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의 꿈은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어서 늘 슈바이처를 존경해왔다. 슈바이처는 평생 동안 남을 위해 봉사하고 돈이 없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었다. 장기려 박사가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말을 듣고, 그 분의 하신 일, 본받을 점 등을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전기문을 찾아보았다.
장기려 박사는 병원장에서 외과의사로 강등되어도 성실히 봉사했다. 장기려 박사는 “환자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강등 자체는 조금도 서럽지 않았으나 텃세는 서러웠습니다.”라고 신앙을 다진 기간이라고 전했다. 나도 장기려 박사처럼 실패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남에게 봉사하고 싶다. 또, 장기려 박사가 정말 성실한 것 같다. 그 성실함에 노력을 더하면 발전 기회가 많은 사람이 될 것 같다.
또, 장기려 박사는 월급 대부분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사용했다. 장기려 박사는 1951년 6월 경남구제위원회의 전영창(全永昌) 선생과 한상동(韓尙東) 목사의 요청으로 무료의원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복음병원이다. 나도 장기려 박사처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장기려 박사가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릴만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기려 박사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를 마음에 새겼다. 장기려 박사가 1968년 5월 13일 ‘진실, 사랑, 협동’의 청십자(靑十字) 정신으로 ‘청십자의료보험’을 만들었다. 장 박사는 ‘공수래 공수거’라는 표어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봉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장 박사의 봉사에 대한 애착이 느껴진다.
전에는 슈바이처를 존경했는데 한국위인으로는 장기려 박사를 존경한다. 나도 장기려 박사처럼 남을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