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말과 모습들
『골목 안』, 박태원,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
박태원은 1909년 서울에 태어나 경성제일(경기고) 재학 중 조선문단과 동아일보에 시와 산문을 발표한다. 일본 법정대학에서 중퇴 후 귀국하여 ‘수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일제말기 박태원은 몇 편의 대일 협력에 관한 글을 남기는데 소극적인 친일 행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아 남로당계의 문예운동 실무진으로 활동을 하다 1948년 보도연맹(좌익전향자조직)에 가입한다. 월북 동기는 전쟁발발 직후 서울에 온 이태준, 오장환, 이용악 등을 따라갔거나 이승만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보도연맹가입자들을 구금, 처형했는데 인민군이 구금시설을 접수하면서 간신히 살아남은 수감자들 가운데 박태원도 끼어 있었다는 설도 있었다.(자료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
1960년에 작품을 발표하고 65년도에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원고지 모양의 특수 틀을 만들어 더듬어 가며 글을 썼다고 한다. 1986년 7월에 사망하였고 1988년 남한에서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해금되었다. 둘째딸은 봉준호 감독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박태원작가는 봉준호 감독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함께 모던보이즈였던 박태원은 모더니스트에서 리얼리스트로 작품이 바뀐다.
“박태원은 구인회 동인이었던 김유정과 비교해볼 때 완전한 ‘서울내기’였고 도회적인 작가였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박태원은 근대주의자였고 식민지 근대를 비판, 고통 받는 당대의 민족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것은 박태원과 더불어 이태준에게 있었던 피할 수 없는 이중성이었지만, 염상섭이나 채만식이 생동하는 인물과 시대를 복잡한 삶의 다층적 구조를 형상화해 낸 것과는 달리 이 둘은 연민으로 관조하거나 주변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내는 길을 택했다. 그의 작품은<소설가 구보씨의 1일>등이 있다.
<골목 안> 집주름 정씨는 몰락한 양반이다. 중학교 시험에 낙방한 막내 아들 효섭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씨는 카페 종업원 큰딸 정이와 연락두절 된 첫째 아들 인섭, 건달에서 권투선수를 꿈꾸는 둘째 아들 충섭, 집 나간 큰 며느리, 병으로 죽은 손녀딸 갑순이, 고등학교를 다니며 연애를 한 둘째딸 순이를 두고 있는 이 집의 가장이다. 정씨의 아내는 이 소설에서 갑순이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나온다. 다섯 자녀를 두었으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잘 날 없다는 듯이 끊임없이 갈등구조에 휩쓸린다. 골목 안 사람들이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해학성으로 들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뒷간에 열쇠를 잠그는 바람에 갇히게 되는 갑득이 아버지의 모습, 똥 매려우면 밖에 나가 아무 곳에나 누게 하는 병득이 집, 정이와 갑득이 어머니의 싸움 등 여러 사건들이 읽는 즐거움을 준다.
집주름 정씨는 점점 자식들이 하나 둘 살아가는 모습에 지쳐하며 순이의 연애사건으로 결국 학교발기인 대회에서 이상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폭팔한다. 큰 아들은 바람이 나서 집 나간지 7년이 되고 있고 그 부인은 7년 동안 기다리다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애까지 낳으며 집을 나간다. 정씨는 엊그제 팔렸다는 양조장 뒷집을 산 사람의 얘길 듣게 된다. 칠천여환씩 하는 집을 산 그 주인의 큰아들은 대구 도립병원 의사고 둘째아들은 광산기수라고 하며 다달이 이십원씩, 삼십원씩 대주어 그걸로 집을 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정씨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한다. ‘고현 자식....., 나야 물론, 내 복이 없어서 그러한게니, 무어 이제 와서 자식 탄 해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러구 돌아 댕기며, 불쌍한 제 누이 고생시키는 게 가증허지...’ 하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결국 학교에서 자식자랑을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는 양조장 뒷집을 산 사람의 자식들을 자기 자식들이라고 말하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말하는 정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아오지 않는 인섭, 동경으로 권투원정을 가느니 어쩌느니 하며 보름 만에 바람개비 같이 나가버린 충섭, 자꾸 술을 먹고 외박을 하며 들어오지 않는 큰 딸 정이, 연애하다 난리가 났다는 막내 딸 순이. 고개가 갸우뚱 한 탓에 공부는 잘하나 입시에 실패한 막내아들... 이런 정씨에게 김서방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막내딸의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여 지금 청진정 정의사댁에서 난리라 났다며 순이 학교에서 이를 알면 퇴학명령이 떨어질 거라는 말은 청천벽력 같은 말이나 다름없다.
자식을 키우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음을 소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식들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된다면 무슨 재미일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드는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으레들 그러하듯이, 그 골목 안도 한걸음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홱 끼치는 냄새가 코에 아름답지 않았다. 썩은 널 쪽으로나마 덮지 않은 시웅창에는 사철 똥 오줌이 흐르고, 아홉 가구에 도무지 네 개 밖에 없는 쓰레기통 속에서는 언제든지 구더기가 들끓었다.’
<서평-43>
왼쪽부터 이상, 박태준, 김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