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판 1
.. 번호:45 글쓴이:헬로굿바이헬로 조회:21 날짜:2002/03/08 15:08 ..
현우는 넥타이를 다시 한 번 쓱 어루만지며 선생님 뒤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일순간에 싸하게 흐르는 침묵을 깨고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두 달간 여러분들을 가르쳐주실 교생선생님이시다.
이 선생님, 직접 소개하시죠."
현우는 교단위로 올라가자마자 칠판에 큼지막하게 자기 이름을 쓰고는 돌아서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한국여상에 교생실습을 나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잘 부탁합니다."
현우가 전공을 살려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은 주산, 부기, 상업대요 이 세 과목이었는데 상고를 나오지 않고 대학시절에도 주산, 부기를 별도로 배우지 않은 현우는 이론을 가르치는 상업대요를 맡았다.
상업대요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교무주임선생님과 아직 나이 어린 처녀선생님이 계셨고 운이 좋게도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여선생님에게로 현우는 배정되었다.
아침 조례가 끝나고 마침 일 교시 수업이 없는 담임선생과 잠시 교과협의를 하였다. 담임인 이향란 선생은 우선 한 달간은 자기 수업 때에 뒷자리에서 같이 수업을 받고 나머지 한 달간은 직접 수업을 해 보라고 하며 자기가 교안을 같이 짜주겠다고 하여서 현우는 흔쾌히 응낙을 하였다. 또 아침 조례는 자기가 할 테니 두 달간 자기가 담임으로 있는 2학년 3반의 종례를 맡으라고 하였다.
현우네 대학교에서는 현우하고 같은 경영학과에서 두 명 더, 가정과와 수학과 응용미술학과에서 여학생이 한 명씩, 그리고 국가대표 테니스선수인 체육학과 남학생 두 명까지 도합 8명이 한국여상에 교생실습을 나왔다.
교생실은 교무실 옆에 옛날에 양호실로 쓰던 곳을 개조하여 만든 곳으로 개인별 책상은 없었고 그저 커다란 도서관 책상에 삥 둘러 의자만 놓아져있었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교생실에 돌아오니 모두 그런 데로 잘 적응들을 해 나가는 표정들이다.
6교시에 이향란 선생이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 현우가 대신 자습지도를 하였다.
갑자기 한 녀석이 손을 들더니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뭔데, 사적인 질문은 일절 사양이다."
"선생님, 애인 있습니까?"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가 애인 있는 거하고 여러분들 공부하는 거하고 전혀 상관없으니까 그런 거 묻지 마라."
현우는 다시 창 밖을 본다.
교실 옆 가장자리로 개나리가 피어있고 아름드리 나무에는 벚꽃까지 한창이다.
침묵을 깨고 다시 한 녀석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 애인은 어떤 분이세요?"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매시간 아마도 똑같은 질문을 받으리라.
"선생님 애인은 선생님 군대갔다 오니까 고무신 거꾸로 신고 도망가고 없더라. 이제 더 이상 묻지 마라."
아이들 사이에서 선생님 애인 나쁘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우는 다시 창 밖을 응시한다.
대학 일 학년 그때도 개나리꽃과 벚꽃이 한창인 때였다.
근교 유원지에서 대학 첫 미팅이 있었다.
상대는 한국여대 음악과 여학생들이었고 그런데로 괜찮겠다 싶어서 현우도 큰 맘 먹고 미팅에 참석하였다.
여학생들이 가지고 나온 악기를 골라 파트너를 정하기로 하였고, 클라리넷과 플롯 중에서 현우는 플롯을 선택하였고 화사하고 맑은 여학생과 파트너가 되어 하루종일을 다같이 유원지에서 즐겁게 놀았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우는 인성에게 전화를 하였다.
"인성아, 너 오늘 만난 애 마음에 들어?"
"응, 왜 넌 별로냐?"
"아니, 그게 아니고 네 파트너 나한테 양보 좀 하면 안될까?"
중고등학교 6년을 현우랑 붙어 다닌 인성이기에 현우가 웬만해서는 이런 소리를 자기에게 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는지 웃으며 말했다.
"나야 양보할 수 있는데 걔 의사가 문제지."
"너 에프터 약속했냐?"
"아니, 전화번호만 알아놓았다. 번호 알려줄게."
일주일이 흐른 후에야 현우는 그녀의 집 다이얼을 돌렸다.
그 날, 유원지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혀서 인성의 파트너가 된 후에도 종일 그녀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신호음이 가고 어렴풋이 기억되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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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글을 써 봅니다.
점심 시간에 별빛님 글을 읽으며
더 늙어 치매에 걸리기 전에 뭐라도 한 번 써보자..하는 생각이 들어
몇 줄 써봤는데 무지 힘드네요.
한시간 반동안 쓴게 이 정도니 더 쓸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존경하는 마녀님 검객님
두 분은 프로시니까 쓰디 쓴 질책 많이 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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