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행산, 그 웅장한 비경에 취하다' |
1,500 킬로미터 인공수로, 홍기거 |
글 · 사진· 동영상=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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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절벽 높이 치솟아 연면히 산봉우리를 이루고, 시루떡마냥 그 바위면에는 3-4개의 굵은 줄이 그어져 있네. 병풍처럼 펼쳐진 굽이굽이 바위능선, 백리나 되는 거대한 산수화. 그 자태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만 볼 수 있네.
북남으로 400킬로미터, 동서로 1.5킬로미터. 그 위세는 하북성과 하남성, 산서성과 섬서성에 뻗쳐 있네. 그 험준한 산세는 조국을 지키는 보루가 되었고, 바위 벽을 뚫어 만든 1500킬로미터 물길은, 인민의 거대한 젖줄이 되었네."
중국의 태행산(太行山)은 경치가 웅장하고, 웅대한 영혼을 담고 있다. '태항산'으로도 불리는 태행산은 문인묵객들의 창작의 원천이 되었고, 일제침략기에는 중국과 우리 동포에게 혁명기지가 되었다. 1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인공수로 '홍기거(紅箕渠)'는 사회주의 중국 건설과 성장의 상징이기도 하다.그래서 태행산은 사회주의 중국의 건국정신이 살아 있는 모태이자, 사회주의 중국을 성장 발전시킨 자궁이기도 하다.후진타오 주석이 회담을 할 때 등장하는 배경그림이 태항산이라고 한다. 이는 '태행산 정신', 즉 '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10월 12일, 나는 말로만 듣던 태행산으로 향했다. 북경에서 남으로 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버스로 6시간, 고속열차로 4시간 거리다. 우리 일행은 갈 때는 버스를, 돌아올 때는 열차를 이용했다.나는 그간에 태행산에 대한 인상이 그림과 문학작품으로 그려져 있던 터라, 과연 어떤 산일까 하고 머리 속에 상상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중국 화가 자유푸(賈友福)가 지난 2006년 학고재에서 태행산 그림 전시회를 가졌을 때 그 화풍이 매우 인상적이었다.화폭의 깎아지른 절벽과 편편한 능선, 구름과 노을,능선이 하나가 된 듯한 분위기. 그 가파르고 척박한 외길 위에, 지게를 진 농부 또는 한 마리 염소, 혹은 피리 부는 목동. 애수가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오전 9시쯤 대절버스를 타고 '태행산협곡 풍경구' 초입에 들어서자 마자, 날이 개이고 해가 나왔다. 산의 윤곽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멀리 산 중턱과 꼭대기에는 안개가 흘러내려 자유푸 그림에서 보았던 분위기와 흡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7-8분쯤 달리자 거대한 암벽산 아래쪽에 황금색의 큰 글자로 '태행산협곡 풍경구'라고 적혀 있어 입구임을 알렸다. 우리는 무심코 입구를 지나쳐 터널을 통과했다가 사진 촬영을 위해 다시 차를 돌렸으며,10여분간 하차해 태행산을 첫 대면한 느낌을 즐겼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고, 바위면은 여러개의 띠가 가로로 짙게 층을 이루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띠는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층이었다. 능선은 대체로 편편했고, 능선의 오른쪽 가장자리는 기(氣)자의 삐침처럼, 세워둔 도끼날 모양이었다. 바로 코앞에 펼쳐진 실경은 무진장 높게 솟아 있어, 자유푸 그림에서의 느낌과는 딴판이었다. 그림에서는 땔나무꾼과 염소가 오르내릴 정도니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눈으로 보니 1천 미터 이상 높이의 산마을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임려산(林慮山) 태행산대협곡'은 태행산계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하남성 서북부에 자리하고 있다. 하남성 임주시에 해당하는, 이 석판암 지대는 남북으로 50킬로미터(태행산 전체 남북길이는 400킬로미터), 동서로 1.5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곳의 산 높이는 800미터에서 최고 1,739미터에 이르고, 고도차가 1000미터나 된다.
들머리에서 산 옆구리로 구불구불 나 있는 포장도로를 20여분간 달리자, 숙소와 음식점이 즐비한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마을 아래 편편한 계곡에는 100여명 가량의 미술학도들과 화가들이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가운데 V자형 큰 계곡 사이로 멀리 큰 산들의 능선이 겹겹이 보이고, 그 계곡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큰 산봉우리는 태행산의 전형적인 모습, 석판암 형태를 띠고 있었다.
오전 10시쯤 도화곡(桃花谷) 입구로 들어섰다. 도화곡은 한겨울에도 복숭아꽃이 핀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한겨울에 피는 복숭아꽃, 한 여름에도 계곡에 어는 얼음덩이, 그리고 내리치면 돼지울음소리를 내는 '저규석(猪叫石)'은 도화곡의 3대 명물이다.
도화곡 입구에서 100미터 가량 나아가자 황룡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부른 듯한 석편암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로 하얀 실비단 같은 폭포가 옥빛 못으로 흘러내린다.금새 나의 머리 속도 맑고 투명한 못처럼 개운해졌다.
황룡담에서 위쪽 바위 옆으로 빙 둘러쳐진 철 계단을 따라 10여분 가량 올라가자 제법 길이가 있는 폭포와 못이 나왔다. 10미터 가량되는 폭포가 매끈하게 미끄러지는 모양이 어찌나 부드럽고 아름답던지, '모든 일이 저 폭포 흘러가듯이 순조롭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줄다리를 건너 바위길에 올라서자 울퉁불퉁 바닥에 물기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비룡협(飛龍峽)'이라고 바위에 새겨진 큰 글씨가 나타났고, 갈지(之)자 또는 지그재그 형 길이 계속되었다. 협곡 양편으로는 잘 앉혀진 시루떡 모양의 바위가 자리를 잡고, 그 사이로 5-10미터 넓이의 계곡이 흐른다.계곡에서 바로 5미터 정도 높이의 바위 옆구리에 철계단이 계곡을 따라 죽 이어진다.때로는 머리 위로 바위가 내밀어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쪽에 바위가 나와 있으면 몸을 약간 비틀기도 하면서 올라갔다. 몸에 땀이 약간 배어나면서, '솨솨'소리를 내며 연신 재잘대는 계곡물소리가 더욱 시원스럽게 느껴졌다. 구슬을 담은 형상의 못, 함주(含珠)를 보고 나서 50미터 위로 올라서자 셔틀환산선(승차 관광도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도화곡에는 함주 위쪽으로도 구련폭과 도화동 민속촌, 선자동, 도화담폭포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40분만의 짧은 도화곡 관광이었지만, '도화곡'이라는 지명 때문인지 여운이 많이 남았다. 도화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와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에 등장하여 속세에서 떨어진,이상향을 상징한다. 태행산은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이지만 '도화곡'이라는 지명이 왠지 이상향의 염원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태행산은 산세가 험준해, 명말 청초에 전쟁을 피하거나 속세의 구속을 피해 도망온 사람들이 기거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이곳이 이상향이었지 않았을까? 송나라 시인 왕안석(1021-1086)의 시 '도원행(桃源行)'은 전란을 피해 은거한 삶이 이상향임을 노래하고 있다.
'도원행' -왕안석
'망이궁에서는 사슴을 말이라고 했는데 진秦나라 백성 중 절반은 만리장성 아래서 죽었다' 시대의 전란을 피한 것은 상산의 늙은이만이 아니고 또한 도화원에서 복숭아 심는 자도 있다 여기에 와서 복숭아를 심은 지 봄이 몇 번인가 복사꽃을 따고 복숭아를 먹고 그 나뭇가지는 땔나무가 되었다 자손을 낳고 길러도 세상과 단절되어 아버지와 아들은 있지만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 없구나 어부는 배를 띄웠으되 얼마나 나아갔는지 깨닫지 못하고 복숭아꽃 사이에서 서로 보고 묻는다 세상에서는 예전에 진秦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어찌 알겠으며 산 속에서는 지금이 진晋 나라 세상임을 어찌 짐작하겠는가 듣건대 장안에 전란이 끊이지 않는다니 봄바람에 고개 돌리며 수건이 젖는다 요순 이후 이런 곳을 또 어디서 찾을까 천하는 어지러진 秦나라를 몇 번이나 거쳤는가
이백 역시 그의 시 '산중문답'에서 이상향을 노래한다.
'산중문답' -이백
왜 산에 사느냐기에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
도화곡에서 왕상암까지는 1000미터 이상 높이의 산허리에 지그재그로 도로를 낸, '태행천로'를 타고 작은 버스로 이동하였다.바로 아래로는 낭떠러지여서, 여자 일행 중에는 '차가 달릴 때 아슬아슬하면서 경이로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그 젊은 여자는 "돌이 무너져 내려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농담을 했다. 25분만에 전망대에 도착하였고,그곳을 포함해 전망 좋은 3-4곳에서 버스에서 내려 사진촬영을 하며 경치를 감상하였다. 그러나 감탄사를 터뜨릴 만큼 전망이 기가 막힌 2곳은 정차여건이 되지 않아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우리가 놓친 장관은 도화곡에서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태행천로 초입에 시야가 툭 트여, 태행산 특유의 산봉우리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곳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전망대 직전에 비룡협 글자와 그 협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었다. 주정차 공간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주차장을 갖추고 있는 전망대는 두 달 전에 완공했다고 한다. 전체 길이가 25km인 태행천로는 2차선 포장도로로 5년 전에 만들어졌고, 관광객은 작은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이곳의 관광상품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이전에 허용했던 일반차량의 통행을 두달 전부터 제한했다.
태행천로를 이동하는 중에 그 높은 지대에, 사람 사는 마을들이 눈에 드문 드문 들어왔다. 30호 안팎의 마을들은 뒤로는 높은 산이요,바로 아래는 절벽이었다. 집들은 지붕과 벽은 물론, 바닥까지 돌 일색이었다. 지붕은 얇고 편편한 석판암들이 얹혀 있고, 돌판의 크기는 얼추 24인치 TV화면 크기만 하였다. 수없이 펼쳐진 다랑이 밭들은 석축이 잘 되어 거대한 예술작품이 되었고, 밭에는 수확이 끝난, 하얗게 마른 옥수수대들이 바위산을 배경으로 운치있게 서 있었다. 그런가 하면 늙은 아버지가 장성한 딸과 아들을 데리고 옥수수를 따서 돌아오는 모습, 나이든 남자가 쇠스랑으로 밭을 찍어 일구는 모습, 아주머니가 수확한 콩줄기를 도로변에 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이런 풍경은 어렸을 적 보았던 우리 농촌과 흡사하다.
산 위로 오를수록 관목의 잎들은 단풍이 짙게 들었다. 갈색이 섞인 붉은 빛이다. 감나무와 호두나무도 많았다. 파란 배추밭은 시골에서 어머니가 키운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 푸르름은 싱그러운 생명력을 느끼게 하였다. 바위틈과 석축 틈새, 밭둑 사이로는 노오란 구절초들이 하늘거리고, 노오란 옥수수 다발이 집 벽에 가지런히 걸려있거나 옥상 위에 채곡채곡 쌓여 있었다. 갈색 바탕에 붉은, 파란, 노오란 색깔이 들어간 자연의 수채화였다.
해가 떴으나 안개낀 날씨여서 사진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다. 약간 땀이 날 정도여서 달리는 차에서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가끔 능선에 구름이 걸쳐 있어 운치를 더해주었고, 일자로 평평한 능선 한 가운데 U자 모양으로 크게 홈이 파여 인상적인 곳도 있었다. 거대한 철판을 세워놓은 듯이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가로 300미터의 깎아지른 절벽은 장관이었다. 절벽 허리에 길을 내어 지어진 절과 아래서 절까지 설치한 달팽이 모양의 철제다리도 인상적이었다. 왕상암 지구가 가까워오자 마을의 길거리 주변에 사람들이 나와서 의자에 앉아 그릇에 국수를 담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왕상암지구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10분이 걸렸다.
태행산 항일유격근거지로 들어간 역정을 기록한 '노마만리'의 작가 김사량은 태항산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그의 글을 옮겨 적어본다. "태항산은 굽이치는 비탈길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마루채기를 타고 넘으면 번번한 산봉우리가 앞뒤 좌우에 빽빽히 들어차 빠져 나갈래야 나갈 길조차 없어 보인다. 한 굽이 스쳐 돌면 또 새로운 산굽이가 갈피갈피 앞을 막고 옆으로 다가선다. 때로는 암석을 깎아서 낸 길이 산봉우리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흡사 우리는 감자덩굴 속을 두루두루 헤매는 개미떼와 같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왕상암 아래 식당, '천연산장'에서 고구마 가루떡과 악비주 술로 점심을 맛있게 먹으며, 전통민요 공연을 즐겼다.식사를 마치고, 30여분 정도 자유롭게 주변 산책로를 오르며 풍광을 감상하였다. 차에 오르기 전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태행산 풍경을 담은 유화 그림첩과 자사호, 벼루를 우리돈 2만원에 구입하였다. 벼루는 연꽃과 오리 모양의 조각에 둥근 달이 새겨져 있어, 매일 보름달을 보는 듯한 감흥을 주었다. 자사호는 갈색의 자사토로 만든 고급 찻주전자로, 검은 때가 많이 끼어 있었다. 귀국하여 자사호를 잘 닦아내니 기품이 배어나고, 그 다기에 녹차를 끓여보니 차맛이 일품이었다.
#인공수로, 홍기거 (紅箕渠)
오후 3시에 왕상암을 출발해 버스로 20여분 달리자 '태행평호' 호수가 나왔다. 여기서 잠시 머무른 뒤 이곳에서 가까운 홍기거지구로 향했다.
'홍기거'는 홍기를 내걸고 만든 수로라는 의미다. 길이가 자그마치 1500킬로미터나 된다. 물이 넘치는 만리장성이라고 할 만하다. 하남성 임주시에 사는 주민 30만명이 10년에 걸쳐 이뤄낸 대역사이다. 1960년부터 10년간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공사 중 숨진 사람이 80명에 이른다. 가파른 절벽에 폭 4미터, 높이 3-4미터의 수로를 냈다. 수로를 내기 위해 뚫은 동굴이 400개나 된다. 가장 난공사 지점인 '청년동'의 일화는 유명하다. 길이 615미터인 이 동굴은 이 마을 남녀 청년 300명이 1년 5개월에 걸쳐 뚫었다고 한다. 이 지점은 물길의 요지로 이곳의 성패가 전체 공사의 성공여부를 좌우할 정도였다. 이 마을 청년들은 공사 제한시간을 무시하고, 날마다 몰래 자발적으로 작업을 강행해 눈물겨운 완공을 이뤄낸 것이다.
홍기거지역은 예로부터 물이 귀한 곳이다. 마을이 700-800미터 절벽 위에 있으니 물을 끌어올 곳도 없다. 이곳에는 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며느리의 일화가 있다. 물을 길으러 간 시아버지를 마중나간 며느리가 물동이를 시아버지로부터 넘겨받아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만다. 다음날 시어머니가 이웃집에서 물을 꿔오는 것을 본 며느리가 부끄러운 나머지 자살하고 만다. 그 시부모와 남편 역시 동네를 떠났다.
물이 귀해 식용유보다 비싸다는 이곳. 홍기거 공사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29살의 젊은 당서기 양귀였다. 그는 주민의 숙원인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주은래 수상에게 수로사업을 건의해 승인을 얻어냈다. 70킬로미터 구간의 수로에 낙차가 10미터 밖에 되지 않아 공사에 애를 먹기도 했다. 섬서성의 장하에서 끌어들인 물은 1500킬로미터의 수로를 따라 임주시 인민의 목을 축이고 논밭을 축축히 적신다. 임주시 인구 70만명의 65%가 홍기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홍기거는 '산과 물을 바로잡는다'는홍기거 정신을 낳았다. 최근 불리어지는 '산가(山歌)'는 홍기거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산가'
"한 사나이 외바퀴 수레 밀고 가네 /뜨끈한 칼국수, 술고기 부럽지 않아/수레를 밀고 밀고 밀어 /홍기거 만들어냈고/ 또 밀고 밀고 밀어서/ 밖에 나가 일하니 희망이 넘치고/또 밀고 밀고 밀어/의식주가 풍요롭네/지금도 밀고 밀고 밀어/ 희망찬 생활로 나아가고 있다."
살기 위해 만든 홍기거가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BestNocut_R]
취재 협조: 중국국가여유국 서울지국, 중국 하남성 · 안양시 여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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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항산(太行山)
태항산은 하남성과 산동성, 산시성, 하북성을 포함 4개 성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600km, 동서로 250km로서 거대하게 산군을 이루고 있다.
한자‘行’은 ‘걷다, 가다’라는 의미일 때는‘행’으로 읽지만
"줄"이나 "항렬(行列)"의 뜻일 때는 ‘항’으로 읽는다.
태항산맥은 커다란 산이 줄지어 있다는 의미로 "항"인 것이다.
태항산 대협곡(太行山 大峽谷)은
그 규모에서도 엄청 클 뿐 아니라 웅장함이 대단한 곳으로
예로부터 "태항산 800리"라 불려온 이 산맥을 현지인들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빼닮아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중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 남단에 위치한 남태항의 구련산(九蓮山)과
왕망령(王莽嶺·1,655m)~만선산(万仙山·1,672m) 일원은 거대한 협곡으로
이름난 곳으로 특히 올해 들어 우리 등산인들로부터 관심을 얻고 있는 지역이다.
태항산은 덩치가 큰 만큼 명소와 절경지가 곳곳에 널려 있으나
태항산의 경관은 세 개 지역으로 나뉘어 구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첯째 코스는 천길 낭떠러지의 8부 능선 길을 따르는 구련산(九蓮山) 탐승,
두번째 코스는 장쾌한 조망을 만끽하며 능선을 따르다 선경이 펼쳐지는
계곡으로 내려서는 왕망령(王莽嶺)~만선봉(萬仙峰)으로 이어지는 트레킹,
그리고 세번째 코스는 설악산 비선대나 비룡폭포를 오르내리듯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비경을 엿보는 도화곡(桃花谷)~왕상암(王相岩) 트레킹이 그것이다.
태항산은 일대를 묶어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근래에 들어 본격적인 개발을
하고 있으며 관광상품을 아울러 개발하는 등 중국인들이 자주 왕림하는 산이기도 하다.
태항산맥은 예로부터 그 험준함으로 인해 前漢을 멸망시키고
新나라를 건국한 王莽과 後漢을 건국한 劉秀가 치열한 싸움을 벌인 곳이며
이를 증명하듯 9개의 蓮花가 피어 오르는 듯하다는 九蓮山과 周家浦 사이에는
웅장한 성곽과 같은 형상을 한 劉秀城과 王莽嶺이 마주보고 있으며
근대사에서는 우리나라 광복軍이 중국의 팔로軍과 연합하여
일본軍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또한, 列子가 湯問篇에 나이 90歲가 넘는 愚公이 太行山의 흙을 파서 발해만까지
한번 운반하는데 1년이 걸렸다는 둘레 700리가 넘는 태항산을 옮기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이를 비웃자 愚公은 子子孫孫 代를 이어 하다 보면 언젠가는
山을 옮길 수 있다고 믿고 계속하자 옥황상제가 이에 감동 받아 산을 옮겨 주었다고 한다.
먼저 九蓮山으로 이동 120m의 천호폭포, 999계단을 오르는 천제, 서련촌을 거쳐
50여 개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로 구성된 대항대협곡의 지존으로 불리는
왕망령 정상을 거쳐 만선산으로 하산하는 첫째날 일정이었다.
구련산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장가계, 황산의 경치에 웅장함이 더해진 山이며
9개의 蓮花가 피어 오르는 듯하여 九蓮山으로 불리우며
太行山 大 峽谷의 남부에 위치해 있고
120m의 天壺瀑(천호폭포),999계단의 돌 계단인 天梯와
웅장한 하늘의 門과 같은 天門溝(천문구),
소박한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西蓮村, 계곡을 따라 아름다운 폭포가 이어지는 仙脂峽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중국 태항산 대협곡 트레킹
해외 트레킹 전문여행사인 트레킹클럽(T.1688-2584) 상품
강서성 하남성의 경계에 있는 태항산이 중국의 새로운 트래킹 명소로 각광 받고 있다.
태항산 대협곡으로 불리는 도화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보는듯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이 도화곡 중심의 태항산 대협곡 트레킹은 8시간정도가 소요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트레킹이 될 것이다.
인근의 태항옥척(太行屋脊)코스, 한단시의 古무당산(古武堂山) 등은 최고의 절경을 갖고 있다.
또한 신향을 기점으로 한 태항 만선산과 구련산을 잇는 트레킹 코스도 함께 개발을 마치고
이미 많은 산악단체들이 트레킹클럽과 함께 태항산 트레킹을 만족스럽게 마침으로써
그 매력이 이미 검증되었다.
그동안 대한항공(4월부터 금, 화 취항으로 변경)과 산동항공(4월부터 목, 일 취항으로 변경)이 취항하는 항공편을 이용하여 태항산 트레킹을 주로 다녔으나, 금년 들어 항공대란으로 좌석이 부족하여 태항산 트레킹이 원할하지 못하자
각 여행사들은 북경을 이용하는 상품, 정주를 이용하는 상품 등 다양한 상품들을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다.
트레킹 클럽에서는 그 동안의 노하우로 트레킹 클럽만의 강점인 침대버스를 연계한
훼리상품이나 조금 거리가 먼 공항을 이용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의 대안을 세우고 있다.
또한 광범위한 태항산 중에 이동시간과 휴식시간 최고의 경치와 트레킹 만족도 등
절경지를 엄선하여 선택된 곳을 많은 트레커들에게 추천을 하고 진행을 해왔다.
실례로 태항산의 옥척지구나 古무당산은 타 여행사에서는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던 곳이나
트레킹 클럽에서는 이미 수십 차례를 다녀온 바 있다.
또, 트레킹 클럽만의 강점이라는 침대버스를 이용한 이동으로
장시간 이동에도 전혀 피로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은 일정으로 소화하고 있다.
이는 좁은 버스에서 몇 시간씩 힘들게 이동하던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이동시간 중 개인용 침대에 누워 편안히 휴식을 취하므로 1시간을 이동하더라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 피로를 모르고 여행에 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심야에 수면을 취하는 동안 이동을 한다면 시간적으로 많은 이점을 확보하여
더 많은 관광지를 관광하거나 트레킹이 가능하다.
심야에 수면을 하는 동안 이동하여 아침에 목적지에 당도하여 간단하게 사우나를 마치고
식사 후 트레킹을 시작하는 이 일정은 인터넷의 "H"산악회가 지난 2009년 4월 처음으로
사용한 일정인데, 이후로 인기상품으로 정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남 공항을 이용한 상품이 보편화되었고
북경을 이용하여, 고속열차나 심야열차로 구련산 기점인 신향이나 도화곡 트레킹의 기점인
안양까지 이동하여 트레킹하는 일정..
정주공항을 이용하는 방법
훼리를 이용하여 청도로 입항 후 태항산으로 이동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태항산 트레킹이 가능하다.
트레킹 클럽 역시 위에 열거한 공항을 이용한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며,
특히 훼리를 이용한 상품은 침대버스를 이용하므로
장거리 이동에도 많은 편안함을 제공하고 있으며, 실속 있는 가격으로 진행한다.
기존여행사의 상품가는 399,000원이나 이는 비자비와 팁을 별도로 더 받는 방식의 금액으로
실제로는 비자비와 가이드팁을 포함하면 460,000~470,000원이 상품가로 봐야 한다.
그러나 트레킹 클럽에서는 비자와 가이드팁 등 모든 경비를 포함하고,
침대버스를 이용한 일정으로 상품가를 495,000원에 출시하고 있다.
이동의 편안함과 더 많은 곳을 다닌다는 이점을 감안한다면 훨씬 더 저렴한 상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가격 면이나 항공수요가 상대적으로 편리한 청도공항을 이용하는 일정도
많은 기대가 되는 상품이다.
태항산 탐방지도
태항산 위성 지도
무당산 탐방지도
태항산 위치도
태항산 여행일정표
첫댓글 멋있습니다.... 그리구... 맘에 쏙~~~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