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롱아일랜드 대학 미술대학원장 이 승
미국에서 전문직 활동하는 한인 불자들이 많다. 그 중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불자는 극 소수이다. 더구나 대학강단에서 미술을 강의하는 화가 불자는 아주 극소소이다. 롱아일랜드 대학교 미술대학원장 이승휘 교수는 미국에서 Seung Lee(이승)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승 교수와 만남은 마치 소식이 끊긴 친구를 만난 것 처럼 기뻤다. 그는 워싱턴DC 부근의 메릴랜드 주의 법주사를 기반으로 불교신행과 포교활동을 하다가 2002년에 작고한 유대비심 보살님의 막내아들이었다.
유대비심 보살님이 자신의 아들이 뉴욕의 어느 대학교수라고 오래전 말해 주었는데 당시는 그 말을 그냥 흘러들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한국불교계가 문화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 보살님의 아들을 생각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이승 교수가 유대비심보살님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말해 주었을 때 반가움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경기도 가평이 고향인 그는 15살인 중학교때인 1975년에 이민 온 소위 1.5세대이다. 그는 6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6형제들과 함께 한국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이모 초청으로 전 가족이 볼티모어로 이민을 왔다. 그는 고교시절 수학, 체육, 그리고 미술에서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예술 선생님의 추천으로 메릴랜드 아트 인스튜트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서도 절에 다녔는데 이민 온 후에는 메릴랜드 주에 있는 한국사, 법주사를 다녔고 뉴욕 백림사를 방문한 적도 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절을 다녔고 불교적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에게 불교는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었다. 이런 불교적인 정서로 그는 작품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가 표현되어 있다. 그는 “나는 불교적 철학을 많이 수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하면서도 불교를 많이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승 교수가 다루는 불교적 소재는 “순환(循環, circulation)”이다. 불교적인 바탕이다.
전시회 도록에 그를 소개한 글을 보면 “회화와 설치를 혼합시킨 그의 작품 주제는 다양하다. 자신의 작품을 가위로 잘게 잘라 유리병 속에 넣는 설치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회기본능을 표현하고, 자연의 이미지를 채택하여 삶에 대한 상징과 알레고리를 적절하게 드러내는 회화, 그리고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이 작업하다가 버린 캔버스를 펼치는 행위를 통한 작품 등을 한다. 다양한 페인팅과 드로잉, 그리고 큰 스케일의 설치작업은 고정되지 않는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미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25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1백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는 메릴랜드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대학에서 드로잉 학부를,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인스티튜트에서 장학금을 받고 1983년부터 84년까지 1년 동안 이태리의 프로렌스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거장들의 수 많은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세계와는 달리 화가 이승의 길은 현대미술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바로 뉴욕으로 왔다. 뉴욕에서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면서 현대적 작품을 하겠다고 진로를 정한 것이다.
이승 교수에게 이태리 유학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유학시절을 통해 시야를 크게 넓혔으며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고백한다. 이태리에서 혼자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면서 인생을 설계한 것이다.
그는 뉴욕으로 와 프랫 인스티튜트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설치미술가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는 강익중씨를 비롯하여 전수천, 신현중, 박 모, 그리고 여성인 오기원 현 서울대교수 등과 함께 공부를 하였다.
그는 공부를 하면서 뉴욕에서 6년동안 택시기사를 하였는데 정크 아트란 새로운 미술세계에 눈을 떴다. 즉 버려지는 휠이나 부속품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면서 쓸모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창조성을 갖게 하고, 이를 반복하는 수련을 거듭한 것이다. 이런 관계로 뉴욕에서 정크아트분야에서 활동하다 작고한 정찬승씨와 절친하게 지냈다.
1990년부터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뉴욕의 Dowling College, 세이튼 죠셉칼리지, 그리고 롱아일랜드 대학교 C.W.Post 캠퍼스 등이다. 그리고 2002년에 롱아일랜드대에서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대학원 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승 교수는 어린시절 전 가족이 이민을 왔기 때문에 한국에 연고도 별로 없고 1989년 한국에서 처음가진 부산전시회에서 한국인들의 가치관이 자신의 가치관과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여 한국에서 전시나 강연은 생각지도 않았으나 이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은 화가가 대학원 원장으로 왕성한 국제활동을 하는 화가를 한국 화단에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한국전시를 주선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4년 부터 매년 전시와 대학 강연을 하고 있다. 여러나라에서 전시회를 하는 이 교수는 2004년 일본 도쿄에서 일본 첫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올 여름 전시에는 이 교수가 한국의 불교신문에 보도되었는데 이 보도를 보고 어머니를 잘 아는 스님들 몇 분이 전시장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스님들이나 불교계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어머님 생각을 자주 한다고 한다. “어머님께 효도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다. 제가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정 교수가 된 것을 보고 돌아가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이 교수는 “개인전 오픈 리셉션을 할 때 마다 어머님이 살아계셔 전시회를 보셨으면 얼마나 흐뭇해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또 대학에서 지도하는 교수로 활동중인 이 교수는 축구를 아주 좋아한다. 현재도 롱아일랜드 셔포카운티 축구클럽에 가입하여 매주 일요일 축구를 하고 있는데 이런 그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그의 두 딸 모두를 축구선수로 만들었다.
그는 강의와 작품활동 그리고 두 딸의 아버지 노릇을 동시에 해야 하므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항시 시간에 쫒기면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꿈은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여유있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꿈이 조만간 실현될 것 같지는 않다. 이제부터 그는 미주한국불교계와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고 그도 미주한국불교계의 발전을 위한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2010. 12>
한국의 미술 평론가 임재광 평
이승의 작업에는 3가지 키워드(keyword)가 있다.
첫째, 재생(Recycling) 또는 재활용이다. 그는 한때 뉴욕의 택시 운전사였다. 그 시절 그는 버려진 차바퀴의 휠이나 부속품들을 활용한 작품을 했었다. 버려진 사물들을 작품으로 되살리는 것은 이승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이번에는 그가 가르친 학생들이 버리고 간 캔버스를 재활용하였다. 학생들은 그림이 잘 되었으면 가지고 가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고 간다. 그는 학생들이 버리고 간 캔버스는 가르침의 실패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의 실패는 곧 자신의 실패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그림을 자신이 다시 그림으로해서 실패를 보완한다. 버리고 간 그림 그대로 위에 덧칠(retouch) 함으로써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술적인 보완을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컨셉(concept)의 발전이나 완성을 시도하기도 한다.
둘째, 장소(Location) 또는 지역이다. 그는 그가 서있는 그 장소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의 이번 작품들을 보며 내가 느낀 첫 느낌은 브룩클린이었다. 브룩클린은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의 그림에는 브룩클린이 그대로 드러난다. 구사하는 색채와 기법, 그리고 이미지에서 지역적 특성을 읽을 수 있다. 그의 그림에 사용된 스텐실이나 스프레이 기법은 낙서화(graffiti)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이며 무채색 또는 흑갈색조의 색채는 부룩클린 거리의 주조색이다.
셋째, 정체성(Identity)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는 사회다. 미국인은 소수의 원주민을 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이민자거나 이민자의 후손이다. 이승의 작품세계는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는가하면 다시 되살리고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보는 순환과 회귀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성찰이며 탐구라 할 수 있다.
*** 그의 작품은 한국의 성남 아트센터, 이태리 샤티 갤러리, 프랑스 밀 폴라토 갤러리, 미국에는 롱아일랜드 아이슬립 박물관, C.W.Post 뮤지엄 등에 걸려있다.
첫댓글 작품세계가 아주 독특하고 오묘함을 느낍니다.....대단히 훌륭하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