이게 되지요. 범망경(梵網經)이라고 보살계를 받는 범망경 경전에 보면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다 가서 법을 들어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정작 사람뿐만 아니라 부처님 설법 장소에는 다른 동물들도 많이 동참을 한 것이 역사상으로 경전 상으로 또 그림으로 많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공부하는 이 경에도 보면은 두 번째 성문대중 3.성문대중 이렇게 했는데 성문대덕 대중의 십종찬탄 해가지고 덕을 또 찬탄을 합니다. 여기서 성문들 이름은 열거를 하지 않고 있어요. 오백 명 성문이라 그래 돼 있는데 보살이 오백 명이었으니까 성문도 이제 오백 명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성문이라고 하는 대중은 어떤 대중인가? 오백 명의 성문대중이다. 소리성자 들을 문자 그러거든요. 소리성자(聲) 들을 문자(聞) 대중이라고 하는 중자(衆) 聲聞衆 그랬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설법소리를 듣고 신심을 내고 또 그 듣는 일이 좋아서 자기 개인의 수행은 차치하고라도 부처님에게 와서 법문 듣는 그것으로써 수행을 삼는 사람들. 뭐 혼자 참선도 염불도 하겠죠. 그렇지만은 그보다는 부처님 앞에서 설법 듣는 것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사람들. 이런 뜻입니다. 그게 성문이란 뜻이에요.
보살대중은 보살행을 주로 실천하는 그런 대중. 그렇게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보살대중하면 보살대중은 부처님 설법도 듣겠죠. 듣지만은 그것보다는 평소에 보살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을 많이 닦는다던지 하는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그런 대중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분들은 기도대중입니까? 성문대중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문대중이에요. 여기 문수원에는 기도하는 곳도 아니고 불공드리는 곳도 아니고 무슨 절하는 곳도 아니고 그런 것을 또 이끌어서 누가 할 사람도 없고 와서 해도 좋지만은 그런 걸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 또 리더해 주는 사람 이런 분위기가 안 되어있어서 오직 그 성문 일밖에 없어요. 부처님의 경전 강의하고 경전 강의하는 것 듣고, 그 다음 뭐 부담 없이 가서 각자 개인수행 따로 하시고요. 사경을 하시든지 기도를 하시든지 참선을 하시던지 각자 하고. 여기서는 무조건 성문대중뿐입니다.
부처님 당시도 보살행하는 사람도 많고, 또 기도하는 사람도 많고, 그런데 주로 부처님 앞에 탁 그냥 앉아가지고 법문 듣는 것을 주업으로 그래 살아가는 그런 이들이 또 많았어요. 그런 대중들을 성문대중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대개 이제 급으로 본다든지 인격으로 볼 때 성문대중이 보살대중보다는 어떻게? 좀 높습니까? 공부 참 잘 하셨어요. 하도 많이 들어놓으니까 성문대중 노릇을 잘 해 놓으니까, 그래도 듣고 아는 것이긴 하네요. 그래 맞습니다. 보살은 뭐 누구한테 듣고 자시고하는 그런 단계를 넘어섰어요. 그래서 스스로 보살행을 하고,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에게 뭔가 이익과 보탬을 주고 하는 그런 아주 훌륭한 인격자들이고 성문대중은 이제 그렇게 하려고 자꾸 좋은 말 자꾸 듣는 거죠.
자꾸 이제 들어놓으면 그게 어디 가겠습니까? 결국은 우리의 장식, 아뢰야식 속에 저장이 돼요. 다 저장이 됩니다. 요즘 뭐 컴퓨터 다 일반화 돼 있지만은 거기서 지워버리거든요. 예를 들어서 개인이 비밀을 기록해 가지고 누구보면 안된다 해서 지워버리죠. 거기서 이제 지우는게 있다고요. 휴지통에 넣어가지고 휴지통까지 비워버려요. 그래도 한번 썼던 것은 남아있습니다. 보통사람은 못 찾아요. 전문가는 다 찾아내요 그걸. 전문가는 다 찾아낸다고요. 한번 기록했던 것은 아무리 지우고지우고지우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게 저 밑에 아뢰야식에 장식이 되듯이 심지어 우리가 사람이 만든 기계도 그래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사람의 구조라고 하는 것은 컴퓨터보다 천배 만 배 억만 배 훌륭한 기계거든요 기계로 치면.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저장소 그걸 불교에선 아뢰야식 그래요. 그걸 이제 장식(藏識), 갈무리하는 장소 그런 마음의 저장소가 있는데 그 마음의 저장소 속에 우리가 들은 거, 말한 것, 본 거, 뭐 화 한번 낸 거, 한번 기뻐한 것, 누구 한번 칭찬한 것, 누구 한번 욕한 것, 전부 저장이 다 됩니다 그게. 다 저장이 돼 가지고 그게 이제 어떤 기회가 되면 그게 나타나고 그 영향을 줘요. 미쳐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듣는다는게 이게 일차적으로 불자들이 수행해야 될 첫 단계에요. 그래서 문사수(聞思修) 그러거든 聞 思 修, 들을 문자(聞), 들은 것을 가지고 생각할 사자(思) 두 번째는 생각할 사자(思)인데 그건 명상하는 거에요. 우리는 그냥 보통 이제 성문대중이 참 좀 문제인 것이 듣고 말아버려 그만. 그걸 좀 명상을 해야 되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 우두커니 차에 앉아가지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만 쳐다볼 게 아니고, 가면서 ‘아 오늘 성문대중, 성문대중 그 부처님 설법소리를 듣는다’라고 하는 이 문제 하나를 가지고 자꾸 생각을 해야 해요. 명상, 명상의 소재가 됩니다. ‘아 보살이라’ 보살이라고 하는 그 명자하나만 가지고도 명상을 뭐 평생을 명상을 해도 좋을만한 그런 꺼리가 됩니다. 충분히. 그렇게 마음속 깊이 명상을 하면은 그게 思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 사자(思) 명상을 한다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그게 깊어져요. 그러면 깊어지면 실천으로 나오게 돼 있어요. 그걸 修라고 그래요 닦을 수자(修) 문사수(聞思修). 그런데 여기서 성문대중은 첫 단계로써 자꾸 이제 일단 들어야 뭐 생각할 꺼리가 있죠. 그래서 일단은 듣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고 이 자리에 있는 동안은 여러 불자님들도 마찬가지고, 성문대중으로서 일단은 충실히 하는 그런 삶입니다. 성문대중이 뒤에 이제 나와요 보면은. 아주 그 못났다 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는데 뒤에 잠깐 수보리니 뭐 사리불, 목련, 이런 분들이 다 성문대중인데 그런 분들이 소개가 되는데, 여기는 이제 이름이 소개가 안 되고, 오백 성문대중하고 함께 계셨다 부처님이. 그런데 이 분들도 열 가지 찬탄할만한 그런 꺼리가 있어요.
1.
실각진제(悉覺眞諦)라. 다 진제(眞諦)를 깨달았다. 진제는 진리(眞理)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 진字(眞) 또 제字(諦)는 진리 제字(諦)에요. 이 제(諦) 자체가 진리 제字입니다. 우리가 체념(諦念)할 때 이 체字(諦)를 써요. 그래서 진제(眞諦)할 때는 [제]고, 체념할 때는 [체]고. 음이 두 가지죠. 여기서 진제(眞諦)라고 하면은 진리, 불교에서 말하는 참 이치. 다 참 이치를 깨달았다. 이 오백 명은 전부 참다운 이치를 다 깨달았다.
2.
그리고 개증실제(皆證實際)라. 실제라고 하는 말도 역시 이제 진제(眞諦)라고 하는 말하고 뜻이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실다운 경계 또는 진실한 경계. 그렇거든요. 진실한 경계, 실상의 경계를 증득했다 깨달았다. 증字(證) 각字(覺) 똑같은 뜻입니다. 실제를 다 증득하고 깨달았으며.
3.
심입법성(深入法性)이라. 법의 성품에 깊이 들어갔다. 심입법성. 깊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진리, 진리, 법의 성품, 법의성품 해도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여러분들 잘 외우시죠. 법의 성품은, 진리의 성품은 원융(圓融)해서 두 가지 모양이 없다. 이렇게 이제 귀로 스치고 지나가는데, 명상을 안 하면 깊이 들어가지 않죠. 그런데 이 분들은 명상을 해서 법성(法性)이라고 하는 내용에 깊이 들어가 있는 그런 상태다.
4.
그리고 또 한 가지 덕은 영출유해(永出有海).
유해(有海)에서 존재의 바다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그렇게 해석해요. 유해(有海), 존재의 바다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있는게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있는 것도 여러 가지 인데 있는 것 중에서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봐요. 존재의 바다, 있는 것의 바다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모든 있는 것을 다 지칭하면서도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지칭하는 게 있어요. 뭐겠어요? 나? 생사라는 뜻입니다. 生死. 여기는. 유해(有海)하면 생사(生死)의 바다다 그래요. 삶과 죽음이 제일 문제에요. 뭐니 뭐니 해도 삶과 죽음이 제일 문제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는 이 죽음의 문제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그 죽음이 있어요. 우리한테는 아직. 벗어나질 못했어. 그런데 이 분들은 어떻게? 벗어났다. 영원히 벗어났어. 그것도.
5.
그리고 의불공덕(依佛功德)하며
부처님의 공덕에 의지하고 살아. 부처님의 공덕에 그러니까 성문대중이죠. 부처님 법문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고, 또 듣고는 그 들은 대로 실천을 할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의불공덕(依佛功德)이라. 부처님의 공덕에 의지한다. 우리도 그렇죠. 아직 자기 자신들의 공덕이 미약하니까 부처님의 공덕에 의지해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6.
그 다음에 이결사박(離結使縳)이라 그랬어요. 떠났다 무엇을? 결과 사의 속박을 떠났다. 결도 번뇌고요, 사도 번뇌입니다. 십결십사(十結十使) 그래요. 구체적으로 하면은 열 가지 결(結)이라고 하는 번뇌. 결은 벌써 글자가.. 이 결자(結)가 골치 아픈 결자에요. 여러분들 좋아서 결자했죠. 結. 그래 이 결 한번 해놓으면 그만 속박(束縛)이야. 아 보통속박이 아니지 이거. 이게 맺을 결자에요. 딱 묶는다는 뜻이에요. 묶는다는 뜻. 기억나시죠. 이 결자(結). 아주 기분 좋게 기억나시는 분도 있을 이고 엄청스럽게 기억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각양각색이죠 뭐. 사람 기억 따라서. 그래 이게 번뇌야. 번뇌를 불교에서는 결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번뇌라고 하는 것이 예를 들어서 뭐 돈, 이것도 뭐 번뇌라고 합시다. 일단. 그러면 거기에 우리가 매여 있잖아요 일단. 매일 결자니까. 매여 있다고요. 무슨 생각이던지 한 가지 생각에 매여 있는 거라. 매여 있으면 그건 번뇌인거라. 안 매여 있으면 번뇌가 아니에요.
그러면 돈이다 명예다 사람이 우리가 다 좋아하는 것이지만은 안 매여 있으면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가지고 있어도 집착 안 되어있고 매여 있지 아니하면 훌륭한데 매여, 있으면 추접게 보이죠. 그래서 우리가 거기에 온갖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지만은 거기에 집착하고 매여 버리면 그게 번뇌가 돼. 그래서 결이야. 참 이 저 불교용어 하나하나는요 아주 뛰어납니다. 가만히 깊이 생각해 보면요. 그래 결혼이라고 하는 문제도 매여 버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매인게 아주 좋죠. 말하자면. 너무너무 좋은 거야 매여 있음으로 해서. 서로 묶여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또 안 좋은 방향으로 우리가 이해되고 안 좋은 방향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면 그보다도 더 안 좋은 게 없어 세상에. 이건 어떻게 벗어날 길이 없는 거야. 매여 있으니까 매일 결자(結)니까. 그래서 번뇌라고 하는 것이 세상만사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번뇌가 그런 것이고.
그 다음에 사자가 이게 뭡니까? 사용한다 사용. 쓰이는 것. 이게 이제 옥편 식으로 해석을 하면 부릴 사자(使)입니다. 부릴 사자. 그러면은 예를 들어서 종노릇 한다 이 뜻입니다. 이 사자는. 종노릇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를 들어서 돈이라고 합시다 돈. 돈 그게 좋은 것이지만 돈에 우리가 종노릇하잖아요. 그런데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면 종노릇이 아니야. 정말 그릇이 큰 사람은 돈이 없어도 그냥 없는 대로 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매이지 않죠. 매이지 않을 수만 있으면 그건 참 훌륭한 사람이고 그릇이 큰 사람인데, 세상에 뭐 몸담고 사는 사람치고 안 매이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근데 그것도 매이는 것도 정도 따라서 다르지요. 사람들이 각양각색이라고요. 다 똑같이 매이는 것 아닙니다. 돈에 대해서 가치를 느끼는 것도요 다 다릅니다. 사람들 따라서. 아이들 뭐 돈 쉽게 생각하잖아요. 왜냐? 지가 안 벌었으니까. 그런데 옛날 사람들 아주 애써서 자기가 고생고생해서 번 사람들은 아주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거든요. 또 그렇게 소중하게 벌었어도 아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당분간 필요한 도구다. 라고 이렇게 대해서 돈에 철학을 꿰 뚫어 아는 사람은 정말 돈에 대해서 철학적인 그런 안목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애써 벌어도 그렇게 크게 안 매입니다. 이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구지 여기에 매일 일은 아니다. 사람은 거기에 부림을 당합니다. 부릴 사자에요. 종노릇을 한다. 그래서 이 번뇌를 결 사 박(結 使 縳), 그 다음에 이 속박(束縛)도 그것 두 가지를 합해 가지고 결(結)의 속박, 사(使)의 속박, 결사(結使)의 속박으로부터 어떻게 했다고 이분들은? 떠나있다. 떠날 리자(離). 이게 참 부러운 거죠. 아이구 이거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네 이거... 이렇게 이런 번뇌들로부터 시원하게 떠나 있으면은 떠나있다고 어디로 뭐 산으로 도망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대로 그 속에 살면서 떠나 있어야 돼요.
연꽃을 보면 떠났다는 의미를 알 수 있어요. 진흙 속에서 폈지만 진흙이 한 방울도 묻지 않고 어떤 꽃보담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일 줄 아는 것. 이게 떠나있는 참모습입니다. 산으로 도망가 있는 건 그건 도망간 거지 떠난 게 아니에요. 그건 아주 못난 사람들이 하는 짓이에요. 그대로 정말 잘난 사람들은 세속에 묻혀서 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더불어 살되 물들지 않는 것. 그게 이제 제대로 떠난 사람이다. 이 분들도 사실은 그런 뜻이에요. 그런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7.
그 다음에 주무애처(住無碍處) 걸릴 애자에요. 걸릴애자를 약자로 쓰면 이렇게 되는데. 걸림이 없는 곳에 머문다. 걸림이 없는 곳에 머문다. 우리가 어디에 머물러 있어도 그게 이제 걸림이 없으면 좋은데 대개 이제 걸림이 있는 곳에 우리는 전부 머물고 있죠. 이 분들은 걸림이 없는 곳에 머물고, 어딘가 사람은 머물고 있어야 되는데 그 머물고 있는 곳에서 걸림이 없어야 돼요. 전세방 하나라도 얻을 만하면 그냥 당장에 뛰쳐나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죠. 무애처(無碍處) 전부 걸려있는 거야. 걸려있어. 할 수 없어 그래도 들어가야 돼. 들어갈 수밖에 없어. 주무애처(住無碍處).
이런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자신의 생활과 이렇게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고 전철타고가면서 아 주무애처라. 얼마나 근사한 말입니까? 걸림이 없는 곳에 산다. 내가 과연 걸림이 없는 곳에 사는가? 내가 살되 얼마나 내가 걸림이 없이 살 수 있는가? 떠나서 걸림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불교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디 도망가고 떠나서 걸림이 없다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에요. 그 속에 살되 걸림이 없어야 되는거에요. 그게 장애가 되지 않고 그게 아주 긍정적이 장소가 돼야 된다. 내 사는 그 곳이
8.
그 다음에 기심적정(其心寂靜)이 유여허공(猶如虛空)이라. 기심적정이 그 마음이 고요한 것이 저 텅 빈 허공과 같애. 마치 허공과 같다. 우리 마음도 저 허공처럼 툭 터질 수가 있어요. 이 말이 참 좋은 말입니다. 기심적정이 유여허공이라. 이걸 뭐 붓글씨 쓸 줄 아는 사람이 큼직하게 써서 걸어놓고 있으면 좀 마음이 후련해 질려나... 기심적정(其心寂靜)이 유여허공(猶如虛空)이라. 이 허공에는요. 차가 아무리 지나다녀도 걸리지 않아. 건물을 아무리 지어도 걸리지 않고, 부셔도 걸리지 않고, 그게 허공의 경계라. 그런데 우리 마음에는 내 마음에 든 것은 든다하고 안 든 것은 안 든다하고 낱낱이 걸리는 거야 그냥. 좀 추우면 춥다하고 더우면 덥다하고. 내 마음에 조금만 안 맞으면 안 맞아가지고 그저 속앓이를 해쌌고.
그런데 허공에 뭐 빌딩을 뭐 백 층짜리 세웠다고 허공이 속앓이 합디까? 또 그것이 부숴졌다고 허공이 속앓이 하거나 그런 것 없어요. 그런데 우리 마음도 허공처럼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마음을 허공에다가 많이 비유를 합니다. 불교경전 보면요. 거의 마음이 뭐와 같이 생겼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써는 허공(虛空)이 가장 마음하고 가까워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허공처럼 못써요. 그게 문제라. 여기 보면은 그 마음이 적절한 것이 마치 허공처럼 같다. 이 분들은 오백 명의 성문들은 하도 법문 많이 듣고 수행을 잘 해 놓으니까, 그 마음속에 어떤 마음에 들지 아니한 일들이 어떤 내 마음에 들지 아니한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더라도 전혀 그게 걸리지가 않는 거에요. 그래 돼야 돼요. 우리의 삶이 허공에 어떤 사물이 지나가고, 건립하고, 부수고, 건립하고 부수더라도, 허공에는 티 한 점 남기지 않고 걸리지 않듯이. 우리 마음속에 온갖 역경계 순경계 내 마음에 드는 것, 안 드는 것, 좋은 것, 나쁜 게 지나가더라도 그것이 걸리지 않고 흔적이 없고 이렇게 이제 되는 것 참 좋은 대목입니다.
9.
그 다음에 어제불소(於諸佛所)에 영단의혹(永斷疑惑)하며.
우리는 부처님한테 이렇게 들락날락 하면서도 아 이 기도하면 정말 부처님이 이거 뭐 정말 기도를 들어주나 영험이 진짜 있긴 있는건가? 佛法이란게 진짜 이게 스님들이 말씀한대로 경에서 말한대로 이대로 정말 있기는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많이해요. 하면서도... 아주 신심내서 하면서도 간혹 그런 의심을 일으키게 돼요. 그런데 이 분들은 그런 것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 말이에요.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의혹을 영원히 끊어버렸다. 의혹을. 다시는 부처님 문제에 대해서 의심을 안 한다 이겁니다. 의심을 안 한다 이거에요. 요 우리도 공부한다고 열심히 하지만은 간혹 한 번씩 의심이 일어나거든요. 아 이렇게 공부하면 이 공부가 성취되나? 진짜 성취될까? 하는 그런 의심을 하게 된다고요. 그런데 그런 의심마저도 이 분들은 다 끊어버렸다.
10.
그 다음 어불지해(於佛智海)에 심신취입(深信趣入)이다.
부처님의 지혜의 바다에. 부처님 지혜는 너무 넓기 때문에 그래서 바다 해자를 씁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같은 바다와 같은 지혜 또는 뭐 지혜의 바다에. 깊이 믿어서 거기에 들어갔다 나아갔다 해도 되고 나아가니까 이제 부처님 바다 속에 들어가게 된거고. 들어갔다. 깊은 믿음으로 들어갔다. 그 부처님 지혜에 들어갔다면은 부처님 지혜 속에 있는 거지요. 그러나 아직은 이 사람들은 부처님 지혜가 자기 지혜가 되기까지는 아직은 시간이 있겠죠.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는 이해는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요건 이제 성문대중들의 덕이기 때문에요. 우리도 성문인 이상은 잘만하면은 이 정도는 될 수가 있어요. 진제를 다 깨닫고, 실제를 다 증득하고, 법의 성품에 깊이 들어가고, 생사의 바다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부처님 공덕을 의지하고, 온갖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떠났고, 걸림이 없는 곳에 머물고, 그 마음이 고요한 것이 마치 허공과 같고, 부처님 처소에서 의혹을 어떤 작은 의심도 영원히 끊었다. 그리고 부처님 지혜의 바다에 깊이 믿어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성문대중들의 덕을 찬탄을 한 그런 내용입니다. 성문대중이 오백 명이나 있다하니까 오백 명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오백 명 있었는데, 그 오백 명들은 이러이러한 분들이다. 무슨 뭐 약력보고도 하게 되고요, 그분의 행장도 소개하고 하듯이, 덕을 이렇게 칭찬을 하게 된 거지요.
그 다음에 세간의 주인대중(世間의 主人大衆) 그랬어요. 요거는 이제 세간의 주인대중 덕의 십종찬탄( 世間의 主人大衆 德의 十種讚嘆) 했는데 여기 또 밑에는 어떤 좋은 덕을 가졌는가? 좋은 점. 이분들은 어떤 경력 뭐 경력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어떤 좋은 점들이 있는가? 그걸 이제 소개를 이제 하는데. 우선 세주(世主), 세간주인(世間主人)이라고 하는 말부터 한번 해석을 할까합니다.
급여무량제세주(及與無量諸世主)로 구(俱)했다 그랬죠. 한량없는 세간주인 그랬습니다. 세주(世主). 그래 이 화엄경 그 39품인데 요건 한품이지만은. 그 39품 첫 품이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야. 세주묘엄품인데 세주(世主)하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국왕 옛날 같으면 천자, 국왕, 도지사, 장관, 국회의원, 뭐 단체장, 무슨 뭐 한 동네 동장까지도 다 포함이 됩니다.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의 주인, 그 분야의 주된 내용, 뭐 그런 의미도 되구요. 그래서 이 세주라고 하는 말 속에는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앞에는 오백 보살, 오백성문 그랬는데 여기는 무량세주야. 무량세주(無量世主). 세상 삼라만상은 헤아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오백이다, 천이다,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렇게 많은 숫자거든요. 그러니까 한량없는 세상주인. 그렇게 이제 해석을 하는데, 이 화엄경에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 맨 첫 품이 되고, 또 약찬게(略纂偈)는 보면은 세주(世主)들, 세상주인들 이름을 쫙 열거를 해 놨어요. 요 세주(世主)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하면은 화엄경을 거의 이해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번에 내가 화엄경 제목 설명할 때 경허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제목을 내가 아주 그 명해석이다 라고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화엄경이 이제 쉽다면 너무 쉬운 것이고, 어렵다면 그 어려운 이유가 바로 세주(世主) 무엇이 세주인가, 세상주인인가? 세상주인은 모두가 화엄대중(華嚴大衆)이 되고 그래요. 이 화엄경의 세계 속에 있는 대중. 그러면은 화엄의 한 조각들이야. 화엄의 한 부분들이라고요. 화장세계의 한 부분 부분이고, 화장세계(華藏世界)의 대중(大衆)의 일원(一員)이야. 뭐 부처님만 화장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모든 세주들이 세상주인들이 전부 화엄의 세계의 대중이고, 말하자면 화엄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끌어가고 있고, 이분들이 곧 화장세계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 분 중에 한분만 빠져도 진리의 세계, 이상세계, 화장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고걸 꼭 기억하셔야 돼요.
그래서 이제 맨 앞에 붙여놓은 화엄경약찬게를 보겠습니다. 붙여놓으라고 했는데 모두 다 붙여놨죠? 요건 이제 계속 공부하면서 참고해야할 그런 내용이라서... 가서 집에 가서 딱 잘라가지고 붙이라니까 안 붙이고는 그거 들고 다니다가 흘려버릴라고 그래요? 참 성문들은 말 안 들어 하여튼. 이렇게 붙여놓으면 도망도 안 가고 늘 볼 수 있잖아요. 이 화엄경을 간추린 경입니다 이 한 페이지가, 한 장이. 그 일단 뭐 그러나 저러나 펼쳐놓고 보세요. 외우는 사람은 기억하시면 되겠구요.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과거현재미래세 시방일체제대성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근본화엄전법륜 해인삼매세력고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거기까지인데요. 보면 근본화엄전법륜(根本華嚴轉法輪). 이 화엄경이라는 게 근본법이거든요. 그래서 근본으로 화엄경을 말하자면 모든 경전의 근본으로 이 화엄을 가지고 법륜을 굴리는데. 해인삼매의 세력으로써 그것을 할 수가 있다. 화엄경을 설할 수가 있다 해놓고.
그 다음에
보현보살제대중 집금강신신중신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족행신중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주산신중주림신 주약신중주가신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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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제 쭉 이제 산 그 신들 이름이 나가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라고? 세주(世主), 세상주인들입니다. 그런데 우선 살펴보면요. 무슨 우리가 아는 대중도 있지만은 모르는 대중도 있고 그렇습니다. 보현보살이라든지 집금강신 또 신중신. 우리가 신중단을 위하고, 정초되면 신중기도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화엄경 영향입니다. 그 화엄신중 (華嚴神衆) 그러거든요. 또는 화엄성중(華嚴聖衆) 이렇게도 하고, 화엄신중이나 화엄성중이나 같은 뜻인데, 그 신중들이 화엄경의 근본취지에서 보면은, 여기 보면은 족행신(足行神)이라고 하는 것은 발로 걸어다니는 일, 그 다음에 도량道場에 있는 신, 주성신主城神하면은 성(城)을 맡은 신, 그 다음에 주지신主地神 하면은 땅을 맡은 신, 이게 이제 땅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도시가 하나 있으면 성을 이렇게 쭉 둘렀죠. 한 마을에 성을 이렇게 둘르고 짐승이 못 들어오게 하고, 또 이웃나라 적이 못 들어오게 하고 해서 성이 있어요. 성(城) 그 자체가 신이고, 땅 그 자체가 신이고, 주산신(主山神) 산 자체가 신이고, 주림신(主林神) 숲 그 자체가 신이고, 주약신(主藥神) 약이 그대로 신이에요. 그 다음에 주가신(主稼神) 농사짓는 일 그 자체가 신이야. 농사 가자(稼)입니다. 그 다음에 주하신(主河神)은 뭐죠? 냇물 자체가 신이고, 바다 자체 주해신(主海神) 바다가 그대로 신이고, 그 다음에 주수신(主水神) 물이 그대로 신이에요. 또 주화신(主火神) 불이 그대로 신이야. 주풍신(主風神) 바람이 그대로 신이고, 주공신(主空神) 이 허공 그 자체가 神입니다.
그게 전부 합해가지고 뭐라고?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이 세계는 그대로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다. 여기에서 물 하나만 빠져도 안 되고, 불 하나만 빠져도 안 되고, 바람 하나만 빠져도 안 되고, 허공 하나만 빠져도 안 되고, 뭐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게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어떤 대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고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그대로 화장세계를 형성하는 일원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면은 낱낱이 주인입니다. 주인의식 갖자 라고 하는 것도 좋은 현상이에요. 절대 주인이지 종은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가 끄달리면은 내가 종노릇을 하게 되지만은, 아까 번뇌에서는 그런 일이 있지만은, 본래는 전부가 다 주인입니다. 저 나무 한 그루도 주인인데 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주인이 아니겠어요? 당연히 주인이어야 돼요. 주인만 주인이 아니라 다 주인이야 다 주인이라구요. 전부가 다 주인이라고요. 그러니까 여기에 보면은 바람도 주인, 물도 주인, 불도 주인, 산도 주인, 뭐 바다도 주인. 일체가 다 그 자체로써 충분히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런 가치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꽃이 있는데 요 꽃만 보라색만 갖고 있는 이 꽃만 존재할 수가 없어요.
꽃이 존재할라면 그 밑에 잎이 있어야 되고, 줄기가 있어야 되고, 뿌리가 있어야 돼. 그럼 그 어느게 더 가치있느냐? 우리는 꽃을 중심으로 해서 판단을 하니까 꽃이 가치가 있다 이러는데 아니에요. 꽃은 줄기 덕에 있습니다. 줄기 없으면 꽃은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럼 줄기가 더 가치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아니지 뿌리가 더 가치있네. 뿌리가 있어야 줄기가 있지. 아니지 뿌리 있고, 줄기 있고, 꽃 있다하더라도 옆에 받쳐주는 잎이 없으면 뭐 산소를 빨아들일 수가 없잖아요. 산소 못 빨아들이면 뿌리가 어떻게 살며, 꽃잎은 어떻게 살아요? 그렇게 생각하면요. 전부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더하고 덜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걸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뭐 누가 잘나고 누가 못나고 그게 없습니다. 똑 같아요. 그게 화엄경의 도리입니다. 그걸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 화엄경에서는 그런 입장에서 여기 화엄경을 간추린 화엄경이 약찬겐데, 이 간추린 화엄경 안에 그런 이름을 쭉 이렇게 열거해 놨어요. 왜 열거했느냐? 그 하나하나가 화엄경이다 이거야. 그 하나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이 세계가 존재하게 되고, 말하자면 꽃잎 뭐 줄기, 뿌리, 꽃, 그 자체, 이 하나하나가 있어서 이 완전한 하나의 꽃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잖습니까? 거기에서 하나만 빠져도 꽃이 존재 안 해요. 마찬가지로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약찬게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모든 존재들, 그 중에 하나만 없어도, 물만 없어도 이 세계는 없습니다. 불만 없어도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바람만 없어도 이 세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게 없어요. 똑 같습니다. 전부가 다 그래요. 그것을 알고 그 가치를 우리는 인정해 줘야 돼. 나만 잘났다고 나만 잘났다고 할 게 아니고, 상대도 잘 났어. 나하고 똑같이 잘났어요. 상대도. 다른 사람도 똑같이 나하고 잘났어. 그러면은 뭐 잘났다고 뻐길게 없죠 전혀. 전혀 뻐길게 없습니다. 왜냐? 아 똑 같이 잘났는데. 나만 잘난 게 아니고 나무도 잘나고, 돌도 잘나고, 풀도 잘나고, 불도 잘나고, 물도 잘나고, 다 훌륭한 가치, 훌륭한 그런 어떤 그 소중한 역할들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 혼자 뭐 자기 아상(我相) 부릴게 어딨습니까? 아상 부릴게. 저절로 그렇게 돼. 그래 화엄세계의 좋은 점은,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그 무엇도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해주고 같이 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사는 그런 그 삶, 그걸 법계연기라 그래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부 똑같은 가치, 똑 같은 관계를 가지고 같이 굴러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살아야 내가 그 이치에 맞게, 화엄사상(華嚴思想)에 맞게, 순리(順理)에 맞게, 내가 사니까 내가 불행이 없는 거죠. 그 순리를 어기면은 불행이 오는 거에요. 그 불행을 우리가 겪고 있다 하면은 이것은 틀림없이 내가 순리를 어긴 거에요. 순리를 어긴거고, 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이런 식으로 그 어떤 이치에 안 맞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미. 이치에 안 맞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불행해 지는 거에요. 그 화엄사상이 그래서 참 알고 보면은 화엄사상보다 더 훌륭한 사상이 없는 거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뭐 쌀을 두고 내가 가끔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사람입장에서는 쌀이 필요하지. 그 뭐 줄기니, 무슨 뭐 벼 뿌리니, 뭐 이게 뭐 소용 있어요. 나중에 처리할라면 귀찮은데 없었으면 싶지. 그렇지만 논에 쌀만 수북이 쌓여있을 수 없잖아요. 벼 뿌리가 있어야 되고, 벼 잎이 있어야 되고, 줄기가 있어야 되고, 벼를 싸고 있는 그 겨도 있어야 되고. 그 싸고 있는 겨하고요, 겨 안에 있는 쌀하고 가치가 똑같아요. 먹는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 이 겨는 이까짓 거 버려야 되는 소용없는 것이고, 쌀만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건 내 수준이야. 그리고 내 잣대라고요. 그거는 내가 쌀을 먹을려고 하는 입장의 내 잣대라. 쌀과 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아 쌀은 정말 그 싸주는 쌀을 싸주는 그 껍질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이 거 쌀을 취할려면 나보다 더 훌륭한게 겨라고, 사람들이여 이 겨를 가져가십시오. 겨 이거 껍질 때문에 내가 있고, 그 껍질이 나를 탄생시켰기 때문에 이 껍질이 더 소중하고 더 값진 거라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거에요. 그걸 우리는 모른다고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걸 모르고 사는 거야. 그런 관계를 모르고 사는 거에요.
그럼 뭐 이 간추린 화엄경에 뭐 쓸데없는 소리 어떻게 생각하면 바람, 물, 불, 이거 뭐하는 소리냐 이거야. 왜 간추린 화엄경에 아주 주옥같은 말씀을 써놓지 않고, 무슨 족행신중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주산신중주림신 주약신중주가신 주하신중주해신. 뭐 물, 불, 바람, 허공, 이거 뭐 누가 모르는 사람 있냐 이거야. 그런데 왜 여기다 이렇게 써 놨느냐? 바로 그겁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가지고 화장세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형성하고 있고, 여기서 뭐 하나만 빠져도 이 세계는 깨어져 버리고, 그런 관계를 우리가 깨닫고 알고, 그 이치에 순응해서 살줄 알라하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 중에 그런 의미가 포함돼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이렇게 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존재들은 부처님이나 보살들이나 그런 이들하고 똑같은 가치를 오히려 그보다 더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하는 의미가 이 속에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약찬게(略纂偈)의 그 뜻을 우리가 늘 그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제 보구요.
이 세주(世主)라고 하는 말이 이제 우리가 공부하는 오늘 세주라고 하는 말이 나와서, 세주(世主)는 바로 모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는 전부 주인이다. 똑같은 가치를 가진 주인이다. 이것 하나하나가 어우러져가지고 이 화장세계(華藏世界) 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형성하고, 더불어 얽히고설켜서 살아가고 있다. 라고 하는 그런 뜻으로 좀 확대해서 이해해야 됩니다. 본래는 그런 뜻이에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대개 말하자면은 무슨 왕이다, 장관이다, 도지사다, 무슨 뭐 하나의 단체면 단체장이다. 하는 그런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뭐 한 단체 중에서는 주인, 세상 세상에선 주인이라면. 책임진 그리고 뭐 한 가정에도 호주(戶主)가 있잖아요. 호주가 있듯이 세주(世主). 한 세상에는 하나의 주인이 있다. 뭐 이런 식으로 여기서는 일단은 그래 이해를 해야 되는데 정작 세상의 주인은 사물 하나하나 존재 하나하나가 모두가 세상주인이다 하는 그런 이해를 해야 바로 하는 거지요.
世間의 主人大衆
*世間의 主人大衆의 十種讚嘆*
及與無量諸世主로 俱하시니 悉曾供養無量諸佛하며 常能利益一切衆生하며 爲不請友하며 恒勤守護하며 誓願不捨하며 入於世間殊勝智門하며 從佛敎生하야 護佛正法하며 起於大願하야 不斷佛種하며 生如來家하며 求一切智하니라.
급여무량제세주로 구하시니 실증공양무량제불하며 상능이익일체중생하며 위불청우하며 항근수호하며 서원불사하며 입어세간수승지문하며 종불교생하야 호불정법하며 기어대원하야 부단불종하며 생여래가하며 구일체지하니라.
1. 悉曾供養無量諸佛하며
그런 이들로 더불어 함께했는데 이 사람들의 열 가지 덕은 실증공양무량제불(悉曾供養無量諸佛)했다. 모두들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에게 공양 올린 분이다. 공양을 올린 사람들이다. 이 중요하죠. 뭐 불공 안 해본 분들이 없겠죠 이 자리에는. 또 부처님께 공양 올릴 뿐만 아니고
2. 常能利益一切衆生하며
상능이익일체중생(常能利益一切衆生) 항상 일체중생들을 이익하게 한다. 이게 중요한 거지요. 뭐 부처님께 공양 그게... 뭐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다」그런 말이 있어요. 그걸 이제 또 스님들은 그걸 이제 역으로 활용을 해요. 그 뭐 부처님께 올리는 것보다 자기가 먹는 걸 우선으로 할 때 이제 그런 소리 쓴다고요. “아 중생이 우선이지.” 왜냐?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다. 중생이 공양하면 부처님이 공양하는 거다. 또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하는데 할 말은 없습니다마는 그건 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사실은 중생에게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게 부처님이 바라는 바지요. 그래서 곧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게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다 이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3. 爲不請友하며
그 다음에 위불청우(爲不請友) 이거 좋은 말이에요. 이거는 불청객이 되면은 안되는데 그건 참 천대받지요 어디가도. 뭐 친구들 이렇게 서로 가까운 사람끼리만 불렀는데 아 생각지도 않게 불청객이 하나 떡 와 가지고 꼭 그런 사람들 있지 동네에. 안 왔으면 좋은데 와 가지고 분위기를 망쳐놓는다든지 하는. 여기는 그런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보살들 또는 세상 주인은 꼭 예를 들어서 청해야만 가는 것은 보통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정말 진짜는 불청우가 좋은 거에요. 청하지 않아도 우정 가서 시간 내 가지고 가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게 못난 사람이 그러면은 불청객이 되지만은 잘난 사람이 그러면은 얼마나 그 자리가 빛나겠어요. 참 고맙지요. 당신 같은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이 자리에 못 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서 오셨으니까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되잖아요.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불청우라고 하는 말은 보통 보살들이 하는 일이에요. 유마경에 보면은 이 불청우라는 말을 아주 좋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들이 정말 큰 덕을 베푸는데 이 불청우 노릇을 한다. 청하지 않은 친구의 노릇을 한다. 관세음보살 부르는데 가는 거야 뭐 쉬운 일이다. 부르지 않아도 가서 도와줄 줄 아는 그런 친구. 그게 이제 좋은 친구다 하는 뜻입니다. 그 여기 세상주인들은 그런 사람이다.
4. 恒勤守護하며
그리고 항근수호(恒勤守護)라. 항상 부지런히 지키고 보호한다.
5. 誓願不捨하며
그 다음에 서원불사(誓願不捨)라. 원력 서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서원을 잠깐 세웠다 마는게 아니고 아~! 내가 화엄경을 공부해야지 라고 딱 생각했으면 그걸 버리지 말고 계속 공부하는거야. 그게 불사야. 서원불사입니다.
6. 入於世間殊勝智門하며
입어세간수승지문入於世間殊勝智門한다. 그 우리가 참 좋은 서원 세우기는 쉬운데 그걸 끝까지 지키고 가기는 참 어려워요. 그래서 이런 말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세간수승지문(世間殊勝智門) 세간의 아주 수승한, 아주 뛰어난, 수승이란 말은 뛰어나다 이런 말인데. 아주 뛰어난 지혜의 문에 들어간다, 들어갔다 이 말이야.
7. 從佛敎生하야 護佛正法하며
그 다음에 종불교생(從佛敎生). 아! 이거 참 좋은 말이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태어났어. 이거는 금강경에서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이라는 말이 있는데 法에 의해서 출생했다.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개종차경출(皆從此經出)이라. 다 이 경전으로부터 나왔다. 이런 말이 있는데 여기서 종불교생(從佛敎生)이라고 하는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새로 태어났다, 거듭 태어났다 이겁니다. 이게 중요한 거에요. 자꾸 거듭 태어나야 돼.
우리는 생명을 받아서 태어나가지고 그럭저럭 세상경험 하고요, 학교 교육 좀 받고, 그럼 적당히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럼 그거 가지고는 안 되지요. 살아가는데는 뭐 불편이 없을지 모르지만은, 계속 거듭거듭 태어나야 돼요. 거듭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좋은 꺼리를 가지고 있어. 그게 뭔고 하니 마음이야. 영원히 시들지 않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항상 발전할 수 있고, 항상 자기 계발(啓發)이 가능하구요.
그런 실례(實例)들을 신문에는 그런 일들을 소개를 가끔 하지요. 나이 뭐 60, 70 돼서 한글 익혀가지고 대학교 들어가고 하는 그런 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절대 그 저기 나이가 든다고 머리가 녹스는 게 아니에요. 하도 많이 알아가지고 정보가 많아가지고 가끔가끔 잊어버려서 그렇지. 다른게 너무 많아서 그래요. 이거는. 아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예를 들면 그런 거에요. 신문에다가 그 글자 가득한 신문지에다 조그맣게 연필로 전화번호를 그 사이에 써 놨다고 합시다. 그거 어떻게 찾겠어요. 찾을 라면 한참 걸리는 거야. 그런데 백지에다가 써 놓으면 찾기 일도 아니야. 백지에다 써 놓으면은 아무리 연필로 작게 써놓아도 고거뿐이니까 가서 바로 찾는데, 신문지에다 써 놓으면은 그 찾을라면 애 먹는 거야. 그런데 있기는 있어. 그와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이 빨리 안 되는 것은 신문지 안에다가 그 뭐 메모를 해 놓은 것을 찾는 것하고 똑같은 거에요. 절대 없어진 건 아닙니다.
아이 그 나이가 드니까 머리도 기억력도 떨어지고 뭐 안 되더라. 그건 잘못.. 몰라서 그래요. 다른 정보가 워낙 많으니까. 여러분들이 하루에 접하는 여러분들 정보의 양이 얼만 줄 아세요? 여기서 화엄경 듣는 것도 대단하지만은 일어나가지고 뉴스 듣고, 뭐 새로운 거 보고, 그 다음에 오늘 날씨 뭐 또 온도 느끼고, 이게 전부가 우리 장식 아까 이야기한 아뢰야식, 장식 속에 전부 입력이 다 되는 거에요. 전부 입력이 다 됩니다. 이 시간까지 걸어오면서 겪어오면서 눈을 뜨고 이 시간까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것, 이건 전부 저장이 다 돼요. 저장할려고 한 것만 저장되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느낀 것 전부 저장이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온도에서 느낀 그걸 가지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보다 조금 더 춥구만 금방 알아. 데이터가 딱 나와 버려 그만, 비교가 딱 바로 나와 버려요. 그렇게 정확합니다. 이 저장소에 말하자면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치 많은 별별 어마어마한 정보를 새로 저장하고, 저장하고, 그렇게 축적이 돼 있는데, 거기에 전화번호하나 기억.. 들었다고 얼른 튀어나오겠습니까? 잘 안 튀어나와.. 그러면 머리가 무슨 둔해진 것도 절대 아니고요, 머리가 둔해지지가 않습니다. 절대 둔해지는게 아니고, 그만치 정보를 많이 받아들여서 그 중에서 건져 낼라니까 그렇게 어렵다는 것이. 어릴 때 기억이 초롱초롱한 것은 그만치 정보가 없어. 큰 백지에다가 여기저기에다가 글자 몇 자 써놓으면 그냥 휙 한 번 보면 무슨 글인지 다 안다고요. 그래서 어릴 때는 기억이 잘 떠오르는 거에요. 그런 관계지 절대 머리가 나빠지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그 잘못알고 있어요. 전부 잘못알고 있더라고요. 그래 불교공부를 우리가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 불교는 바로 가르쳐줘요.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것을 바로 가르쳐줘. 바로 잡아 줘. 그러니까 50, 60, 70이 되어도 공부해서 짧은 시간 안에 공부 다 마쳐서 대학교도 갈 수 있고 그렇죠.
그게 내가 그러죠. 내가 스님들한테도 잘 이야기하고 책도 어디 보니 있더라고요. 70에 한글을 배워서 80에 시집을 한권 낸 홍 윤여라고 하는 그 보살. 이 시가 아주 주옥같은 시를 썼어. 책을 내면 여덟 권은 낼 수 있는 책인데 한권만 우선 냈더라고요. 70에 한글을 배웠어. 그래가지고 아라비아 숫자도 그때서 배운 거야. 70에 배웠는데. 전화 아라비아 숫자를 모르니까 전화를 못 거는 거야. 자기가 처음에 아라비아 숫자를 익혀가지고 자기 손자 집에다 전화를 걸었는데, 손자의 그 음성을 들었을 때, 자기가 걸어가지고 그 손자의 음성을 듣고는 너무 기뻐가지고, 장원급제하면 이 정도 기쁠까 이랬어요. ‘장원급제한다고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하더라고요. 그 아라비아 숫자 열 개 배워서 손자하고 직접 통화하는 그 기쁨. 그러면서 책을 나중에 책을 다 썼어요.
그런 정도로 그것도 우리 머리가 우리마음은 결코 녹슬거나 그런게 아닙니다. 똑 같아요. 항상. 영원한 그런 살아있는 그런 생명체, 정말 영원히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종불교생(從佛敎生)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성인(聖人)의 가르침에 의해서, 또는 선각자(先覺者)의 가르침에 의해서 새롭게 새롭게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태어나라 이거야. 종불교생(從佛敎生) 참 좋은 말이죠. 선각자의 가르침에 의해서 계속계속 새롭게 새롭게 태어나라. 이 세주들은 그런 사람이다.
그 뭐 그런 실례(實例)들을 들기로 하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저기 뭐 메이저 총리, 내가 가끔 예를 잘 드는 영국의 메이저 총리, 그 전 총리지만 그런 사람들 다 고등학교 중퇴한 사람들이거든요. 신문팔이도 다 하고. 그런데 천하의 유명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들 다 제치고 영국의 총리노릇도 다 하고, 다나카 수상도 국민학교 출신이에요. 일본에. 그런 사람들. 미국에 그 저 알라스카를 사들인 대통령이 있어요. 그 사람도 출신이 크게 훌륭한 출신이 아니라고요. 그런 사람들 만행한 거 보면 기가 막힌다고요.
어떤 사람들 대학교 딱 나오면 공부 다 한 걸로 공부 딱 제쳐버리죠. 그 다음부터 이제 정말 승부가 거기에서 있어. 거기서부터 비로소 이제 승부가 시작되는 거야. 대학교 졸업하기까진 누구나 같은 코스 비슷비슷해. 조금 뭐 공부 더하고 덜하고 그 뭐 별 차이 아니라고. 정말 승부수는 그때부터 던져지는 거야. 학교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부터 그 다음에 얼마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공부하느냐? 여기에 그 사람의 승패가 달렸다고요. 그런데 거기서 그만 아 취직했고 말이지 뭐 적당히 살아가면 됐다 하면은 이제 그걸로 끝나니까 그 사람 인생은 그거뿐이야. 그러나 거기서 계속 갈고닦고 도전하는 사람은 아주 크게 성공하게 되고. 그런거 아닙니까? 세상은 그래 돼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종불교생(從佛敎生)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선각자의 가르침으로부터 계속계속 거듭태어나라. 새롭게 태어나는 거 이 중요한 거야. 그 상태에서 머물러있으면 안돼요. 그러니까 이 저기 여기 오신 불자님들은 바로 이 점에서 아주 좋은 거에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새롭게 새롭게 자꾸 태어나려고 하는 그 자세, 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온 거라고요. 그래서 딱 오늘 맞아 떨어지는 낱말하나를 건진 거라. 종불교생(從佛敎生). 뭐할라고 그렇게 공부하느냐? 니가 가면 뭐 성불할 줄 아느냐? 아니라 이거야 종불교생. 선각자의 가르침에 의해서 나는 거듭거듭 태어날란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태어날란다. 새롭게 자꾸 마음이 깨우쳐지잖아요. 깨우쳐지는게 그게 태어나는 거에요. 그래 그 인생의 관점이 달라지고, 아 인생은 이런 거구나. 세상은 이런 거구나. 그 관점이 달라지는 거에요. 관점이 달라지는게 태어나는 거지 어디 가서 몸 바꿔 오나요? 몸 백번 바꿔 와도 소견이 변하지 아니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 소용없어요. 이 소견 안목이 바뀌어야 그게 말하자면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거에요. 그게 발전이지 다른게 아닙니다. 절대 육신의 나이 가지고 뭐 이러고저러고 핑계대고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거는 불교에서는 인정 못 받아요. 불자가 아니라고요. 나이 핑계대는 사람은 불자가 아니야. 그 수자상 버려라고 하잖아요. 나이에 대한 의식을 한계의식을 버려라. 從佛敎生. 여기 뭐 보살의 덕을 보나, 성문의 덕을 보나, 나이가 얼마 됐다 하는 말 한 마디도 없어 아 이 사람은 나이가 몇 살 돼가지고 점잖다 이런 말 한 마디도 없다고 보면.
또
護佛正法하며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세주(世主)니까. 그러니 저 무슨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불교를 말살할려고 하면은 상당히 그 영향을 받아요. 어디 가서 허가하나 낼 라고 해도 틀면은 애를 먹어. 그런데 불자가 떡 있어가지고 그것을 정상적으로 처리해 주면 아주 일이 또 쉽게 풀리고 그런 예들이 많습니다. 그래 참 이 불자들이 많아가지고 불교를 그런 자리에서, 세주의 자리에서, 세상의 주인 자리에서, 장 자리에서, 그것을 정상적으로 잘 보호해주고 지켜줘야 되는데 그 참 어려워요. 불교에서 뭐 한 가지 할라고 하면은 뭐 요소요소에 얼마나 다른 종교인들이 박혀있는지.. 잘 돼 있는 것도 그 아니라고 그러고 그런 경우가 참 많아요. 호불정법이라 부처님의 정법을 보호하며
8. 起於大願하야 不斷佛種하며
기어대원(起於大願) 큰 원력을 일으켜서 부단불종(不斷佛種) 부처님 가르침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계속 이어지게 한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한다고?
9. 生如來家하며
생여래가(生如來家)야. 여래의 집에 태어나 가지고서 일체지를 구한다. 여래 집에 태어나면 뭐 끝난 거지요 뭐. 바로 여래의 아들이니까 바로 여래지요. 여래의 아들은 바로 여래가 되는 거에요.
10. 求一切智하니라.
구일체지(求一切智)를 구한다. 일체지(一切智)를 구한다. 이 세간의 주인들을 소개하는 그 내용이 참 좋지요? 세간의 주인들.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이 이제 청법을 합니다. 청법. 법을 이제 청해야지요. 뭐 이렇게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뭐 대중들 모였다는 이야기만 계속할 수가 없으니까 어지간히 모였으면 법을 이제 청해야 되겠다 이렇게 된거죠. 그래서 청법(請法)이라 法을 청하다. 如來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德을 좀 이야기 하면서 법을 청하는 내용이 나와요.
二. 請法
1. 如來의 불가사의 한 德
時에 諸菩薩과 大德聲聞과 世間諸王과 幷其眷屬이 如來含作是念호대 如來境界의 如來智無能行과 如來加持와 如來力과 如來無畏와 如來三昧와 如來所住와 如來自在와 如來身과 如來智를 / 一切世間의 諸天及人이 無能通達하며 無能趣入하며 無能信解하며 無能了知하며 無能忍受하며 無能觀察하며 無能揀擇하며 無能開示하며 無能宣明하며 無有能令衆生解了요 / 唯除諸佛加被之力과 佛新通力과 佛威德力과 佛本願力과 及其宿世善根之力과 諸善知識攝受之力과 深淨信力과 大明解力과 趣向菩提淸淨心力과 求一切智廣大願力이니라.
시에 제보살과 대덕성문과 세간제왕과 병기권속이 여래함작시념호대 여래경계의 여래지무능행과 여래가지와 여래력과 여래무외와 여래삼매와 여래소주와 여래자재와 여래신과 여래지를 / 일체세간의 제천급인이 무능통달하며 무능취입하며 무능신해하며 무능료지하며 무능인수하며 무능관찰하며 무능간택하며 무능개시하며 무능선명하며 무유능령중생해료요 / 유제제불가피지력과 불신통력과 불위덕력과 불본원력과 급기숙세선근지력과 제선지식섭수지력과 심정신력과 대명해력과 취향보제청정심력과 구일체지광대원력이니라.
그때 제보살(諸菩薩)과 대덕성문(大德聲聞)과, 여러 보살하고 대덕성문이라고 하는 것은 성문들도 덕이 많으니까 그래서 대덕성문과. 그 다음에 세간제왕(世間諸王)과. 아까 세주(世主) 했죠. 여기서 이제 세간제왕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왕이 그래도 그 어쨌든 주인이죠. 한 가정에는 호주가 주인이고, 한 나라에는 대통령이 주인이고, 옛날에는 왕이 주인이고 그랬죠. 그래서 그 자리를 서로 할라고 아마 그래 쌌는가 봐요. 그 자리에... 그리고 병기권속(幷其眷屬)이 함작시념(含作是念)하되, 아울러 그 권속들, 보살권속 성문권속 세간 왕들의 권속들이, 다 같이 이런 생각을 했다. 다 함자(含) 含作是念, 이런 생각을 하되,
①여래의 경계(境界)와, 여래의 경계(如來의 境界), 여래의 경계라고 하면 수준, 우리말로 하면 수준, 여래의 수준과. 또 ②여래의 지행(智行), 지혜로써 실천하는 그런 행과. 또 ③여래의 가지(加持)라고 하는 것은 가피(加被)로 해 주는 것을 가지(加持)라 그래요. 우리가 뭐 기도해서 가피입었다 그러죠. 가지(加持), 경전에서는 가피 또는 가지 그래요. 가는 부처님이 가피(加被)를 주는 것이 가(加)가 되고, 지(持)는 받는 사람 입장입니다. 가질 지(持)니까 가지(加持)와. 또 ④여래의 힘(力)과.
⑤여래의 두려움 없음(無畏)과, 이 무외(無畏)라고 하는게 참 살아가는데 중요한 거에요. 뭘 할라고 하면 겁이 나지요. 당당하지가 못하고 겁이 나고 ‘아 이렇게 하면 될까’ 뭐 사업을 벌리면 .... 지혜가 없어서 무턱대고 돈 벌 생각만 했지. 지혜가 없으니까 눈에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겁이 난다고요. 당연히 겁나지. 그런 상태에서 해 놓으니까 뭐 덜렁 그냥 돈만 갖다가 내 버리고말고. 그런 경험 몇 번 있으면 그만 아무 일도 못 하는 거야 겁이 나서.
⑥여래의 삼매(三昧)와, ⑦여래의 소주(所住)와, 여래가 머무는 곳, 또 ⑧여래의 자재(自在)와, ⑨여래의 몸(身)과, ⑩여래의 지혜(智慧)를
일체세간(一切世間)의 모든 하늘(諸天) 그리고 사람들이 ①무능통달(無能通達)하며, 능히 통달하지 못한다 이거야. 왜냐? 여래의 수준이니까. 저 앞에 전부 부처님의 일이니까. 그러니까 세간 사람들은 통달할 수가 없다. 그리고 ②무능취입(無能趣入)이야. 능히 취입(趣入)하지도 못해. 그 안에 들어갈 수도 없어. 부처님 경계에 누가 들어가겠어요? ③무능신해(無能信解)야. 또 믿고 이해하지도 못해. 뭐 믿는 건 대충 믿는다손 치더라도 이해는 안 되지요. 얼마나 수준이 높은지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거지요. ④무능요지(無能了知)라. 요지는 이제 확실하게 아는 거야. 해자(解)보다도 더 확실하게 아는 거야.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또 ⑤무능인수(無能忍受). 요건 인제 받아들이지도 못해. 부처님의 경계를 여 앞에 소개한 열 가지의 부처님의 경계를 이걸 우리가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또 ⑥무능관찰(無能觀察)이야. 관찰도 못해. ⑦무능간택(無能揀擇)이야. 능히 간택도 못해. 요건 내한테 맞는 것, 요건 맞지 않는 것, 요걸 이제 간택을 해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그걸 이제 가려내지도 못한다. 또 그러니까 ⑧무능개시(無能開示)야. 능히 개시(開示)하지도 못해. 열어보이지도 못해. 부처님 것인데 어떻게 보이겠어요. 내 것이라도 보일까 말까한데. 그 다음에 ⑨무능선명(無能宣明)이야. 선명(宣明)은 밝힌다. 선전하고 밝힌다. 이 뜻이에요. 능히 설명하지를 못한다. 또 ⑩무유능령중생해료(無有能令衆生解了) 중생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이해하도록 하지도 못한다. 이해하지도... 그래 요런 생각을 하는 거에요. 부처님의 경계는 이렇고 이렇고.
그런데 부처님의 어떤 그 능력도 소개하는데 열 가지, 또 모른다고 우리들은 잘 모른다고 하는 것도 열 가지를 항목을 들어서하는데 요건 항상 원수(圓數)를 염두에 둬야 돼요. 원교(圓敎), 이 화엄경을 원교(圓敎)라 한다 그러지요. 원만한 가르침. 그래서 우리가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을 아 그 사람 원만한 사람이야, 원만한 성격이야 그러잖아요. 원자가 참 좋은 거에요. 둥글 원자(圓). 원만한 사람, 원만한 성격. 우리가 화엄경 공부하고, 불교 믿고, 수행하고, 참선하고, 하는 것도 결국은 원만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거고, 그 원만한 사람은 남도 자기와 같이 생각해 줄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원만한 사람이죠.
그런데 ①유제제불가피지력(唯除諸佛加被之力)과 오직 부처님이 가피한 힘과, ②부처님의 신통의 힘과(佛新通力), ③부처님의 위덕력의 힘과 위덕의 힘과(佛威德力), ④부처님의 본원력과 본래의 원력과(佛本願力), 그리고 ⑤숙세의 선근의 힘과(及其宿世善根之力), ⑥모든 선지식이 또 섭수해주는 그런 힘(諸善知識攝受之力), 그리고 ⑦심정신력(深淨信力) 깊고 청정한 믿음의 힘과, 또 ⑧대명해력(大明解力) 아주 크고 밝은 이해의 힘과, 그리고 ⑨보리에 취하는, 보리에 나아가는 청정한 마음의 힘과(趣向菩提淸淨心力), 또 ⑩일체지혜(一切智慧) 일체지혜의 광대한 원력을 구하는 것은 제한다(求一切智廣大願力) 그랬어요.
유제(唯除). 고 네 번째 줄, 오직 그런 이들은 구한다. 이게 참 문장이 이렇게 길어가지고 조금 그런데... 알고 보면은 무슨 뜻인고 하니 삼단계에요. 사선을 그 네 번째 줄 첫 여래지/ 거기도 사선을 하나 그어요. 이러한 부처님의 신중들을 그 다음에 거기서 또 네 번째 줄 와가지고 능염중 중생요해요./ 요기서부터 사선을 하나 딱 잘라 단락을 딱 나눠놔. 그렇게 해서 하나 둘 세 단락을 나눠놓고 앞에는 부처님의 세계를 그려놓고, 부처님의 세계를 세상 사람들은 모른다, 모른다 하는게 두 번째 단락이고, 모르는데 요런 사람들은 제외한다 알 수 있다 이런 뜻입니다.
알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어떤 사람들인가? 부처님의 가피의 힘을 받은 사람, 부처님의 신통의 힘을 받은 사람, 부처님의 위덕력을 받은 사람, 부처님의 본원력이 있는 사람, 또 숙세 선근력이 있는 사람, 선지식이 섭수해주는 힘이 있는 사람, 아주 그 깊고 청정한 믿음의 힘이 있는 사람, 대명해력이 있는 사람, 또 보리에 취하는 청정한 힘이 있는 사람, 일체지혜의 광대한 원력을 구하는 사람은 제한다. 그런 힘이 있는 사람, 그런 어떤 그 능력, 그런 어떤 의욕, 여기 역(力)이라고 하는 것은 의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까 내가 그랬죠. 나이 관여하지 말고, 관계하지 말고,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날려고 하는 그런 의욕이 있어야 된다. 그런 그 원력이 넘치는 그런 사람은 제한다. 그런 사람은 부처님의 세계를 알고 부처님의 수준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 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돼요 그게. 안될게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보면은 열 가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의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얼마든지 부처님의 세계를, 또는 부처님의 수준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뜻입니다. 아주 그 저 시사하는 바가 많아요. 가만히 보면. 우리 세상 사람들은 부처님의 세계를 잘 모르는데 그러나 알 수 있는 조건이 하나 있다. 이러이러한 의욕만 넘친다면 그런 부처님의 수준을 아는 것이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 다음 청법의 내용이라.
2. 請法의 內容
唯願世尊은 隨順我等과 及諸衆生의 種種欲과 種種解와 種種智와 種種語와 種種自在와 種種住地와 種種根淸靜과 種種意方便과 種種心境界와 種種依止如來功德과 種種聽受所說法하사 顯示如來의 往昔趣求一切智心과 往昔所起菩薩大願과 往昔所淨諸波羅蜜과 往昔所入菩薩諸地와 往昔圓滿諸菩薩行과 往昔成就方便과 往昔修行諸道와 往昔所得出離法과 往昔所作神通事와 往昔所有本事因緣과 及成等正覺과 轉妙法輪과 淨佛國土와 調伏衆生과 開一切智法性과 示一切衆生道와 入一切衆生所住와 受一切衆生所施와 爲一切衆生說布施功德과 爲一切衆生現諸佛影像하사 如是等法을 願皆爲說하소서.
유원세존은 수순아등과 급제중생의 종종욕과 종종해와 종종지와 종종어와 종종자재와 종종주지와 종종근청정과 종종의방편과 종종심경계와 종종의지여래공덕과 종종청수소설법하사 현시여래의 왕석취구일체지심과 왕석소기보살대원과 왕석소정제파라밀과 왕석소입보살제지와 왕석원만제보살행과 왕석성취방편과 왕석수행제도와 왕석소득출리법과 왕석소작신통사와 왕석소유본사인연과 급성등정각과 전묘법륜과 정불국토와 조복중생과 개일체지법성과 시일체중생도와 입일체중생소주와 수일체중생소시와 위일체중생설포시공덕과 위일체중생현제불영상하사 여시등법을 원개위설하소서.
유원세존(唯願世尊)은, 오직 세존은. 그러니까 모른다. 모르는데 요런 능력만 있으면 알 수 있지만은 우리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까 모릅니다. 우선 그렇게 하고,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우리들을 수순(隨順) 해놨어요. 수순해서, 수순해서 하는데도 이거는 화엄경은 뭐 그 안에 들어있는 설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원만한 것을 항상 이야기할려고 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까 한마디 입 뗐다하면 열 가지 말, 꼭 열 가지를 그냥 반복하는 거에요.
보십시오. 아등과 중생, 제중생의 종종욕(種種欲)과 그 한번 세어 봐요. ①종종욕(種種欲) ②종종해(種種解) ③종종지(種種智) ④종종어(種種語) ⑤종종자재(種種自在) ⑥종종주지(種種住地) ⑦종종근청정(種種根淸靜) ⑧종종의방편(種種意方便) ⑨종종심경계(種種心境界) ⑩종종의지여래공덕(種種依止如來功德). 그 다음에 ⑪종종청수제소설법(種種聽受諸所說法). 열 하나야. 열 하난데 열 개를 한다고 한게 어떨 때는 아홉 개가 되기도 하고, 혹 열한개도 되기도 하고 그래요. 어쨌든 열 개로 무조건 열 개로 취급을 합니다. 그래서 원수 원만한 숫자, 원만한 인격, 원만한 성품, 이것을 늘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다시 이제 보면은 중생들의 욕심, 전부 가지가지지. 종종욕. 정말 가지가지에요. 똑같이 부처님 앞에 와서 절을 하고 기도를 해도요. 그 욕심이 다 달라요. 그 다음에 종종해야. 지금 여기서 내가 화엄경이라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만 요것도 내가 아는 거에요.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하는데, 듣는 여러분들은 또 여러분들 깜냥대로 전부 또 이해해. 그게 종종해라구 종종해. 사람마다 다 달라. 오늘 이해한 거하고요 여러분들 집에 가서 저녁에 이해한 거하고 또 달라요. 그새 시간이 좀 갔다고 또 안목이 또 달라져 있어 벌써. 아까 스님 설명했는데 아 내가보니 아니라고 아 다른 것 같다고 내가보니 이게 아니라고 또 다른 어떤 그 안목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게 종종해입니다.
이걸 같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들요. 정말 이해와 욕망과 천차만별입니다. 천차만별. 그 천차만별의 차이점을 우리가 이해해주지 못하고, 용납해주지 못하고, 그걸 수용해 주지 못하면, 그 인생은 실패로 돌아가요. 틀림없습니다. 무조건 뭐 내 자식이든지 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하고는 일단 다르다. 다르다하는 것은 일단 전제하고. 전제하고 나가야 돼요. 그걸 용납 못하고 그걸 이해 못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건 뭐 백번이면 백번 다 그 인생은 실패에요. 다른 것은 남은 나하고 다르다는 것을 무조건 인정해야 돼. 친구가 아주 친한 친구가 야 그럴 수 있냐고? 그럴 수 있는 거야. 다르니까. 일단 나하고 다르니까 그럴 수 있는거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거야. 어쩌다가 요행히 같으면은 같은 생각, 같은 소견, 같으면 그게 좀 이상한거야 사실은. 조금 그게 뭐 잘못됐거나, 아니면은 다른 것을 숨기고 있거나 그래요. 아이 뭐 조금 다르지만은 그냥 같이 동참하자. 동참해서 같이 이제 따라준다. 수순해준다. 그렇게 이제 자기 것을 양보하고 숨겨서 그렇지 절대 같은게 아니에요. 같은게 아니라구요. 날씨가 뭐 영하 7도라고 부산이 영하7도라고 해도 그 느끼는 감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종종욕(種種欲)과 그 보십시오. 중생의 종종욕과 중생의 라고 했어요. 요 아등(我等)과. 우리도 그렇다 요런 말하면서. 우리와 중생들의 가지가지 욕망과. 가지가지 이해와. 가지가지 지혜와. 가지가지 말과. 가지가지 자재. 자재도 이게 자유롭다 해도 그게 사람마다 자유로운게 또 다르고. 종종주지(種種住地), 가지가지 머무는 것과. 가지가지 근청정(根淸靜), 근청정하면 육근(六根)을 말하는데 육근이 청정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 가지가지 뜻의 방편(意方便)과, 가지가지 마음의 경계(心境界)와, 가지가지 여래공덕에 의지하는 것과 의지여래공덕(依止如來功德) 여래공덕에 의지하는 것과, 가지가지 부처님의 설법을 청수(聽受)하는 것. 여기 이야기 해 놨네. 종종청수제소설법(種種聽受諸所說法). 아까 고거 이해라고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들은 전부 달리 이해하듯이, 요게 이제 정확하게는 종종청수제소설법(種種聽受諸所說法)이야. 내가 설하는 법을 내 설법을 받아들이는 것, 청수(聽受)하는 것이 각양각색이야. 가지가지지요. 그것을 뭐라고? 수순(隨順)해서.
수순해서 유원세존(唯願世尊). 저 위에 수순(隨順) 있죠. 유원세존 수순(唯願世尊 隨順) 수순이라는 말이 여기 와서 새겨져요. 그런 가지가지 다른 점들을 수순하사. 이 수순(隨順). 어디 과거 부처님이 여기다가 해놓겠어요. 이게 어려운 거에요. 우리는 남의 다른 점을 수순해 주는 것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지간히 근사하면 수순하지만은 영 다르면 수순 못해요. 수순 못한다고요. 그러니까 수순은 안하더라도 인정은 해 줘야 돼. ‘아 그래 뭐 사람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 너는 너고 나는 나고 다르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수순까지는 못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인정해야 돼. 다른 것은. 여기는 이제 부처님은 세존은 수순해 달라 이거죠. 수순(隨順)하사. 현시(顯示), 나타내 보여주십시오. 현시(顯示)도 저 나중에 해석이 돼요.
여래의 왕석취구일체지심(往昔趣求一切智心)과 옛날에 구한 옛날에 구하던 일체지혜의 마음과, 또 왕석(往昔) 전부 옛날입니다. 갈 왕자(往)니까 왕석, 뭐 왕년이라고 그러죠. 지나간 세월. 지나간 소기보살대원(所起菩薩大願) 일으킨바 보살의 큰 원력(大願力)과(往昔所起菩薩大願). 또 옛날에 청정하게 한 여러 가지 바라밀(往昔所淨諸波羅蜜). 그리고 옛날에 들어간 보살의 모든 경지(往昔所入菩薩諸地). 또 옛날에 원만히 한 보살의 행(往昔圓滿諸菩薩行), 보살행과. 또 옛날에 성취한 방편과(往昔成就方便). 옛날에 수행한 모든 길, 수행한 모든 길과(往昔修行諸道). 또 왕석(往昔), 옛날에 얻은 출리법(出離法), 떠나는 법, 그러니까 생사의 굴레로부터 또는 번뇌의 그런 어떤 그 속박으로부터 떠난 그런 법과(往昔所得出離法). 옛날에 다 부처님이 그렇게 했으니까 법과. 또 옛날에 지은 신통의 일과(往昔所作神通事). 옛날에 가지고 있던 본사의 인연과(往昔所有本事因緣), 요건 이제 본사의 인연하는 것은 과거 부처님이 과거생에 어떻게 어떻게 살았다 하는 거, 이런 인연이야기입니다. 그것하고. 그리고 급성등정각(及成等正覺) 등정각을 이루는 것. 그리고 전묘법륜(轉妙法輪) 묘법륜을 굴린 것. 그리고 정불국토(淨佛國土) 불국토를 청정히 한 것. 조복중생(調伏衆生) 중생들을 조복케 한 것. 조복시킨 것. 그리고 개-일체-지법성(開一切智法性)과 일체 지혜의 법의 성을 연 것과. 또 시일체중생도(示一切衆生道) 일체중생의 도를 보인 것과. 일체중생의 주하는 바에 들어간 것과(入一切衆生所住). 일체중생이 베푼 바를 받은 것(수일체중생소시受一切衆生所施) 부처님 참 많이 받았죠. 부처님. 일체중생이 베푼 바 보시한 것은 전부 받았잖아요. 수일체중생소시(受一切衆生所施), 베푼 것을 받은 것과. 그러니까 누구한테 얼마 받았는지 다 내놔라 이거에요 다. 내놔란 뜻이 아니고 보여 달라 그 말이에요. 또 위일체중생설보시공덕(爲一切衆生說布施功德)과, 일체중생을 위해서 보시공덕을 설한 것 하고. 또 일체중생을 위해서 제불의 영상을 나타낸 것을 현시(顯示), 나타내보이사. 여시등법(如是等法)을 원개위설(願皆爲說)하소서. 이와 같은 등의 법을 원컨대 모두 다 설명해 주십시오. 모두 다 설명해 주십시오.
이제 이야기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 고 하니, 대중들이 모였죠. 대중들이 모여가지고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데 법을 청하는 말이 이렇게 길어요. 뭐 심심한데 법문 좀 해 주십시오. 정도가 아니고 아주 구체적으로, 구체적으로 여기 법이 쭉 나와 있습니다. 현시여래(顯示如來)의 왕석(往昔), 그러니까 없는 이야기 하라는게 아니고 왕년에 부처님께서 하신 것, 하신 것을 조목조목 전부 이렇게 들어가지고서 이런 것을 좀 우리에게 보여주시사, 이러한 것을 원컨대 우리를 위해서 설명 좀 해 주십시오. 이렇게 부처님께 부탁을 올리는 것입니다. 요것 구절구절 하나하나 좀 자세히 뜯어서 우리가 새겨보고 또 한 번 또 부연해서 설명도하고 이렇게 해야 할 그런 대목인데, 이 화엄경 양이 너무 많다보니까. 그리고 또 문장이 길어가지고요. 길어가지고 일단 여기 삼매에 들기 전에, 그래 이제 요렇게 법을 딱 청하면은, 3번에 입삼매(入三昧) 해놨죠. 이제 삼매에 들어가는 거에요. 부처님 삼매에 딱 이렇게 들어가 가지고, 그 다음 법문을 하게 되는 그런 형식으로 이야기가 쭉 이렇게 연결이 잘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 오늘 공부한 것을 쭉 이렇게 보면은. 聲聞들 성문들의 이야기, 그 다음에 세간주인들의 이야기, 뭐 기껏해야 세간 주인이라면 왕이나, 장관들, 도지사, 단체장, 그 동네 무슨 뭐 동장정도. 이정도로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해도 좋아요. 그런데 요컨대 이제 부처님의 경계는 중생들이 알기 어렵다. 청법(請法) 바로 밑에요. 알기 어렵다 해놓고. 그러나 力, 힘이 있으면 이건 힘이라고 하는 것은 의욕입니다. 의욕(意慾). 의욕이 넘치면은 부처님의 경계를 알 수 있다. 라고 하는거. 거기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 되구요. 청법 내용, 법을 청하는 내용은 금방 우리가 살펴본 그 대목이 무슨 법을 청했느냐?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데 무슨 법을 청했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그 저기 현시(顯示) 6쪽에 밑에서 다섯 째줄 중간 밑에 보면 여래가 옛날에 어떻게 어떻게하고, 또 옛날에 보살의 대원(大願)을 세운 거, 바라밀(波羅蜜)을 닦은 것, 뭐 보살의 지위(地位)에 들어간 거. 보살행(菩薩行)을 원만히 한 거. 옛날에 성취한 방편(方便). 옛날에 수행한 모든 길들(修行諸道). 옛날에 출리법(出離法)을 얻은 것. 신통(神通)의 이야기. 뭐 본사(本事) 본생담 같은 거 그런 것들. 정각(正覺) 이룬 것. 법문(法門)은 어떻게 했느냐, 묘법륜(妙法輪)을 굴린 거. 그까지 다 내놔라 이거야. 그것까지 다 설명해 달라 이거야. 정각 이룬 것. 그 법륜을 굴리면 어떻게 되죠? 세상이 좋아지죠. 정불국토(淨佛國土), 그게 이제 사회정화(社會淨化) 그 말입니다. 사회정화를 할려면은 좋은 법이 펴 져야 돼요. 전묘법륜(轉妙法輪)이 되어야 돼요. 그 다음에 사회정화가 돼야 되고. 그럴려면 중생을 잘 조복(調伏)시켜야 되고. 이런 등등 내용들을 굳이 좀 부처님이 다 꺼내가지고서 우리들에게 시원하게 좀 이해되도록 설명을 좀 해 주십시오. 하는 그런 청법(請法)의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가요. 오늘 그 화엄경 공부는 여기까지 해놓겠습니다.
염화실에서
첫댓글 파랑새님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한자는 크게 키워 놓으시니 보기가 훨씬 편합니다 주요 부분마다 색깔을 넣어놔서 일목요연합니다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글을 정리하려면 일이십 분 가지고 안 됩지요...그나저나, 원문 글 녹취하신 분의 공덕이 정말 대단하네요 이렇게 하기는 정말 정말 쉽지 않은데...우리 카페 불자님들 녹취하신 분의 공덕, 그리고 글을 옮겨 오시며 수고하신 파랑새님께 감사하는 의미로라도, 이 글 읽으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점 하라를 찍더라도 감사를 표시하시길 이런 쉬운 감사의 마음 하나 못 전하시며, 어디서 무슨 수행을 하시리오..._()_
입법계품을 이렇게 한문과 함께 읽으니 참 좋습니다. 한글 화엄경은 글자를 너무 풀이를 많이 해 놓으셔서 읽고 나면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는데, 이렇게 스님이 조목조목 한문을 가져오시고 녹취하신 분이 그것을 일일이 경전에서 찾아 올려 놓으시고, 거기다 파랑새님이 복사를 해 오시며 글자를 크게 키워 누구라도 쉽게 보실 수 있게 하셨으니, 그 공덕이 도저히 말로는 못합니다요...그나저나 오늘도 공부할 게 대단히 많네요...
1.무비스님 강의 전반부는 무엇보다 '평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비밀이 바로 평등입니다. 세상은 평등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런데 이미 세상은 '평등'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오묘한 모순()을 이해하실 수 있어야 화엄, 그리고 세상의 진리에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습니다. 화엄경은 이 소식을 처음부터 바로 일러주는데, 경전 처음에 바로 이 소식이 나옵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화엄경 이야기'에 제가 올린 글이 있으니 참고 하시...
2.청법의 중요성입니다. 스님도 강의 도중에 말씀해 놓으셨지만, 화엄경만큼 청법의 소중함을 곳곳에서 역설하는 경전을 저는 지금까지 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워낙 읽은 경전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화엄경은 여러 곳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청법을 설하시지요.
우리 카페 불자님들도, 카페에서 알아서 글 공양하기를 기다리시지 마시고, 궁금한 게 있으면 예의를 갖추고 진지하게 질문을 하십시요 진지하게 질문하시라는 건 상대를 위한 게 아니고 질문하는 '나' 를 위한 겁니다 진지하게 질문하셔야 상대도 진지하게 답해 드릴 뿐 아니라, 진지한 질문을 하셔야 상대의 말씀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생생히 살아서 들어옵니다. 요즘 세상이 그런 것까지 요구하는 세상은 아니지만, 그래서 쉽게들 인터넷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가지만, 마음공부는 그렇게 쉽게 해서는 아니 됩지요. 적어도 진리에 대한 공부는 진지한 자세를 갖추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다고 제 말씀에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이 짧은 경전 문구에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화엄의 중요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래가'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인데, 화엄은 발심하면 '부처님 집에 태어난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스님이 강의하신 이 부분만 보더라도 화엄의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원만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화엄은 결코 상대를 부정하는 법이 없지요 너는 안돼 이 방법은 나빠서 절대 금지야...등등, 이런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중생의 못남, 세상의 아픔을 모두 품어주는 것이 화엄의 세계입지요...에고..댓글 다는 저도 숨이 이렇게 하니..그만 안뇽
고맙습니다. 인쇄하여 열공하겠습니다.파랑새님 법문 공양 공덕으로 보현의 바다를 자유롭게 노니시길 발원드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고마움에 눈물 찔끔 ^^;;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오늘도 삼배 _()__()__()_.............덕분에 종불교생(從佛敎生) 하고 갑니다.................._()_
그렇게 부탁을 드려도, 이 정성에 대한 감사의 댓글을 딱 두 분만 올리셨네요. 누가 읽으셨는지 아마 카페지기가 모르는() 줄 알고 계시나 본데...제가 이 글 읽으시고 감사의 점 하나 안 찍고 가신 분들, 닉네임 첫 글자만 한번 올려볼까요 그럼 제가 알고 있는 걸 아실려나......
도둑이 제발 저려서 신고합니다...아직 다 못 읽어서요... 다 읽고난 뒤 댓글려 하고 있는데 ^^; 마하반야바라밀..._()_
ㅎㅎㅎ 법혜님 마음도 고우셔라~~^^** 이글 공양올린 공덕은 화엄경을 만나게 된 기쁨 이시대 대강백이신 무비스님 강의에다 존경하는 보현선생님 댓강에다... 그 보다 더 큰 공덕이 어디 있겠습니까... 너무도 크신 부처님 공덕에 감사하고 감사할 뿐... 어찌 회향을 해야 할지 ㅎㅎㅎ 내생명부처님무량공덕생명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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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ㅂ' 닉네임 한 분 나타나셧...다른 'ㅂ'자 분들은 계실려나...숨는 마음은 좋지 않은데...
수고 많으셨습니다.고맙습니다.이 세상의 비밀이 평등이라는것''.........종불교생하여 거듭 날마다 다시 태어나도록 열심히 공부하기를.....나무마하반야바라밀/고잘미섬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